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姜孝祥 朝鮮日報 경제부장
정리=김영진 朝鮮日報 경제부 기자
경제계의 산 증인 具平會 정리=김영진 朝鮮日報 경제부 기자
『지난 6월에 열린 「2002 韓日 월드컵」을 위해 재계 전체가 월드컵 유치 활동자금으로 330억원을 모금했습니다』
1994년 월드컵대회 유치위원장을 맡았던 具平會(구평회ㆍ76ㆍ前 무역협회장) 韓美협회장은 『당시 정부 측에서 월드컵 유치자금 지원에 난색을 표해 국내 기업인을 상대로 모금활동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며 재계의 월드컵 자금지원 내용을 털어놨다.
온 국민이 「붉은 악마」로 변신해 6월 한달 동안 열광했던 월드컵이, 기업인들의 적극적인 재정적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더욱이 具平會 회장이 월드컵대회 유치위원장으로 활동한 것이나, 그가 직접 재벌그룹을 찾아다니며 구원의 손길을 요청했다는 것은 역사 속에 파묻혀 버리는 듯하다.
히딩크 감독과 선수들, 鄭夢準(정몽준) 의원이 월드컵을 통해 국민들의 영웅으로 부상하는 것을 지켜본 具회장은 누구보다 감회가 깊었을 터였지만,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내는 듯했다.
경제원로로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具회장은, 지난 9월6일 그의 강남 집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월드컵에 얽힌 所懷(소회)와 세계경제 등 다양한 주제를 놓고 얘기를 나눴다.
具회장은 『장거리 여행은 힘들지만, 그룹內 주요 이사회 참석이나 대외활동 정도는 소화하고 있다』며 바쁜 일정 때문에 인터뷰 시간이 늦어진 것을 의식했는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는 최근 담낭 제거 수술을 받았다. 『얼마 전 담낭 제거 수술을 받아서인지 왼쪽 옆구리가 결려』라며 具회장은 얼굴을 잠시 찡그렸지만, 이내 좋은 혈색을 되찾았다.
具회장은 1997년 말에도 위암 초기 진단을 받아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수술을 받고 요양할 만큼, 건강이 나빠진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수술을 끝내고 현업에 복귀할 정도로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대기업 돌아다니며 330억 모았다』
『월드컵 개막식에는 참석하셨지요』라고 묻자, 具회장은 『나는 (월드컵 행사팀에서) 티켓을 받아 갔고, 가족들은 표를 사서 구경했지』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1994년 8월 월드컵유치위원장 취임 이후 활동에 대해 마치 그림을 그리듯 생생하게 기억을 더듬어 갔다.
具회장은 『월드컵 유치 구상은 축구협회장이었던 鄭夢準 의원이 낸 것이다. 틀림없다』면서 말을 풀어나갔다. 월드컵 유치에 대한 재정적 뒷받침을 현대그룹이 한 게 아니냐는 일각의 의혹에 대해서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월드컵유치위원장 시절부터 얘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具회장은 李洪九(이홍구) 당시 월드컵유치위원장이 국무총리로 발탁돼 입각하면서, 해외에 있던 자신이 1994년 8월 추대됐다고 했다. 축구는 해보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던 자신이 어떻게 맡아야 할지 몰랐지만, 무슨 운동부터 펼쳐야 할지 파악하기 위해 일단 위원회 활동내역을 보고 받기로 했단다. 당시 위원회는 예산이 50억원에 불과했고, 자금은 모금도 못 하고 약속만 받으러 다니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위원회 활동비조차 은행에서 5억원을 대출받은 상태였다. 일본은 이에 반해 돈을 모아 사방에 유치활동을 하고 다닌다는 얘기를 듣고, 具회장은 시급히 예산을 다시 짰다.
300억원 정도는 있어야겠다고 판단했는데, 당시 YS는 『정치자금을 일절 한 푼 모으지 않는다』고 선언했기에 YS를 찾아가 담판을 벌였다.
具회장은 『돈을 쓰면 (월드컵 유치에) 이기든 지든 해볼 수 있지만, 안 쓰면 안 되게 돼 있다』며, 『내가 모금을 할까요, 아니면 정부에서 대주겠소』라고 YS의 대답을 요구했다. YS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체육진흥기금으로 돕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 측에서 한 푼도 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와 다시 YS를 찾아갔다. 그 때 具회장은 『지금 월드컵유치위원장직을 그만두고 싶다. 돈이 없으면 안 되는 일인데 대통령이 나서도 힘든 일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아니면 기업인들 스스로 모금활동을 벌이겠다. 대통령 이름 안 팔고 청와대에도 부탁하지 않겠다』고 YS의 결심을 요구했다. 그러나 YS는 묵묵부답이었다.
