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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쯤인가 일본의 어느 고위인사가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망언을 했습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한 바로 그때입니다. 당시 저와 친한 선배 한명이 있었습니다. 이 선배는 운동을 좋아하기 때문에 평소 청바지 등을 입고 다니며 옷차림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이 선배가 평소 입지 않던 양복을 빼 입고, 이마를 훤히 보이는 머리 모양을 하고는 나타났습니다. 무슨 결혼식인지 모임인지 갔다 왔다는 데, 머리 모양이 일본 역사극에 나오는 영락없는 일본사람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머리를 뒤로 올린 선배의 모습이 우스워 배를 잡고 한참을 웃은 뒤, 『선배 일본 사람이요? 머리는 왜 그렇게 뒤로 바짝 넘겼어요』하고 놀렸습니다. 그러자 그 선배 하는 말, 『야, 제발 좀 그만해라. 오늘 모임 갔더니 만나는 친구마다 「독도 너 거냐?」고 한마디씩 하는 바람에 아주 혼이 났다. 일본놈들 괜히 헛소리하는 바람에 애꿎은 나만 욕을 봤다』 우리가 흔히 독일은 과거를 잘 반성하는데 일본은 왜 반성할 줄 모르냐고 합니다. 독일은 전범 히틀러가 제거 되었고, 일본은 전범 히로히토가 살아 남았습니다.이로써 일본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과거를 단절시키고 반성할 할 수 없는 구조적인 모순을 안게 된 것입니다. 일본이 망하지 않는한 그들에게 과거사 사과는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각종 망언도 계속 될 것입니다. 일본의 한마디 한마디에 너무 민감하게 대응하는 것은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고 봅니다. 우리는 일본이 독도를 자기땅이라고 하는 것보다 더 풍부하고 객관적인 자료를 대마도에 대해 가지고 있다는 것만 잊지 맙시다.
최근 한 人士로부터 들은 얘기입니다. 높은 지위에 있었던 前職 人士에 관한 내용입니다. 『뭐, 남자 사회에서 흔한 일 중에 하나일지도 모릅니다. 사회활동을 하다보면 여러 사람들과 술을 마실 수도 있고 그러다 보면 여자가 나오는 술집에도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前職 高位인사 A씨는 조금 달랐습니다. 여자를 좋아했습니다. 언젠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A씨를 포함해 몇몇 知人들끼리 술집에 갔습니다. 물론 여자도 있었습니다. 그 여성는 술집에 근무하는 여자가 아니라 B씨의 소개로 알게 된 여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 나이가 좀 어렸습니다. 당시 나이로 21세였습니다. 그러니까 A씨와는 나이 차이가 좀 많이 났죠. 그런데 한참 술을 마시고 있는데 그 여성이 눈물을 흘리더군요. 알고 봤더니 A씨가 동거를 요구했던 것입니다. 그 여자는 A씨의 사회적 지위에 눌려 거절을 못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 人士는 사회 고위층의 도덕성을 거론하는 도중에 A씨를 사례로 들었습니다. 『A씨는 그 후 또다른 여성문제로 곤욕을 치렀습니다. 결국 그는 돈 문제로 그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사회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은 술자리에서도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 비밀은 절대 없습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추천권을 요구한 열린우리당의 「뜻」 河炅喆(하경철)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1월28일 임기가 만료됩니다.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된 헌법재판소는 국회에서 세 명을 선출할 수 있습니다(대통령 3명ㆍ대법원장 3명). 후임 재판관 추천권은 민주당 몫으로 돼 있습니다. 그런데 「열린우리당」이 후보추천권을 요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민주당이 分黨되기 전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각 1명을 추천했고, 나머지 한 명은 與野 합의 下에 1명을 추천했습니다. 민주당이 分黨이 된 상태라 이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당연히 자신들의 몫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열린우리당은 원내교섭단체인 만큼 이번에는 자신들이 추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1월7일 한나라당 홍사덕 총무, 민주당 유용태, 열린우리당 김근태 원내대표, 자민련 김학원 총무 등이 朴寬用 국회의장 주선으로 회동을 가졌습니다. 참석자들은 FTA 비준안 등 쟁점법안 처리 및 정개특위 구성방안 등에 대해 각 당의 견해를 조율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河炅喆 재판관의 후임에 대한 인사청문회 등을 논의했다고 합니다. 현재 후보추천권은 민주당 몫으로 사실상 결정됐습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이 후보추천권을 요구한 것에 대해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그 底意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관장하고 있습니다. 1)법원의 제청에 의한 법률의 위헌여부 심판 2)탄핵의 심판 3)정당의 해산 심판 4)국가기관 상호간,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간 및 지방자치단체 상호간의 권한쟁의에 관한 심판 5)법률이 정하는 헌법소원에 관한 심판 이처럼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盧武鉉 대통령의 탄핵을 거론한 적이 있습니다. 2002년 대통령 선거에 대한 선거무효소송도 진행 중에 있습니다. 4월에 있을 17대 총선 이후 정치권이 어떻게 재편될지 모릅니다. 아울러 선거무효소송의 결과도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으로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 몇 개 1. “600년 역사를 가진 도시 서울” 새해 첫날 이명박 서울시장은 신년사에서“600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 서울은 자랑스런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고…”라는 말을 했습니다. 