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선언에 왜 '해방'이란 단어가 들어갔을까?

'남북 대화의 산증인' 이동복씨 "’선언들‘과 ’해방‘은 사돈의 팔촌도 안 되는 다른 말"... 단순한 오타일 가능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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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이하 판문점 선언) 1조 1항엔 “남과 북은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의 원칙을 확인하였으며 이미 채택된 남북 선언들과 모든 ‘해방’들을 철저히 이행함으로써 관계 개선과 발전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나가기로 하였다”라고 적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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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언론들이 게재한 판문점 선언에 '해방'이라고 적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네이버 캡처

 
이 문장에 담긴 ‘해방’이라는 단어에 눈길이 갔다. 문맥상 해방이라는 단어가 부자연스러워 보였고, 어떤 면에서는 북한이 주장하는 ‘민족해방’을 연상시키는 단어였기 때문이다. 참고로 북한이 말하는 민족해방은 ‘미제(美帝)의 식민지인 남조선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적화)통일을 이뤄 남조선을 미제의 식민지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지난 28일(한국 시각) 미국 워싱턴에 머물고 있는 이동복씨에게 전화를 걸어 ‘해방’의 의미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이동복씨는 ‘남북 대화의 산증인’으로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만드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이씨는 ‘해방’에 관한 기자의 설명을 듣더니 “매우 이상하다”며 “오자일 가능성도 있다.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전제한 뒤 다음과 같은 요지의 설명을 했다.
 
<북한이 말하는 해방은 ‘반제민족자주 인민민주의 혁명’의 수행을 요구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반제’는 ‘반일’이고 ‘민족자주’는 ‘반미’이며 ‘인민민주주의 혁명’은 ‘공산주의 혁명’을 뜻한다. 북한은 소련의 지원으로 해방을 완성했고, 남한에선 미제의 반대로 미완성 해방이 됐다. (판문점 선언의 문맥으로 보았을 때) 해방이 완성된 북한과 미완성된 남한과의 합작을 통해 통일을 이루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이씨와의 통화 직전 이야기를 나눴던 전직 통일부 관계자도 ‘해방’이란 단어에 대해 “전형적인 북한식 용어”라고 설명해 주었다. 2008년 북한을 탈출했던 탈북자 한 명도 “나도 그 단어가 이상해 찾아보았다. 북한에서의 해방은 김일성 노선으로서의 해방, 즉 적화통일”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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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합의문 발표 직전인 27일 17시 32분에 받은 카카오톡에는 '해방'이라고 적혀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게재된 판문점 선언에는 ‘해방’이란 단어가 ‘합의’로 돼 있었다. 그렇다면 이동복씨의 말대로, 언론사에 판문점 선언 합의문이 배포될 때 합의라는 단어 대신 해방이 잘못 들어갔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기자가 합의문 발표 직전 받아본 카카오톡 원문(보도 제한인 ‘엠바고’가 걸려 있었음)에는 ‘해방’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를 근거로 또 다른 가능성을 제기한다면, 원래 ‘해방’이었다가 ‘합의’로 바뀌었을 수 있다는 추정도 가능하다.
 
이동복씨는 기자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와 '판문점 선언'의 영어 원문을 바탕으로 설명해 주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영어 원문은 다음과 같았다.
 
① South and North Korea affirmed the principle of determining the destiny of the Korean nation on their own accord and agreed to bring forth the watershed moment for the improvement of inter-Korean relations by fully implementing all existing agreements and declarations adopted between the two sides thus far.
 
이씨의 설명에 따르면 영어 원문엔 ‘declarations’라고 돼 있는데, 이는 ‘선언들’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해방’과는 그 의미가 한참 먼 단어다. 이씨는 “내가 보기엔 오자인 것 같은데, 오자일 경우엔 (정부에)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그러나 의도적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고 주장했다.
 
기자와의 통화가 끝난 후, 이동복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와 관련된 장문의 글을 남겼다(하단에 전문 게재). 기자는 청와대와 통일부에 왜 해방이란 단어가 들어갔는지 정확한 경위를 확인할 계획이다. 추후 해명이 나오면 정부 측의 의견을 반영한 기사를 게재할 예정이다.
 
