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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년 4월호

두바이의 빛과 그림자 - 모래 위의 城 두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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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존재한다. 그 어두운 단면들을 극복하는 것이 그들의 과제가 될 것이고 또한 우리의 과제가 될 것이다.

황형준 서울大 정치학과
서울大 정치외교학과 동창회 편집국 기자. 외교통상부 주관 訪日대학생 대표단으로 일본 방문(2006).
  <나의 지식이 독한 懷疑(회의)를 구하지 못하고/내 또한 삶의 愛憎(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유치환, 「생명의 書」 중에서)
 
  내게 최초의 詩는 사막이었다. 詩는 의미의 함축성과 모호함으로 인해 내게는 언제나 사막처럼 황량하고 거칠었으며, 또한 공허했다. 그런 詩 중에서 가장 먼저 외운 詩가 유치환님의 「생명의 書」였다. 고등학생 때 교과서에서 봤을 법한 詩였지만, 재수생활을 하던 1999년 어디선가 이 詩를 다시 보고서야 마음을 울렸다고나 할까. 당시 나는 막 변환의 시기에 있었고, 자아와 철학이 싹트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사막에 가보고 싶었다. 가능하면 혼자서. 詩人의 상상처럼 끝없는 사막과 마주하며, 고독한 길을 걷고 싶었다. 정답 없는 물음을 되풀이하면서, 끝없이 걷고 싶었다.
 
  詩人처럼 사막을 보진 못했다. 겨울철의 사막은 뜨겁다기보다는 선선했고, 이미 사막 사파리란 관광상품으로 존재하는 사막은 더 이상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번뇌의 장소가 아니었다. 알라의 神(신)은 이미 티셔츠에나 박제되어 있었던 것이다.
 
  롤러코스터 같은 속도로 SUV 차량은 사막을 지나갔고, 중간 중간 쉬어가면서 나는 사막의 모래를 밟았다. 沙丘(사구) 너머엔 또 다른 사구가 있었고, 훈훈한 모래바람은 나를 간지럼 태웠다.
 
  차디찬 밤의 모래는 나의 의식을 깨웠고, 딸기향이 나는 벨리 댄스를 보며 물 담배(시샤)를 함께한 사막 속 만찬에서 나는 아라비안나이트와 하렘을 생각했다.
 
 
  서양세계와의 만남
 
  유목생활을 계속하던 두바이의 아랍族은 1960년대 석유를 발견하게 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조금씩 외부세계와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그 무렵 셰이크 라시드의 아들 셰이크 모하메드는 영국 유학생활을 통해 서양세계와 만나게 되고 조국의 발전을 위한 구상을 시작했을 것이다.
 
  그가 만났던 서양세계는 분명 아랍문명과 큰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근대 이후 세계의 발전을 이끌었던 것은 유럽문명이었고, 그들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자신의 문화를 어느 정도 서양의 틀에 맞춰야 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그가 본 풍족한 서양에 비해 조국의 사막은 척박한 땅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한 나라의 존경을 받는 위인이 되기 위해선 뜨거운 애국심 못지않게 비전을 제시하는 넓은 시야가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사막에서 젊은 시절의 셰이크 모하메드를 상상하며 다시 한번 느꼈다.
 
  상상 속 사막은 낭만과 철학적 질문이 자리 잡은 곳이었지만, 실체의 사막은 공허했고, 실제 그들은 시지프스와 같이 끊임없이 돌을 올려야 하는 삶의 고통과 수난을 겪지 않았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막의 상업화는 자연에 대한 침범일 수도 있고, 정신의 황폐화일 수도 있지만, 하나의 관광자원이자 국민들을 풍요롭게 만드는 「젖과 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뛰어난 지도자의 국민을 생각하는 愛民(애민)사상이 묻어나고, 자연환경마저 굴복시키는 인간의 굳은 의지가 드러나는 곳인 것이었던 것이다. 셰이크 모하메드는 사막에 詩를 지은 것이었다. 「팜 제벨알리」(두바이가 건설 중인 인공섬 프로젝트 중의 하나-편집자 注)에 새겨질 詩句(시구)처럼.
 
  내가 본 두바이는 끊임없이 「건설 중」인 곳이었다. 사흘에 한 층씩 올라간다는 버즈 두바이(세계 최고층 건물)는 이러한 두바이 건설현장의 정점에 있었다. 어떻게 모래 위에 저렇게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지어지고 있었을까?
 
  우리 말 「모래의 城」은 언제고 무너질 수 있는 부실한 것을 의미했다. 과연 두바이는 또 하나의 모래의 城은 아닐까 하고 나는 여행 내내 생각했다.
 
  세계의 선두를 선점하려는 전략이 두바이에서는 계속 되고 있었다. 「최초·최대·최고」를 통해서 사람과 자본을 끌어 모으려는 전략이 두바이 발전전략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사막 사파리를 체험 중인 대학생 두바이 체험단. 두바이 사막의 모래 입자는 한국 모래의 10분의 1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곱고, 빛을 받으면 붉은 빛을 띠기도 한다.

 
  모래의 城
 
  자본주의의 경쟁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두 가지의 길을 택하게 된다. 최고가 되거나, 최고가 아니거나. 『사람들은 1등만을 기억한다』는 말이 있듯이 누구나 최고가 아니면 잊혀지는 세상이다.
 
