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가장 오래된 "이촌동 아파트" 문화를 살펴 보니...

맨션, 타워, 시범, 시영, 시민, 공무원, 외인 등 각양각색의 아파트 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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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들섬과 이촌동 전경. 사진=서울역사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관장 최병구)은 강남이나 여의도보다 앞서 형성된 이촌동 아파트 단지의 역사와 다채로운 주거 형태를 담은 《아파트 마을, 이촌동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를 발간했다.


이번 조사에는 시범아파트, 맨션, 시영·시민·공무원·외인아파트 등 아파트의 '백화점'이라 불릴 만큼 다양한 유형이 공존했던 이촌동의 기록이 담겨 있다.

 

1. 2024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아파트 마을 이촌동 표지 .jpg

서울역사박물관이 펴낸 《아파트 마을, 이촌동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이촌동은 모래밭에서 일구어낸 새로운 땅이었다.


이촌동의 옛 지명 중 하나는 ‘옮길 이(移)’를 쓴 ‘移村洞(이촌동)’으로 한강의 홍수로 인한 잦은 이주를 경험한 동네라는 뜻을 담고 있다. 


본래 이촌동에는 사촌리, 신촌리, 신초리 3개의 마을에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었으나, 1925년 을축년 대홍수를 겪으면서 이촌동은 조선인 거주가 금지되고 폐동(廢洞)이 되었다.


해방 이후 모래밭은 대규모 정치적 집회의 장소로 활용되기도 했으나 용산과 접한 빈 땅에는 무허가 판자촌이 형성되고 한강의 수질과 환경은 급격히 훼손되었다. 

 

2. 1950년대 한강 변의 백사장 풍경(김구철 제공).jpg

1950년대 한강 변의 백사장 풍경(김구철 제공).

 

3. 1968년 여러 공사가 혼재된 동부이촌동의 모습(국가기록원).jpg

1968년 여러 공사가 혼재된 동부이촌동의 모습(국가기록원).

 

4. 1968년 서부이촌동 경관(서울기록원).jpg

1968년 서부이촌동 경관(서울기록원).

 

1966년 서울시, 한강매립공사를 최초로 완성


1962년 건설부는 한강 변을 매립하여 시가지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66년 서울시가 한강매립공사를 최초로 완성했다.

이듬해 67년 한국수자원공사는 자원 마련을 위해 한강 연안 매립사업을 시작하였고 첫 대상지로 이촌동을 선택, 10만 평을 개발했다. 그 탓에 이촌1동의 땅은 한강으로 불뚝 튀어나온 형태다.


최초의 중산층 고급아파트 / 시민, 시영, 시범 아파트 


1968년 대한주택공사(현재 LH공사로 통합)는 ‘하이츠’와 ‘맨션’ 같은 고급아파트의 개념으로 한강맨션을 계획하였다. 


성공적 분양을 위해 주공은 최초로 모델하우스를 도입하여 획기적으로 선분양을 시도하였다. 1971년 27~57평의 대형 아파트 660세대가 한강 변에 세워졌다. 현재 재건축의 막바지인 관리처분까지 진행된 상태이다. 


매립공사 이후 이촌2동(서부이촌동)은 서울시 공영주택 사업에 따라 15~20평 내외의 소형 평형의 중산, 시영, 시민 아파트가 건립되었다.


한강 변을 따라 줄지어 건설된 아파트는 저소득층의 주거 안정과 더불어 내부의 불량주택지를 가리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되었다

 

5. 1969년 조선일보에 게재된 한강맨션 분양광고(토지주택박물관).jpg

1969년 조선일보에 게재된 한강맨션 분양광고(토지주택박물관).

 

6. 1973년 로얄맨션 노선 상가(국가기록원).jpg

1973년 로얄맨션 노선 상가(국가기록원).

 

7. 1970년대 한강외인아파트 야외 수영장(대한주택공사).jpg

1970년대 한강 외인아파트 야외 수영장(대한주택공사).

 

하이브리드(hybrid)한 문화- 미국과 일본 문화의 혼재


이촌동에는 외인아파트가 있고, 미군 부대와도 가까워 해외 문화를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빠르게 접할 수 있는 동네였다. 미군 부대 PX에서 나온 햄버거와 피자 등의 먹거리를 쉽게 볼 수 있었으며, 미군에서 진행하는 카니발과 핼러윈 축제도 이촌동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신기한 풍경이었다. 