具회장은 당시를 회고하면서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청와대를 그냥 나왔다. 『누구와 상의한 것도 아니었다』며 『아마 월드컵유치위원장 자리 맡은 지 한 달쯤 뒤의 일(1994년 9월)이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모금활동은 具회장 혼자 몫으로 돌아왔다. 월드컵유치 부위원장인 鄭夢準 의원은 자금모금에는 나서지 않으려 했다. 결국 자신이 몸담고 있는 LG그룹을 향해 『나라를 위해 40억원 정도만 내다오』 했다. 친정에서 OK사인을 얻은 그는 곧장 삼성·현대·대우·포철 등을 찾아가 『월드컵을 유치하는 것은 나라를 위한 것은 물론, 국가 브랜드 가치가 올라가 덕 보는 것은 결국 대기업들 아니냐』면서 『LG만큼만 내 주세요』라고 손을 내밀었다. 그는 이때 『기업인으로서 부탁하는 것이지, 절대 대통령과는 무관한 일이다』라는 단서를 달았다.
그래서 국내 5大 대기업으로부터 각각 40억원씩을 모았고, 다른 기업은 전경련을 통해 모금활동을 벌여 총 330억원의 월드컵유치 활동자금을 장만할 수 있었다.
韓日 월드컵 공동개최를 합의하다
그때부터 具회장은 국내는 물론 영국·독일·미국 등 국내외 스포츠·언론계 인사를 만나러 다녔다. 한국에 월드컵을 유치하기 위한 설득의 대상은 해외 유력 정치인들에게도 미쳤다. 사마란치 당시 IOC위원장을 서울·부산 등에서 오가며 金雲龍 IOC위원 등과 함께 서너 차례 만났다.
이쯤에서 具회장은 『도저히 한국 단독으로 월드컵을 개최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공동개최 구상을 갖고, 일본과의 공동개최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한다. 鄭夢準 의원은 당시 한국 단독개최에 마음을 두었지만, 具회장은 이미 공동개최 쪽에 마음이 기울어 있었다고 한다.
공동개최 건은 언제 처음 얘기가 나온 것이냐는 질문에 具회장은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이렇게 얘기했다.
『1994년 8월 말 東京에서 열린 韓日포럼 세미나에 참석, 양국의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각종 제안에 대해 다른 사람들 얘기를 끝까지 듣다가 나중에 한마디를 던졌다. 「양국 문제를 푸는 것은 간단하다. 일본이 월드컵 유치신청을 철회해 달라. 그렇게 양보하면 지금은 물론 과거 역사에 대한 한국민의 생각은 한꺼번에 달라질 수 있다」』
그는 이 한마디를 「폭탄선언」으로 비유했다.
이날 밤 일본 경단련(한국의 전경련과 같은 대기업 모임) 주최 만찬에서 도요타 회장이 『좋은 말씀입니다. 공동으로 해봅시다』라고 응수했으며, 여기서부터 韓日 양국의 월드컵 공동개최의 단초를 마련하게 됐다고 具회장은 기억했다.
월드컵 공동개최에 대한 반응은 유럽축구연맹(EUFA)에서 좋았다고 한다. 독선적인 아벨랑제 FIFA 회장이 일본에 편파적이었던 것에 비해, 축구의 본고장인 유럽 나라들은 단독개최를 고집하지 않은 한국에 우호적이었다고 具회장은 설명했다. 막판까지 단독개최에 집착했던 일본은, 국제 축구계가 한국 쪽으로 기울어 가는 분위기를 감지했고 결국 공동개최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17회 2002년 월드컵 개최지를 결정하기 이틀 前 사마란치 전 IOC 위원장과 아벨랑제 FIFA회장 등이 만나 대략적인 공동개최 합의에 도달했고, 1996년 5월31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역사적인 「韓日 월드컵 공동개최」가 선언된다.
이는 具회장이 월드컵유치위원장 직을 맡은 지 약 22개월 만의 일이었다. 이후 피곤에 지쳐 서울에 돌아와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고 具회장은 말했다. 그는 『경제인으로서 돈을 쓸 줄 알았고, 국제적인 명망가들을 만나는 일에 익숙한 점이 우연히 잘 맞아떨어졌을 뿐』이라며 겸손해 했다.
世界 경제 사정 좋지 않아 한국도 걱정
具회장은 이어 1996년 6월 초 청와대에서 열린 축하파티에서 더 이상의 활동을 접는 발언을 한다.
具회장은 『감사합니다. 오늘로서 모든 일이 끝났습니다. 앞으로 월드컵 일에서 내 이름은 빼놓고 해 주십시오』라고.
미리 말 안 하고 (월드컵에서) 슬슬 발 뺀다는 인식도 주기 싫었고,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분명히 가릴 줄 알아야 하는데 그때가 물러설 때였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약 6년이 지난 5월 말, 그는 서울 상암동 월드컵 구장에서 열린 개막식에 참석, 감회에 젖으며 월드컵을 감상하게 된다.
