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템플턴대학교 홈페이지.
유령학교 템플턴대大 사기사건, 미未인가학교 전문가 박OO와 정치권 낭인浪人 김OO의 합작품?
⊙ 미국에 사업자등록만 하고 “미국 주정부 인가 대학”, “2년만에 학사학위 취득” 등 허위 홍보
⊙ SNS와 인맥 통해 학생 모집, 등록금 300만~1200만원은 학장 소유업체 통장으로 입금받아
⊙ 등록금 받아 본인 대출금 상환하고 수입차(BMW) 리스, 쇼핑
⊙ 교수와 학생들에 “다른 학생 데려오면 (수익의) 20~30% 주겠다”
⊙ 학교에 의문 품는 사람들엔 정계와 관계 인맥 과시하며 위협… 인맥은 모두 허위로 드러나
⊙ 등록금ㆍ입학금ㆍ수료증비용 등으로 199명에게 받아 챙긴 금액만 17억원, 총 피해액은 집계중
1월 3일 ‘템플턴대학교’ 이사장과 경영학부 학장이 사기 및 고등교육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이사장 김모씨는 구속됐고 경영학부 학장 박모씨는 불구속기소된 상태다. 이들은 실체가 없는 대학 홈페이지를 만들고 2015년부터 학생을 모집, 정식 학위를 준다고 속여 199명으로부터 17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러나 학교측은 학생 수가 300명이 넘는다고 주장하고 있어 피해액은 더 클 가능성이 높다.
이름부터 그럴듯한 템플턴대학(Templeton University)은 홈페이지와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 등을 통해 “미국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인가한 대학이며 온라인 수업만으로 정식 학사 및 석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다” 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미 교육부에 이메일로 문의한 결과 템플턴대학은 미국 교육부장관 승인 기관은 물론 사립 고등교육승인위원회(CHEA)에서도 승인받은 바가 없다. 템플턴대의 전신(前身)격인 헨더슨크리스찬유니버시티(헨더슨신학교)도 마찬가지였다. 캘리포니아주에 ‘템플턴 유니버시티’라는 이름으로 개인사업자등록을 한 것이 전부다. 물론 한국학위든 미국학위든 학사 및 석박사 학위를 받을 수 없다. 글로벌시대에 이런 사기가 가능한 것일까.
취재 결과 템플턴대는 ‘미인가학교 전문가’인 박 학장과 지역 정치권에서 활동해 온 김 이사장의 합작품이었다. 이들은 2015년부터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인맥을 과시해가며 학위를 갈망하는 사람들을 속여왔다.
2016년 경찰이 수사 착수
이들의 사기 행각이 수면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2016년 6월 한 일간지가 ‘美에 유령대학 설립 한국인에 학위 사기’라는 기사를 보도하면서부터다. 기사는 “이들이 발급한 학위증서는 국내대학에 편입하거나 대학원 진학이 불가능한 수백수천만원짜리 휴지조각”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기사는 서울 템플턴대 직원으로 근무했다가 퇴사한 S모씨가 모임에서 만난 한 일간지 기자에게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이 시초였다. 해당 기자는 수 개월간 취재 끝에 템플턴대학이 미국과 한국 어느쪽에서도 인가받은 대학이 아니며 대학측의 이야기가 거의 모두 허위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보도했다. 학교명과 이사장, 학장 등의 이름은 익명처리된 채였다.
당시 기사를 접한 템플턴대 재학생들은 “우리 학교 이야기 아니냐”며 동요했지만, 박 학장과 김 이사장은 교수진과 학생들에게 “돈을 뜯어내려는 S씨의 근거없는 음해”라며 S씨에 대해 부정적인 소문을 퍼뜨리는 등 뒷수습에 나섰다. 이미 적지않은 등록금을 내고 학위증을 기대하고 있던 학생들은 박 학장과 김 이사장을 믿었고, 템플턴대 사건은 조용히 묻히는 듯 했다.
