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의 굴욕을 되새기는 시간
- 할아버지와 손자가 함께하는 문화유적답사
마음속으로 봄을 그렸다.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고 만산이 진달래꽃으로 뒤덮이는 봄날 나는 초로에 접어든 집사람의 손을 잡고 다시 찾아오리라고 마음먹었던 코스였다. 남한산성을 몇 번 와 봤지만 이 길은 처음이었다. 봄기운이 완연했건만 아직까지 이렇게 눈이 많은 걸 보면 겨울이 그리 빨리 물러갈 것 같지 않다. 그러나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이 온다는 말이 있듯이 봄은 틀림없이 올 것이다.
(한봉 능선위로 뻗은 성벽길을 지나 벌봉 봉암성을 오르는 등산인들)
집에서 나와 전철을 타고 강변역에 내려서 광주행 시내버스를 타고 온고개에서 내렸다. "실버 산행 코스로 서울 근교에서 이만한 곳이 어디있겠느냐" 추천을 거듭했던 서립규씨(63,우림콘크리트 사장)가 앞장섰다. 핸드볼협회 회장과 한국산악회 부회장을 역임한 서 사장은 고등학교 때부터 핸드볼 선수생활과 등산을 해서인지 나이에 비해 훨씬 젊어 보인다. 남들이 다하는 골프도 치치 않고 오직 등산만을 고집해온 그는 시간만 나면 혼자서 아차산을 오르거나 이곳 엄미리~봉암성~남한산성 코스를 오르내린다고 한다. 우선 등산인들 발길이 뜸해서 조용하고 한적할 뿐만 아니라 힘들지 않고 편히 오를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산성하면 생각나는 분이 있다. 고등학교, 대학교 대선배이자 역사학자이신 김성호(63, 전 용산공고 교사)선생님이신데, 이분도 함께 나섰다. 정년 퇴직을 하시고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전국의 산성을 조사하고 계신 분이다. 또 한 분은 불러만 주신다면 언제나 취재 산행에 따라나서겠다는 산악인 강영환씨(40,웅비상사 사장, 경기 산우회 등반대장). 봄의 문턱에 어이없게 내린 폭설을 헤쳐 나아가느라 연신 숨을 몰아 쉰다.
백제 축성설이 유력
(북문 못미쳐 동장대 터의 암문)
남한산성은 경기도 하남시와 성남시, 그리고 광주군이 서로 경계를 맞대고 있다. 사시사철 수도권 시민들이 산책과 하루산행지로 인기를 끄는 산이다. 남한산성 등산로는 여러 가닥이 나 있다. 실버산행 코스로 이미 남문-검단산(532.7m)-이배재 코스와 북문-금암산(317.3m)-이성산 종주 코스가 있다. 이번에는 남한산성 동쪽 산줄기를 타고 벌봉(539m)-봉암성으로 해서 남한산성을 오르는 코스를 답사했다.
언제나 그러하듯 남한산성을 일주나 종주 등산하기 좋은 것은 무엇보다 교통이 편리해서다. 남한산성은 동서울 강변역에서 광주를 오가는 시내버스를 타거나 전철로 성남시 산성역에서 내려 산성행 시내버스를 타면 된다. 승용차를 갖고 가기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아무 불편이 없다.
오르는 길도 평탄해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자 손녀의 손을 잡고 온가족이 같이 올라 갈 수 있다. 친구들과 능선을 따라 축성된 산성을 밟으며 시간의 무게와 성에 얽힌 지난 날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걷다보면 즐거운 산행이 된다.
10여 년 전부터 밝혀지지 않은 전국의 산성들을 찾아내고 실측하고 내력을 조사하고 계신 김성호 선생은 이렇게 설명하신다.
