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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서울시 디자인기획관 임옥기

“‘디자인 서울’의 혁명,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글 : 조준우  월간조선 객원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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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디자인은 ‘필연’입니다. 해외 사례를 봐도, 디자인이 잘된 도시는 디자인 정책을 장기적으로 추진해 왔어요. 중간에 중단하면 도시가 과거로 회귀해 버립니다”

⊙ 작년 초 《뉴욕타임스》의 ‘올해 꼭 가봐야 할 도시’ 선정에서 서울이 세 번째로 꼽혀…
    ‘디자인 서울’의 시정목표 변함없어
⊙ 디자인 서울의 결정판인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는 뜨거운 감자… 현재 공정 60% 진행.
    “축소·변경 안 돼”

任玉機
⊙ 56세. 한국외대 경영학과 졸업. 행정학 박사. 행정고시 28회 합격.
⊙ 서울시 주택기획과장, 정책기획관·투자마케팅기획관 역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지켜보는 서울시 공무원의 마음은 착잡하다. 오세훈(吳世勳) 전 시장의 사퇴가 너무나 갑작스러웠기 때문이다. 전임 시장이 확신에 차서 추진하던 ‘한강 르네상스’와 ‘디자인 서울’ 실무자들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임옥기(任玉機·56) 서울시 디자인기획관은 ‘디자인 서울’ 정책을 가장 열심히 추진해 온 인물이다. ‘서울디자인재단’이 처음 출범할 때 초대 사무처장(2009년)을 맡았었고, 지난해 9월 열린 ‘2010 서울 디자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데 일조했다. 오 전 시장의 ‘디자인 서울’ 철학을 시민의 눈높이와 일치시키기 위해 땀을 흘린 많은 브레인 공무원 중 하나다.
 
  오 전 시장은 재임 시절, “디자인은 서울시 행정의 모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시장급 ‘디자인 총괄 본부장’ 자리를 만들어 서울대 미대 학장이던 권영걸(權寧傑) 교수,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 정경원(鄭慶源) 교수를 데려다 앉히기도 했다. 권·정 교수가 물러나고 현재 본부장 역할을 임 기획관이 대신하고 있다.
 
 
  위기에 처한 ‘디자인 서울’
 
  오세훈 전 시장이 사퇴하고 ‘디자인 서울’의 시정(市政) 철학은 어떻게 됐을까. 무뎌졌을까.
 
  임옥기 디자인기획관은 손사래를 쳤다. “‘디자인 서울’의 원칙은 여전히 서울시의 모든 사업에 적용돼, ‘사람 중심의 서울’, ‘지속가능한 도시 서울’을 만들어나가고 있다”며 “‘디자인 서울’은 여전히 시정운영의 기본 틀”이라고 했다.
 
  ―서울의 매력이 디자인을 통해 가시화됐다고 객관적으로 확인할 방법이 있을까요?
 
  “왜 없어요? 있지요”라면서 그는 “작년 초 《뉴욕타임스》가 서울을 ‘올해 꼭 가봐야 할 도시’로 국제도시 가운데 세 번째로 꼽았다”고 귀띔했다. 또 “영국의 유력 디자인 잡지 《월 페이퍼》 역시 뉴욕, 베를린, 로테르담, 이스탄불과 함께 서울을 세계 5대 디자인 도시로 선정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7월에는 유네스코가 ‘디자인 창의도시’로 선정한 일도 있다.
 
  서울시의 디자인 정책은 지난 9월 ‘인덱스 어워드 2011’의 공동체(community) 분야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인덱스 어워드’는 덴마크 왕실의 공식 후원을 받아 설립된 디자인 재단이 50만 유로의 상금을 내걸고 2년 주기로 개최하는세계 최대의 디자인 공모전이라고 한다.
 
