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참(AMCHAM·駐韓 미국상공회의소)의 變身 내막

對韓 압력단체에서 협력단체로. 한국 편들어 미국정책 반대하기도

  • : 송의달  edso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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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참」의 역할 변화
 
 
  서울 강남구 삼성동 무역센터 45층 한 켠에 30평 남짓한 사무실을 쓰고 있는 駐韓(주한)미국상공회의소(American Chamber of Commerce in Korea·이하 AMCHAM으로 약칭). 조지 W. 부시(George, W. Bush) 미국 대통령의 訪韓(방한)을 하루 앞둔 지난 2월18일 한총련 소속 학생 30여 명에 의해 기습 점거당했던 이곳은 「韓美 通商(통상) 摩擦(마찰)의 震源地(진원지)」, 「미국 기업의 前哨(전초)기지」 또는 「오만한 경제 훈수꾼」이라는 비난을 들을 정도로 미국 비즈니스맨들의 이익 代辯(대변)에 열성적인 단체다.
 
  2002년 5월 현재 2300여 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는 슈퍼파워급 조직인 AMCHAM이 최근 대대적인 變身(변신)을 통해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다. 금융·通關(통관)·外換(외환) 및 주식투자·노동법 개정 같은 巨視的(거시적)인 틀은 물론, 국내의 過消費(과소비) 억제운동이나 퇴직금·언어·교통혼잡 문제까지 사사건건 異議(이의)를 제기하며 압력을 가하던 예전의 방식을 지양하고, 失職者(실직자) 가족 지원, 장애인 교육 훈련·취업 박람회 개최, 봉사·기부 활동 등을 통해 「한국 파고들기 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AMCHAM의 변화는 겉모습만이 아니다. 하이닉스 반도체를 비롯한 국내 不實(부실)기업 처리와 외국 철강업체에 대한 통상법 제201條(조) 발동 등 미국 정부의 보호무역 관련 조치 같은 주요 縣案(현안)에서도 AMCHAM은 미국 정부와 다른 목소리를 자주 내고 있다. 수십 년 동안 익숙한 「한국 감시꾼」 또는 「한국 두드려 패기(Korea Bashing)꾼」이라는 이미지를 내던지고 「親韓國化(친한국화·Korea Friendly)」 쪽으로 유턴(U-Turn)을 한 것일까.
 
 
  대규모 취업박람회도 주관
 
 
  AMCHAM에 대한 새로운 像(상)을 만들어 가는 공식적인 견인차는 2000년 2월 공식 출범한 「미래의 동반자 재단(Partners for the Future Foundation)」이다. AMCHAM의 산하 조직인 이 재단은 20여 개 회원사로부터 모은 100만 달러의 財源(재원)으로 작년 봄 학기부터 전국 29개 대학에서 각 두 명씩 모두 58명의 대학생들을 선발, 全학기 등록금을 지원하고 있다.
 
  IMF 경제위기 상황 속에 失職(실직)한 가정의 여성 家長(가장)과 소년소녀 家長, 장애인·混血(혼혈)아동의 어머니 등 수백여 명에 대해 직업교육 및 再活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無住宅(무주택)자를 위한 사랑의 집짓기 운동」, 「승용차 안 어린이 안전좌석 착용 캠페인」 같은 公共(공공)캠페인에도 열심이다.
 
  AMCHAM은 또 2000년 11월에 이어 작년 8월에 대한상공회의소·전경련·중소기협중앙회 등 5대 국내 경제단체와 공동으로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에서 대규모 취업 박람회(Job Fair)를 개최했다. AMCHAM의 한 관계자는 『駐韓 외국경제단체가 국내에서 취업 박람회를 여는 것은 AMCHAM이 유일하다』며 『지난 2000년의 경우, 3만여 명의 취업 희망자들이 현장을 찾아왔으며 이 중 3000여 명이 駐韓 외국기업에서 일자리를 얻었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서인지 1995년 당시 150개에 불과하던 한국기업 會員社(회원사)는 작년 말 250개로 늘었다. 전체 1100여 개 회원사 가운데 한국기업의 비중이 4분의 1로 커진 것이다.
 
  「韓美 간의 상업관계 발전 증진」을 공식 활동 목표(AMCHAM 정관 제2조)로 삼고 있는 AMCHAM이 이처럼 豹變(표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궁금증을 풀려면 먼저 AMCHAM의 구성과 운영방식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AMCHAM의 역사는 195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국에 진출한 20여 개의 미국 기업체가 자신들의 이익 도모를 위해 처음 결성됐다. 1980년대 초반만 해도 AMCHAM의 회원수는 500여 명에 불과해 국내 주요 대기업체 사장들에게 公文을 보내 동참을 호소할 정도로 認知度(인지도)가 낮았다.
 
  하지만 올 5월 현재 회원수는 2300명이며, 이 가운데 기업체(법인 포함)만 1100여 개가 된다. 연간 예산은 100만 달러 정도를 쓰고 있다. 예산은 대부분 회원들의 연간 회비로 충당되지만, 일부는 세미나 수익금과 간행물 광고 수입 등에서 생긴다고 한다.
 
 
  세계 암참 가운데 上海에 이은 2위
 
 
  『1988년 서울올림픽 등을 계기로 다국적 기업의 국내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회원 규모도 팽창했지요. IMF(국제통화기금) 외환 위기 직후인 1998년쯤부터 회원수가 2000명을 넘어섰습니다. 한국 지부는 全세계 AMCHAM 네트워크 가운데 중국 상하이에 이어 두 번째로 급성장하는 곳입니다』 (태미 오버비 AMCHAM 상근 부회장)
 
  눈길을 끄는 것은 AMCHAM 회원사 명단에는 미국 기업뿐 아니라 한국에 들어와 있는 세계 각국의 기업체와 유력 인사들이 망라돼 있다는 사실이다. 유럽계 기업은 물론 삼성전자·LG화학·㈜효성 같은 한국 기업, 고려대·연세대·연합뉴스 같은 법인과 司空壹(사공일) 前 재무부 장관·金民錫(김민석) 국회의원(민주당)·洪錫炫(홍석현) 중앙일보 발행인 등도 가입해 있다.
 
