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러스트=조선DB
올해 국내 ‘로맨스스캠(연애 빙자 사기)’ 피해액이 1000억 원에 이른 것으로 드러났다. 과거 단순히 연애 감정을 악용하던 수준에서 벗어나, 최근에는 가상화폐 투자나 해외 사업을 내세운 복합형 범죄로 발전하고 있다. SNS나 데이팅 앱에서 시작된 대화가 어느새 한 사람의 삶을 무너뜨리는 ‘사랑의 덫’으로 변하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미국 수사당국은 로맨스스캠을 단순한 연애 사기가 아니라 ‘감정을 매개로 한 금융범죄(affection-based financial fraud)’로 규정한다. 수법은 해마다 교묘해지고, 피해자는 20대부터 70대까지 세대를 가리지 않는다. 특히 배우자를 잃거나 은퇴한 중장년층이 주된 표적이 된다.
피해자 대부분은 “사랑에 빠진 감정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졌다”고 털어놓는다. 사기범들은 피해자의 SNS를 면밀히 분석해 취미·가족관계·종교 성향 등을 파악하고, 그에 맞춰 대화 내용을 조작한다. FBI는 “로맨스스캠은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을 이용하는 범죄”라며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음성·영상 합성이 결합되면 향후 피해는 훨씬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피해액 1000억 원, 사건 수 1565건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의원(전북 익산을)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1~9월) 로맨스스캠 피해액은 1000억 원, 사건 수는 1565건으로 집계됐다. 지난해(2~12월)에 비해 피해액은 325억 원(48%), 사건 수는 300건 늘어났다.
경찰은 최근 로맨스스캠이 단순 금전 갈취에서 벗어나 가상자산, 주식, 외환거래 등을 결합한 신종 금융사기로 변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피해자 상당수는 ‘투자 수익’을 미끼로 한 가짜 사이트나 앱에 접속해 돈을 잃었다.
대표적 수법은 ‘돼지 도살(Pig Butchering)’ 방식으로, 피해자가 자신이 투자를 통해 수익을 얻고 있다고 믿게 만든 뒤 더 큰 금액을 입금하도록 유도하고, 일정 시점에서 사이트를 폐쇄한 채 자취를 감춘다. 실제 피해자 중 상당수는 “수익이 쌓이는 화면을 직접 봤기 때문에 의심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초국경 범죄, 검거율은 46.9%
수사는 여전히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지난해 로맨스스캠 검거율은 12.7%였고, 올해도 46.9%로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범죄 거점이 필리핀·말레이시아·중국 등 해외에 집중돼 있어 수사망을 좁히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병도 의원은 “초국경 사이버 범죄는 피해자가 많고 피해 규모도 크며 대부분 조직적인 형태를 띤다”며 “피의자가 해외에 있다고 수사를 미루지 말고, 국제공조와 병합수사 등 가능한 모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로맨스스캠은 단순한 사기 사건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과 신뢰를 조작하는 심리범죄”라며 “정부는 예방 교육과 공조 체계를 실질적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랑을 빙자한 신종 금융사기”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만남이 일상화되면서 외로움과 고립감이 로맨스스캠 확산의 토양이 됐다고 분석한다. 피해자 다수는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수치심 때문에 신고를 꺼린다. 경찰청 관계자는 “감정을 무기로 삼는 범죄는 심리적으로 취약한 사람을 노린다”며 “국제공조 수사뿐 아니라 홍보와 상담 시스템을 함께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로맨스스캠은 이제 개인의 부주의가 아닌 사회적 재난 수준의 범죄로 확산되고 있다. 감정과 돈이 얽힌 이 범죄는 국경을 넘나들며 진화하고, 가상화폐·투자·송금 사기 등 다양한 형태로 변주된다. ‘사랑을 가장한 범죄’라는 이름 그대로, 로맨스스캠은 사람의 마음을 이용해 지갑을 털고 신뢰를 붕괴시킨다.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 범죄의 핵심은 돈이 아니라 외로움을 겨냥한 심리전이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감정은 그만큼 더 취약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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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 대응 요령(간단 체크리스트)
-상대가 만남을 회피하고 ‘긴급 송금’을 요구하면 즉시 의심.
-사진·신분증은 역이미지 검색으로 확인.
-가상투자 사이트의 출처·등록번호·출금 증거가 불투명하면 투자 중단.
-의심될 땐 가족·은행·경찰에 상담하고, 송금 전 관계를 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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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조선DB
미국도 피해 ‘폭증’
미국에서도 ‘로맨스스캠(연애 빙자 사기)’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로맨스스캠 피해액은 약 1조1000억 원(8억2000만 달러)에 달했다. 피해자 대부분은 데이팅 앱이나 SNS를 통해 사기꾼과 처음 접촉했다.
사기꾼들은 “함께 투자해 부를 쌓자”거나 “짧은 기간에 큰 수익을 낼 수 있다”는 말로 피해자를 유혹했다. 이들은 가짜 거래소나 투자 플랫폼을 만들어 피해자가 소액을 입금하면 실제로 수익이 나는 것처럼 조작된 화면을 보여줬다. 초기에는 출금이 가능하게 만들어 신뢰를 쌓은 뒤, 점점 더 많은 금액을 투자하게 유도했다. 그러나 일정 금액 이상을 송금하면 출금이 차단되고, 이후 연락이 끊기거나 사이트가 폐쇄되는 식이다.
