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기획 취재

‘나랏빚’에 허덕이던 나라들의 오늘과 우리의 내일 ⑤ 그리스

경제위기 후 GDP 반 토막 난 ‘망국병’의 대명사

글 : 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thegood@chosun.com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국민이 원하면 다 줘라!”로 대표되는 그리스의 포퓰리즘
⊙ 1980년대 이후 시작된 과잉복지, 공공 부문 비대화
⊙ GDP의 10% 이상 ‘재정적자’ 내며 방만 재정 운용
⊙ 세계 금융위기 후 유럽에서 처음으로 ‘경제위기’ 현실화
⊙ 한국보다 9년 앞서 1인당 GDP 3만 달러 돌파했지만, 2020년 1만7700달러
⊙ GDP 대비 연금 지출 비율은 15.5%… EU 평균은 7.7%
⊙ 실업률 14.7%, 청년실업률은 35.5%… EU 평균의 2배
⊙ 편중된 산업 구조, ‘정경유착’은 개선되지 않고 ‘후유증’만
고대 아테네의 상징인 ‘파르테논 신전’이다. 그리스는 고대 유적과 지중해 덕분에 GDP에서 관광산업 비중이 크다. 사진=박희석
  우리에게 신화, 파르테논 신전, 산토리니 섬, 지중해 등 피상적인 명사 몇 가지로 각인된 그리스는 2008년 이전까지는 잘나가는 나라였다. 유로화가 통용되는 국가 또는 구역을 뜻하는 ‘유로존’에 가입하기 전인 2000년 당시 그리스의 GDP는 1301억 달러였다. 그로부터 4년 뒤, 아테네올림픽을 개최했던 2004년에는 2402억 달러를 기록했다.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당시 그리스는 ▲2001년 1362억 달러(경제성장률 4.7%) ▲2002년 1538억 달러(12.9%) ▲2003년 2019억 달러(31.3%) ▲2004년 2405억 달러(19.1%) 등의 경제성장 과정을 거쳤다. 이때 그리스 경제는 4년 동안 84.6% 성장했다. 연(年)평균 성장률로 따지면 16.57%다.
 
  2004년 이후에도 그리스는 ▲2005년 2478억 달러(3%) ▲2006년 2733억 달러(10.3%) ▲2007년 3185억 달러(16.5%) ▲2008년 3545억 달러(11.3%)로 고도성장을 계속했다. 이를 고려해 2000년부터 2008년까지 그리스 연평균 경제성장률을 계산하면 ‘13.35%’란 결과가 나온다. 참고로, 과거 압축 고도성장을 해 ‘한강의 기적’으로 불렸던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내역을 보면, 연간 경제성장률이 ‘13.35%’ 이상 됐던 해는 박정희 전 대통령 재임 당시인 1969년과 1973년, 전두환 전 대통령 재임 때인 1983년 등 3개년뿐이다.
 
 
  한국보다 9년 앞서 ‘1인당 3만 달러’
 
2000년대 당시 그리스는 매년 막대한 ‘재정 적자’를 기록하면서도 ‘2004 아테네올림픽’을 개최하며 또 빚을 졌다.
  그리스 경제가 최고조에 다다랐던 2008년 당시 그리스 국민 1인당 GDP는 3만2000달러였다. 2000년 1만2040달러에서 265% 성장한 셈이다. 같은 기간, 우리는 어땠을까. 2000년 당시 우리의 1인당 GDP는 1만2256달러로 그리스보다 약간 많았는데, 2008년에는 그리스의 67%에 불과한 2만1350달러를 기록했다. 또한 우리가 1인당 GDP 3만 달러를 돌파한 해는 2017년이다. 지금은 ‘망국’의 대명사로 조롱받는 그리스가 우리보다 9년 전에 ‘1인당 GDP 3만 달러’를 달성했던 셈이다.
 
