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30의 반란으로 정치 재편성… ‘정권 교체 10년 주기설’ 무너질 수도
⊙ 이해찬-이재명 連帶說…, 親文 세력이 전략적으로 이 지사와 결별… 야권 분열되면 4자 구도가 만들어져 여권이 승리할 수 있다는 구도
⊙ 윤석열, 원희룡, 안철수, 김동연, 최재형, 금태섭 등 정권 교체 세력이 빅텐트로 모이는 것을 상정해볼 수도
⊙ 한나라당, 지방선거·재보궐선거 압승하고도 2002년 대선에서 패배
金亨俊
1957년생.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 졸업, 미국 아이오와대학 계량정치학 박사 /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 한국선거학회장,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역임 / 現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한국정책과학연구원(KPSI) 원장 / 저서 《젠더 폴리시스》
⊙ 이해찬-이재명 連帶說…, 親文 세력이 전략적으로 이 지사와 결별… 야권 분열되면 4자 구도가 만들어져 여권이 승리할 수 있다는 구도
⊙ 윤석열, 원희룡, 안철수, 김동연, 최재형, 금태섭 등 정권 교체 세력이 빅텐트로 모이는 것을 상정해볼 수도
⊙ 한나라당, 지방선거·재보궐선거 압승하고도 2002년 대선에서 패배
金亨俊
1957년생.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 졸업, 미국 아이오와대학 계량정치학 박사 /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 한국선거학회장,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역임 / 現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한국정책과학연구원(KPSI) 원장 / 저서 《젠더 폴리시스》
‘대선(大選) 전초전’ 격인 4·7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에서 야당이 압승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가 57.5%를 득표하며, 박영선 민주당 후보(39.2%)에 18.3%포인트 차이로 승리했다. 부산시장 선거에서도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62.7%)가 28.3%포인트 차이로 김영춘 민주당 후보(34.4%)를 누르고 승리했다. 야당의 압도적 승리는 문재인 정부의 무능과 위선, 오만과 독선, 도덕적 파탄, 부패한 기득권 정당에 대한 심판을 넘어 11개월 앞으로 다가온 2022년 대선과 관련 중요한 정치적 함의를 담고 있다.
‘정권 교체 10년 주기설’ 무너지나
첫째, 새로운 정치 재편성이 일어날 가능성이다. 정치 재편성은 정치 체제에서의 급격한 변화를 묘사하는 정치학 용어이다. 통상적으로 이슈, 정치 지도자, 정당의 지역적 지지, 유권자 지지 기반 등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있을 때 정당 재편성이 일어난다. 정당 재편성이 일어나면 장기간 유지되면서 새로운 정치권력 구조가 형성된다.
민주당은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에서 승리했다. 지난해 총선에서는 전체 300석 중 180석(60%)을 차지하며 압승했다. 이를 계기로 ‘민주당 집권 20년’ 체제가 구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 배경에는 유권자 지형 변화가 있었다. 2012년 대선까지는 2040세대는 범(汎)진보, 5060세대는 범보수를 지지하는 지형이 만들어졌다. 그 이후 86세대(1960~1969년 출생)가 50대를 장악하면서 ‘2050 대 6070 구조’가 만들어지면서 민주당이 연승(連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 보궐선거에서는 그동안 정부・여당에 큰 지지를 보냈던 2030세대의 반란이 일어났다.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 서울시장 선거에서 20대와 30대에서 오세훈 후보가 각각 55.3%, 56.5%, 부산에선 박형준 후보가 각각 51.0%, 50.7%를 얻었다. 특히 20대 이하 남자의 경우 오 후보와 박 후보 지지율은 각각 72.5%, 63.0%였다. 향후 유권자 지형이 2030세대·4050세대·6070세대로 재편되면 더 이상 ‘민주당 우위의 정당 체제’가 유지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결국 현 정부의 콘크리트 지지층인 40대와는 달리 특정 이념과 정당에 예속되지 않고 상황과 이슈에 따라 움직이는 ‘스윙 보터(swing voter)’로 변신한 2030세대의 표심에 따라 향후 대권(大權)이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보궐선거의 또 다른 정치적 함의는 한국 대선에서 그동안 불변의 법칙으로 여겨온 ‘정권 교체 10년 주기설(說)’이 무너질 가능성이 보인다는 점이다. 1988~1998년 보수 정권(노태우·김영삼), 1998~2008년 진보 정권(김대중·노무현), 2008~2017년 보수 정권(이명박·박근혜)이 차지했다.
이에 따르면 2017년 대선에서 승리한 민주당이 내년 대선에서 승리를 전망해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 결과로만 본다면 5년 만에 정권 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미국의 경우에도 현직 대통령이 연임에 실패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1980년에는 지미 카터, 1992년에는 조지 H. 부시(아버지 부시), 지난해 대선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패배했다.
국민의힘 주도의 야권 재편
국민의힘은 이번 선거의 승리로 4연패 고리를 끊고 내년 대선에서 재기(再起)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국민의힘 주도의 야권 재편이 탄력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승리는 야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여당이 잘못해서 얻은 반사이익(反射利益)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정치적 상황이 전개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여당은 4·7재보선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김태년 원내대표와 최고위원 등 민주당 지도부가 4월 8일 총사퇴했다. 민주당은 새 당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를 5월 2일에 실시하기로 했다. 그런데 선거 패배 책임을 둘러싸고 초선(初選) 의원과 강경 친문(親文) 의원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국민의힘도 차기 당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를 둘러싸고 이견(異見)이 분출되고 있다. 당장 국민의당과 합당하고 통합 전당대회를 개최할지, 아니면 먼저 전당대회를 통해 국민의힘 지도부를 선출하고 국민의당과 합당(合黨)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차기 당권 경쟁에서 당내 이합집산(離合集散)과 권력 다툼이 본격화될 수도 있다.
여야 정치권별로 향후 대선 정국을 전망하는 것은 대선 예측력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친문 주류 세력이 구상할 수 있는 향후 정권 재창출 플랜은 크게 4가지로 전망해볼 수 있다.

