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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전망

대한민국 경제의 미래를 책임질 4人4色

“공격적·글로벌·변화 추구형 CEO, 소탈함과 孝心이 공통점”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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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신형’ 이재용, ‘돌파형’ 정의선, ‘뚝심형’ 최태원, ‘실천형’ 구광모
⊙ 이재용, ‘최고의 네트워크’ 적극 활용해 경영 청사진 그려
⊙ 1년 사이 자율주행·차량 공유 등 30여 건 공동 협약 체결한 정의선
⊙ ‘하이닉스’ 인수로 잭팟 터트린 최태원, ‘조’ 단위 투자 선뜻
⊙ 최연소 구광모, 회장보다 대표 호칭 선택한 ‘정도경영’ 계승자
  재계(財界)에 세대교체 바람이 불고 있다. 4대 그룹 중 세 곳의 총수가 사실상 최근에 교체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18년 5월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대신해 그룹 총수로 지정됐다.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은 회장 직함은 없지만 공식 석상에서 회장 대행을 맡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현대차의 중국 공장을 방문했을 때나 김동연 전(前) 경제부총리가 본사를 찾았을 때 총수 자격으로 이들을 만났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 등 쟁쟁한 선배 경영인들 사이에서 만년 젊은 총수였던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어느새 4대 그룹의 좌장(座長)이 됐다. 2018년 6월에 ‘LG호(號)’의 최고 경영자가 된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신선한 바람을 몰고 올 새내기 총수다. 4대 그룹 총수의 평균 나이는 만 50세. 창업주와 2세 경영인을 거쳐 1960~70년대에 태어난 재벌 3~4세가 경영 전면에 나섰다. 시대는 이들에게 큰 변화를 요구한다.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해 기존의 패러다임이 송두리째 뒤바뀌는 상황에서 그룹의 영속성을 책임져야 한다. 제아무리 대한민국의 간판 그룹이라고 해도 이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면 2030년은 보장되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해외에서 유학을 한 덕에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 비교적 소상히 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시대를 직접 목격하며 그룹의 흥망성쇠를 경험했기에 신중하지만 공격적이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40~50대의 젊음은 이들이 형식을 타파하고 소탈한 경영인이 되게끔 했다. 수행비서 없이 출장을 다니거나 자기 여행 가방을 직접 옮기더라는 얘기는 이제 식상하다. ‘워라밸(Work와 Life의 Balance를 중시한다는 요즘 젊은 직장인을 뜻하는 용어)’을 추구하는 시대에 맞춰 경영인으로서의 생활과 사생활의 균형을 중시한다. 그리고 효심(孝心)이 지극하다.
 
 
  “신중하지만 무섭게 몰아붙이는 이재용”
 
이재용 부회장(왼쪽에서 두 번째)은 2028년 LA올림픽까지 IOC 후원을 연장하는 조인식을 가졌다.
  이건희 회장이 2014년 5월에 갑작스레 병석에 누운 뒤 시선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쏠렸다. 예상대로 그는 이 회장의 부재중에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직을 물려받았고 2016년 10월에 삼성전자 등기이사로 선임됐으며, 그러다 최근 그룹 총수로 지정되며 무게감은 한층 더 실렸다. 1967년생인 이 부회장은 경복고등학교·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게이오기주쿠대 경영학 석사·미국 하버드대 경영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1991년에 삼성전자 상무보로 입사하면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경영 수업을 받던 시절 그의 행보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공식 직함도 삼성전자 최고운영책임자(COO)여서 그가 그룹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수치로 확인하기 어렵다. 분명한 점은 그가 사실상 삼성전자 경영을 진두지휘하기 시작하면서 이병철 선대회장, 이건희 회장과 사뭇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점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하겠다며 ‘선택과 집중’을 캐치플레이즈로 내걸었다. 비(非)삼성전자에 해당하던 삼성테크윈·삼성탈레스·삼성종합화학·삼성토탈 등 방산 부문은 한화(2014년 11월), 삼성정밀화학·삼성BP화학 등 화학 부문은 롯데(2015년 10월)로 넘겼다. 2016년 해외 기업인과의 오찬 자리에서 그는 “회사를 판다고 얘기하지 않겠다. 각 회사에 베스트 오너를 찾아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삼성의 사업구조 재편에 대한 본인의 철학을 직접 언급했다. ‘삼성의 상징’인 삼성생명 태평로 본관을 부영그룹에 5800억원을 받고 팔면서 이재용 부회장은 본인의 색깔을 내기 시작했다. 재계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 스타일에 대해 “사업 결정을 하기 전에 매우 신중하다. 하지만 일단 판단이 서고 나면 무섭게 몰아붙이는 스타일”로 평가하는 이들이 많다. 특히 그는 해외에 자주 다니는 총수다. 경영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포럼은 물론이고 삼성이 해외 파트너사와 계약을 맺을 때 현장을 찾곤 한다.
 
 
  4개 미래성장사업에 25조원 투자예정
 
2015년 8월, 전남대에서 열린 ‘삼성드림클래스’를 방문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 부회장이 ‘선택과 집중’을 통해 미래성장사업으로 선택한 것은 AI(Artificial Intelligence·인공지능), 5G(5G Networks·5세대 이동통신), 바이오, 반도체 중심의 전장(電裝) 부품이다. 4개 부문에 25조원이라는 천문학적 규모를 쏟아부을 예정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밑그림대로 삼성은 요즘 대대적으로 변신하고 있다. 연구 개발이 필수인 AI 분야를 강화하기 위해 한국·영국·캐나다·프랑스·러시아 등 전(全) 세계에 AI 연구소 7개를 만들었다. AI 연구소의 연구 진행 상황을 직접 살피기 위해 그는 2018년 3월 유럽과 캐나다로 날아가 글로벌 AI센터를 점검하고 운영에 필요한 핵심 인재를 직접 영입했다.
 
