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演光의 대통령후보 연구 ③ 李會昌

「正常人」 李會昌은 국가를 正常化시킬 것인가

  • : 김연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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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듯하면서 건조하고 차분하면서도 강인하고 결단력보다도 「느림의 美學」을 좋아하는 이 원칙주의자는 새 政治의 문을 열 것인가

[편집자 注] 이 기사는 月刊朝鮮 2002년 5월호 「盧武鉉의 이념과 정책논리」, 2002년 11월호 「鄭夢準 후보 연구, 햄릿과 네로, 在野와 재벌의 동거」에 이은 세 번째 대통령 후보 연구이다.
『「李會昌과 盧武鉉, 鄭夢準 세 사람 가운데 누가 더 정직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묻는 건 예수와 강도 바라바 가운데 누가 더 정직하냐고 묻는 거나 마찬가집니다』
 
  한나라당 李會昌(이회창·68) 후보를 법관 시절부터 30년 가까이 모셔 온 한 법조인은 「인간 李會昌」의 면모를 설명하다가 답답한 듯 기자에게 이런 극단적인 비유를 했다. 匿名(익명)을 요청한 그는 지금도 李후보를 가까이서 돕고 있다.
 
  『제가 盧武鉉씨를 잘 알고, 鄭夢準씨는 업무관계로 접촉이 있었습니다. 「누가 외교를 잘 할 것 같으냐」, 「누구와 저녁을 먹고 싶으냐」는 여론조사에서 李會昌씨가 두 사람에게 뒤지는 건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李會昌이 두 사람보다 정직하지 못하다고, 거짓말한다고 우리 국민들이 생각하는 건 도저히 납득을 못 하겠어요. 유대인들이 「바라바를 살리고, 예수를 죽여라」고 결정을 하긴 했지만…. 李會昌씨가 1996년에 한나라당 選對위원장을 맡을 때 제게 「어떡하면 좋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반대했어요. 「당신이 정치를 해서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이 사회의 존경할 만한 어른으로 끝까지 남는 게 낫다」고 했어요. 많은 국민들이 「인간 李會昌」의 정직함을 의심한다는 여론조사를 보면서 저는 그때 제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런 얘기도 했다.
 
  『1995년 11월 후배들이 李會昌씨의 대법관 시절 판례를 연구한 華甲(화갑) 논문 증정식을 가졌습니다. 金壽煥(김수환) 추기경이 오셨어요. 金추기경께 축사해 달라고 부탁을 드리기가 어려워 李洪九 총리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金추기경께서 오시더니 당신도 축사를 하겠다고 하세요. 이 분이 「하나님이 이 나라를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나라에 희망이 없다고 하는데, 李會昌 같은 보석을 주신 것을 보면 이 나라가 은총을 받은 것이다」는 요지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순간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 있었는데 장내가 술렁 했어요. 그게 겨우 7년 전 얘기입니다』
 
 
 
 「반듯함」이 李會昌의 힘
 
  한나라당 李會昌 후보는 지난 5년간 「바람(風)의 숲」을 헤쳐 왔다. 정치적 생존에서는 성공했지만, 한때 「대쪽」이라는 별명으로 국민적 기대를 한몸에 모았던 그의 참신한 이미지는 상당히 망가졌다. 하지만 인간 李會昌의 「반듯함」은 여전히 살아 있고, 그것이 「정치인 李會昌」이 한나라당을 국회 과반의석을 차지하는 거대 야당으로 만들어내고, 차기 대통령을 바라보게 된 원동력이라는 게 李후보 주변의 얘기다.
 
  서울지법 李會昌 부장 판사 밑에서 판사 試補(시보) 생활을 한 법조인의 기억이다.
 
  『그때 판사 試補는 「술 시보」로 불렸다. 삼사년 골방에 처박혀 청춘을 썩힌 젊은이들이 힘겨운 고시를 통과했으니 그 날아갈 듯한 마음이 오죽하겠나. 고등학교와 대학 친구들, 고향 선후배들, 친척들이 사주는 술 마시는 게 일이었다. 試補하는 동안 매일 술에 취해 살았다. 선배 판사들이 대부분 그걸 눈감아 줬다.
 
  李會昌 부장판사는 달랐다. 李부장은 「판사가 됐다고 立身 출세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생각은 버려라」, 「판사 試補는 판사로서의 업무를 배우는 자리다」고 했다. 나를 앞에 앉혀두고 조용조용 얘기하는 데 「참 싸늘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支院(지원)에 판사 시보실이 따로 있었다. 시보들끼리 담배 피우고, 잡담하고, 잠깐 눈을 붙이는 공간이었다. 내가 20분쯤만 보이지 않으면, 서무 아가씨가 「부장 판사님이 찾으신다」며 달려왔다. 李부장은 매일 판결문 쓰는 숙제를 내줬다. 정해진 시간까지 숙제를 제출하지 않으면 아무 말없이 나를 아래 위로 한번 훑어봤다. 내 얼굴을 정면으로 보지도 않았다. 「이런 한심한 인간도 있나」하고 그의 얼굴에 쓰여 있었다. 다른 동기들이 밤새 술마시는 동안 나는 밤새도록 판결문을 썼다. 李會昌 부장판사의 「압제」 아래 나는 술 한번 제대로 못 마시고 판사 시보를 마쳤다』
 
  그는 『李會昌씨를 쉽게 「판사 출신」이라고 얘기하는데, 그는 판사 중에서 비견할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깐깐한 원칙주의자』라고 말했다.
 
  부장 판사시절 李會昌은 회식비를 스스로 마련하지 못했다.
 