[플랜A] 親文 정권 재창출
첫째, 친문 인사로 정권을 재창출하기 위해 최우선으로 고려해볼 수 있는 플랜A다.
민주당의 전신이며 김대중 정부 시절 집권당이었던 새천년민주당은 2002년 대선 경선 때 대의원 20%, 당원 30%, 일반 국민 50%를 반영하는 한국 정당 사상 최초의 ‘국민참여경선제’를 실시했다. 2002년 12월 대선을 1년 정도 앞둔 1월 대선 경쟁은 민주당 이인제 후보와 야당인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양자 구도가 대세였다. 당시 노무현 전 상임고문의 지지율은 5%도 되지 못했다.
국민경선제는 2002년 3월 9일 제주를 필두로 전국 16개 시·도를 순회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투표 방식은 선호투표제를 도입하여, 모든 후보를 1위부터 최하위까지 번호를 매기는 방식으로 투표가 이뤄졌다. 경선 국면이 시작되면서 노무현 후보는 ‘영남 후보론’과 이인제 후보를 겨냥한 ‘정체성(正體性) 시비’ 등을 제기하면서 추격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3월 13일, 《문화일보》와 SBS가 공동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노무현과 이회창이 양자 대결을 벌일 경우 노무현이 41.7%, 이회창이 40.6%로 노무현이 이긴다는 결과가 나왔다.
대선 주자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민주당 후보에 뒤지는 결과가 나온 것은 대선 구도가 형성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런 대세를 몰아 노무현 후보는 3월 16일 광주 경선에서 37.9%의 득표로 호남 출신 한화갑(17.9%)과 대세론을 펼친 이인제(31.3%)를 제치고 경천동지(驚天動地)할 1위를 차지했다. 영남 출신 노 후보가 김대중 대통령과 새천년민주당의 근거지인 광주에서 승리하면서 ‘노풍(盧風)’이 점화되었다. 그 이후 노 후보는 파죽지세(破竹之勢)로 승리를 이어갔다. 결국 이인제 후보는 전남 경선 직후 더 이상 역전(逆轉)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해, 4월 17일 후보 사퇴를 선언했다. 이후 노무현 후보는 2002년 4월 27일, 서울 경선을 끝으로 새천년민주당의 제16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공식 선출됐다. 경선이 끝난 4월 말 노무현의 지지율은 당시 역대 대통령 후보 가운데 사상 최고치라는 60%를 기록했다.
플랜A는 이런 ‘2002년 노무현 모델’에 기반하고 있다. 대선 후보 경선을 통해 현재 부동(不動)의 지지율 1위인 이재명 지사를 ‘이인제화’시켜 친문 후보를 민주당의 최종 대선 후보로 만들려는 전략이다.
플랜A가 실현되기 위한 조건은 친문 세력이 민주당 당권(黨權)을 차지해 이재명 지사와 대항할 수 있는 친문 후보를 부각시키는 것이다. 5월 2일 전당대회에서 선출될 당대표는 사실상 친문 인사로 확정됐다. 송영길 의원은 범친문계로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았다. 우원식 의원은 당내 최대 계파인 더미래 소속이고, 홍영표 의원은 친문 중진의원 모임인 ‘부엉이 모임’을 주도했다.
민주당은 새 당대표에 정세균 총리,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을 부각시키고, 김동연 전 부총리 같은 외부 인사를 영입할 수도 있다. 이재명 지사에 대한 본격적인 검증이 시작되고 ‘친문 후보 단일화’라는 이벤트를 통해 판을 엎을 수도 있다.
[플랜B] 개헌
둘째, 친문 대선 후보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적은 상황에서 비문(非文)인 이재명 지사가 대권을 차지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막기 위해 고안할 수 있는 것이 플랜B다. 특히 재적의원 수의 3분의 2 가까운 180석을 확보한 범여권이 야당 개헌 세력과 연대해서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을 통해 대선 판을 흔드는 것이다. 5년 단임의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내각제로 전환하거나, 이원집정제식 대통령제를 통해 권력을 분산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을 창출한 여권 핵심 세력은 유력 대선 후보가 없고, 이재명 경기지사는 지지율에 비해 정치 세력화가 덜 됐고 강력한 친문 비토 세력이 있다. 윤석열 전 총장도 지지율은 높지만 세력도 없고 정치 경험도 없기 때문에 의외로 개헌 공감대가 만들어질 수 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분권형 개헌론자다. 그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권력구조 자체의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 자연적으로 개헌 논의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런데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를 맞추려다 보면 대통령 임기를 2024년으로 단축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따라서 ‘2년짜리 대통령 후 내각제’ 개헌 카드가 실현되면 친문 세력은 최악의 경우에도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할지 모른다.
[플랜C] 이재명 대세론 인정
플랜C는 ‘이재명 대세론’을 인정하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임기 말인 2002년 2월 26일 집권당 열린우리당 김한길 전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 23명이 집단 탈당하면서 ‘국민통합신당’ 창당 추진을 공식 선언했다. 이들은 ‘참회와 새로운 출발’이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통해 “우리는 열린우리당이 국민의 외면을 받게 된 것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기득권을 선도적으로 포기함으로써 ‘국민통합신당’의 밀알이 되는 것이 국민에 대한 참회와 반성의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탈당 배경을 밝혔다.
이에 따라 2004년 17대 총선에서 과반인 152석을 거머쥐었던 열린우리당은 사실상 분당(分黨)되며 제2당으로 추락해 의회 권력이 다시 한나라당 보수 진영으로 넘어갔다. 그 이후 열린우리당은 다음 대권을 차지할 가능성이 떨어지자 중도개혁통합신당, 중도통합민주당 등의 이합집산을 거쳐 2002년 8월 5일 대통합민주신당으로 재(再)창당했다.
결국 친노(親盧) 세력과 대립한 비노(非盧)의 정동영 후보는 2007년 9월 15일부터 10월 14일까지 진행된 전국 순회 경선에서 승리해 여당 격인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후보가 되었다. 당시 친노 진영에서는 이해찬, 한명숙, 유시민 후보가 출마했지만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정동영 후보에게 패배했다.