  이 부회장은 미래성장사업과 관련해 비즈니스 파트너들과의 네트워킹에 꼭 필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2018년 12월 9일 인도 최고 갑부의 딸 결혼식에 이재용 부회장이 참석했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 그가 개인적인 친분만으로 이 자리에 참석했다고 생각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인도 최대 통신 기업인 릴라이언스 및 글로벌 기업인과의 네트워킹 차원에서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이 부회장은 2018년 5월에는 중국 선전, 6월에 일본, 8월에 유럽을 찾았는데 모두 자동차 전장 부품 사업과 관련이 있었다. 작은 어촌이었던 중국 선전은 1980년 경제특구로 지정된 후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해 현재 ‘중국 혁신의 메카’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린다. 선전에 있는 기업의 34%가 IT 기업이며, ‘텐센트’와 ‘화웨이’ 같은 중국 거대 IT 기업의 본거지다. 중국 전체 드론 업체 400여 곳 중 75%인 300여 개가 이곳에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김기남 당시 삼성전자 사장, 진교영 사장 등 반도체 부문 주요 경영진, 이동훈 삼성디스플레이 사장 등과 동행했다. 그는 중국 선전에서 왕추안푸 BYD 회장, 레이쥔 샤오미 회장 등 전자업계 리더들을 만나 전장 부품 사업에 대해 논의했다. 같은 해 6월 일본에 갔을 때는 우시오 전기, 야자키 등 주요 비즈니스 파트너를 만나서 신사업 분야에서의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우시오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 전문업체이고 야자키는 일본의 대표적인 자동차 부품 회사다. 8월 유럽 출장길에는 자동차 업계 파트너사를 직접 방문해 삼성과의 사업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최고 경영자로서 자신의 네트워크를 십분 활용하는 모습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똑 닮았다. 이건희 회장의 대표 경영 키워드 중 하나로 ‘승지원 경영’을 꼽을 수 있는데, 이 회장은 한남동 승지원을 집무실로 사용하며 그룹의 주요 정책을 이곳에서 결정했고, 외부 인사들을 접대할 때도 이곳을 활용했다. 우시오 그룹의 창업자 우시오 지로 회장과는 2007년 5월에 승지원에서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했고, 하워드 스트링거 소니 회장도 2010년 이곳으로 초대했다. 삼성과 사업 파트너를 맺은 적이 있는 해외의 거물들은 대부분 이곳을 거쳐 갔다. 이재용 부회장은 파트너사 경영자들을 국내로 부르는 대신에 자신이 직접 그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고급 네트워크’를 전적으로 회사를 위해 사용한다.
 
 
  주주친화 정책, ‘반올림 백혈병’ 11년 만에 매듭지어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 등기이사로 선임된 이후 삼성의 지배구조는 대폭 변화했다. 삼성화재와 삼성전기가 갖고 있던 삼성물산 지분(각각 1.37%, 2.61%)을 모두 처분해 기존의 순환출자 고리를 완전히 해소했다. 한때 지주사로의 전환을 두고 고민했지만, 이 부회장은 사업경쟁력 강화 등 실익(實益)이 없고 오히려 막대한 지주사 전환 비용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지주사 전환을 포기했다. 대신에 이사회 중심의 책임 경영을 강화하고 독립성을 높이기 위해 정관을 변경했다. 2018년 3월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완전히 분리했다.
 
  이재용 시대에 가장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주주(株主)에 대한 배당금을 대폭 확대한 일이다. 코스피에 등록된 우리 기업의 배당률이 미국 등 해외보다 현저히 낮다는 것은 여러 차례 지적된 일이다. 이 부회장은 공공연하게 ‘주주친화’를 외쳤다. 2017년 배당 때에는 전년보다 46% 늘어난 총 5조8000억원의 배당금을 주주들에게 배분했다. 한국의 대표 ‘대장주’인 삼성전자의 주가(株價)가 높아 일반인들이 투자를 하지 못하는 점에 착안해, 2018년 1월에는 삼성전자 주식을 50대 1로 액면분할 했다.
 
  이 부회장은 삼성이라는 이름이 갖고 있는 사회적 무게에 대해서도 실감하는 분위기다. 삼성전자는 11년 동안 길게 끌어왔던 일명 ‘반올림 백혈병(반도체 직업병)’의 중재안을 무조건 수용하겠다고 2018년 7월 밝힌 후 11월 완전 타결을 이뤄냈다. 또 국가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 총 180조원 투자, 4만명 고용을 약속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삼성이 갖고 있는 사회적 책무를 순차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라며 “청년 실업자 1만명에게 소프트웨어 교육을 제공하고, 청년 창업을 지원하는 등 사회 전반적으로 벤처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1만8000원짜리 회사 지하 미용실에서 이발하는 대기업 오너
 
이병철 삼성 선대회장의 무릎에 앉아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맨 뒤쪽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삼성그룹의 케케묵은 일과 미래 먹거리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그에게는 개인적으로나 경영자로서 아픔이 있다. 이건희 회장의 부재로 ‘회장 승진설’에 휩싸이던 때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2018년 초 항소심을 통해 집행유예로 풀려나 경영 공백을 메우기 위해 활발히 활동 중이지만, 아직 대법원 판단이 남아 있는 터라 경영 활동이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이재용 시대’가 그동안 한 치의 오차도 허락되지 않는 관리의 삼성을 변화시키는 것만은 분명하다. 과도한 의전을 좋아하지 않는 이재용 부회장의 성향 때문이다. 해외 출장을 떠날 때 이재용 부회장은 수행비서가 없다. 입출국 수속을 혼자 하고 단출한 기내 가방을 혼자 들고 다니는 모습이 자주 언론에 포착된다. 영어가 능통한 덕에 해외 출장 중에 혼자 매장을 찾아가 직접 고객 반응을 체크할 때도 있다.
 