  薄俸(박봉)의 부장 판사들이 부서 회식비를 마련하는 가장 흔한 방법은 선후배 변호사들에게 『돈 좀 보내 달라』, 『술값 좀 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李會昌은 그 소리를 차마 입에 올리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부친 李弘圭(이홍규) 변호사가 보내 주는 돈으로 부서 회식을 했다. 회식을 해야 할 일이 생기면 부장 판사실에서 일하는 서무 아가씨가 李弘圭 변호사의 사무실로 달려갔다고 한다.
 
  지난 9월 李會昌 후보의 수필집 「아름다운 원칙」 증보판을 낸 한나라당 책임자들은 李후보에게 혹독하게 꾸지람을 당했다. 법관 시절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진과 1977년 미국 출장 중 러닝셔츠 차림으로 동료 법관의 머리를 깎아주는 사진을 실었다는 게 이유였다. 李후보는 『국민들 앞에 어떻게 이런 무례한 모습을 보일 수 있느냐』고 얘기했다고 한다.
 
  판사를 지낸 또 다른 후배 법조인은 『「불의한 시대에 義人(의인)이 갈 곳은 감옥뿐」이라는 식으로 李會昌씨가 維新(유신), 5共, 6共 시절 정권에 저항하지 않았다고 시비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인간 李會昌」, 「판사 李會昌」이 누구보다 반듯한 인간이고, 평생 바르게 처신했다는 걸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인간 李會昌, 정치인 李會昌
 
   35년간의 판사 생활, 그후 중앙선관위원장과 감사원장·국무총리를 거치며 그가 평생 쌓아올린 「인간 李會昌」이 상처받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1998년 2월 金大中 정부 출범 이후 金鍾泌(김종필) 총리 임명동의안 처리와 「稅風(세풍)」 수사를 둘러싼 여야 충돌을 해결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민주당의 한 국회의원은 『내가 인간 李會昌은 잘 모른다』고 전제하면서 『내가 아는 「정치인 李會昌」은 전형적인 이중인격이고 위선자』라고 공격했다.
 
  그는 『IMF 國難(국난) 와중에 李會昌씨는 大選 패배 화풀이로 국무총리 인준안을 6개월이나 처리해 주지 않았다. 그런 李會昌씨가 대통령이 돼서 과연 야당을 설득하고, 국민의 이해를 얻어가며 국정을 제대로 이끌어 갈 수 있겠느냐』며 격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내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는 전제下에 그는 인터뷰에 응했다.
 
  이 기사를 쓰기 위해 만난 李會昌 후보의 특보 3명을 포함한 대부분의 취재원이 匿名을 요청했다. 李후보 주변 사람들은 『대통령 될 사람에게 아부한다는 얘기를 듣기 싫다』, 민주당 쪽 사람들은 『李會昌씨에게 미움 사서 좋을 게 뭐가 있겠느냐』는 게 이유였다.
 
  金大中 출범 초기 李會昌 진영과의 협상에 나섰던 이 민주당 국회의원은 『稅風 사건에 대한 李會昌씨의 위선적인 태도를 보고, 여권은 「李會昌과는 國政(국정)을 함께 할 수 없다」고 마음 먹게 됐다』고 했다.
 
  『청와대 사정비서관 裵在昱(배재욱)이 「DJ 비자금」을 파헤친 문건을 만들어 李會昌 후보 측에 전달했고, 그걸 당시 신한국당 사무총장이었던 姜三載(강삼재)씨가 폭로했다.
 
  金泳三 대통령에게 「金大中 비자금을 수사하라」고 압박하는 뒤편에서 李會昌씨 측은 국세청장과 국세청 차장을 동원해 정치자금을 거둬들였다. 세상에 이런 두 얼굴이 어디 있나. 우리는 李會昌씨의 양심과 도덕성을 의심하게 됐고, 「저런 사람과는 국정을 함께 할 수 없다. 정치판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마음을 굳히게 됐다』
 
 
 
 金大中·李會昌 「진흙탕」 싸움의 內幕
 
  稅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청와대와 李會昌 진영 간의 「물밑 접촉」은 마지막 단계에서 여러 번 엉클어졌다고 한다.
 
  『李會昌씨 참모들하고는 정치적으로 매듭짓자는 데 얘기가 상당 부분 진전됐다. 그런데 李會昌씨는 측근들에게 「有罪 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無罪」라는 논리를 폈다고 들었다. 그건 판사나 하는 얘기지 야당 총재가 할 얘기는 아니다. 야당 총재가 국민들에게 정치적으로 사과를 했는데 정부 여당이 「사법 처리」를 고집할 수는 없다. 李총재는 稅風 문제에 대해 사과하는 대신 「金大中이 나를 죽이려고 한다」며 영남권에서 장외집회를 열어 국면 타개에 나섰다. 여러 번 領袖(영수)회담을 했지만, 李會昌씨는 「나를 죽일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싸워서 살아남는다」는 전략에 집착했다. 나는 당시 李會昌씨에게 「金大中 대통령은 이제 당신의 敵이 아니다. 인간적인 신뢰를 쌓아라」고 충고했다. 소용이 없었다. 李총재는 「反金大中 정서」를 조장하고, 그 울타리에 안주했다. 그가 「35%의 사나이」로 굳어진 것은 지난 5년간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그는 『李會昌 후보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우리가 한나라당이 그랬던 것처럼, 「李會昌 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고, 大選 패배를 화풀이하고 나선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한번 지켜보자』며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야당과의 신뢰 회복에 엄청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金大中씨도 일정한 수입이 없는 야당 정치인으로 평생 살면서, 大選에 네 번이나 출마했다. 엄청난 정치자금을 썼을 것 아닌가. 李會昌씨 측에서 大選 정치자금을 거둬 쓴 것과 뭐가 다른가. 둘 다 손을 더럽혔는데, 권력 잡았다고 자기만 죽이겠다니까 李會昌씨가 살겠다고 저항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DJ 비자금」과 稅風은 본질이 다르다』
 
  ―뭐가 다른가.
 
