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 1000만원 고소득자의 이해할 수 없는 범행
『그따위 도둑놈을 나라 망신시키려고 변호했구만』
아침부터 욕을 하는 전화가 줄줄이 쏟아졌다. 일본에서 다시 절도범이 된 大盜(대도) 趙世衡(조세형)의 변호사였던 나에게 쏟아지는 비난들이었다. 어떤 욕을 먹어도 마땅하다. 나는 거짓말쟁이였다. 나는 세상에 대고 혹독한 징역형을 31년째 살고 있는 한국의 장발장을 꺼내달라고 호소했었다. 국민들이, 그리고 해외 교민들이 눈물어린 뜨거운 성원을 보내주었다. 나의 거짓말로 인해 수많은 착한 사람들의 가슴에 상처를 준 대가를 꼭 치러야 하겠다고 나는 각오한다. 세상의 모든 비난과 욕설이 내게 떨어지기를 기도한다.
도대체 趙世衡이 도쿄에서 벌인 절도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돈이 궁한 것도 아니었다. 굳이 수입을 따지자면 한 달에 경비업체에서의 급료와 신앙간증비를 합쳐서 1000만원 가량을 버는 고소득자였다. 약간이지만 후원금들도 있었다. 나는 그의 절도를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지난해 결혼한 趙世衡의 아내가 사무실을 찾아와 이렇게 울먹였다.
『남편은 아들 필립이를 너무 사랑했어요. 아버지가 도둑놈이었다는 멍에를 아들에게 씌우지 않기 위해 먼 나라로 갔으면 좋겠다고 한 사람인데…』
나도 趙世衡에게서 그런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의 아내가 덧붙였다.
『돈이 필요하면 서울에서 당장 송금을 해줄 텐데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요?』
나는 駐日(주일) 한국대사관에서 일본경찰과 업무협조를 하는 김석기 대외협력담당관에게 연락을 해서 진실을 물어보았다.
『일단 남의 집에 들어갔던 사실은 맞는 것 같습니다. 첫번째 집에서 손목시계와 휴대용 라디오를 가지고 나왔다고 담당형사가 말해요. 본인도 경찰관에게 시인을 했답니다』
『趙世衡의 과거의 범죄수법을 보면 그런 걸 가지고 나올 리가 없는데요』
내가 물었다. 그는 총리집에 들어갔을 때 미술품을 봤어도 전문분야인 보석이 아니기 때문에 손도 대지 않았다는 사람이었다.
증거 확실하고 趙世衡 본인도 범행 시인
『첫번째 집은 큰 집이었어요. 그렇지만 일본에서는 집이 웅장해도 다 은행에 보관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을 수 있어요』
김석기 대외협력관의 대답이었다. 도쿄 시부야는 부자가 많이 사는 동네라고도 했다. 그러나 일본인은 현찰은 통장에, 보석같은 귀중품은 은행금고에 넣는 습성이있다고 했다. 두 번째의 의문은 그가 흉기를 경찰관에게 휘둘렀다는 점이었다. 그는 젊은 시절에도 절대 사람을 해치지는 않았다. 긴 드라이버 한 자루만이 유일한 그의 범행도구였다.
『조세형이 가지고 있던 흉기의 종류가 뭐라고 하던가요?』
『서바이벌 나이프라고 했어요. 그걸 들고 일본 경찰에 대항한 사실은 목격자가 여러 명 있어서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일본 경찰이 외국인에 대해 엉뚱한 혐의를 씌울 가능성은 희박했다. 남은 것은 趙世衡 본인의 범행시인 여부와 물증이었다.
『일본 경찰의 수사결과는 어떻습니까?』
내가 물었다. 지난해 11월24일 구속된 사건이면 사실상 수사가 종료되고 기소되어 재판을 기다리고 있어야 맞다.
『현장에서 가지고 나온 증거품들이 있고 흉기 소지가 인정되고 趙世衡씨 자신도 범행을 시인했습니다. 일본 법정에서 재판까지 받게 될 것 같습니다』
그 정도면 일단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았다. 다음으로 나는 도쿄에서 개업을 하고 있는 김성득 변호사에게 연락했다. 그는 在日교포로서 한국인 최초로 일본 사법고시에 합격한 사람이었다. 한국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판사임명이 거부되어 사회적 물의가 빚어졌던 주인공이었다. 그의 전망은 이랬다.
