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리 부인은 어떻게 라듐을 분리했을까

서로 다른 두 과학 분야서 노벨상 받은 유일한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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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리 부인.

1902년 4월 20일, 파리의 한 실험실에서 마리 퀴리와 피에르 퀴리는 수 톤의 피치블렌드 광물을 정제해 0.1g의 순수 염화라듐을 분리했다. 라듐의 존재를 이론적으로 확인한 지 4년 만이었다.


라듐(Ra)은 원자번호 88번 알칼리 토금속이다. 자연 상태에서 우라늄이 붕괴하는 과정에서 극미량 생성된다. 피치블렌드 1톤에 포함된 라듐은 약 0.14g에 불과하다. 강한 방사선을 방출하며, 어둠 속에서 청백색 빛을 낸다. 반감기는 1600년이다. 방사선 노출 시 암을 유발하지만, 역설적으로 암세포를 파괴하는 방사선 치료에도 활용됐다. 현재는 더 안전한 방사성 동위원소로 대체됐다.


마리 퀴리는 1867년 11월 7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마리아 스크워도프스카. 제정러시아 치하 폴란드에서 여성은 대학에 진학할 수 없었다. 가정교사로 돈을 모아 1891년 파리 소르본대학에 입학했다. 1893년 물리학, 1894년 수학 학위를 각각 수석과 차석으로 취득했다. 같은 해 피에르 퀴리를 만나 1895년 결혼했다.


1896년 앙리 베크렐이 우라늄의 자연방사선을 발견했다. 마리 퀴리는 이를 박사 논문 주제로 삼아 피치블렌드를 연구하던 중, 우라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강한 방사능을 포착했다. 1898년 두 사람은 폴로늄과 라듐을 잇따라 발견했다. '방사능(radioactivity)'이라는 용어도 마리 퀴리가 처음 만들었다.


라듐은 자연에서 유리 상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마리 퀴리는 조수 앙드레 드비에른과 함께 수 톤의 피치블렌드를 갈고, 녹이고, 거르고, 결정화하는 과정을 수천 번 반복했다. 실험 내내 손 염증과 만성 피로에 시달렸다. 방사선 피폭의 초기 증상이었으나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1902년 4월 20일, 마침내 0.1g의 순수 염화라듐을 얻었다.


1903년 12월 10일, 마리·피에르 퀴리와 베크렐은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마리 퀴리는 노벨 과학상을 받은 첫 번째 여성이었다. 1906년 피에르가 마차 사고로 사망했다. 마리는 소르본대학에서 남편의 교수직을 승계했다. 소르본대 첫 여성 교수였다.


연구는 계속됐다. 1910년 순수 금속 라듐 분리에 성공했고, 1911년 노벨 화학상을 단독 수상했다. 서로 다른 두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유일한 인물로 지금도 남아 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마리 퀴리는 이동식 X선 촬영 차량을 직접 설계했다. ‘프티 퀴리(Petit Curie)’로 명명된 이 차량은 20대 이상이 전장에 투입됐고, 약 100만 명의 부상병 촬영에 활용됐다.


마리 퀴리는 오랜 방사선 피폭으로 재생불량성 빈혈을 얻었다. 1934년 7월 4일 프랑스 알프스의 요양원에서 66세로 사망했다. 그의 연구 노트는 지금도 방사능이 남아 있어, 열람하려면 납 방호복을 착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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