  이처럼 그리스 경제는 8년 동안 ‘질주’했지만, 얼마 안 가 그 초고속 압축 성장의 실상이 전 세계에 드러났다. 당시 그리스의 경제성장은 ‘거품’이었다. 그리스 경제는 앞서 살핀 것처럼 2008년 발생한 세계 금융위기란 파도가 한 번 휩쓸자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이런 이유로 그리스는 우리나라에서 남미의 베네수엘라와 함께 ‘망국’의 대명사로 꼽히는 곳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2010년 경제위기와 불황을 거치면서 그리스 경제는 사실상 반 토막 났다. 2020년 GDP가 2008년의 53%에 해당하는 1894억 달러다. GDP 규모만 놓고 단순 비교하면, 그리스 경제는 2003년 이전으로 회귀했다. 왜 잘나가던 그리스는 ‘경제위기’를 맞고,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 유럽중앙은행(ECB)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을까. 어쩌다가 그리스는 베네수엘라와 함께 ‘포퓰리즘 망국’의 대명사로 전락했을까.
 
 
  ‘유로존’ 가입 덕에 이룬 ‘거품’
 
  그리스가 직접적인 경제적 타격을 받은 계기는 2008년 발생한 ‘세계 금융위기’다. 그리스는 2000년 6월, ‘유로존’에 가입한 뒤 경제 실상과 맞지 않는 화폐 가치와 신용도를 갖게 되면서 소위 ‘거품 경제’를 구축했다. 같은 통화를 쓴다는 배경 덕분에 독일을 비롯한 유로존 국가들로부터 초(超)저리로 돈을 빌려 나라 살림을 꾸렸다.
 

  당시의 그리스 국채 금리는 ‘안전자산’으로 취급되는 독일 국채와 큰 차이가 없었다. 너무 쉽게 조달한 ‘빚’은 그리스 생산 활동의 기초가 될 제조업이나 첨단 산업에 투자되지 않았다. 부동산과 관광에 집중적으로 투입됐다. 그리스 곳곳에 그럴싸한 건물들이 올라가고, 관광객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호텔과 휴양지가 들어섰다. 외관만 보면 그리스는 이때 ‘황금기’를 구가했다. 정부는 외국에서 끌어온 ‘빚’을 ‘복지’란 미명 아래 국민들에게 뿌렸다. 그리스 금융권은 흘러넘치는 돈을 대출하는 데 열심이었다.
 
  그 와중에 미국발(發)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했다. 세계 각국의 경기는 불황으로 접어들었다. 소비도 위축됐다. 전 세계적인 경기 부진에 따라 그리스는 사면초가에 빠졌다. 그리스 GDP의 20%가량을 차지하는 관광산업이 직격타를 맞았다. 국제 교역량이 급감하면서, 그리스 GDP의 10%가량을 책임지는 ‘해운업’도 타격을 입었다. 양대 주력 산업의 부진은 세수 감소로 이어졌다. 1980년대부터 계속된 재정 적자는 더욱 커졌다.
 
 
  통계 조작 고백 후 ‘위기’ 현실화
 
2009년 당시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총리에 의해 그리스의 ‘통계 조작’ 사실이 공개되자, 시장은 그리스 경제에 대한 신뢰를 거뒀다. 사진=뉴시스
  2008년 그리스 재정 적자는 GDP의 9.8%에 달했다. 당시 GDP를 고려하면, 정부가 세수보다 347억 달러(현재 환율 기준 50조원)를 더 집행한 셈이다. 유동성이 풍부했던 이전과 달리 독일, 프랑스 등에서 유입되던 자금도 고갈돼 갔다.
 
  그 와중에 정권이 교체됐다. 2009년 10월 총선을 통해 신민주주의당(신민당)이 실권하고, ‘범그리스 사회주의 운동(사회당)’이 집권했다.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가 총리에 취임했다. 그는 조부와 부친이 그리스 총리를 역임한 정치 명문가 출신이다. 파판드레우는 집권 보름 만에 전임 정권이 심각한 재정 적자 상황을 은폐하기 위해 국가 통계를 조작했다고 국제사회에 밝혔다. 2009년 당시 그리스 재정 적자는 신민당 정권이 밝힌 6%가 아니라 그 배를 훌쩍 넘는 15.4%라고 수정해 발표했다. 이는 EU 집행위원회가 제시하는 재정 적자 상한선 3%의 4배를 넘는 수준이다. 파판드레우의 ‘고백’은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 국가들을 ‘경제위기’로 몰아가는 발단이 됐다는 평가를 받지만, 실상은 구제금융 신청을 앞두고 ‘자백’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그리스 경제에 대한 불신 분위기가 팽배한 상황에서 정부가 통계 조작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국제신용평가사들은 일제히 그리스의 신인도를 낮췄다. 외국 투자자들은 그리스 국채를 투매했다. 그리스 국채 금리가 ‘위험’ 수위까지 급등했다. ‘빚’으로 나라 살림을 꾸리던 그리스 정부는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다. 국가채무 상환도 마찬가지였다. 2010년 4월 23일, 그리스 사회당 정권은 국제사회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성사되기까지 중간에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IMF ▲EC ▲ECB는 최종적으로 그리스에 총 3250억 유로(449조원)에 달하는 구제금융을 세 차례(2010~2017년)에 걸쳐 지원했다. 이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가 IMF 등 국제기구로부터 받은 550억 달러(79조원)의 5.7배에 달하는 ‘거액’이다.
 