서울 시장이 서울의 역사가 몇년인지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태조 이성계가 서울을 수도정한 것이 약 600년 전입니다. 기록된 서울의 역사만도 백제의 온조 왕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따라서 서울은 최소 2000년이 더 된 도시입니다. 신도시를 제외하고 우리나라에서 600년의 역사가 안 되는 도시는 없습니다. 도시가 고려 전기에만 생겼다고 해도 기본 1000년의 역사는 먹고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2. “절대 왕권을 휘두르던 조선시대” 조선시대 왕들은 절대 왕권을 휘두르지 못했습니다. 사대부와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왕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절대 왕권을 대표하는 '짐이 곧 국가다’란 말은 유럽에서 생겼습니다. 외국의 어느 학자는 “서양에는 폭군이 늘 곁에 있었지만 동양에는 그 많은 왕들 중에 폭군이 거의 없었다”고 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차기 왕이 될 사람은 철저한 성리학 교육을 받고, 왕이 된 후에도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했기 때문에 구조적으로도 폭군이 나오기가 힘들었습니다. 세종이나, 영조, 정조 등 조선의 많은 왕들은 당대 어디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는 대학자이자 영민한 철학자들이었습니다. 왕 자체가 그 나라의 통치 이념(우리는 성리학 이념) 을 이행할 만한 수준의 인격체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를 한 역사를 가진 나라를 세계사에서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3. “조선 봉건왕조” 우리나라 역사에서 봉건시대가 없었습니다. 조선이 ‘의회민주주의 국가’였다고 말하면 안 되듯이 ‘조선 봉건왕조’란 말은 그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조선은 철저한 중앙집권사회, 관료사회, 사대부와 양반들이 다스리던 사회였습니다. 사전적 의미로 ‘봉건적인’ 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도 하는
최근 북한군인을 소재로 한 영화 '동해물과 백두산이'가 개봉됐습니다. 본의 아니게 강원도 해수욕장까지 표류하게 된 두 북한병사의 한국 탈출기를 다룬 코미디 영화입니다. 상황설정은 어설프지만 작품 구성도 측면에서는 관객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다음은 탈북자동지회 소식지 '탈북자들'에 실린 글입니다. 필자 주성하씨는 김일성大를 졸업한 탈북자입니다. 필자는 북한을 소재로 한 한국 영화에는 정작 북한에 관한 솔직한 얘기는 없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탈북자동지회 홈페이지(WWW.NKD.OR.KR)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에 북한이 없다. 주성하(김일성대 졸업) 어제는 김정일의 딸과 국정원장의 아들이 연애를 하더니(휘파람공주) 오늘은 북한 고위간부의 딸과 남한 정보책임자의 아들이 중국에서 연애를 한다(남남북녀). 남남북녀라는 말을 신조처럼 떠받들어 시나리오 작가들은 아름답고 활달한 북한아가씨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실제 직장동료들은 남·여 가림없이 나보고 북한여성들이 이쁜가고 묻는다. 이들의 머리에는 부산과 대구에 다녀간 응원단의 표상이 곧 북한여성의 이미지인 것 같다. 사실 영화에 등장하는 북한여성들도 따져보면 다 남한의 공주님보다 더한 공주들이다. 이럴 때마다 나는 작가들을 죄다 어느 한 북한 기차역을 무작위로 선발해 그 앞에 반나절만 앉혀놓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면 아마 20kg이 넘는 배낭을 메고 씩씩하게 걸어다니는 북한의 여성들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저번에 부산에 응원단이 왔을 때 인터넷 게시판들에 과연‘남남북녀’라고 난리들이 나자 여성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북녀는 인정하겠는데 남남은 인정할 수 없다고 말이다. 50kg이상은 여자 몸무게가 아니라는 얼토당토한 남자들의 주장에 얼마나 오늘도 수많은 여성들이 다이어트에 구슬땀을 쏟고 있고 마취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성형외과를 찾아가는 줄 아느냐, 지들은 하나도 안 가꾸면서 남남북녀라는 남자들 어처구니 없다는 등...
「진실 그리고 소통」을 방문해주신 네티즌 여러분, 甲申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시는 일은 성공하시고, 바라는 일은 꼭 이루시길 眞心으로 기원합니다. 지난 한 해는 마음만 바빴던 것 같습니다.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일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새해를 맞이해서 각오를 새롭게 다져봅니다. 취재도 열심히 하고, 사람들도 더 많이 만나고, 공부도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새해에는 반드시 장가 갈 겁니다. 새해에는 「진실 그리고 소통」을 좀 다른 방법으로 운영할 생각입니다. 우선 형식에 상관없이 자유로운 내용의 글을 올릴 예정입니다. 기사는 물론이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들을 독자 여러분에게 소개할까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의견도 적극 반영할 생각입니다. 아무튼 하나하나, 조금씩 탈바꿈해 나갈 것을 약속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크리스마스 전날, 날씨가 포근하다 못해 안개까지 짖게 끼었습니다. 12월초, 기온이 갑자기 떨어지자 기상청은 전국에 한파주의보를 발령했습니다. 날씨가 진짜 추워서라기 보다 전날보다 10도 이상 기온이 떨어져서 발령한 것입니다. 「한파주의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만 가지고 봤을 때 이날 발령한 한파주의보는 약간 우습기도 했습니다. 그날 서울의 아침 기온이 영하 3~4도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겨울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는 이제 새로운 것이 못될 정도가 되었습니다. 작년만해도 한 1주일 가량 춥더니, 한강이 얼듯말듯하자 곧 날이 풀려 이듬해 봄까지 추위다운 추위가 제대로 오지 않고 지나갔습니다. 작년 겨울에는 눈은 오지 않고 비만 엄청나게 왔습니다. 