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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 仁川 네 母子(女) 아파트 투신 자살 사건의 내막

『아저씨, 엄마가 우리를 죽이려고 해요. 엄마, 나 죽기 싫어』

추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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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해 빠진 孫여인은 카드빚 갚으란 독촉 전화에 잠을 이루지 못했으나, 남편 조씨는 착하지만 가정에 무관심했다

●『원래 자존심 강하고, 거짓말 못 하고, 내성적인 사람들이 자살하는 겁니다. 사기꾼이 자살하는 것 봤습니까』(수사 형사)
● 안면도內 중학교 동창끼리 연애 결혼
● 남편 실직 후 친정 집 도움 많이 받아
● 왜 다른 아파트에 가서 투신했는지는 수수께끼
『아저씨, 엄마가 우리를 죽이려고 해요』
왼쪽부터 큰딸 상아(8·가명), 둘째 아들 인호(6·가명), 막내 딸 현선(2·가명). 죽기 두 달 전인 5월25일 안면도 외갓집에서 이종사촌들과 함께 찍은 사진.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큰딸 상아는 아빠를 쏙 빼닮았다.
  제헌절 공휴일이었던 지난 7월17일(목) 오후 6시경.
 
  인천시 부평구 청천동 A아파트 4동 14층에 사는 文永基(문영기·48)씨는 밖에서 아이 우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서 현관문을 열었다. 14층과 15층 사이 계단에서는 아이 셋과 아이들의 엄마로 보이는 여자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너희들 왜 이렇게 시끄럽게 우니』
 
  『아저씨, 엄마가 우리를 죽이려고 해요. 엄마, 나 죽기 싫어』
 
  文씨는 당연히 장난인 줄 알았다.
 
  『네끼 이놈, 그런 말 하면 못 써. 엄마 말씀 잘 들어야지』
 
  文씨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 집 안으로 들어왔다. 5분쯤 후 文씨는 비디오를 빌리러 나가려고 다시 현관문을 열었다. 그때까지도 어머니로 보이는 여인이 우는 아이들을 달래고 있었다.
 
  文씨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서 내린 후 아파트 현관 바로 앞에 있는 주차장을 지나 경비실 쪽으로 걸어 나갔다.
 
  『쿵』
 
  큰 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본 文씨의 바로 앞에 『엄마가 우리를 죽이려 한다』며 울던 여자 아이가 떨어져 있었다. 文씨는 반사적으로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때 14층 계단 창문에서 엄마가 둘째 남자아이를 던지고 있었다. 놀란 文씨가 경비를 부르려고 고개를 돌린 순간 여인은 제일 어린아이를 안고 창틀을 넘어 몸을 던졌다.
 
  큰아이와 둘째 아이가 차례로 던져지고 막내를 엄마가 안고 몸을 던져 바닥에 떨어지기까지는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죽은 엄마의 바지 주머니에는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살기가 싫다. 죽고 싶다. 안면도에 묻어 주세요」라는 짤막한 유서가 꽂혀 있었다.
 
  유서의 맨 아래에는 여인의 친정 집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경찰이 도착했을 때 두 번째로 떨어진 아들은 숨이 남아 있어 가까운 병원 응급실로 후송됐다.
 
  경찰 확인 결과, 추락한 이들은 인천시 서구 가정동에 사는 일가족으로 어머니 손정미(34·가명)씨와 그의 첫째 딸 조상아(8·가명), 둘째 아들 조인호(6·가명), 막내 딸 조현선(2·가명)이었다.
 
  文씨는 『큰아이만 엄마가 자신들을 죽일 거라는 눈치를 채고 큰 목소리로 울고 있었고, 다른 두 아이는 상황을 모르고 따라 울고 있었던 것 같다』며 『아직도 그때 생각만 하면 가슴이 벌렁거린다』고 했다. 중풍에 걸려 몸이 불편했던 文씨는 이 사건으로 증세가 더욱 악화되었다.
 
  A아파트 바로 옆에 있는 부평 S병원 영안실의 盧雲龍(노운용·36) 주임은 오후 6시30분쯤 경찰의 연락을 받고 사건현장으로 갔다. 盧씨가 도착했을 때 손정미씨의 시신은 아파트 입구 계단 중간에 다리 하나를 걸친 채 엎어져 있었고, 막내아이는 계단 위쪽에 엎어져 있었다.
 