  AMCHAM 측은 『유럽과 한국 기업까지 포함하면 전체 회원사의 절반 정도는 非미국계』라고 밝혔다.
 
  AMCHAM의 회원은 여러 종류다. 명예회원·일반회사 회원(Company Member)·개인회원(Individual Member)·특별회원·청년 전문회원(Young Professional Member) 등 8~9개로 나누어진다. 예컨대 토머스 허바드(Thomas Hubbard) 駐韓 미국 대사와 존 피터스(John Peters) 駐韓 미국 대사관 商務官은 명예회원으로 이 단체의 명예회장과 명예 이사를 각각 겸하고 있다.
 
  토머스 슈워츠(Thomas Schwartz) 前 駐韓 미군사령관을 포함한 상당수 미군 將星들도 명예회원으로 활동중이다. 한국에 살면서 비즈니스를 하는 미국 시민들은 개인회원으로, 미국 시민이라도 자선·교육·종교 기관에 종사할 경우는 특별회원의 자격을 갖게 된다. 연간 會費는 회원 종류에 따라 45만~150만원線까지로 다양하다.
 
  이 중 「노른자위」 회원은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일반회사 회원들이다. 이들은 미국 國籍(국적)을 갖고 한국에서 비즈니스 활동을 하는 개인 회원과 더불어 AMCHAM 집행부 선출시 투표권을 행사하는 그룹으로 총 514개社에 달한다.
 
  회원 숫자가 많고 상당수 회원들이 有力人士라는 사실보다 더 주목되는 것은 독특한 운영 방식이다. 회원들을 위해 이렇다 할 구체적인 활동을 하지 않고 있는 국내 경제단체와 달리 AMCHAM의 내부 움직임은 대단히 활발하다.
 
  일례로 AMCHAM의 모든 회원들은 비즈니스 分野(분야)나 개인 關心事(관심사)에 따라 항공 및 국방·건설·자본시장·인터넷·북한·자동차·벤처·부동산 등 32개 분야별 委員會(committee)에 가입해 있다. 일부 회원들은 최대 5개 정도의 위원회에 중복가입해 활동한다. 위원회 사정에 따라 1~3개월마다 열리는 위원회 모임은 회원간 친목·社交(사교)는 물론 투자 정보 蒐集(수집)과 交換(교환)에 有用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年例 무역보고서가 활동의 白眉
 
 
  『3개월마다 한 번씩 모임을 갖습니다. 대부분 호텔에서 朝餐(조찬)을 겸해 만나는데, 주제발표를 듣고 끝내는 세미나 방식이 아니라 국내외 부동산 전문가들이 패널로 나와 열띤 토론을 벌입니다. 실용적인 정보로 가득찬 知的(지적)인 자리라고 자부합니다』
 
  AMCHAM 산하 부동산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피에트로 도란(Pietro Doran) 모건 스탠리 상임고문의 말이다. 그는 『위원회 모임에서 나온 자료 등을 토대로 서울 강남과 여의도 지역 등에 국한됐던 부동산 상승세가 조만간 대구·광주·인천·부산 등 지방도시로 확산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각종 위원회 회의의 결과물은 분야별 中短期(중단기) 對韓(대한) 투자 전략 수립시, 참고 자료로 활용되지만 모든 위원회의 결론은 매년 3~4월에 발표되는「年例(연례)무역보고서」 형태로 집약 표출된다.
 
  보통 3개월여 동안 준비기간을 거쳐 탄생되는 이 보고서는 한국 정부는 물론 미국 행정부와 議會에 보고되고, 매년 4월 초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NTE)에 반영돼 對韓 통상요구 사항으로 되돌아온다.
 
  『1984년 「韓美무역 및 투자 이슈 보고서(Korea-U.S.Trade and Investment Issues)」를 처음 만든 이후 1998년까지 한국 정부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미국에 보고하다 보니 불필요한 오해를 많이 샀습니다. 그러나 1999년부터 한국 정부와 협조 차원에서 草稿(초고)를 미리 외교통상부에 전달해 충분한 사실 확인과 사전 협의를 하고 있습니다』
 
  제프리 존스(Jeffrey Jones) AMCHAM 회장은 이런 맥락에서 연례보고서의 제목을 2000년부터는 「한국의 비즈니스 환경 개선(Improving Korea’s Business Climate)으로, 副題(부제)는 「미국인 기업체의 권고사항들(Recommendations from American Business)」로 바꿨다고 밝혔다. 일종의 희망사항들을 담고 있는 目錄(목록)인 만큼, 사실과 다른 느낌을 주는 표현을 삭제했다는 것이다.
 
  AMCHAM 자체 집계에 따르면, 전체 회원의 30% 정도는 한국인 또는 한국계 기업이라고 한다. 미국 상공인들의 이익과 권리를 보호·확산시킨다는 당초 趣旨(취지)가 일부 희석된 것은 회원사들의 이런 질적 구성 변화가 한몫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실제 AMCHAM은 지난 3월 초 미국 행정부가 외국산 철강제품에 高率(고율) 관세를 부과하기로 하는 내용의 통상법 제201條를 발동하자, 같은 달 13일 이사회를 열어 「美 정부의 보호무역정책이 해외에 나가 있는 미국 기업의 비즈니스 활동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으므로 201조 발동을 再考 또는 철회할 것」을 촉구하기로 결정했다. 예전같으면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自國 정부 정책에 「NO」 하기도
 
 
  이 결정이 기폭제가 돼 아시아·태평양 지역내 23개 미국 상공회의소들의 모임인 亞太(아태) 美 상의협의회(APCAC)는 지난 3월21일부터 뉴질랜드 오클랜드市에서 열린 2002년도 정례회의에서 미국 행정부의 통상법 제201조 발동 조치에 반대하는 입장을 공식 확인하는 결과를 이끌어 냈다.
 
