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군의 공습으로 사망한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왼쪽)와 그의 후계자로 거론되는 모즈타바 하메네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숨진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의 둘째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차기 최고지도자로 선출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영국에 본사를 둔 이란 반(反)정부 매체인 이란 인터내셔널은 3월 3일 소식통들을 인용, 최고지도자를 선출하는 전문가 위원회가 모즈타바를 새로운 최고 지도자로 선출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도 같은 날 이란 당국자 세 명을 인용해 전문가회의가 모즈타바를 최고 지도자로 선출하는 방안을 심의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 지도자 되려는 모든 이는 결국 죽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모즈타바가 하메네이의 후계자가 될 것이라는 보도는 거의 20년 전부터 있어 왔다. 그는 공식적인 직책을 맡지 않은 신학자이지만, 실제는 혁명수비대의 바시르민병대의 실질적 수장으로 반정부 시위를 강경 진압해 온 배후라는 관측이 많았다. 모즈타바가 이란 최고지도자가 된다면, 이란이슬람공화국은 ‘공화국’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는 부자세습을 하게 된다.
현존하는 세습공화국들 - 북한, 아제르바이잔, 토고
하지만 ‘공화국’이면서도 부자세습을 한 나라들은 의외로 많다. 대표적인 것이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뒤를 이어 김주애로의 4대 세습을 추진하고 있는 소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현직 국가 지도자 중에서는 아제르바이잔의 일함 알리예프 대통령이 아버지로부터 권력을 물려받은 세습 독재자이다. 그는 2003년 아버지 헤이다르 알리예프 밑에서 총리를 맡으면서 후계자로 공인됐고, 같은 해 아버지가 죽은 후 대통령직을 물려받아 지금까지 재임하고 있다. 헤이다르 알리예프는 소련 시절 공산당 정치국원을 지냈고, 한때 소련공산당 서기장으로 거론되기까지 했던 거물 공산주의자였다. 그는 소련 붕괴 후인 1993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10년간 재임했다.
시리아-54년간 부자 독재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세습 독재자들은 더 많았다. 2024년 권좌에서 축출된 바샤르 하페즈 알 아사드는, 2000년에 아버지 하페즈 알 아사드로부터 권력을 물려받았다.
하페즈 알 아사드는 1970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 30년간 절대권력자로 군림했던 인물. 1982년 하마에서 일어난 반정부 시위를 독가스 등을 사용해 잔인하게 진압해 악명을 떨쳤다.
원래 바샤르의 후계자로 거론됐던 것은 장남 바세르였다. 하지만 그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하페즈는 영국에서 안과의사를 하고 있던 바샤르를 후계자로 낙점했다.
바샤르가 35세의 젊은 나이로 권좌를 이어받자, 시리아 국내외에서는 서구 세계를 체험한 바샤르가 개혁과 민주화의 길로 나갈 것이라는 기대가 생겨났다. 바샤르는 실제로 점진적인 개혁을 추진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2011년 ‘아랍의 봄’의 여파로 내전이 일어나자 반정부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진압하면서 민주화시위는 내전으로 번졌다. 바샤르는 IS 등 반정부세력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이란과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이후 13년을 버텼으나, 2024년 이슬람 무장단체 하야트타흐리르알샴(HTS)가 중심이 된 반군에게 수도 다마스쿠스가 함락된 후 러시아로 망명했다. 반군은 하페즈 알 아사드의 영묘(靈廟)에 불을 질러 부자 독재 54년에 대해 앙갚음했다.
아프리카의 세습 독재자들
아프리카에서도 부자 세습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1975년 한국을 방문해 한국인들에도 널리 알려진 오마르 봉고 온딤바(1967~2007년 재임) 가봉 대통령은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줬다.
오마르 봉고의 아들 알리 벤 봉고 온딤바(2009~2023년 재임)는 아버지 밑에서 집권 민주당 정치국원, 외무부·국방부 장관, 부통령 등을 역임한 후, 오마르 봉고 사후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부자가 57년에 걸쳐 장기 독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가봉이 산유국이어서 아프리카 국가로서는 비교적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었고, 석유 수입을 통치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2023년 군사쿠데타로 실각된 후 반역죄로 체포되었으나, 2025년 석방되어 앙골라로 망명했다.