2007년 대선 당시와 현재의 더불어민주당이 처한 상황을 비교하면 유사한 점이 많다. 대권 경쟁에서 친문 후보들의 경쟁력이 비문인 이재명 지사에 비해 현격히 떨어진다. 더구나, 노무현 대통령 임기 말에도 유권자들이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 등에 실망해 ‘정권심판론’이 들끓었다. 이번 4월 보궐선거에서도 입증되었듯이 집값 상승, 전세 대란, 공시지가 인상, LH사태 등으로 크게 악화된 부동산 민심이 정권심판론에 불을 댕겼다.
만약, 2007년 상황이 재현된다면 여당의 대선 후보는 대세를 형성한 비문 출신인 이재명 지사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플랜D] ‘非文 + 親文 전향파=이재명 신당’
한편 정치권에선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지사 간 연대설(連帶說)이 부상되고 있다. 이해찬 전 대표가 친문과 2017년 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 당시 문재인 후보를 강하게 비판하며 친문과 멀어졌던 이 지사 간 화해의 물꼬를 트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플랜A를 고집하는 강성 친문 세력과 플랜C를 관철시키려는 이해찬 전 대표(비문 + 친문 전향파) 간의 갈등이 고조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 플랜D다. 친문 세력이 전략적으로 이 지사와 결별하고 야권이 분열되면 4자 구도가 만들어져 승리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최근에는 강성 친문을 중심으로 ‘이재명 탈당설’까지 제기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지사는 지난 2월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제 사전에 탈당은 없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탈당설을 부인했다. 그는 “민주당 지지자와 문재인 대통령님 지지자들이 압도적으로 응원하는데 제가 왜 나가느냐”고 그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강성 친문이 ‘이재명 죽이기’에 나서면 상황은 반전(反轉)될 수 있다.

[시나리오1] 국민의힘 중심의 흡수통합
향후 야권이 추진하려는 대권 시나리오도 다양하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국민의힘 중심의 흡수통합론이다. 보궐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국민의힘이 가장 선호하는 자당(自黨) 중심의 ‘야권 대통합’에 방점을 두고 있다. 한마디로 국민의힘을 야권 대통합의 플랫폼으로 만들어가려는 의도다.
보궐선거 직후 주호영 국민의힘 대표 권한대행이 안철수 대표와 만나 국민의당이 원하는 합당이 어떤 형태인지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안 대표는 이 자리에서 “당내 의견 수렴이 먼저”라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양측은 서로 재보선 압승의 주역을 자처하며 통합 논의의 주도권을 차지하려고 한다.
가령 안철수 대표의 최측근인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은 지난 4월 9일 소셜미디어(SNS)에서 “처음부터 단일화의 판을 만들고, 키우고, 끝까지 지켜서 완성한 사람은 안 대표였다”며 “야권의 승리 요인은 안철수라는 견인차와 문재인 정권의 무능과 위선에 따른 반사이익”이라고 강조했다. 양당 모두 통합의 시기나 방식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 명분 쌓기에 돌입한 양상이다. 특히 안 대표가 통합의 전제 조건으로 선(先)국민의힘 혁신을 요구할 경우, 양당 간 통합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따라서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합당은 국민의힘 전당대회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이 높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안철수 대표에 대한 거부가 통합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안 대표는 보궐선거 직후 “야권이 단일화를 하고, 그리고 시장 선거에서 승리해서 정권 교체의 교두보를 확보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김 전 위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어떻게 건방지게 그런 말을 하냐”며 “야권의 승리가 아니라 국민의힘의 승리였다”고 밝혔다. 더 나아가 “안 대표와 단일화를 안 했어도 충분히 이겼을 거다” “안 대표 같은 사람이 대통령 되면 나라가 엉망이 된다”며 잇따라 직격탄을 날렸다. 국민의당과의 통합 논의에 나선 국민의힘에도 “무슨 대통합 타령이냐”며 “바깥을 기웃거리지 말라”고 쏘아붙였다.
나경원 전 원내대표는 플랫폼 정당의 필요성도 설파했다. 그는 “당이 튼튼하고 준비를 한 다음에 플랫폼 역할을 해야지 그냥 뭐 윤석열 총장 모셔다가 플랫폼 하겠다고 하면 누가 오시겠냐”면서 “우리 당이 매력적이면 다 앞다투어서 오실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누가 국민의힘 새 대표로 선출되고 그가 어떤 구상과 의지를 갖고 통합에 임할지가 최대 관건이다. 차기 당권주자로 거론되는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은 “선(先)범야권 통합 후(後)전당대회 수순으로 가는 게 국민들이 바라는 바에 부응하는 길”이라며 “단일 대오에 윤 전 총장이 합류해주길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궁극적인 목표는 안철수 대표, 윤석열 전 총장, 홍준표 무소속 의원, 유승민 전 의원, 원희룡 제주지사, 금태섭 전 의원 등 정권 교체를 원하는 사람들이 모두 범야권 통합에 동참해 미국식 오픈 프라이머리를 통해 대선 후보를 선출하는 것이다.
[시나리오2] 윤석열發 정계 개편
두 번째 시나리오의 핵심은 ‘야권 후보 단일화 모델’이다. 검찰총장에서 물러나자마자 유력 대선주자로 급부상한 윤석열 전 총장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기성(旣成) 정당에 입당하느냐 아니면 창당 또는 제3지대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느냐 여부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국민의힘에 선뜩 합류하지 못하는 이유는 문재인 정부 출범과 동시에 시작된 적폐청산 수사를 진두지휘하면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을 포함해 많은 전 정권 인사들을 구속시켰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국민의힘과 일부 강성 보수층에선 윤 전 총장에 대한 비토 세력이 존재한다. 야권의 차기 대선 주자를 자처하는 홍준표 무소속 국회의원이 대표적이다. 그는 윤 전 총장을 “박근혜 정권 무너뜨리는 정치 수사에 큰 공을 세우고 벼락출세한 사람이다”라고 비판했다.