  작년 봄, 부시 공화당 행정부 출범 후, 산업은행의 하이닉스 반도체(당시 현대전자) 회사채 인수 문제가 韓美간 최대 통상 쟁점으로 떠올랐을 때도, AMCHAM은 한국 정부의 友軍(우군) 역할을 自任(자임)하고 나섰다. AMCHAM 간부들은 지난해 3월 말 워싱턴과 뉴욕을 찾아 『한국정부가 산업은행을 통해 개입하지 않았다면, 한국의 금융시스템이 마비되는 등 충격이 너무 컸을 것』이라는 논리로 『산업은행의 회사채 신속인수제는 特惠(특혜) 지원이 아니다』며 「한국 옹호론」을 미국 朝野(조야) 곳곳에 설파하고 다녔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AMCHAM의 위상은 창립 50여 년 만에 最全盛期(최전성기)를 謳歌(구가)하고 있다고 해도 過言(과언)이 아니다. 태미 오버비 부회장은 『1995년 AMCHAM의 상근 부회장직을 처음 맡았을 때만 해도 AMCHAM 간부들이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직접 면담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고 말했다.
 
  『지금은 청와대, 재정경제부, 산업자원부 등 정부 부처나 서울시 등과 아주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하고 있지요. 매주 최소한 한두 번씩은 쌍방의 필요에 따라 아무런 거리낌없이 직접 만나거나 전화로 장시간 연락하고 있으니 隔世之感(격세지감)을 느낍니다』
 
  AMCHAM은 지난 3월13일 「기업환경조사(Business Environment Survey)」라는 특별보고서 발표 후, 대한상의·전경련·무역협회 등 경제 5단체가 『AMCHAM의 제안에 전적으로 同感(동감)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즉각 발표한 데 대해서도 고무된 분위기이다.
 
  이 특별보고서는 AMCHAM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진출해 있는 100여 개 多國籍(다국적) 기업의 최고 경영자(CEO) 등 1700여 명을 상대로 서울·홍콩·싱가포르·도쿄·상하이 등 5개 국제도시의 비즈니스 환경을 비교조사한 것이다.
 
  『한국을 多國籍 기업들의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hub country)로 도약시킨다는 한국 정부의 구상을 적극 지원한다는 차원에서 특별보고서를 석 달 가까이 준비해 발표했는데, 한국 경제단체들의 전폭적인 지지 성명은 정말 거의 기대하지 못했던 郞報(낭보)였지요』(제프리 존스 회장)
 
  여기서 짚어보아야 할 점은 AMCHAM의 총본산이자 母胎(모태)인 미국상공회의소(U.S. Chamber of Commerce)란 본래 어떤 존재냐는 것이다. 1912년 創立된 미국 상공회의소는 전세계 88개국에 지부를 두고 미국에만 300만개의 회원 업체를 두고 있는 미국내 最大 규모의 강력한 민간 조직이다.
 
 
  핵심 인물은 제프리 존스 회장 등 17명, 허바드 大使는 명예회원
 
 
  미국 상공회의소는 2000년 한 해 동안, 회원사들의 利益 增進을 위해 20명의 전문 로비스트와 90여 명의 정책 전문가들을 동원해 의회와 행정부 등을 상대로 1816만 달러(약 200억원)의 로비자금을 썼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40년 넘게 「미국인에 의한, 미국인을 위한 특수이익 집단」으로 설립 취지에 충실해 왔던 AMCHAM의 최근 움직임은 쉽게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런 革命的(혁명적)인 變身(변신)을 추진하고 있는 主役들은 누구일까.
 
  이른바 AMCHAM을 움직이는 實勢(실세)그룹은 5명의 會長團(회장단)과 12명의 理事(이사·Governor) 등 17명으로 구성된 AMCHAM 집행부라고 할 수 있다.
 
  常勤(상근) 부회장인 오버비씨 한 명을 제외하면, 이들은 모두 AMCHAM으로부터 한 푼의 報酬(보수)도 받지 않는 순수 명예직이다. 會長團 가운데 오버비 부회장, 브라이스 뷰캐넌 監事(프라아스워터하우스 쿠퍼스 한국지사 파트너) 등 두 명은 주요 사안 결정에 投票權限이 없다. 허바드 대사와 피터스 상무관도 각종 회의에 수시로 참석하지만 명예회원이기 때문에 투표를 하지 못한다.
 
  AMCHAM 측은 『미국 정부는 한국 기업의 미국 진출과 미국 기업의 한국 진출을 촉진시키는 본연의 업무성격상 AMCHAM과 상호 협조할 뿐, AMCHAM의 사업내용과 활동방향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고 밝혔다.
 
  이들 AMCHAM 집행부는 서울 시내 호텔에서 朝餐 모임을 겸해 매달 한두 번씩 만나는데 충분한 의사교환과 토론 등을 통해 滿場一致(만장일치) 방식으로 주요 事案에 대한 결정을 내리고 있다.
 
  『모임은 항상 親近感(친근감)이 넘칩니다. 모두 무척 바쁘다 보니 한자리에 모이기가 워낙 힘들어 2년 전 쯤부터는 인터넷 이메일 등을 이용해 의견 조율을 하고 이메일 투표도 가끔씩 합니다』(오버비 부회장)
 
  AMCHAM 규정에 따르면, 매년 12월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會長은 반드시 미국 國籍 소유자여야 한다. 세 명의 副會長 중 한 명은 非미국 국적자도 가능하다. 그러나 실제 非미국인이 부회장에 뽑힌 사례는 거의 없다. 理事會(이사회) 멤버는 국적 제한이 없다.
 
  17명의 집행부 간부 가운데 주목되는 핵심 인물은 1998년 8월부터 만 4년째 AMCHAM 회장직을 長期執權(장기집권)하고 있는 제프리 존스(50·김&장 法律사무소 소속 국제변호사)씨이다.
 
  『매일 오전 7시에 집을 나와 보통 밤 10시에 歸家하는 생활을 되풀이하고 있지요. 하루 일과의 절반은 꼬박 AMCHAM 회장 관련 업무로 할애하고 있으니 회사에서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아요. 올 12월까지만 하고 더 이상은 절대 맡지 않을 작정입니다』
 
 
  압력단체가 아니라 협력단체
 
 
  1999년 봄, 한국 여성과 결혼한 그는 각종 행사장에서 한국어로 연설하고 다른 미국인들을 위해 영어로 통역할 정도로 완벽한 한국어를 구사한다. 한국의 속사정도 훤하게 꿰차고 있다.
 