 
 
‘포퓰리즘 30년’이 자초한 ‘경제난’

 
2010년대 초반 구제금융 협상 과정에서 그리스 각계각층 시민과 단체들은 IMF 등이 요구한 ‘복지 축소’ ‘임금 삭감’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사진=뉴시스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총리가 집권한 직후 그리스는 위기를 맞았다. 그 위기의 씨앗을 뿌린 이는 공교롭게도 그의 부친인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다. 그는 1981~1989년, 1993~1996년에 그리스 총리를 지냈다. 1981년 당시 사회당 당수였던 그는 재정 확대를 통한 일자리 공급, 사회보장 혜택 제공 등 포퓰리즘 공약을 내걸어 지지를 받아 집권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7년 대선 당시 ‘공공 일자리 81만 개 만들기’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문재인 케어)’ 등을 외쳤던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파판드레우의 포퓰리즘적 행태를 잘 드러내는 말이 바로 “국민이 원하면 다 줘라!”이다. 파판드레우가 실제 이 말을 했는지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이후 그리스 정치권의 행태는 꼭 이와 같았다. 집권 2년 차인 1982년, 파판드레우는 본격적으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드는 데 착수했다. 그는 공무원을 증원하고, 공공 부문 임금을 33% 인상했다. 1981~1991년 사이에 공공 부문이 42%나 증가했다.
 
  파판드레우는 또 기존의 ‘선별적 복지’ 대신 ‘보편적 복지’ 기조에 따라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을 시행했다. 이는 그리스 경제가 1년 만에 상전벽해(桑田碧海) 식으로 급성장한 덕분에 이뤄진 조치들이 아니었다. 당연히 포퓰리즘에 따른 정부 지출 증가분은 ‘나랏빚’으로 충당했다. 1980년에는 22.5%였던 국가채무 비율이 그로부터 불과 13년 뒤에 100%를 초과했다.
 
  2015년 당시 치프라스 내각에서 재무부 차관으로 있으면서 IMF, ECB 등과의 ‘구제금융 협상’에 참여했던, 트리폰 알렉시아디스 그리스 의회 의원(급진좌파연합)은 “그리스는 과거부터 세수가 부족해 외국에서 돈을 빌렸는데, 문제는 그 빚을 생산적인 경제 분야에 투자하지 않은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정치권은 표를 얻기 위해 포퓰리즘 정책들을 시행했습니다. 우리는 경고를 했지만, 국민은 집권당을 더 믿었습니다. 우리 경고는 무시했죠. 1974년부터 2010년까지 그리스 정권은 나랏빚을 계속 늘리고, ‘건전한 재정 운용’은 경시했습니다. 돈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았습니다. 경제 같은 생산적인 분야보다는 일회성 지출에 투입했습니다. 국민은 그 빚으로 소비를 했습니다. 우리가 집권(2015~2019년)했을 때는 이미 빚이 너무 많아서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개혁’ 시도하면 ‘정권 교체’
 
  그리스 정치권의 ‘포퓰리즘’에 의해 민간 부문도 쇠퇴했다.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가 아닌 ‘보편적 복지’에 재정을 투입하면서 경쟁력을 잃었다. 또 기업 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됐다. 파판드레우는 1982년에 최저임금을 전년 대비 46% 올렸다. 근로자 해고도 어렵게 했다. 1970년대까지 그리스는 미국의 유럽 원조 프로그램인 ‘마셜 플랜’에 힘입어 정유, 화학, 자동차, 조선 등의 중공업을 육성했다. 그런데 1980년대 들어 이 같은 조치들이 취해지자 일부 기업들은 그리스를 탈출했다.
 
