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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Q의 시 읽기 〈17〉 도로시 파커의 〈베테랑〉

“세상이란 원래 그런 거야”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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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로시 파커, 꾸밈이 없으나 세련되고 도회적인 작품… 시인 최영미 통해 알려져
⊙ 실패한 사랑의 상처를 ‘경험’이라 부르며 삶을 응시해
시인이자 소설가, 극작가로 이름을 날린 도로시 파커(1893~1967).
  베테랑
  도로시 파커(최영미 옮김)
 
  내가 젊고 대담하고 강했을 때
  옳은 것은 옳고,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었다!
  나는 깃털 장식을 세우고 깃발 날리며
  세상을 바로잡으러 달려 나갔다.
  “나와라 개XX들아, 싸우자!”고 소리 지르고,
  나는 울었다. 한 번 죽지 두 번 죽나.
 
  그러나 이제 나는 늙었다: 선과 악이
  미친 격자무늬처럼 얽혀 있어
  앉아서 나는 말한다. “세상이란 원래 그런 거야;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두는 사람이 현명해.
  질 때도 있고, 이길 때도 있지,
  이기든 지든 별 차이가 없단다, 얘야.”
 
  무기력증이 진행되어 나를 갉아먹는다;
  사람들은 그걸 철학이라고 말하지.
 
 
도로시 파커를 추모하기 위해 발매된 기념우표.
  The Veteran
  Dorothy Parker
 
  When I was young and bold and strong,
  Oh, right was right, and wrong was wrong!
  My plume on high, my flag unfurled,
  I rode away to right the world.
  "Come out, you dogs, and fight!" said I,
  And wept there was but once to die.
 
  But I am old; and good and bad
  Are woven in a crazy plaid.
  I sit and say, "The world is so;
  And he is wise who lets it go.
  A battle lost, a battle won--
  The difference is small, my son."
 
  Inertia rides and riddles me;
  The which is called Philosophy.
 
 
파커가 묵었던 알곤퀸 호텔 1106호. 이 호텔은 ‘파커 스위트(suite)’로 손님을 유인한다.
  베스트셀러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유명한 최영미 시인이 지난달 세간의 ‘시끄러운’ 주목을 받았다. 발단은 집주인의 월세 집을 비워 달라는 통고를 받고서다. 고민 끝에 시인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고안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미국의 여류작가 도로시 파커(Dorothy Parker·1893~1967)를 흉내 낸 것이다.
 
  〈… 저는 아만티 호텔의 아미고 레스토랑을 사랑했던 시인 최영미입니다. 제안 하나 하려고요. 저는 아직 집이 없습니다. 제게 아만티 호텔의 방 하나를 1년간 사용하게 해 주신다면 평생 홍보대사가 되겠습니다. (중략) 장난이 아니며 진지한 제안임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최영미 시인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
 
  미국 작가 도로시 파커는 시인이자 소설가, 혹은 드라마 비평가, 시나리오 작가로 알려진 인물이다. 위트와 냉소가 가득한 작품은 지금도 회자된다. 당대 신랄한 독설가로 유명했다.
 
  〈스타탄생(A Star Is Born)〉(1937)으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는 등 성공했으나 과격한 글이 사회주의 성향으로 의심돼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들 사이에서 ‘블랙리스트’ 인물이 됐다.
 
도로시 파커 등 해외 시 44편을 소개하는 시인 최영미의 신작 《시를 읽는 오후》(해냄 간).
  《더 뉴요커》 등에 작품을 게재할 무렵 도로시 파커는 다른 문인들과 함께 맨해튼의 알곤퀸 호텔에서 원탁 모임을 가졌다. 그녀가 머물렀던 호텔 1106호는 ‘파커 스위트(suite)’로 지금도 상품화되고 있다.
 
  도로시 파커가 이 호텔에 평생 공짜로, 어느 특정기간 공짜로 머물렀는지 (기자가 관련 자료를 읽지 못해) 알 수 없다. 다만 그녀는 과음으로 건강이 나빴고, 주머니 사정도 나빴다고 한다. 동료 극작가인 릴리언 헬먼(Lillian Hellman)의 재정적 도움을 가끔 받았다. 파커는 73세 되던 1967년 호텔(the Volney residential hotel)에서 사망했고 그녀가 남긴 재산은 마틴 루터 킹과 흑인 인권단체인 NAACP재단에 전해졌다.
 