  “왜 대상을 줬을까 알아보니, ‘디자인 서울이 인간의 삶을 향상시키는 디자인’ 이라는 관점에서 도시가 직면하고 있는 과제에 대한 도전과 디자인을 통한 해결능력, 그리고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라고 해요. 또한 ‘사회적 약자를 위한 따뜻한 디자인’, ‘안전을 위하는 디자인’, ‘저소득 계층에 필요한 디자인’ 등 이른바 서울의 ‘사회적 디자인’을 높이 평가한 것이라고 합니다.”
 
  ―‘사회적 디자인’이란 말이 무슨 뜻인가요? 선뜻 와닿지 않는데요.
 
  “사회적 디자인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애인 콜택시나 소외계층을 위한 이동진료실, 희망 플러스 통장 등의 시스템도 사회적 디자인의 좋은 사례입니다.”
 
  과거 서울의 간판은 ‘압축 성장’을 드러내는 상징이었다. 곳곳에 현수막과 선간판, 벽보, 전단이 넘치고 현란한 네온사인이 홍수를 이뤘다. 지난 2008년 5월 ‘디자인 서울 가이드라인’을 만든 뒤 서울의 외관이 바뀌기 시작했다.
 
 
  간판 정비하니 점포주는 표정관리
 
2007년 7월 3일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시청에서 ‘한강 르네상스 마스터플랜’을 발표하고 있다.
  ‘디자인 서울 가이드라인’은 거리의 벤치, 가로등, 이정표, 노점, 가판대 등 도시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에 일관된 디자인 기준을 제시한 것을 말한다. 간판 업주의 반발로 시행착오도 있었으나 지난 4년 동안 6만1000여 개의 간판이 세련되게 바뀌었다고 한다. 여기저기 세워졌던 간판도 12만여 개나 줄어들었다는 것이 임 기획관의 설명이다.
 
  ―간판을 교체하고 반응이 달라졌나요?
 
  “삼청동거리를 가보면 반응을 알 수 있어요. 처음엔 사업설명조차 안 들으려고 하던 업주들이 ‘탐나는 간판’을 보고 나중엔 ‘알아서 해 봐’라는 식으로 허락했어요. 간판이 바뀌고 삼청동을 찾는 사람들이 ‘재미있는 간판’, ‘예쁜 간판’이라며 사진을 찍어가는 일이 많아졌지요. 덩달아 매상이 올라갔는데 저희가 가서 ‘간판 바꾸니 더 좋죠?’라고 물으면 대답을 안 해요. 자존심이 있으니까 답을 안 하는 것이죠. 하하.”
 
  ―간판을 바꾸니 매상에 영향을 미친 모양이네요.
 
  “어디 그뿐인가요? ‘간판이 아름다운 거리’ 사업으로 거리 내에 보도블록, 공중전화, 가드레일, 벤치, 녹지대, 신호등까지 정비했더니 주위 건물 임대료가 올라가는 겁니다. 그러자, 집주인이 건물 임대료를 올리는 거예요. 가게 주인은 간판 정비로 매상이 올라 좋기도 하지만, 역으로 임대료가 올라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난감한 것이지요.”
 
  지난 1월 실시한 ‘디자인 시정’에 대한 시민여론 조사결과, 응답자의 96.7%가 ‘간판개선이 도시경관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고, ‘지속적인 추진이 필요하다’는 응답도 91.5%에 달했다고 한다.
 
 
  세계 최초의 ‘종합도시 가이드라인’
 
  전 세계 17개 도시가 모여 디자인 정책 교류와 협력을 위한 국제협의체를 서울시가 주도해 만든 것도 ‘디자인 서울’의 의지를 더한 ‘사건’이었다. 지난 9월 26일 중국 양저우시에서 ‘글로벌 디자인 도시 협의체(Global Design Cities Organization, GDCO)’ 창립총회를 가졌었다. 서울과 양저우시를 비롯해 나이로비(케냐), 로테르담(네덜란드), 뭄바이(인도) 등 17개 도시에서 대표단이 찾았다. 그의 말이다.
 
