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末 고등학생이 이었던 소년은 마을의 밭 여기저기서 개간을 하면서 치우던 작은 돌무더기에서 인화문이 선명한 토기와 사발, 잔들이 나와 밭가에 뒹굴면 주워 다가 골방에다 선반을 메고 진열해 놓기 시작했다. 이 소문이 퍼지자 동네 꼬마들이 어디서 구했는지 옛 날 토기들을 한두 점씩 들고 오는 것이었다. 
“아부지, 10원만 주이소.”
“뭐, 할라 꼬?”
“공책도 사고 연필도 사고 다 썼음이 데이.”
아버지로부터 어렵게 타낸 용돈을 아버지 몰래 그 아이들에게 쥐여주면서 모으기 시작한 토기 등이 60여점이나 되었다.

당시만 해도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 아버지를 졸라 모으기 시작한 크고 작은 함과 고배, 항아리, 잔, 쇠도끼 등은 일천 수백 前 조상 대대로 살던 마을의 역사를 증명하는 값진 유물들이었다. 소년은 이들을 모아 진열한 골방의 기둥에 붓으로 박물관이라고 써놓는 호기도 부렸다.
 골동품 수집을 취미로 했던 소년은 그 후 경상大 수의과에 입학을 했다. 대학에 입학을 해서는 불교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古刹을 순례를 하던 중에 사천 다솔사에 계시던 환경스님과 청남 오제봉 선생의 붓글씨를 갖게 되면서 근세 한국 고승들의 선서화(禪書畵)를 모으는 또 다른 취미를 갖게 된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7급 공무원으로 고향인 경남 하동을 떠나 충북 제천 땅에 발을 딛게 됐다.

그 후 어느 날 고향집에 가서 맨 먼저 그가 세운 ‘골방 박물관’의 문을 열어 졌었을 때 애지중지하며 모아 늘어놓았던 토기와 자기들이 몽땅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크게 실망을 했다. 도둑이 들어 다 털어 간 것이다.
  그 중에는 가야토기로 음각 문양이 새겨진 두껑 달린 합(盒)도 있었다. 지금도 부모님이 다  세상을 떠난 경남 하동군 진교면 고향집 골방 기둥에는 그가 써놓았던 ‘박물관’ 이라는 붓글씨가 아직도 희미하게 남아 있다.
  40여년 前의 일이다.

청주국립박물관을 찾은 김연호 원장과 부인 權仙(권선)씨 내외분. 품에서 떠나보낸 문화재들에 대한 애틋한 사랑은 지금이나 예나 변함이 없다.


청주국립박물관 ‘김연호 기증문화재’ 상설 전시장에 전시된 고려시대 청동대야.

충북 제천 중앙진주동물병원 金然鎬(김연호, 57) 원장은 어렸을 때부터 선조들의 유물에 깊은 관심을 갖고 모으는 버릇을 갖게 됐다. 제천에 터를 잡고 제천, 영월, 단양으로 소를 가진 농가를 찾아 왕진을 다니면서 이곳에 대대로 살아온 안동 權씨, 진주 姜씨, 영일 鄭씨, 문화 柳씨, 전주 李씨 등 씨족마을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쉽게도 충주댐이 들어서면서부터 이들 사대 집안의 값진 세전 유품과 생활 용품들을 이사를 가면서 상인들에게 마구 팔려 나가는 것을 옆에서 볼 수 있었다.
 당시 金 원장은 이들을 수집상으로부터 하나 둘씩 사들이기 시작했다.
지난 80년대 초 어느 날 잘 아는 골동품상으로부터 좋은 도자기 한점이 나왔으니 무조건 사놓으라는 것이었다. 당시 3일 정도의 진료비를 가지고 달려가 흥정을 하여 쉽게 손을 넣을 수 있었다. 며칠이 지나니 소문을 듣고 찾아온 여러 명의 골동품상들이 6배를 줄 터이니 되팔라고 졸라댔다.
 이렇게 손에 넣을 수 있었던 분청사발은 조선시대 초기에 제천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지금도 진귀한 문화재 여겨지고 있다.

충북 단양군 적성면 애곡리 청주호 수몰지역에서 발굴된 발화석.






김연호 원장이 수집하여 기증한 고려시대 청자들과 조선시대 분청사기들을 비롯하여 각종 민속 문화재들 가운데는 청주국립박물관의 명품 유물로 손꼽히는 것들이 많다.