윤석열 전 총장 입장에서도 국민의힘이 비록 보궐선거에서 압승했지만 여전히 기득권 수구 세력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존재하기 때문에 입당이 쉽지 않다. 따라서 이번 재보선에서 중도의 힘을 확인한 만큼 윤 전 총장이 당장 국민의힘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한 다음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최종 야권 단일화를 이뤄내는 것을 선호할지 모른다. 이것은 일종의 ‘윤석열발(發) 야권 재편’이다.
그런데 시나리오2가 실현되기 위해선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윤 전 총장의 대권 지지율 지속 여부다. 리얼미터·JTBC가 4·7재보궐선거 이후 진행한 첫 차기 대권 주자 여론조사(4월 10~11일)에서 윤석열 전 총장(36.3%)이 이재명 경기지사(23.5%)에 12.8%포인트 차이로 크게 앞섰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12.3%로 그 뒤를 이었다. 윤 전 총장은 이재명 지사와의 맞대결에서 47.4%로 이 지사(36.0%)를 11.4%포인트 앞섰다. 이낙연 전 대표와의 가상대결에서는 윤 전 총장이 50.9%로 이 전 대표(31.4%)보다 19.5%포인트 높았다.
여하튼 향후 윤 전 총장 지지도가 지속적으로 유지될 것인지가 큰 관건이다. 윤 전 총장이 자신의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지 못한 채 오직 반(反)문재인 정서에 기대어 반사이익만 추구한다면 지지율은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릴 것이다. 덩달아 윤석열이 주도하는 야권 후보 단일화 모델도 사라질 수 있다.
우군화(友軍化) 문제도 있다. 윤 전 총장이 만약 대선에 나서려 한다면 누구와 함께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11개월 앞으로 다가온 내년 대선에서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 야권 대선 주자를 만드는 데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는 윤 전 총장에 대해 “나는 그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연락한 적도 없다”며 “대통령이 무슨 자질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해줄 수는 있어도, 내가 달리 도와줄 방법은 없다”고 했다.
일부에선 윤석열 전 총장과 안철수 대표와의 연대가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은 안철수 대표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서는 “합쳐질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무 관계도 없는데 안철수가 마음대로 남의 이름 가져다가 얘기한 것”이라고 했다.
조직과 자금도 문제다.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귀국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독자 행보로 대권 도전에 뛰어들었다가 한 달도 버티지 못하고 중도 포기한 배경엔 자금난이 큰 요인이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대선 후보는 일주일에 1000만원 가까이 돈을 써야 한다”며 “정치 자금은 입당하면 해결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모두 개인 돈으로 해결해야 한다. 윤 전 총장이 끝까지 제3지대에 남는 상황은 거의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고 했다. 조직과 자금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 윤 전 총장의 대권 행보는 늦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방식이든 윤 전 총장은 늦어도 5월 초엔 대선 행보에 시동을 걸어야 할 것이다.
[시나리오3] 중도통합 빅텐트
세 번째 시나리오는 ‘중도통합 빅텐트론’이다. 금태섭 전 의원은 “야권 대통합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김경율 경제민주주의21 공동대표(회계사) 등의 지지를 받고 윤석열과 함께할 수 있는 제3정당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는 임기가 1년여이고, 여당에 대한 분노만으로 충분히 찍을 수 있었다”며 “하지만 대선은 국민 개개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쳐 분노만으로 찍지 않을 것”이라며 새로운 정당 건설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이런 구상은 제3지대가 오히려 제1 야당인 국민의힘을 흡수통합하는, 한국 정당사에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정치 실험이 될 수 있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은 4월 8일 사임을 알리는 기자회견에서 “지난 서울시장 경선 과정에서 보았듯이 정당을 스스로 강화할 생각은 하지 않고 외부 세력에 의존한다든지, 그것에 더하여 당을 흔들 생각만 한다든지, 정권을 교체하자 수권 의지는 보이지 않고 오로지 당권에만 관심 보이는 사람이 내부에 많다”고 저격한 바 있다.
그러나 국민의힘 자력으로 정권 창출이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국민의힘 개혁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 제3지대로 이탈하면서 중도야권 대통합론이 탄력을 받을 수도 있다. 윤석열 전 총장뿐만 아니라 원희룡 지사, 안철수 대표, 김동연 전 부총리, 최재형 감사원장, 금태섭 전 의원 등 정권 교체 세력이 빅텐트로 모이는 것을 상정해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이런 구상은 중도통합의 기치를 내걸고 정권 창출에 성공한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모델과 비슷하다. 그는 2012년 5월 15일부터 2016년 5월 14일까지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의 대통령실 부실장에 재직하면서 사회당 정부의 중도우파적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2016년 4월 중도 성향의 정당인 앙마르슈!(En Marche·전진!)를 창당하고, 2017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 처음 출마해 국민전선의 마린 르 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그러나 한국 정치사에서 제3지대론은 역사적으로 성공한 사례가 없다. 따라서 이런 구상이 성공하려면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정치 실험이 필요할지 모른다. 가령 대선 승리 후 권력을 공유하는 그림자 내각 팀을 만들어 여당 후보와 경쟁하는 초유의 선거 모델도 구상해볼 수 있다.
[시나리오4] 親朴-親尹 분열시켜 4자 구도로
네 번째 시나리오는 여권의 플랜D에서 언급된 여야 분열 4자구도론이다. 여권이 대선 전에 전략적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사면해 야권이 친(親)박근혜 세력 대 친(親)윤석열 세력으로 분열되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여당이 어떤 플랜을 구상하든 야당이 어떤 시나리오를 갖든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는 정치 상황과 정치 의지, 그리고 민심의 향배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2007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도는 10%대에 불과했다. 노 대통령은 그해 2월 28일 자신이 주도해서 창당한 집권 열린우리당에 탈당계를 제출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당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열린우리당은 대한민국 민주세력의 역사적 정통성을 이어가는 정당”이라면서 “임기가 끝난 뒤에도 당적을 유지하는 전직 대통령이 되고 싶었으나 역량 부족으로 한국 정치구조와 풍토의 벽을 넘지 못했다”고 했다. 이어 “당 내부에서 저의 당적 문제로 인해 갈등을 겪게 되고 심지어는 다수의 국회의원이 당을 이탈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며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은 국민의 지지를 지켜내지 못한 저의 책임”이라고 했다.