  『稅風 사건은 실체가 확실하게 있다. 徐相穆(서상목) 의원과 李會昌 후보의 동생 李會晟(이회성)씨가 李碩熙(이석희) 국세청 차장을 동원해 166억원의 돈을 기업인들로부터 강탈했다. 「DJ 비자금」은 완전 조작이다. 金大中 대통령 친인척들의 통장을 죄다 모아다가 입출금 금액을 모두 합산했다. 「DJ 비자금」 사건은 조작이다』
 
  稅風 사건의 당사자인 徐相穆 前 의원 역시 『세풍과 「DJ 비자금」은 본질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徐 前 의원은 『稅風은 완전 조작』이라고 했다. 그의 주장이다.
 
  『한나라당 재정위원 후원회원인 기업인들이 의당 내야 할 돈을 냈다. 李碩熙 국세청 차장이 전화 건 것과 돈을 낸 것 사이에는 아무 관계가 없다. 내 친구 李碩熙가 전화 안 했어도 다 돈 냈을 사람들이다. 그때의 한국 정치풍토에서 여당이 大選 치르는 데 재벌기업이 정치자금 안 내고 넘어갈 수 있나. 그리고 내가 李碩熙한테 「돈 걷어달라」고 얘기한 적이 없다. 아무 관계 없는 일을 갖다가 억지로 꿰맞춘 것이다.
 
  李會昌씨 죽이려고 만든 그 많은 「風」 중에 실체가 확인된 게 뭐가 있나. 아무 것도 없다. 지난 大選 이후 5년간 하루도 쉴 새 없이 모략과 조작으로 李會昌을 죽이려고 했다. 그쪽 얘기대로 李총재가 稅風 사건에 대해 정치적으로 사과했다면, 그 사람들이 가만 있었겠나. 당장 李會昌의 숨통을 끊으려고 달려들었을 것이다. 李會昌은 생존을 위해 저항한 것일 뿐이다』
 
 
 
 『李會昌은 마음이 여리고, 귀가 얇은 사람』
 
  金大中씨 쪽이나 李會昌씨 쪽 모두가 지금까지 『세풍과 「DJ 비자금」은 본질이 다르다』고 맞서고 있다. 지난 5년간 이런 적대감과 불신이 증폭되면서 여야는 「相生(상생)의 정치」를 口頭禪(구두선)으로 달고 살면서도 화해와 대화의 접점을 찾지 못했다. 급기야 山中에서 도를 닦는 스님까지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가 집권하면 檀君(단군) 이래 희대의 보복정치가 난무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걱정하기에 이르렀다.
 
  과연 李會昌씨는 집권하면 엄청난 정치보복을 단행할 독한 성격의 소유자인가?
 
  문화일보의 尹昶重(윤창중) 논설위원은 1997년 大選 때 李會昌 후보의 정치 참모로 일한 적이 있다. 그는 『李會昌씨는 일반인들의 생각과 달리 굉장히 마음이 여리고, 「귀가 얇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남의 이야기에 귀를 잘 기울인다』며 『나는 그가 정치보복을 하지 않을 걸로 본다』고 했다.
 
  『李會昌씨의 딱딱한 표정, 잘 웃지 않는 인상이 국민들에게 「독하다」는 첫 인상을 만들어냈다. 어떤 사람의 이미지가 실체와 부합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는데 李會昌씨가 그런 경우라고 생각한다』
 
 
 
 李會昌의 엄청난 독서 능력
 
  尹위원은 『나는 이번 大選을 희망적으로 본다』며 李會昌, 鄭夢準, 盧武鉉 세 후보의 독서능력을 근거로 들었다. 엉뚱한 분석이었다.
 
  『내가 아는 李會昌씨는 엄청난 文字(문자) 소화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金大中 대통령은 경제대통령을 자부하면서 많은 책을 읽었다고 자랑한다. 李會昌씨가 읽은 경제학 책이 金대통령이 읽은 책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鄭夢準씨는 31세에 현대 중공업 사장을 했다. 우리나라의 기업 총수들은 문서 속에 파묻혀서 산다. 鄭夢準씨는 보좌진들에게 「책 읽으라」고 채근할 정도로 독서가 몸에 밴 사람이다.
 
  판사를 지낸 盧武鉉씨 역시 대단한 독서가다. 月刊朝鮮의 「세계의 명연설」에서 링컨의 연설을 읽고, 링컨에 관한 책을 냈다고 하지 않았나. 세 후보에 대한 인신공격형 비난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세 후보 모두가 지성인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大選 이후 한국정치에 기대를 걸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李會昌 후보를 돕고 있는 후배 법조인의 기억이다.
 