글=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공동선언에 등장하는 ‘해방’이 무슨 뜻인가? 정부의 해명을 듣고 싶다
 
한글본의 ‘해방’이 영어본에서는 ‘declarations'로 되어 있었다. ’선언들‘이라는 것이다.
’해방‘과는 사돈의 팔촌도 안 되는 다른 말이다.
 
이동복  / 북한민주화포럼 대표, 전 국회의원

 워싱턴에 머물고 있는 필자가 27일 판문점에서 있었던 문재인-김정은 간의 남북정상회담 소식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인터넷으로 통해서였다. 그렇게 해서 필자는 이른바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 전문을 입수하여 읽어볼 수 있었다. 그렇게 하여 입수한 문제의 문건을 읽는 과정에서 필자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단어를 발견해야 했다. 1의 (1) 난의 “이미 채택된 남북 선언들과 모든 해방들을 철저히 이행”이라는 구절에 나오는 ‘해방’이라는 단어였다. 필자는 어안이 벙벙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해방’이라니…?
 
 대한민국의 경우 ‘해방’은 이미 1945년 8월 15일 일본제국이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한 시점에서 완성된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소위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에 이 단어가 등장하다니... 도대체 이것은 무슨 뜻인가? 
 
 그런데 이 의문은 북한의 시각에서 보면 설명이 불가능한 문제가 아니다. 북한의 경우는 우리와 완전히 다른 ‘해방’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전통적으로 일사불란하게 시종일관 견지하고 있는 통일철학인 ‘남조선혁명에 기초한 조국통일’ 이론에 의거하면 북한의 ‘해방’관은 우리와는 천양지차가 있다. 
 
 북한의 입장에서 ‘해방’은 ‘반제민족자주 인민민주주의 혁명’의 수행을 요구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반제’는 ‘반일’이고 ‘민족자주’는 ‘반미’이며 ‘인민민주주의 혁명’은 ‘공산주의 혁명’을 뜻한다. 이 같은 ‘해방’관에 입각하여 북한은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는 시점에서 남북한의 ‘조선민족’에게 요구되었던 역사적 과업은 “전 조선반도에서 문제의 ‘반제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의 수행”이었다.
 
 그러나 이때 북한 지역에서는 소련의 지원으로 이 ‘혁명’이 완수됨으로써 ‘해방’이 완성되었으나 남한 지역에서는 미국의 반대로 그 같은 ‘혁명’이 완수되지 못하여 그들이 말하는 ‘해방’이 ‘미완성’으로 방치된 가운데 일본을 대신하여 미국에 의한 새로운 ‘식민지’로 전락했다는 것이 북한의 주장이고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의 통일 과업은 ‘남조선 혁명’이라는 이름의 ‘반제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이 수행됨으로써 새로이 ‘해방’이 ‘완성’되는 남한과 이미 ‘해방’되어 있는 북한이 ‘합작’의 방법으로 이룩하는 통일이 소위 ‘평화적 방도에 의한 통일’이라는 것이 북한의 ‘평화통일’관이다. 
  
 이렇게 보면, 북한의 경우는 ‘해방’이라는 것이 1945년의 시점으로부터 73년의 시간이 경과한 지금도 아직 ‘완수’되어야 할 ‘미완’의 투쟁 과업이다. 그런데 이 같은 엉뚱한 ‘해방’관은 북한뿐 아니라 대한민국에서도 이를 신봉하고 추구하는 세력이 존재한다. 소위 ‘종북’ 세력이 그들이고 그 가운데서도 작년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국가정보원 개혁위원회’와 ‘개헌 추진위원회’ 같은 중요한 국정자문 기구의 위원장직을 맡았던 정00가 바로 그 같은 ‘종북’ 사관을 대표하는 학계 인물이다.
 