  “GDCO 설립논의는 작년 2월 ‘세계디자인 수도 서울’ 사업과 관련해 서울에서 열린 ‘세계디자인도시 서미트’에서 처음 시작됐어요. 그때 참석했던 32개 도시 대표단이 한목소리로 ‘서울디자인도시 선언문’을 채택했지요.”
 
  ‘서울디자인도시 선언문’에는 디자인이 도시의 핵심역량이자 자산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오 전 시장의 3가지 선언과 실천사항이 담겨 있다.
 
  디자인 선언의 첫 번째는 ‘모두를 위한 디자인’을 추구한다는 내용이다. “인류 누구에게든 공통된 디자인은 서로 다른 문화를 인정하고 소통하게 하는 공통분모”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시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디자인’을 지향한다. “시민의 생활수준을 높이고 경제적인 풍요를 가져올 수 있는 디자인의 가치”를 평가한 것이다. 당시 오 전 시장은 디자인(design)과 경제(economics)를 융합한 ‘디자이노믹스(designomics)’라는 용어를 썼다. 세 번째로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약속하는 디자인’을 담았다.
 
  “도시의 문화적 매력이 21세기 도시경쟁력을 좌우하게 될 겁니다. 경제성장만으로는 세계무대에서 지속적인 경쟁우위를 확보하기가 어려워요. 서울시는 작년 7월 유네스코로부터 ‘디자인 창의도시’로 선정되었습니다. 이제 ‘디자인 서울’은 도시의 매력을 만들어내는 신(新)성장동력입니다.”
 
  ‘서울디자인도시 선언문’을 발표할 정도로 서울이 디자인 도시로 거듭난 것은 지난 2008년 제정된 ‘디자인 서울 가이드라인’ 정책에 힘입은 바가 크다. 물론 도시가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제정한 것은 서울이 처음은 아니다. 미국 뉴욕시는 유니버설 디자인(장애인, 노약자, 임산부 등 교통 약자를 배려한 디자인)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영국 런던의 리치먼드는 거리 경관과 공공 공간의 개선과 관련된 가이드라인을, 일본 요코하마 역시 일부 지역에 적용되는 ‘경관 기준’을 만들었다.
 
  그는 “해외 주요 도시의 디자인 가이드라인은 제한적이고 적용분야의 폭이 좁지만 ‘디자인 서울 가이드라인’은 6개 분야 160개 종류에 걸친 종합적인 가이드라인”이라며 “이런 종합적인 기준은 서울시가 세계에서 처음”이라고 했다.
 
 
  “DDP는 ‘디자인 서울’의 핵심, 축소·변경 없어야”
 
DDP는 현재 공사가 60% 진행 중이다. 그러나 여야 서울시장 후보 모두 “일부 전시성으로 흐른 디자인 사업은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오세훈 전 시장의 사퇴로 ‘디자인 서울’ 정책은 중요한 갈림길에 놓이게 됐다. 무소속 박원순(朴元淳) 서울시장 후보는 ‘디자인 서울 정책’을 크게 고치겠다는 입장이고, 한나라당 나경원(羅卿瑗) 후보는 “디자인 정책의 방향은 맞지만 일부 전시성으로 흐른 사업은 재검토해야 한다”고 밝혔었다.
 
  특히 지난 5년 동안 추진 중인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는 뜨거운 감자라는 지적이다. DDP는 ‘디자인 서울’의 거대한 상징이자 결정판이다. 동대문 주변지역은 서울 의류·패션산업의 중심지이자 연간 약 495만명이 찾는 관광거점이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상’을 수상한 자하 하디드(Zaha Hadid)가 DDP를 설계했다. 현재 공사가 60% 진행 중이다. 지상 4층과 지하 3층, 연면적 8만5320㎡, 2009년 4월 착공해 2012년 완공될 예정이며 총 소요예산은 4228억원이다.
 