재작년 겨울에는 눈은 많이 왔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춥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원래 우리나라의 겨울은 「살을 에는 추위」라는 표현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닐 정도로 매서운 것이 특징입니다. 임진왜란 때 가등청정(加藤淸正)이 함경도로 들어갔다가 추위와 굶주림에 거의 죽다가 살아 나왔고, 6.25 때는 미군도 장진호 전투 등에서 추위 때문에 많은 병력을 잃었을 정도입니다. 춥지 않은 겨울의 기억을 더듬다 보니 1980년대 후반 어느 겨울이 생각납니다. 저는 여느 해처럼 흔히 시골에서 ‘시게토(스케이트의 일본어)’라고 부르던 썰매를 만들며 겨울을 준비했습니다. 우리 집 앞에 작은 도랑이 있는데 겨울에 한번 얼면 이듬해 3월이나 되어야 얼음이 녹는 시늉을 하기 때문에, 썰매를 한번 만들어 놓으면 한 겨울 내내 좁은 도랑에서 썰매를 탈 수 있습니다. 어쨌든 신나게 썰매를 만들어 놓았는데, 12월이 지나고 1월이 되어도 도랑에 얼음이 얼지 않는 것입니다. 이상하다며 고개만 갸웃거리는 사이 결국 봄이 되었고 그 해는 결국 썰매를 탈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기억하는 이상한 겨울의 첫 기억입니다. 그 후로는 그런 일이 해를 걸러 한번씩 일어 나더니 급기야 몇 년 전부터는 아예 얼음
「닭을 잡다」 할 때 닭의 발음은 「닥」이 아니라 「달」- 「달」에 강세가 들어가며 짧게 발음함, 강세가 들어가지 않고 길게 발음하 달(月)이 됨-이라고 발음해야 합니다. 흙도 마찬가지 입니다. 「흙을 퍼 나르다」 할 때 흙은 「흘글」퍼 나르다가 됩니다. 그런데 요즘 이 발음을 지키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우리가 흔히 발음하듯 「닥을 잡다」고 발음하면 이때 「닥」은 닥나무란 뜻이 됩니다. 「흑을 퍼 나르다」라고 발음하면 흙이란 뜻이 사라집니다. 국어사전에서는 닭이나 흙이 단독으로 쓰일 때는 「닥」과 「흑」이라고 발음된다고 돼 있지만, 실상 시골 노인들이 발음하는 것을 보면 닭이나 흙이나 단독으로 발음할 때도 「달(강세를 높게 두면서 발음을 끌어당기듯이 혀를 매우 긴장해서 발음함)」, 「흘(역시 끌어당기면서 혀를 긴장해서 발음함)」로 발음하고 있습니다. 이때 「ㄱ」 발음은 거의 들리지 않지만 혀를 긴장해서 끌어당기는 자체가 「ㄱ」 발음이 살아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대신 이 닭이나 흙이 다른 말과 이어질 때는 반드시 「ㄱ」 발음이 확실히 살아 납니다. 국어사전에 닭고기는 「닥꼬기」로 발음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시골 노인들 중에 닭고기를 「닥꼬기」로 발음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예외없이 「달꼬기」라고 발음합니다. 경상도와 전라도 등 남도지방에서는 아예 속편하게 닭을 「달구(새끼)」라고 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닭과 「ㄹ」발음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인데 요즘은 아예 닭의 모든 발음이 「닥」 하나로 통일되고 있습니다. 얼마전 TV에서 일기예보를 보고 있는데 여자 일기 예보관이 『오늘은 날씨가 맑겠습니다』를 『오늘은 날씨가 막겠습니다』라고 발음했습니다. 날씨가 어떻게 「막겠는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막겠습니다」가 아니라 『날씨가 「말껬습니다」』라고 발음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국어사전을 보면 「밟다」란 발음은 「밥따」라고, 똑 같은 형인 「떫다」란 발음은 또 「떨따」라고 발음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말리다」라는 단어는 발음을 어떻게 하느냐 따라 뜻이 달라지는 신기한 단어입니다. 2002년 대선하루 전의 일입니다. 정몽준 후보가 갑자기 노무현 후보와의 공조를 파기한다고 하면서 김행 대변인이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습니다. 김행 대변인이 발표한 담화문 가운데는 노무현 후보가 유세장에서 『미국과 북한이 싸우면 우리가 말린다』라고 말했다는 표현이 들어 있었습니다. 저는 순간적으로 「미국과 북한이 싸우면 우리가 싸움에 말려 들어간다」는 뜻으로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김행 대변인이 「말린다」를 발음할 때 장단음을 명확하게 구별하지 않고 모호하게 발음했기 때문입니다. 싸움을 「말린다」라고 할 때는 타동사가 되어 「리」 발음을 길게 빼면 안되고 짧게 발음해야 합니다. 반대로 「말려든다」는 의미로 말할 때는 수동사가 되어 「리」 부분을 길게 발음해야 합니다. 같이 TV를 보던 사람들은 대체로 「싸움을 말린다」라는 뜻으로 들었으나, 저를 비롯해 일부 사람은 「우리가 싸움에 말려 들어간다」는 뜻으로 듣기도 했습니다. 청취에 이런 오해가 생긴 것은 말하는 사람이 「말리다」란 단어의 장단음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말리다」란 말은 발음의 장단에 따라 뜻이 달라지지만, 「날리다」란 말은 수동이냐 사동사로 사용하냐에 따라 발음의 장단을 다르게 해야 하는 단어입니다. 「무엇이 바람에 날리다」라고 할 때는 「날다」의 수동 됩니다. 그러나 「내가 연을 날리다」라고 할 때는 「날다」의 사동이 됩니다. 수동일 경우에는 「리」자를 길게 빼야 하고 사동일 경우는 짧게 발음해야 합니다. 「홀리다」란 단어도 이런 경우에 속합니다. 특히 한자로 구성된 우리말에서 장단음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흔히 「호국(護國) 보훈의 달」이라고 할 때 호국은 「호」자를 길게 발음해야 합니다. 짧게 발음하면 호국(胡國)이 되어 「야만인의 나라」란 뜻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외에도 제국(帝國:장음)과 제국(諸國:단음), 수학(數學;장
『연좌제로 인해 더 이상 고통받을 수 없다.』 지난 3일 서울 을지로1가 국가인권위원회를 방문한 납북자가족 11명이 7층 회의실을 점거하고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최성룡(51)씨를 대표로 한 이들은 납북자가족모임의 회원들로 60, 70대의 할머니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국가인권위 관계자를 만나 1년 전 인권위에 제출한 연좌제 피해보상과 인권침해 진정에 대한 해결책을 요구했으나, 인권위 측으로부터 만족할 만한 대답을 얻지 못하자 회의실을 점거하고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이들은 납북자 즉각 송환을 위한 정부의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노력과 납북자가족 지원법 제정 등의 요구사항을 내세우고 있다. 그 속에는 납북자 가족에 대한 연좌제 폐지에 관한 사항도 포함돼 있다. 연좌제로 인해 이들이 받고 있는 피해와 고통은 가혹하리 만큼 크다. 