" 남한산성을 신라 문무왕(672년) 때 쌓은 토성이었다고 하는 주장이 있으나 원래 백제가 쌓은 성입니다. 백제 개로왕 때 (475년) 고구려에 패하고 나서 충남 공주로 천도를 하기 전까지 한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480년이 넘게 지내는 동안 남한산성은 백제의 도읍지를 지키는 큰 성이었습니다. 남한산성은 이처럼 삼국시대 때부터 있던 토성이었습니다."
남한산성하면 조선시대 병자호란 때 청나라 장수 앞에 무릎을 꿇고 항복했던 인조의 초라한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군신의 관계를 유지할 것을 주장하는 후금(後金)의 위협이 두려워 광해군 13년(1621년)에 남한산성을 경도보장지(京都保障地)로 정하고 토성을 석성으로 개축하기 시작했다.
팔도의 승군까지 동원하여 2년만인 1626년 남한산성을 완공했다. 1636년 인조 14년 병자호란 때 눈이 많이 내려 미처 남한산성을 떠나지 못한 인조가 이곳에서 45일 동안 버티다가 할 수 없이 지금의 송파구 삼전도에 나가 청나라 장수에게 무릎을 꿇고 항복하고 말았다.
벽수골 길은 남한산성 옛길
(남한산성의 외성인 벌봉 봉암성)
" 저기 벌봉에서 청나라 군사가 진을 치고 코앞의 남한산성 안을 살폈다고 합니다. 남한산성의 외성이기도 한 벌봉의 봉암성은 호란이 끝난 후 숙종 12년(1681년)에 부윤 윤지선을 시켜 쌓은 성입니다. 둘레 1,142.8m의 봉암성에는 암문이 4군데, 포대가 15군데, 여첩(女堞-몸을 숨기고 활을 쏘는 구멍이 뚫린 담)을 294군데 설치하여 본성인 남한산성을 더욱 확고히 지키도록 한 것입니다."
봉암산성을 쌓게 된 동기다. 남한상성은 얼른 보기에 많이 퇴락해 보이지만, 조선조 말 순조 때까지 군사들이 상주하고 성을 새로 쌓거나 보수해왔다. 그동안 내버려둔 외성인 봉암성과 옹성들은 무너져 내린 곳이 많아 보기에 안쓰럽다.
남한산성은 차를 타고 올라가기 보다는 산줄기를 타고 걸어서 올라가 북문이나 남문으로 내려오는 것이 좋다, 예순, 아니 지금은 쉰만 돼도 인생의 내리막길을 걷게 된 세상이다. 산에서라도 새로운 각오로 오르고 올라보자.
전국 어디를 가나 산천의 뼈대는 굳세게 뻗어 있지만 우리 민족은 어이 된일인지 오천년 동안 끊임없이 굴욕적인 역경을 겪어야만 했는가 되새기는 시간도 가져본다. 이 코스를 소개한 서립규 사장의 말처럼 문화유적 답사를 겸한 실버산행코스이자 가족산행코스로 전국 어디를 뒤져봐도 이만한 곳은 드물 것이다.
산행 길잡이
엄미리-봉암성-남한산성 코스는 은근 슬쩍 넘어간다는 은고개부터 시작된다. 엄미리 벽수골 길을 따라 가다보면 대문에 출입금지 플래카드를 달아 놓은 집 못미처 양지바른 언덕에 노인 내외가 빈대떡 등 간단한 음식과 커피를 파는 초막집(일막 막장집) 뒤뜰에서 시작된다.
(성벽을 따라 이어진 남한산성 일주 등산로)
지금처럼 교통이 발달되지 않은 시절 엄미리 아이들은 산성리에 있는 초등학교를 다녔다. 이들의 통학로가 바로 등산로다, 막장집에서 산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켜다란 묘원을 지난다. 여기서 곧바로 능선을 따라 올라가면 봉암성이다.
