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깃불

  • 이상흔 월간조선 기자 hanal@chosun.com
  • 업데이트 2003-03-30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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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중반 어느 날, 갑자기 이상한 복장을 한 여러 명의 어른들이 장화를 신고 우리집 안방으로 쳐 들어 왔습니다. 이들은 천정에 못을 박고 벽을 뚫고 하더니 무엇인가 설치를 하고는 사라 졌습니다. 그 날 이후 세상이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광창에 호롱불을 얹어 놓고 밤을 밝혔던 산골마을에 전기가 들어 온 것입니다. 지금이야 초를 아주 우습게 알아 하룻밤 촛불시위에 수만 개를 날려 버릴 정도가 되었지만, 1960년대까지만 해도 초는 아주 귀한 물건이었습니다. 웬만한 부잣집이 아니고는 매일 밤 촛불을 켠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촛불은 호롱불에 비해 몇 배나 밝습니다. 이렇게 초도 귀하던 시절 갑자기 전깃불이 들어왔으니 동네 노인들의 눈이 휘둥그레 질 만했을 겁니다. 전기가 들어온 후 동네 부잣집에서 TV를 들여 놓았는데, 밤이면 온 동네 사람이 몰려들어 마당에 멍석을 깔고 TV를 봤습니다. 당시에는 밖에 바람이 불고 이슬비만 내려도 정전이 되었습니다. 1980년 중반에 와서야 기술이 좋아 졌는지 왠만한 태풍이 와도 전기가 나가지 않았습니다. 또 5촉짜리나 30촉 전구를 쓰는 집이 많았는데, 이 싸구려 전구가 툭하면 나가서 아주 애를 먹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의 초가집도 걷어 내기 시작했습니다. 묵은 초가집을 걷어내면 지붕에서 뱀도 나오고 특히 굼벵이가 많이 나옵니다. 마당에 떨어진 굼벵이를 닭이 달려들어 신나게 쪼아 먹습니다. 어느 공무원의 아이디어인지 부근에 있는 하회마을은 초가집을 걷어 내지 않고 그냥 남겨 놓아, 오늘날 훌륭한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인가는 동네에 대형 마이크가 들어오더니 매일 아침마다 새마을 노래를 틀었습니다. 동네 어른들은 밤낮없이 곡괭이와 삽을 들고 길을 넓히고 수로를 만들고 상수도를 놓았습니다. 이렇게 단체 노동을 하는 것을 「부역」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점심도 지급되지 않는 완전한 무보수 강제 노역의 일종입니다. 부역이 폐지된 것은 1988년 전후로 기억합니다. 고대에는 부역이 세금처럼 부과되던 국민의 의무 중에 하나 였습니다. 부역의 역사는 거의 우리 역사만큼이나 길었지만 이때에 와서야 폐지되었던 것입니다. 온갖 험한 일을 겪어온 우리의 부모님 세대는 무보수의 부역을 당연한 의무인 줄 알고 숙명처럼 받아들였습니다. 삽과 곡괭이 하나로 몸이 부셔져라 일을 하여 우리나라를 일으켜 놓은 우리의 부모님 세대는 오늘날 지팡이 하나에 의지해 논둑길이나 걷는 촌로가 되어 사람들의 관심에서 밀려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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