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읽는 시집 ⑫] “우리 시대 백석 시인의 현현”…송진권 시인의 네 번째 시집 《그림자놀이 하던 날은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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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권 시인의 네 번째 시집 그림자놀이 하던 날은 가고(창비)우리 시대 백석 시인의 현현이라는 평가에 걸맞게, 시간의 퇴적 속에서 납작해진 언어가 아니라 살아 있는 현장의 말과 감정을 되살려낸다. 문학평론가 김준현의 지적처럼 이 시집은 과거의 텍스트를 반복하는 데 머물지 않고, 자연 속에 잠재된 옛말을 소환하고 복원함으로써 한 시절의 감각을 현재로 불러낸다.

 

서사적으로 흐르는 시편들은 충청도 방언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며, 시의 심층에서는 잉걸불처럼 오래 타오르는 생명의 의지를 드러낸다동시에 도회적 감각과 거리를 두고, 역사 의식과 향토적 서정에 뿌리내린 시심이 뜨겁게 살아 움직인다. 그 뜨거움은 단순한 정서의 고조를 넘어 생명의 잉태를 연상케 하는 밀도로 응축돼 있다.

 

지금도 고향에 머물고 있을까 하는 시인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고향 사람들과 그 기억 속에서 살아가려는 시인의 태도는, 결국 이 시집을 관통하는 힘이다. 사라져가는 삶의 결을 향토 언어로 붙잡아내려는 의지가 문학적 형식으로 완성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송진권 시인은 충북 옥천에서 태어나 2004년 창비신인시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자라는 돌》 《거기 그런 사람이 살았다고》 《원근법 배우는 시간, 동시집 새 그리는 방법》 《어떤 것등을 냈다. 천상병시문학상, 고양행주문학상, 박재삼문학상, 백석문학상을 수상했다.

 

복사꽃 한두점 핀 양철 지붕이구요

복숭아나무 가지엔 몸빼가 걸려 펄럭이구요

몸빼 바지 꽃무늬 넘실넘실 번지구요

유리창 안쪽엔 라면과 국수가 쌓였구요

녹이 슨 화목 난로는 묵묵부답이구요

 

허리가 아파 복대까지 찬 할아버지가

된장 냄비 올려진 밥상을 겨우 들고 부엌에서 나오구요

풍을 맞아 한쪽이 어줍은 할머니가

삐뚤빼뚤 공책에 안말례라고 이름을 큼직하게 쓰고 있구요

벽엔 학사모 쓴 아들과 손주들 사진이 주런하고

젊어 제주도 놀러 가 말 타고 찍은 사진이 걸렸구요

 

이제 손님도 없구요

간판 없는 구멍가게 머루 넝쿨이 새순을 내밀었습니다

한쪽이 기운 상다리를 송판 괴어 돋우며

일루 와 저녁 안 잡솼으면 같이 먹어

극구 손을 저으며 나오는 유리문 안쪽

 

가로등 불빛만 환한 데서

두 내외가 오래오래 밥을 먹습니다

신들의 황혼전문

 

시집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서사의 힘. 다큐의 한 장면처럼 간판 없는 시골 구멍가게를 시적 언어로 포착해 구현하는 신들의 황혼은 한편의 수채화 같은 서사가 느껴진다한 장면 안에 시간과 관계, 기억을 동시에 압축해 넣은 구성으로 읽힌다. 양철 지붕과 복사꽃, 몸빼, 녹슨 화목난로, 허리 굽은 노인, 기운 상다리 같은 사물들은 각각의 소품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 집의 오래된 삶을 이루는 기억의 층위로 기능한다. 이 때문에 시는 수채화처럼 부드러운 정서에 그치지 않고, 닳고 녹슨 생활의 표면을 집요하게 더듬는 다큐멘터리적 질감을 획득한다.


형식적으로는 “~구요”의 반복이 두드러진다. 단순한 구어체의 재현이 아니라 장면을 한 겹씩 쌓아 올리는 호흡이자 시선의 이동 방식으로 작동한다. 독자는 문장을 따라가며 카메라가 천천히 이동하듯 집 안팎을 훑게 되고, 그 과정에서 사물들은 정지된 배경이 아니라 살아 있는 언어의 박동 속에 배열된다.