  그는 업무 보고를 받을 때에도 인쇄된 보고서 대신에 모바일 메신저를 이용한다. 또한 대기업 오너답지 않게 소탈하다는 것이 삼성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부회장에 오른 이후 요즘도 직원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탄다. 회사의 구내식당에서 혼자 늦은 점심을 먹는 모습도 여러 차례 목격됐다. 3~4년 전에는 그가 서초동 삼성사옥 지하 2층 미용실에서 이발을 하는 모습이 포착돼 누리꾼들의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1만8000원짜리 미용실에서 이발을 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대기업 오너’가 신선하다는 평이 일색이었다.
 
  대기업 오너 일가들이 명품을 즐겨 입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이 부회장은 남성 셔츠 한 벌에 10만원 정도인 스포츠 브랜드 ‘언더아머’를 입어 화제가 됐었다. 아버지와 닮은 듯, 닮지 않은 경영 스타일을 보이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의 효심은 익히 알려져 있다. 집행유예로 풀려나면서 심정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우선 아버지를 봬야 한다”고 말하며 곧장 이 회장이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잰걸음을 했다.
 
 
  기아차 대표로 일찌감치 경영자 능력 검증받은 정의선
 
2015년 11월 4일 현대자동차 ‘브랜드 비전 및 전략 발표회’에서 정의선 부회장이 고급차 전용 브랜드 ‘제네시스’ 공식 출범을 발표하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은 부친인 정몽구 회장을 많이 닮았다. 스스로 “정주영 명예회장을 가장 존경하며, 가장 닮고 싶은 사람은 정몽구 회장이다”고 말한다. 그에게 닥친 숙제는 내연기관인 자동차 기업을 차세대 미래형 자동차 기업으로 탈바꿈시키는 일이다. 4대 그룹 총수 중에서 제일 오랫동안 경영 수업을 받았고 그 와중에 눈에 띌 만한 업적도 많았다. 따라서 그의 회사 경영은 수석부회장으로 임명되기 훨씬 전부터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1970년생인 정 부회장은 휘문고·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샌프란시스코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았다. 일본 이토추상사 뉴욕지사에서 근무한 뒤 1999년 귀국해 현대자동차에 입사했다. 정 부회장이 걸어온 길은 부친인 정몽구 회장과 판박이다. 첫 업무는 현대차 자재본부에서 자동차 제조에 필요한 부품 조달과 자재관리, 협력업체 관리 담당이었다. 부품과 원자재 분야에서 경영 수업을 하는 것은 현대가(家)의 오랜 전통이고 정몽구 회장 역시 같은 일로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요즘도 정주영 명예회장과 정몽구 회장이 그러했듯 매일 오전 6시30분에 출근한다.
 
  정의선 부회장의 경영 능력의 우열이 판가름 난 것은 2005년 기아차 대표이사 사장을 맡았을 때였다. 현대차는 부도로 쓰러진 기아차를 1998년 인수했지만 여전히 기아차의 실적은 좋지 않았다. 정 부회장에게는 기아차를 현대차와 차별화해야 하는 숙제가 주어졌다. 고심 끝에 그는 현대차와 차급, 성능이 비슷한 기아차에 ‘디자인’을 적용, 승부를 보기로 한다. 디자인을 전면 수정하기 위해서 탁월한 감각을 가진 디자이너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그는 당시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알려진 피터 슈라이어를 유럽까지 찾아가 삼고초려 끝에 영입했다.
 
  이듬해에 ‘파리모터쇼’에서 정 부회장은 “차량 라인업의 디자인을 업그레이드하고 감각적 디자인 요소를 가미해 세계 무대에서 기아차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겠다”며 ‘디자인 경영’ 출사표를 던졌다. 피터 슈라이어는 국내뿐 아니라 미국·유럽·일본 등 해외 디자인센터를 총괄하면서 특징 없던 기아차의 얼굴에 ‘패밀리룩’을 그리기 시작했다. 2년 후인 2008년 6월에 ‘직선의 단순화’를 기반으로 한 기아차의 ‘호랑이코’ 패밀리룩이 탄생했다. ‘로체’ 페이스리프트 모델에서부터 ‘포르테’ ‘쏘울’에 기아차의 새로운 디자인이 가미됐다. 기아차는 그해 세계 3대 디자인상을 석권했다.
 
  그가 ‘디자인 경영’과 함께 신경을 쓴 것은 ‘글로벌 경영 구축’이다. 기아차 적자의 주요 원인은 환율이었다. 전체 판매 중 해외 판매 비중이 79%인데 차를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을 했으니 환 위험에 노출되는 것은 당연했다. 정 부회장은 이런 상황을 고치기 위해 슬로바키아 공장과 미국 조지아 공장을 건설했다. 공장 설립 계획 단계부터 완공 단계까지 사업 진행 상황을 직접 챙겼다. 정 부회장은 10차례 넘게 슬로바키아를 찾았다. 정 부회장의 경영 스타일은 ‘돌파형’이다. 문제가 생기면 이를 쉽게 넘기지 않고 그 원인을 찾아 뚝심 있게 밀고 나간다.
 
 
  본인의 잘못이 아니어도 ‘자기 문제’로 인식하고 책임져
 
2018년 12월 11일 충북 충주시 현대모비스 충주공장에서 열린 ‘수소연료 전지공장 신축공사 기공식’에 참석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왼쪽에서 네 번째).
  기아차를 ‘갖고 싶은 차’로 만든 정 부회장은 2009년 8월에 현대차 판매 및 기획담당 부회장으로 취임했다. 현대차에서는 기아차에서보다 더 큰 숙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판매가 순조로웠지만 잘나가는 기업을 한 단계 도약시켜 지속가능한 기업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주변의 기대였다. 정 부회장은 ‘브랜드’에서 해답을 찾았다. 그는 체코 공장 준공식에서 “현대차의 고급화와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데 신경 쓸 것”이라고 밝혔다. 정 부회장은 고객들에게 ‘현대차’만의 감성을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자동차가 단지 이동 수단을 넘어 새로운 공간과 시간을 체험하는 공간이라고 판단했다. 새로운 가치는 바로 ‘새로운 생각, 새로운 가능성(new thinking, new possibilities)’이었다. 정 부회장이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바로 ‘고객’이다.
 