  『李會昌씨가 대법관 시절 그의 방으로 놀러 갔다.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대법관에 지명됐다가 상원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한 로버트 보크의 저서를 원서로 읽고 있었다. 보크 판사는 사법 적극주의를 주장하는 李會昌씨와는 정반대의 司法觀을 가진 사람이다. 대법관 업무가 대단한 격무인데 그 와중에서도 난해한 법학 서적을 읽고 있었던 것이다. 李會昌씨는 공부가 취미고, 어려운 책을 읽으면서 머리를 식힌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명상록은 수십 번 읽었다고 한다. 李후보는 사람들이 그렇게 어려운 책은 잘 읽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한나라당의 辛卿植(신경식) 大選기획단장은 「대통령 李會昌」의 강점으로 공식 시스템을 활용하는 능력, 공정한 인사, 탁월한 위기관리 능력과 리더십을 꼽는다. 1997년 大選 당시 李會昌 후보의 비서실장이었던 辛단장은 『李후보가 「지정 기탁금」폐지를 주장하고 나섰을 때 「아, 이 사람이 판사구나」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모든 정보를 다 수집한 후 판단을 내린다
 
  『대기업들이 여당에 기탁하는 정치자금을 의석 수에 따라 나눠갖자고 주장해 신한국당에서 난리가 났다. 이건 敵軍(적군)한테 무장하라고 현금 건네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3金 같은 정치인이라면 도저히 생각도 못할 일이다. 자기가 뛰어든 싸움판에서도 공정함은 지켜져야 한다고 李후보는 생각한다』
 
  辛의원은 『한나라당이 지금까지 무리없이 굴러온 데는 「李會昌은 공정하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직 사표낸다, 탈당한다고 난리치던 사람들이 다 슬며시 돌아온다. 李총재는 주변에서 능력 있는 사람을 골라 쓰고, 철저하게 공조직 중심으로 움직인다. 측근이라고 불리던 黃榮夏(황영하)씨에게도 공천을 안 줬다. 「金元雄(김원웅)에서 金容甲(김용갑)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국회의원들을 끌고가고 있는 李會昌이 포용력이 없다고 하면 말이 되겠나. 李會昌의 관리능력과 리더십을 인정하지 않으면 李會昌의 정치적 성공은 해석이 안 된다』
 
  李후보의 한 특보는 『李會昌 후보는 黨을 운영하면서도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는 데 신경을 많이 썼다』며 『「차갑다」 「매몰차다」는 말은 반대로 아무에게도 특혜를 주지 않았다는 얘기』라고 했다.
 
  『梁正圭(양정규), 河舜鳳(하순봉) 의원이 실세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들도 李총재가 필요에 의해 불러서 쓰는 사람들의 하나일 뿐이다. 측근들에게 힘을 실어주면 일이 빨리 진행될지 모르지만, 사람들이 측근들에게 몰린다. 거리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내가 얘기해 봐야」라며 입을 다물게 된다. 李총재는 가용한 통로를 통해 모든 정보를 다 듣고 판단을 내린다. 특보뿐 아니라, 젊은 보좌역들도 할 얘기가 있으면 문서로 총재에게 보고한다. 李총재에 대해 「느리다」, 「타이밍을 못 맞추는 엇박자」라는 얘기가 많았다. 국가 최고지도자가 된다면, 李후보의 長考(장고)와 신중함은 큰 장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실세로 불리다 요즈음 李후보 주변에서 조금 벗어난 한 의원은 『정말 열심히 후보에게 각종 아이디어를 내고 건의를 했었는데, 슬슬 실세라는 소문이 나기 시작하니까 李후보가 제동을 걸더라』며 『李후보가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한쪽으로 힘이 쏠리지 않게 견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權哲鉉(권철현) 후보 비서실장은 『李후보가 철저하게 黨 공조직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점에서 계보와 측근에 의존해 온 3金식 정치와 확연히 구분된다』고 했다.
 
  『李會昌 주변에서 「7인방」이니, 측근이니 하는 말이 없어진 지 오래다. 李후보는 어떤 현안이 대두되면, 그걸 당직자들과 협의해 풀어나간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李총재가 개인적으로 인연이 있는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어보기도 하지만, 공조직을 무력화시킬 秘線이나 별도의 계선 조직은 없다. 李會昌의 실세는 한나라당 조직이고, 한나라당의 현역 의원이라고 보면 맞다』
 
 
 
 李會昌의 비전은 무엇인가
 
  李후보 측의 이런 열정적인 설명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이들이 「대통령 李會昌」을 불안하게 바라보게 되는 이유의 하나로 李후보가 국민을 설득하고 激動(격동)시킬 수 있는 비전을 大選 직전까지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을 든다.
 
  『국민의 마음을 흔들 비전을 제시해 왔다면, 지금 李會昌씨는 「反金大中」이라는 한계를 넘어서서 다른 후보를 압도하고 있을 것』이라는 게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얘기다. 그러나 李會昌 후보 측은 『지금까지 정부 여당과 투쟁하면서 불가피하게 「反金大中」 정서에 올라탔고, 지금 이 틀을 깨면 기존의 지지까지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며 『지금으로서는 크게 움직여볼 여지가 없다』고 말한다.
 
  헤리티지 재단이 펴낸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한 조건」(장성민 역)은 대통령의 비전과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대통령이 현재의 난관과 위협을 분명히 정의해서 아주 간단명료한 메시지와 해법을 가지고 국민들에게 호소한다면 대통령이 뚫고 나가지 못할 난관은 없다. 물론 문제의 해결을 이끌 만한 권위의 중심이 서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 만약 그런 권위를 가지고 있고, 또 앞에서 말한 그런 상황을 정치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대통령은 어떤 의안이든 의회에서 통과시킬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당선이 되고 더 잘 할 사람 李會昌」이라는 李會昌 評傳(평전)이 출간됐다. 한나라당 국회의원 출신인 필자가 어떤 이유로 李會昌씨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면 더 잘 할 것이라고 주장하는지 궁금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봤다. 출간을 서둘렀는지 똑같은 내용이 두 번 실리는 실수까지 한 책이었다. 李후보 주변에서 들을 수 있는 「李會昌 옹호논리」의 모듬이었다.
 