요시찰 인물로 분류돼 경찰에 신고없이는 이사도 마음대로 하지 못할 만큼 주거의 자유를 침해받고 있으며, 연좌제에 얽힌 자식들은 취업도 하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최대표는 “盧武鉉 대통령이 해양수산부장관 시절 납북자 송환과 연좌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는 만큼 이 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납북자 문제에 관한 조속한 해결을 요구했다. 국가인권위는 “정책권고에 시간이 걸리고, 19일 이 문제와 관련된 공청회를 열 예정이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며 농성 중인 이들을 달랬다. 하지만 최대표를 필두로 회원들 모두가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이대로 물러나면 다시는 우리의 요구를 관철시킬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어 단식농성이 언제 끝날지는 미지수다. 회원들의 대다수가 60, 70대의 노인들인 탓에 이들의 단식농성은 자칫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盧武鉉 대통령의 약속이행만이 불행한 결과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왕따’란 말은 원래 중고등학생 사이의 은어로 쓰였습니다. 이 말이 언론에 소개된 것도 채 5년이 넘지 않습니다. 중고등학교 내에 횡행하던 따돌림 현상을 보도하면서 언론도 이 말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왕따란 말이 생겨나게 된 것은 일부 연예인들이 왕미녀, 왕초보 등의 말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 연장선상에서 중고등학생들이 왕따란 말을 만들어 냈던 것입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아예 표준말처럼 이 말을 쓰고 있습니다. 요즘은 중학생이나 씀 직한 ‘얼짱’이란 단어도 언론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얼짱은 「얼굴짱」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얼마 가지 않아 왕따처럼 얼짱이란 말도 표준말처럼 쓰이리라고 봅니다. 국민의 말과 언어를 선도해야 할 언론과 방송이 이런 초등학생 수준의 은어와 비속어와 타협을 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그 동안 대학생들의 노력으로 새로 탄생한 우리말이 몇 개 있습니다. 동아리, 새내기 등과 같은 단어입니다. 1980년대 말 대학에서는 ‘서클’이란 말 대신 ‘동아리’란 말을 만들어 썼습니다. 지난 십여 년간 서클과 동아리란 말이 치열한 경쟁을 하다가 이제는 ‘동아리’라는 말이 서클이란 말을 거의 대치 했습니다. 사회적으로도 서클보다 동아리란 말이 더 우세하게 쓰입니다. 대학생들은 그 외에도 신입생이란 말을 ‘새내기’란 말로 대치 했습니다. 그 외 ‘총학생회 출범식’이니 하는 것도 ‘해오름식’이란 말로 바꾸어 쓰고 있습니다. 대학생들이 만든 이런 우리 말 중에 일부는 동아리란 말처럼 살아서 생명을 얻을 것이고 일부는 살아 남지 못할 것입니다. 언론은 최근 ‘프리터族’이란 일본식 조어를 대단한 말을 발견한 듯 쓰고 있습니다. 영어 프리(free)와 독일어 아르바이트(arbeiter)의 합성어인 이 단어는 ‘일정한 직업을 갖지 않고 필요에 따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을 뜻한다고 합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란 말도 최근에 누구나 즐겨쓰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프리터족이
시골에 내려갔는데 어머니께서 메뚜기 튀김을 반찬으로 내 놓으셨습니다. 초등학교 때 보고 처음으로 보는 나락 메뚜기(벼 메뚜기) 반찬이었습니다. 제가 이곳 기자수첩에서 요즘 시골에 생태계가 살아 나는 것 같다고 한 적이 있는데 메뚜기가 꽤 많이 늘어 났음을 증명하는 일이라 무척 반가웠습니다. 나는 한 두 마리 그냥 맛을 보기 위해 먹어 보았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지난 10여년간 논에 농약을 치지 않고 농사를 지어 왔습니다. 별다른 이유는 없고 농약치는 것이 번거롭기도 하지만 노인네 둘이 하기에는 보통 벅찬 일이 아니라서 그냥 포기하고 농사를 지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농약치지 않고 지은 그 쌀을 더 비싸게 파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일반 수매장에 일반 쌀과 같은 값으로 수매 하기 때문에 용케 그 쌀을 먹는 사람은 운이 좋을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농약을 치지 않은 우리 논은 해마다 가을이 되면 나락 메뚜기 뿐만 아니라 골뱅이를 비롯 미꾸라지 붕어 개구리 등이 제법 많이 돌아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릴 때는 주위에 걸리는 것이 모두 우리들의 간식거리였습니다. 만만한 게 개구리라고 죄없는 개구리가 주로 많이 당했고 그 다음이 메뚜기 골뱅이 등입니다. 우리는 연못이나 무논에 사는 물방개도 먹었습니다. 그냥 방개(똥방개)는 못 먹고 배때기 주변에 노란 띠가 둘러쳐진 참방개는 먹을 수가 있습니다. 참방개를 잡아서 물그릇 속에 넣고 잿불에 올려 놓아 삶아 먹거나, 아예 잿불 속에 묻어 구워 먹기도 했습니다. 원래 시골 아이들이 별것을 다 먹고 자라지만 제가 방개도 잡아 먹었다고 하면 도시나 타 지역 시골에서 자란 친구들은 도저히 못 믿겠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하루는 학교 선배와 TV를 보다가 물방개가 나오기에 제가 『와 맛있겠다』하고 엉겹결에 말했습니다. 제 말을 들은 선배가 어이 없다는 듯이 쳐다 보더니 『왜 바퀴벌레는 안 잡아 먹냐』하고 말하더군요. 저는 더러운 바퀴벌레와 맛있는 물방개를 어떻게 같이
宋총장, 『수사 사건에 대해 직원들끼리 묻지도 말라』 내부공문 보내 政局이 檢察에 따라 좌지우지 되고 있습니다. 현대ㆍSK 비자금, 盧武鉉 대통령 측근 비리 그리고 大選자금. 정치권은 물론 재계까지 좌불안석입니다. 檢察의 힘이 어느 때보다 막강해졌습니다. 그러나 檢察의 성격이 과거와 약간 달라보입니다. 脫정치화, 脫권력화 여부를 떠나 現 검찰은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新檢察 시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守勢(수세) 입장에 있는 한나라당이 『검찰을 못믿겠다』며 특검법 3개 법안(정치권 불법자금 의혹ㆍ열린우리당 大選자금 불법모금 의혹ㆍ대통령 측근 비리 의혹)을 내놓았습니다. 정치권이 特檢을 운운하니 檢察 입장에서는 억울할 것입니다. 大檢 文孝男(문효남) 수사기획관은 『대통령 측근비리에 대해 檢察이 적당히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SK비자금의 정치권 유입 외에 李相洙·鄭大哲 의원에 대해 언론이 제기한 의혹도 수사한다. 