  “어떻게 고객들에게 사랑받는 현대차가 될 수 있을까요?”
 
  정 부회장이 현대차로 자리를 옮긴 뒤 첫 회의에서 임원들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야 차가 많이 팔릴까요’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사랑을 받을까요’라고 질문을 던졌다. 결과는 ‘찾아가는 서비스’였다. 고객이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찾아가라는 것. 가령 신차 시승을 신청하면 365일 어느 곳이든지 고객이 편하게 시승할 수 있게 현대차의 카마스터가 직접 고객을 찾아가는 식(式)이 정의선 부회장의 해법이었다. 또한 차량 정비 시 고객들이 서비스센터를 가는 대신 직원들이 차를 직접 픽업해 서비스센터에 가져가도록 했다. 그가 기아차에서 현대차로 자리를 옮긴 2009년 당시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 업체인 ‘인터브랜드’는 현대차의 브랜드 가치를 69위로 봤다. 2018년 현재 현대차의 브랜드 가치는 36위다.
 
  정의선 부회장을 접한 사람들은 그에 대해 공통적으로 “겸손하다” “배려심이 많다” “책임감이 강하다”고들 한다. 부하 직원에게도 존대를 하고 주변 사람들을 먼저 배려한다. 본인의 잘못이 아니어도 ‘자기 문제’로 인식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인다. 정 부회장의 성품은 엄격한 현대가의 가풍(家風)에서 비롯됐다. 정주영 명예회장이 타계했을 때 할아버지의 영정을 들고 장례 행렬의 맨 앞에 섰던 그는 아직까지 정주영 명예회장의 제사가 있을 때마다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고 맨 끝까지 남아 있는다. ‘현장’에서 문제점을 찾아 해결하는 ‘현장경영’은 아버지로부터 배웠다. ‘현장을 잘 알아야 올바른 경영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정몽구 회장의 경영 철학을 이어받았다. 그의 효심은 재계에서 정평이 나 있다. 그는 개인적인 소망으로 “아버지가 건강하게 오래 사시고 아이들이 잘 커 주는 것 외에 바람이 없다”고 말한다.
 
 
  2018 경영진 인사는 정 수석부회장 중심으로 세대교체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수석부회장의 모습.
  ‘정의선 경영’의 핵심은 인재 중시다. 내부 직원 역량을 강화하고 필요하면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외부 인재를 영입하려고 한다. 2018년 12월에 있었던 부회장단과 사장단에 대한 인사에서도 엿볼 수 있다. 정몽구 회장 시절에 그룹 성장을 이끌었던 주요 인사들은 퇴진하거나 자리를 옮겼으며, 대신 자율주행차, 커넥티드카, 고성능 차, ICT 등 미래 신기술을 주도할 세력이 경영 전면에 나섰다.
 
  정 부회장이 직접 영입한 알버트 비어만 현대기아차 차량성능담당 사장이 신임 연구개발본부장으로 임명됐고, 지영조 전략기술본부장 부사장은 사장으로 승진했다. 알버트 비어만은 BMW에서 30년간 고성능 차 개발을 담당한 전문가로 2015년 4월에 현대차그룹에 합류했고 지영조 사장은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와 삼성전자를 거쳐 현대차에 합류했다. 두 사람은 현대차그룹의 자율주행차, 고성능 차, ICT 등 개발을 위한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룹 관계자는 “외국인 임원을 연구개발본부장에 임명한 것은 사상 최초”라며 “실력 위주의 글로벌 핵심 인재 중용을 통한 미래 핵심 경쟁력 강화 의지가 반영된 인사”라고 설명했다.
 
  정 부회장을 읽는 두 번째 키워드는 소통경영이다. 그는 젊은 소통으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2011년 12월 30일, 현대차 양재사옥 지하식당에서 종무식 후에 간담회가 열렸다. 정 부회장은 원고 없이 “좋은 생각에 대해서는 무엇이든지 적극적으로 펼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하겠다”며 본부별로 모인 테이블을 빠짐없이 돌며 직원들의 얘기를 들었다. 정 부회장은 부사장 시절에는 직원의 상가(喪家)를 방문해 밤늦게까지 자리를 지키며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제네시스’는 정 부회장의 손을 거쳐 탄생한 현대차의 대표적인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다. 1967년 창립 이래 48년간 ‘현대’라는 단일 브랜드만으로 성장의 역사를 써온 현대차가 ‘현대’와 ‘제네시스’라는 복수의 브랜드를 사용한 의미는 남다르다. ‘제네시스’가 내세운 브랜드 가치는 ‘인간 중심의 진보’다. ‘제네시스’ 브랜드는 미국 제이디파워가 발표한 ‘2017 신차품질조사’에서 미국·유럽·일본 등 13개 럭셔리 브랜드를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 정 부회장은 력셔리 세단 ‘G90’ ‘G80’ ‘G70’를 출시해 제네시스 브랜드의 승용 라인업을 완성했다.
 
  정 부회장의 눈앞에 놓인 과제는 무겁다. 그는 ‘과거’에서 벗어나 ‘미래’로 가는 발판을 마련해야 하는 숙명을 갖고 있다. ‘자동차와 IT의 융합’은 정 부회장의 오랜 화두라고 현대차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정 부회장은 개인적으로 ‘얼리어댑터’의 성향을 갖고 있다. IT에 관심이 많고, 2000년대 초반부터 스마트폰(블랙베리)을 업무에 활용했다. 향후 자동차 시장을 주도하게 될 고(高)연비·친환경·스마트카 개발에서 원천기술과 선행기술을 확보할 수 있도록 R&D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정 부회장은 현대차의 미래를 수소연료전지차와 전기차로 가닥 잡았다. 2013년에는 세계 최초로 ‘투싼 수소연료전지차’를 양산했다. 정의선의 ‘뉴 현대차’에는 아쉬움도 있었다. 2018년 현대모비스의 합병안에 미국 헤지펀드인 엘리엇이 반대 의견을 표명했을 때 이들 외국인 주주를 설득하지 못해 그룹의 지배구조를 풀어내지 못한 점은 정의선 부회장의 숙제로 남는다.
 
