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玄鎭
⊙ 62세. 서울대 사회학과 학사·석사, 미국 하버드대 사회학 박사.
⊙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소장,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장.
⊙ 한국사회학회장, 한국NGO학회장, 국제개발협력학회장 등 역임.
⊙ 저서: 《지구시대 세계의 변화와 한국의 발전》, 《NEW ASIAS》, 《글로벌 NGOs》 등.
孔錫己
⊙ 41세. 서울대 사회학과 학사·석사, 미국 하버드대 사회학 박사.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경희대 공공정책대학원 겸임교수.
⊙ 저서: 《글로벌 NGOs》, 《인권으로 읽는 동아시아》 등.
⊙ 62세. 서울대 사회학과 학사·석사, 미국 하버드대 사회학 박사.
⊙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소장,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장.
⊙ 한국사회학회장, 한국NGO학회장, 국제개발협력학회장 등 역임.
⊙ 저서: 《지구시대 세계의 변화와 한국의 발전》, 《NEW ASIAS》, 《글로벌 NGOs》 등.
孔錫己
⊙ 41세. 서울대 사회학과 학사·석사, 미국 하버드대 사회학 박사.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경희대 공공정책대학원 겸임교수.
⊙ 저서: 《글로벌 NGOs》, 《인권으로 읽는 동아시아》 등.

- 2008년 9월 뉴욕 증권거래소 앞에 모인 시민들이 美 하원이 논의 중인 700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 법안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해 연말 《타임》(TIME, 12/26/ 2011)지는 올해의 인물로 정치, 경제, 사회 민주화를 외치는 ‘시위자’(Protester)를 꼽았다. 2011년 초 북아프리카 아랍국가에서 불기 시작한 민주화 운동, 즉 재스민 혁명이 튀니지, 이집트, 그리고 리비아를 넘어 남유럽 국가의 경제정의 운동으로 확대되었다.
국가부도 사태의 그리스 정부에 분노한 아테네 시민의 분노는 비슷한 경제위기를 마주하고 있는 남유럽 ‘돼지’(PIGS·Portugal, Italy, Greece, Spain) 국가들로 확산되었고, 이것은 유로존으로 통합되어 있는 유럽연합의 경제위기 관리 능력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았다. 2011년 하반기에는 이 시위가 대서양을 넘어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주도한 뉴욕 월가의 탐욕을 비판하는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로 이어졌다. 이것은 미국 전역은 물론 유럽과 아시아로까지 급속히 확산되었다. 1%에 해당하는 부자들의 부도덕과 탐욕에 99% 일반 시민의 분노가 단순한 저항이 아닌 선거와 제도를 통한 경제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혁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이 시위는 이제 수십만의 러시아 시민이 영하 20도의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 모여 정치, 경제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로까지 이어졌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주창자들이 기대한 것과는 반대로 부의 분배는 더 이상 시장과 기업에 맡길 수 없으며, 특히 초국적 차원의 국제금융기구에 지나친 권한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람들은 깨닫게 된 것이다.
2012년 올해는 전 세계적으로 선거가 예정되어 있어 정치 리더십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분기점이다. 전 세계 시민이 양극화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그 분노를 정치의 장으로 결집시키고 있다. 그 분노가 어떻게 전개되었는가를 미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뉴욕 맨해튼 월가에서 2011년 9월 17일 시작된 반(反)월가 시위가 미국은 물론 전 세계로 확산된 바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혹은 금융세계화로 더욱 악화되고 있는 전 지구적 불평등 및 사회적 양극화에 대한 초국적 사회운동이 촉발된 것이다. 이 운동이 신자유주의 세계화 네트워크의 중심인 미국의 뉴욕 월가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주도한 국제금융기구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이 불가피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동안 각개전투식 저항운동들이 ‘지구정의’(Global Justice)라는 글로벌 프레임으로 수렴되어 하나의 목소리, 즉 ‘보다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대안세계화’를 지향하는 지구정의운동으로 헤쳐 모이는 새로운 수렴현상인 것이다. 이제 뉴욕 맨해튼의 주코티(Zuccotti) 공원은 월가의 새로운 상징이 되었다. 어떻게 미국, 그것도 미국 경제의 심장부 뉴욕 월가에서 점령 시위가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일까? 그 답은 시위자들의 구호, “We are 99%!”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세계화 정책을 강력히 추진한 지난 20년 동안, 미 행정부 재무장관들의 면면을 살펴볼 때 1%의 대부호의 탈세와 탐욕을 부추긴 것은 바로 그들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아온 정치가들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즉 월가 사람이 바로 워싱턴 정가를 점령한 것이 문제의 출발점이었다. 월가 출신의 CEO들이 줄줄이 미국 재무장관으로 기용되어 왔던 사실이 이를 방증하는 것이다.
