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워터맨 120주년을 경축하기 위해 4000자루만 한정생산된「에드슨 화이트」.
낭트는 인구 27만여 명의 항구도시이다. 대서양을 접하고 있는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낭트에는 해외 수출을 주로 하는 공장들이 밀집해 있다. 外港(외항)인 생나제르와 함께 프랑스 굴지의 무역항을 이루고 있다. 영국, 발트 3國, 아프리카 등을 상대로 석유·유지·철광·목재 등을 수입하고, 기계류·밀가루 등을 수출한다. 식품공업과 화학·조선·섬유·피혁공업이 성하다.
1598년 프랑스 王 앙리 4세가 「낭트칙령」을 발표했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新교도파인 위그노에게 신앙의 자유를 허용한 낭트칙령으로 약 30년간 지속된 프랑스의 종교전쟁(일명 「위그노 전쟁」)은 마침표를 찍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낭트는 反나치 지하운동의 거점이 되기도 했다. 15세기에 만들어진 성당, 미술관 등이 남아 있어 관광객이 즐겨 찾는다.
1월27일 오후 9시 무렵 기자가 묵고 있던 호텔방의 창가에서 「탁탁」 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박이었다. 낭트는 영국과 비슷한 기후를 보이는데, 비가 잦고 바람이 세차게 부는 등 변덕이 심하다는 게 호텔 女직원 시실리아의 설명이다.
워터맨 공장을 취재하기로 한 1월28일. 워터맨 관계자가 오전 9시까지 호텔로 오기로 돼 있었다. 아침부터 내린 비 때문에 회사 관계자들은 조금 늦게 도착했다. 비즈니스 로지스틱스(생산에서 소비까지의 유통시스템과 원자재의 조달을 모두 포괄하는 업무) 매니저인 프로랑스 지하르도氏와 홍보 매니저인 프로랑스 라세르氏가 기자를 안내하기로 했다. 두 여성은 향수를 진하게 사용하는 프랑스의 전형적인 커리어 우먼이다.
워터맨 생산공장은 낭트 시내에서 서쪽에 위치한 생테흐블랑 지역에 입주해 있다. 생테흐블랑은 공장 밀집 지역이지만 깨끗한 공기에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전원도시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공장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기자는 방문자 식별표를 왼쪽 가슴에 달아야 했다. 기자가 가져간 카메라도 사용할 수 없었다. 영업 및 기술상의 보안 때문이었다.
1809년 영국의 프레드릭 B 홀슈는 잉크 저장 탱크가 달린 만년필의 초기 모델을 개발했다. 水車(수차)의 원리를 이용해 저장된 잉크가 펜촉으로 전달되게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홀슈의 만년필은 잉크의 저장 기능만 갖추었을 뿐 잉크의 유출량을 일정하게 조절하는 기능을 갖추지 못했다.
잉크의 저장 기능과 유출조절 기능을 함께 갖춘 현대식 만년필을 최초로 발명한 사람은 1883년 미국 뉴욕에서 보험업을 하던 루이스 에드슨 워터맨이다. 그는 잉크가 모세관을 통해 일정하게 흘러 나오도록 특별히 고안된 장치를 개발, 1884년 만년필 특허를 취득했다. 만년필 「워터맨」은 이 장치를 개발한 사람의 이름에서 유래됐다. 8000평이 넘는 생테흐블랑 공장에는 70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이들 중 70%가 여성 근로자라고 한다. 공장 내부를 견학하는 동안 지하르도氏와 라세르氏로부터 워터맨이 생산되는 全과정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생테흐블랑 공장에서는 만년필을 포함해 볼펜, 샤프펜슬, 잉크 카트리지 등이 생산된다. 만년필의 경우 20種의 부품과 30여 차례의 공정을 통해 하나의 제품으로 생산된다.
지하르도氏는 『제품 하나하나에 예술적 혼을 담은 정성이 들어갔다는 점에서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면서 『생테흐블랑 공장은 세계 최고급 만년필을 생산하는 만년필의 중심지』라고 강조했다.
『「라카쥐(옷칠)」와 「쥐오샤즈(꽃 문양 새겨 넣기)」 기법은 워터맨만이 갖는 독특한 기술입니다. 특히 펜촉과 같은 금속 부분에 꽃 문양을 새겨 넣는 세공기술은 他제품이 흉내 내지 못할 정도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로디아주」라는 도금기술도 워터맨이 名品으로 인정받게 된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지하르도氏는 『워터맨은 창조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디자인과 패션, 색깔의 조화를 강조하며 프랑스의 이미지를 가장 잘 표현한 만년필』이라고 했다.