  첫째 아이는 아파트 현관 입구 난간 1m 앞에 쓰러져 있었다. 저녁 때라 이제 막 날이 어둑해질 무렵이었다.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둔 孫씨와 두 딸은 현장 수습 후 오후 7시15분쯤 S병원 영안실로 옮겨졌고, 아들 조인호군은 순천향 병원 응급실에서 치료 중 사망, 다음날 새벽 2시25분에 S병원 영안실에 옮겨졌다.
 
  盧주임은 『둘째 아이 옆구리에 긁힌 자국이 있었던 것으로 봐서 둘째가 기왓장에 부딪친 후 튕겨 나간 것 같다』고 했다. 영안실에는 孫씨의 형부라는 사람이 제일 먼저 도착했고 남편 조장연(34·가명)씨는 대전에서 올라오느라 조금 늦게 도착했다.
 
  盧씨는 『남편이 시신을 확인하면서 「아니야, 우리 상아(큰딸)가 아니야」 하며 오열했고, 입관할 때도 「애들 얼굴 한 번 더 보겠다」고 떼를 쓰는 바람에 말리느라 혼이 났다』고 기억했다.
 
  사건이 크게 보도된 탓인지 한나라당의 최병렬 대표가 조문을 다녀갔고 그 외의 유명인들도 몇몇이 다녀갔다고 한다. 네 사람의 시신은 7월19일 오후 부평묘지공원 관리사무소에서 화장됐고, 분골은 孫씨의 고향인 안면도 바닷가에 뿌려졌다. 350여만원에 이른 장례비는 孫씨의 친정 언니들이 치렀다.
 
 
 
 여덟 살짜리 아이를 어떻게 아파트 좁은 복도 창으로 던졌을까
 
   孫씨가 아이들을 던지고 자살한 부평구 청천동의 A아파트 복도 창문은 생각보다 크고 폭이 넓었다. 가로가 230cm에 세로가 80cm였다. 창문을 한쪽으로 밀어붙이면 체구가 큰 어른 둘이 한꺼번에 빠져나갈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공간이 생겼다. 바닥에서 창문 틀까지의 높이가 125cm나 됐다. 제일 먼저 떠오른 의문은 「죽기 싫다고 버티는 여덟 살짜리 큰아이를 어떻게 125cm나 들어올려 던졌을까」였다. 부평경찰서의 한 수사관은 『사람이 극한 상황에 이르면 괴력을 발휘하게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孫씨가 이렇게 높은 창문턱에 어떻게 두 살짜리 아이를 안고 올라갔는지도 의문이 들었다. 복도 창문 바로 옆에는 창문과 비슷한 높이의 붉은색 소화전이 설치되어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孫씨가 먼저 막내 딸아이를 소화전 위에 올려놓은 후 자신이 창틀 위에 올라가 아이를 안고 뛰어내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孫씨가 살던 인천시 서구 가정동의 S아파트에서 사건 장소인 부평구 청천동의 A아파트까지는 택시로 15분 거리다. 성인이 걸어서 가면 1시간 거리로 아이들 셋을 데리고 걸어가기에는 다소 무리다.
 
  孫씨는 왜 아이들을 데리고 굳이 멀리 있는 A아파트까지 갔을까?
 
  투신하기 위해 고층 아파트가 필요했다면 집 근처에도 15층 이상의 고층 아파트는 얼마든지 있었다. A아파트에 사는 친척이 있다거나, 孫씨가 이곳에서 파출부 등으로 일을 한 적이 있다거나 하는 연고가 전혀 없다. 단지 S아파트에서 직선거리로 200m쯤 되는 곳에 남편 조씨의 큰형 가족이 살고 있을 뿐이다. 조씨의 큰형은 경찰에서 『종종 연락을 하고 지냈었는데 근자에는 연락이 끊겼다』고 진술했다.
 
  인천에서 택시기사를 하는 이연무(37)씨는 『A아파트가 있는 지하철 부평구청역 근방은 병원, 경찰서 및 관공서가 밀집해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孫씨의 친정 어머니 이성순(68·가명)씨는 『자기 집도 아니고 왜 딴 동네 아파트에 가서 죽었겠냐』며 『걔가 죽을 장소를 다 봐 놓고 거기로 가서 죽은 것』이라고 했다.
 
  장례식장에서 孫씨의 남편이 장모에게 한 말이다.
 