말이 좋아 탈당이지 사실상 대선을 앞두고 조기 레임덕을 겪으며 당에서 등 떠밀려 나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런 불행한 노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내로남불’의 위선에서 벗어나고 잘못된 정책 기조를 바꿔 성난 민심을 달래야 한다.
지방선거·재보선 압승하고도 대선 패했던 한나라당
국민의힘도 보궐선거 압승에 자만해 혁신을 멀리하면 다음 선거에서는 심판받을 것이다. 이번 보궐선거를 승리로 이끈 김종인 국민의힘 전 비상대책위원장도 4월 8일 공식 퇴임하면서 4·7재보궐선거의 압승을 두고 “국민의 승리를 자신들의 승리로 착각하지 말라”는 뼈 있는 말을 남겼다. 그러면서 “개혁의 고삐를 늦춘다면 다시 사분오열하고, 정권 교체와 민생 회복을 위한 천재일우의 기회는 소멸할 것”이라며 “국민의힘이 새로운 수권정당과 민생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한 자기 혁신의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2002년 6월 지방선거에서 야당인 한나라당은 압승했고, 8·8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도 13곳 중 11곳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6개월 후에 치러진 대선에서 패배했다. 민심의 바다는 배를 띄울 수도 뒤집을 수도 있다는 말이 있듯이 선거판은 언제든지 요동칠 수 있다. 단언컨대, 대권 경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정권 교체 10년 주기설’ 무너지나
첫째, 새로운 정치 재편성이 일어날 가능성이다. 정치 재편성은 정치 체제에서의 급격한 변화를 묘사하는 정치학 용어이다. 통상적으로 이슈, 정치 지도자, 정당의 지역적 지지, 유권자 지지 기반 등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있을 때 정당 재편성이 일어난다. 정당 재편성이 일어나면 장기간 유지되면서 새로운 정치권력 구조가 형성된다.
민주당은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에서 승리했다. 지난해 총선에서는 전체 300석 중 180석(60%)을 차지하며 압승했다. 이를 계기로 ‘민주당 집권 20년’ 체제가 구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 배경에는 유권자 지형 변화가 있었다. 2012년 대선까지는 2040세대는 범(汎)진보, 5060세대는 범보수를 지지하는 지형이 만들어졌다. 그 이후 86세대(1960~1969년 출생)가 50대를 장악하면서 ‘2050 대 6070 구조’가 만들어지면서 민주당이 연승(連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 보궐선거에서는 그동안 정부・여당에 큰 지지를 보냈던 2030세대의 반란이 일어났다.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 서울시장 선거에서 20대와 30대에서 오세훈 후보가 각각 55.3%, 56.5%, 부산에선 박형준 후보가 각각 51.0%, 50.7%를 얻었다. 특히 20대 이하 남자의 경우 오 후보와 박 후보 지지율은 각각 72.5%, 63.0%였다. 향후 유권자 지형이 2030세대·4050세대·6070세대로 재편되면 더 이상 ‘민주당 우위의 정당 체제’가 유지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결국 현 정부의 콘크리트 지지층인 40대와는 달리 특정 이념과 정당에 예속되지 않고 상황과 이슈에 따라 움직이는 ‘스윙 보터(swing voter)’로 변신한 2030세대의 표심에 따라 향후 대권(大權)이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보궐선거의 또 다른 정치적 함의는 한국 대선에서 그동안 불변의 법칙으로 여겨온 ‘정권 교체 10년 주기설(說)’이 무너질 가능성이 보인다는 점이다. 1988~1998년 보수 정권(노태우·김영삼), 1998~2008년 진보 정권(김대중·노무현), 2008~2017년 보수 정권(이명박·박근혜)이 차지했다.
이에 따르면 2017년 대선에서 승리한 민주당이 내년 대선에서 승리를 전망해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 결과로만 본다면 5년 만에 정권 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미국의 경우에도 현직 대통령이 연임에 실패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1980년에는 지미 카터, 1992년에는 조지 H. 부시(아버지 부시), 지난해 대선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패배했다.
국민의힘 주도의 야권 재편
국민의힘은 이번 선거의 승리로 4연패 고리를 끊고 내년 대선에서 재기(再起)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국민의힘 주도의 야권 재편이 탄력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승리는 야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여당이 잘못해서 얻은 반사이익(反射利益)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정치적 상황이 전개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여당은 4·7재보선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김태년 원내대표와 최고위원 등 민주당 지도부가 4월 8일 총사퇴했다. 민주당은 새 당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를 5월 2일에 실시하기로 했다. 그런데 선거 패배 책임을 둘러싸고 초선(初選) 의원과 강경 친문(親文) 의원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국민의힘도 차기 당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를 둘러싸고 이견(異見)이 분출되고 있다. 당장 국민의당과 합당하고 통합 전당대회를 개최할지, 아니면 먼저 전당대회를 통해 국민의힘 지도부를 선출하고 국민의당과 합당(合黨)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차기 당권 경쟁에서 당내 이합집산(離合集散)과 권력 다툼이 본격화될 수도 있다.
여야 정치권별로 향후 대선 정국을 전망하는 것은 대선 예측력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친문 주류 세력이 구상할 수 있는 향후 정권 재창출 플랜은 크게 4가지로 전망해볼 수 있다.

[플랜A] 親文 정권 재창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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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4월 7일 민주당 포항 경선에서 연설하는 노무현 후보. 3월 16일 광주 경선 승리 이후 그는 승기를 잡았다. 사진=조선DB |
민주당의 전신이며 김대중 정부 시절 집권당이었던 새천년민주당은 2002년 대선 경선 때 대의원 20%, 당원 30%, 일반 국민 50%를 반영하는 한국 정당 사상 최초의 ‘국민참여경선제’를 실시했다. 2002년 12월 대선을 1년 정도 앞둔 1월 대선 경쟁은 민주당 이인제 후보와 야당인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양자 구도가 대세였다. 당시 노무현 전 상임고문의 지지율은 5%도 되지 못했다.
