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면 무너지는 무덤

  • 이상흔 월간조선 기자 hanal@chosun.com
  • 업데이트 2003-04-02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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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있을 때 어느 해입니다. 그 해 비가 많이 내렸고 일부지역에는 물난리가 났습니다. 그 폭우로 대구 인근 산간에 있던 많은 무덤이 무너지거나 훼손되었습니다. 산사태를 만나서 무덤이 쓸려 갔다면 모를까, 산 기슭에 멀쩡하게 있던 무덤이 비가 온다고 힘없이 무너지지다니... 저는 처음에 이해가 잘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노인의 장례식에 참석할 기회가 있어서 무덤 만드는 과정을 보고 무덤이 왜 그렇게 쉽게 무너지는 지 알 수 있었습니다. 요즘 시골에는 사람이 없어서 동네에 누가 죽으면 이웃 동네에서 인부들을 사와야 할 지경에 이르렀지만, 반대로 급격하게 도시화가 된 지역에서는 사람은 많을지라도 이웃끼리 서로 무관심하다 보니 인력시장에서 인부를 사와서 장례를 치르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일당 받고 급하게 조직된 인부들이라 상여소리를 비롯 뭘 하나 제대로 할 리가 없습니다. 그나마 장지부근까지는 영구차로 운반한 고인을 다시 상여에 옮겨 산소까지 이동하는 것을 보니 비록 도시에서 치르는 장례식이지만 가족들이 고인에 대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짧은 거리였지만 상여 없이 시신이 든 관을 메고 갈 수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장지에 가니 미리 포크레인이 와서 구덩이를 파 놓았습니다. 관을 땅에 묻자 포크레인이 흙을 쌓아 봉분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포크레인으로 뚝딱 뚝딱 두 번만 흙을 쌓으니 봉분이 완성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봉분 위에 올라가 형식적으로 몇 번 다지고 내려오자 포크레인이 봉분을 꾹꾹 눌러 다지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봉분에 떼를 입히자 무덤이 완성되었습니다. 이렇게 만든 무덤이라 겉보기에는 멀쩡하지만 제대로 다져지지 않아서 비만오면 쉽게 무너졌던 것입니다. 옛날의 무덤 만드는 과정을 살펴 보겠습니다. 하관을 하고 나면 「덜구지」가 이어 집니다. 덜구지란 무덤을 다지는 작업을 말합니다. 덜구지는 처음 관을 무덤에 넣고(혹은 관은 불태우고 시신만 넣는 경우도 많다) 흙을 평평하게 덮은 후부터 시작됩니다. 일꾼들은 빙빙 원을 그리며 소리에 맞추어 동시에 한 발을 앞으로 내어 무덤을 다지고, 다시 발을 바꾸어 다른 발로 무덤을 다져 나갑니다. 일꾼들이 무덤 주변에 총총히 원을 그려 둘러 싸고 발을 바꾸어 가며 무덤을 다지기 때문에 박자가 맞지 않으면 일의 능률이 없습니다. 덜구지는 또한 거의 한나절동안 이어지는 고된 작업이기 때문에 각 지방마다「덜구소리」가 잘 발달하여 이 소리에 맞추어 신나게 일을 합니다. 무덤 한 가운데 장대를 꽂고 「횃소리꾼(소리 먹이는 사람)」이 선창을 하면, 그 주변을 빙빙돌며 일꾼들은 뒷소리를 하면서 무덤을 다집니다. 앞 소리는 우리가 TV 등에서 주로 보는 「이제가면 언제오나」식의 노래이고, 뒷 소리는 지방마다 다르지만 「워어 덜구여!」하는 단순한 소리가 반복됩니다. 초반에는 느릿느릿 진행되던 덜구지 소리가 휴식 시간이 가까워 오면 매우 경쾌하게 변형됩니다. 선소리가 빨라지면 여기에 맞추어 일꾼들은 발놀림과 몸동작도 같이 빨라 집니다. 일을 마치기 마지막 몇 분간은 선소리하는 사람과 무덤 다지는 사람들은 거의 같이 노래를 부를 정도로 박자가 빨라 집니다. 우리 고향의 경우 덜구지 마지막 부분에 부르는 노래는 「에이용 소리」라고 해서 경북 북부 일부 지방의 노동요에서 발견되는 아주 독특한 형태의 소리입니다. 현재 중요 무형 문화재인 「예천 통명 농요」의 마지막 부분에도 이 「에이용 소리」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어쨌든 「에이용 소리」로 클라이 막스에 오른 덜구지 작업은 갑자기 「이히히히」하는 이상 야릇한 귀신 소리를 내면서 일꾼들이 일제히 흩어 지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덜구지 하던 일꾼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막걸리를 마시는 사이에 다른 일꾼들은 봉분에 다시 흙을 쌓기 시작하는데, 아주 간지러울 정도로 흙을 얇게 쌓은 후 다시 덜구지 작업에 들어 갑니다. 이런 식으로 흙을 한켜 올리고 다지고, 또 흙을 한켜 올리고 다지고 하는 작업이 어둑해 질 때까지 반복됩니다. 이렇게 만든 무덤은 요즘 포크레인으로 흙을 올린 무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합니다. 따라서 왠만한 폭우에 논 밭이 다 떠내려가도 무덤은 멀쩡하게 버티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무덤들이 수 백년이 지나도 봉분이 멀쩡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포크레인으로 흙을 올려 꾹꾹 눌러 놓은 무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무덤의 높이가 처음보다 낮아 지게 되며, 흙이 푸석하게 엉겨 있기 때문에 비가 조금만 와도 쉽게 무너 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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