  1970년대까지 보수적 재정 운용을 했던 ‘우파’ 신민당은 이 같은 ‘포퓰리즘 정책’을 막지 못했다. 1990년 총선 후 집권했을 때 ‘재정건전성’ 회복을 위한 긴축을 시도했지만, 국민 반발에 부딪혀 실패했다. 이어 4년 뒤 정권을 내줬다. 2004년 총선을 통해 재집권했지만, 기존 복지 제도를 축소·폐지·개혁하지 못했다. 복지 혜택을 줄이면 표를 잃기 때문이었다. 사회당 정권도 코스타스 시미티스 총리(1996~2004년) 시절 국영기업 민영화, 연금개혁, 재정긴축 등 경제개혁을 추진했지만, 노조 등의 반발로 무산됐다. 이후 또 정권이 교체됐다. 2004년 10년 만에 정권을 잡은 신민당 역시 개혁을 시도했다. 국민은 다시 반발했다. 그 결과 2009년 총선에서 개헌 저지선에도 미치지 못하는 91석(총 300석)이란 역대 최저 의석을 얻고 정권을 내줘야 했다. 당시 정권 교체에 성공한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의 사회당의 대표 공약은 임금 인상과 복지 확대 등이었다.
 
 
 
근로자 5명 중 1명이 공무원

 
그리스 제1 항구 피레우스항이다. 그리스의 주력 산업은 관광과 해운이다. 사진=월간조선
  그리스 경제 위기의 원인에 대해서는 지금도 의견이 분분하다. ‘공공 부문 비대화’ ‘과잉 복지’가 맞는지 논쟁을 벌이지만, 중요한 사실은 과거 그리스가 방만하게 재정을 운용했다는 사실이다. 경제 규모에 맞게 예산을 편성, ‘건전 운용’을 하지 않고 매년 ‘재정 적자’를 내며 나라 살림을 꾸린 게 ‘화근(禍根)’이었다. 전 국민에 보편적 복지를 시행한다는 명분 아래 복지 혜택이 필요 없는 이들에게까지 과도하게 재정을 투입한 것도 문제였다.
 
  경제가 성장하는 비율보다 지출을 더 늘리면서 재정 적자가 심화하고, 국가채무가 증가했다. 나라 전체가 ‘복지’ ‘분배’에 익숙해져서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한 복지 제도 개혁을 추진하지 못했다. 그 결과 정부의 연금 지출 규모(GDP 대비)가 14%에 이르렀다. 이는 당시 유럽연합 평균치의 2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관광과 해운에 편중된 산업 구조도 문제였다. 이와 관련, 그리스 유럽국제대외정치연구소(ELIAMEP) 연구원인 기오르고스 마날리스 박사(거시경제)는 “그리스의 높은 채무 비율 문제가 그리스 경제의 다른 구조적 문제와 결합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의 성장 모델입니다. 그리스는 투자 지원과 수출 증대를 통해 외향적인 성장 모델을 구축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리스는 국내 소비, 건설 부문, 특히 관광업을 통해 경제성장을 해왔습니다. 이는 외부 충격에 매우 불리한 경제 구조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는 절대적인 주원인은 아니다. 물론 과도한 복지 탓에 재정 적자가 심화했고, 그리스 산업 구조도 대외의존형으로 편중돼 있어 충격에 취약했지만, 그보다는 정치권이 경제·사회적 수요가 아닌 정치적 속셈으로 공무원을 증원하고 공공 부문이 비대해진 게 더 큰 ‘원인’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경제위기 당시 그리스 근로자 중 20%가 공무원이었다. 근로자 5명 중 1명이 공무원이었던 셈이다. 정치권이 표밭 관리를 위해 공공 부문을 일부러 키우며 일자리를 나눠준 것이다. 한마디로 그리스는 ‘공무원 공화국’이었다. 만일 우리나라가 현재 공무원만 365만 명(현재 120만 명)에 달한다고 가정하면, 재정은 어떻게 될까.
 