『일본 형사법정에서 절도범에 대한 刑은 무겁습니다. 피해가 경미하더라도 한국과는 달리 거의 다 무거운 실형이 나오는 게 일본 형사법정의 현실입니다. 게다가 그가 한국에서 大盜라고 불릴 정도로 전문성 절도범이라면 더욱 刑이 가중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경찰관에게 칼을 들고 저항한 죄도 있지 않습니까. 일본의 형사재판은 검사가 구형하는 형량의 80% 정도 실형이 선고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일본 변호사의 대답은 마치 수학문제를 푸는 학생처럼 분명했다. 동정이나 감정을 배제한, 변호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경찰과 친구의 극단적 인물평
大盜의 진짜 얼굴은 무엇일까. 최근 趙世衡과 가까이 했던 사람들의 인터뷰 기사가 중앙일보에 나왔다. 강력계 형사로서 趙世衡이 어릴 때부터 세 번을 체포해서 법망에 넣은 일이 있는 崔重洛 에스원 고문은 『열심히 살려고 했는데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30년 민완형사로서 그의 인간을 보는 눈길은 결코 녹록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한편 趙世衡과 함께 선교를 했다는 조영인 목사라는 사람은 『그의 신앙생활은 거짓이며 출소자들을 박대한 이중인간』이라고 말했다. 전혀 상반된 평가였다.
2년 전 趙世衡에 대한 변호를 할 때에도 그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여러 사람으로부터 다양하게 들려왔다. 다만 변호사의 입장에서 그것을 부각시킬 필요는 없었다. 당시 그를 조사한 형사들은 그의 인간성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담당검사는 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타고난 범죄인이더라고 했다.
경험을 해 보면 범죄인이라고 모두 인간성까지 나쁜 것은 아니었다. 범죄만을 보면 그는 나쁜 인간이다. 그러나 삶을 도화지에 비유한다면 범죄의 검은 한 점을 제외한 나머지 면은 아직도 그릴 여백이 많은 하얀 색인 경우도 많았다.
범죄인들을 대하다 보면 한 인간 안에 천사와 악마,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모자이크처럼 섞이지 않고 공존하는 것을 많이 느낄 수 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천사고 피해자에게는 악마였다. 잘해주는 사람에게 여자처럼 多感(다감)하고 그를 무시하고 적대하는 사람에게는 강한 투사이기도 했다. 나는 아직도 범죄인을 한마디로 정의하지 못한다. 그러나 趙世衡에게는 또 다른 면이 있었다. 그와 오랫동안 보석절도의 공범이던 사람은 그가 석방되기 전 내게 조용히 이런 말을 했다.
『프로에는 나이가 없습니다』
『프로의 세계는 나이가 없습니다. 저는 그가 또 도둑질을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 아니면 세상 사람들은 그걸 이해 못하죠』
묘한 예언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예를 하나 들었다. 오래 전 그가 조선호텔 레스토랑에서 趙世衡과 점심식사를 했다고 한다. 밥을 먹던 중 趙世衡이 말없이 잠깐 나갔다가 훔친 물건이 든 가방을 가지고 오더라는 것이었다. 그건 탐욕도 필요도 아닌 제3의 특질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趙世衡의 열린 마음과 인간성을 칭찬하며 눈물을 흘리고 갔다. 오랜 세월 공범이었던 친구의 평가는 이분법적으로 단정할 수 없는 인간의 다른 차원이었다.
나는 감옥 안에 있던 趙世衡에게 그 말을 전했다. 趙世衡도 자신에게 독특한 점이 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몸도 마음도 늙어 더 이상 범죄행위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만약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시 그런 기질이 발동됐을 경우는 늙은 좀도둑이 되어 개망신을 당하고 변호사인 나에게 불명예를 줄지도 모른다고 예언했다. 무심히 들어 넘겼던 그 예언이 어처구니 없이 적중한 상황이 되었다.
도대체 범죄라는 게 뭘까. 趙世衡의 절도의 동기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하고 있다. 법조생활 20년 동안 경험에 의하면 나는 절도는 질병이라고 생각한다. 돈 많은 주부, 부잣집 자식, 사회 명사 중에도 도벽을 가진 사람이 흔하다. 그들은 성공했을 때의 짜릿한 쾌감을 추구할 뿐 훔친 물건에 대한 만족도나 죄의식도 별로 없는 것 같다.