 

낭구해 오라고 하면 어디서 죄 옻나무만 해 와서 불 때고 나면 밤새 온몸이 가려워서 잠을 못 자 피가 나게 긁어가며 인자부터 산에 가믄 당최 옻나무일랑 벼 오지 마시오 해도 드문드문 옻나무가 섞여서 또 옻이 올라 얼굴이구 어디구 죄 진물이나서 못 살아 밤새 그렇게 잠 못 자구 긁어대면 이튿날 워딜 간다구 가서 개고기를 구해 와 뚝뚝 피가 듣는 고깃덩어리를 옻오른 디다 바르고 괴기를 삶아서 국물을 마시고 나믄 원제 그랬냐는 듯 씻은 드끼 낫거든 개하고 옻하고는 상극이라 상극 그래 그거 해 먹고 나있어 시방이야 하두 올라서 옻탐을 안 햐 하기야 그래 옻나무를 땠으니 그때 평생 오를 게 다 올랐는디 뭐

부부전문

 

잘려구 둔넜응께 누가 자꾸 부르더랴

시커먼 옷을 입은 팔대장승 겉은 눔 둘이서

막내 상렬이 친구라고 밥 좀 달라고

그래 밥이 없다니께 즈이끼리 해 먹는다고

쌀을 내달래서 내줬더니

정지에서 쌀을 씻는다 불을 땐다 하는데

불쑥 미서운 생각이 들어서 방으로 들어와 앉았드라네

 

그래두 꾀 하나는 잘 썼지

각중에 시커먼 눔들이 들이닥치니

가심이 벌벌 떨리구 손발이 각기 놀구

무시라 전화기를 붙들구 큰소리루다가 소리소리 해댔드랴

상렬이 아부지, 아이 상렬이 아부지

시간이 멫신디 아직두 안 와 으이

죽은 지 몇해나 되는 양반을 전화기루 부르니께

정지에서 소리가 뚝 끊겨

빼꼼히 내다보니께

밥을 그렇게나 많이 해놓구 그놈들이 내뺀겨

 

이웃에 자랑을 하던 이가

요양보호사가 점심나절에 집에 들어가니

샘가에 쓰러져 있더라고

그게 상렬이 친구덜이 아니구

저승차사여 저승차사

쌀은 뭐 한다고 내줘가지구

그 밥이 사잣밥이 되었다니께

늦게 온 손님전문

 

방언의 활용 역시 이 시집의 중요한 축이다. ‘부부늦게 온 손님같은 작품에서는 충청도 사투리가 단순한 지역색을 넘어 시적 긴장을 만들어낸다. 길게 이어지는 구술체 문장은 이야기의 리듬을 형성하고, 그 안에서 삶의 고통과 해학이 동시에 솟아난다. 옻오른 몸을 긁어가며 밤을 지새우는 장면이나, 저승차사를 손님으로 착각하는 대목은 민간 신앙과 생활 감각이 자연스럽게 교차하는 지점을 보여준다. 이런 시를 도시에 태어난 시인이 상상력으로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시적 방식은 과거를 단순히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자연과 삶 속에 내재된 옛말을 현재로 불러내는 작업에 가깝다. 김준현 평론가가 지적했듯, 그의 시는 특정 시대의 텍스트가 아니라 불변하는 자연의 언어를 복원한다. 그 언어는 혈연처럼 이어져 한 시대의 감각을 다시 현재의 독자에게 이식한다.

 

하 추운 날인데 뜨신 국말이밥이래두 먹구 가렴

 

고개 너머 모과나무 선 조막손이네 들러

 

아궁이 앞에서 몸이래두 좀 데우구 가렴

 

이 빠진 사기그릇에 술 한사발 하며

 

서리 묻은 날개래두 털구 가렴

 

불이나 쬐며 이야기래두 하다 가렴

울고 가는 저 기러기전문

 

갓 지은 밥 한그릇에

고들빼기김치 계란찜 간장 한중지가 전부였다

 

뜸을 더 들였어야 하는데

급해서 밥이 설었다고 했다

 

뜸부기 알을 안고 온 이를 따라온

어미 뜸부기가 밤새 문밖에서 울었다

 

밥이나 먹고 가라는 걸 뒤로하고 나왔다

둥둥 걷은 손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무리 그래두 기왕 차린 밥상인데……

 

산밑이라 조팝꽃이 울타리 안까지 들어온 집이었다

밥이라도 먹고 올 걸 그랬다

산밑 집전문

 

두 시는 모두 밥을 권하는 말로 시작하지만, 그 따뜻함이 단순한 인심의 표현에 그치지 않고 삶의 결핍, 정서적 그리움, 공동체의 온기를 함께 불러내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울고 가는 저 기러기는 권유형 반복과 방언적 어조로 환대의 정서를 드러낸다. “먹구 가렴”, “데우구 가렴”, “털구 가렴”, “하다 가렴처럼 같은 어미를 되풀이해 말의 리듬을 만들고, 그 리듬이 곧 정서의 온기가 된다.