  이와 관련, 트리폰 알렉시아디스 의원은 “그리스 공무원 수는 많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유럽에는 프랑스 등 그리스보다 공무원 비율이 높은 나라들이 많다”며 “그리스 공공 부문이 비대하다는 주장은 악의적인 선동”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은 열심히 일하는데, 공무원은 게을러”
 
트리폰 알렉시아디스 그리스 의회 의원은 “그리스는 외국에서 빌려온 돈을 생산 분야에 쓰지 않고, 소비만 했다”고 지적했다.
  알렉시아디스 의원의 말처럼 프랑스·스웨덴·덴마크·노르웨이·핀란드 같은 나라들은 그리스보다 공무원 비율이 더 높다. 그러나 이들 국가는 그리스처럼 매년 GDP의 10% 가까이 적자를 내는 식으로 재정을 운용하지 않았다. 임금 수준도 높지 않다. 2020년 한국납세자연맹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스웨덴 공무원 인건비는 한국의 절반 수준이었다. 더구나 당시 스웨덴의 1인당 GDP가 우리나라의 1.65배인데도 그랬다는 얘기다. 또한 ‘복지’로 유명했던 이들 나라는 공적연금 개혁 등을 시도해 재정 부담을 낮추려고 했지만, 경제위기 전 그리스는 그러지 않았다.
 
  그리스 정부는 무분별하게 임용한 공무원들의 임금을 지속적으로 올렸다. 1995~2008년, 그리스 공무원의 연평균 실질임금 상승률은 3.1%다. 이는 그리스가 속한 유로존 16개국 평균 1.25%의 2.5배에 달한다. 또한 이들이 퇴직한 뒤에 재직 시 소득의 95%에 달하는 연금을 지급했다. 연금 수급 개시 연령도 55세로 설정해 일찌감치 생산 활동을 중단하고 정부가 지급하는 ‘연금’으로 생활하는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이 같은 ‘공공 부문 비대화’에 대해 그리스 시사주간지 《도큐멘토》의 코스타스 박세바니스 발행인은 “그리스의 공공 부문은 비생산적”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난 50년 동안 집권 세력은 그들의 표를 위해 공무원들을 앉혔습니다. 그렇게 공무원으로 임용된 이들은 자기 직무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 국민은 세계적으로 가장 일을 열심히 합니다(기자 주: 그리스 전체 취업자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1872시간으로 유럽 1위, 한국은 1915시간). 그런데 공무원들은 게으릅니다. 그들은 국민을 위한 정책을 추진, 시행하지 않습니다. 정치인에게 청탁해 더 좋은 자리로 가는 데 골몰합니다. 이제 공공 부문을 줄여야 합니다. 정리해고까지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재설계’를 해야 합니다.”
 
 
  전혀 개선되지 않은 그리스 경제 상황
 
한 남성이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인근 모나스티라키 광장 인근에서 구걸을 하고 있다. 경제위기 후 ‘긴축’ 과정에서 그리스 실업률과 청년실업률은 폭등했고, 지금도 상황은 심각하다.
  그리스 경제위기 이후 12년이 지났다. 그사이 그리스는 채권단의 요구대로 ‘긴축 재정’을 하고, 임금을 삭감하고, 구조조정을 하고, 국유 자산을 팔고, 연금개혁을 했다. 타의에 의한 ‘경제개혁’은 그리스를 ‘정상’으로 돌려놨을까.
 
  일단 그리스가 받은 구제금융은 그리스 경기를 살리는 데 들어가지 않았다. 기존 채무를 갚는 용도였다. 즉 그리스에 돈이 돌지 않았다는 얘기다.
 
  외환위기 당시 우리의 경우 원화 가치가 대폭 절하돼 수출경쟁력이 강화됐고, 그 덕분에 일찍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리스는 수출 경제가 아니고 ‘유로화’란 단일 통화 체제에 묶여 있었기 때문에 이를 기대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긴축 재정’을 명목으로 정부 지출을 줄이자 사회보장비용에 의존해 살던 이들이 타격을 입었다.
 
  또 소비시장이 침체되고, 실업률이 급등했다. 2013~2014년에는 실업률이 27~28%를 기록했다. 현재는 14.7%로 하락했지만, EU 평균인 7%의 2배이므로 양호하지 않다.
 