  『일주일이 3~4일밖에 안 된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늘 시간에 쫓기지만 밤늦게 집에 들어가도 외동아들 재민(작년 12월 출생)이를 보듬고 목욕시켜 줄 때 가장 큰 행복감을 느낀다』는 半한국인이다.
 
  ―AMCHAM의 役割(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미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정보나 이해 수준이 너무 빈약합니다. 그래서 AMCHAM은 한국을 외부에 잘 알려주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한국의 자본주의 역사는 日淺(일천)한데, 무조건 미국식 자본주의로 가라고 채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과거와 달리 AMCHAM을 압력단체가 아니라 협조단체로 대하는 경향이 생겨나 기쁩니다』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어려운 점은 무엇입니까.
 
  『미국 기업인들이 한국 사정을 먼저 이해하고 행동하려는 노력이 다소 부족합니다. 2000년에는 미국 자동차 회사들로부터 「당신은 어느 나라 회장이냐」며 辭退(사퇴)하라는 압력을 받기도 했지요. 당시 나는 미국 자동차 회사들이 한국 정부만 핍박할 게 아니라 한국 소비자 입장에서 마케팅을 잘 하라고 얘기했는데 이게 反感(반감)을 샀습니다. 결국 미국 자동차 회사 측이 내 말을 따라 듣게 됐습니다만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지요』
 
  ―한국인들에게는 어땠습니까.
 
  『한국인들에게도 듣기 싫은 소리를 자주 하니까 너무 훈계를 많이 하는 것 아니냐는 소리도 듣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저는 한국과 미국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윈-윈(win-win) 상황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되겠다는 소신에 변함이 없습니다』
 
  ―역대 어느 회장보다 정부와 긴밀하게 접촉하는데.
 
  『매주 3~4회는 정부 관계자를 직접 만나거나 전화로 허심탄회하게 얘기합니다. 재경부, 금융감독위원회, 산업자원부 등은 물론 대한상의, 전경련 등 경제단체와도 협조가 잘 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와 다른 AMCHAM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회원수가 많고 정부와 협조관계가 정말 좋다는 점입니다. AMCHAM의 회원 규모는 경제규모와 인구가 훨씬 많은 일본 도쿄와 맞먹습니다. 올해 초 한국을 찾았던 헌츠만 USTR 부대표가 귀국 후 「한국 AMCHAM의 활동이 다른 나라보다 훨씬 효과적」이라고 칭찬한 편지를 최근 보내왔습니다』
 
  ―개인적으로 한국 경제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지난 3년 동안 많은 개혁을 했고 제도정비도 많이 이뤄졌습니다. 중국 시장이 점차 커지면서 한국에도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것으로 봅니다. 1인당 GNP도 1만 달러 수준에서 계속 늘어날 것이고요. 이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한국이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한국인은 성질이 급해 일본인처럼 참지 못하고 변화와 개혁을 수용해 재빨리 바꿉니다. 「빨리빨리」 습관도 디지털 시대에는 강력한 경쟁력이 될 겁니다』
 
  ―앞으로 AMCHAM이 추진할 주요 과제는 무엇입니까.
 
  『다국적 기업의 亞太본부를 한국으로 많이 유치하는 일입니다. 회장직에서 물러나더라도 이 일은 계속하고 싶어요. AMCHAM에서 한국인 이사들도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개인적인 생활 철학을 소개한다면.
 
  『첫째 가정 중심, 둘째 직장 중심, 셋째 남들에게 봉사하는 삶입니다. 해외출장이나 외국에서 중요한 손님이 오는 것 같은 불가피한 경우가 아닌 한 주말은 꼭 가족과 함께 보내고자 하고 있지요. 골프도 한달에 한두 번만 칩니다』
 
 
  女丈夫 오버비 常勤 부회장은 실무총책
 
 
  미국 아이다호州 출신으로 1971년 경남 마산에 말일선교회(몰몬교) 선교사로 2년 파견된 이후, 30여 년 동안 한국과 끈끈한 因緣(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게 존스 회장의 최대 장점이다. 그는 『한국인은 중국이나 일본인보다 훨씬 솔직하고 유머 감각이 있는데, 이런 점은 미국인과 비슷하기 때문에 앞으로 韓美관계도 아시아 어느 나라보다 더 긴밀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태미 오버비 상근 부회장(43)은 존스 회장과 함께 AMCHAM의 雙頭馬車(쌍두마차)를 이루는 女丈夫(여장부)다. 다른 집행부 간부들이 모두 비상근인 것과 달리 서울 삼성동 AMCHAM 사무실에 常駐(상주)하는 그는 16명의 정규직원과 10여 명의 인턴사원을 지휘하면서 AMCHAM의 안방살림을 도맡아 챙긴다. AMCHAM의 각종 행사와 브리핑, 자료관리와 정기간행물 발간을 총괄하며 32개 위원회의 연락창구 역할도 그녀 몫이다.
 
  미국 루이지애나州 출신으로 아칸소大에서 마케팅을 공부한 그는 1988년 駐韓미군부대 군무원으로 근무중이던 어머니의 권유로 한국을 처음 찾은 이후 지금까지 15년째 서울에서 살고 있다. AMCHAM 산하 멤버십 위원회와 인력자원 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이사를 역임했다.
 
  ―1980년대 후반 기록을 보면 AMCHAM은 한국 경제부처 실무 간부들을 세미나 형식으로 온천 등에 초청해 「待接(대접)」해 가며 로비를 벌였는데.
 
  『8~10년 전만 해도 정부 부처의 중견 관리들을 초청해 그들의 입장을 듣고 상호이해를 높이는 연례 대화를 했지만 이제는 완전 중단했습니다. AMCHAM 산하 위원회가 개별적으로 외교통상부·산업자원부·재경부·보건복지부 등 관계 부처와 긴밀하게 정보공유와 쌍방향 교류를 해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 것이지요』
 
  ―AMCHAM의 주요 정책방향을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무엇입니까.
 
  『당연히 AMCHAM의 선거권자이자 主人인 회원들의 利益 증진이 되겠죠. AMCHAM 회원사들은 한국 내에 줄잡아 300만명을 고용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도움이 되느냐 여부가 不動(부동)의 기준입니다. 회원들이 잘 되려면 한국이 번영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퇴보한다면 회원사들도 타격을 입게 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 지원활동은 회원사들에게도 有益하다고 확신합니다』
 
  ―한국 경제의 앞날은 밝다고 보십니까.
 
