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리뷰] 두 대의 피아노, 화려한 선율의 로맨틱

연세대 출신 ‘희연회’ 피아니스트들의 무곡(舞曲) 축제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

5월 26일 저녁 7시 30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아주 특별한 연주회가 시작되었다.

피아니스트 안희숙(安熙淑) 연세대 명예교수와 그 제자들이 결성한 ‘희연회’의 제15회 정기연주회였다. 연주회 타이틀은 <5월의 로망스>

 

희연회는 안희숙 교수의 ‘희’와 연세대의 ‘연’을 합쳐서 만든 피아니스트 사제(師弟) 동행 모임이다. 지금까지 14차례 연주회를 가졌는데 곡에 따라 ‘봄의 향연’, 어느 해는 ‘심포니의 밤’, 또 ‘춤곡의 향연’ 등 매번 변화를 주었다고 한다. 지난 14회 연주회 타이틀은 <앤조이 더 뮤직(Enjoy The Music)>이었다. 


올해는 피아노 듀오 공연. 평소 접하기 어려운 두 대의 피아노로 로맨틱한 감성과 서정적 풍취로 만춘(晩春)의 밤을 화사하게 그려냈다. 독주회에서 느끼지 못한 즐거움과 화려함, 여기다 학구적인 기교를 마음껏 발산시켰는데, ‘희연회’ 연주자들이 음악적 완성도를 위해 얼마나 머리를 맞대었는지, 땀을 흘렸는지 귀로 확인할 수 있었다.

 

기자는 피아노 듀오 연주를 평생 처음 들었다. 솔직히 귀가 얼얼했다. 몇 달 전부터 귀가 아파 치료를 받아온 터였다. 그런데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피아니스트들이 파워풀한 손놀림으로 관객의 귀를 잡아채며 어디론가 끌고 갔다. 귀가 떨어져나가는 줄 알았다. 아니, 성찬으로 귀를 굴복시켰다. 

이들은 쇼스타코비치, 피아졸라, 브람스, 구스타비노, 파야라는 이름의 최상의 보증서로 ‘5월의 로망스’를 완성했다. 이날 프로그램은 이랬다.


1.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1st. 신수연 2nd. 문정심

Concertino, Op.94 콘체르티노 작품번호 94


2. Astor Piazzolla (1921~1992) 1st. 주소영 2nd. 심윤선

Le Grand Tango 위대한 탱고 


3. Johannes Brahms (1833~1897) 1st. 이정수 2nd. 서현지

Hungarian Dance No.1, 4, 5 헝가리 무곡 1, 4. 5번 


4. Carlos Guastavino (1912~2000) 1st. 허태범 2nd. 이호정

Tres Romances Argentinos 세 개의 아르헨티나 로맨스

I. Las Niñas de Santa Fe 산타페의 소녀들

III. Baile en Cuyo 쿠요의 춤


5. Manuel de Falla (1876~1946) 1st. 임리라 2nd. 문현옥

El sombrero de tres picos 삼각모자

(transcribed for two pianos by M. Lourdes Pérez-Molina, 1996)

I. Fandango (Danza de la molinera 방앗간 안주인의 춤)

II. Seguidillas (Danza de los vecinos 이웃 사람의 춤)

III . Farruca (Danza del molinero 방앗간 주인의 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학구적이면서도 재미와 감동을 느끼게 한 연주였다. <헝가리 무곡>을 빼면 기자가 처음 듣는 곡이어서 낯설기는 했다. 그러나 독주보다 배려하고 서로를 다독이는 음악적 대화의 진정성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때로 소근소근 (음악적)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불 같이 화를 내며 건반을 부셔버릴 듯 싸웠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내면적 울림으로 서로를 다독이고 있었다. 객석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아마추어 평자 입장에서 몇 가지 지적하자면, 쇼스타코비치의 <콘체르티노 작품번호 94>는 첫 곡답게 화려했다. 한 연주자가 즐기는 듯 연주를 풀어가자, 다른 연주자는 전투적으로 건반을 윽박질렀는데 각자의 리드미컬한 연주가 조화를 이루었다. 기교적으로 대단히 훌륭했다.