얼마 전 탈주범 신창원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수백 번을 남의 집에 들어가 물건을 훔쳤는데도 도대체 잘못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를 않아요. 왜 그렇죠? 정신과 의사가 물어보기에 솔직히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정신감정 결과에 나는 타고난 나쁜 놈이라고 썼다고 그래요』
신창원은 자기의 盜癖(도벽)을 양심이 마비된 병이라고 단정했다. 도벽이라는 균이 몸 속 깊이 숨어 있다가 언제고 적당한 환경만 되면 병이 드러나는 것 같다. 전과 20범의 소매치기를 변호한 적이 있었다. 그는 자기의 손목을 도끼로 찍어내지 않는 한 또 도둑질을 할 것이라고 법정에서 용감히 자백했다.
재판장은 그의 솔직한 점을 참회했다고 판단해서 과감히 석방했다. 몇 년 후 그는 버스 안에서 다시 소매치기를 하다가 검거됐다.
도둑질은 고질병
趙世衡이 아직 감옥 안에 있을 때였다. 나는 쟝주네의 「도둑일기」를 읽고 그와 대화를 가졌다. 도둑일기라는 책은 도둑의 시각과 관점에서 세상을 본 소설이었다. 전혀 다른 가치관의 세계였다. 도둑의 세계에서는 그 방면의 최고가 존경을 받았다. 능숙한 도둑일수록 자부심을 가졌다.
도둑질은 생리였으며 쾌감을 주는 삶의 방편이었다. 궁핍해서 하는 것도 아니었고 목적이 꼭 있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었다. 도둑질 그 자체가 가치의 중심에 있었다.
보통사람의 세계에서는 도둑질은 양심을 아프게 하는 괴로움이었다. 양심의 세계와 도둑의 세계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감옥에 있을 당시의 趙世衡 역시 도둑질은 깊은 질병이라고 표현했다. 고양이가 쌀을 보면 가만히 있어도 생선을 보면 본능적으로 덤벼드는 것을 그는 예로 들었다. 마찬가지로 보통사람은 아무리 많은 재물을 봐도 감각이 없는데 도둑병에 든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절도를 한다는 것이었다.
趙世衡이 석방될 당시 나는 이 사회에서 그의 범죄에 대한 억제동기는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절도범으로서 그 정도의 관심과 온정을 받은 사람이 드물었다. 그는 전국의 재소자들에게는 성공한 황제였으며 사회에서는 명사급이었다. 그런 강한 태양 아래서 절도라는 병균은 발호할 소지가 없다고 보았다.
인생의 5분의 3을 혹독한 징역형으로 보낸 趙世衡이 다시 범죄에 빠져들었다. 감옥은 그를 교화하지 못했다. 그러면 그를 맞은 사회와 교회는 어떠했나. 감옥에 있을 당시 내가 보았던 그는 100% 순도의 신앙인이었다. 믿음을 가진 그는 진실한 신앙인이라면 감옥 안에 있으나 밖에 있으나 자유로운 영혼에 차이가 없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굳이 사회에 나가길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제 할 말은 없게 됐지만 당시로서 그건 진실이었다고 지금도 확신한다.
나는 법정에서 당당하게 그의 再犯(재범) 가능성을 부인했다. 당시 再審(재심) 법정에서 나는 그가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될 때까지 돕겠다고 했다. 여기서 「정상적인 사회인」이라는 것은 내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趙世衡의 삶에서 시간이 정지됐던 31년의 징역생활을 빼면 그는 아직 미성년자였다. 그의 가치관 역시 아직 속칭 먹물세계의 것은 아니었다. 나이 먹은 어린아이가 어떻게 새 사람이 되는가는 나를 포함한 사회의 또 다른 몫이었다.
그러나 석방되는 날부터 그는 만들어진 영웅이 되었다. 언론이 취재경쟁을 벌이고 모든 교회에서 그를 탐냈다. 사업가들은 경쟁적으로 그에게 돈을 제시하며 접근했다.
그는 미국의 말콤 엑스처럼 되고 싶어했다
나는 그에게 강원도 산 속의 조용한 농원에 가서 얼마간 자기 정화의 시간을 가질 것을 권유했다. 또 金鎭洪 목사가 하는 두레마을로 데리고 가기도 했다. 노동의 의미를 알게 해주고 싶었다. 바로 사회로 뛰어들기보다는 일정한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는 그를 그냥 놔두지 않았다.