  『하루는 상아 엄마가 저녁에 애들하고 나가서 밤늦도록 안 들어오더라고요. 다른 때는 오후 9시면 애들 다 씻기고 자는데 그날은 새벽 1시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어디 갔다 왔냐고 물어보니까 「애들이 전철 타고 싶다고 해서 타고 왔지」 그러더라고요』
 
  사위의 얘기에 장모 李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걔가 새벽 1시까지 밖에 있을 리가 없는데 그때부터 지 맘이 아니었던 거야. 올바른 정신으로 왜 애들을 데리고 1시까지 돌아다니겠어』
 
  그녀가 왜 세 자녀를 죽이고 자살했느냐가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은 것처럼, 그녀가 왜 자살 장소로 A아파트를 선택했는지 누구도 자신 있게 얘기하지 못했다.
 
  孫씨가 자신과 아이들을 묻어 달라고 한 安眠島는 말 그대로 「편히 잠드는 섬」이다.
 
 
 
 安眠島, 편히 잠드는 섬
 
   安眠島는 孫씨의 고향이자 남편 조씨의 고향이다. 태안반도 중간에서 남쪽으로 뻗은 남면반도의 남쪽 끝에 자리잡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여섯 번째로 큰 섬이다.
 
  孫씨의 친정 집을 찾아갔을 때 친정 어머니 李씨는 세 살짜리 친손녀를 돌보고 있었다. 李씨는 『이번 일로 맘이 상해 많이 늙었다』며 『당했을 때는 많이 울었는데 지금은 손녀 보느라고 정신이 없다』고 했다.
 
  李씨는 이렇게 스스로를 위안했다.
 
  『얘랑 있으니까 얼룽덜룽 시간이 가, 이러다 잊을 것 같아. 그것 생각하면 뭐해. 이왕에 간 거, 내가 죽은 사람 따라갈 수도 없고 내가 따라간다고 될 일도 아닌데 공연히 병들고 맘 아프면 뭐해. 우리 딸만 그렇게 죽은 게 아니고 TV 보면 맨날 비행기 사고로도 죽고, 기차 사고로도 죽고, 죽는 사람들 많잖아』
 
  孫씨는 李씨의 5녀 2남 중 막내딸이었다.
 
  孫씨 위로 언니가 넷이고 아래로는 남동생 둘이 있다. 李씨는 『막내아들은 안면도에서 살고 큰아들은 객지로 떠돌아 다닌다』고 했다. 孫씨의 막내 동생 손상훈 (31·가명)씨는 꽃지 해수욕장에서 「조개구이집」을 운영한다.
 
  처음 언론에 孫씨의 남편이 가출한 것으로 잘못 알려진 것은 처남 손씨가 경찰조사를 받으면서 『매형 얼굴 본 지가 오래됐다』고 한 데서 비롯됐다. 「자살한 孫씨가 일용직에 종사하며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 보도 역시 동생 孫씨의 추측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孫씨는 결혼 후 돈을 벌러 나선 적이 없다. 孫씨의 둘째 언니는 『동생이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파출부라도 나가 볼까」하고 얘기를 한 적이 있지만, 애들이 셋이나 되는데다가 막내가 어려서 나가지 못했다』고 했다.
 
 
 
 結婚 초부터 누적되기 시작한 가난
 
  孫씨와 남편 조장연(34)씨는 동갑으로 읍내에 있는 안면중학교 동창이었다. 남편 조씨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중퇴를 했다. 孫씨 역시 집안 사정으로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부천에 있는 공장에 다니다가 9년 전에 인천에서 남편 조씨를 만나 연애를 시작, 6개월 만에 동거에 들어갔다.
 
  孫씨의 둘째 언니는 『둘이 사귈 때도 친정 엄마가 조금 더 기다렸다가 더 좋은 자리 나면 시집 가라고 했는데 둘이 워낙 좋아하니까, 뭐』라고 말끝을 흐렸다.
 
  孫씨네 가족의 빈곤은 결혼 초부터 누적되어 온 것이다. 일부 언론에서 「孫씨 가족이 家長의 실직과 함께 급격하게 가난해져 궁핍에 시달리게 된 新빈곤층」이라고 했지만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남편 조씨는 2년 전 실직하기 전까지 4년 동안 가구공장에 다녔지만 그때도 월급을 많이 받지 못했다.
 