 

피아졸라의 <위대한 탱고>는 엇박과 정박이 얽히는 기교적인 완성도가 높은 곡이었다. 두 명의 연주자가 초록색 드레스를 입었는데 특유의 강렬한 리듬 때문인지 이국적으로 느껴졌다. 나무랄 때 없는 완성도 높은 연주였고 듣는 내내 탱고의 정열을 떠올리게 했다.

 

이날 연주된 곡 중에서 <헝가리 무곡>이 가장 널리 알려진 포핸즈 곡이다. 느리고 우울한 느낌을 주다가도 격렬한 야성적인 리듬으로 객석을 휘어 잡았다. 이번 <5월의 로망스>를 가장 풍성하게 밝힌 보석이었다고 할까. 두 연주자의 드레스 역시 연주곡만큼이나 우아했다.

 

작곡가 구스타비노의 <세 개의 아르헨티나 로맨스>는 무척이나 달콤한 느낌을 주어서 다시 듣고 싶어졌다. 이 나라의 로맨스가 이처럼 말랑말랑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과장해서 덧붙이자면 <아르헨티나여, 울지 마오(Don't Cry For Me, Argentina)>를 듣는 듯했다. 안단테의 낭만적인 선율 때문이리라. 후반부에는 템포가 자주 바뀌며 밝고 경쾌한 느낌을 주었다.


파야의 <삼각모자>는 인상주의적인 색채가 짙은 난곡인데 경쾌한 춤곡으로 시작해 집시들이 추는 유쾌하고 분주한 느낌을 건반으로 완성했다. 발레를 떠올리게 만드는 기교적 완성도 때문일까. 현직 교수 피아니스트들의 연주 때문일까. 묘하게도 듣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면서도 연주가 끝나자 무언가 허전하다는 생각이 배가됐다. 봄 밤이 저무는 아쉬움을 상기시켰다.


연주회 후 안희숙 교수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 연주를 보고 들으며 눈물이 났습니다. 모두 최선을 다했고, 저마다 기량이 발전된 모습을 눈으로 귀로 확인하니 너무 고마웠어요.”


제자에 대한 짙은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기자는 안 교수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1. <5월의 로망스>를 두 대의 피아노 연주로 표현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2. 5곡 순서를 이처럼 배열한 이유가 무얼까요? 첫 곡을 쇼스타코비치, 마지막 곡을 파야로 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3. 피아니스트들의 드레스 색깔이 화려했어요. 연주곡에 드레스 색을 맞춘 걸까요?

4. 보시기에 가장 호흡이 잘 맞은 듀오는 누구입니까.


연주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든 생각을 질문으로 던져 본 것이다. 안 교수가 어떤 답을 할까. 

5월 27일 아침 8시가 되자마자 답이 왔다. 스승인 안희숙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5월의 로망스>는 어떤 곡을 의미하기보다 5월의 로맨틱한 밤에 연주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곡 순서는 선후배와 곡 성격 등을 고려해 정했는데 아무래도 봄밤에 관객이 즐길 수 있는 곡을 우선 고려했어요.

연주자들의 드레스는 개인의 기호에 맞게 정했다고 합니다. 다들 천사의 날개를 달았다는 느낌입니다.

가장 호흡이 좋았던 듀오가 누구냐고요? 모두 음감이 좋은 멤버들이라 호흡이 골고루 잘 맞았어요. 개인기, 그리고 음악적 차이는 좀 있겠지만 대체로 최선을 다하니 차이가 없었다고 봅니다. 

한 가지 더 말하자면, 관객이 젊어졌고 티켓이 일찍 매진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얼마나 희망적인가요?”

 

KakaoTalk_20210527_090512188.jpg

  • 스크랩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
많이 본 뉴스
  • 세계속 코이카'
  • 배진영의 '어제 오늘 내일'
  • 김태완 'Stand Up Daddy'
  • 권세진 ‘별별이슈’
  • 정혜연 ‘세상 속으로’
  • 박희석 ‘시시비비’
  • 이정현 ‘블루오션을 찾아서’
  • 박지현 ‘포켓 저널리즘’
  • 하주희 ‘블루칩’
  • 이경훈 현장으로’
  • 김광주의 뒤끝
  • 백재호의 레이더
  • 고기정의 特別靑春
  • 슬기로운 지방생활
  • 이상곤의 흐름
  • 서봉대의 되짚기
  • 국제상인 장상인의 세계, 세계인
  • 취재본부는 지금’
  • 조갑제 기자의 최신정보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