 지금은 이 같은 왜곡된 ‘해방’관을 소지하는 인물들이 문재인 정권 안에 대거 진입하여 청와대를 중심으로 국가 권력기관에 넓고 깊게 포진하여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 대표적 인물이 문재인 대통령을 보좌하는 임종석 비서실장이고 문 대통령 자신이 그 같은 사관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논란에 휩싸여 있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바로 이 같은 사정 때문에 27일 판문점에서 발표된 남북공동선언 문면에 문제의 ‘해방’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은 필자로서는 괄목 상대하지 아니 할 수 없었다. 도대체 이번에 발표된 문제의 공동선언이 그 같은 북한식 ‘해방’관에 기초한 것이라는 것인가?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바로 그 같은 북한식 ‘해방’관과 따라서 북한식 ‘통일’관에 입각하여 김정은과 대화하고 발표된 내용의 공동선언에 합의했다는 것인가? 필자의 머릿속이 복잡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당황한 필자는 황급하게 인터넷에 수록된 문제의 공동선언 영어본을 찾아보았다. 제목이 “Panmunjeom Declaration for Peace, Prosperity and Unification of the Korean Peninsula”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영어 번역본의 해당 대목은 한글본과는 다른 것이었다. 영어본에는 해당 대목이 “implementing all existing agreements and declarations adopted between the two sides thus far”로 되어 있었다. 한글본의 ‘해방’이 영어본에서는 ‘declarations'로 되어 있었다. ’선언들‘이라는 것이다. ’해방‘과는 사돈의 팔촌도 안 되는 다른 말이다. 이렇게 되면 도대체 이 같은 차이는 어찌 설명되어야 할 것인가 더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이 공동선언에 ‘해방’이라는 단어를 적어 놓은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남과 북 가운데 어느 쪽 사람인가? 어쩌면, 한글본의 ‘해방’은 ‘선언들’의 오타일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오타였다면 이 같은 중요한 국사 문건을 작성하고 감수하는 사람들이 도대체 정신을 어느 곳에 팔았길래 그 같은 중대한 오타가 발생했던 것이며 이 문건이 발표된 뒤에도 문재인 대통령 주변은 물론 정권 안의 어느 누구도 문건이 발표되고 이틀이 경과할 때까지 이 ‘오타(?)’를 발견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인가? 의문의 실타래는 풀리기를 멈추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한 가지 사실은 명백해 보인다. 이 공동선언이 작성되는 과정에서 최소한 초안을 만드는 데 관여한 남측 인사는, 그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남북관계를 생각하는 데 ‘해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데 생소한 느낌을 갖지 아니 하는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낮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것대로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가뜩이나 청와대 비서진 가운데는 임종석 실장을 필두로 왕년에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과 ‘친지김동’(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을 입에 달고 살았던 인사들이 십수 명에 이른다는 상황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의 ‘공동선언’ 가운데는 북한의 ‘남조선 혁명’론에 등장하는 어휘와 구절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예를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잇고 공동번영과 자주통일의 미래를 앞당겨 나갈 것” 운운
-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의 원칙” 운운
- “민족적 화해와 단합의 분위기를 고조시켜 나가기 위하여 각계각층의 다방면적인 
협력과 교류 왕래와 접촉을 활성화“ 운운
- “6.15를 비롯하여 남과 북에 다 같이 의의가 있는 날들을 계기로 당국과 국회, 정
당, 지방자치단체, 민간단체 등 각계각층이 참가하는 민족공동행사를 적극 추진하여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를 고조“ 운운
- “한반도에서 첨예한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전쟁 위험을 실질적으로 해소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 운운
-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안전한 어로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실제적인 대책” 운운
- “한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 운운
- “어떤 형태의 무력도 서로 사용하지 않을 때 대한 불가침 합의를 재확인하고 엄격히 준수” 운운
- “군사적 긴장이 해소되고 서로의 군사적 신뢰가 실질적으로 구축되는 데 따라 단계적으로 군축을 실현” 운운
- “정전협정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 운운
 - “정기적인 회담과 직통전화를 통하여 민족의 중대사를 수시로 진지하게 논의하고 신뢰를 굳건히 하며, 남북관계의 지속적인 발전과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향한 좋은 흐름을 더욱 확대해 나가기 위하여 함께 노력” 운운 
 
만약 문재인 정권이 이번 판문점 회담에 관한 국민적 의혹을 해소시킬 생각이 있다면 이상에서 제기된 궁금증에 대해 소상한 해명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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