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투병 중인 김성민 전 자유북한방송 대표, 자전적 시집《병사의 자서전-시가 있는 이야기》펴내

두고 온 북한에 대한 추억, 탈북자의 고뇌, 대한민국에 대한 감사, 자유를 위한 투쟁, 암 투병 등에 대해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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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 전 자유북한방송 대표의 시집 《병사의 자서전-시가 있는 이야기》(북앤피플 펴냄)가 나왔다. 지난 20여년 간 대북단파라디오방송국 자유북한방송을 운영해 온 김 전 대표는 북한군 대위 출신. 북한군에 복무할 때는 예술선전대 작가로 활동했고, 1996년 탈북해서 1999년 입국한 후에도 틈틈이 시작(詩作)을 해 왔다. 김 전 대표의 아버지 김순석은 1950년대에 북한 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시분과위원장을 지낸 시인. 북한 체체의 속성상 체제 찬양시를 안 쓴 것은 아니지만, ‘사상성과는 거리가 먼 개인적이면서도 심미적인 시를 많이 썼다’는 평가를 받았고, 이 때문에 1950년대 말 비판을 받고 문단에서 밀려났다. 부자(父子) 2대에 걸친 시인인 것이다.

'시로 쓴 자서전'

 

책 제목 《병사의 자서전》은 이 시집에 실린 제대 병사(물론 시인 자신이겠지만)의 이야기를 담은 짧은 시의 제목인데, 나는 시인 자신의 삶 전체를 표현하는 말로 생각한다. 시인은 북에 있을 때에는 그 체제를 지키고 선전하는 병사였고, 대한민국에 들어온 후에는 자유의 가치를 전파하기 위해 싸우는 병사였다. 

‘자서전’이라는 제목처럼 이 시집 속의 시들은 시인의 어린 시절, 부모와 누이와 친구들에 대한 추억, 탈북 후 중국을 유랑하던 시절의 신산함, 대한민국에 들어와서 느낀 경이와 당혹감, 그리고 대한민국의 시민으로 뿌리 내리기 위한 몸부림, 탈북자들과의 어울림, 자유북한방송, 그리고 암 선고를 받은 후의 투병 생활 등을 노래하고 있다. 

올 봄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고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시인은 자신이 살아온 얘기를 남기고 싶어서 《월간조선》과 긴 인터뷰(2025.1~2월호)를 했고, 지금도 지나온 얘기를 기록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텨나가고 있다고 하는데, 이 시집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자서전이다. ‘시(詩)로도 자서전을 쓸 수 있구나’는 걸 처음 알았다. 그 중 몇 개의 시를 살펴보자.

 

'탈북의  의미'

‘구슬이 누나’라는 시는 참 아프다. 부모님을 모두 여읜 후에 시인의 손을 꼭 잡고 “이제부터 내가 엄마야”라던 시인보다 다섯 살 위인 누나, 결혼 한 후 ‘평양을 떠나 지방에서 살아도 교육자의 영예 떨치며 행복하다’고 했지만 ‘고난의 행군’ 시절에 장마당에 나앉아 있다가 10년만에 휴가 나온 동생과 조우하고 파랗게 질렸던 누나, 그 현실을 보고 분노하는 동생을 어떻게든 달래려던 누나에게 시인은 “어릴 적 날 안아준 당신처럼  힘겨웠던 순간에  당신을 안아주지 못했던 것”을 미안해하면서, “용서할 수 없겠지? 고향이고 조국이라던 당신께/ 말도 없이, 밤 고양이처럼 떠나버린 나를/원망하고 욕을 해도 할 말이 없어/인제 그만 나를 잊고 살아”라고 말한다.

‘탈북의 의미’라는 시에서는 “생존을 위한 짐승의 본능을 넘어 살아왔던 세상의 거짓에서 벗어나 세상과 마주한 눈물겨운 용기, 존재의 의미를 부여받은 인간의 경험과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역설에 맞선 일생일대의 모험이었고 사투였음을 고백합니다”라면서도 “동시에, 사랑하는 이들의 가슴 미어지는 이별이었고 나서 자란 고향 산천을 멀리한 인생의 도피였음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외아들인 내가 아니면 부모님 산소는 누가 지켜드릴까...지금도 고민의 멍에를 끌고 있습니다/자유를 향한 몸부림이었다고 더 이상 자신을 미화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고백한다.