국민경선제는 2002년 3월 9일 제주를 필두로 전국 16개 시·도를 순회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투표 방식은 선호투표제를 도입하여, 모든 후보를 1위부터 최하위까지 번호를 매기는 방식으로 투표가 이뤄졌다. 경선 국면이 시작되면서 노무현 후보는 ‘영남 후보론’과 이인제 후보를 겨냥한 ‘정체성(正體性) 시비’ 등을 제기하면서 추격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3월 13일, 《문화일보》와 SBS가 공동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노무현과 이회창이 양자 대결을 벌일 경우 노무현이 41.7%, 이회창이 40.6%로 노무현이 이긴다는 결과가 나왔다.
대선 주자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민주당 후보에 뒤지는 결과가 나온 것은 대선 구도가 형성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런 대세를 몰아 노무현 후보는 3월 16일 광주 경선에서 37.9%의 득표로 호남 출신 한화갑(17.9%)과 대세론을 펼친 이인제(31.3%)를 제치고 경천동지(驚天動地)할 1위를 차지했다. 영남 출신 노 후보가 김대중 대통령과 새천년민주당의 근거지인 광주에서 승리하면서 ‘노풍(盧風)’이 점화되었다. 그 이후 노 후보는 파죽지세(破竹之勢)로 승리를 이어갔다. 결국 이인제 후보는 전남 경선 직후 더 이상 역전(逆轉)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해, 4월 17일 후보 사퇴를 선언했다. 이후 노무현 후보는 2002년 4월 27일, 서울 경선을 끝으로 새천년민주당의 제16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공식 선출됐다. 경선이 끝난 4월 말 노무현의 지지율은 당시 역대 대통령 후보 가운데 사상 최고치라는 60%를 기록했다.
플랜A는 이런 ‘2002년 노무현 모델’에 기반하고 있다. 대선 후보 경선을 통해 현재 부동(不動)의 지지율 1위인 이재명 지사를 ‘이인제화’시켜 친문 후보를 민주당의 최종 대선 후보로 만들려는 전략이다.
플랜A가 실현되기 위한 조건은 친문 세력이 민주당 당권(黨權)을 차지해 이재명 지사와 대항할 수 있는 친문 후보를 부각시키는 것이다. 5월 2일 전당대회에서 선출될 당대표는 사실상 친문 인사로 확정됐다. 송영길 의원은 범친문계로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았다. 우원식 의원은 당내 최대 계파인 더미래 소속이고, 홍영표 의원은 친문 중진의원 모임인 ‘부엉이 모임’을 주도했다.
민주당은 새 당대표에 정세균 총리,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을 부각시키고, 김동연 전 부총리 같은 외부 인사를 영입할 수도 있다. 이재명 지사에 대한 본격적인 검증이 시작되고 ‘친문 후보 단일화’라는 이벤트를 통해 판을 엎을 수도 있다.
[플랜B] 개헌
둘째, 친문 대선 후보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적은 상황에서 비문(非文)인 이재명 지사가 대권을 차지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막기 위해 고안할 수 있는 것이 플랜B다. 특히 재적의원 수의 3분의 2 가까운 180석을 확보한 범여권이 야당 개헌 세력과 연대해서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을 통해 대선 판을 흔드는 것이다. 5년 단임의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내각제로 전환하거나, 이원집정제식 대통령제를 통해 권력을 분산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을 창출한 여권 핵심 세력은 유력 대선 후보가 없고, 이재명 경기지사는 지지율에 비해 정치 세력화가 덜 됐고 강력한 친문 비토 세력이 있다. 윤석열 전 총장도 지지율은 높지만 세력도 없고 정치 경험도 없기 때문에 의외로 개헌 공감대가 만들어질 수 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분권형 개헌론자다. 그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권력구조 자체의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 자연적으로 개헌 논의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런데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를 맞추려다 보면 대통령 임기를 2024년으로 단축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따라서 ‘2년짜리 대통령 후 내각제’ 개헌 카드가 실현되면 친문 세력은 최악의 경우에도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할지 모른다.
[플랜C] 이재명 대세론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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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는 非盧세력의 대권 주자로 나섰지만, 대선에서 참패했다. 사진=조선DB |
이에 따라 2004년 17대 총선에서 과반인 152석을 거머쥐었던 열린우리당은 사실상 분당(分黨)되며 제2당으로 추락해 의회 권력이 다시 한나라당 보수 진영으로 넘어갔다. 그 이후 열린우리당은 다음 대권을 차지할 가능성이 떨어지자 중도개혁통합신당, 중도통합민주당 등의 이합집산을 거쳐 2002년 8월 5일 대통합민주신당으로 재(再)창당했다.
결국 친노(親盧) 세력과 대립한 비노(非盧)의 정동영 후보는 2007년 9월 15일부터 10월 14일까지 진행된 전국 순회 경선에서 승리해 여당 격인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후보가 되었다. 당시 친노 진영에서는 이해찬, 한명숙, 유시민 후보가 출마했지만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정동영 후보에게 패배했다.
2007년 대선 당시와 현재의 더불어민주당이 처한 상황을 비교하면 유사한 점이 많다. 대권 경쟁에서 친문 후보들의 경쟁력이 비문인 이재명 지사에 비해 현격히 떨어진다. 더구나, 노무현 대통령 임기 말에도 유권자들이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 등에 실망해 ‘정권심판론’이 들끓었다. 이번 4월 보궐선거에서도 입증되었듯이 집값 상승, 전세 대란, 공시지가 인상, LH사태 등으로 크게 악화된 부동산 민심이 정권심판론에 불을 댕겼다.