석방된 직후부터 그는 壇 위에 올라가 간증하기 시작했다. 감명받았다며 부추기는 신도에 둘러싸여 그는 준비 안 된 성직자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그를 유혹하는 타락한 종교 장사꾼들도 보였다. 趙世衡은 나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변호사인 나의 임무와 용도는 끝났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그가 「영혼의 도둑놈」이 되는 것이었다. 물건을 훔치는 것은 그래도 용서받을 소지가 있다. 그러나 사람들의 영혼을 훔쳐 그들을 타락하게 하는 거짓 선지자는 정말 나쁜 도둑놈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면으로 나는 그가 영혼도둑이 아닌 좀도둑 정도로 그친 것에 대해 마음 속 깊이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한다.
그는 언론의 주목을 받는 거물이 되었다. 정치인을 만나고 사회 저명인사들이 그를 대접해 주었다. 나는 그가 언론에 비친 그의 그림자의 크기만큼 자신을 평가하지 않았나 생각했다. 그는 인권운동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또 기독교도소의 설립에 참여하고 노숙자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별렀다. 그의 꿈은 세계적 인권운동가가 된 미국의 말콤 엑스였다.
나는 그에게 서울 면목동의 뚝방교회인 담안 선교회에 들어가라고 권한 적이 있다. 전과자들의 재생을 위한 그 시설은 가난하지만 겸손했다. 그러나 그는 거절했다. 이미 언론에 의해서 키워진 그의 뇌리에 그곳은 너무 초라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는 한 기업가의 후원금으로 광화문에 사무실을 차렸다.
다음부터 그에게 몰려든 부하들은 내 앞에서 그를 「회장님」이라고 불렀다. 이미 용도 폐기된 나는 먼발치에서 조심스럽게 그의 동향을 관찰했다.
전국에서 그의 도움을 요청하는 손길이 몰려들었다. 그의 주변에 모인 사람들 역시 그가 먹여살려야 되는 입장이었다. 그에게 부인이 생기고 아들이 태어났다. 화려한 명성만 있을 뿐 정작 그를 후원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는 종종 차라리 감옥 안에 있었던 시절이 훨씬 편했던 것 같다고 넋두리했다고 한다. 또 모든 사람들이 그를 이용하기만 하지 진정으로 도우려는 사람은 없다고 불평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8월 마지막으로 만난 자리에서 나는 그가 싫어하는 소리를 했다. 그에게 의심을 품고 있는 마음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나의 마지막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가 이사를 한 후 전화번호조차 내게 알려주지 않았다. 내가 사무실을 이전하고 그가 간부로 근무하는 경비회사에 안전시설을 신청했지만 간부였던 그는 연락 한 번 주지 않았다.
이후 그의 행방이 묘연해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11월경 그가 어디 있는지 찾았다.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막연히 외국에 갔다는 소문만 들었다. 나는 불안했다.
결국 나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변호사로서의 실망은 흔했다. 수없이 재판장에게 이 사람은 앞으로 절대로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다시 범행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항상 속고, 인간에 대해 회의하는 것이 변호사 직업의 본질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본 趙世衡의 장점만을 강조했다. 사람들은 그게 다인 것으로 착각했다. 죄인은 나였다. 상습범이 다시 재범을 한 것보다 변호사인 내가 그의 모습을 再창조한 죄가 더 크다. 나는 거짓말쟁이임을 고백한다.
善人, 惡人의 구별은 神의 영역
많은 분들이 내게 욕을 한다. 들어서 마땅하다. 그를 다시 변호할 것이냐는 질문도 나온다. 내가 그를 변호하게 된 동기는 고립무원의 극한 상황에서 그가 내게 간절하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기 때문이었다. 또다시 내가 속는 일이 있어도 나에게 뻗치는 그 손길을 냉정히 뿌리칠 용기는 아직 없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양쪽에 도둑이 있었다. 메시아 앞에서도 한 사람은 참회했고 다른 한 사람은 저주하며 죽었다. 인간을 분류하는 것은 神의 영역이라는 생각이다.