‘어느날’이라는 시는 읽기에 따라서는 애련한 연시(戀詩)처럼 느껴진다. “바람이 내게 말을 걸었어/가볍게, 너무 슬프게/먼 곳에서 온 편지처럼 마음 문 조용히 두드렸어/흩날리는 낙엽을 거느리고/추억이란 이름의 길을 걸었어/....‘어디로 가는 거니?’ 지금도 기억나는 그 한 마디/바람은 말없이 눈가의 이슬을 닦아주었어.”내가 음악을 할 줄 안다면 곡을 붙여보고 싶은 시인데, 가만히 곱씹어 보면 연시가 아니라 북한을 떠나던 날 시인의 모습을 담은 시임을 알 수 있다.

아마 이 땅의 수많은 탈북자들 대부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러한 실존의 고뇌를 안고 사는 탈북자들을 향해 ‘도북자(逃北者)’니 ‘반도자(叛逃者)’니 하는 사람이 있다.

 

'신세계'

 

그렇게 해서 넘어온 대한민국은 시인에게 경이의 대상이다. 산에 나무가 있는 게 신기했고, 수도꼭지를 틀면 찬물 더운물이 콸콸 나오고, 버튼만 누르면 구들이 뜨뜻해지는 게 또한 신기했다 (‘신세계’). 시인에게는 탈북자에게 주어지는 임대주택을 찾아와 온갖 선물을 내밀면서 신문 구독을 권하는 신문사 외판원의 사탕발림조차 반갑고 놀라운 일이고, 시상(詩想)이 된다 (‘사람이 왔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빵에 대하여’라는 시를 연상케 하는 ‘쌀에 대하여’에서 시인은 “쌀을 살리자는 사람들이 있다/죽어가는 모든 것 위에 유독/쌀이 살아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노래한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 사람을 살리기 위해 ‘정조’와 쌀을 맞바꾸어야 했던 ‘고난의 행군’ 시기 북녘땅의 모습과 쌀이 남아도는 데도 “쌀을 살리자!”고 데모하는 남녘땅 농민(정확하게 말하면 농민운동가)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숫자의 의미’는 디지털 시대를 사는 남조선의 번잡함과 두고 온 북한 땅에 두고 온 기억을 버무린 시이다. 시인은 온갖 안전번호, 비밀번호, 인증번호, 주민증 번호, 마누라 전번을 기억해야 하는 세상을 살면서 문득 인민군 시절 총번호, 조선노동당 당원증 번호를 떠올리다가, 부모님 생일을 잊곤 하는 자신을 타박한다.


병마와 싸우며

 

갑작스럽게 찾아온 암이라는 병마와 싸우면서 쓴 것으로 보이는 시들도 있다. ‘미련한 자의 생각은 죄’라는 시도 아마 그 중 하나일 것이다. “괜찮아/난 아버지보다/오래 살았어/아버지보다/더 넓은 하늘을 품어 보았어/그렇게/ 스무 번만 말해/다른 이들에겐 이백번을 외쳐.” ‘100세 시대’니 뭐니 하는 시대에 오십대 중반의 나이에 암 수술을 받고, 그 암이 다시 도져서 이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내의 먹먹함, 억울한 심정이 느껴진다.

‘일기 쓰기’는 지나간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있는 최근 시인 자신의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최근부터 일기 쓰기를 다시 한다/오늘에 대해서가 아니라 지난날들에 대한 정리다” “잊음의 훈련이라 믿으며 작은 기억까지 되살려 낸다” “지나온 도망자의 여정과 그 벌판의 눈보라와/삶의 끝자락을 붙잡고 몸부림친 과거와 싸우고 또 싸운다”는 구절들에서 어떤 초탈(超脫)함이 느껴진다. ‘나도 저럴 수 있을까?’싶지만, ‘자화상4’에서 “방황하는 자신을 확인이라도 하듯/쓴 소주잔 빈속에 털어 넣을 때/저미는 아픔, 미어지는 그리움의 침묵 속에/삶의 의미, 그 한 조각이 노을에 젖는다”고 노래하는 시인의 모습에서는 ‘그 역시 속이 상할 때면 술 마시고 눈물 쏟는 게 나와 다를 바 없구나’ 싶어진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좋은 아침’이라는 시는 참 경쾌하다. “아침을 마시자/이 좋은 아침을/한 줄 햇살도 시원한 공기도/고맙다, 참 좋은 아침이다.” 언제 쓴 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시를 암 투병을 하면서 그래서 세상을 낙관하고 긍정하면서 쓴 시라고 생각하고 싶다.