워터맨 공장에는 여성 근로자가 만년필을 생산하는 핵심공정을 맡고 있다. 눈에 띄는 대목은 女직원들의 복장. 이들은 작업복 대신 화려한 색상의 외출복 같은 옷차림으로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홍보 매니저인 라세르氏는 이렇게 설명했다.
『그들은 럭셔리한 것과 섹시한 것을 좋아합니다. 옷에 치장하는 장식품 하나하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죠. 취향이 독특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일을 할 때도 자신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하는 옷을 입고 근무하는 것이죠.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하는 것도 그렇고, 화장을 곱게 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워터맨이 名品으로 성장한 데는 이 회사의 연구개발부가 큰 역할을 담당해 왔다. 라세르氏의 말이다.
『소비자들은 항상 새로운 취향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워터맨은 이 같은 취향을 반영해 제품化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유행을 전략적으로 선도해 나가기도 합니다. 연구개발부는 이 같은 일을 책임지는 核心부서입니다. 연구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을 2002년부터 두 배씩 늘려 오고 있습니다. 그 결과 지난해에는 150가지의 新제품을 선보였습니다』
연구개발부에 소속된 15명의 연구원들은 프랑스의 전략산업인 패션업계의 유명 디자이너들과 정기모임을 갖고 있다고 한다. 패션의 시대적 흐름을 워터맨에 적용하기 위해서다. 연구개발부는 디자인·색깔 등을 결정한 후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낸다. 연구개발부의 한 연구원은 『5년을 내다보는 미래型 만년필도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현재 세계 고급 만년필 시장은 몽블랑이 더 많이 차지하고 있지만, 필기구의 대중화와 고급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측면에서 몽블랑은 워터맨을 따라오지 못한다고 워터맨 측은 설명한다. 『몽블랑은 색상과 모양에서 다양성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제품이 검은색과 배(船) 모양으로 돼 있습니다. 워터맨 만년필은 여러 가지의 디자인, 색상, 모양이 반영된 다양성이 강점입니다』(라세르)
현재 출시된 워터맨의 여러 제품에서 다양성의 일면이 나타난다.
1992년 개발된 만년필 「에드슨」은 2003년 워터맨 120주년을 기념해 「에드슨 화이트」로 다시 태어났다. 워터맨의 창시자인 루이스 에드슨 워터맨을 기리기 위해 「시가」 모양으로 디자인된 「에드슨 화이트」는, 全세계적으로 4000자루만 생산된 한정품이었다. 로듐으로 도금된 18K 金펜촉과 펜촉 지지대, 고급스러움을 더하는 純銀(순은)의 몸체와 캡, 銀으로 도금된 클립과 링 부분의 조화가 일품을 이루고 있다. 잉크의 흐름을 조절하는 피드 장치는 비행기 안에서도 잉크 한 방울 새지 않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1920~1930년대 파리를 중심으로 유행했던 장식미술 「아르데코」를 반영한 「찰스톤」은 기하학적인 형태와 라인, 나사식 캡 등 1930년대 디자인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중앙 부위를 감싸고 있는 굵은 링과 18K의 金펜촉은 미술 장식품을 연상시킨다. 「오다스(용기·용감)」는 단순한 유행에서 벗어나 지적 감각과 화려한 색감을 추구하는 여성들을 위해 개발됐다. 다섯 가지 모델을 가지고 있는 「오다스」는 최신 유행, 독특한 물건, 혁신적인 디자인과 표현이 풍부한 패턴을 좋아하는 현대 여성의 패션 액세서리로 손색없다는 평을 받고 있다.
「세레니테 우드」는 워터맨 기술의 結晶體(결정체)라는 찬사를 받는 제품이다. 「코코볼로」라는 나무 재질로 만들어진 「세레니테 우드」는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세련된 컬러와 매혹적인 디자인이 逸品이다. 보라색에서부터 초콜릿색까지 넓은 범위의 색과 불규칙한 패턴의 무늬는 「세레니테 우드」의 신비감을 더해 준다. 까다로운 생산과정과 희귀성을 강조하기 위해 3000개만 한정 생산됐다.