절도와 탈주죄로 오랜 징역을 산 장발장이 그를 따뜻하게 대해준 신부의 귀한 은촛대를 다시 훔쳤다. 법의 눈에 그는 은혜를 배반한 상습절도범이었고 신부의 눈에는 자기 죄를 알지 못하는 길 잃은 양이었다. 양쪽의 시각이 다 옳다. 그리고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수십 년의 혹독한 징역생활도 범죄를 저지르겠다는 마음을 가진 그 앞에서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따위 도둑놈을 나라 망신시키려고 변호했구만』
아침부터 욕을 하는 전화가 줄줄이 쏟아졌다. 일본에서 다시 절도범이 된 大盜(대도) 趙世衡(조세형)의 변호사였던 나에게 쏟아지는 비난들이었다. 어떤 욕을 먹어도 마땅하다. 나는 거짓말쟁이였다. 나는 세상에 대고 혹독한 징역형을 31년째 살고 있는 한국의 장발장을 꺼내달라고 호소했었다. 국민들이, 그리고 해외 교민들이 눈물어린 뜨거운 성원을 보내주었다. 나의 거짓말로 인해 수많은 착한 사람들의 가슴에 상처를 준 대가를 꼭 치러야 하겠다고 나는 각오한다. 세상의 모든 비난과 욕설이 내게 떨어지기를 기도한다.
도대체 趙世衡이 도쿄에서 벌인 절도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돈이 궁한 것도 아니었다. 굳이 수입을 따지자면 한 달에 경비업체에서의 급료와 신앙간증비를 합쳐서 1000만원 가량을 버는 고소득자였다. 약간이지만 후원금들도 있었다. 나는 그의 절도를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지난해 결혼한 趙世衡의 아내가 사무실을 찾아와 이렇게 울먹였다.
『남편은 아들 필립이를 너무 사랑했어요. 아버지가 도둑놈이었다는 멍에를 아들에게 씌우지 않기 위해 먼 나라로 갔으면 좋겠다고 한 사람인데…』
나도 趙世衡에게서 그런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의 아내가 덧붙였다.
『돈이 필요하면 서울에서 당장 송금을 해줄 텐데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요?』
나는 駐日(주일) 한국대사관에서 일본경찰과 업무협조를 하는 김석기 대외협력담당관에게 연락을 해서 진실을 물어보았다.
『일단 남의 집에 들어갔던 사실은 맞는 것 같습니다. 첫번째 집에서 손목시계와 휴대용 라디오를 가지고 나왔다고 담당형사가 말해요. 본인도 경찰관에게 시인을 했답니다』
『趙世衡의 과거의 범죄수법을 보면 그런 걸 가지고 나올 리가 없는데요』
내가 물었다. 그는 총리집에 들어갔을 때 미술품을 봤어도 전문분야인 보석이 아니기 때문에 손도 대지 않았다는 사람이었다.
증거 확실하고 趙世衡 본인도 범행 시인
『첫번째 집은 큰 집이었어요. 그렇지만 일본에서는 집이 웅장해도 다 은행에 보관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을 수 있어요』
김석기 대외협력관의 대답이었다. 도쿄 시부야는 부자가 많이 사는 동네라고도 했다. 그러나 일본인은 현찰은 통장에, 보석같은 귀중품은 은행금고에 넣는 습성이있다고 했다. 두 번째의 의문은 그가 흉기를 경찰관에게 휘둘렀다는 점이었다. 그는 젊은 시절에도 절대 사람을 해치지는 않았다. 긴 드라이버 한 자루만이 유일한 그의 범행도구였다.
『조세형이 가지고 있던 흉기의 종류가 뭐라고 하던가요?』
『서바이벌 나이프라고 했어요. 그걸 들고 일본 경찰에 대항한 사실은 목격자가 여러 명 있어서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일본 경찰이 외국인에 대해 엉뚱한 혐의를 씌울 가능성은 희박했다. 남은 것은 趙世衡 본인의 범행시인 여부와 물증이었다.
『일본 경찰의 수사결과는 어떻습니까?』
내가 물었다. 지난해 11월24일 구속된 사건이면 사실상 수사가 종료되고 기소되어 재판을 기다리고 있어야 맞다.
『현장에서 가지고 나온 증거품들이 있고 흉기 소지가 인정되고 趙世衡씨 자신도 범행을 시인했습니다. 일본 법정에서 재판까지 받게 될 것 같습니다』
그 정도면 일단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았다. 다음으로 나는 도쿄에서 개업을 하고 있는 김성득 변호사에게 연락했다. 그는 在日교포로서 한국인 최초로 일본 사법고시에 합격한 사람이었다. 한국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판사임명이 거부되어 사회적 물의가 빚어졌던 주인공이었다. 그의 전망은 이랬다.