경제민주화, 공허한 대안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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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가을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시위에 참여한 로버트 라이시 교수. |
그러나 2008년 9월 15일 서브프라임 시장은 무너지고 말았다. 내 집 장만과 중산층으로서의 삶을 꿈꿨던 99%의 서민들의 꿈도 파생상품의 마법이 풀리면서 사라졌다. 대출받았던 수많은 시민이 한순간에 집을 잃게 되었고, 기업의 연쇄 파산으로 수백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그러나 리먼 브라더스로 대표되는 투자기업은 파산하였지만 CEO들은 책임을 지기보다는 자기 몫을 단단히 챙기는 아이러니가 벌어졌다. 시티그룹을 망친 찰스 프린스 전 회장은 1억 달러의 퇴직금을 받았고, 골드만 삭스의 헨리 폴슨은 2억 달러의 세금 감면 혜택을 받았다. 2009년 미국에서만 5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200만명이 집을 잃었으며, 그리고 생산은 2조 달러가 줄었다. 월가의 정치자금에 휘둘렸던 워싱턴 정가는 미국 상위 1% 소득이 미국 전체소득의 23%를 차지할 정도가 되는 것을 방조하였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제 경기불황뿐만 아니라 경기회복 과정에서도 1%와 99%에게는 엄청난 불평등이 작동하고 있다는 역설을 목도한 미국 시민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고 그 분노가 월가점령 시위로 이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깨달음’(Awareness)은 결코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고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었다. ‘지구정의’ 프레임이 작동한 것이다. 이 지구정의 운동이 하나의 수렴 형태가 되기까지 운동참여자들 스스로 초국적 차원의 운동대상이 되는 ‘그들’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동시에 ‘우리는 하나’라는 정체성과 담론을 개발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정체성을 갖고서 초국적 저항운동에 참여하게 될 때 지구정의 운동은 더욱 지속적으로 유지, 강화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아직까지 그 단계에는 이르지 못한 것이 사실이지만, 상황은 99%의 서민에게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다. 예컨대, 환경부문은 환경정의와 기후정의를, 인권부문은 단순한 시민·정치적 권리에서 사회경제적 권리구현까지를 포함하는 사회정의를, 그리고 반(反)신자유주의 부문은 전 지구적 불평등과 불균등 발전을 극복하기 위해 외채탕감, 금융세계화와 국제금융기구의 개혁을 주창하고 있다. 여성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해 이중 삼중의 착취와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 농민은 거대곡물기업의 지역농업 잠식으로 인해 식량주권을 위협받고 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다양한 사회운동 부문이 ‘정의’라는 프레임으로 수렴하면서 주요 운동대상으로 국제금융기구, 초국적 기업, 그리고 G8과 같은 주요 서구선진국 등을 포함하기 시작하였다.
과연 지구정의라는 마스터 프레임의 등장에 시장과 국가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더 이상 글로벌 스탠더드가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에 전 지구적 차원의 대응과 지역과 국가별 대응 전략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우리의 경우, 국가, 기업, 시민사회가 이러한 지구정의 회복요구에 얼마나 대처하고 있는지를 심각하게 자문할 때이다. 그 답을 찾기 위해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함께 노력하는 것이 대안세계화를 향한 첫걸음일 것이다. 이제 풀뿌리 시민에서부터 전 지구적 차원 의 세계시민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부의 정의를 요구하고 있다. 경제민주화가 2012년 선거의 해를 맞이하여 최대 화두가 되고 있다. 공정하고 인간적인 사회를 지향한다면서 무늬만 바꾸려는 것은 아닌지, 실현가능성과 지속가능성의 측면에서 바라볼 때 혹 유권자를 현혹시키기 위한 공허한 대안을 남발하고 있지는 않은지 심각히 성찰할 때이다.