  월급이 60만~70만원이었고, 잔업을 해야 100만원 남짓한 돈을 손에 쥘 수 있었다. 그때만 해도 고정적인 수입이 있고, 첫째와 둘째가 유치원이나 학교에 들어가기 전이라 다소 여유가 있었다.
 
  남편이 실직하고 생활이 더욱 어려워졌는데 孫씨는 셋째 아이를 임신했다.
 
  『정미가 셋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지 언니들이 「너 살기도 힘든데 뭘 또 애를 더 나으려고 하냐. 그냥 지우라」고 그랬어. 근데 얘가 딸 욕심이 많아. 「나는 딸 하나 더 낳고 싶어」 그러더라고. 그러더니 딱 딸을 낳았는데 나아 놓고 보니까 애가 너무 탐박스럽고 예뻐서 이모들도 다 예뻐라 했지. 막내 낳고 집도 사고 그래서 복덩이라고 그랬는데 복덩이는 무슨 복덩이야, 다 죽어서 망했으니, 원』(친정 어머니)
 
  ―자살한 막내딸이 「힘들다」고 얘기하지 않았나요.
 
  『원래 살기가 힘들다는 거는 내가 다 알고 있었지. 신랑이 넉넉하게 못 벌어다 주고, 그것도 벌다 못 벌다 그러니까 얼마나 쪼들리겠어. 큰애가 올해 학교 들어가고 작은애가 유치원 다니는데 애들 치닥거리 하려면 돈이 얼마나 들어가겠어. 거기에다 카드빚도 많고. 사위한테 카드 누가 쓴 거냐고 물어보니까 「자기가 썼다」고 하대, 각시가 썼다고는 안 하고. 사위가 돌아다니면서 일하니까 여기저기 썼겠지. 돌아다니면서 친구들하고 술도 먹고 했는지 몰라. 그리고 들리는 말에 심하게는 아니어도 서양카드 놀음했다는 말도 있어』
 
  친정 어머니 李씨는 막내딸에게 늘 쌀을 보내 주었다.
 
  『가을이면 김장해다 주지, 고구마 캐면 고구마 몇 박스씩 갖다 주지, 고춧가루니 마늘이니 내가 안 주는 게 뭐가 있어』
 
  죽기 며칠 전에 孫씨는 친정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고 한다.
 
  『엄마, 쌀 얼마 안 남았어. 조금밖에 안 남았어』
 
  친정어머니 李씨는 『지금 여기도 넉넉치 않으니까, 애들 방학할 때까지만 팔아서 먹고 오너라. 그럼 방학 때 왔다 갈 때 새로 찧어서 주마』라고 했다. 다음날 아침 李씨는 딸 孫씨로부터 『쌀 10kg을 샀다』는 전화를 받았고, 그런 줄로 믿었다고 한다.
 
 
 
 빚은 총 4600만원
 
  『결혼해서부터 지금까지 위에 언니들이 많이 도와줬지. 애들 신발도 사 주고 옷도 사 주고 특히 둘째 언니가 많이 했어. 근데 요새 와서는 「밤낮 친정에서 쌀 대 주고, 언니들이 도와주니까 弟夫(제부)가 기대고만 살라고 하고 약삭빠르게 돈 안 벌고 하는 것 같다」고 언니들이 밉살맞다고 좀 안 도와주고 그랬어』
 
  孫씨의 막내딸은 피부병이 심했고 둘째 아이는 목이 부어서 병원에 가야 할 처지였다.
 
  『저번에도 정미가 둘째 언니한테 애들 병원비가 없다고 돈을 10만원 달라고 했는데 일부러 5만원만 부쳐 주고 안 줬디야. 그러고 나서 며칠 뒤에 죽었잖아. 그런데 이렇게 당하고 보니까 둘째가 「그때 10만원 줄 걸 그랬다」고 울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내가 「신랑이야 밉거나 말거나 정미가 무슨 죄냐, 오죽하면 그랬을 텐데 더는 못 부쳐 줄 망정 10만원 달라 그러면 그냥 부쳐 주지 뭐라고 그랬냐」고 그랬지』
 
  孫씨의 둘째 언니는 『설마 3800원이 없어서 큰애를 학교에서 가는 현장학습에 못 보낼 정도로 힘든 줄은 몰랐다』고 했다.
 
  李씨는 마룻바닥을 손바닥으로 내리치며 말했다.
 