『일본 형사법정에서 절도범에 대한 刑은 무겁습니다. 피해가 경미하더라도 한국과는 달리 거의 다 무거운 실형이 나오는 게 일본 형사법정의 현실입니다. 게다가 그가 한국에서 大盜라고 불릴 정도로 전문성 절도범이라면 더욱 刑이 가중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경찰관에게 칼을 들고 저항한 죄도 있지 않습니까. 일본의 형사재판은 검사가 구형하는 형량의 80% 정도 실형이 선고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일본 변호사의 대답은 마치 수학문제를 푸는 학생처럼 분명했다. 동정이나 감정을 배제한, 변호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경찰과 친구의 극단적 인물평
大盜의 진짜 얼굴은 무엇일까. 최근 趙世衡과 가까이 했던 사람들의 인터뷰 기사가 중앙일보에 나왔다. 강력계 형사로서 趙世衡이 어릴 때부터 세 번을 체포해서 법망에 넣은 일이 있는 崔重洛 에스원 고문은 『열심히 살려고 했는데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30년 민완형사로서 그의 인간을 보는 눈길은 결코 녹록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한편 趙世衡과 함께 선교를 했다는 조영인 목사라는 사람은 『그의 신앙생활은 거짓이며 출소자들을 박대한 이중인간』이라고 말했다. 전혀 상반된 평가였다.
2년 전 趙世衡에 대한 변호를 할 때에도 그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여러 사람으로부터 다양하게 들려왔다. 다만 변호사의 입장에서 그것을 부각시킬 필요는 없었다. 당시 그를 조사한 형사들은 그의 인간성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담당검사는 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타고난 범죄인이더라고 했다.
경험을 해 보면 범죄인이라고 모두 인간성까지 나쁜 것은 아니었다. 범죄만을 보면 그는 나쁜 인간이다. 그러나 삶을 도화지에 비유한다면 범죄의 검은 한 점을 제외한 나머지 면은 아직도 그릴 여백이 많은 하얀 색인 경우도 많았다.
범죄인들을 대하다 보면 한 인간 안에 천사와 악마,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모자이크처럼 섞이지 않고 공존하는 것을 많이 느낄 수 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천사고 피해자에게는 악마였다. 잘해주는 사람에게 여자처럼 多感(다감)하고 그를 무시하고 적대하는 사람에게는 강한 투사이기도 했다. 나는 아직도 범죄인을 한마디로 정의하지 못한다. 그러나 趙世衡에게는 또 다른 면이 있었다. 그와 오랫동안 보석절도의 공범이던 사람은 그가 석방되기 전 내게 조용히 이런 말을 했다.
『프로에는 나이가 없습니다』
『프로의 세계는 나이가 없습니다. 저는 그가 또 도둑질을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 아니면 세상 사람들은 그걸 이해 못하죠』
묘한 예언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예를 하나 들었다. 오래 전 그가 조선호텔 레스토랑에서 趙世衡과 점심식사를 했다고 한다. 밥을 먹던 중 趙世衡이 말없이 잠깐 나갔다가 훔친 물건이 든 가방을 가지고 오더라는 것이었다. 그건 탐욕도 필요도 아닌 제3의 특질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趙世衡의 열린 마음과 인간성을 칭찬하며 눈물을 흘리고 갔다. 오랜 세월 공범이었던 친구의 평가는 이분법적으로 단정할 수 없는 인간의 다른 차원이었다.
나는 감옥 안에 있던 趙世衡에게 그 말을 전했다. 趙世衡도 자신에게 독특한 점이 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몸도 마음도 늙어 더 이상 범죄행위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만약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시 그런 기질이 발동됐을 경우는 늙은 좀도둑이 되어 개망신을 당하고 변호사인 나에게 불명예를 줄지도 모른다고 예언했다. 무심히 들어 넘겼던 그 예언이 어처구니 없이 적중한 상황이 되었다.
도대체 범죄라는 게 뭘까. 趙世衡의 절도의 동기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하고 있다. 법조생활 20년 동안 경험에 의하면 나는 절도는 질병이라고 생각한다. 돈 많은 주부, 부잣집 자식, 사회 명사 중에도 도벽을 가진 사람이 흔하다. 그들은 성공했을 때의 짜릿한 쾌감을 추구할 뿐 훔친 물건에 대한 만족도나 죄의식도 별로 없는 것 같다.