그러나 묘원에서 왼쪽으로 난 산길로 들어선다. 굴참나무들이 늘어선 평탄한 숲길이다. 작은 계곡을 3번 건넌다. 첫 번째 계곡에는 엄동설한에도 얼지 않는 샘도 있다. 조금 가다보면 능선을 따라 쌓은 성터가 보이기 시작한다. 봉암성에서 한봉까지 뻗어나간 외성이다. 엄미리에서 올라오는 길목을 지키는 성이다. 옛날에는 지금의 광지원에서 남한산성으로 가는 길보다 이 벽수골 길로 많이 다녔다고 한다. 우리가 오른 등산로는 남한상성의 옛길이다. 암문이 나타나면 동문으로 가는 큰골로 내려서기보다 다시 성터 길을 따라 봉암성으로 올라간다. 봉암성을 둘러보고 성벽 위로 난 길을 따라 북문이나 서문으로 입성을 한다.
(무릎까지 빠지는 폭설이 내린 큰골 계곡)
여유가 있으면 내처 남문까지 가도 좋다. 절경을 보면서 가는 능선길이 아니더라도 성을 따라 걷는 등산이여서 지루하지 않다. 발길에 허물어져 가는 성돌이 떨어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디뎌야 한다. 2,3시간이면 남한산성 안의 산성로터리에 닿을 수 있다.
(봉암성 암문에서 만난 서울大 공대 OB산악부 회원들)
이번에는 실행에 옮기지 못했지만 다음 번에는 은고개에서 곧바로 능선을 타고 301m봉-351m봉-벌봉을 거쳐 남한산성으로 입성하는 종주산행을 시도하려고 한다. 야트막한 능선이어서 그런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교통
(엄미리 천하여장군 장승/큰골 우뚝산장 산닭.한방오리탕)
서울서 갈 경우 전철 2호선 강변역에서 천호동-명일동-상일동-황산(신장)-상산곡동-은고개-광지원-광주행 13번, 13-2번 시내버스를 이용해 은고개에서 내린다. ( 요금 1,000원). 남한산성 안에서 서울로 돌아올 때는 산성로터리에서 15-1번 버스를 타고 광지원으로 가서 13번, 13-2번을 이용한다.
산성로터리에서 성남시를 거쳐 서울로 돌아올 때는 남문-남한산성 유원지-성호시장-모란시장을 왕복하는 9번 버스를 탄다. (30-40분 간격으로 운행, 전철 산성역까지 요금 900원).
(한봉 능선위로 뻗은 성벽길을 지나 벌봉 봉암성을 오르는 등산인들)
집에서 나와 전철을 타고 강변역에 내려서 광주행 시내버스를 타고 온고개에서 내렸다. "실버 산행 코스로 서울 근교에서 이만한 곳이 어디있겠느냐" 추천을 거듭했던 서립규씨(63,우림콘크리트 사장)가 앞장섰다. 핸드볼협회 회장과 한국산악회 부회장을 역임한 서 사장은 고등학교 때부터 핸드볼 선수생활과 등산을 해서인지 나이에 비해 훨씬 젊어 보인다. 남들이 다하는 골프도 치치 않고 오직 등산만을 고집해온 그는 시간만 나면 혼자서 아차산을 오르거나 이곳 엄미리~봉암성~남한산성 코스를 오르내린다고 한다. 우선 등산인들 발길이 뜸해서 조용하고 한적할 뿐만 아니라 힘들지 않고 편히 오를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산성하면 생각나는 분이 있다. 고등학교, 대학교 대선배이자 역사학자이신 김성호(63, 전 용산공고 교사)선생님이신데, 이분도 함께 나섰다. 정년 퇴직을 하시고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전국의 산성을 조사하고 계신 분이다. 또 한 분은 불러만 주신다면 언제나 취재 산행에 따라나서겠다는 산악인 강영환씨(40,웅비상사 사장, 경기 산우회 등반대장). 봄의 문턱에 어이없게 내린 폭설을 헤쳐 나아가느라 연신 숨을 몰아 쉰다.