  『그런데 애들 방학할 고 사이에 그렇게 복잡해 가지고 죽었잖아. 방학 때 애들하고 내려왔으면 그렇게 죽지는 않았지. 언니들하고 얘기해서 대책을 세우고, 시집하고도 의논을 해서 어떻게든 여기서 살도록 했을 텐데』
 
  李씨는 『시댁은 애들을 맡아 키울 형편도 안 되고 村老(촌로)들이라 아무것도 모른다』며 『애들 학교 가르치고 보살필 능력이 못 된다』고 했다.
 
  『애들을 남겨 놓고 저만 죽었으면, 애들이 자기 엄마 찾고 얼마나 울었겠어. 그러면 우리가 그 꼴을 하루 이틀도 아니고 어떻게 보겠어.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비비지. 그러니까 지가 애들 다 데리고 간 거야』
 
  친정어머니는 죽은 孫씨의 생활고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기자양반이 사위한테 가서 살살 물어봐, 생활비는 얼마나 벌어다 줬고, 집에는 어떻게 왔다 갔다 했는지, 한번 물어보고 나한테 얘기 좀 해 줘』
 
  남편 조씨는 7월30일 새벽 4시쯤 형과 함께 경찰에 나와서 추가 조사를 받았다.
 
  조씨는 『없을 때는 20만~30만원, 많이 갖다 줄 때는 100만원이 조금 안 되게 갖다주었다』고 했다. 카드빚은 이 사건 초기에 언론에 보도된 것보다 많았다.
 
  남편 명의로 은행에서 대출받은 1000만원과 카드빚 2000만원 외에도 부인 孫씨의 명의로 2개 카드회사에서 1100만원과 500만원을 대출받았다. 조씨가 경찰에서 밝힌 빚은 모두 4600만원이었다.
 
  孫씨가 살던 아파트의 등기부 등본을 떼 보니 3640만원의 근저당이 설정돼 있었다. 근저당 채권자는 조씨의 둘째 형이었다. 孫씨의 16평짜리 아파트는 孫씨 명의였지만, 근저당을 감안하면 孫씨의 소유라고 보기 어렵다.
 
  『孫씨가 생활보호 대상자 신청을 했지만, 남편이 소유한 세피아 자동차 때문에 해당이 안 됐다』는 일부 언론보도는 오보였다. 孫씨 가족은 가정2동에서 살다가 작년 가을 지금의 가정1동 S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양쪽 동사무소에서는 『孫씨로부터 생활보호 대상자 신청을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孫씨가 가정2동 동사무소에 육아보조금을 신청해, 교육청에서 지급한 사실은 확인됐다. 육아 보조금은 해당 교육청에서 지급하는 것으로, 5人 가족 기준 월 소득이 230만원이 안 되는 가정의 유치원에 다니는 5세 미만 유아에게만 해당된다.
 
  공립 유치원일 경우에는 입학료와 수업료를 전액 지원해 주며, 사립 유치원일 경우에는 한 달에 10만5000원을 지원해 준다.
 
  부평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이 사건을 놓고 언론이 자꾸 사회안전망의 문제니 카드빚 문제니 하는 식으로 몰아가는데 이건 초점을 180도 잘못 맞춘 것』이라며 『孫씨가 악착같이 살아 보려는 마음이 부족해서 자살로 이어진 것』이라고 얘기했다.
 
 
 
 착하지만 세상물정 몰랐던 남편
 
  사건이 나고 남편을 인터뷰한 언론 중 일부는 『부부금실이 좋았고, 남편이 아내와 아이들을 너무나 사랑했다』고 기술했다. 그러나 그렇게 사랑하는 남편에게 왜 말 한마디 없이 아이들과 함께 죽음의 계곡으로 갔을까?
 
  孫씨는 유서에 남편에게 한마디도 남기지 않았다.
 
  남편이 사고 이틀 전인 7월15일에 대전에 있는 초등학교의 조경공사 현장에 내려간 것은 경찰 조사결과 사실로 확인됐다. 남편 조씨는 대전에 내려가면서 부인 孫씨와 전화통화를 했다. 그게 마지막 대화였다. 남편 조씨는 경찰 조사에서 『생활이 어렵긴 했지만 그렇게 죽을 정도의 이유는 없었다』고 했다.
 
