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고향에는 아직도 머슴살이를 하는 노인이 있습니다. 지난 설 때 시골에 내려가서 이 노인이 길을 걸어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직까지 저 노인이 살아 있다니...』
기억 속에 까맣게 잊고 있던 노인이 길을 걷고 있는 것을 보고, 저는 그 노인이 처음 우리동네로 들어왔던 날을 생각했습니다.
제 기억에 이 노인은 제가 초등학교 4, 5학년일 때 우리 동네로 들어 왔습니다. 그때도 지금 살고 있는 주인 집의 머슴으로 왔습니다. 당시 노인의 나이가 50대 초반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금은 백발에 허리가 구부정한 것이 칠십대는 되어 보입니다.
우리는 지금은 노인이 된 이 사람을 「00아저씨」라고 불렀습니다. 장가를 간 젊은 청년들은 이 머슴 노인에게 높임말을 쓰지 않습니다. 결혼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흔히 머슴살이를 「남의 집 살이」라고 합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도시에 공장이 적었기 때문에 시골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특별히 할 일이 없는 한 동네에 머물며 농사를 지었습니다. 땅은 제한되어 있고 사람은 많으니 항상 가난한 삶이 이어졌습니다. 부모에게 물려 받은 재산이 없는 사람들은 천하 장정인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품을 팔러 다니거나 남의 집 살이를 하는 길 밖에 없었습니다.
신혼 살림에 젖먹이 마누라에게 맡기고 1년 혹은 3년, 심지어 10년 동안 남의 집 살이를 하는 경우도 흔했습니다. 머슴이란 비록 계약에 의해 주인집의 농사를 지어주는 신분이지만, 머슴살이는 사실상 종 살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머슴들은 아무리 날이 추워도 수 십리 산 길을 헤매며 나무를 한 짐씩 해와야 했고(1970년초반까지만해도 땔감을 한 지게 얻기 위해 깊은 산속까지 들어가야 했다), 꼭두새벽에 마당을 쓸어야 했으며, 저녁에는 새끼를 꼬아야 했습니다. 남편이 머슴살이를 하면 부인은 아이를 혼자 키우며 온갖 험한 일을 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일년 열 두 달 쉬지 않고 일을 하고 나면 품값으로 쌀을 몇 가마니를 받았다고 합니다.
물론 제가 위에서 말한 머슴 노인이 옛날 머슴들처럼 고강도의 육체노동을 하면서 머슴살이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갈 데 없는 노인은 이제 주인집의 가족과도 같은 존재일 것입니다. 어쨌거나 이 노인은 전통적 의미의 머슴으로서는 이 시대의 마지막 머슴일 확률이 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