한나라당에 대해서도 같은 차원에서 철저히 수사할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新檢察 시대」의 주인공으로 宋光洙(송광수) 검찰총장과 安大熙(안대희) 大檢 중수부장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최근 宋총장은 全 검찰공무원을 대상으로 내부공문을 보냈습니다. 공문은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내부직원들끼리도 서로 물어보지 말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직무교육 할 때나 거론되는 사항을 검찰총장이 공문을 통해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요즘 수사내용에 대해 물으면 묻는 사람이 「이상한 놈」으로 취급받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이 같은 조치는 검찰 내부나 외부로부터의 압력을 막기위한 宋총장의 의지라고 합니다. 『宋총장은 최고 지휘관으로서 조직을 보호, 총괄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바람막이 역할을 잘 한다. 역대 검찰총장의 행태와는 다른 면이 있다. 그는 성격上 부하 직원들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간섭하는 스타일이 아니다』(大檢 관계자) 安大熙 중수부장은 핫 이슈인 大選자금, 기업 비자
『우리는 憲法에 忠誠한다』 최근 만난 국군기무사령부 소속의 한 장교는 宋斗律(송두율)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며 기무부대의 對共업무는 어떤 성격의 권력이 들어서더라도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1사단장, 한미연합사 부참모장을 지내는 등 機務(기무) 업무와 동떨어졌던 宋永勤(송영근ㆍ56ㆍ육사 27기) 기무사령관도 사령관으로 부임해 부대원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 『對共업무의 프로들』이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합니다. 기무사 장교는 몇 해 전 月刊朝鮮 趙甲濟 편집장이 기무부대를 찾아 강연했던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습니다. 당시 趙편집장이 기무부대의 訓(훈) 중 「忠誠(충성)」을 가리키며, 『기무부대 출신 군인 중 두 명이 대통령(全斗煥, 盧泰愚)이 됐고, 기무부대를 거쳐간(?) 민간인 중 두 명(金泳三, 金大中)이 대통령이 됐다. 機務司(기무사)는 현대 한국정치사의 흐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며, 『여러분들이 충성해야 할 유일한 대상은 憲法(헌법)』이라고 언급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습니다. 최근 軍 장성급 인사에서 中將으로 진급한 宋永勤 장군도 부임직후 부대원들에게 『여러분들이 충성해야 할 대상은 사령관이 아니라 조국, 대한민국이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광화문을 볼 때마다 저는 마치 싸늘한 시신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일제는 총독부 건물을 지은후 광화문을 헐어 버리려 했습니다. 그러자 야나기 무네요시라는 일본인 학자가 「헐리려고 하는 광화문을 위하여」라는 詩를 지어 일본인의 야만성을 통렬하게 나무라며 광화문 철거 반대 여론을 주도했습니다. 여론에 밀려 헐릴 위기에서 벗어난 광화문은 경복궁 동쪽 건춘문 옆으로 옮겨져 해방을 맞았습니다. 그러다가 6.25 전쟁 때 불타 버린 것을 1969년 故 박정희 대통령이 현재의 위치에 철근 콘크리트로 새로 만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이 콘크리트 건물이 우리나라 제일 왕궁의 정문의 임무를 완수하기에는 역부족인가 봅니다. 남대문이나 기타 왕궁의 문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이나 위엄, 혹은 과거의 이야기를 현재로 이어주는 생명력이 풍기지 않습니다. 광화문 앞의 해태상은 길가 인도로 치워져서 온갖 매연과 분진을 뒤집어 쓰고 있습니다. 도로는 광화문에 바짝 붙어 지나가고 있어 이 나라 정궁의 정문이 숨을 쉴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도 주지 못하는 살벌한 인심을 보여 주는 듯 합니다. 광화문만이 경복궁의 슬픈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눈을 오른 쪽으로 돌리면 괴물 같은 민속박물관이 버티고 있습니다. 이런 요상한 건물이 우리 손에 의해, 그것도 경복궁 한복판에 지어 졌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지경이지만 현실입니다. 시선을 경복궁 뒤 쪽으로 돌리면 주변 경관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청와대 건물이 눈에 들어옵니다. 청와대라는 이름은 「푸른 기와 지붕의 臺(대:사방을 볼 수 있게 높이 쌓아 만든 곳)」라는 말로 사실상 아무 의미 없는 이름입니다. 대통령이 사는 집에 왜 臺자가 들어가야 하는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청와대가 「잘 지은 위엄 있는 건물」이라느니 「한국의 美를 표현했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경복궁과 연계시켜 볼 때 자화자찬의 말 잔치에 지나지 않습니다. 산채만한 청와대 건물이 경복궁을 오만하게 짓누르고 있어 궁궐의 모습
「고도리」는 우리 집에서 17년 가까이를 산 고양이 이름입니다. 이 놈은 제가 중학교 3학년 때인 1986년 이웃 동네에 있는 친구 집에 갔다가 얻어 왔습니다. 몸에 털 한 올도 흰색이라고는 없는 완전 새카만 고양이 였습니다. 가져올 때 가위 뼘으로 한 뼘이 채 되지 않은 놈이었습니다. 그 때 우리집은 쥐로 득실거렸습니다. 쥐방울 만한 고도리에게 시범으로 자기 덩치만한 쥐를 잡아서 던져 주었습니다. 그러자 이놈의 표정이 일순간 변하더니 「골골골」 하는 괴상한 소리를 내며 쥐를 꽉 물고는 아무도 접근을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쥐만 보면 주인도 몰라보고 할퀴어 댔습니다. 저는 「됐다」 싶어 이 놈을 쥐가 많은 뒤주에 집어 넣었더니 뒤주의 쥐가 금새 사라졌습니다. 천장 위를 우르렁 거리며 지나 다니던 쥐도 일순간 사라졌습니다. 집에 쥐가 사라지자 이제는 집 마당의 짚단과 수출 등지를 돌아 다니며 쥐를 잡았습니다. 어찌나 쥐를 잘 잡던지 하루에 제 덩치 만한 놈을 한마리씩은 꼭 잡아 먹는 것입니다. 하루는 마당에 폼을 잡고 한참이나 앉아 있더니 물을 마시려고 수돗가에 잠시 앉은 재비를 잽싸게 낚아 채는 것입니다. 짝을 하나 잃은 재비에게는 다섯 마리의 새끼가 있었습니다. 암놈인지 수놈인지는 모르지만 제비 한 마리가 새끼 다섯 마리를 한 마리의 낙오도 없이 훌륭하게 키워 가을에 같이 돌아가는 것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또 하루는 논에서 나락을 베는데 고도리를 데리고 갔습니다. 고도리는 개구리와 메뚜기를 잡기 위해 온 논바닥을 뛰어 다녔습니다. 