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 주최로 ‘간첩은 누가 잡나?(박살난 대한민국 간첩수사,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를 주제로 한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자유민주연구원
1953년 형법 제정 이후 73년 만에 ‘간첩죄’가 손질됐다. 오는 9월 시행을 앞둔 형법 제98조 간첩죄 개정안의 핵심은 처벌 대상의 확장이다. 기존 ‘적국(북한)’에 한정됐던 간첩죄 적용 범위를 ‘외국 및 이에 준하는 단체’로 넓혀 우방국이나 제3국을 위한 간첩 행위와 산업 스파이까지 처벌할 수 있는 법적 토대를 마련했다.
그러나 현장의 표정은 어둡다. 수사 체계가 무너진 상황에서 법 개정만으로는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는 지적 때문이다.
2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 주최로 ‘간첩은 누가 잡나? 박살난 대한민국 간첩수사,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를 주제로 한 토론회가 열렸다. 자유민주연구원과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이 공동 주관한 이 자리에는 안보·법조·수사 분야 전문가들이 참석해 개정 간첩법의 실효성과 수사 체계의 문제점을 집중 논의했다.
토론회에서는 개정법이 여전히 포괄하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국가기밀의 정의가 지나치게 엄격하게 해석되면서 실제 간첩 활동이 처벌로 이어지지 않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국가기밀 개념을 명확히 규정하거나 별도의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가령 현재 사법 체계는 1997년 대법원 판례가 제시한 ‘비공지성(非公知性)’과 ‘실질비성(實質秘性)’을 기준으로 기밀 여부를 판단한다. ‘공개되지 않은 정보일 것’ ‘국가안보에 실질적 위협이 될 것’ 두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 기준은 역으로 악용되기도 했다. 사진작가 이시우 사건이 대표적이다. 군사시설을 촬영한 뒤 이를 인터넷에 공개해 ‘비공지성’ 요건이 상실됐고 결국 무죄 판단으로 이어졌다. 유 원장은 ‘공개게시판에 올리는 순간 기밀이 아니게 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대형 간첩 사건에서도 기밀 인정의 문턱은 높다. 왕재산·일심회 사건 등에서 기소된 기밀 혐의 가운데 유죄로 인정된 비율은 30% 안팎에 그친다.
날로 고도화하는 북한의 대남공작은 이러한 우려를 더한다. 유 원장은 김정은의 ‘신 대남전략’을 언급하며 “북한은 남북관계를 적대적 교전국으로 재정립하고 무력에 의한 영토 평정을 노골화하고 있다”면서 “겉으로는 통일 전략을 폐기한 듯 보이나 실제로는 ‘전조선 혁명’이라는 목표를 위해 간첩 공작을 더욱 공세적으로 펼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발적 간첩’ 못 잡아
또 다른 한계는 ‘자발적 간첩 행위’다. 적국 등의 ‘지령이나 사주 등 의사 연락’ 없이 개인이 독자적으로 기밀을 유출하는 경우, 현행 간첩죄로는 처벌할 수 없다. 이른바 ‘비(非)국가 행위자’ 영역이 법 밖에 남아있다.
현장에서는 이미 반복적으로 드러난 문제다. 2023년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설계 자료를 빼돌려 중국에 복제 공장을 세우려 한 사건, SK하이닉스 핵심 기술을 A4지 4000장 분량으로 유출해 중국 화웨이로 이직한 사건 모두 ‘국가(중국) 개입’ 입증이 쟁점이었다. 개정된 간첩법을 적용하더라도 외국 정부와의 연계를 입증하지 못하면 기존과 다를 바 없다. 최근 5년간 이렇게 해외로 유출된 산업기술 피해 규모는 23조 원에 이른다.
간첩수사, 2년째 기소 ‘제로’
이 가운데 간첩수사의 실태는 참담하다. 유동열 원장은 “국정원 대공수사권이 폐지되고 경찰이 수사를 전담한 이후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간첩 검거 및 기소 확정 사례가 단 한 건도 없다”면서 “대한민국 간첩수사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라고 비판했다.
이재원 변호사(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 회장)도 같은 맥락에서 안보수사 체계가 해체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과거의 인권침해 사례를 빌미로 수사권을 전면 박탈한 것은 국가가 스스로를 지키는 최소한의 수단을 포기한 국가적 자살 행위”라면서 “간첩수사 기능이 여러 기관으로 분산될 경우 책임성과 전문성이 동시에 약화될 수 있다”고 했다. 대공수사는 장기간 축적된 경험과 네트워크가 핵심인데, 경찰의 업무 폭주와 해외 정보망 부재, 수사 보안 유지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간첩수사 노하우 축적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얘기다.