1980년대 도심과 가까운 안정적인 아파트 단지로 유일한 곳이 이촌동이었고, 일본인학교와도 인접해 이촌동에는 일본인을 비롯한 외국인이 다수 거주하였다. 자연스럽게 일본인의 커뮤니티가 조성되고, 일본인 대상 음식점, 병원, 부동산, 판매점 등이 생겨나 ‘리틀도쿄’라고 불릴 정도였다. 아직도 이촌동 지역 버스에서는 일본어 안내방송이 나온다. 


방송국이 있는 여의도와 가까웠고 외부와 단절되어 있어 조용히 살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이촌동은 형성 초기부터 현재까지 많은 연예인이 거주하고 있다. 한강맨션 1호 계약자인 강부자를 비롯하여 신성일, 엄앵란, 현미 등 1970년대 유명 배우 및 가수들이 살았다. 녹음시설로 유명한 서울스튜디오의 영향으로 가수 김현식 등도 잠시 거주하였고, 최근에는 아이돌 가수 장원영이 이촌동 출신으로 유명하다. 

 

8. 1970년대 동부이촌동 전경(대한주택공사).jpg

1970년대 동부이촌동 전경(대한주택공사).

 

9. 1980년대 동부이촌동 전경(국가기록원).jpg

1980년대 동부이촌동 전경(국가기록원).

 

아파트 씨족사회 


이촌동에는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40년 이상 거주하는 사람들이 특히 많다. 지형이 평지이기 때문에 노인과 아이들이 다니기 편리하고 한강과 마주하여 자연환경이 좋기 때문이다. 장기거주자와 친인척, 학교 동문, 각종 모임 등이 많아서 이촌동 사람들은 몇 다리만 건너면 서로를 알 수 있는 밀도 있는 관계망을 가지고 있다. 


지역 내 초·중·고등학교가 모두 1개씩이라 아이들과 학부모는 서로 아는 관계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주민들은 이곳을 ‘온 동네 CCTV’라고 부르며 아이 키우기 안전한 장소라고 생각한다. 반면 지역 내 주요 도로가 이촌로 뿐이기 때문에 사생활의 노출이 쉬워 주민들은 행동을 조심히 하면서 조용히 다니는 경향이 있다.


주민들이 직접 각본을 작성하고 기획과 연기를 하는 <마을극단>은 2018년 창단되어 매년 공연을 이어오고 있다. 올해는 이촌동 주민들을 인터뷰한 내용으로 극본을 집필하고 ‘안녕 동부이촌동’이라는 연극을 개최해 큰 호응을 얻었다. 지역 내 유일한 초등학교인 신용산초등학교 학부모들의 모임에서 출발한 <우리가족 고전읽기>는 가족 단위 독서 및 체험활동을 하는 소규모 모임이다. 이촌동 주민들은 ‘이촌동에는 고유한 향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동네의 애향심이 돈독하며 주민들이 주축이 된 다양한 주민자치활동이 많다.

 

10. 이촌로와 강변북로가 보이는 동부이촌동 전경.jpg

 이촌로와 강변북로가 보이는 동부이촌동 전경.

 

11. 강변북로가 보이는 서부이촌동 전경.jpg

강변북로가 보이는 서부이촌동 전경.

 

동부이촌동, 서부이촌동 두 마을(二村洞) 이야기


공유수면 매립공사 후 동부이촌동은 전체적인 택지개발을 시행하여 주거지와 학교, 기관 등 기반시설이 설치되었으나, 서부이촌동은 판자촌을 일부 철거하고 서울시 공영주택사업으로 아파트만 건립되어 생활에 필요한 편의시설을 갖추지 못하게 되었다. 


서부이촌동에는 학교도 없어 지역 내 학생들은 장거리를 통학하는 불편을 겪고 있다. 같은 이촌동이지만 상이한 개발단계를 거치면서 동부이촌동은 부촌으로 거듭났지만 서부이촌동은 개발이 지연된 오래된 아파트로 인해 거주환경이 낙후되면서 동·서부의 격차는 크게 나타나 한 마을이 아닌 두 마을이 되어 버렸다. 


최병구 서울역사박물관장은 “이촌동은 서울에서 가장 먼저 아파트 마을이 형성된 곳으로, 도시 개발과 주거문화 변화의 중요한 전환점을 보여주는 공간”이라며 “이번 조사를 통해 이촌동의 어제와 오늘을 함께 들여다보며, 서울이라는 도시의 또 다른 얼굴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14. 동부이촌동의 현재.jpg

 

15. 서부이촌동의 현재.jpg

 동부이촌동의 현재(위)와 서부이촌동(아래)의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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