얼마 전 탈주범 신창원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수백 번을 남의 집에 들어가 물건을 훔쳤는데도 도대체 잘못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를 않아요. 왜 그렇죠? 정신과 의사가 물어보기에 솔직히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정신감정 결과에 나는 타고난 나쁜 놈이라고 썼다고 그래요』
신창원은 자기의 盜癖(도벽)을 양심이 마비된 병이라고 단정했다. 도벽이라는 균이 몸 속 깊이 숨어 있다가 언제고 적당한 환경만 되면 병이 드러나는 것 같다. 전과 20범의 소매치기를 변호한 적이 있었다. 그는 자기의 손목을 도끼로 찍어내지 않는 한 또 도둑질을 할 것이라고 법정에서 용감히 자백했다.
재판장은 그의 솔직한 점을 참회했다고 판단해서 과감히 석방했다. 몇 년 후 그는 버스 안에서 다시 소매치기를 하다가 검거됐다.
도둑질은 고질병
趙世衡이 아직 감옥 안에 있을 때였다. 나는 쟝주네의 「도둑일기」를 읽고 그와 대화를 가졌다. 도둑일기라는 책은 도둑의 시각과 관점에서 세상을 본 소설이었다. 전혀 다른 가치관의 세계였다. 도둑의 세계에서는 그 방면의 최고가 존경을 받았다. 능숙한 도둑일수록 자부심을 가졌다.
도둑질은 생리였으며 쾌감을 주는 삶의 방편이었다. 궁핍해서 하는 것도 아니었고 목적이 꼭 있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었다. 도둑질 그 자체가 가치의 중심에 있었다.
보통사람의 세계에서는 도둑질은 양심을 아프게 하는 괴로움이었다. 양심의 세계와 도둑의 세계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감옥에 있을 당시의 趙世衡 역시 도둑질은 깊은 질병이라고 표현했다. 고양이가 쌀을 보면 가만히 있어도 생선을 보면 본능적으로 덤벼드는 것을 그는 예로 들었다. 마찬가지로 보통사람은 아무리 많은 재물을 봐도 감각이 없는데 도둑병에 든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절도를 한다는 것이었다.
趙世衡이 석방될 당시 나는 이 사회에서 그의 범죄에 대한 억제동기는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절도범으로서 그 정도의 관심과 온정을 받은 사람이 드물었다. 그는 전국의 재소자들에게는 성공한 황제였으며 사회에서는 명사급이었다. 그런 강한 태양 아래서 절도라는 병균은 발호할 소지가 없다고 보았다.
인생의 5분의 3을 혹독한 징역형으로 보낸 趙世衡이 다시 범죄에 빠져들었다. 감옥은 그를 교화하지 못했다. 그러면 그를 맞은 사회와 교회는 어떠했나. 감옥에 있을 당시 내가 보았던 그는 100% 순도의 신앙인이었다. 믿음을 가진 그는 진실한 신앙인이라면 감옥 안에 있으나 밖에 있으나 자유로운 영혼에 차이가 없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굳이 사회에 나가길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제 할 말은 없게 됐지만 당시로서 그건 진실이었다고 지금도 확신한다.
나는 법정에서 당당하게 그의 再犯(재범) 가능성을 부인했다. 당시 再審(재심) 법정에서 나는 그가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될 때까지 돕겠다고 했다. 여기서 「정상적인 사회인」이라는 것은 내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趙世衡의 삶에서 시간이 정지됐던 31년의 징역생활을 빼면 그는 아직 미성년자였다. 그의 가치관 역시 아직 속칭 먹물세계의 것은 아니었다. 나이 먹은 어린아이가 어떻게 새 사람이 되는가는 나를 포함한 사회의 또 다른 몫이었다.
그러나 석방되는 날부터 그는 만들어진 영웅이 되었다. 언론이 취재경쟁을 벌이고 모든 교회에서 그를 탐냈다. 사업가들은 경쟁적으로 그에게 돈을 제시하며 접근했다.
그는 미국의 말콤 엑스처럼 되고 싶어했다
나는 그에게 강원도 산 속의 조용한 농원에 가서 얼마간 자기 정화의 시간을 가질 것을 권유했다. 또 金鎭洪 목사가 하는 두레마을로 데리고 가기도 했다. 노동의 의미를 알게 해주고 싶었다. 바로 사회로 뛰어들기보다는 일정한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는 그를 그냥 놔두지 않았다.
