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아지」란 단어를 이야기 하면서 고양이를 경상도 일부 시골에서는 「괴지」라는 옛말로 부르고 있다는 예를 들었습니다. 저에게는 무엇보다 이런 15세기 古語가 현대에서도 일상 용어로 그대로 쓰이고 있는 현실이 매우 경이롭게 보입니다.
저의 고향은 경북 예천입니다. 마을 가까운 곳에 안동 하회마을이 있습니다. 경북 내륙 지역에 속하는 이 지역은 전쟁 등으로 인한 대규모 인구 이동이 他 지역보다 비교적 적었던 곳입니다.
이런 이유때문인지 몰라도 이 지역에는 옛 우리말이 비교적 많이 살아 있습니다. 심지어 국어사전에 死語, 즉 「죽어서 쓰이지 않는 말」이라고 올라 있는 단어도 일상에 버젓이 쓰이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수천년 내려온 이 모든 말이 우리의 부모님 세대가 돌아가시는 순간 모두 사라 질지도 모릅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황(성냥), 정낭(화장실), 북선(이북), 강림도령(저승사자), 부루(상추), 무리(오이), 외(현재의 참외), 정지(부엌), 갈개(논의 경계), 아래(그저께), 낭끝(절벽), 아적(아침), 하마(벌써), 상기(아직), 삽작거리(대문밖), 횃소리꾼(상여소리꾼), 갗풀(플라스틱) 등등 수천 단어가 넘을 것입니다.
이런 일상용어 외에도 많은 농경언어가 우리의 부모님 세대와 함께 영영 사라 질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젊은 분들은 위에 나열한 단어 대부분이 매우 생소할 것입니다. 특정 지역, 그것도 일부 노인들이 사용하는 단어를 일부러 모아 놓았기 때문입니다. 아마 위에 나열된 이 단어들이 『특정지역에서만 사용하는 「사투리」이기 때문에 생소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나열된 단어 중에는 어느 지역만의 특정한 사투리도 있겠지만 (약간의 변형은 있을 지 몰라도) 조선시대에는 전국적으로 쓰였던 말이 상당수 있습니다.
「상기」란 말이 전국적으로 쓰였던 대표적인 옛말이 될 것입니다. 상기의 옛 형태는 「상긔」가 됩니다. 현재 이 말을 쓰는 시골 노인들은 「상구」, 「상기」 등으로 발음합니다.
우리 옛 시조에 「소치는 아이야 상기 아니 일었느냐」하는 시조가 있습니다. 저는 이 시조의 「상기」란 단어에 밑줄을 그어 놓고 무슨 뜻인지 물었던 시험 문제가 기억납니다. 이 말을 매일 쓰고 살았던 저에서는 상당히 웃기는 시험 문제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아침이란 뜻인「아적」도 전국적으로 쓰인 대표적인 옛말입니다.
위에서 말한 「부루」라는 것은 「상추」란 말입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어느 국어사전에서 「부루」를 「상추의 옛말, 死語」라고 기록해 놓은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상추보다 더 많이 쓰이던 말을 「죽은 말」이라고 기록해 놓았으니 기분이 영 좋지 않았습니다.
요즘에는 그나마 「부루」라는 말을 死語라고도 기록한 사전 자체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현재 저는 부루란 말이 전국적으로 쓰였던 고어였었는지, 혹은 경상도 북부 일부 지역에서만 쓴 독특한 방언이었는지 자세히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이 「부루」라는 말은 한 세기가 가기 전에 영원히 사라진 말의 목록에 오를 것이 틀림없습니다. 저의 고향을 한발자국만 벗어나면 도통 뜻이 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오이를 「무리」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발음은 「무우리」로 중간의 「우」자를 길게 뺍니다. 아직까지 어디에서도 들어 본적이 없고, 국어사전에서도 본적이 없는 이 단어가 어떻게 해서 저의 고향 좁은 지역에서는 오이를 뜻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는지 심히 궁금할 뿐입니다.
일본에서 오이를 「큐우리」라고 합니다. 저는 「큐우리」의 어원이 「무리」라고 믿고 있지만 발음상 우연의 일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에서 말한 「낭끝」은 가파르고 경사진 땅 즉 절벽을 뜻하는 말합니다. 「낭」자체가 절벽을 뜻하는 옛말입니다. 현대 표준말에서는 「낭+떨어지다」란 형태로 남아 「낭떠러지」란 말이 되었습니다.
「갗풀」이라는 말이 「플라스틱」을 뜻하는 말이 된 것은 재미 있습니다. 「갗」은 가죽의 옛말입니다. 밥알을 으깨어 풀을 만들면 「밥풀」이 되듯이 옛날에는 가죽을 끓여서 풀을 만들었나 봅니다. (가죽 풀을 만드는 과정을 잘 모르겠음.)
플라스틱에 불을 붙이면 진득진득 녹아 내리는 것이 한참을 잘 탑니다. 플라스틱 녹은 것이 굳으면 다시 딱딱해 집니다. 이런 플라스틱을 처음 본 사람들 눈에는 이것이 영락없는 「가죽 풀」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플라스틱을 일컫는 말이 「갗풀」이 된 것 같습니다.
이땅에 수 천년 내려오던 농경 언어 역시 대부분이 일본식 한자어로 교체되었거나, 사라지고 있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위에 말한 「갈개」란 말은 「논의 높낮이가 달라 물을 고르게 댈 수 없을 때, 높은 곳과 낮은 곳의 경계를 짓기 위해 임시로 만든 낮은 경계둑」이나 「물을 빼기 위해 얕게 판 도랑」을 의미합니다. 얼마나 더 살아 있을 지 모를 단어 입니다.
일반 용어 뿐 아니라 動詞(동사)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못자리에 있는 모를 논에 심기 위해 뽑는 작업을 「모를 찐다」라고 표현합니다. 모를 심기 전 써레질로 논을 평평하게 하는 작업을 「논을 삶는다」라고 합니다. 소가 뿔로 사람이나 물건을 들이 받는 것을 「소가 뜬다」라고 합니다. 농요 등을 부를 때 후렴 前에 先唱(선창)을 하는 것을 「소리를 먹인다」라고 합니다. 키질로 쭉정이를 걸러내는 작업을 「까분다」라고 표현합니다.
농경언어는 이처럼 각각의 행위나 名詞에 특정 動詞(동사)가 따라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행동을 하는 주체나 동작을 하는 행위 자체가 사라지면서 뒤따라 붙는 동사도 생명을 잃고 맙니다. 현재 지방 말은 젊은 세대가 없어서 계승되지 않고 있습니다. 쓰지 않는 말의 다음 단계는 死語가 되는 것입니다. 부모님 세대와 함께 사라질 운명을 지닌 말을 보고 있자면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