FTC는 이 같은 수법을 “감정과 탐욕을 동시에 이용하는 정교한 심리전”이라고 분석했다. 사기꾼들은 피해자와 몇 달 동안 매일 연락하며 연인 관계처럼 행동했고, 결혼을 약속하거나 가족 소개를 언급하기도 했다. 피해자는 “내가 그를 돕는 것이라 생각했다”고 진술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미국 내에서는 관련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텍사스 휴스턴에서는 부부가 연애 스캠과 전신사기(wire fraud)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남편 달링턴 아크포루고(47)는 징역 15년 8개월, 아내 재스민 수드(37)는 징역 10년 1개월형을 받았다. 이들은 피해자 수십 명에게 접근해 “투자금 송금”을 요구하고, 이를 해외 계좌로 빼돌려 총 약 40억 원(300만 달러)을 챙긴 혐의를 받았다.
매사추세츠 보스턴 연방법원에서는 나이지리아 국적의 찰스 우체나 느와데이비드(35)가 6명의 피해자로부터 약 37억 원(270만 달러)을 편취한 혐의로 징역형과 추방 명령을 받았다. 그는 피해자 명의의 은행계좌를 ‘세탁 통로(money mule)’로 이용해 자금을 다단계로 분산시켰다.
이 밖에도 미 연방수사국(FBI)과 법무부는 2024~2025년 사이 전국에서 수십 건의 로맨스스캠 조직을 적발했다. 이 중 상당수는 동남아시아·아프리카에 거점을 둔 국제 범죄조직으로, 미국 내 협력자들이 피해금 송금과 자금 세탁을 담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구체적 수법 — 일본 현장에서 확인된 패턴
좀 더 구체적으로 일본의 사례를 알아보자. 일본은 특히 수법의 다변화와 표적화가 뚜렷하다.
일본 경찰청(NPA) 통계와 언론 보도는 2024년 한 해 로맨스·투자 사기 피해액이 대규모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고령층·독거노인·사회적 고립자, 경제적 여유가 있는 중장년층이 주된 표적이었다.
2023년 일본 로맨스스캠 피해액은 약 198억 엔(한화 1900억원)이나 2024년에는 2배 이상 증가한 397억엔(3790억원)이었다. 공식 통계로 일본 경찰청이 2023년 전국 SNS 투자사기와 로맨스 스캠 피해액을 최초로 조사한 결과, 총 445억2000만엔(약 4000억원)으로 집계됐다고 한다.
홋카이도에 거주하는 80대 여성은 SNS에서 만난 남성이 자신을 ‘국제우주정거장에 있는 일본인 우주비행사’라고 소개하자 이를 믿고 “귀환 비용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약 900만 원(100만 엔)을 송금했다. 어처구니 없어 보이지만 실제 사례다.
또 다른 충격적인 사례는 마이 와타나베 사건이다. 25세 여성인 와타나베는 데이팅 앱을 통해 다수의 50대 남성에게 접근해 약 9억원(1억 엔)을 가로채고 사기 기법을 정리한 매뉴얼을 판매해 돈을 벌었다고 한다. 일본 법원은 징역 9년을 선고하며 "극히 악질적"이라고 했다.
①감정 구축 → 위기 조작=수개월에 걸쳐 애정 표현·미래 약속을 통해 신뢰를 얻은 뒤, “병원비·세관·귀환 비용” 등 긴급 상황을 조작해 송금을 요구한다. 위에서 언급한 우주 비행사 사기도 이 범주에 속한다.
②‘돼지 도살(Pig Butchering)’형 투자 유도=가짜 가상화폐 거래소·투자 플랫폼에 피해자가 소액을 넣어 수익이 나는 화면을 보여주며 점점 더 많은 금액을 넣게 만든 뒤 한꺼번에 갈취한다. 이 수법은 동남아에 있는 조직형 ‘사기 팩토리’와 결합되는 경우가 많다.
③유흥업소·호스트 클럽 연계형 착취=젊은 여성(이른바 ‘슈가 베이비’)이 고액의 중년 남성을 유인해 돈을 빼앗고, 일부는 그 방식과 매뉴얼을 공유·판매하는 형태까지 드러났다(마이 와타나베 사건). 이는 단순 개인 사기에서 ‘장사’로 확장된 모습이다.
④가짜 신분·동영상·가짜 인증서 활용=사진·영상은 도용·합성되거나, 녹음·녹화된 ‘사전 녹화 영상’으로 대응해 직접 대면을 회피한다. 가짜 재직증명서·서류를 보내 신뢰도를 높이는 사례도 보고된다.
⑤머니 뮬·자금 세탁 루트 활용=피해자로부터 받은 돈을 다단계로 해외·암호화폐 계좌로 이동시켜 추적을 어렵게 한다. 일부 조직은 현지 ‘머니 뮬’ 네트워크를 운영해 자금 인출과 분산을 시스템화한다.
왜 일본에서 더 보이는가
전문가들은 일본의 고령화·단독 가구 증가, 그리고 데이팅 앱의 이용 확산이 결합해 ‘취약 집단’이 늘어난 점을 지목한다. 또한 일부 가해자는 유흥업계·사교계 연결을 통해 피해자 재산을 호객·유흥 소비로 흘려보내는 등 현지 정황을 이용한 맞춤형 사기가 가능하다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