코스타스 박세바니스 《도큐멘토》 발행인은 “유럽연합이 그리스에 줄이라고 요구해야 할 것은 ‘사회보장 비용’이 아니라 ‘부정부패’로 인한 비용”이라며 “진짜 개혁은 ‘긴축’이 아니라 ‘부패 척결’과 ‘법치 회복’”이라고 꼬집었다.
  청년실업률도 마찬가지다. 경제위기 전에도 25%에 달했던 그리스 청년실업률은 ▲2010년 32.47% ▲2011년 44.48% ▲2013년 55.16% 등을 기록했다. 이후 하락세를 유지하면서 2021년에는 36.87%로 떨어졌지만, 이 역시 EU 평균인 16.2%의 2배 이상이다.
 
  이는 경제 상황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걸 의미한다. 경상수지도 적자를 기록했는데, 그 와중에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관광이 주력 산업인 그리스는 또 타격을 입었다. GDP 국가채무 비율도 상승했다. 2009년 115%였던 국가채무 비율은 2021년에 210%가 됐다. 국가채무도 증가(3795억 달러→3939억 달러)했다.
 
  전 세계에서 그리스보다 국가채무 비율이 높은 곳은 일본과 수단이다. 257%를 기록한 일본의 경우 국채 대부분을 자국민이 소화하고, 기축(基軸)통화국인 미국과 ‘무제한 통화 스와프’를 체결했기 때문에 다소 비율이 높다고 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와 달리 그리스의 경우에는 우려스러운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언제든지 다시 과거처럼 ‘경제위기’를 맞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코스타스 박세바니스 《도큐멘토》 발행인은 “긴축은 해결책이 아니었다. 그리스는 ‘긴축 정책’ 때문에 전쟁과 같은 상황을 겪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리스의 긴축 정책은 실패했습니다. 누군가의 급여를 줄이면 구매력이 감소합니다. 그럼 소비를 할 수 없습니다. 상점들이 문을 닫고, 경제 전체가 고통을 받습니다. 그 ‘긴축’이 그리스를 어디로 몰고 갔습니까. 지금 국가채무는 더 늘었고, 그리스 기업은 외국 펀드에 팔렸습니다. 위기는 그리스인을 더 가난하게 만들었습니다. 만일 다시 위기가 온다면 그리스의 마지막 자산마저 다 빼앗기고, 그리스인은 외국의 이익을 위해 종사하게 될 겁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긴축은 어디에서도 해결책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일부 세력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방식에 불과합니다.”
 

 
  “진짜 개혁은 부패 척결과 법치 회복”
 
기오르고스 마날리스 유럽국제대외정치연구소 연구원은 “과거 기록을 보면 선거 직전에 재정 적자가 심해지는 경향을 관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살핀 것처럼 그리스 경제가 무너지고, 지금 그 국민이 고통을 겪는 이유 역시 ‘정치 실패’에서 비롯됐다. 그 ‘정치 실패’는 ‘포퓰리즘’과 ‘부패’로 요약할 수 있다. 기오르고스 마날리스 박사(거시경제)는 ‘정치 실패’와 관련해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재정 지출 현황을 살핀 결과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선거 직전에 재정 확장이 이뤄졌다는 걸 관찰할 수 있습니다. 물론 위기 이후에는 그리스 정부가 이런 식으로 예산을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을 많이 잃었지만요. 이런 식의 대규모 재정 지출은 취약계층만을 위한 게 아니었습니다. 시급하게 필요하지도 않은데, 선거를 앞두고 선심성 지출을 한 겁니다.”
 
  박세바니스 《도큐멘토》 발행인은 ‘부패’ 문제와 관련해서 “지난 50년 동안 그리스에서 ‘부패’는 ‘거버넌스’와 동의어였다”며 “그리스 경제 문제는 사회적 지출이 아니라 부패한 정치권이 그 원인”이라고 비판했다.
 