  기자의 눈길을 끈 것은 책 맨 뒤에 붙어있는 「李會昌 후보수락 연설문」이었다. 이 연설은 李會昌씨가 단상에서 큰절을 했다는 사실로 유명해진, 지난 5월11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장에서 한 것이다.
 
  李會昌씨는 자신의 연설문 작성에 상당한 정성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 중진 의원은 『1997년 大選 때 李會昌씨가 연설문 자구를 일일이 고치는 걸 보고, 이 양반이 평생 글을 쓰면서 살아온 판사 출신이라는 걸 절감했다. 유권자들 만나고, 재벌들 만나서 돈 구해야 할 시간에 하나하나 연설문의 글자를 따지고 있더라』고 기억했다.
 
 
 
 감동을 못 주는 후보지명 수락 연설
 
  李후보의 후보지명 수락 연설은 미국 공화·민주 양당 대통령 후보들의 후보 지명 수락 연설을 많이 본땄다. 연설 도입부에서 李후보는 『오늘 저는 귀한 손님을 모셨습니다. 국민의 대표를 모셨습니다』며 소외계층의 사람을 여럿 소개했다.
 
  <도소원 양, 서울 봉천동에 사는 소녀가장입니다. 이상철씨, 경기도 광명시에서 오신 障♥友(장애우)입니다. 정용진 할아버지, 이북에 고향을 두고 온 실향민입니다. 이종현씨와 김미정씨 부부 그리고 상희양과 지나양, 아빠의 실업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가족입니다>
 
  이어지는 李會昌 후보의 연설에는 그가 왜 이들의 이름을 목메어 외쳤는지, 그가 소녀가장 도소원 양과 장애자 이상철씨, 실업가장 이종현씨를 위해 어떤 일을 할 것인지 피부에 와 닿는 이야기가 담겨 있지 않다.
 
  「서민 속으로」를 부르짖으면서, 농수산물 시장에서 흙 묻은 오이를 씹어 먹은 그가 서민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어떤 각오를 했는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 역시 찾아볼 수 없다. 한나라당의 한 국회의원은 『중학교 윤리 교과서 어느 부분을 서너 페이지 죽 찢어내서 읽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연설에 인간적인 향기도, 국민을 감동시킬 만한 비전도 담지 못했다는 게 그의 얘기다.
 
  미국 大選의 경우 후보 선출 전당대회를 갖는 黨의 대통령 후보 지지율은 대개 5% 안팎으로 올라간다.
 
  각 黨이 정강정책을 새로 마련해 국민들에게 내놓고 후보가 국민과의 약속을 감동적으로 제시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지명 전당대회 후에 李會昌 후보 지지율이 올라갔다는 보도는 나오지 않았다. 李會昌 후보가 오랫동안 「魔의 35%」에 발이 묶여 있는 이유가 한나라당 사람들이 얘기하는 「5년에 걸친 여야의 치열한 政爭」 때문만은 아님을 알게 하는 대목이다.
 
  「21세기로 가는 다리를 놓자」는 1996년 8월29일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민주당 후보지명 수락 연설을 들어보자. 청중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은 그의 연설은 매우 구체적인 정책들을 담고 있다.
 
  클린턴은 연설 도입부에 그가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장에 오기 전에 만난 많은 「보통 사람들」을 얘기한다.
 
  <오하이오州에서 저는 한때 실직했다가 再취업한,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를 만났습니다. …나는 자신들의 동화책을 자랑스럽게 읽는 두 명의 멋진 어린이들도 만났습니다>
 
  이어 클린턴은 민주당이 주도한 「케네디-케서바움 법률안」으로 인해 오하이오 州의 자동차 공장 노동자를 포함한 2500만 명의 직장인들이 직업을 전환하는 동안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고 자랑스럽게 선언한다. 그는 미국의 어린이들이 초등학교 3학년만 되면 누구나 읽고 쓸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30만 명의 독서 전문가들을 전국에 파견하고, 100만 명의 독서지도 자원 봉사자를 조직하겠다고 공약했다.
 
  최근 「지도력의 위기」라는 두 권의 저서를 내놓은 許和平(허화평) 前 청와대 정무수석은 李후보의 후보지명 수락 연설에 대해 『한나라당 총선 선거 공약집을 나열한 듯하고, 국가 경영에 대한 비전 제시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고 평가했다.
 
 
 
 윤기 없고 건조한 연설을 선호
 
  현대사회연구소장인 許 前 의원은 『金大中 정부의 「햇볕정책」으로 지난 5년간 그렇게 나라가 요동을 쳤는데, 그의 연설문에는 「북한을 지원하겠다」와 「동맹국과의 신뢰부터 회복하겠다」는 얘기가 똑같은 무게로 竝置(병치)돼 있다』며 『나열된 정책에 우선순위가 없으니까, 투자우선 순위를 알 수 없고, 그가 국가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지 짐작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부정부패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부정부패 척결의 核(핵)인 정치개혁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극복하겠다」고 하면서 3權분립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어떻게 확보하겠다는 얘기가 없다. 친인척 비리를 척결하기 위해 부패방지위원회 산하에 대통령 친인척 비리를 감찰할 독립기구를 두겠다고 한 게 눈길을 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친인척 비리가 방지되지 않는다는 건 국민 누구나 안다. 문제는 권력의 분산과 견제다. 정말 책임총리제로 권력 분산이 된다고, 李會昌씨가 믿는 건지 모르겠다.
 