그러나 이 기사를 접한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가 조사에 착수했다. 수사대는 제보자 S씨로부터 자료를 건네받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피해현황을 조사했고, 사기사건으로 파악하면서 서울 서초경찰서에 이관해 수사에 들어갔다. 1년여에 걸친 수사 끝에 서초경찰서는 올해 1월 3일 김 이사장을 구속하고 박 학장을 불구속기소했다.
전직 유명 프로게이머도 당해
경찰이 조사한 템플턴대 피해 규모는 199명, 17억원이지만 실제 피해액은 훨씬 큰 것으로 학교 관계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피해자는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했는데, 그 중에는 유명 프로게이머(스타크래프트) 출신인 황희두 현 청년문화포럼 대표(28)도 있다.
그는 2015년 10월 템플턴대에 등록해 한 학기를 다녔고 대학을 상대로 등록금반환 민사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황 대표는 “배움의 기회를 놓치고 새롭게 배움의 길로 들어서려는 사람의 희망을 뺏는 이런 사건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씨와의 대화다.
-어떤 경로로 템플턴대에 등록하게 됐습니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프로게이머가 돼 활동하다보니 대학에 가지 못한 점이 아쉬웠습니다. 또 청년포럼을 시작하고 나니 경영이나 마케팅을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요. 그러던 중 2015년 10월 아버지(그의 아버지는 수필가이며 대한북레터협회를 창설한 황태영씨다)의 지인인 템플턴대 S교수가 아버지한테 들었다며 한 번 만나보자고 연락이 와서 강남에 있는 캠퍼스로 오라고 하기에 갔더니 박모 학장이 있었습니다. 박 학장은 미국 대학인 템플턴대가 온라인 수업으로 학위를 주고 1년 4학기제라 2년안에 학사학위를 받을 수 있다며 지금 4학기(10~12월)가 시작되니 바로 등록을 하라고 권유했습니다.”
-바로 등록하라고 할때부터 이상함을 느꼈군요.
“거기까지만 해도 몰랐는데 본인 인맥을 과시하면서 학위만 따면 교수자리도 줄 수 있다, 비슷한 상황의 다른 학생들을 데려오면 인센티브 20%를 주겠다고 하는데 미심쩍음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제 경력이 좋다면서 한 학기 등록금이 350만원인데 장학금 100만원을 줄 테니 250만원만 내면 된다고 빨리 등록하라고 재촉했습니다. 어쨌든 해보자 싶어 등록하고 한 학기를 다녔습니다.”
-수업은 어떻게 이뤄졌습니까.
“온라인 수업도 있었고, 일주일에 한 번은 강남 캠퍼스(사무실)에서 오프라인 수업을 했습니다. 같이 듣는 학생은 7~8명정도였고요.”
-결정적으로 문제가 된 점이 있습니까.
“등록금 계좌가 박 학장의 개인사업체(코니에반스) 계좌더라고요. 뭔가 이상하다 싶어 미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학교 주소와 전화번호를 주고 연락좀 부탁한다고 했는데 전화도 안 받는다 하고 주소는 어느 건물 사무실이라는 겁니다. 박 학장한테 주정부 인가학교가 맞느냐, 정식 학위가 나오는 게 맞느냐 등 질문을 했더니 저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고 면학분위기를 흐린다며 주변에 제 험담을 하고 다녔습니다. 사실 한 학기 등록금은 그냥 인생수업료다 생각하고 잊으려 했는데 제가 청년활동을 하다보니 이런 피해자가 더 나와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서 등록금반환소송도 내고 언론에 제보도 했습니다.”
-다른 학생들은 어떤 입장이었습니까.
“학장의 말에 넘어갔는지 제가 쓸데없는 문제를 일으킨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박 학장과 김 이사장은 황씨에게 “가만히 있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압박을 가했다. 김 이사장은 “자꾸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다니면 무고죄”라며 “내가 정치권에 인맥이 많으니 네가 나서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황씨를 압박했다.
![]() |
템플턴대측이 소개한 로고 |
김 이사장의 정치권 인맥은
1972년생(46세)인 김OO 이사장은 부산대 미대 출신으로 공식 프로필은 부산디지털대 겸임교수 한국성폭력예방협회 이사장 제19대 국회의원선거 예비후보자(민주통합당, 부산 연제)다. 또 한국미술심리치료협회를 만들어 회장직을 맡고 있다.