토론회를 주최한 윤상현 의원은 “반도체·방산을 포함한 경제·기술 안보는 국익의 핵심 자산”이라면서 “정보기관의 사전 탐지 기능과 수사기관의 사후 대응 기능이 유기적으로 결합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전문성 실종된 안보경찰
수사 공백의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경찰 수사 체제의 구조적 한계를 지목했다. 유동열 원장은 인력 부족과 구조 왜곡을 문제를 꼽았다. 그는 “안보경찰 인력이 과거 대비 반토막 난 상태에서, 전체 안보경찰 중 실제 간첩수사 인력은 15%에도 미치지 못한다”면서 “일선 경찰서에서는 사실상 수사가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했다. 안보수사 지휘부의 70% 이상이 관련 경험이 없는 비경력자로 채워져 있어 전문성이 심각하게 결여돼 있다고도 평가했다.
박시준 법무법인 산우 전문위원(전 경찰청 안보수사대장)은 조직 구조 자체의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안보수사 조직이 일반 범죄를 담당하는 국가수사본부 산하에 편재되면서 보안이 생명인 안보수사의 특수성이 무시되고 일반 범죄 수사 지침이 강제 적용되고 있다”면서 “경찰서 단위에서 안보과가 사라지고 통합 운영되면서 안보 경찰들이 탈북민 신변보호 업무에 치중돼 실제 수사에는 손을 못 대는 주객전도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인사 측면에서도 안보수사 전문가들이 인사에서 소외되고 특진 등의 혜택이 일반 수사관에게 밀리면서 조직의 사기와 동력이 상실됐다고 언급했다.
정보 역량의 한계도 거론됐다. 유 원장은 “경찰은 독자적인 해외 방첩망이 없고 대북 정보 수집 및 분석 능력 및 사이버 교신 감청이나 암호 해독 등 과학정보 역량도 국정원에 비해 크게 제한적”이라고 했다. 박 전문위원 역시 “대북 정보 수집은 국정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해외 방첩망은 전무한 상태”라면서 “CIA·FBI 등 유관국 정보기관과의 공식·비공식 채널 구축이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구조적으로는 경찰이 법적으로 합법 활동만 가능한 조직이기 때문에 간첩 탐지 단계에서 필요한 도청·해킹 등 비정형적 수단을 활용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지적됐다. 유 원장은 여기에 정치권력의 영향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조직 특성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수사 공백은 더 커질 전망이다. 현 정부는 12·3 계엄 사태 당시 국군방첩사령부가 핵심 역할을 수행했다는 이유로 방첩사를 해체하고 기능을 여러 기관으로 분산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방첩 및 사이버 정보 기능은 가칭 국방안보정보원으로, 대공수사 기능은 군사경찰 지휘탑인 국방부 조사본부로 이관하는 방식이다.
유 원장은 “방첩사와 그 전신들이 쌓아온 간첩수사 등 대공수사 역량을 일거에 제거하는 것”이라며 “군사경찰이 간첩수사 노하우를 체득하는 데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될 것”이라고 했다.
정보·보안·수사 ‘3축 체제’
전문가들은 수사 공백을 메울 대안으로 정보와 수사 기능의 재결합을 공통적으로 주문했다. 황윤덕 전 국정원 대공수사단장은 현재 안보체계가 정보·수사 기능이 분리되고 조직 간 협력이 약화되면서 효율성이 크게 떨어진 상태라고 진단했다. 과거에는 정보 수집과 수사가 결합돼 있어 간첩 활동을 조기에 포착하고 대응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러한 통합적 구조가 무너졌다는 분석이다. 그는 “국가안보를 정보·보안·수사의 3축 체제로 구성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국정원 통합형 혹은 별도의 국가적 안보수사 기구 설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황 전 단장은 특히 ‘가외성(Redundancy)’의 원칙을 강조했다. 효율성만 따져 수사권을 한 곳에 모으거나 폐지할 것이 아니라, 기능의 중복과 중첩을 통해 북핵·간첩 공작 등 불확실한 안보 위기에 대비하는 것이 회복탄력성 측면에서 더 효과적이라는 주장이다.
유동열 원장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부활을 최우선 과제로 꼽으며, 경찰 내 독립적인 ‘국가안보수사본부’ 신설, 인력 확충, 해외 방첩망 구축, 정보역량 강화, 국제협력 확대 등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시준 전문위원 역시 독립적인 안보수사 조직 구축과 전문 인력 양성, 장기 수사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재원 변호사는 ‘방어적 민주주의’의 관점을 피력했다. 그는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세력으로부터 체제를 지키는 것이 방어적 민주주의의 본질”이라면서 “대공수사권 박탈은 그 법리적 기초를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했다. 방첩사 해체 문제에 대해서도 “12·3 계엄 가담을 빌미로 부대를 해체하는 것은 군의 보안·방첩 기능을 마비시키는 과도한 조치”라면서 “해체보다는 조직 문화 개선과 법적 근거를 대통령령에서 법률로 상향하는 방식의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