백제 축성설이 유력
(북문 못미쳐 동장대 터의 암문)
남한산성은 경기도 하남시와 성남시, 그리고 광주군이 서로 경계를 맞대고 있다. 사시사철 수도권 시민들이 산책과 하루산행지로 인기를 끄는 산이다. 남한산성 등산로는 여러 가닥이 나 있다. 실버산행 코스로 이미 남문-검단산(532.7m)-이배재 코스와 북문-금암산(317.3m)-이성산 종주 코스가 있다. 이번에는 남한산성 동쪽 산줄기를 타고 벌봉(539m)-봉암성으로 해서 남한산성을 오르는 코스를 답사했다.
언제나 그러하듯 남한산성을 일주나 종주 등산하기 좋은 것은 무엇보다 교통이 편리해서다. 남한산성은 동서울 강변역에서 광주를 오가는 시내버스를 타거나 전철로 성남시 산성역에서 내려 산성행 시내버스를 타면 된다. 승용차를 갖고 가기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아무 불편이 없다.
오르는 길도 평탄해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자 손녀의 손을 잡고 온가족이 같이 올라 갈 수 있다. 친구들과 능선을 따라 축성된 산성을 밟으며 시간의 무게와 성에 얽힌 지난 날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걷다보면 즐거운 산행이 된다.
10여 년 전부터 밝혀지지 않은 전국의 산성들을 찾아내고 실측하고 내력을 조사하고 계신 김성호 선생은 이렇게 설명하신다.
" 남한산성을 신라 문무왕(672년) 때 쌓은 토성이었다고 하는 주장이 있으나 원래 백제가 쌓은 성입니다. 백제 개로왕 때 (475년) 고구려에 패하고 나서 충남 공주로 천도를 하기 전까지 한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480년이 넘게 지내는 동안 남한산성은 백제의 도읍지를 지키는 큰 성이었습니다. 남한산성은 이처럼 삼국시대 때부터 있던 토성이었습니다."
남한산성하면 조선시대 병자호란 때 청나라 장수 앞에 무릎을 꿇고 항복했던 인조의 초라한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군신의 관계를 유지할 것을 주장하는 후금(後金)의 위협이 두려워 광해군 13년(1621년)에 남한산성을 경도보장지(京都保障地)로 정하고 토성을 석성으로 개축하기 시작했다.
팔도의 승군까지 동원하여 2년만인 1626년 남한산성을 완공했다. 1636년 인조 14년 병자호란 때 눈이 많이 내려 미처 남한산성을 떠나지 못한 인조가 이곳에서 45일 동안 버티다가 할 수 없이 지금의 송파구 삼전도에 나가 청나라 장수에게 무릎을 꿇고 항복하고 말았다.
벽수골 길은 남한산성 옛길
(남한산성의 외성인 벌봉 봉암성)
" 저기 벌봉에서 청나라 군사가 진을 치고 코앞의 남한산성 안을 살폈다고 합니다. 남한산성의 외성이기도 한 벌봉의 봉암성은 호란이 끝난 후 숙종 12년(1681년)에 부윤 윤지선을 시켜 쌓은 성입니다. 둘레 1,142.8m의 봉암성에는 암문이 4군데, 포대가 15군데, 여첩(女堞-몸을 숨기고 활을 쏘는 구멍이 뚫린 담)을 294군데 설치하여 본성인 남한산성을 더욱 확고히 지키도록 한 것입니다."
봉암산성을 쌓게 된 동기다. 남한상성은 얼른 보기에 많이 퇴락해 보이지만, 조선조 말 순조 때까지 군사들이 상주하고 성을 새로 쌓거나 보수해왔다. 그동안 내버려둔 외성인 봉암성과 옹성들은 무너져 내린 곳이 많아 보기에 안쓰럽다.