 

'인간의 증명'

 

‘인간의 증명’이라는 시도 참 좋았다. “가진 것 위에/조금만 더 얹어주면 알 수 있다/사람이 무너지는 이유/나보다 높은 곳에 너를 세우면/또 하나 인생을 선물로 받는다.” ‘이 양반, 도통했네!’ 하는 생각이 드는 시다. 

그리고, 김성민을 아는 사람은 안다. 그가 그렇게 인생을 살아왔다는 걸.... 고향 땅을 떠나와서 외롭고 쓸쓸하게 사는 소외된 탈북자들에게 든든한 형님이자 오빠였다는 걸, 그 좁은 임대주택에 수십 명, 백 명의 후배 탈북자들을 불러들여 삽겹살 구워주느라 집안 도배를 몇 번을 다시 해야 했다는 걸, 그 바람에 부인이 무척이나 고생했다는 걸....

시인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은 소감을 담은 ‘소감, 동백장’에서 자기가 그렇게 살아왔다는 걸 슬쩍 고백한다. “단장하고/ 꾸며서 온 길 아님을/친구들은 잘 알 것이외다/술은 말로 마시고, 노래방에서/밤새 소리 지른 적도 있습니다/.... 부디 한 것이 있다면/뿌리 깊은 그리움을/같이한 것이외다. 나도 탈북자인 까닭에/외로움을 나누었고/기쁨과 슬픔은 언제나 나의 것이었습니다.”

 

"자유는/고향으로 안고 갈 우리의 맹세"

 

‘개명’이라는 시는 여러 번 이름을 바꾸며 살아야 했던 자신의 고단했던 삶에 대한 반추(反芻)이다. “개코같던 어린 날의 이름은/누군가의 이름과 같다고 해서 빼앗겨 버렸다”고 하는데, 문득 궁금해진다. 그 ‘누군가’가 누구일까? 혹시 ‘김정일’ 아니었을까? 시인은 이 시에서 “그래서 늘 하는 생각인데, 죽어서 남길 이름이 인제는 있어야겠다”고 노래한다.

후일 대한민국이 크게 잘못되지 않는다면, ‘김성민’이라는 이름은 잊히지 않을 것이다. 우선 그는, ‘어둠을 가르는 전파’라는 시에서 노래한 것처럼 자유북한방송 대표로써 20년 넘게 어둠과 싸웠고, 억압받는 이들을 위해 자유를 외쳤던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

진작부터 내가 좋아했던 시 ‘자유’에서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다름 아닌 내 것임에도/날 때부터 우리에겐 없었던 그것/시장통의 물건이 아니면서도/우리의 부모님들이 빼앗긴 그것/그것 없이는 살아도 죽은 목숨인/숨결이며 가치인 자유는/고향으로 안고 갈 우리의 맹세.”

김성민의 시 ‘자유’를 읽을 때마다 한국전 참전용사인 고(故) 윌리엄 웨버 대령의 말이 떠오른다.

“미국인, 영국인 상관없이 자유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의무가 있어. 그 의무는 자유가 없거나, 자유를 잃게 생긴 사람들에게 그 자유를 전하고 지키게 하는 거야. 우리가 한국전쟁에 참전한 것은 그 자유를 지키고 전달하기 위함, 즉 우리의 의무이지.

다만 우리가 너희에게 준 자유를 얻었으니 너희도 의무가 생긴 거야. 북쪽에 있는 너희 동포들에게 자유를 전달하는 것, 그것이 너희들의 의무야. 그 의무를 다했으면 한다.”

뜻하지 않게 고향을 버리고 와야 했지만, 대한민국 국민 김성민은 26년 동안 그 의무를 다하기 위해 싸워 온 투사였다. ‘어느 탈북자의 기도’에서 시인은 “나를 품어준 대한민국의 소중함을 꿈에도 잊지 않게 해 주소서”라고 노래했는데, 시인은 진심으로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걱정했던, 대한민국의 애국자였다. 정말 귀한 인생, 값진 인생이었다. 

선하고, 성실하고,한결 같은 사내 김성민

 

‘김성민’을 아는 많은 이들은 아마 ‘자유의 투사(프리덤 파이터)’로써 뿐 아니라, 선하고, 성실하고, 한결같고, 착한 시를 쓴 시인으로, 병마와 싸우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멋진 사내로 기억할 것이다. 

‘극과 극’이라는 시에서 시인은 ‘전 인민군 260군 부대 예술선전대 작가/현 대한민국 서울, 자유북한방송국 작가’라는 ‘극과 극’의 삶은 살았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참, 후회 없을 삶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라고 자부한다. 김성민이라는 남자는 그렇게 자부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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