 

산밑 집은 한 끼 밥상의 소박함 속에 미처 나누지 못한 정과 뒤늦은 후회를 겹쳐 놓았다. 겉으로는 조용한 밥상 이야기지만, 속에는 놓쳐버린 정과 뒤늦은 회한이 깔려 있다. “뜸을 더 들였어야 하는데 / 급해서 밥이 설었다는 대목은 밥의 실패가 아니라 마음의 조급함, 혹은 인간관계의 다정한 어긋남을 은유한다. 마지막의 밥이라도 먹고 올 걸 그랬다는 후회는 이 시의 정조를 가장 잘 보여주는 문장이다

 

밤새 무엇 무엇들이 웅크려 있던 법당 앞마당엔 바야흐로 어떤 기미가 있으매 뭐라 이름 붙이기도 뮛한 것들이 도사리고 앉았다가 여기저기로 뿔뿔이 몸 바꿔 달아나기 시작했다 소정리 저수지로 가풍리 저수지로 가라앉으며 숨은 것들이 더 멀리 장찬리 저수지며 개심리 저수지까지도 달아나고 더러는 호탄(虎灘)까지 날아가 물살에 숨죽이고 숨었다 장날 두부모 긋는 장사치처럼 생긴 미륵불은 이제 사람으로 내려와 요강을 뽀드득 소리가 나게 부셔서 사목재에 엎어놓 은 채 바위로 돌아가고 사미승이 법당에 불을 켜고 향을 올리고 채 깨지 않은 꿈자리 같은 별빛들을 싹싹 산 아래로 쓸어버리자 물마다 웅크렸던 무엇들이 안개로 몸을 바꾸어 산을 넘어 굼실굼실 똬리를 풀며 넘어오기 시작했으매 동쪽 땅에서 밤새 닦고 조이고 기름 친 번질번질한 불덩어리가 꿈틀꿈틀 솟구쳐 오르니 납작 앞에 엎드려 부복하던 탑이 무너질락 말락 하는 것이었는데 미륵불이 가늘게 눈을 뜨며 뭔 놈의 불꽃이 이렇게 잉걸 같냐고 씨월거리자 탑은 다시 천년의 탑으로 부처는 다시 부처로 좌정하는 것이었으니 선 잠 깨어 나온 나도 그만 어디 어디로 돌아가고만 싶더니라

용암사 해돋이전문

 

피한다고 피하고

도망친다고 도망칠 수 있것냐

눈을 벌걸게 뜨고 찾아댕길걸

되나가나 나부대지 말고

진득하니 쭝그리고 있으면

다 알아서 하실걸

 

내림이라 내림

내 운명을 진즉 안다는 듯

주워섬기는 여자의 말들이

산을 따라 아래로

아래로 쩌르렁 따라 내려왔다

고생고생 많이 했구나

말 안 해두 내 다 안다

다 알구말구

타고난 팔자를 어기니

사람이 어찌 팔자 도망을 하겄냐

오죽했겄냐

 

그려, 울어라 울어

너나 나나 다른 사람 살아주는 건 매일반이여

울어라 울어

속 시원하니 울어

같은 물이래두

논물두 되구

깊으나 깊은 골짝 폭포두 되구

소나기두 되구

보슬비두 되구

홍수가 되구

수수만리 흐르는 크나큰 물두 되나니

울어라 더 울어

나의 어린 신부분

 

용암사 해돋이나의 어린 신에서는 보다 원형적인 상상력이 펼쳐진다. 저수지와 안개, 미륵불과 탑이 어우러진 장면은 현실과 신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생명의 근원적 기운을 형상화한다. 시의 바닥에서 잉걸불처럼 타오르는 생의 의지가 읽힌다.

 

결국 시집 그림자놀이 하던 날은 가고는 사라져가는 정서들에 대한 애도의 기록이자, 그것을 다시 불러내려는 방언의 투쟁이다. 빠르게 소모되는 시대 속에서 송진권의 시는 느리고 오래된 것들의 가치를 되묻는다. 그 물음은 그저 향수가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을 다시 붙잡기 위한 문학적 서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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