그 후 金 원장은 모든 수집가들이 갖고 싶어 하던 長興 분청사기를 4점이나 수집하고 철화문, 박지문, 덤벙, 귀얄 등 다양한 것을 수십 점을 소장 할 수 있게 됐다. 

잘 빠진 인화문이 가득한 분청 한 점을 사기 위해 애를 태우며 돈을 마련하느라 적금을 깨고 집을 저당 잡히기 까지 하면서 제천 지방의 분청사기들을 집중해서 수집을 했던 김 원장은 돈이 모자라 눈요기만 하고 아쉬운 발길을 돌렸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렇게 사재를 털어 수집한 제천 지방에서 출토된  선사시대 유물에서부터 인근 지역에서 사용했던 민속 문화재들을 모아 ‘제천 향토인사 소장 유물 특별전’을 열기도 했다. 金 원장은 소장품이 점차 늘어나면서 개인이 소장하기에 어려움이 있자 1990년 12월 청주국립박물관에 360점을 1차 기증을 한다.

고려청자를 비롯해 고려시대 금속품, 조선시대 분청사기와 백자 등 문화재로 가치가 있는 유물들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1997년 가을 2차로 철제가위와 청자대접 등을 기증했으며 2002년 9월에는 선사시대 고고학 유물, 도자기, 銅器, 금속공예품, 민속품 등 다양한 문화재 268점을 또다시 기증을 한다.
 20여 년간 수집상으로부터 크고 작은 돈을 주고 사서 모은 기증 문화재들의 값어치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귀중한 우리 문화재들이었다.
金 원장의 3차 기증 문화재들 중에는 단양군 적성면 애곡리 충주댐 수몰지역을 돌아 보다 손수 찾아낸 살구 씨 크기의 작은 구멍이 십여 개 뚫린 원시인류가 불씨를 만들어내던 發火石(발화석)도 포함되어 있다.

김연호 원장은 書畵刻(서화각)에도 일가견을 갖고 직접 제작에 몰두하고 있다.


20여 년간 수집했던 애지중지 했던 유물들이 떠난 거실 한쪽에는 작은 부처만이 남아 그를 위로하고 있다. 그는 아침 저녁으로 이곳에서 예불을 드린다.


2003년 국립청주박물관에서는 金 원장이 기증한 문화재들 모아 ‘김연호 기증문화재’라는 도록도 발간했다.

청주국립박물관은 金 원장이 기증한 문화재들을 가지고 1991년 6월 ‘김연호 기증 유물 특별전’ 연 이후 지금은 상설 전시장을 마련하였다.

“진심으로 문화재를 사랑한다면 이를 꼭 껴안고 있는 것보다는 놓아 버릴 줄 알아야 한다.”는 시골 수의사 牧靑(목청) 金然鎬 원장의 거실 ‘죽노지실(竹爐之室)’에는 20여 년간 수집을  했던 정든 문화재 유물을 대신하여 관련서적으로 사방 벽이 꽉 채워졌다.
 서가 한가운데에 작은 부처를 모셔 놓고 아침, 저녁으로 예불을 드리는 金 원장. 그 가 있어 제천市의 향토문화는 다시 빛을 받으며 다시 태어나고 있다.

32년전 제천에 와서 진주동물병원을 개원한 김연호 원장은 요즈음도 인근 단양,
영월까지 왕진을 다니느라 바쁜 나날을 보낸다.

 수필집 ‘내토(奈吐)의 美’와 ‘3천년의 복원’ 등을 출간하는 등 수필가로 활동을 하면서 제천문인협회장과 한국예술문화단체 제천 지부장을 역임했으며
 조선 중기 이 고장 문인으로 詩歌 문학의 대가였던 옥소(玉所) 권섭(權燮, 1671-1736) 선생을 기리는 옥소예술제를 창설, 주관하고 제천 향토문화유적보호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을 했다.
 
 金 원장은 국립청주박물관에 문화재를 기증한 공로로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으며 제5회 제천市 문화상, 사단법인 불이회에서 시상하는 제7회 不二賞을 수상했다.
 제천 진주동물병원 김연호 원장을 만나려면 청주국립박물관에 가면 된다.
 
그를 닮은 분청사기들이 여러분들을 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