 
  ‘그랩’에 2840억원 투자
 
  정의선 부회장은 2018년 미국 CES에서 미래차 개발에 대한 의지를 본격적으로 표명했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서 IT 업체보다 더 IT 업체 같아지는 것이 중요하다. 미래 자동차 산업에 있어 일하는 방식부터 의사결정까지 모든 면에서 제대로 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국내외를 오가며 광폭 행보를 펼치고 있다. 국내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인 ‘제로원’은 국내 유명 스타트업들과 인공지능, 자율주행, 로봇 등 미래 혁신 기술 분야에서 공동 협력을 진행하는 핵심 거점이다. 정 부회장은 이곳을 수시로 방문해 입주 스타트업을 격려하고 있고, 자율주행, 차량공유 서비스, 차세대 배터리, 무인항공 등 약 30여 건에 달하는 이종(異種) 산업에 대한 R&D 투자 확대와 협력을 단행했다. 동남아시아의 ‘우버’인 ‘그랩’에 2018년 11월 2840억원을 투자한 게 그 예다. 현대차가 외부 업체에 투자한 액수 중 최대 규모다. 정 부회장은 현대차그룹의 체질 개선에 적극 나서 현재의 경영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생각이다.
 
 
  하이닉스 인수로 경영자 능력 입증
 
2018년 5월 26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2018 상하이 포럼’에서 축사를 하고 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4대 그룹의 맏형이다. 1998년 그룹 회장을 맡아 20년 동안 총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회장에 올랐을 때 그의 나이는 만 38세였고 당시 우리 경제는 가장 암울한 시기를 감내하고 있었다. 환율·유가·금리 등 기업 성과와 직결되는 경영 환경이 급변하면서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대기업이 하나 둘씩 쓰러졌다. ‘30대 젊은 총수’의 어깨에 실린 짐이 얼마나 무거웠을지 짐작이 간다.
 
  1960년생인 최 회장은 고려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박사를 수료한 후 선경(현 SK) 경영기획실 부장으로 회사에 첫발을 내디뎠다. 선경 미주경영기획실·경영기획실 사업개발팀장 등을 지내며 7년 남짓 경영 수업을 받던 중 선친 최종현 SK 선대회장이 타계, 뒤를 이어 회장을 맡았다. 일찌감치 그룹의 후계자로서 교육받은 최 회장은 주눅 들지 않았다. 그는 취임 일성으로 “혁신적인 변화를 할 것이냐, 천천히 사라질 것이냐를 결정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근본적인 변화 없이 생존할 수 없기에 그룹의 체질 변화를 강조한 것이다. 오늘날까지 SK그룹을 관통하는 ‘혁신적 변화(Deep Change)’라는 단어가 벌써 20년 전에 그의 입에서 나왔다.
 
  최 회장의 첫 번째 과제는 ‘글로벌’이었다. 정유·통신이 주축이었던 SK는 내수사업에만 치중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었다. 최 회장은 해외 시장을 개척하고 수출 드라이브를 통해 SK의 사업구조를 변신시키고자 했다. 그는 SK의 주력사인 SK이노베이션이 단순 정유회사에 머물지 않고 해외에서 유전을 개발하고, 수입한 원유(原油)를 고부가가치 화학 제품군으로 개발하는 데 주력하도록 했다. 차세대 성장동력인 전기 자동차 배터리 분야도 SK이노베이션의 지붕 아래서 집중 육성토록 하였다.
 
  최 회장의 업적 중에서 가장 주목받는 것은 2011년 말 하이닉스를 인수한 일이다. 그의 ‘뚝심형 경영인’으로서의 면모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에너지·화학과 ICT를 양대 축으로 하는 성장동력에 반도체가 추가됐다. SK그룹 관계자는 “하이닉스 인수는 단순한 인수 합병이 아니었다. SK의 사업 체질을 획기적으로 바꾸고 수출지향형 기업으로 탈바꿈하는 결정적인 계기였다”고 말했다. SK의 하이닉스 인수가 오롯이 최태원 회장의 결정이라는 데 이견을 다는 이는 없다. 그는 하이닉스 인수를 결정하기 1년여 전부터 서울 모처에서 반도체의 기본 원리·역사·세계적 기술동향 등 반도체를 직접 공부한 뒤에야 인수에 대해 확신을 가졌다.
 
  부정적인 내부 경영진의 반대를 뚝심 있게 설득한 이도 그다. 최 회장은 1978년 선경반도체를 설립했던 선친 최종현 선대회장의 ‘반도체 기업’의 꿈을 자신의 손으로 이뤄냈다. SK의 반도체에 대한 도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SK하이닉스, 베인캐피탈, 일본정택투자은행 등이 참여한 ‘한미일 연합’이 일본 도시바 메모리사업 부문 인수에 성공(2017년 9월 13일)했고, 앞서 1월에는 LG실트론을 인수했다. SK실트론으로 이름을 바꾼 이 회사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반도체칩 핵심 기초소재인 웨이퍼를 제조하는 회사다.
 
 
  중국과 손잡은 SK종합화학, 매출 1조6000억원(4년)
 
  최태원 회장의 ‘뚝심형 경영 스타일’은 SK그룹이 20년 넘게 투자한 바이오 분야에서도 엿볼 수 있다. SK(주)는 2018년 미국 바이오제약 위탁개발생산회사인 엠팩(AMPAC)의 지분 100%를 인수했다. 인수 금액만 7000억~8000억원에 달하는 대형 M&A였다. SK바이오텍이 2016년 6월에 인수한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 아일랜드 공장(1700억원)까지 포함하면 그룹은 1년 사이에 바이오 분야에만 1조원가량을 쏟아부은 셈이다. SK(주)의 바이오 사업은 신약을 개발하는 SK바이오팜, 국내와 유럽 생산을 담당하는 SK바이오텍, 미국 생산을 맡는 엠팩 등 자회사 3각 편대를 거느린 사업구조를 완성했다.
 