  남편 조씨는 『아내가 죽기 3~4일 전인가, 피곤해서 잠자리에 누웠는데 아내가 나를 깨우더니 요즘 잠이 잘 오지 않는다고 한 적이 있다』며 『술을 좀 달라고 해서 사다 줬더니 마시고는 금방 잠이 들었다』고 말했다.
 
  다음날 아침 孫씨는 남편에게 『어제는 잘 잤다』고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지만 조씨는 아내가 얼마나 큰 심적 고통을 홀로 감당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친정어머니 李씨는 사위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걔가 원래 조금 뭐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지가 버는 양이 있는데 그거 가지고 생활이 되겠어. 그럼 각시보고 어떻게 사느냐고 물어도 보고 그래야지, 맘만 좋으면 사나. 맘은 좋아, 착하고, 생전 각시 때리거나 싸우거나 하는 법도 없고 애들한테도 잘하고. 그거 한 가지는 잘 혀. 근데 능력이 없어서 그렇지』
 
  남편을 많이 접한 부평 경찰서의 관계자는 『남편 조씨는 착한 사람이지만 내성적이고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남편 조씨는 아이들 양육비가 얼마나 드는지, 한 달에 카드빚 연체 이자가 얼마인지도 몰랐다』며 『매일 걸려오는 카드빚 독촉전화를 아내 孫씨가 다 받으면서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했다.
 
 
 
 『카드빚 독촉 전화에 잠이 안 와』
 
  죽기 전 孫씨는 언니와의 전화 통화에서 『카드빚 갚으라고 독촉전화가 오는데 내가 너무 죽겠어서 일부러 전화 코드를 빼놨어. 언니 나 잠이 안 와, 잠이 안 와』라고 괴로움을 호소했다.
 
  친정어머니 李씨의 얘기다.
 
  『걔가 원래 자랄 때부터 그렇게 신경을 많이 써. 가뜩이나 살기도 어렵고 쪼들리고 그러는데 카드회사에서 독촉전화까지 오니까 얼마나 속으로 고민을 하고 그랬겠어. 그래서 우울증이 걸려 가지고, 우울증이 걸리면 그렇게 죽고 싶고 그런다고 하더라고. 그러니까 죽었지, 그렇게 지 새끼를 끔찍하게 아는 애가 어떻게 그렇게 데리고 가서 죽었겠어. 이게 보통 맘 먹고 죽은 게 아냐. 뭐가 씌어도 단단히 씌어서 죽은 거야』
 
  孫씨가 우울증 때문에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거나, 주위 사람들에게 상담을 한 적은 없다.
 
  일반적으로 생활이 힘들면 남편한테 바가지도 긁고 하는 법인데, 孫씨는 도통 그런 일이 없었다는 게 남편은 물론 주변 사람들의 설명이다. 집안에 대소사가 있어도 孫씨는 생전 나서는 법이 없었다.
 
  둘째 언니는 『동생이 워낙 성격이 조용하고 남 앞에 나서는 성격이 아니었다』며 『친정에 와서도 남편에 대해서는 불평이건 뭐건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고 했다.
 
  순하기만 했던 孫씨가 아이들을 밀어서 던지고 자신도 투신했다는 사실을 가족들은 도무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들이었다.
 
  부평경찰서를 취재하면서 필자는 한 수사관에게 『아이들을 그렇게 끔찍하게 여기고 남편에게 잔소리 한 번 안 했다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잔인한 행동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물었다. 대뜸 응수하는 경찰관의 얘기가 간명했다.
 
  『원래 자존심 강하고, 거짓말 못 하고, 내성적인 사람들이 자살하는 겁니다. 사기꾼이 자살하는 것 봤습니까』
 
  사건 당일, 인천시 서구 가정동에 사는 고향 친구 이모씨는 딸을 데리고 오전 11시 쯤에 孫씨네 집에 놀러 갔다. 그날 따라 孫씨는 아이들에게는 스파게티를 만들어 주었다. 李씨와 孫씨는 감자를 쪄서 먹은 후 함께 커피를 마셨다.
 
  孫씨는 『내가 죽으면 애들이 불쌍해서 어떡하지, 나 죽으면 TV에 나려나』하고 중얼거렸다. 李씨는 『야, 너 우울증 걸렸나 보다. 병원에 가야 되는 거 아냐』하고 걱정을 해 주었다. 李씨는 오후 3시쯤 남편의 전화를 받고 집에 돌아갔다.
 