남한산성은 차를 타고 올라가기 보다는 산줄기를 타고 걸어서 올라가 북문이나 남문으로 내려오는 것이 좋다, 예순, 아니 지금은 쉰만 돼도 인생의 내리막길을 걷게 된 세상이다. 산에서라도 새로운 각오로 오르고 올라보자.
전국 어디를 가나 산천의 뼈대는 굳세게 뻗어 있지만 우리 민족은 어이 된일인지 오천년 동안 끊임없이 굴욕적인 역경을 겪어야만 했는가 되새기는 시간도 가져본다. 이 코스를 소개한 서립규 사장의 말처럼 문화유적 답사를 겸한 실버산행코스이자 가족산행코스로 전국 어디를 뒤져봐도 이만한 곳은 드물 것이다.
산행 길잡이
엄미리-봉암성-남한산성 코스는 은근 슬쩍 넘어간다는 은고개부터 시작된다. 엄미리 벽수골 길을 따라 가다보면 대문에 출입금지 플래카드를 달아 놓은 집 못미처 양지바른 언덕에 노인 내외가 빈대떡 등 간단한 음식과 커피를 파는 초막집(일막 막장집) 뒤뜰에서 시작된다.
(성벽을 따라 이어진 남한산성 일주 등산로)
지금처럼 교통이 발달되지 않은 시절 엄미리 아이들은 산성리에 있는 초등학교를 다녔다. 이들의 통학로가 바로 등산로다, 막장집에서 산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켜다란 묘원을 지난다. 여기서 곧바로 능선을 따라 올라가면 봉암성이다.
그러나 묘원에서 왼쪽으로 난 산길로 들어선다. 굴참나무들이 늘어선 평탄한 숲길이다. 작은 계곡을 3번 건넌다. 첫 번째 계곡에는 엄동설한에도 얼지 않는 샘도 있다. 조금 가다보면 능선을 따라 쌓은 성터가 보이기 시작한다. 봉암성에서 한봉까지 뻗어나간 외성이다. 엄미리에서 올라오는 길목을 지키는 성이다. 옛날에는 지금의 광지원에서 남한산성으로 가는 길보다 이 벽수골 길로 많이 다녔다고 한다. 우리가 오른 등산로는 남한상성의 옛길이다. 암문이 나타나면 동문으로 가는 큰골로 내려서기보다 다시 성터 길을 따라 봉암성으로 올라간다. 봉암성을 둘러보고 성벽 위로 난 길을 따라 북문이나 서문으로 입성을 한다.
(무릎까지 빠지는 폭설이 내린 큰골 계곡)
여유가 있으면 내처 남문까지 가도 좋다. 절경을 보면서 가는 능선길이 아니더라도 성을 따라 걷는 등산이여서 지루하지 않다. 발길에 허물어져 가는 성돌이 떨어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디뎌야 한다. 2,3시간이면 남한산성 안의 산성로터리에 닿을 수 있다.
(봉암성 암문에서 만난 서울大 공대 OB산악부 회원들)
이번에는 실행에 옮기지 못했지만 다음 번에는 은고개에서 곧바로 능선을 타고 301m봉-351m봉-벌봉을 거쳐 남한산성으로 입성하는 종주산행을 시도하려고 한다. 야트막한 능선이어서 그런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교통
(엄미리 천하여장군 장승/큰골 우뚝산장 산닭.한방오리탕)
서울서 갈 경우 전철 2호선 강변역에서 천호동-명일동-상일동-황산(신장)-상산곡동-은고개-광지원-광주행 13번, 13-2번 시내버스를 이용해 은고개에서 내린다. ( 요금 1,000원). 남한산성 안에서 서울로 돌아올 때는 산성로터리에서 15-1번 버스를 타고 광지원으로 가서 13번, 13-2번을 이용한다.
산성로터리에서 성남시를 거쳐 서울로 돌아올 때는 남문-남한산성 유원지-성호시장-모란시장을 왕복하는 9번 버스를 탄다. (30-40분 간격으로 운행, 전철 산성역까지 요금 9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