  「법치를 확립하겠다」고 하는데, 대법관 출신인 그가 왜 사법부의 독립과 검찰의 정치적 중립 확보방안, 考試제도 개혁, 로스쿨 제도의 도입 같은 구체적인 얘기를 하나도 안 하는지 모르겠다. 「아름다운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실천 프로그램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李會昌 후보의 한 측근은 『후보지명 수락 연설이 왜 아무런 감동 없이 밋밋하냐』는 물음에 『솔직히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의 얘기가 없는 게 나도 불만』이라고 했다.
 
  ―왜 이런 재미 없는 연설 문안이 나오나.
 
  『李총재가 윤기 없고 건조한 글을 좋아한다. 상황과 조건이 변하더라도 크게 손 댈 것 없는 연설문을 좋아한다. 실수는 안할지 모르지만 생동감이 크게 떨어진다. 소녀가장 도소원 양을 도와야겠다는 애정은 있다. 그 애정을 도소원 양의 생활 속에서 어떻게 정책으로 실현시킬까 연결이 안 되는 것이다』
 
  ―연설문은 누가 쓴 건가.
 
  『劉承旼(유승민) 여의도 연구소장이 대부분의 연설문을 쓴다. 물론 연설문은 李후보 자신의 것이다. 劉소장이 소외계층에 대한 李총재의 애정과 인간적 향기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
 
  ―李총재가 왜 국민을 追動(추동)시킬 비전 제시에 약하다고 생각하나.
 
  『판사는 비전을 제시하는 자리가 아니다. 사실(Fact)과 사건(Event)의 생성소멸 단계로 볼 때 판사는 제일 마지막 단계에 서 있는 사람이다. 판사는 사실과 사건을 만들어가는 정치가와 정반대의 자리에 위치해 있다. 판사에게는 形骸化(형해화)한 사실과 형식논리만 넘어 온다. 내 앞에 서 있는 이 소녀가장을 위해 지금 내가 당장 무얼해야 하는지, 파고 들어가는 데는 서툴 수밖에 없다』
 
 
 
 대법관의 면모 엿보이는 북한 핵정책 연설
 
  지난 10월24일 李會昌 후보가 「평화포럼」에서 한 「북한 핵문제와 평화정책」이라는 제목의 연설은 후보지명 수락 연설과 확연하게 다른 느낌을 준다. 우리 사회의 모든 쟁점에 대해 최종 판결을 내려온 「대법관 李會昌」의 솜씨가 담겨 있다.
 
  李후보는 북한 핵문제에 대한 단호한 대처를 주문하면서, 對北 현금지원의 전면 중단을 촉구했다. 그는 『햇볕정책으로는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를 실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햇볕정책의 전면 再검토를 약속했다.
 
  『東海에서 금강산 관광선이 오가는 데도 북한은 西海에서 도발을 자행했습니다. 북한의 핵개발을 비롯한 군사문제를 외면한 채 교류협력만 되면 평화가 온다는 식의 접근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저는 군사문제 해결과 교류협력을 전략적으로 병행 추진할 것입니다. 지금 남북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의 핵개발 포기입니다. 이 문제의 해결 없이는 교류협력의 실질적 진전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李후보는 『개인의 존엄, 자유와 인권은 제가 30년 법률 생활에서 가장 소중히 여겼던 가치』라며 『집권하면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를 북측에 정면으로 제기하겠다』고도 밝혔다.
 
  이 연설문을 읽으면서 李會昌 후보가 집권 후 펼칠 對北정책에 믿음이 생겼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李후보가 2000년 남북 頂上회담 이후 이처럼 확고한 對北정책과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했더라면, 金大中 정부가 그토록 오만하게 햇볕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었을까?
 
  한나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이런 얘기를 했다.
 
  『6·15 頂上회담 이후 李총재가 이끄는 한나라당은 「판단 不在(부재)」 상태에 빠져 들었다. 「평화정착의 첫발을 내디뎠을 뿐이다. 환상을 갖지 말라」고 강하게 金大中 정부를 압박하지 못했다. 李총재가 판단 유보 상황에 빠져 있던 두세 달 동안 햇볕정책의 골격은 완벽하게 완성됐다. 李총재는 국민의 가치체계와 이념에 일대 혼돈을 일으킨 金大中의 공격에 맞설 판단의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후에도 李총재는 오랫동안 「햇볕정책의 기조에 공감한다」는 얘기를 했다. 2002년 11월 현재 李會昌이 얘기하는 자신의 「對北정책」과 그가 견지해 온 對北정책 기조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李會昌은 상황주의자』
 
  그는 李會昌 후보를 「상황주의자」로 규정했다.
 
  『李會昌 후보는 영민하고 나름대로의 높은 도덕적 기준(moral standard)을 가지고 있다. 다음 대통령의 시대적 소명이 「무너진 법과 원칙을 바로세워 나라를 정상화시키는 일」이라면 그는 적임자다. 그러나 李후보는 그때의 상황과 표를 따라 움직이지, 멀리 내다보고 큰 틀을 그려가면서 일을 추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법과 원칙을 바로세우는 일도 장기 비전과 리더십이 없으면 하루하루 야당과 충돌하고 끊임없이 위기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李會昌 후보는 최근 영입한 판사 출신의 羅卿媛(나경원) 정책특보에게 『정치판에는 읽을 서류가 없다. 서류를 다 읽고 원고와 피고의 진술을 들은 뒤에 판단하는 게 아니라, 서류가 만들어지기 전에 말을 하고 움직이는 게 정치다』고 충고했다고 한다. 판사는 入力(입력)이 완벽해야, 제대로 된 결과를 出力(출력)할 수 있다. 조그마한 증거서류라도 소홀히 해서는 피고든 원고든 어느 한쪽에 불이익을 주게 된다. 입력이 부정확하고 부실한 상태에서 움직여서는 안 되는 직업이다.
 