  임 기획관은 “디자인 사업이 예산을 낭비하는 전시행정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디자인 시정이 가진 순기능과 그간의 노력이 꽃피울 수 있도록 도시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디자인 사업은 계속 돼야 한다”고 말했다.
 
  ―시의회와 야당에서는 DDP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어요.
 
  “세계적인 건축가를 어렵게 설계자로 데려왔는데, 그걸 축소·변경하면 작품성이 없어져 버립니다. 새로운 서울시장이 선출되더라도 DDP는 그대로 가야 합니다. 다만 DDP 안에 들어갈 콘텐츠라든지 프로그램은 비록 확정된 상태지만, 얼마든지 변경이 가능합니다.”
 
  ―시장이 바뀌더라도 ‘디자인 서울’은 계속 가야 한다는 뜻인가요?
 
  “이제 디자인은 ‘필연’입니다. 해외 사례를 봐도, 디자인이 잘된 도시는 디자인 정책을 장기적으로 추진해 왔어요. 중간에 중단하면 도시가 과거로 회귀해 버립니다. 1980년대 영국 대처 총리가 ‘디자인하지 않을 거라면 그만두라(Design or Resign)!’는 말을 남겼을 정도로 일찍부터 디자인의 위력에 눈을 떴지요. 뉴욕은 인구감소, 산업시설이 슬럼화되자 ‘디자인 본부’를 설립해 1000여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죠. 독일은 1989년부터 폐 탄광 마을과 공업도시 17곳이 참여하는 장기 프로젝트 ‘엠셔 공원 건축박람회’를 통해 세계 최고의 환경공원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디자인은 단지 서울의 외형을 바꾸는 겉치레가 아니다”며 “서울만의 매력을 만드는 과정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나요? 비판하는 이들의 주장에 귀담아들을 만한 것은 무엇인가요?
 
  “‘디자인 서울’은 서울이 가야 하는 길이지만, 속도조절에 대한 의견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강남·서초의 오래된 아파트를 재건축해야 한다는 민원이 많은 것으로 압니다. ‘디자인 서울’의 밑그림에서 재건축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요?
 
  “과거처럼 똑같은 높이와 모양의 아파트를 짓기보다, 평균 층수 개념을 도입해서 자율성을 주고, 아파트를 흐르는 바람 길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스카이라인도 염두에 둬야 하겠지만, 지금보다 더욱 조망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반드시 해야 한다면 위험 감수해야”
 
  지난 8월 서울시의회는 민주당 의원 10명으로 구성된 ‘한강 르네상스 사업의 비리를 규명하기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한강 르네상스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부터 재검토하기로 한 상태다.
 
  2007년 발표된 한강 르네상스 사업은 한강과 주변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대규모 경관 환경사업이다. 오는 2030년까지 추진될 장기(長期) 그랜드 프로젝트다. 그러나 야당으로부터 ‘전시성 토목사업’이라는 비판이 끊이질 않았다.
 
  “소통이란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시의회와) 서로 오해가 생길 수도 있다고 봅니다. 비용편익 분석(B/C)에서 비용보다 편익이 ‘1’ 이상 나와야 경제성이 있는데, 한강 르네상스 사업은 ‘1’에 못 미칩니다(감사원 지적). 그러나 민간이 못 하는 일을 공공기관이 미래를 보고 해야 한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봐요.”
 
  ―서울을 바꾸는 ‘그랜드 디자인 작업’은 결국엔 서울시민의 몫이 아닌가요?
 
  “사실 이제까지 여러 작업이 관(官) 주도였다는 생각도 듭니다. 처음 드라이브를 걸 때, 치고 나가야 했으니까요. 앞으로는 시민과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기능면에서 최고의 디자인’과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적 디자인’이 균형을 이루도록 하겠습니다. ‘디자인 서울’의 혁명,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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