만약, 2007년 상황이 재현된다면 여당의 대선 후보는 대세를 형성한 비문 출신인 이재명 지사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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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경기지사. 최근 두 사람의 연대설이 나돌고 있다. 사진=조선DB |
이 과정에서 플랜A를 고집하는 강성 친문 세력과 플랜C를 관철시키려는 이해찬 전 대표(비문 + 친문 전향파) 간의 갈등이 고조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 플랜D다. 친문 세력이 전략적으로 이 지사와 결별하고 야권이 분열되면 4자 구도가 만들어져 승리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최근에는 강성 친문을 중심으로 ‘이재명 탈당설’까지 제기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지사는 지난 2월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제 사전에 탈당은 없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탈당설을 부인했다. 그는 “민주당 지지자와 문재인 대통령님 지지자들이 압도적으로 응원하는데 제가 왜 나가느냐”고 그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강성 친문이 ‘이재명 죽이기’에 나서면 상황은 반전(反轉)될 수 있다.

[시나리오1] 국민의힘 중심의 흡수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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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27일 새정치민주연합 워크숍에서 인사를 나누는 안철수 당시 새민련 공동대표와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김 전 위원장은 연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비판 중이다. 사진=조선DB |
첫 번째 시나리오는 국민의힘 중심의 흡수통합론이다. 보궐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국민의힘이 가장 선호하는 자당(自黨) 중심의 ‘야권 대통합’에 방점을 두고 있다. 한마디로 국민의힘을 야권 대통합의 플랫폼으로 만들어가려는 의도다.
보궐선거 직후 주호영 국민의힘 대표 권한대행이 안철수 대표와 만나 국민의당이 원하는 합당이 어떤 형태인지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안 대표는 이 자리에서 “당내 의견 수렴이 먼저”라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양측은 서로 재보선 압승의 주역을 자처하며 통합 논의의 주도권을 차지하려고 한다.
가령 안철수 대표의 최측근인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은 지난 4월 9일 소셜미디어(SNS)에서 “처음부터 단일화의 판을 만들고, 키우고, 끝까지 지켜서 완성한 사람은 안 대표였다”며 “야권의 승리 요인은 안철수라는 견인차와 문재인 정권의 무능과 위선에 따른 반사이익”이라고 강조했다. 양당 모두 통합의 시기나 방식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 명분 쌓기에 돌입한 양상이다. 특히 안 대표가 통합의 전제 조건으로 선(先)국민의힘 혁신을 요구할 경우, 양당 간 통합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따라서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합당은 국민의힘 전당대회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이 높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안철수 대표에 대한 거부가 통합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안 대표는 보궐선거 직후 “야권이 단일화를 하고, 그리고 시장 선거에서 승리해서 정권 교체의 교두보를 확보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김 전 위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어떻게 건방지게 그런 말을 하냐”며 “야권의 승리가 아니라 국민의힘의 승리였다”고 밝혔다. 더 나아가 “안 대표와 단일화를 안 했어도 충분히 이겼을 거다” “안 대표 같은 사람이 대통령 되면 나라가 엉망이 된다”며 잇따라 직격탄을 날렸다. 국민의당과의 통합 논의에 나선 국민의힘에도 “무슨 대통합 타령이냐”며 “바깥을 기웃거리지 말라”고 쏘아붙였다.
나경원 전 원내대표는 플랫폼 정당의 필요성도 설파했다. 그는 “당이 튼튼하고 준비를 한 다음에 플랫폼 역할을 해야지 그냥 뭐 윤석열 총장 모셔다가 플랫폼 하겠다고 하면 누가 오시겠냐”면서 “우리 당이 매력적이면 다 앞다투어서 오실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누가 국민의힘 새 대표로 선출되고 그가 어떤 구상과 의지를 갖고 통합에 임할지가 최대 관건이다. 차기 당권주자로 거론되는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은 “선(先)범야권 통합 후(後)전당대회 수순으로 가는 게 국민들이 바라는 바에 부응하는 길”이라며 “단일 대오에 윤 전 총장이 합류해주길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궁극적인 목표는 안철수 대표, 윤석열 전 총장, 홍준표 무소속 의원, 유승민 전 의원, 원희룡 제주지사, 금태섭 전 의원 등 정권 교체를 원하는 사람들이 모두 범야권 통합에 동참해 미국식 오픈 프라이머리를 통해 대선 후보를 선출하는 것이다.
두 번째 시나리오의 핵심은 ‘야권 후보 단일화 모델’이다. 검찰총장에서 물러나자마자 유력 대선주자로 급부상한 윤석열 전 총장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기성(旣成) 정당에 입당하느냐 아니면 창당 또는 제3지대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느냐 여부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국민의힘에 선뜩 합류하지 못하는 이유는 문재인 정부 출범과 동시에 시작된 적폐청산 수사를 진두지휘하면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을 포함해 많은 전 정권 인사들을 구속시켰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국민의힘과 일부 강성 보수층에선 윤 전 총장에 대한 비토 세력이 존재한다. 야권의 차기 대선 주자를 자처하는 홍준표 무소속 국회의원이 대표적이다. 그는 윤 전 총장을 “박근혜 정권 무너뜨리는 정치 수사에 큰 공을 세우고 벼락출세한 사람이다”라고 비판했다.
윤석열 전 총장 입장에서도 국민의힘이 비록 보궐선거에서 압승했지만 여전히 기득권 수구 세력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존재하기 때문에 입당이 쉽지 않다. 따라서 이번 재보선에서 중도의 힘을 확인한 만큼 윤 전 총장이 당장 국민의힘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한 다음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최종 야권 단일화를 이뤄내는 것을 선호할지 모른다. 이것은 일종의 ‘윤석열발(發) 야권 재편’이다.
그런데 시나리오2가 실현되기 위해선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윤 전 총장의 대권 지지율 지속 여부다. 리얼미터·JTBC가 4·7재보궐선거 이후 진행한 첫 차기 대권 주자 여론조사(4월 10~11일)에서 윤석열 전 총장(36.3%)이 이재명 경기지사(23.5%)에 12.8%포인트 차이로 크게 앞섰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12.3%로 그 뒤를 이었다. 윤 전 총장은 이재명 지사와의 맞대결에서 47.4%로 이 지사(36.0%)를 11.4%포인트 앞섰다. 이낙연 전 대표와의 가상대결에서는 윤 전 총장이 50.9%로 이 전 대표(31.4%)보다 19.5%포인트 높았다.