  정치는 정보 입력이 시작되기 전이라도 움직여야 하는 영역이다. 李후보는 이런 사실을 절감한 것으로 보인다. 정계에 입문한 후 李후보의 「속도와 타이밍(Timing)」은 機先(기선)을 제압하고 나서는 3金의 속도와 끊임없이 비교됐다.
 
  민주계 출신 한나라당 의원의 관찰이다.
 
  『金泳三 前 대통령이 한나라당 총재였다면 朝鮮日報와 東亞日報가 세무조사를 당할 것이라는 얘기만 듣고도, 당장 길거리로 나서 거센 對정부 투쟁에 나섰을 것이다. 이 세무조사가 자신의 목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李총재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정부를 강경하게 공격하는 데도 한참 뜸을 들였다. 李총재가 「카리스마가 없다」, 「리더십이 없다」, 「정치력이 부족하다」는 얘기는 이런 속도 차에서 출발하고 있다』
 
  李會昌 후보의 한 특보는 『우리 국민들이 3金 정치의 청산을 얘기하지만, 3金식 정치관으로 정치를 바라보는 자가당착에 빠져 있다』며 『야당 지도자 李會昌이 진행해 온 새로운 정치실험의 성과에 대해서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李會昌의 정치실험
 
  ―李후보가 어떤 정치실험에서 성공했다는 건가.
 
  『제일 큰 건 국고보조금만으로 야당을 이끌어 온 것이다. 3金 정치라는 게 뭔가. 보스가 뭉터기로 돈을 끌어와 계보원들에게 나눠주고, 자기 새끼들 공천 주고, 자기 마음대로 黨을 끌고 가는 것 아니었나. 李會昌은 금권과 패거리, 지역에 기반한 3金정치를 한나라당에서 몰아냈다고 생각한다』
 
  ―李후보 주변의 재력가 의원들이 나름대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지 않나.
 
  『3金 시대에는 수백억 수천억 단위의 정치자금이 보스를 매개로 오고 갔다. 그건 분명히 없어졌다. 지난 5년 동안 李총재와 주변의 계좌를 마구잡이로 뒤졌지만 나온 게 아무 것도 없지 않나. 재력 있는 의원들이 黨에 필요한 얼마간의 자금을 대는 건 과도기적 현상이다』
 
  ―2000년 총선에서 李후보가 자신의 정치입문을 도와준 金潤煥(김윤환), 趙淳(조순)씨 등에게 공천을 주지 않았다. 이 사건이 「李會昌은 모진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만든 출발점이었고, 「反李會昌 연대」라는 정치적 흐름까지 만들어냈다. 그렇게 할 필요가 있었나.
 
  『기본적으로는 정치개혁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정치적 미숙함이나 판단 착오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 李후보가 한나라당을 그렇게 정리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李會昌이 있었겠나. 앞을 내다본 정치적 결단이었다고 봐달라』
 
  ―한나라당內에 정말 「李會昌 系(계)」는 없는 건가.
 
  『종로 보선에 朴振(박진) 정무특보가 출마하려고 하자 李후보가 공천에 반대했다. 자신의 측근이라는 이유였다. 「朴振씨는 외부에서 영입을 해서라도 데려와야 할 사람이다」고 설득을 했는데도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3金은 자기 집에서 마당 쓸던 사람들도 국회의원 공천을 줬다. 李會昌은 공천에 엄격한 자기 나름의 기준이 있다. 공천으로 자기 계보를 키우겠다는 생각이 없다』
 
 
 
 느림의 美學
 
  ―여당內에 확고한 자기 세력, 계보가 없이 대통령으로서 黨을 장악할 수 있겠나.
 
  『대통령의 헌법적 권한만으로 여야의 협력을 얻겠다는 생각이다. 마당 쓸던 사람을 국회의원 시킨다고 勢(세)가 되겠나. 그리고 자기 黨 사람이 어디 가겠나』
 
  ―李후보의 색깔은 뭔가.
 
  『李후보는 핀란드 경제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 「있는 것을 나눠 먹자」는 식의 경제정책은 100% 실패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성장주의자이다.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철저하게 신봉한다는 점에서는 우파다. 그러나 자유와 평등은 인간의 존엄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점에서 좌파적 색채도 있다. 크게 분류하자면 그는 철저한 개혁주의자다』
 
  ―李會昌 후보가 지나친 「엘리트주의자」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엘리트는 사회적 책무를 져야 한다」고 믿는다는 점에서라면 李후보는 엘리트주의자다. 주변에 경기高·서울법대 출신이 많지 않다』
 
  ―李후보의 「속도」가 늦어서 중요한 정치적 결정이 늦어지고, 방향이 어긋나는 경우가 많지 않았나.
 
  『李후보가 아직도 정치적 판단에 익숙하지 않다. 빠르지는 않지만 균형감각이 있다. 金泳三, 金大中 식의 통치에서 우리가 배운 게 뭔가. 이곳 저곳 얘기를 다 들어보고 결정했어야 할 텐데, 어디서 「열린 교육」 얘기를 잘못 듣고 교육개혁한다고 덤볐다가 사고를 쳤다. 의사·약사 얘기들 듣고 천천히 갔으면 될 텐데 마구 밀어붙이다가 의료보험 재정이 매년 수조원씩 펑크가 났다. 느리게 가는 게 좋을 수도 있다. 국민들에게 「위험한 개혁이 좋으냐, 안정적 개혁이 좋으냐」고 물으면 다들 늦어도 안정적으로 가자고 할 것이다』
 
  ―李會昌 후보가 당내 정치개혁에 상당히 소극적이었다. 대권·당권 분리, 상향식 공천, 국민경선제를 민주당이 먼저 하자 마지못해 따라가지 않았나.
 