저는 열심히 나락을 베고 있었는데 그만 고도리의 꼬리까지 같이 뭉텅 잘라 버렸습니다. 그래서 고도리의 꼬리는 손 가락 한마디 정도가 잘려 나갔습니다. 우리나라 고양이 수놈은 다 자라면 집을 나가 들 고양이가 되는 것이 고양이로서 정상적인 일생입니다. 암 놈은 다 커도 집을 잘 나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고도리는 수놈이었는데도 죽을 때까지 대문 밖에도 잘 나가지 않은 특이한 놈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가 장에만 갔다 오시면 「강아지를 사왔냐」고 졸랐습니다. 어느날 어머니께서 장에 갔다 오셨는데 플라스틱 휴지통 안에 검정 강아지 한 마리가 들어 있었습니다. 저는 팔짝팔짝 뛰며 좋아했습니다. 제가 강아지를 사달라고 노래를 한지 거의 일년 만에 얻은 선물이었습니다. 8000원 주고 산 한 뼘 남짓한 이 암놈 강아지가 제가 처음으로 키워본 애완견입니다. 물론 똥개였지만 저에게는 그 어떤 명견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저는 당시 초등학생이었지만 개 이름을 외국 이름으로 짓는 것에 불만이 많은 상태였습니다. 저는 강아지에게 「재롱이」라는 예쁜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학교에서 한달음에 돌아와서 재롱이를 찾으면 이놈은 어떤 날은 볏 집 속에서 튀어나오고, 어떤 날은 밭에서 흙장난을 하다가 줄달음을 치면서 내려 옵니다. 저는 강아지를 자주 방에 들여놓고 안고 잤습니다. 그러다가 아버지께서 보시면 아버지는 강아지를 베개 잡듯이 집어 들고 창 밖으로 휙 던져 버립니다. 재롱이가 아버지에게 걷어차이고, 집어 던져지는 날이면 괜히 방으로 들였다는 후회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재롱이는 얼마나 똑똑한지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았습니다. 특히 눈치가 빠르고 충성심이 강했습니다. 친구와 칼 싸움을 하거나 가짜로 쿵후 대련을 하면서 제가 맞아서 쓰러지는 흉내라도 내면 재롱이는 친구에게 짖으면서 물듯이 달려듭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면 재롱이는 동구 밖 높은 곳에 앉아 있다가 날듯이 달려와 깡총깡총 뛰면서 반가와 합니다. 하도 반갑게 달려들면서 인사를 하기 때문에 제가 입은 옷은 금새 개발바닥의 흙이 묻어 더러워 집니다. 재롱이는 아침마다 제가 학교가는 것을 몹시 궁금하게 생각했습니다. 저는 학교에 따라오려는 재롱이를 떼어내는 것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돌을 던지기도 하고, 소리를 치고 하면 재롱이는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집에 돌아가는 척하다가 어느 사이 제 꽁무니 뒤에 바짝 다가와서 졸졸 따라 옵니다. 하루는
한강포럼 9월 강연 誌上 중계 韓中日 三國은 장기가 아닌 바둑을 두어야 한다 최서면(崔書勉) 在日국제한국연구원장은 지난 9월19일 오전 7시 세종문화회관 소연회장에서 한강포럼 주최로 월례 조찬 강연을 했다. 이 기사는 崔원장이 행한 강연 「오늘의 일본―일본인,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요약한 것이다. -------------------------- 崔書勉 국제한국연구원장 약력 1926년 강원 原州 출생. 연희전문 文科 수료, 충남大 대학원 문학박사, 단국大 명예문학 박사. 大東新聞 기자, 고아원 「聖방지거의 집」 원장, 서울천주교총무원 사무국장, 日本 아세아大 교수, 日本 도쿄 한국연구원 원장, 安重根 의사 숭모회 이사, 全國아리랑보존연합회 초대회장 역임. 現 국제한국연구원장, 한국몽골친선협회 회장, 韓日포럼 자문위원. 저서:「安重根 사료」, 「7년전쟁(임진, 정유왜란)」, 「몽골기행」, 「새로 쓴 安重根 의사」 등. 한일합방, 타당한 용어인가 얼마 전 휴전 50주년이 되는 날, 일본 언론계의 중진과 함께 식사를 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오늘이 휴전회담 50주년인데 그 동안 고생 많았다』는 말씀에 그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반세기나 되었나, 참으로 세월이 빠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때 저는 『휴전 50년은 어제처럼 느껴지는데, 일제 36년은 그보다 짧은데도 불구하고 왜 훨씬 길게 느껴지는 것일까, 이것이 바로 아무리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한일관계의 기본 같다』고 했더니 일본 언론인들도 『치욕(恥辱)의 1년은 치욕이 없는 10년보다 더 길다』고 동조해 주셨습니다. 그 치욕의 역사를 담고 있는 곳이 일본의 외교사료관(外交史料館)입니다. 그곳에는 우리가 갖지 못한 귀중한 자료들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그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한일 관계와 관련, 한국사람이 가장 많이 입에 올리는 말이 「한일합방(韓日合邦)」입니다. 이 용어가 타당한 것인가. 「합방(合邦)」이라 하면 두 나라가 연방국(聯邦國)을 만드는
1. 마징가 제트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정답 : 낫 참고 : 낫 하나면(나타나면) 모두모두 덜덜덜 떠네...무쇠팔 무쇠다리 로케트 주먹.... 2. 미닫이를 소리나는 대로 쓰시오. 정답: 드르륵 3. '적토마가 엄청나게 빨리 달린다'를 여섯 자로 표현하면? 정답: 따그닥 따그닥
예비역 육군 중장인 이병형(李秉衡·77) 초대 전쟁기념관장이 지난 9월23일 오전 6시50분 경기 성남시 분당구 이매동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1947년 육사 4기로 임관한 李 前 전쟁기념관장은 6·25전쟁에 대대장과 연대장으로 참전했다. 그는 6·25 때 백골부대 대대장으로 130여 차례의 전투 중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不敗의 名將」이었다. 휴전 이후, 그는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과 5군단장, 합참본부장, 2군사령관 등을 역임했으며 인민군의 휴전선 도발에 155mm 포탄 400발을 퍼부은 배짱있는 군인이었다. 그는 자주국방을 위한 방위산업의 최초 발상자이기도 했으며, 전쟁기념관 건립사업을 주도했다. 李장군은 「한국판 전쟁론(클라우제비츠)」으로 불리는 名著(명저) 「大隊長(대대장)」 「연대장」등 야전지휘관의 지휘철학을 담은 저서를 남기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용숙(金容淑·71)씨와 이용운(李龍雲) 다임러크라이슬러 이사 등 1남2녀가 있다. 2001년 3월 기자와 만난 故 李秉衡 장군은 『군인은 전쟁터에서 죽는 것이 참모습』이라고 말할 만큼 國軍의 존경을 한몸에 받은 참군인이었다. 1976년 제2군사령관을 끝으로 군복을 벗은 李장군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부인과 같이 은거해 왔다. 당시 기사 「은퇴의 美學」에서 기자와 나눈 대화 내용을 소개한다.