  『친구가 평소에 어렵다고 옷 사 달라, 머리핀도 달라, 쌀 꿔 달라 해서 도와주곤 했는데 나중에 남편이 알고는 「우리도 살기 어려운데 누굴 도와주냐」고 야단을 해서 못 도와줬어요』
 
 
 
 한 달 관리비 3만원 넘지 않아
 
  사건이 발생한 지 12일이 지난 7월29일 S아파트에 가 보았다.
 
  孫씨가 살던 아파트는 그때까지도 정리가 되지 않은 채, 베란다에는 아이들의 옷가지가 그대로 걸려 있었다. 아파트 주민들은 『친정 부모도 있고 시댁 부모도 다 있다는데 왜 아무도 와서 정리를 하지 않느냐』고 불만이 높았다.
 
  孫씨네 아이들이 타던 자전거를 동네 아이들이 타고 노는 것을 보다 못한 주민들은 자전거를 근처 고물상에 갖다 버렸다. 고물상 구석에 버려진 자전거에는 「○○초등학교 조상아 조인호, S아파트 ○동 ○○○호」라고 군데군데마다 까맣게 쓰여 있었다.
 
  孫씨가 살던 ○○○호 우편함에는 7월 관리비 명세서와 함께 지난 6월 관리비 독촉장이 꽂혀 있었다. 아파트 경비원 朴完燮(박완섭·71)씨는 『孫씨가 한 번도 관리비를 거른 적이 없었는데 지난달에 처음으로 관리비를 안 냈다』고 했다.
 
  6월 관리비는 수도료(9180원), 공동전기료(1070원), 유선방송료(3300원)를 포함 2만8140원이었고 7월 관리비는 2만8050원이었다. 경비원 朴씨는 『보통 애들이 셋이나 있고 하면 관리비가 3만원이 넘는데 孫씨네 집은 한 번도 3만원을 넘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孫씨네 가족은 작년 가을에 이곳으로 이사 왔다. 경비원 朴씨는 『내가 이곳에서 근무한 지 2년째인데 남편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며 『한번은 孫씨에게 「남편은 어디 있냐」고 물어보니까 그냥 피식 웃고 말더라』고 했다.
 
  옆 동에 사는 장갓난(72) 할머니는 孫씨에 대해 『도통 말이 없어서 얘기를 나눠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날 수돗가 옆 의자 앞을 지나가는데 큰애가 「할머니 여기 앉으세요」하고 일어나는데, 엄마(孫씨)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앉아 있더라고. 오후 4시쯤 넘어서 막내애를 씻겨서 줄줄이 데리고 나가기에 시장 가는 줄 알았지, 죽으러 가는 줄 알았나. 지금 세상에 어디 가서 파출부라도 하면 다 먹고 살아, 그런데 왜 죽어』
 
  날이 더울 때면 이 아파트의 주부들이 모여 아파트 마당의 소나무 그늘에 앉아 수박도 잘라서 먹고 이야기를 나눴지만 孫씨는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고 한다.
 
  경비원 朴씨는 『孫씨가 애들 자전거를 고쳐 달라고 해서 종종 고쳐 주었는데, 음료수 하나 대접한 적이 없어 속으로 섭섭했다』며 『돈이 없어서 그러는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고 했다.
 
  朴씨는 『사건 당일 오전에 애들이 밖에서 놀다가 지들끼리 싸우고 울고 해서 얼굴이 꼬질꼬질 했는데도 孫씨가 그냥 멍하니 앉아서 쳐다보기만 하기에 이상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孫씨는 막내만 데려다가 아파트 마당에 있는 수도를 확 틀어서 씻겼다.
 
  아파트 바로 앞에 있는 S슈퍼에도 주부 서너 명이 모여 있었지만 孫씨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孫씨와는 어울린 적도 없을뿐더러 말도 한 번 안 해 봤다』고 했다. 슈퍼 주인 김순정(가명)씨는 『여기서 애들이 100원짜리, 200원짜리 과자는 사 먹어도 孫씨는 한 번도 온 적이 없다』고 했다.
 
  孫씨는 물론 남편 조씨도 이웃들과 교류가 거의 없었다.
 
  사건을 담당했던 부평경찰서의 담당 수사관은 『투신 자살하는 경우는 많지만 가족이 동반 투신하는 것은 20년 만에 처음』이라며 『그동안 들어보지도 못한 별의별 언론사의 기자들을 다 봤다』고 했다.
 
