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강욱 Lee Kang Wook (b. 1976), Invisible Space_19027, 2019
mixed media on canvas
이강욱이 돌아왔다. 그것도 꽤 다른 얼굴로. 한국 신추상회화의 흐름에서 박서보, 이우환을 계보로 잇는 독보적인 작가로 평가받아온 이강욱(홍익대 미술대학 회화과 교수)의 개인전 《Gleaming in Serenity — 가장 고요하게 빛나는》이 4월 15일부터 5월 9일까지 서울 중구 페이토갤러리(동호로 220, 4층)에서 열린다. 회화 35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그의 30년 화업 전체를 한 자리에서 조망하는 드문 기회다.
전시의 구성이 예사롭지 않다. 2006년대 초기작 〈Invisible Space-Line〉 시리즈부터 올해 완성한 신작 〈White Gesture〉까지, 시간 순서대로 네 개의 시리즈가 한 공간에 모인다. 작가의 초기를 아는 컬렉터들 사이에서 희귀하다고 불리는 초기작과 가장 최근의 사유가 담긴 신작이 같은 벽면에 걸린다는 것 자체가 이번 전시의 핵심이다.
26살 최연소 수상, 그리고 런던으로
이강욱을 처음 미술계에 각인시킨 건 수상 경력이었다. 2002년 중앙미술대전 대상과 동아미술대전 동아미술상 등 여러 공모전에서 입상했는데, 당시 26세로 최연소 대상 작가였다. 그해 주요 공모전을 모조리 석권하다시피 한 그는 그러나 국내 화단에 안착하는 대신 런던행 비행기를 탔다. 첼시 칼리지에서 순수미술 석사를, 이스트런던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7년간 런던에 머물렀다. 그 시간이 지금의 작업 세계를 만들었다.
그가 런던에서 붙든 화두는 뜻밖에도 인도 고대 철학이었다. '우파니샤드'의 범아일여(梵我一如) 사상, 즉 보편적 정신(브라만)과 개별적 자아(아트만)가 결국 하나라는 개념이 그의 작업과 맞닿았다. 세포와 우주, 미시와 거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 대립하는 것들이 실은 하나라는 생각이 이후 모든 시리즈의 바탕이 됐다.
쌀알에서 시작해 흰색으로 덮다
초기 〈Invisible Space-Line〉 연작은 아크릴 물감의 반투명한 막 위에 연필과 샤프펜슬로 정교한 드로잉을 입히고 유리구슬과 큐빅을 부착하는 방식으로 제작됐다. 빛의 각도에 따라 입체감이 달라지는 이 그림들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세포 조직의 이미지를 담고 있었는데, 동시에 그것이 은하수의 풍경과도 닮아있다는 게 작가의 통찰이었다. 단색화의 무거움과는 다른, 시각적 환영을 만드는 그림이었다.
이후 '쌀알 시리즈'로 불리는 〈Invisible Space〉 연작에서 작가는 그 탐구를 한층 정제된 언어로 다듬었다. 화면 전체에 흩뿌려지거나 군집한 유기적 단위들 — 쌀알 형태 — 이 서로를 당기고 밀며 공명하는 공간을 만든다. 캔버스 위에 세포 이미지를 전사하고 아크릴을 여러 번 덧칠해 이미지를 흐리게 만든 뒤, 다시 펜과 연필로 드로잉하고 유리구슬을 붙이는 과정은 명상에 가까운 수행이다.
2015년을 기점으로 작업의 무게중심이 이동한다. 〈Gesture〉 시리즈에서 이강욱은 자신의 신체를 전면에 세웠다. 작가의 신체를 통한 행위성이 강조된다는 점에서 단색화의 계보를 잇되, 색이나 재료의 물성 대신 톤과 레이어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추상회화'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포의 분열과 발아 같은 리드미컬한 움직임이 화면을 채우고, 수많은 줄거리가 네트워크처럼 얽힌다.

이강욱 Lee Kang Wook (b. 1976), White Gesture_25066, 2025
mixed media on canvas, 80x130cm
그리고 이번 전시의 중심에 놓인 신작 〈White Gesture〉. 이 시리즈는 얼핏 보면 이전 작업들의 후퇴처럼 읽힐 수도 있다. 화려한 색의 층위 위에 다시 겹겹이 흰색을 덮어씌우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의 의도는 그 반대다. 덮음으로써 더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 음악으로 치면 기본 진동 위에 겹쳐지는 조화로운 울림, 이른바 '배음(倍音)'의 회화다. 표면 너머에서 배어나오는 여운, 보이지 않는 것의 존재감이 핵심이다. 〈Gesture〉가 에너지를 바깥으로 발산했다면, 〈White Gesture〉는 그 에너지를 안쪽으로 거두어들인다.
국립현대미술관부터 현대자동차까지
이강욱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호암미술관 등 주요 미술관과 외교통상부, 한국전력, 현대자동차, 삼성의료원, JW메리어트호텔 등 국가기관과 기업, 병원에 두루 소장돼 있다. 2017년 아트바젤 홍콩에 참가했고,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미국 뉴욕, 싱가포르, 도쿄 등 국내외에서 30회가 넘는 개인전을 열었다.
갤러리 측은 "이번 전시는 작가의 네 개 시리즈를 처음으로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자리"라고 설며했다. 특히 초기작 〈Invisible Space-Line〉은 컬렉터 시장에서도 좀처럼 나오지 않는 희귀 작품으로,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되는 것들이 포함돼 있다. 전시는 5월 9일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