석방된 직후부터 그는 壇 위에 올라가 간증하기 시작했다. 감명받았다며 부추기는 신도에 둘러싸여 그는 준비 안 된 성직자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그를 유혹하는 타락한 종교 장사꾼들도 보였다. 趙世衡은 나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변호사인 나의 임무와 용도는 끝났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그가 「영혼의 도둑놈」이 되는 것이었다. 물건을 훔치는 것은 그래도 용서받을 소지가 있다. 그러나 사람들의 영혼을 훔쳐 그들을 타락하게 하는 거짓 선지자는 정말 나쁜 도둑놈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면으로 나는 그가 영혼도둑이 아닌 좀도둑 정도로 그친 것에 대해 마음 속 깊이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한다.
그는 언론의 주목을 받는 거물이 되었다. 정치인을 만나고 사회 저명인사들이 그를 대접해 주었다. 나는 그가 언론에 비친 그의 그림자의 크기만큼 자신을 평가하지 않았나 생각했다. 그는 인권운동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또 기독교도소의 설립에 참여하고 노숙자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별렀다. 그의 꿈은 세계적 인권운동가가 된 미국의 말콤 엑스였다.
나는 그에게 서울 면목동의 뚝방교회인 담안 선교회에 들어가라고 권한 적이 있다. 전과자들의 재생을 위한 그 시설은 가난하지만 겸손했다. 그러나 그는 거절했다. 이미 언론에 의해서 키워진 그의 뇌리에 그곳은 너무 초라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는 한 기업가의 후원금으로 광화문에 사무실을 차렸다.
다음부터 그에게 몰려든 부하들은 내 앞에서 그를 「회장님」이라고 불렀다. 이미 용도 폐기된 나는 먼발치에서 조심스럽게 그의 동향을 관찰했다.
전국에서 그의 도움을 요청하는 손길이 몰려들었다. 그의 주변에 모인 사람들 역시 그가 먹여살려야 되는 입장이었다. 그에게 부인이 생기고 아들이 태어났다. 화려한 명성만 있을 뿐 정작 그를 후원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는 종종 차라리 감옥 안에 있었던 시절이 훨씬 편했던 것 같다고 넋두리했다고 한다. 또 모든 사람들이 그를 이용하기만 하지 진정으로 도우려는 사람은 없다고 불평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8월 마지막으로 만난 자리에서 나는 그가 싫어하는 소리를 했다. 그에게 의심을 품고 있는 마음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나의 마지막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가 이사를 한 후 전화번호조차 내게 알려주지 않았다. 내가 사무실을 이전하고 그가 간부로 근무하는 경비회사에 안전시설을 신청했지만 간부였던 그는 연락 한 번 주지 않았다.
이후 그의 행방이 묘연해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11월경 그가 어디 있는지 찾았다.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막연히 외국에 갔다는 소문만 들었다. 나는 불안했다.
결국 나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변호사로서의 실망은 흔했다. 수없이 재판장에게 이 사람은 앞으로 절대로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다시 범행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항상 속고, 인간에 대해 회의하는 것이 변호사 직업의 본질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본 趙世衡의 장점만을 강조했다. 사람들은 그게 다인 것으로 착각했다. 죄인은 나였다. 상습범이 다시 재범을 한 것보다 변호사인 내가 그의 모습을 再창조한 죄가 더 크다. 나는 거짓말쟁이임을 고백한다.
善人, 惡人의 구별은 神의 영역
많은 분들이 내게 욕을 한다. 들어서 마땅하다. 그를 다시 변호할 것이냐는 질문도 나온다. 내가 그를 변호하게 된 동기는 고립무원의 극한 상황에서 그가 내게 간절하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기 때문이었다. 또다시 내가 속는 일이 있어도 나에게 뻗치는 그 손길을 냉정히 뿌리칠 용기는 아직 없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양쪽에 도둑이 있었다. 메시아 앞에서도 한 사람은 참회했고 다른 한 사람은 저주하며 죽었다. 인간을 분류하는 것은 神의 영역이라는 생각이다.
절도와 탈주죄로 오랜 징역을 산 장발장이 그를 따뜻하게 대해준 신부의 귀한 은촛대를 다시 훔쳤다. 법의 눈에 그는 은혜를 배반한 상습절도범이었고 신부의 눈에는 자기 죄를 알지 못하는 길 잃은 양이었다. 양쪽의 시각이 다 옳다. 그리고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수십 년의 혹독한 징역생활도 범죄를 저지르겠다는 마음을 가진 그 앞에서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