천혜의 낚시터 가평 중국섬 섬 안에 수로, 늪, 샛강 포인트 즐비 경기도 가평읍 바로 옆에 있는 중국섬. 북한강과 가평천이 만나는 곳에 토사가 쌓여 만들어진 삼각주다. 그런데. 이 중국섬에서 낚시를 해본 이들은 십중팔구 단골꾼이 된다고 한다. 우선, 경치 좋고 돈 안 들고, 차로 섬 곳곳을 누비며 포인트 바로 앞에 차를 대고 캠핑낚시를 즐길 수 있으니 이 만한 천혜의 낚시터가 어디 또 있을까. 어디 이 뿐이랴. 힘 좋은 강붕어들의 힘찬 입질로 찌가 벌렁 드러누우니 그 손맛 또한 이루 말할 수 없다. 섬이라지만 둑으로 연안과 연결돼 있고 그 안엔 물이 거의 흐르지 않는 저수지 같은 수면과 샛강수로와 늪도 있다. 요즈음 중국섬 하류쪽은 경춘전철 복선 다리공사가 한창이다. 이곳은 무더위가 물러갈 즈음 8~9월부터 시작되는 잉어낚시는 물론이고 장마 후 오름수위의 대물 강붕어낚시 꿈이 한참 영글어 가고 있다. 조황문의 가평낚시 031-582-7155.
가슴이 후련해지는 섬 산행 인천 舞衣島 호룡곡산-국사봉 종주 무의도는 영종도 인천신공항 서쪽 끝에 있다. 인천신공항은 영종도와 용유도는 섬 사이 바다를 ‘벽해상전(碧海桑田)’으로 바꿔 비행장을 닦았다. 동북아시아의 중심공항으로 그 역할을 다할 인천신공항은 영종도와 용유도, 그사이 작은 섬인 신불도와 삼목도를 연결하는 총연장 17.3km의 방조제를 쌓아 조성한 1,700만평의 부지에 건설됐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18배나 된다. 반 인공섬인 영종도 바로 코앞에 무의도에는 서해의 알프스라 불리우는 호룡곡산(虎龍谷山, 244m)과 국사봉(國師峰, 230m)이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경기도 인천시 중구 무의도동에 속하는 무의도는 섬모양이 춤추는 무희의 옷자락과 같다하여 얻은 이름이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배를 타고 오갔던 무의도는 영종도 서남쪽 끝으머리 잠진도 선착장에서 페리호를 타면 5분이면 건너간다. 모든 섬 산행의 멋은 산마루에 올라서서 사방으로 펼쳐지는 바다와 해안을 내려다 보며 걷는데 있다. 국사봉은 옛부터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터로 알려져 있다. 1957년 산꼭대기에서 금동불상과 수백개의 토우가 출토되기도 했다. 유서깊은 국사봉과 호룡곡산을 오르면 동쪽 바다 건너로 인천시가지가 보인다. 북쪽으로는 쉴사이 없이 뜨고 내리는 인천신공항을 드나드는 비행기들을 볼 수 있다. 해무(海霧)가 끼지 않는 맑은 날이면 북녘 땅 황해도 연백평야와 더 멀리 장산곶까지 보인다고 한다. 산치고 높이가 이백 몇미터라면 동네 뒷산 정도로 알지만 섬 산들은 해발 0m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산을 오르는데는 에누리가 없다. 육지의 400m-500m쯤 되는 산을 오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힘이 든다. 국사봉이나 호룡곡산도 마찬가지다. 야트막한 산이라고 깔보았다가는 큰 코 다친다. 게다가 산의 생김새가 평범한 육산이 아니라 아기자기한 돌산이다. 바위틈을 비집고 오르내리는 산길과 중간 중간에 늘어선 너럭바위, 마당바위, 부처바위, 호랑
아래 호주제에 관한 글을 읽고 독자분이 편지를 보내 왔습니다. 참고로 아래 편지를 보낸 독자분은 미국에 거주하는 여성으로 연세가 드신분입니다. 글을 일부 편집해서 실었습니다. --------------아래----------------- 이상흔 기자에게 오랫만입 니다. 호주제에 관한 글 잘 읽었읍니다. 요즈음 호주제 문제로 시끄럽고, 마침 추석이라 각 언론에서 명절 때면 시댁가서 제상 준비 하면서 노예처럼 일하기 싫다면서 목소리 드높이는 며느리들의 글로 넘쳐납니다. 나의 상식으로는 어안이 벙벙한 이야기입니다. 호주제 문제로 한국이 하도 시끄럽기에 인터넷을 뒤져서 관련 글을 자세히 읽어 보았으나 호주제에 대해 큰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호주제를 꼭 폐지 하여야만 하는 나쁜 제도는 아니란 생각이 들었읍니다. 만약 법적으로 여자에게 불이익이 있다면 고쳐 나가면 호주제 자체를 폐지하여 생기는 복잡함과 경제적 손실을 막을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모든 제도나 법이 완벽할 수는 없으니까요. 요즘 여권 운동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워낙 드세다 보니 국회의원이나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은 그들의 의견과 자신의 소신이 다른 것이 있어도 표 떨어 질까 봐 숨 죽이고 있는 현실을 보는 것도 웃기는 일입니다. 호주제가 완전 폐지되고 성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게 된다면 반 작용으로 보학(족보학)이 성하여 가족의 승계를 알려주는 족보 만드는 일이 더 극성을 부리리라 짐작됩니다. 역사란 것이 당장은 생산적이지 못한 듯 보이지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나라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가족의 역사 또한 중요한 게 아닐까요? 호주제 폐지와 함께 한 가족의 역사가 거의 말살될 것 같아 걱정입니다. 어려서 사랑방에 할아버지 심부름하며 익히 들어온 우리집의 내력과 외갓집 이야기, 진외가, 외외가 그 윗대 이야기들, 대추나무에 연 걸리 듯한 안동, 예천, 봉화, 영양 등 경북 북부 지방 양반가의 혼