  “유럽연합은 우리에게 ‘금욕’을 요구합니다. 지출을 줄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사회적 지출이 아닙니다. 부정부패로 인한 비용이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지멘스 스캔들(독일 전자기기 제조사 지멘스가 1990년대부터 그리스 정치권에 뇌물을 살포해 대형 계약들을 수주했다는 의혹)이 드러났습니다. 노바티스 스캔들(스위스 제약사 노바티스가 그리스 전·현직 총리 등에게 뇌물을 주고 약값을 수배 부풀려 판매했다는 의혹)도 있습니다. 그리스의 ‘안정적인 부패’ 때문에 많은 이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부패가 있으면 발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일부 검사와 언론인은 노바티스가 의사와 정치인을 이용해 그리스에서 비싸게 약을 팔고 있다고 폭로했는데, 미초타키스(현 총리)는 ‘음모’라고 하면서 우리를 감옥에 보내려고 했습니다. 미초타키스 정권은 경제위기를 초래한 은행과 기업인을 사면하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감옥에서 나와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사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이 줄이라고 요구해야 할 ‘지출’은 이런 것입니다. 그들은 ‘긴축’을 ‘개혁’이라고 하는데, 진짜 필요한 개혁은 부패를 척결하고 법치주의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비대한 공공 부문 ‘개혁’해야
 
  ‘헌법’이 규정한 ‘5년 단임제’ 때문에 시간 제약이 있어서 그 정도는 다를 수 있지만, 지난 5년 동안 문재인(文在寅) 정권이 했던 행태는 그리스 정치권과 유사하다. 그리스 취재를 하는 동안 ▲보편적 복지 ▲확장 재정 ▲공무원 증원 ▲공공 부문 비대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문재인 케어) 등 ‘문재인표 정책’들의 ‘원조(元祖)’가 그리스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문재인 유산’을 ‘개혁’하지 않는 한,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우리 역시 재정위기로 인해 경제난을 겪을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윤석열(尹錫悅) 정부가 시급하게 착수해야 하는 일이 바로 공공 부문 개혁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5년 동안 공무원을 12만 명 증원했다. 물론 이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7년 대선 당시 공약한 ‘공무원 17만4000명 증원’이란 목표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이명박(李明博)·박근혜(朴槿惠) 정부 9년 동안 증원한 5만3620명의 224%에 달한다. 문 전 대통령은 단 5년 만에 이 같은 ‘기록’을 세웠다.
 

  이렇게 뽑은 공무원은 우리 국민에게 어떤 부담을 줄까. 2017년 7월, 추경호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현 경제부총리)이 추산한 결과에 따르면 신규 채용한 공무원(9급 기준)이 30년 동안 근속할 경우 드는 인건비는 최소 17억3000만원이다. 같은 조건으로 문재인 정부 때 실제로 증원한 공무원에 대한 소요 인건비를 추산하면, 최소 208조원(현재가치 기준, 공무원연금 부담액 제외)이 든다는 결론이 나온다. 여기에 세금으로 그 적자를 충당하는 공무원연금 지급액을 감안하면, 문재인 정부 5년 동안의 ‘공무원 증원’으로 인해 국민이 부담해야 하는 실제 비용은 더 많을 수밖에 없다.
 
  공기업을 포함한 공공 부문 인력도 크게 늘었다. 2016~2021년 공공기관의 임직원 현황은 ▲2016년 32만8479명 ▲2017년 34만5923명(+1만7444명) ▲2018년 38만3373명(+3만7450명) ▲2019년 42만336명(+3만6963명) ▲2020년 43만5734명(+1만5398명) ▲2021년 44만3570명(+7836명) 등이다.
 
  사실상 박근혜 정부 마지막 해인 2016년과 비교해 2021년의 공공기관 인력 정원은 11만5091명 늘었다. ‘문재인 5년’ 만에 공공기관 임직원 수가 35% 증가한 셈이다. 당연하게도 신규채용 역시 늘었다.
 
  2017~2021년 공공기관 신규채용 인원은 총 15만5537명이다. 이들 인건비도 최종적으로는 우리 국민 부담이다. ‘문재인 5년’ 동안 비대해진 공공 부문을 윤석열 정부가 수술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우리 경제의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 윤석열 정부가 밝힌 것처럼 단순히 공무원 수를 동결하고, 4급 이상 공무원 임금을 묶어두는 것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또한 그리스 경제위기를 초래하고, 지금도 경제 회복을 방해하는 주요 요인인 ‘부정부패’와 관련해서도 윤석열 정부가 새겨야 할 대목이 있다. 그리스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부정부패’는 단순한 범죄가 아니다. 법치를 훼손하고, 시장 질서를 교란하고, 국가 행정을 무력화하고, 국민의 근로 의욕을 저해하고, 국가 자원의 효율적인 재분배를 방해하는 범죄다. 이를 엄단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경제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