  지난해 연말, 워싱턴DC에 있는 SK하이닉스 지사에서 ‘SK Night(SK의 밤)’ 행사가 열렸다. 최 회장은 이날 행사에서 미국 내 재계, 정·관계, 학계 등 현지 인사들을 대상으로 그룹의 성과를 소개하고, 향후 지속적인 투자와 긴밀한 협력을 강조했다. 사실 SK의 ‘글로벌 파트너링’은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뤄냈다. SK종합화학은 2014년 중국 최대 석유기업인 ‘시노펙’과 손잡고 35대 65의 비율로 총 3조3000억원을 투자해 합작회사 중한석화를 세웠다. 중한석화는 가동 첫해부터 흑자를 내면서 최근 4년 동안 매출 1조6000억원 이상을 올렸다. 만년 정유회사였던 SK이노베이션은 최 회장의 ‘글로벌화’ 요구에 부응해 2018년 2월에 중국해양석유집단과 공동 투자한 남중국해 광구에서 원유 탐사에 성공했다. 시험생산에서 1일 최대 3750배럴의 원유를 생산하는 쾌거를 거뒀다. SK하이닉스시스템아이씨는 중국 정부 투자회사와의 합작법인인데 2018년 하반기부터 200mm 파운드리 공장 착공에 나섰다.
 
 
  사회적 가치 창출을 先 과제로
 
2018년 11월 12일 한국시리즈 6차전에 SK 최씨 4형제가 모여 야구경기를 응원했다.
  최태원 회장은 2018년 CEO세미나에서 “사회적 가치는 사회와 고객으로부터 무한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기반일 뿐 아니라 이제는 경제적 가치 이상으로 기업의 전체 가치를 높일 수 있는 핵심요소”라며 “사회적 가치에 기반한 비즈니스 모델 혁신에 하루빨리 나서 달라”고 CEO들에게 당부했다. 최 회장과 그룹은 사회적 가치 창출을 위해 사회적기업 생태계 활성화에 앞장서왔다.
 
  그 핵심은 인재육성과 자본시장 형성이다. 최 회장은 종종 SK가 세계 최초로 KAIST와 공동으로 개설한 ‘사회적기업가 MBA’의 교육 현장을 찾아 선배 경영인으로서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사회성과인센티브’는 최태원 회장의 제안으로 시작된 사회적기업 자본 형성을 위한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사회성과인센티브’는 사회적기업이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화폐 단위로 측정해 그에 상응하는 금전적 인센티브를 지원하는 프로젝트다. 최 회장의 제안으로 2015년부터 시작됐는데 현재 130여 개 기업이 참여해 일자리 창출, 사회서비스 제공, 환경문제 해결, 생태계 문제 해결 등 4개 분야에서 약 324억원의 성과를 냈다. SK의 노력은 사회적기업 전용 ‘민간펀드’ 결성으로 이어졌다.
 
  환골탈태한 SK의 수출 실적은 놀랍다. 최 회장이 취임할 당시에 8조3000억원 수준(1998년 말)이던 총 수출액은 75조4000억원(2017년 말)으로 늘었다. 그룹의 매출은 같은 기간 37조4000억원에서 158조로 4배 이상 늘었다. 그룹의 전체 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50%가 넘는다. 우리나라의 전체 수출(578조원, 2017년 말)에서 SK가 기여하는 비중은 13%다. 내수기업이라며 비판받았던 SK는 수출기업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회사가 매출은 크지만 이익이 남지 않아 실제로는 속 빈 강정인 경우가 있다. SK그룹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같은 기간 당기 순익은 1000억원에서 17조3500억원으로 무려 170배 가까이 커졌다. 최 회장의 취임 당시 34조1000억원이었던 그룹 자산은 192조6000억원으로 5배 이상 늘었고, 재계 순위는 5위에서 3위로 두 계단 뛰었다.
 
  20년 동안 재벌 총수 자리에 있었던 만큼 최태원 회장에게는 인고의 시간이 많았다. 그룹의 사세가 늘어난 만큼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02년에는 투기 세력인 소버린으로부터 경영권 공격을 받기도 했고 얼마 전에는 혼외자 문제로 인해 재벌 총수의 이미지에 손상을 입기도 했다. 실제로 외부에서는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될 일을 왜 나서서 밝히는지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최 회장에 대해 잘 아는 이는 “그것이 바로 최 회장의 본모습”이라고 했다. 그는 “최 회장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자신이 잘못한 부분을 인정하고 적극 개선하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디카 회장’ 최태원
 
최종현 SK 선대회장의 20주기 추모식에 참석한 최태원 SK그룹 회장.
  최태원 회장을 비롯한 SK가의 형제경영도 돋보인다. 평소 우애가 깊은 최태원 회장,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 등 형제 경영진 4명은 2018년 11월 12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6차전’을 관람했다. 4형제는 임직원들과 일반 관람석에 앉아 SK와이번스 공식 유니폼과 모자를 장착하고 열띤 응원을 펼쳤다. SK그룹이 ‘최종건-최종현’ 형제의 공동 작품인 만큼 사촌들 간에 재산 다툼이 있다손 쳐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SK가 4형제는 집안의 애경사에 모두 모여 친목을 다지는 등 남다른 형제애를 보이고 있다.
 