大選후 다시 찾은 李弘圭옹의 자택 지난 9월16일 기자는 知人과 함께 서울 종로구 명륜동 2가 75번지에 있는 李弘圭(이홍규)옹 자택을 찾았습니다. 李옹은 한나라당 李會昌(이회창) 前 총재의 부친으로 작년 10월31일 향년 9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법조계에서는 剛直(강직)한 그를 「대쪽 검사」 또는 「척결 검사」라고 불렀지요. 기자는 李옹이 세상을 뜨기 6개월전인 작년 5월2일 李弘圭옹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아마 李옹이 만난 최후의 기자인 셈이지요. 李옹이 작고한 뒤 지금은 李 전 총재의 모친인 金四純(김사순ㆍ92) 여사가 홀로 집을 지키고 있습니다. 성균관大 앞에서 청과물상 젊은이에게 『李弘圭옹 댁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길 건너 골목 두번째 집』이라고 하더군요. 그는 선거철인 작년 연말과는 달리 요즘 李옹댁을 찾는 이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배 한 상자를 포장해 젊은이를 앞세우고 대문 초인종을 누르니 일하는 아주머니가 얼른 나와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오후 햇살이 한가로이 마당에 내려와 앉았고, 바둑이가 입구에서 영문을 모른 채 꼬리를 흔들었습니다. 百壽(백수)를 바라보는 나이였지만, 李옹은 작년 봄까지 건강하기가 청년 못지 않아 철봉뿐 아니라, 팔굽혀 펴기를 100번씩 할 정도로 건강했었다고 합니다. 李옹의 운동기구인 철봉이 주인을 잃은 채 마당 한쪽에 덩그러니 서 있더군요. 마루 한켠에는 「仲秋佳節 한나라당 대변인 朴振」이라고 쓴 洋蘭(양란) 화분이 놓여있었습니다. 작년에 이곳을 찾았을 때, 입구에서 기자를 반겨주던 金四純 여사는 남편 李弘圭옹이 누웠던 침대에서 누운 채 방문객을 맞았습니다. 지난번 침대에서 차가운 손을 내밀었던 李옹은 어느새 벽면 액자에서 일행에게 미소짓고 있었습니다. 日帝시대에 지어진 허름한 한옥집에 낡은 가구들은 집주인의 「淸貧(청빈)」을 無言으로 보여주고 있는 듯했습니다. 金四純 여사의 건강은 일 년전과는 달리 病色(병색)이 완연했습니다. 정감있는 낮은 목소리로 자갈자갈 이야
[추적] 史上 최대의 戰力증강사업 - 岐路에 선 육군 헬기 사업-자체개발이냐 수입이냐 개발·획득에 13조원, 戰力공백 7년을 감수하고도 다목적 헬기 자체개발을 추진하려는 까닭은? ● 국산화 명분下에서 거대한 낭비가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많다 ● 헬기수명 통상 30년… 한국군 공격헬기 코브라의 40%가 20년 이상 운행 ● 헬기 개발 선진국도 개발기간 20년 이상, 개발비용만 10조원이 넘어 ● 기획예산처, KMH 사업 KDI에 타당성 검토 의뢰… 「500대 이상 생산해야 경제성 있다」 ● 코브라 공격헬기는 야간엔 「장님」… 야간 및 악천후 작전 가능한 공격헬기 도입 시급 ● 反美와 햇볕에 눌린 공격용 헬기 도입사업(AH-X)… 2006년 주한미군의 「특수부대 해상침투 저지」임무 인수에 차질 우려 吳東龍 月刊朝鮮 기자 (gomsi@chosun.com) 建軍 이래 최대의 전력증강 사업 육군의 다목적 헬기(KMHㆍKorea Multi-purpose Helicopter) 사업 추진에 대해 군 안팎에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현재 육군 헬기사업은 KMH와 차기 공격용 헬기(AH-XㆍAttack Helicopter, X는 기종 미정을 뜻함) 사업 중 KMH 쪽으로 가닥이 잡혀 가는 듯한 양상이었으나 예산 당국에 의해 제동이 걸리고 있다. AH-X 사업은 現 코브라 헬기의 노후화와 야간 작전 능력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대형 공격 헬기를 해외에서 도입하기 위한 사업이다. KMH 사업은 現 500MD와 UH-1H의 노후화에 따른 후속 헬기사업으로 국내 기술로 헬기를 개발하자는 사업이다. KMH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사업 타당성 검토 보고서가 나온 뒤 추진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 국방부의 공식입장이지만, 이미 내부적으로는 추진 쪽으로 방향을 잡고 세부 추진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KMH는 사업규모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항공산업 발전과 육군 전력보강 및 증강에 매우 중요한 국
'지방선거 구인난' 국민의힘, 추미애에 맞설 경기도지사 후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