  『李후보가 2001년 연두 기자회견에서 金大中 대통령에게 총재직을 물러나라고 촉구했다. 나는 그때 「총재도 대통령되면 총재직을 겸할 건데 지금 그런 얘기를 하면 부메랑이 돼서 돌아온다」고 했다. 李후보가 「아니다. 나는 대통령이 되면 총재직을 안 맡는다. 여당의 협조는 총재라서 받는 게 아니라 대통령이어서 받는 것이다」고 분명히 얘기했다. 李후보는 대통령이 의회와 사법부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확고하다. 그 무렵 李총재가 「17代 공천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내게 얘기를 했다. 「공천에 매달리면 2004년 공천하고 나서는 레임덕이다. 국회의원은 협상의 대상이지, 지배의 대상이 아니다」고 했다. 내가 대외적으로 공표하자고 했더니, 「내가 하는 걸 보면 될 것 아니냐」고 했다』
 
  ─李후보가 2001년에 벌써 당권·대권 분리, 17代 공천포기를 결심했다는 얘기인가.
 
  『朴槿惠 의원을 중심으로 당권·대권 얘기가 나와 黨이 들끓을 때 李후보는 「야당의 목표는 정권교체다. 집권할 때까지는 일사불란하게 가야 한다」고 얘기했다. 李후보가 「당권·대권 분리」를 받아들이자 언론은 「항복선언」이라고 했다. 그렇지 않다. 거듭 얘기하지만, 李후보는 천천히 자기가 가야 할 길을 가는 사람이다』
 
  ―「李會昌 대통령」에게서 국민들이 무얼 기대할 수 있겠나.
 
  『앞뒤 바뀌고 헝클어진 사회를 정리하고, 「법 지키면 손해 보는 세상」을 「법을 지켜야 손해 안 보는 세상」으로 만드는 데 전념해야 한다.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것은 원칙의 회복이다. 나는 李후보가 집권계획 만들 때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 선거를 한다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되는 李會昌은 과연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대통령학을 전공하고 있는 고려大 咸成得(함성득) 교수는 수권능력의 두 가지 조건으로 정책개발 능력과 정책조정 능력을 들었다. 지금까지 李후보는 두 부분에서 썩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咸교수는 『선거일까지 남은 30일 동안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며 『당선하고 취임할 때까지의 70일간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하느냐에 李會昌의 成敗가 달려 있다』고 했다.
 
 
 
 빨리 국정운영팀을 짜고 비서실장을 임명하라
 
  『미국에서는 李會昌씨 같은 「선두 후보(leading candidate)」는 大選 한 달 전쯤이면 국정운영팀(governing team) 구성을 끝낸다. 집권 이후 계획도 상당부분 만들어 놓아야 한다. 집권하고 나면 소방 호스로 물을 마셔야 하는 상황이 온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咸교수는 『대통령이 되는 순간 정보가 너무 쏟아져 들어와 李후보처럼 꼼꼼히 모든 것을 읽고 세세한 부분까지 결정하는 사람은 「결정 不能(불능)」 상태에 빠질 위험이 있다』며 『당선되면 정치력을 갖춘 비서실장을 먼저 임명해 업무 분장에 함께 나서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한나라당이 과반의석을 넘어 계속 몸집을 불려가고 있는 사실은 李會昌 후보가 집권할 경우 큰 힘이 되겠지만, 대통령이 여론의 주도권을 장악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며 『하루라도 빨리 국정운영팀을 짜라』고 권했다.
 
  3金 정치는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 보스와 거기에 맹종하는 정치 파벌이 상호 균형을 이루는 체제였다. 3金의 영향력이 사라진 이후의 한국 정치는 정치적 진공상태에 빠져들 가능성 이 높다. 金大中이 사라진 민주당은 이미 핵분열을 시작했다.
 
  李會昌의 앞에는 위기와 기회가 함께 놓여 있다. 3金 정치 이후의 새로운 정치질서를 만들어 내는 주역이 될 것인가, 아니면 정치적 혼돈을 수습하지 못하고 그 소용돌이에 빨려들고 말 것인가. 맹목적으로 따르고 눈 질끈 감고 봐주는 인간관계가 아니라, 시스템으로 정치를 이끌어가는 李會昌의 「차가움」은 이런 상황에서 엄청난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을지 모른다.
 
 
 
 새 정치의 문을 열까
 
  중앙 일간지의 한 출판국장은 『李會昌씨가 대통령이 된다면 3金 정치의 유산과 잔재를 말끔히 청소하는 게 그의 역사적 소명』이라며 『「새 정치의 문을 여는 사람은 내 다음 대통령」이라는 낮은 자세로 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법과 질서를 세우는 과도기적 대통령의 임무가 李會昌씨에 있고, 그런 점에서 정상적으로 성장한 李會昌씨가 제 몫을 해낼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국민들도 기대를 낮춰야 하지 않을까. 月刊朝鮮에 날아온 한 독자의 寄稿(기고) 내용이 마음에 와 닿았다.
 
  <「처음은 끝을 잉태하고 나중은 이미 시작되었다」는 말을 나는 가끔씩 되씹어 본다. 나는 새 대통령이 당선되어 여러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해 주길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그 분이 유리알처럼 맑고 투명해서 누구라도 믿을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는 첫걸음의 본보기가 되어주길 바란다.>(성일 초등학교 李美林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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