  하지만, 그것이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고 어떤 이는 주장한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발전과 성장은 한계가 있음을 인식해야 하고, 한계에 도달했을 경우 생겨날 대공황 등의 위험을 피해서 지속가능한 개발과 성장을 택해야 한다고 어떤 이는 주장한다.
 
  과연 두바이는 어떻게 될 것인가? 계속해서 성장의 길을 걸을 것인가 아니면 성장의 끝에서 추락하게 될 것인가?
 
  두바이는 王政(왕정)국가다. 셰이크 모하메드가 주인이고 그의 친척들이 국영기업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그 속에서 그나마 지도자는 비전을 가지고 詩的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기에 두바이를 세계인의 머리에 각인시킴으로써 결정적으로 국민들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리더십의 不在(부재)로 인해 우리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들 말한다. 그래서 모하메드의 리더십을 배우자고 하는데, 과연 모하메드는 존경받을 만한 지도자인가?
 
  모하메드는 여러 수식어들로 과장되고 치장되어 있다. 모든 과업이 지도자가 이뤄냈다고 하는 현지인의 말 속에서 왠지 우상화의 냄새가 느껴졌다. 현지인들은 스폰서 제도와 여러 복지제도로 인해 풍요로워지고 행복해졌다고 한다.
 
  그들의 국민이란 개념은 어디까지를 경계로 하는가? 길거리에는 현지인으로 보이는 사람보다는 외지인들이 많았고 내가 대화를 나눈 사람들은 역시 주로 파키스탄·필리핀人 등이었다. 식당 종업원, 택시기사, 사파리 운전기사의 일을 하며 두바이에서 체류하는 사람들.
 
  그들 중 두바이에 온 지 몇 년 안 된 사람도 있었지만, 두바이에서 태어났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두바이에서 태어났음에도 「현지인」으로 분류되지 않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셰이크 모하메드의 광명은 그들을 비추고 있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30여 년 전만 해도 두바이의 교통수단은 낙타가 전부였다. 지금은 자동차 홍수로 10분이면 갈 거리가 러시아워 때는 두 시간씩 걸리곤 한다.

 
  제3세계 노동자
 
  두바이를 방문하기 전 SBS 스페셜에서 두바이 노동자들의 생활을 조금이나마 보았다. 지속적으로 땅값이 상승해 숙소는 현장에서 두 시간 거리인 곳으로 밀려났고, 그들의 임금은 정부에 의해 계속 낮은 수준에서 억제되고 있었다. 그리고 「팜 아일랜드」(두바이의 인공섬 프로젝트 중의 하나-편집자 注) 건설현장에서 직접 본 노동자들은 파란 색 죄수복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분명 셰이크 모하메드의 국민은 아니었다.
 
  일정의 마지막 날 「수크 메디나 주메이라」(두바이의 복합 쇼핑몰-편집자 注)에서 자유시간을 즐기고 난 뒤,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택시기사에게 『왜 두바이에 왔냐』고 물었더니, 『돈을 벌러 왔다』고 한다. 『그래도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택시운전이 낫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그렇다』고 말했다. 역시 그들에게도 두바이가 기회의 땅이긴 한 것일까?
 
  두바이는 호화스러웠다. 富豪(부호)들에겐 천국이지만, 貧者(빈자)들에겐 지옥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200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오르한 파묵은 그의 소설들을 통해 서양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충돌이 터키 역사 속에서 어떻게 드러났는지를 표현해 왔다. 섞이고 변질된 문화 속에서 생기는 혼란은 서양과 이슬람이 혼재하는 두바이에서도 벌어질지 모른다. 이슬람 국가 사이에서 두바이는 「타락한 국가」라는 지탄을 받아왔다고 한다. 이슬람 문화에서 금기시되는 술과 여자 등의 향락을 경제특구에서는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두바이가 서양 자본의 유입으로 계속해서 건설 붐을 이어가고 있지만 혹시 테러의 위협에 놓인다면 순식간에 국경 없는 초국적 자본들이 신속하게 후퇴하지 않을까? 또 건설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제3세계 노동자들이 부동산 값 인상과 정부의 노동 임금 억제에 불만을 품고 순식간에 두바이를 빠져나간다면? 두바이는 완성되지 않은 흉측한 건물들만 덩그러니 놓인 유령도시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두바이에 거주하고 있는 해외 건설회사 설계사 정진모씨는 『한번 두바이의 명성이 알려진 이상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생각해 보면 그 말도 일리가 있다. 홍콩과 싱가포르도 관광과 서비스산업으로 먹고 사는 도시가 아니던가?
 
  두바이는 생명력이 넘치는 도시인가? 아니면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경계하는 바벨탑인가? 모래의 성과 같이 환상만 가득한 도시인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두바이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보았던 탓일까. 두바이를 방문한 뒤 여러 가지 의문들과 우리나라의 미래 등 고민을 안고 왔다. 결국 그것은 나에게 숙제로 남겨졌고, 공부할 거리를 얻고 돌아온 느낌이다.
 
  나는 계속해서 두바이 투어를 잊지 않고 두바이의 向方(향방)을 지켜보려고 한다. 두바이를 방문했던 때 보았던 두바이와 앞으로의 두바이를 계속 비교해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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