30년 이상 내전을 치르고 있는 콩고민주공화국(옛 이름 자이레)에서도 부자가 권력을 세습했다. 모부투 독재 정권에 맞서 게릴라 활동을 벌였던 로랑 데지레 카빌라는 1997년 정권을 잡는데 성공했지만, 불과 4년 후 경호원에게 암살당했다.
롤랑 카빌라가 암살된 후, 30살의 나이로 군 참모총장 자리를 맡고 있던 조셉 카빌라가 대통령이 됐다. 그는 콩고민주공화국 내전에 개입해 온 르완다 등 이웃 나라들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콩고민주공화국의 희귀 자원 확보를 위해 정치적 안정을 바라는 미국·유럽 여러 나라의 지원에 힘입어 2019년까지 18년간 집권했다. 그의 집권 기간은 부정 선거, 인권 탄압 등으로 얼룩졌다.조셉 카빌라는 대통령 임기 종료를 앞둔 2016년을 전후해 권력 연장을 획책했으나, 국내외의 반발에 직면, 결국 2019년 권좌에서 물러났다.
이후에도 조셉 카빌라는 종신 상원의원으로 국회 다수당인 콩고공동전선(FCC)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으나, 치세케디 정권과 갈등을 빚은 후 2025년 군사법원의 궐석재판에 회부되어 반역죄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현재는 야당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주려 했지만, 그 이전에 시민봉기로 축출되는 바람에 미수(未遂)에 그친 경우도 있다.
1981년부터 2011년까지 30년간 집권하면서 ‘현대의 파라오’로 불렸던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는 아들인 가말 무바라크를 집권 국민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으로 임명하면서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주려 시도했다. 하지만 2011년 아랍의 봄으로 정권이 무너지면서 부자 권력세습을 몽상으로 끝났다.
42년간 철권 통치를 했던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 (1969~2011년 재임)도 말년에 차남인 사이프 알 이슬람 카다피에게 권력을 물려주려 한다는 설이 돌았으나, 역시 아랍의 봄으로 처참한 죽음을 맞으면서 현실화되지 못했다.
중남미의 세습 독재자들 - 아이티와 니카라과
중남미에서도 부자가 권력을 세습한 경우가 있다.
니카라과에서는 소모사 일가가 1937년부터 3대 52년에 걸쳐 족벌(族閥) 통치를 했다.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가르시아는 민중주의자인 아우구스토 산디노를 살해하고 권력을 잡은 후 1937~1947년, 1950~1956년 대통령을 지냈다. 그가 죽은 후에는 아들 루이스 소모사 데바이예가 1956~63년 대통령을 지냈다. 1967년부터는 그의 동생 아나스타시오가 그 뒤를 이었으나, 1979년 7월 산디니스타전선이 이끄는 민중봉기로 실각했다. 그는 1980년 9월 망명지인 파라과이의 아순시온에서 산디니스타 정부가 보낸 특공대의 공격을 받고 사망했다.
지금은 정부가 완전히 와해되고 갱단이 지배하는 지옥이 되어 버린 카리브해의 빈국 아이티에서는 뒤발리에 부자가 2대 29년에 걸쳐 독재정치를 했다.
‘파파 독’이라고 불린 프랑수아 뒤발리에는 미국에서 공중보건을 공부한 의사 출신 정치인으로 보건노동부 장관 등을 지냈다. 한때 쿠데타 정권에 맞서 싸우기도 한 ‘민주투사’였고, 소외 계층을 위해 의료 활동을 벌인 자상한 의사이자, 카리브해 흑인들의 전통종교인 ‘부두교’을 연구한 문화인류학자이기도 했다. 이 시절 그는 그를 경외하는 빈민들로부터 ‘파파 독’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국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가난한 흑인들의 지지를 받아 1957년 대통령이 된 그는 혼혈 엘리트 층이 독점해 왔던 정부와 군의 요직들을 흑인들에게 개방하고, 서민을 위한 복지를 확충하면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잔혹한 독재자로 변신했다. 그는 부두교 신화에서 차용한 ‘통통 마쿠트(마쿠트 아저씨)’라고 불리는 비밀경찰을 앞세워 공포정치를 자행하고, 외국인 사제들을 추방하면서 교회를 장악했다. 부두교 제사장의 모습으로 의식을 집전하는가 하면, 정적들을 고문하는 모습을 직접 지켜보았다는 엽기적인 소문이 돌기도 했다. 1964년에는 종신대통령이 됐다.