  『그렇습니다. 특히 과거에는 외부 요인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많이 받았지만 최근에는 국내 소비시장이 활성화된 게 큰 강점입니다. 한국의 강화된 內需(내수)시장이 외부로부터의 영향을 緩和(완화)시켜 줄 것입니다』
 
  ―한국을 다른 측면에서 평가한다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한국인의 국민성이 큰 재산입니다. 또 정보기술(IT), 物流(물류) 분야에서 인프라스트럭처가 훌륭한 게 비교우위 요인입니다. IT 이외에 자동차, 조선, 반도체 등 다양한 산업이 발달해 있는 산업구조도 매력적입니다. 한국 정부가 지속적인 개혁조치로 경제구조를 튼튼하게 이끄는 게 남은 과제라고 하겠지요』
 
 
  맹일영 부회장은 유일한 한국系 미국인
 
 
  160㎝를 조금 넘는 短軀(단구)에 未婚(미혼)인 태미 부회장은 『AMCHAM 회원사들이 한국에서 얻은 이익은 가급적 한국 국민들에게 되돌려줌으로써 기업의 책임(corporate responsibility)을 다하는 게 正道(정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가 선진 경제로 도약하도록 성심껏 돕는 게 미국 기업에도 장기적으로 得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AMCHAM 회장은 임기가 1년이지만, 부회장과 이사는 임기가 각각 3년으로 더 길다. 특이한 것은 회장단 선거의 경우, 매년 11월 말 투표권이 있는 개인회원과 일반회사 회원 등 750여 명을 상대로 AMCHAM이 우편으로 투표용지와 후보들의 경력·공약 등을 담은 용지를 보낸 다음 지정일까지 투표결과도 우편으로 받아 開票한다는 점이다.
 
  맹일영 유나이티드 테크놀로지스(United Technologies) 코리아 사장은 이런 방식으로 선출된 5명의 회장단 가운데 唯一(유일)한 韓國系 美國人이다. 서울大와 미국 조지아大(석사)·위스콘신大(박사)를 졸업한 다음, 1988년부터 1991년까지 삼성그룹 회장실 고문으로 근무했으며, 1999년 9월부터 AMCHAM 부회장을 맡고 있다. 1995년부터 AMCHAM 理事로 활동했으며 산하 환경위원회 위원장도 맡았었다.
 
  맹 부회장은 『AMCHAM이 통상압력의 진원지라는 식의 비판은 이제 완전히 옛날 얘기가 됐다』며 AMCHAM의 「패러다임 변화」論을 주장했다.
 
  『자동차와 知的 재산권 같은 분야에서 AMCHAM이 여전히 신경 쓰는 사안이 일부 있지만, 과거에는 通商(통상)문제가 AMCHAM 전체 활동의 80~90%를 차지했다면 지금은 20~30%로 비중이 줄었습니다. 한국과 AMCHAM이 서로 정보 교류와 긴밀한 네트워킹으로 도움을 주는 윈-윈(win-win) 상황을 만드는 게 가장 큰 관심사이지요』
 
  ―그럼 왜 최근까지 AMCHAM의 이미지는 부정적이었습니까.
 
  『1995년 당시만 해도 한국의 외국인 투자환경은 매우 劣惡(열악)했습니다. 한국이 세계에서 투자하기 가장 힘든 나라로 인식됐고 실제 그런 측면도 많았지요. 다행히 IMF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현 정부의 적극적인 外資誘致(외자유치) 노력으로 외국투자 관련 장애물들이 많이 제거되면서 그런 평가가 사라졌다고 봅니다』
 
  그는『AMCHAM 내부적으로는 1995~1996년 2년 동안 회장을 맡았던 조지 윌리엄스(George Williams)씨가 AMCHAM의 對韓 視角(시각)과 접근법을 바꾸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정부, 경제단체 등은 「암참」을 잘 활용해야
 
 
  ―AMCHAM은 왜 한국인들에게 필요하다고 봅니까.
 
  『한국이 중국과 동남아 틈바구니에서 생존을 위한 활용 대상이라는 차원에서 봐야 합니다. 駐韓유럽연합(EU)상의나 서울-재팬클럽 같은 단체들이 있지만, 미국이야말로 세계경제의 엔진입니다. AMCHAM 회원들은 매주 1~2회 본사와 직접 통화하고 적어도 2~3개월마다 미국 본사로 출장가 한국 사정을 설명합니다. 따라서 정부나 全經聯 등이 AMCHAM을 잘만 활용하면 엄청난 弘報(홍보)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돈 안 들이고 홍보기관으로 쓰고 경제에 직·간접적인 도움이 된다는 얘기지요』
 
  맹 부회장은 특히 『다국적 기업들의 중국 진출 붐이 불고 있는데, 중국이나 동남아는 한국보다 高難度(고난도) 技術力(기술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AMCHAM을 잘 이용한다면 한국에 많은 다국적 기업 본부가 들어와 아시아 비즈니스 센터로 도약도 가능하다』고 했다.
 
  ―AMCHAM의 최근 변화는 누가 주도하고 있습니까.
 
  『AMCHAM의 활동방향이 매우 고무적인 쪽으로 돌아선 것은 한국 사정에 정통한 존스 회장과 오버비 부회장의 역할이 크지요. 그들은 때때로 미국 기업보다 오히려 한국 입장을 너무 대변하는 게 아니니냐는 오해를 받을 정도입니다』
 
  ―AMCHAM이 앞으로 개선 또는 보완해야 할 점이라면.
 