  도로시 파커가 남긴 시들 중 국내 번역된 작품 수를 알 수 없지만 국내에 거의 소개가 안 됐다. 국립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을 뒤졌으나 시집 단행본이 없었다.
 
  최영미가 지난 8월 펴낸 《시를 읽는 오후》(해냄 刊)에 도로시 파커 작품 세 편이 실렸다. 〈베테랑〉과 〈이력서〉는 시인의 시 정신을 느끼게 하는 시다. 특히 〈이력서〉는 날카로운 면도날 같은 시다. 국내 소개된 파커의 작품은 쉽지만 엉성하지 않으며 꾸밈이 없으나 세련되고 도회적인 맛을 지닌다. 무엇보다 유머와 아이러니, 그러면서도 달콤한 부드러움이 담겨 있다.
 
 
  이력서
 
  면도칼은 아프고;
  강에 빠지면 축축하고;
  산(酸)은 얼룩이 지고;
  약물은 경련을 일으킨다.
  총은 합법적이지 않고;
  밧줄은 풀리며;
  가스는 냄새가 고약하다;
  그러니 차라리 사는 게 나아.
 
 
  Resum'e
 
  Razors pain you;
  Rivers are damp;
  Acids stain you;
  And drugs cause cramp.
  Guns aren’t lawful;
  Nooses give;
  Gas smells awful;
  You might as well live.
 
 
  최영미는 〈이력서〉에 대해 “어디 한 줄 뺄 곳도 없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우리를 꼼짝 못하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반문했다. 덧붙이기를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못하면 이런 시를 못 쓴다”고 했다.
 
  Resume이라는 단어는 ‘이력서’라는 뜻 외에도, ‘다시 시작하다’는 의미도 있다. 파커는 1928년 남편과 이혼하며 여러 남자를 만났고 이 과정에서 임신을 하게 되지만 낙태하고 만다. 도로시 파커라는 명성을 그저 이용하려 한 고약한 남자들의 속셈을 알면서도 자주 사랑에 빠져들었다. 이 무렵, 우울증으로 자살 시도를 여러 번 했었다고 전해진다. 〈경험(Experience)〉이란 짧은 시도 매력적이다.
 
 
  경험
 
  어떤 남자는 네 가슴을 둘로 찢어 놓고,
  어떤 남자는 네가 우쭐하도록 치켜세우고,
  어떤 남자는 너를 쳐다보지도 않았지;
  하지만 그게 다 문제를 해결해 주는 거야.
 
  Some men break your heart in two,
  Some men fawn and flatter,
  Some men never look at you;
  And that cleans up the matter.
 
 
젊은 시절 도로시 파커. 그녀는 3번의 이혼과 우울증, 자살시도를 겪었다.
  이 시는 《사춘기를 위한 아름다운 영미 성장시》(다산북스 간)에 실렸다. 도로시 파커의 실패한 연애담을 말하는 듯하다. 시적 자아의 말투는 툭툭 내뱉듯 냉소적이지만, 아픈 상처를 ‘경험’이라고 부르고 ‘그게 다 문제를 해결해 준다’고 시인은 말한다. 마치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하는 듯하다.
 
  경험은 어쩌면 ‘순진함’의 상실일지 모른다. 경험이 쌓인다는 것은 몰랐던 세상과 부딪친다는 의미다. 세상이란 좋은 면도 있지만 고약한 아픈 현실도 숨어 있다. 내면이 깊어진다는 것은 자아와 세상의 갈등이 빚어낸 산물이다. 시인은 그 갈등에 주목하여 시를 쓴다. 갈등이 깊을수록 시의 깊이도, 행간의 넓이도 더해진다. 파커는 갈등이 낳은 상처를 경험이라 부르며 묵묵히 자신의 삶을 응시했고 작품으로 표현했다.
 
  도로시 파커의 시 중에 〈이교도들의 잘못(The Flaw in Paganism)〉이라는 시도 소수 독자들 사이에 알려져 있다.
 
 
  술에 취하고 춤추고 웃으면서 거짓말을 늘어 놓고
  사랑을, 밤새 돌아가며 나눈다,
  내일이면 우리 모두 죽을 운명이니까!
  (그러나, 슬프도다, 우리는 결코 죽지 않을 테니.)
 
  Drink and dance and laugh and lie,
  Love, the reeling midnight through,
  For tomorrow we shall die!
  (But, alas, we never 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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