김 이사장은 민주당 중앙당 한 위원회의 부위원장을 지내고 총선 예비후보로 등록하는 등 등 정당 활동을 해왔으며 국민의당 출범 당시 발기인에 이름을 올렸고, 국민의당 부산시당 부대변인으로 임명받았다.
또 구속되기 전까지만 해도 지역 정가에서 활동하며 오는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부산 연제구청장 출마후보군에 이름이 오르내리기도 했다. 인터넷에는 김 이사장이 현 여당의 유력 정치인들과 찍은 사진이 적지 않다.
김 이사장은 템플턴대 홈페이지에 쟁쟁한 인물들을 교수진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천정배 국민의당 의원, 김민석 전 의원 등 유명 정치인들에 이름만 대면 알만한 학자, CEO, 방송인 등이 등장한다. 이들은 학교 홈페이지에 이름이 올라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거나 “가짜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는 반응이다.
템플턴대는 지난 대선에도 등장한다. 무소속 후보(기호 15번)로 출마한 김민찬 후보는 학력난에 템플턴대 상담심리대학원 상담심리학 박사 학위를 최종학력으로 게재했는데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고발당했다. 수사를 맡았던 서울북부지검은 김씨의 “정식 학위가 아닌지 몰랐다”는 진술을 인정해 ‘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다.
김 이사장은 템플턴대 교수와 학생들 앞에서 자주 정치권 인맥을 과시하곤 했다. 기자가 입수한 통화내역에 따르면 김 이사장의 이야기에는 “내가 국민의당 대변인인데”, “ OOO(정치인)가 자꾸 만나자고 해서” 등의 멘트가 등장한다.
김 이사장은 과거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던 적이 있고, 국민의당 입당 후에는 부산시당 부대변인으로 활동해 나름대로의 정계 인맥을 가진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 거물급 정치인과 연결된 인맥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김 이사장은 템플턴대 입학식과 학위수여식을 부산의 특급호텔인 롯데호텔에서 화려하게 개최하며 교수와 학생들의 환심을 사기도 했다.
![]() |
미 교육부는 템플턴대에 대한 이메일 문의에 '확인불가능한 미인가기관'이라는 답을 보내왔다. |
박 학장은 학교 전문가?
템플턴대 교무처장으로 일했던 손모씨는 “김 이사장만 구속됐지만 실제 주범은 박 학장”이라며 “박씨는 주정부 인가를 받지 않은 무인가학교라는 사실을 교수와 학생은 물론 함께 일하는 직원들에게도 철저하게 속여왔다”고 말했다.
-박 학장과 함께 일하게 된 계기는.
“제가 쭉 패션쪽에서 일해왔고 업계에 박OO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는데 어느날 SNS 메시지로 연락이 왔습니다. 만나보니 자신이 미국 대학교 학장을 맡게 됐다며 학교 일을 같이 하자고 했습니다. 처장 명함을 주고 연봉도 적지않게 주겠다고 해서 일하게 됐습니다.”
-그때는 무인가학교라는 사실을 몰랐습니까.
“미국 주정부 인가 대학이지만 온라인 대학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대학의 구조와 다르다며 박OO가 복잡하게 이야기를 하기에 그런줄 알았죠. 그런데 2016년에 이사장 김OO와 통화하면서 처음 알았습니다. 김OO가 저와 통화하면서 ‘좀있으면 주정부 인가도 받을건데 문제 일으키지말고 좀 기다려라’라고 하길래 이미 인가받았다고 주장한 박OO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부산이 주 무대인 김OO와 서울의 박OO는 언뜻 접점이 없어 보이는데요.
“2015년 초 두 사람이 의기투합했습니다. 목사인 박OO 아버지가 미국 무인가학교(헨더슨 신학교)의 임원으로 등재돼 있었는데, 박OO가 이를 이용해서 템플턴이라는 새로운 유령학교를 만들고 이를 김OO가 인수하는 형식으로 서로 윈윈하려고 한거죠. ”
-박OO가 무인가학교를 만드는 데 노하우가 있었군요.