  『개인적으로 AMCHAM이 한국으로 미국의 첨단고급기술 移轉(이전) 같은 데 주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런 노력을 소홀히 할 경우, 미국 내 상당수 고급기술이 중국으로 흘러들어가 한국의 경쟁력 약화가 우려됩니다. AMCHAM 내부적으로는 한국인 理事들이 좀더 많아져야 합니다. 그래야 발언권이 강해져 한국인의 요구사항을 적극 관철시킬 수 있습니다』
 
  세 명의 비상근 부회장 가운데 나머지 두 자리는 부동산 투자 분야와 생활용품 판매 분야에 종사하는 미국인 CEO들이 각기 맡고 있다. 이 가운데 피에트로 도란 모건스탠리 부동산 펀드 상임고문은 2000년 12월 AMCHAM 차기 회장 선거에 출마해 존스 現 회장, 웨인 첨리 다임러 크라이슬러 코리아 사장과 3巴戰(파전)을 벌여 화제를 모았다. 한국인 부인과 결혼해 15세와 12세의 자녀 두 명을 두고 있는데, 미국 MIT大 학부(금융학 전공)와 대학원(부동산학 석사)을 졸업했다. 그는 1992년에 외국인으로는 최초로 부동산 투자 목적의 합작 벤처기업인 브룩 힐러 파커(Brooke Hiller Parker)社를 설립했다.
 
 
  도란 부회장은 최초로 부동산 투자회사 설립
 
 
  그는 1993년에는 「한국시장 개관(Korean Market Overview)」이라는 英文 단행본을 내 한국의 부동산 시장을 해외에 소개했으며, 1996년에는 국내 최초로 외국인이 100% 소유한 부동산투자전문회사인 「존 벅 컴퍼니(John Buck Company) 코리아」를 설립했다. 그동안 썬마이크로시스템즈·시스코시스템·오라클코리아 같은 유수의 주한 외국기업 본사를 서울 강남으로 유치했다.
 
  서울 창덕궁 맞은편에 있는 7평 남짓한 그의 사무실에는 지게·낫·곡괭이 같은 50여 점의 전통 農器具(농기구)와 古지도가 사방에 빼곡하게 자리잡아 기자의 눈길을 자극했다.
 
  ―한국 건축문화에 남다른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情(정)이 넘치는 한국 고유의 정서와 역동적인 분위기를 사랑합니다. 특히 한국의 전통 농기구는 예술적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겸비하고 있어 외국 친구들에게도 자랑하고 있지요』
 
  ―한국에서 부동산 투자 분야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1991년 한국에 도착했을 때 한국 부동산 시장은 국제적 기준에서 볼 때 낙후돼 있고, 유리한 조건의 매물이 많이 나와 있어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습니다』
 
  도란 부회장은 한국 부동산 시장에 대한 독자적인 연구와 경험을 토대로 지금까지 200여 개 외국기업의 對韓 투자 업무를 지원했으며, 한국개발원(KDI)을 비롯한 연구기관과 국내 대학에 부동산 시장 전문가로 특강도 하고 있다. AMCHAM의 존재 이유를 묻자 『과거에 AMCHAM은 미국 기업이 한국에서 비즈니스하기 쉽도록 시장 접근을 확대하고 요구사항을 전하는 사업활동 용이자(facilitator)로 이익단체(business advocacy group) 성격이 강했지만, 지금은 다르다』고 말했다.
 
  ―그럼 AMCHAM의 기능은 어떻게 바뀌고 있는 겁니까.
 
  『이해의 가교(bridge-builder of understanding)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한국이 미국의 비즈니스 우선순위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미국도 한국의 상황을 잘 이해하도록 중간에서 연결해 준다는 의미지요. 동시에 한국 비즈니스로 얻은 수익을 한국에 가급적 많이 되돌려 주며 봉사하는 「기업 시민(corporate citizen)」 역할도 重視합니다』
 
  ―지난 2월 중순 한국 대학생들이 AMCHAM 사무실을 점거했는데.
 
  『AMCHAM 집행부가 매우 조용하게 대처했습니다. 이것도 AMCHAM의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일 것입니다. 어떤 행동을 취하기 전에 먼저 한국 상황을 사려 깊게 헤아려 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겁니다』
 
  ―앞으로 한국 경제는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지난 2~3년의 어려운 시기를 거쳐 왔으므로 앞으로 1~2년은 전망이 밝을 것입니다. 특히 수출 등에만 의존해 온 한국이 자체 소비 시장이 급성장한 것은 큰 强点입니다. 한국은 앞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유망한 시장 가운데 하나라고 판단합니다』
 
  ―AMCHAM이 그래도 보완해야 할 점이라면?
 
  『한국이라는 집(house)에 살고 있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아무리 그 집을 개선할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더라도, 집 주인이 싫어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서로에게 솔직하고 또 양쪽 사정을 충분히 반영한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침 7시30분부터 밤 11시까지 한국 사람 못지않게 바쁘게 일과를 보낸다는 도란 부회장은 『한국이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인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많은 부분에서 획기적으로 달라졌기 때문에 AMCHAM도 短期(단기) 이익이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 한국의 발전을 바라는 동반자 관계(partnership)로 탈바꿈했다』고 강조했다.
 
 
  라즈와니 부회장은 탄자니아 출신 「愛韓맨」
 
 
  회장단 가운데 한국 생활 경력이 가장 짧은 앨 라즈와니(Al Rajwani·44) 한국 P&G 사장은 동아프리카 탄자니아 출생이지만 한국에 대한 愛情(애정)은 여느 회원 못지않게 뜨겁고 깊다고 자부한다. 캐나다·미국 본사·대만 등을 거쳐 2000년 7월부터 한국에서 살고 있는 그는 『CNN 등을 통해 비쳐진 한국의 모습은 노동조합 활동이 강력하고 전투적이며, 정부 규제가 많고 데모가 끊이지 않는 나라였지만 한국 생활을 하면서 아내와 함께 매일매일 한국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면서 즐거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들과 만나 처음 말문을 터 관계를 맺는 게 어렵지만, 그 어느 나라 사람보다 깊고 끈끈한 情을 나눌 수 있는 게 큰 매력이지요』
 
  ―만약 한국을 모르는 외국인이 한국생활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면.
 
  『기꺼이 적극 권유할 것입니다. 바깥 나라에 비치는 한국과 실제 현장에서 접하는 한국의 모습은 정말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생활을 할수록 한국의 장점과 改善된 비즈니스 환경에 놀라게 됩니다』
 
  서울 한남동 유엔빌리지에서 부인과 함께 살고 있는 라즈와니 부회장은 틈날 때마다 제주·부산·대구 등 지방도시를 찾아 다니는 「愛韓(애한)」 비지니스맨.
 