[금융 주도의 시장 근본주의를 개혁하라 - 자본주의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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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주의 4.0》의 저자인 아나톨 칼레츠키. |
이제 철학과 가치의 근본적인 변화를 추동하기 위해 금융 주도의 시장근본주의에 대한 개혁을 시작해야 한다. 현재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의 돼지국가(PIGS)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은 바로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야기된 원칙과 가치의 붕괴이다. 개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시작된 자그만 이기심이 상대방에 대한 거짓말과 속임수, 그리고 무모한 투자 관행으로 이어져 종국에는 지역공동체를 해체하고 오직 자기만 살겠다는 극단적 이기주의를 낳고 말았다. 이런 점에서 시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금융 주도의 시장근본주의를 개혁해야 한다는 칼레츠키의 ‘자본주의 4.0 기획’은 주목할 만하다.
이 기획의 핵심은 글로벌 자본주의를 전면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자본주의를 전제하면서 그 연장선 위에서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예컨대,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야망, 기업정신, 개인주의나 경쟁심)를 없애거나 약화시키지 않고 타고난 인간의 본능들을 바탕으로 이전보다 더 성공적이고 생산적인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가 창조될 수 있음을 가정한다.
시장의 오류 가능성 인정해야
이제 정부의 개입을 적극적으로 옹호해야 하며, 더 이상 시장만이 유일한 답이라는 오만한 과신은 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시장을 이상화하고 정부를 불신하는 경향이 극단으로 치달았던 신자유주의 세계화 논리에서 벗어나 더 이상 정부의 규제, 행정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제는 정부와 시장 모두 잘못될 수 있고, 때로는 치명적인 오류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이처럼 ‘자본주의 4.0’은 정부와 시장을 분리하는 대신에 더욱 가까운 관계로 설정한다. 그 이유는 정치, 경제 상황을 합리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세계에서 애매모호하고(fuzzy), 예측가능하지 않은 세계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중앙은행은 이제 금융안정을 유지하고 인플레이션을 통제하는 것으로부터 더 나아가 경제성장과 고용을 관리하는 더 큰 책임을 맡아야 한다. 물론 이것은 단순히 정부기구의 확대를 의미하기보다는 정부의 역할과 영향력, 즉 규제강화를 의미한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에 중국의 국가자본주의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음은 매우 흥미롭다. 중국은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서구의 민주주의와 인권원칙에 거부감을 보이면서 권위주의적인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 모델을 강화하여 왔다.
과연 서구의 민주주의 가치가 아니라 중국의 권위주의에 기초한 국가자본주의가 세계를 지배할 수 있을까? 미국이 새로운 정치방향을 잡아가는 데 헤매고 있고, 유로존이 위태한 상태이며, 영국은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해지고 있으며, 그리고 일본은 3·11 후쿠시마 원전사태 여파로 경제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일하게 중국만이 경제위기를 이겨내고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중국의 부상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더욱 첨예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자본주의 모델을 서구 혹은 중국 중 어디에 둘 것인가 논쟁이 있다. 진정 자유경제를 강조하는 워싱턴 컨센서스에서 번영과 국력을 우선시하는 베이징 컨센서스로 이동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어쨌든 중국식 혹은 아시아 모델과 서구 자본주의 모델은 서로 충돌하거나 혹은 결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4.0’의 기본 관점은 중국과 같은 국가자본주의를 지향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중국은 세계경제의 롤 모델이 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 중국은 아직까지 가난하고, 기술적으로 뒤처져 있고, 너무 국내 지향적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국정부는 수출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지금의 산업구조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내수시장을 강화하는 데 역점을 두기 시작하였다. 