“집안이 교육사업 방면으로 활동을 많이 했었던 것입니다. 그사람 말만 듣고 등록한 사람이 그렇게 많은 걸 보면 짐작이 가지 않습니까.”
박 학장, 김 이사장에 동업 제안
박 학장과 김 이사장은 2015년 초 만났다. 박 학장의 아버지는 개신교 목사로 기독교연합 임원을 지내고 각종 신학대학에서 교수로 일한 전력이 있으며, 뉴라이트전국연합에도 참여한 바 있다. 신학교의 행정부총장이었던 아버지로부터 학교 운영을 익힌 박 학장은 좀 더 큰 사업을 벌이기로 한다. 미국에 사업자등록을 하고 미국 대학교라며 사람들을 모아왔던 헨더슨 신학교 같은 새 학교를 만들기로 하고 동업자를 찾아나선 것이다.
부산에서 활동하던 김 이사장이 박 학장의 레이더에 포착됐다. 김 이사장 외에도 모 갤러리 관장 등 이런 학교에 관심을 갖던 인물이 있었지만, 박 학장은 지인에게 보낸 메일에서 “김 이사장이 정계 인사라 정보나 일터졌을 때 수습도 수월하고 이미 재미를 보고계셨기에 매출 만들어줘야하는 압박도 적다”고 김 이사장과 ‘동업’을 결정했다.
이후 김씨는 템플턴대 이사장으로, 박씨는 경영대 학장이라는 직책을 나눠갖고 동업을 하게 된다. 이들은 서울과 부산에서 각각 모집한 학생들의 등록금을 일정 비율로 나눠가졌다. 김 이사장은 박 학장이 아버지의 조언을 들어가며 실체가 없는 학교를 재주껏 운영해 나가는 능력에 호감을 느꼈고, 박 학장은 김씨의 정계 인맥에 높은 관심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이후 두 사람은 템플턴대 BI(brand identity:로고)와 홈페이지를 새로 만드는 등 본격적인 행각에 나선다.
![]() |
템플턴대가 모 인사에게 수여한 교수임명장 |
김 이사장과 박 학장은 인맥을 통해 “템플턴대 교수직을 주겠다”며 사람들을 끌어들였고, 교수직을 받아들인 사람들에게는 “학생을 데려오면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했다. 이들은 홈페이지에 미국 대학 건물 사진과 외국인 학생 사진들을 올리고 미국 교육부 및 캘리포니아 주정부 홈페이지와 각종 증서 등을 게재해 학생들을 현혹시켰다. 실제 템플턴대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진과 서류들이다. 일부 교수진이나 직원이 학교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면 업무에서 배제시키고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한편 당사자에게는 정계 인맥을 과시하며 위협했다.
등록금 받아 본인 대출금 상환하고 수입차 리스
경찰이 박 학장의 개인업체 계좌내역을 조사한 결과 박 학장은 등록금을 모두 이 계좌로 받아 같은 계좌에서 본인의 대출금 상환비용과 차량(BMW) 리스비용, 본인 월급을 지출했으며 그 외의 지출내역은 모두 박 학장의 식사 및 쇼핑과 관련된 사항이었다. 박 학장은 때때로 거액을 현금인출하기도 했는데, 이 비용이 어디에 사용됐는지는 경찰이 조사중이다. 경찰은 다른 지역에서도 같은 이름의 대학명을 이용해 학생을 모집하는 등 활동한 사람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조사에 나섰다. 김 이사장과 박 학장은 현재 고등교육법 위반과 사기죄로 기소된 상태다.
피해자들은 “최근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는 온라인대학도 많고 국내에서 해외대학 수업을 온라인으로 들을 수 있는 방법도 많은데, 이를 악용해 유령학교를 세우고 교육에 목말라하는 학생들을 현혹하는 사기꾼은 이 사회에서 근절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글=권세진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