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주(金榮珠)
1948년 대구 출신으로 1970년 서울대학교 미대를 졸업해 1973년 미국 크랜브룩 미술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69년, 78년, 81년 세 차례 국전에 출품해 입선과 특선을 받았으며, 1978년 중앙미술대상전 특선, 1981년 모나코왕실 주최 국제현대미술전에서 입상했다. 미국·프랑스·한국 등에서 16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현재 대성그룹 부회장과 대한기독교여자절제회 회장으로 있다.
1948년 대구 출신으로 1970년 서울대학교 미대를 졸업해 1973년 미국 크랜브룩 미술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69년, 78년, 81년 세 차례 국전에 출품해 입선과 특선을 받았으며, 1978년 중앙미술대상전 특선, 1981년 모나코왕실 주최 국제현대미술전에서 입상했다. 미국·프랑스·한국 등에서 16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현재 대성그룹 부회장과 대한기독교여자절제회 회장으로 있다.
하늘이 유난히도 파랗던 7월의 어느 날, 인사동에서 만난 대성그룹 김영주 부회장은 파란색 중에서도 ‘하늘’을 뜻하는 라틴어의 세룰리안 블루(cerulean blue)가 떠올렸다. 그날 그녀가 입고 나온 청금석(靑金石)색 재킷 때문만은 아니다. 김 부회장이 살아온 인생이 하늘색처럼 투명하고 한없이 푸르기 때문이다. 파랑은 정직과 고귀함을 상징하는 색이기도 하다.

연탄 5장으로 시작한 대성그룹(회장 김영훈)은 우리나라에서 도시가스 보급을 가장 먼저 시작했고, 미래에너지 사업 발전을 위해 태양광 에너지와 신재생 에너지 개발에 주력해 온 기업이다. 대기업의 장녀로 태어나 부족할 것 없는 유년시절을 보낸 김영주 부회장은 의외로(?) 검소하다. 20년 전에 산 옷을 지금까지도 수선해서 입고, 그 흔한 명품 가방 하나 없이 오래된 가방을 고쳐 메고 다닌다. 그녀는 가장 작은 것부터 아끼고 모아 어려운 이웃들에게 베푸는 일을 한평생 해 왔다. 그것은 어머니 여귀옥씨가 실천해 온 ‘절제하는 삶’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것이다.
“어머니는 우리 6남매의 옷을 손수 지어 주셨어요. 동대문에서 파는 조각 천을 모아 옷을 만들고 남은 천으로는 모자도 만들었어요. 한번 만든 옷은 막내까지 물려 입었어요. 그렇게 아껴 모은 돈으로 1969년부터 매년 어려운 청소년에게 절제장학기금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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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평_130x162cm_아크릴_1980 |
그녀가 표현한 색은 온 우주의 아름다운 색채만을 뽑아서 캔버스에 옮겨놓은 듯 아름답다.
“어려서부터 아름다운 색에 민감했어요. 붉은 새벽 하늘을 보고 있으면 마치 영혼이 빨려 들어가는 듯 시간이 정지함을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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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쁨_130x162cm_아크릴_1980 |
“하루는 지도교수님이 ‘초록’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물감을 쓰는지 물었어요. 교수님은 제가 당신과 같은 그룸바(Grumbacher) 수채화 물감을 쓰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어요. 당신의 초록색은 콘크리트와 진흙색이 나는 반면 저의 초록색은 마치 화폭 위에서 춤을 추는 살아 있는 색과 같다며 신기하다 말씀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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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망_38x56cm_아크릴_1980 |
부(富)는 나누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것이다. 그녀는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으로 더 밝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녀가 사용하는 서너 가지의 파란색은 100가지가 넘는 추억의 파란색으로 표현된다. 파란색이 이렇게 따뜻할 수가 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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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내_38x51cm_수채화_2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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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_36x51cm_수채화_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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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락_36x51cm_수채화_201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