여하튼 향후 윤 전 총장 지지도가 지속적으로 유지될 것인지가 큰 관건이다. 윤 전 총장이 자신의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지 못한 채 오직 반(反)문재인 정서에 기대어 반사이익만 추구한다면 지지율은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릴 것이다. 덩달아 윤석열이 주도하는 야권 후보 단일화 모델도 사라질 수 있다.
우군화(友軍化) 문제도 있다. 윤 전 총장이 만약 대선에 나서려 한다면 누구와 함께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11개월 앞으로 다가온 내년 대선에서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 야권 대선 주자를 만드는 데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는 윤 전 총장에 대해 “나는 그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연락한 적도 없다”며 “대통령이 무슨 자질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해줄 수는 있어도, 내가 달리 도와줄 방법은 없다”고 했다.
일부에선 윤석열 전 총장과 안철수 대표와의 연대가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은 안철수 대표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서는 “합쳐질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무 관계도 없는데 안철수가 마음대로 남의 이름 가져다가 얘기한 것”이라고 했다.
조직과 자금도 문제다.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귀국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독자 행보로 대권 도전에 뛰어들었다가 한 달도 버티지 못하고 중도 포기한 배경엔 자금난이 큰 요인이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대선 후보는 일주일에 1000만원 가까이 돈을 써야 한다”며 “정치 자금은 입당하면 해결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모두 개인 돈으로 해결해야 한다. 윤 전 총장이 끝까지 제3지대에 남는 상황은 거의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고 했다. 조직과 자금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 윤 전 총장의 대권 행보는 늦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방식이든 윤 전 총장은 늦어도 5월 초엔 대선 행보에 시동을 걸어야 할 것이다.
[시나리오3] 중도통합 빅텐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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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016년 중도정당인 앙마르슈를 창당, 집권에 성공했다. 사진=신화/뉴시스 |
이런 구상은 제3지대가 오히려 제1 야당인 국민의힘을 흡수통합하는, 한국 정당사에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정치 실험이 될 수 있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은 4월 8일 사임을 알리는 기자회견에서 “지난 서울시장 경선 과정에서 보았듯이 정당을 스스로 강화할 생각은 하지 않고 외부 세력에 의존한다든지, 그것에 더하여 당을 흔들 생각만 한다든지, 정권을 교체하자 수권 의지는 보이지 않고 오로지 당권에만 관심 보이는 사람이 내부에 많다”고 저격한 바 있다.
그러나 국민의힘 자력으로 정권 창출이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국민의힘 개혁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 제3지대로 이탈하면서 중도야권 대통합론이 탄력을 받을 수도 있다. 윤석열 전 총장뿐만 아니라 원희룡 지사, 안철수 대표, 김동연 전 부총리, 최재형 감사원장, 금태섭 전 의원 등 정권 교체 세력이 빅텐트로 모이는 것을 상정해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이런 구상은 중도통합의 기치를 내걸고 정권 창출에 성공한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모델과 비슷하다. 그는 2012년 5월 15일부터 2016년 5월 14일까지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의 대통령실 부실장에 재직하면서 사회당 정부의 중도우파적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2016년 4월 중도 성향의 정당인 앙마르슈!(En Marche·전진!)를 창당하고, 2017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 처음 출마해 국민전선의 마린 르 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그러나 한국 정치사에서 제3지대론은 역사적으로 성공한 사례가 없다. 따라서 이런 구상이 성공하려면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정치 실험이 필요할지 모른다. 가령 대선 승리 후 권력을 공유하는 그림자 내각 팀을 만들어 여당 후보와 경쟁하는 초유의 선거 모델도 구상해볼 수 있다.
[시나리오4] 親朴-親尹 분열시켜 4자 구도로
네 번째 시나리오는 여권의 플랜D에서 언급된 여야 분열 4자구도론이다. 여권이 대선 전에 전략적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사면해 야권이 친(親)박근혜 세력 대 친(親)윤석열 세력으로 분열되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여당이 어떤 플랜을 구상하든 야당이 어떤 시나리오를 갖든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는 정치 상황과 정치 의지, 그리고 민심의 향배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2007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도는 10%대에 불과했다. 노 대통령은 그해 2월 28일 자신이 주도해서 창당한 집권 열린우리당에 탈당계를 제출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당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열린우리당은 대한민국 민주세력의 역사적 정통성을 이어가는 정당”이라면서 “임기가 끝난 뒤에도 당적을 유지하는 전직 대통령이 되고 싶었으나 역량 부족으로 한국 정치구조와 풍토의 벽을 넘지 못했다”고 했다. 이어 “당 내부에서 저의 당적 문제로 인해 갈등을 겪게 되고 심지어는 다수의 국회의원이 당을 이탈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며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은 국민의 지지를 지켜내지 못한 저의 책임”이라고 했다.
말이 좋아 탈당이지 사실상 대선을 앞두고 조기 레임덕을 겪으며 당에서 등 떠밀려 나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런 불행한 노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내로남불’의 위선에서 벗어나고 잘못된 정책 기조를 바꿔 성난 민심을 달래야 한다.
지방선거·재보선 압승하고도 대선 패했던 한나라당
국민의힘도 보궐선거 압승에 자만해 혁신을 멀리하면 다음 선거에서는 심판받을 것이다. 이번 보궐선거를 승리로 이끈 김종인 국민의힘 전 비상대책위원장도 4월 8일 공식 퇴임하면서 4·7재보궐선거의 압승을 두고 “국민의 승리를 자신들의 승리로 착각하지 말라”는 뼈 있는 말을 남겼다. 그러면서 “개혁의 고삐를 늦춘다면 다시 사분오열하고, 정권 교체와 민생 회복을 위한 천재일우의 기회는 소멸할 것”이라며 “국민의힘이 새로운 수권정당과 민생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한 자기 혁신의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2002년 6월 지방선거에서 야당인 한나라당은 압승했고, 8·8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도 13곳 중 11곳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6개월 후에 치러진 대선에서 패배했다. 민심의 바다는 배를 띄울 수도 뒤집을 수도 있다는 말이 있듯이 선거판은 언제든지 요동칠 수 있다. 단언컨대, 대권 경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