잠시 주제를 바꾸기 위해 눈길을 돌리는 순간, 具회장 책상 옆에 커다란 지구본이 눈에 들어왔다. 具회장은 『글로벌 지구본이지』라면서 『지구본을 만지면서 그 동안 기업인으로 세계 각국을 뛰어다녔던 과거를 생각해 본다』고 했다. 만지면 환한 불이 켜지는 이 지구본은 높이가 책상 위로 올라올 만큼 컸다.
具회장은 팔순을 바라볼 만한 나이가 입증하듯 십수 년간을 LG그룹에서 몸담아 온 한국경제의 산 증인이다. 지금은 韓美협회장으로서 駐美대사 출신이나 외무장관을 지낸 국내 인사들과 함께 韓美간 경제와 문화교류에 앞장서고 있다. 具회장은 LG그룹의 前身인 낙희화학에 입사, 호남정유(現 LG칼텍스정유) 사장과 여수에너지 회장, 럭키금성상사(現 LG상사) 회장 등을 거치면서 해외, 특히 미국 측 경제인과 교분이 두터운 미국통으로 통한다.
그래서인지 그는 아직도 국내외 경제에 대해 폭넓은 식견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침체일로를 걷고 있는 미국경제와 한국경제의 앞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具회장은 걱정스런 표정부터 지었다. 그리곤 『잘 될 것 같지 않다』며 말문을 열었다. 지금 미국경제의 문제는 세계경제 전반에 미치는 것을 감안하면 미국만의 문제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미국 경제학자들이 부시 미국 대통령의 경제정책에 비판적인 것도 그런 걱정을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은 실물경제 자체도 좋지 못할뿐더러 경제 외적인 요소가 경제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의 중동정책은 證市를 포함한 경제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설명이다.
具회장은 『팔레스타인 문제도 그렇고 사우디아라비아와의 미묘한 기류 등을 감안할 때 油價불안이 걱정할 만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油價가 배럴당 60달러인 시대도 올 수 있고, 잘 풀리면 6달러 시대도 올 수 있는 극단적인 상황도 가정해 보였다.
미국이 일방적이고 배타적인 태도로 국제무역질서를 흔들고 있는 점에 우려를 표시하면서, 『11월로 다가온 중간선거를 앞두고 국내 정치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가』라며 의문을 달았다. 일본경제 역시 갈수록 좋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긍정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에 대해 具회장은 『운이 좋은 편이지만, 大選을 앞두고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근심을 놓지 않았다. 특히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너무 위축되어 있다는 점에 우려했다. 투자부진은 성장을 둔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具회장은 『올 하반기는 다른 나라보다 성장률이 좋겠지만, 점점 성장세가 둔화(슬로 다운)될 것이며 이런 분위기는 내년 상반기로 연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사 이래 없었던 국민적 자신감 이어가야
현안과 관련해 「週 5일제 근무 도입」에 대한 견해를 요구하자,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네거티브(반대)」 쪽이다』고 즉답했다.
『경제성장이나 국민소득 수준이 어느 정도로 높아지고 노사관계가 성숙됐으면 모르겠지만 아직 이런 점을 만족시켰다고 보기 힘들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경제는 경제논리로 풀어야지 정치논리가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는 소신을 밝혔다.
그는 또 구조조정 현안인 하이닉스반도체 처리에 대해, 『실타래가 마구 엉클어져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조차 사람마다 시각이 다르다』면서 『상황에 따라서는 더 엉킬 수도 있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과거 LG그룹과 빅딜한 결과 탄생한 회사 얘기로 더 이상 코멘트하고 싶지 않다』며 말문을 닫았다.
최근 정부의 부동산 정책평가에 대해서는 『정부가 원칙을 자꾸 바꾸면 정책의 신뢰성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具회장은 『국내 부동산 문제는 집이 없어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면서 『다른 쪽에서 돈 벌 기회가 없으면 또 다른 쪽에서 문제가 터지게 마련이기 때문에 정책의 근간을 지켜 주면서 정책조합을 일관성 있게 제시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월드컵 유치자로서 보람은 국민 모두가 대한민국을 외치고 프라이드(자신감)를 얻게 해주었다는 데 있었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그 어느 시대에서도 우리 국민들은 정부나 국가에 대해 고맙다거나 칭찬해 주는 데 인색했고, 정부는 독선적이거나 자기 편의주의적인 정책만 생각한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있었는데 월드컵이 이를 말끔히 해소했다는 것이다.
具회장은 그러나 정부의 일관되지 못한 정책방향으로 인해 또다시 국가를 못 믿게 만들면 월드컵으로 일치단결했던 국민들의 마음이 흐트러지지나 않을까 우려했다.
끝으로 재계 원로로서 젊은 세대들에 당부하고 싶은 말을 묻자, 具회장은 『개인주의와 국가주의를 잘 조화시켜야 하는데 어려운 과제』라고 말했다. 특히 젊은이들은 대한민국이란 체제와 개인의 자유를 동시에 추구하면서, 국가를 위해 올바른 일을 하도록 도와야 하는데, 쉽지 않아 걱정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