  그는 2002년 월드컵 당시에도 붉은 옷을 입고 서울시청 앞 길거리 응원을 했고, SK하이닉스를 인수했을 때는 이천공장을 방문해 작업복 차림으로 구내식당에서 배식을 받아 임직원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그에게는 이제 재계 맏형의 역할도 주어진다. 최 회장은 지난 2007년 북한을 첫 방북했을 때, 디카로 선배 경제인들을 촬영해 ‘디카 회장’으로 불렸다. 고 구본무 LG그룹 회장과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 등 재계 선배들의 기념사진을 직접 찍어줬다. 2018년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사실상 첫 대외 무대라 할 수 있는 구광모 LG그룹 회장, 또 공식 활동이 비교적 뜸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을 두루 아우르며 재계 맏형의 역할을 톡톡히 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2018년 방북 기간 내내 손에서 디지털카메라를 놓지 못했다.
 
 
  밖에서는 ‘구광모 회장’, 사내에서는 ‘구광모 대표’
 
  2018년 6월에 그룹 회장으로 선임된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눈앞에는 새하얀 도화지가 놓여 있다. 그는 LG가(家)의 4세 경영인이자, 자산 규모 기준으로 재계 서열 4위의 글로벌 그룹을 지휘해야 할 숙명을 안고 있다.
 
  특이하게도 그를 ‘회장님’이라고 부르는 직원은 없다. 외부에서는 재벌 총수이지만 그의 공식적 내부 직함은 ‘구 대표’다. 2018년 6월에 (주)LG 대표이사 회장 선임을 알리는 보도자료에서도 “‘구광모 대표’가 회장으로 선임됐다”고 했다. 지주회사 대표라는 직책이 갖는 의미를 강조한 것이고, ‘대표’라는 단어 속에 자신보다 한창 나이가 많은 전문 경영인들을 배려하며 소통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이 LG그룹 관계자들의 얘기다. 1978년생인 그는 영동고·미국 로체스터 인스티튜트 공과대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학 석사 과정에 입학했지만, 학업 대신 실리콘밸리에 있는 스타트업 두 곳에서 일하며 스타트업 생태계를 경험했다. 회장 자리에 오르기 전 10년 정도 경영 수업을 받았는데 LG의 핵심 계열사인 LG전자 재경부·뉴저지법인·홈엔터테인먼트·가전부문을 두루 거쳤고, 이후 LG시너지팀 상무·B2B사업본부 상무를 거쳐 그룹 회장직에 올랐다.
 
 
  71년 만에 외부에서 CEO 수혈한 구광모
 
구자경 LG명예회장 미수연에 참석한 LG 구씨 일가. 떡케이크를 커팅하는 구자경 명예회장(가운데) 바로 위가 구광모 회장.
  LG의 구씨 가문은 ‘장자 승계 원칙’을 지키기에 그의 회장직 승계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구본무 선대회장의 별세로 공석인 (주)LG 이사회 멤버에 곧장 선임됐고 회장 자리에 오른 뒤 삼촌인 구본준 (주)LG 부회장은 그룹 경영 일선에서 전면 물러났다. 그는 지주회사 대표로서 그룹의 미래를 준비하고 인재에 투자하며, 정도경영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세부적인 일들은 계열사 전문 경영인에게 일임했다.
 
  구광모 회장은 이사회 인사말에서 “그동안 LG가 쌓아온 고객가치 창조, 인간존중, 정도경영이라는 자산을 계승, 발전시키고 변화가 필요한 부분은 개선하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성장기반을 구축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필요한 부분은 개선’이라는 대목은 구광모 회장이 앞으로 걸어갈 길을 보여주는 단어로 보인다. 실제로 LG그룹이 2018년에 임원 인사를 단행하면서 여태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일이 생겼다.
 
  LG화학의 신임 대표이사 부회장에 3M 출신의 신학철씨를 내정한 것이다. 신학철 부회장은 1984년 3M 한국지사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미국 본사장을 거쳐 한국인 최초로 3M의 해외 사업을 이끌며 수석 부회장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전문 경영인이다. 그의 화려한 이력도 눈길을 끌지만, LG화학이 CEO를 외부에서 영입한 것은 1947년 창립 이후 처음이라는 점이 더욱 놀랍다. LG그룹에 따르면 LG화학은 그동안 석유화학 사업은 물론 새로운 성장동력인 전지사업을 중심으로 글로벌 비즈니스를 급속히 확대하면서 혁신을 이끌어 갈 전문 경영인을 찾는 노력을 꾸준히 해왔다고 한다. 이에 신 부회장을 영입하기에 이르렀는데 이 과정에서 구광모 회장이 적극적으로 영입 의지를 표명했다고 한다. 구 회장의 변화에 대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후 이어진 임원 인사도 ‘구광모 스타일’을 오롯이 드러낸다. LG그룹은 2018년 11월 27일, 28일에 계열사별로 이사회를 통해 임원 인사를 실시했다. 신규임원 대거 발탁과 철저한 성과주의 원칙, 그리고 외부인사 적극 영입을 통한 역량 보강이 특징이었다. ‘외부인재 영입’에 주목할 만한데 베인&컴퍼니 홍범식씨를 (주)LG 경영전략팀 사장으로, 한국타이어 연구개발 본부장 출신 김형남씨를 (주)LG 자동차 부품팀장으로, 보쉬코리아 영업총괄 상무 출신인 은석현씨를 LG전자 VS사업본부 전무로 영입했다.
 
