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 속에 사라지는 지방 민속 문화재

  • 이상흔 월간조선 기자 hanal@chosun.com
  • 업데이트 2003-04-04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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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였습니다. 하루는 학교를 마치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오는 데 동네 입구에 있던 행상집(상여집)의 문이 열려 있고 안에 있던 행상(상여)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얼른 집으로 와서 어머니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동네 행상을 새로 장만해서 옛날 행상을 오늘 불태웠다』하는 것입니다. 『아뿔사, 하느님 부처님 맙소사...그걸 누가 태웠어요?』 아무리 후회해 봐야 행상은 이미 잿더미가 되어 있었습니다. 동네의 노인이 귀신 붙어 있는 옛날 행상을 태워버려야 마을이 평안하다며 태우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노인의 말이 곧 법인지라 아무도 대꾸를 못하고 행상을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새로 장만한 행상은 알루미늄으로 공장에서 찍어낸 것이었습니다. 불타버린 행상은 많은 사연을 간직한 행상이었습니다. 일제시대 말기, 동네에 행상이 없어서 마을 사람들은 초상이 나면 이만 저만 힘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거운 행상을 멀리 떨어진 이웃 마을에서 빌려와서 사용했는데, 사용하고 나면 사용료를 그 동네에 주어야 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대책을 논의 했습니다. 그래서 행상을 하나 마련하기로 결론을 냈지만 문제는 행상을 마련할 만한 돈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북과 장구, 징, 꽹과리를 메고 임시 광대패를 만들어 예천, 안동 일대 마을을 돌아 다니며 일종의 구걸 공연을 나섰습니다. 이렇게 여름 한철 내내 구걸 공연을 나선 끝에 겨우 행상 제작비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안동 풍산 어느 곳에 아주 기술 좋은 목수 할아버지가 살고 있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 노인에게 땅을 얼마간 사주고 행상 제작을 의뢰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이미 그 노인을 제외하고는 행상 제작을 할 줄 아는 사람이 귀했다고 합니다. 노인 혼자 여러 달 동안 매달려 행상을 제작했습니다. 행상을 가져 오는 날 동네에는 성대한 맞이 굿이 펼쳐 졌습니다. 행상의 위 부분은 각종 귀신과 호랑이를 탄 저승사자 등이 死者를 호위하고, 행상 네 귀에는 봉황이 하늘을 날고, 앞뒤에는 용이 여의주를 물고 용트림을 하는 그야말로 형용하기 힘든 아름다운 행상이었습니다. 비록 잿가루가 된 행상이지만, 불태워질 당시에도 충분히 사용 가능한 상태였습니다. 문제는 너무 무거웠다는 것입니다. 물론 시골에 젊은 사람들이 많았을 때는 무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노인들만 몇 명 겨우 남은 동네에서 이 무거운 행상으로는 장례를 치르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 했습니다. 결국 가벼운 몇 십만원짜리 알루미늄 행상을 하나 장만했으며, 고색창연한 행상은 불구덩이 속에 던져졌습니다. 이웃 동네는 우리 동네 행상보다 더 역사가 깊은 행상이 보관되어 왔으나, 어느 날 밤 도둑놈들이 트럭을 행상집 앞에 대 놓고 훔쳐 가 버렸습니다. 이렇게 하여 인근의 유서 깊은 행상 두 대가 사라 진 것입니다. 우리의 민속과 민속 문화재는 있을 때 잘 챙기지 못하면 없어진 뒤에 제 아무리 공부 많이 한 석박사들이 나와서 채집한다고 애써도 다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특히 물건의 형태로 된 민속 문화재를 채집할때는 언제, 어떻게, 누가, 어떤 환경에서 사용했는가 하는 배경 자료까지 충분하게 채집해 놓아야 의미가 있습니다. 서울의 학자들 손을 기다리기 전에 郡이나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사라지고 있는 자기 지방의 수많은 민속 문화재부터 빨리 수집 정리해 놓아야 합니다. 동네마다 주인없이 방치되어 허물어지는 수백년 된 고택과 농가, 각종 의식에 관계된 노래와 절차, 일제시대와 6.25를 겪은 노인들의 증언, 수많은 농기구와 지방 언어는 지금 아니면 보존의 기회를 영원히 잃어 버릴 지 모릅니다. 지자체는 군청의 무슨 소식지 하나 만드는 것이 급한 것이 아닙니다. 번거롭더라도 자기 행정구역의 시골 구석을 다니며 민속에 대한 채집 작업을 해 놓는 지자체 만이 21세기를 선도하는 지자체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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