  『거의 대부분의 한국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데, 지난해는 갈치조림·닭갈비와 함께 개고기도 처음 먹어 보았지요』
 
  ―개인적인 經營哲學(경영철학)을 말씀하신다면.
 
  『駐韓 P&G그룹 「大使(ambassador)」로서 한국에서 벌어들인 수익금 가운데 가장 많은 부분을 한국 시민들에게 되돌려 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매년 김치 만들기 행사, 임직원 獻血(헌혈)행사, 어린이 소아암 환자 치료비 지원, 고아원·양로원 돕기, 사랑의 집짓기 지원 같은 다양한 봉사 프로그램을 벌이고 있는 것은 이런 믿음에서입니다』
 
  ―AMCHAM의 궁극적인 目標(목표)는 무엇입니까.
 
  『투자자(회원기업)와 근로자, 소비자 등 3者(자)가 윈-윈(win-win)」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AMCHAM이 주도해 한국의 기업환경이 더 투명해지고 불필요한 규제가 없어지면 좋은 외국기업이 더많이 들어올 것이고, 그러면 더 많은 고용창출이 이뤄지고 값싸고 질좋은 제품을 살 수 있게 돼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앞으로 한국 경제를 左右(좌우)할 變數(변수)는 무엇일까요.
 
  『한국 경제의 미래를 낙관하지만 경제개혁이 계속돼 기업경영의 투명성이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정부 규제도 완화돼야 할 것입니다. 이와 함께 일본 경제의 危機(위기) 봉착 가능성도 염려됩니다. 일본이 침몰하면 한국에도 큰 부담이 될 것입니다』
 
 
  崔埈根 한국휴렛팩커드 사장은 全經聯, 大韓商議 간부도 겸직
 
 
  회장단을 보좌·지원하면서 AMCHAM 집행부의 中樞(중추)적인 기반을 이루는 것은 12명의 理事들이다. AMCHAM 理事들은 대부분 AMCHAM 산하 위원회의 委員長 직을 겸해 일반 회원들이 느끼는 애로사항과 밑바닥 현장 분위기에 상대적으로 밝은 편이다. 이 때문에 관례적으로 AMCHAM 회장단은 십중팔구 이사 경력자 가운데 選任(선임)되고 있다.
 
  崔埈根(최준근·49) 한국휴렛팩커드(HP) 사장은 12명의 AMCHAM 이사진 가운데 유일한 韓國人이다. 부산大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다음 미국 하버드大 최고경영자 과정을 수료한 그는 현재 전경련 국제사업위원회 위원장과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도 맡고 있다.
 
  42세이던 1995년 10월부터 한국 HP 사장을 맡고 있는 그는 2000년까지 150억 달러의 수출 실적을 올려 HP본사로부터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우수상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경영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한국인으로서 아주 드물게 AMCHAM 이사로 활동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한국 HP는 대표적인 多國籍 회사이기 때문에 AMCHAM 활동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고, 집행부의 추천도 있어 출마를 결심했습니다』
 
  ―2년여 동안 활동하면서 느낀 점은 어떴습니까.
 
  『AMCHAM이 한국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는 데 놀랐습니다. 지난해 처음 참가했던 도어 녹(Door Knock) 행사의 경우, 대표단은 아침 7시부터 저녁 7~8시까지 미국 재무부, 상무부, 의회, 싱크탱크 등을 찾아 한국이 미국의 얼마나 중요한 파트너이며 얼마나 많은 비즈니스 환경 개선이 이뤄졌는지 조목조목 사례와 통계를 들어가며 설명하더군요. 하루 평균 일곱 건 이상의 미팅을 소화했는데 너무 인상적이어서 한국인으로서 오히려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AMCHAM 이사진 가운데 한국인 비중이 너무 적어 보이는데.
 
  『바쁘기도 하겠지만 한국인 회원들이 스스로 「내가 자격이 될까」 하고 半信半疑(반신반의) 하는 게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또 미국 비즈니스맨들의 단체인 만큼 미국 국적의 기업인들이 타당하다고 여기는 분위기 탓도 있겠지요. 그러나 특별한 제약 요인이 없는 만큼 한국인들이 중심부에 좀더 많이 진출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한국인들은 AMCHAM을 어떻게 이용해야 한다고 봅니까.
 
  『도어 녹 행사를 포함해 AMCHAM을 우리의 最大 交易國(교역국)인 미국에 대한 마케팅 센터로 활용해야 합니다. 또 수시로 韓美 간의 경제 쟁점이 발생할 경우, 다방면으로 긴밀하게 협조한다면 짭짤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 상대로 한국 로비 활동하는 「도어 녹」 행사
 
 
  도어 녹 행사는 AMCHAM이 1985년부터 매년 4~6월에 실시하는 대표적인 본토 방문 행사. 집행부 간부 6~7명이 일주일 동안 워싱턴·뉴욕시 등을 방문해 미국 행정부와 의회·업종별 이익단체·싱크탱크(Think Tank) 등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한국 상황을 설명하는 게 主 목적이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한국과 홍콩·대만·上海·베이징·도쿄 등 6개 AMCHAM 지부가 실시하고 있다.
 
  최사장은 『매년 정기적으로 미국의 핵심부에 AMCHAM만큼 체계적이며 주도면밀하게 한국의 입장을 전하는 한국 정부 부처나 기관이 있는지 의문스럽다』며 『우리 정부도 여러 각도에서 AMCHAM의 노력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웨인 첨리(Wayne Chumley) 다임러크라이슬러 코리아 사장도 AMCHAM 행사에 의욕적으로 참여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1996년 9월부터 부인·두 딸과 함께 서울 역삼동에 살고 있는 그는 미국 텍사스 州 출신으로 『김치찌개나 곱창찌개 같은 매운 음식이 화끈한 텍사스인들의 趣向(취향)과 닮아 즐겁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폭탄주도 즐기는 斗酒不辭(두주불사)형으로 도쿄 지사에서 근무도 했던 그는 중국 北京에 위치한 다임러크라이슬러 동북아 사업본부 이사회 이사를 겸하고 있다.
 
  ―일본이나 중국과 비교할 때 한국의 기업 환경은 어떻습니까.
 