워터맨은 필기구로서뿐만 아니라 名品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액세서리로서의 기능도 하고 있다. 「名家와 名品의 遭遇(조우)」가 바로 그것이다. 고급 필기구 업계에서는 워터맨이 시계·구두·의류·가방 등에서 名品으로 알려진 제품들과 잘 어울리는 만년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워터맨은 생산품의 25%가 국내에서 소비되고 있으며, 해외로 수출되는 75%는 유럽, 미국,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판매된다. 워터맨의 제품가격은 최하 4유로(한화 6000원)에서 최고 8842유로(한화 약 1300만원)까지 성능에 따라 다양하다. 프랑스 파리에서 노화방지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는 쇼사르 박사는 『프랑스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선물로 필기구를 구입할 때 워터맨 제품을 사는 것이 일반화돼 있다』면서 『몽블랑이 최고급 가격정책만을 펴는 데 반해 워터맨은 중급의 필기구도 함께 판매하고 있어 프랑스人들은 워터맨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루이스 에드슨 워터맨은 1883년 뉴욕에서 만년필 회사를 직접 설립했다. 1927년 「JIF 워터맨」이 프랑스 파리에 별도로 설립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워터맨社가 경영악화로 마침내 문을 닫게 되면서, 1954년 미국의 모든 공장은 프랑스로 옮겨졌다. 이때부터 워터맨의 프랑스化가 본격화됐다. 프랑스 특유의 독특한 디자인과 귀금속의 사용, 한정수량 생산 등을 통해 고급화 전략을 지켜 온 워터맨은 그 자체로 세계 歷史의 한 부분을 장식해 왔다. 워터맨 측은 『워터맨은 歷史와 함께해 온 필기구』라는 점을 강조한다.
워터맨은 1905년 「포츠머스 조약」(러일전쟁 이후 배상금과 할양지 문제로 일본과 러시아의 사이에 맺은 조약) 당시 러시아 대표가 서명 도구로 사용하면서 국제정치 무대에 첫선을 보였다. 워터맨은 1919년 영국의 로이드 조지 수상이 「베르사유 조약」(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조인된 조약으로 제1차 세계대전 후의 국제관계를 확정짓는 조약)을 조인할 때도 사용됐다.
1927년 찰스 린드버그가 세계 최초로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한 뒤 그 감격을 일기형식으로 기록할 때도 워터맨이 사용됐다. 린드버그는 『나의 여행에 동반한 것은 탐험정신과 나의 충실한 벗 워터맨뿐이었다』고 기록했다. 「톰소여의 모험」으로 유명한 美國의 작가 마크 트웨인은 자신의 글을 통해 워터맨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인간의 굴레」를 쓴 영국 작가 서머싯 몸도 작품을 쓸 때 가장 선호하는 펜이 워터맨이라고 했다고 한다.
상품 매니저인 그웨나엘 메이어氏는 『역사적 인물들이 워터맨을 愛用한 가장 큰 이유는 워터맨 만년필의 정교한 공예기술에 있다』면서 『다양한 장식은 품격이나 지위를 상징하는 장신구로 활용되기도 할 만큼 높은 예술성을 띠고 있다』고 말했다.
워터맨을 생산·판매하고 있는 「샌포드 유럽」은 2002년 한 해 동안 총 매출액 3억5000만 유로(한화 5250억원)를 기록했다. 2001년 사장으로 부임한 데니스 테리언氏는 새로운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新전략을 폈다. 新제품 개발과 동시에 중저가·고가·최고가 등으로 가격을 세분화한 뒤 마케팅과 홍보에 집중 투자했다.
2003년 워터맨이 내건 슬로건은 「워터맨은 당신의 우아함을 더 높여 준다」였다. 워터맨은 TV를 통해 패션쇼를 연상시키는 광고를 제작해 큰 호응을 얻었다. 유행과 소비를 동시에 창출해 나간 것이었다.
생테흐블랑 공장 견학을 마친 후 지하르도氏는 기자에게 점심식사를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시계는 오후 2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기자가 『정통 프랑스 요리를 맛보고 싶다』고 하자, 그녀는 『공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훌륭한 음식점이 있다』고 소개했다. 로지스틱스 매니저인 지하르도, 홍보 매니저인 라세르 그리고 상품 매니저인 메이어氏와 함께 한 늦은 점심식사 자리에서 美貌의 그녀들은 기자에게 쉴새 없이 질문을 해댔다. 「처음 방문한 프랑스가 어떤가」,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 「워터맨에서 받은 이미지는 무엇인가」 등에 대해 기자는 일일이 답변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지하르도氏는 『세 명의 여성들과 식사하는 기분이 어떠냐』는 농담 섞인 질문도 던졌다. 하도 정신이 없는 바람에 점심 때 먹은 요리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식사 말미에 기자는 세 여성에게 『워터맨의 정신을 한마디로 정의해 달라』고 부탁했다. 질문이 떨어지자마자 지하르도氏는 강한 톤으로 『워터맨은 패션』이라고 단언했다. 워터맨의 모든 생산과정이 패션과 디자인으로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받은 기자는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核心을 직감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어 메이어氏는 『우리는 만년필을 단순히 파는 것이 아니라 고객들에게 글 쓰는 즐거움을 주는 것을 더 중요시한다』면서 『워터맨은 예술이면서도 마음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