 
 
 『아이구, 세상에 아깝잖아. 이 아까운 새끼들』
 
  孫씨의 친정 집이 있는 안면도의 안면읍 승언리와 시댁이 있는 창기리는 버스로 10여 분 거리다. 시골 동네라 그런지 『이번에 인천에서 사건 난 집』이라는 말만 꺼내도, 孫씨 일가의 투신사건에 대해 한마디씩 이야기를 했다.
 
  승언리의 동네 주민 金昌鎭(김창진·73)씨는 『신문에 보니까 자살이라고 나왔던데 그건 안 맞는 얘기지, 애들을 죽였으니까 타살』이라며 『순간을 참으면 되는데 그 순간을 못 넘겨서 그렇게 됐다』고 했다.
 
  『옛날에 우리 어머니들은 이보다 더 살기 힘들었어도 자식들 키우면서 다 살았는데 말야. 조금만 굳게 마음을 먹으면 어디 살길을 못 찾겠어』
 
  안면읍내에서 택시운전을 하는 주권용(32)씨는 『자식들을 죽인 것은 잘못이지만 그 마음은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나 보죠. 만약 내가 불구가 되어서 자살해야 한다면 「내 자식이 남아서 빌어먹고 사느니 같이 죽는 게 낫다」고 판단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장례식장에서 孫씨의 가족들과 남편 조씨의 남자 형제들 사이에 다툼이 났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孫씨의 친정과 시댁 양쪽 모두 그런 사실을 부인했다. 孫씨의 친정 어머니 李씨는 『장례식장에서 사돈 댁 사람들이 「죽으려면 저나 죽지 왜 애들까지 죽였냐」고 하는 소리를 들었어. 그 말을 듣고 내가 울화가 치미는데 그 자리에서는 참았어. 다른 사람들도 있고 한데 거기서 큰 소리 나면 그렇잖아』라고 했다.
 
  『근데 집에 와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러면 우리 딸은 죽어야 옳고 자기들 손주만 살아야 된다는 말 아냐. 그것을 말이라고 하는 소린지, 원』
 
  딸의 장례식을 끝내고 친정어머니 李씨는 사돈 집으로 찾아갔다.
 
  李씨는 『나도 내 딸 중하고 당신네도 손주들 중하고 다 똑같은 입장인데 어떻게 그런 얘기를 하느냐』고 따졌다고 한다.
 
  『「어쨌거나 당신들이 못 도와주고 신랑도 못 벌어다 주니까 복잡하게 쪼여서 애가 이렇게 죽은 거지 달리 죽은 거요. 내가 몇 년을 두고 쌀이며 김치며 별거 별거 다 해다가 줘서 그걸로 먹고 살고 했는데, 명색이 시집 식구라는 사람들은 한 게 뭐가 있습니까. 원 세상에 아들이 살기 어려우면 가끔 한 번씩이라도 왔다 갔다라도 해보고 그래야지」 그렇게 한마디 했어. 딸애 시아버지가 얘기를 잠자코 듣고, 「미안하게 됐다」고 하데』
 
  사건 당일 오후 6시가 넘어서 친정어머니 李씨는 경찰에서 딸이 죽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인천에서 딸이 사느냐』고 묻는 경찰에게 李씨는 『큰딸도 살고 작은딸도 산다』고 대답했다.
 
  『딸 둘, 아들 하나 둔 딸이 있습니까』
 
  『예, 우리 막내딸네 애들이 그렇게 셋이에요』
 
  『사망했습니다…』
 
  친정어머니 李씨는 푸른 비닐자루 속에 담아 놓은 孫씨와 아이들의 사진을 와르르 마루에 쏟아 냈다.
 
  『내가 이거 다 태울라고 모아 놨는데』
 
  孫씨의 어릴 때 사진과 결혼식 사진, 특히 아이들 사진이 많았지만, 아빠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은 눈에 띄지 않았다. 올해 5월25일 안면도에서 찍은 아이들 사진도 있었는데, 막내 딸아이의 다리에 피부염이 심했다.
 
  『이 사진 좀 보게, 얼마나 탐스럽고 이쁜가. 요건 아들래미, 요건 큰딸래미, 이게 막내딸. 여기 큰아이 돌 때 찍은 사진이랑 결혼식 사진』
 
  『아이구, 세상에 아깝잖아. 이 아까운 새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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