 
  엘리베이터에서 직원에게 먼저 인사하는 오너 경영자
 
  새로 출범한 ‘LG 구광모 호’의 첫 임원 인사에서는 다른 그룹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광경이 연출됐다. LG화학 부회장직을 떠나는 박진수 부회장이 소회를 밝힌 일이다. 매년 연말 기업에서 승진자 발표를 할 때마다 그 승진자만큼 떠나는 이들이 많다. ‘떠날 때는 말 없이’라는 어느 영화의 카피처럼 밀려나듯 조용히 떠나는 것이 관례다. 하지만 박 부회장은 “40년 이상을 근무하며 LG화학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일조하고 명예롭게 은퇴한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우리 모두가 함께 성장시켜 온 LG화학을 앞으로도 영속하는 기업으로 발전시켜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 같은 아름다운 선임과 퇴진이 가능한 것은 창업주 시절부터 이어온 정신이고, 구광모 회장은 이 부분을 뼛속깊이 새기는 분위기다. 구인회 창업회장은 ‘인화단결’을 창업 이념으로 내세웠다. 구 창업회장의 이념은 구자경 명예회장 시대로 넘어오면서 ‘인간 존중의 경영’으로 발전했고, 구본무 선대회장은 이를 LG만의 ‘정도경영’으로 선언했다. 박진수 부회장이 웃는 모습으로 경영 일선을 떠나는 모습이나 구광모 회장이 ‘인간존중’ ‘정도경영’을 계승 발전시키겠다고 다짐한 것은 구본무 선대회장으로부터의 가르침 덕분이다. LG그룹 관계자들은 “선대회장으로부터 평소 겸손, 배려, 원칙에 대해 자주 가르침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회장직에 오르기 전까지 평사원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이용했던 그는 늘 직원들에게 먼저 인사하는 경영인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아는 직원을 만나면 항상 먼저 인사해라. 모두의 하루를 기분 좋게 할 수 있다”는 구본무 선대회장의 당부를 몸소 실천했다.
 
 
  LG의 미래 준비, 인재육성, R&D에 관심 커
 
구광모 회장은 공식적인 첫 행선지로 LG사이언스파크를 결정했다. 그의 R&D에 대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회장직을 맡은 후 그가 가장 관심을 쏟는 부분은 R&D 부문이다. 구 회장의 공식적인 첫 대외 활동은 ‘LG사이언스파크’ 방문이었다. 그는 2018년 9월 12일 LG의 융복합 R&D 클러스터인 서울시 강서구 마곡 소재 LG사이언스파크를 찾았다. LG사이언스파크는 그룹이 총 4조원을 투자해 2017년 4월에 오픈한 연구단지다. 축구장 24개 크기인 17만여 m2 부지에 20개 연구동이 들어서 있다. LG전자·LG디스플레이·LG이노텍·LG화학·LG하우시스·LG생활건강·LG유플러스·LG CNS 등 8개 계열사 연구인력 1만7000명이 집결해 있다.
 
  이들은 그룹의 주력 사업인 전자·화학 분야의 연구는 물론이고 OLED·자동차부품·로봇·자율주행·인공지능·5G·차세대 소재/부품·바이오 등 미래사업 분야의 융복합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구 회장은 LG사이언스파크에서 진행 중인 성장사업과 미래사업 분야의 융복합 연구개발 현황을 점검했다. LG전자의 ‘레이저 헤드램프’ 등 전자부품과 LG디스플레이의 ‘투명 플렉시블 OLED’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 제품들을 살펴봤다. 구 회장은 이 자리에서 “사이언스파크는 LG의 미래를 책임질 R&D 메카로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그 중요성이 계속 더 높아질 것”이라며 “선대회장께서 사이언스파크에 큰 관심과 애정을 가지셨듯이 저 또한 우선순위를 높게 두고 챙겨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LG가 꿈꾸는 차세대 사업은 로봇, 인공지능, 전기차 배터리, 고부가 기초소재 등이다. 이를 위해 LG전자는 2018년 7월, 국내 산업용 로봇제조 전문업체인 ‘로보스타(Robosta)’의 지분 30%를 취득해 경영권을 인수했다. LG전자는 ‘IFA 2018’에서 하체 근력 지원용 웨어러블 로봇인 ‘LG 클로이 수트봇’을 공개하는 등 산업용에서부터 가정용까지 다양한 로봇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또한 LG전자에 머물지 않고 LG전자·LG디스플레이·LG화학·LG유플러스·LG CNS 등 5개 계열사가 출자한 펀드를 운용하는 ‘LG 테크놀로지 벤처스’를 만들었다. 이 펀드는 자율주행 부품, 인공지능, 로봇 분야의 스타트업 발굴 및 신기술 확보를 위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LG화학은 2018년 7월 고부가 기초소재 분야에 총 2조8000억원을 투자키로 했고, 전기차 배터리 사업의 경우 2018년 7월 중국 난징에 약 2조원을 투자해 전기차 배터리 제2공장을 설립하기로 했다.
 
 
  상속세 납부액 국내 최대 규모인 1조원
 
  구광모 회장은 구본무 선대회장으로부터 주식을 공식적으로 상속받아 안정적인 경영권을 갖게 됐다. (주)LG는 2018년 11월에 구본무 선대회장이 보유했던 주식 11.3%에 대해 장남 구광모 8.8%, 장녀 구연경 2%, 차녀 구연수 0.5%를 각각 분할 상속받았다고 밝혔다. 이로써 구광모 회장의 (주)LG 지분율은 종전의 6.2%에서 15%로 최대주주가 됐다. 상속인들은 앞으로 5년간 나눠 상속세를 납부할 예정인데, 국내 상속세 납부액 가운데 최대인 약 1조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주)LG는 상속세 관련한 법률을 준수해 투명하고 성실하게 납부하겠다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구광모 회장에 대해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실용주의적 사고를 지녔다”는 평이 많다. 평소 직원들과 격의 없이 토론하고 시장을 만들기 위한 전략을 고민하는 데 힘을 쏟는데, 철저한 실행을 중시하는 편이라고 한다. 이미 결정한 사항에 대해서 ‘실행’을 하지 않으면 그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구 회장은 2018년 11월 ‘사업보고회’ 때도 일방적인 보고를 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부장, 상무, 전무 등 직책보다는 각자 맡은 직무에 초점을 맞춰서 토론 형식으로 진행됐다는 것이 LG 측의 설명이다. 밉든 곱든 이들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 그들이 앞으로 내리는 의사결정 하나가 그룹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 부강한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이들을 애정 어린 눈으로 지켜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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