  『한국의 비즈니스 환경은 최근 매우 극적으로 개선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 일본보다 오히려 비즈니스 활동하기가 더 쉬워졌다고 할 정도입니다. 물론 자동차·의약품·화장품 등 일부 분야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국 전체적으로 기업환경 개선에 적극적인 사실이 매우 鼓舞的(고무적)입니다』
 
  ―한국 시장이 갖는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중국과 일본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절묘한 지리적 위치라고 생각합니다. 중국과 일본으로 시장 침투가 용이하고 두 곳의 장단점을 잘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많은 다국적 기업들이 한국으로 아·태 본부를 옮기도록 유도하는 작업이 유망하다고 판단하는 근거도 이런 특성 때문입니다』
 
  ―AMCHAM은 정말 바뀌고 있는 겁니까.
 
  『AMCHAM의 설립 목적은 원래 한국 시장 개방과 접근 강화였습니다. 이를 위한 對韓 교육과 傳授(전수)가 주된 활동이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AMCHAM이야말로 한국 경제에 대한 가장 강력한 지지자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AMCHAM 회원들의 「집」은 바로 한국입니다. 집이 잘 돼야 손님도 德을 볼 수 있지요』
 
 
  한국의 자동차 시장은 너무 폐쇄적이다
 
 
  AMCHAM 산하 自動車 위원회 위원장을 5년째 맡고 있으며, 한국 輸入(수입)자동차 협회(KAIDA)와 워싱턴 소재 자동차무역정책위원회 등에도 적극 관여하고 있는 첨리 사장은 그러나 閉鎖的(폐쇄적)인 한국 자동차 시장 구조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을 숨기지 않았다.
 
  『2001년 한 해 동안 판매된 수입자동차는 모두 7000여 대로 시장 점유율이 0.72%에 불과합니다. 이 중 다임러 크라이슬러는 900여 대를 팔았지요. 폐쇄적인 시장구조로 惡名높은 일본에서도 외국 자동차 업체의 점유율은 7%대입니다. 한국에서 외국산 자동차에 대한 인식이나 태도가 많이 바뀌었지만 턱없이 부족합니다. 외제차 점유율이 10%까지는 올라가야 합니다』
 
  AMCHAM 이사회에는 이들 이외에 토머스 피난스키(Thomas Pinansky) 국제 변호사(김, 신&유 法律사무소 소속), 커티스 앤드루스(Curtis Andrews) 한국화이자 사장, 사자드 라즈비(Sajjad Razvi) 씨티뱅크 코리아 지사장, 제임스 루니(James Rooney) 딜로이트컨설팅 코리아 부회장, 윌리엄 오벌린(William Oberlin) 보잉사 한국지사장, 조 뮤닉스(Joe Munnix)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한국 지사장, 데이비드 리처드슨(David Richardson) 테일러 넬슨 소프레스 코리아 지사장, 최은화 미국 AIG그룹 한국지사장(女) 등이 함께 하고 있다.
 
  이 가운데 피난스키 변호사는 2001년 亞太 미국상공회의소(APCAC:Asia-Pacific Council of American Chamber of Commerce) 회장에 발탁돼 亞太 지역에서 주한 미국상공회의소의 높아진 位相을 과시했다. 미국 하버드大 학부와 펜실베이니아大 로스쿨을 졸업했으며, 현재 AMCHAM 농업-식품위원회 委員長도 겸하고 있다.
 
  전략컨설팅 회사인 베인&컴퍼니 컨설턴트를 거쳐 템플턴 인베스트먼트 한국지사장 등을 역임했던 제임스 루니 부회장은 1999년 4월 한국 정부로부터 「태극 훈장」을 받을 정도로 외국인의 對韓 투자 誘致에 발벗고 나선 인물이다.
 
  이들 AMCHAM 집행부는 지난해 11월 초 한국 P&G社가 주최한 「사랑의 김치 만들기」 행사에 공동으로 참가해 김장김치를 직접 버무려 만들 정도로 한국화 노력에 정성을 쏟고 있다. AMCHAM 집행부의 이같은 노력에 대한 각계의 반응은 비교적 긍정적이다.
 
  서울大 국제지역원 李根(이근) 교수(국제정치경제학)는 『미국상공회의소가 진출한 국가 주민들을 위해 별도 재단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은 최소한 아시아 지역에서는 한국이 유일하다』며 『한국과 미국 기업인들이 친밀감과 공감대를 다지는 귀중한 媒介體(매개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과 미국의 상대방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쌍방간 원숙한 교류를 시도하고 필요할 경우, 우리 입장에서 미국 기업을 逆利用(역이용)할 수 있는 思考(사고)의 轉換(전환)과 실천적인 力量(역량) 강화가 필요합니다』
 
 
  「암참」 활동財源 200만 달러 모금이 목표
 
 
  15개 유럽연합(EU)국가 대사관과 600여 개의 기업을 회원사로 두고 있는 駐韓EU상공회의소가 지난해 「EU-코리아 재단(EU-Korea Foundation)」을 설립한 것도 AMCHAM의 활발한 對韓 支援 사업에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유력하다.
 
  AMCHAM의 한국화 프로젝트는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계속 擴大·深化될 전망이다. AMCHAM 집행부는 최근 「미래를 위한 동반자 재단」의 財源을 최소한 200만 달러 이상으로 늘리기 위해 5월18일, 1999년 11월에 이어 두 번째 대규모 慈善(자선) 음악회를 열기로 확정했다.
 
  이와 함께 한국 지원 및 봉사 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올 1월부터 매월 1만원의 後援金(후원금)을 내는 「개인後援 프로그램」을 펼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3개월여 만에 500여 명이 회원으로 가입할 정도로 호응도가 좋은 편이라고 한다.
 
  『2000년 한 해 동안 미국은 279억 달러, 한국은 403억 달러어치를 상대국에 수출해 양국 간 무역액만 680억 달러에 달합니다. 한국은 미국의 4大 농산물 시장이자, 6大 수출 대상국입니다. AMCHAM의 변화상에 맞춰 우리도 피해의식에 젖어 AMCHAM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대할 게 아니라, 國益 신장을 극대화하기 위해 AMCHAM을 적극 活用해야 합니다』(장윤종·산업연구원·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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