1971년 ‘파파 독’이 죽자 19살이던 그의 아들 장 클로드 뒤발리에가 권좌를 물려받았다. 1972년 12월 2일자 《조선일보》에는 ‘베이비 독 뒤발리에’라는 8단짜리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에 그는 “스포츠용 승용차와 미인(美人) 수집벽, 문맹(文盲) 85%에 군림하는 21세 뚱보”로 소개됐다. 이 기사에는 한 손에 권총을 들고 어머니, 아내, 자식과 나란히 선 ‘베이비 독’ 뒤발리에의 사진이 함께 실렸다.
‘베이비 독’은 1985년 식량난에 항의하는 폭동이 일어난 후 점점 궁지에 몰리다가 결국 이듬해 망명길에 올랐다. 이후 망명지 파리에서 화려한 생활을 하다가 재산을 거의 잃고 빈털터리가 되었다. 2011년 귀국했으나 횡령 등의 혐의로 체포, 기소되었다. 2014년 아이티 대법원은 그의 집권 기간 중 있었던 반인도범죄 등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으나, 8개월 후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좋은 결과를 가져온 부자 세습 - 대만과 싱가포르
이렇듯, 부자 세습은 당사자에게나 국가를 위해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은 극빈국가,실패국가, 그리고 내전 중인 국가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국가를 위해 좋은 결과를 가져온 부자 세습도 있었다.
1928~1975년까지 중화민국(대만)의 절대 권력자였던 장제스(蔣介石)이 사망한 후 권좌를 물려 받은 장징궈(蔣經國)는 장제스 생존시부터 국방부장(국방부장관), 행정원장(총리)을 지내면서 후계수업을 받았다. 1978년 총통이 된 후에는 국제적 고립 속에서 경제발전을 이룩하는 한편, 대륙에서 패퇴한 후 40년 가까이 이어져온 계엄령을 해제하고, 대만 출신인 리덩후이(李登輝)를 후계자로 지명하는 등 민주화로 가는 길을 닦았다.
싱가포르의 경우는 조금 특이하다. 국부(國父)인 리콴유(李光耀‧1959~1990년 재임) 총리의 아들인 리셴룽(李顯龍‧2004~2024년 재임)이 바로 권력을 물려받지 않고 14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서 총리직에 올랐기 때문이다.
리셴룽은 군에서 경력을 쌓다가 32살 때 육군 준장으로 전역한 후 정치가로 변신했다. 국방부 장관, 부총리 겸 통상산업부 장관 등을 지냈고, 아버지의 후임인 고촉동 총리 아래서 재무부 장관, 중앙은행 총재 등을 역임한 후 2004년 총리가 됐다. 그는 재임 중 아버지의 뜻을 이어 싱가포르를 1인당 국민소득 7만 달러 대의 일류 선진국으로 도약시켰다. 2024년 웡춘차이(로렌스 웡)에게 총리 자리를 물려주고, 선임 장관으로 물러앉았다. 리셴룽의 경우, 정계 입문에서 ‘아빠 찬스’가 다소 있었을지는 몰라도, 정계 입문 후 충분한 경력을 쌓으면서 실적을 바탕으로 총리 자리까지 올랐고, 선거에 의해 신임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단순히 ‘부자 세습’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렇듯, 부자 세습은 대개의 경우 권력자 자신이나 국가에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비극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대만과 싱가포르 정도이다.
두 나라 모두 경제발전의 결과 탄탄한 중산층이 형성되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대만은 이를 바탕으로 3차례에 걸쳐 여야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는 정상적인 민주국가로 이행할 수 있었다. 싱가포르는 여전히 인민행동당의 권위주의 체제 아래 있지만, 이는 집권당이 실적을 바탕으로 야당을 압도하고 있는 상황이라 ‘일당독재’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또 대만의 장징궈는 말년에 이르러 “더 이상 부자 승계는 없다”면서 자신의 대에서 세습을 끝내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리셴룽의 경우는 올해 39세인 아들 리홍이(李鴻毅) 정부기술국장이 주목받고 있으나, 30대 초부터 요직을 맡으며 후계 수업을 했던 리셴룽과는 달리 아직까지 뚜렷한 정치적 행보를 보이지는 않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