이런 권위주의적인 중국정부가 소비를 강조하는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앞으로 중국은 지적재산권의 보장, 민주적으로 구성된 정부대표, 사법부의 독립, 개인의 부와 공동체를 고려하는 기업문화를 창출해야만 한다. 이런 견지에서 자본주의 4.0에서 바라보는 중국은 권위주의적으로 작동하는 제도 때문에 개발도상국에는 매력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서구 선진국에는 결코 새로운 경제모델이 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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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11월 프랑스 칸에서 열린 G20정상회의에서는 글로벌 통화시스템 개혁 등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
자본주의 4.0도 더 진화할 필요
‘자본주의 4.0’은 시장과 정부 모두 불완전하며 오류를 낳을 수 있다는 전제에서 지속적으로 제도적 적응력을 키우며 이데올로기적 유연성을 견지하는 것, 즉 혼합경제를 지향한다. 이 혼합경제에서는 정부와 기업이 대립관계가 아니라 동반자 관계를 형성한다. 예컨대, 석유에너지 고갈(Peak Oil)을 두려운 마음으로 전망하면서도 시장은 오염 비용을 가격에 포함하지 않고 있다. 혼합경제에서는 피크 오일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맞도록 시장가격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석유에너지 사용에 탄소세금을 부과하여, 이것을 토대로 대체에너지 개발보조금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현실은 어떠했는가? 금융기관들은 석유가격이 계속 올라갈 것이라 예상하고 무제한의 석유파생상품을 매점매석했다. 정부는 이것을 방조했고, 그 결과 석유가격은 고공행진 중이다. 이제 정부는 더 이상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서는 안 된다. 정부와 규제 책임자들도 자신들이 활용할 수 있는 정보를 모두 동원하여 합리적인 결정을 내려 시장을 조정하여, 경제성장과 고용을 관리해야 한다. 물론 시장근본주의자는 정부나 정치의 개입과 지도를 강력히 거부하며, 경기부양책의 효과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은 다양한 산업구조를 요구하고 있다. 어떤 한 가지 산업이 아무리 유망해 보여도 한 가지에 올인하는 글로벌 무역시스템은 너무나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산업구조를 보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도 정부의 다양한 산업, 특히 농업과 같은 1차 산업을 적극 장려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칼레츠키는 ‘자본주의 4.0 기획’을 통해 세계경제는 새로운 환경에 적합하도록 바뀌고, 정부는 명백한 성과가 나올 때까지 경기부양책을 계속하며, 세계는 다시 견고한 경제성장을 이어가고, 그리고 실업률은 떨어지고 금융환경도 정상화될 것이라고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물론 그 과정에는 정부가 직면할 수 있는 많은 도전과제가 존재한다. 예컨대, 금융 불안정, 무역 불균형,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탄소배출, 핵 확산, 테러리즘, 중국과 서구 경제모델 사이의 긴장 등이 그 대표적인 도전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4.0 기획의 가장 큰 한계는 바로 글로벌 차원의 대응 전략 및 협력 메커니즘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G20의 출현을 하나의 대안으로 바라보는 것은 국제정치의 역학관계를 너무나 단순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비록 자본주의 4.0이 계속 진화하여 새로운 환경에 부합하는 새로운 버전이 계속 나올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다가올 전 지구적 차원의 복합위험을 너무나도 일면적으로만 바라보는 것이다. 지역, 국가, 세대, 인종, 종족, 문화, 종교 사이의 충돌과 같은 돌발변수를 괄호 안에 넣어둔 채 전 지구적 대안을 논하는 것은 장님이 코끼리를 더듬는 것만큼 불안전해 보인다.
[경제민주화 전략: 부자 때리기에서 끌어안기로]
2011년 11월 3~4일 양일 동안 프랑스 칸(Cannes)에서 열린 G20정상회의에 참석한 세계 정상들은 세계경제 위기 상황에서 국제 통화시스템 개혁과 금융시장 조절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서구 선진국들은 유로화의 위기를 겪고 있는 터라 세계 기아문제나 기후변화 공동대응과 같은 전 지구적 현안은 의제로 포함시키지도 못했다. 약 두 달 후, 세계 주요 정상과 대기업 총수들은 스위스 다보스 2012 세계경제포럼에서 새로운 환경, 즉 세계경제 위기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에 대해 논의하였다. 여느 때와 달리 이번 포럼 분위기는 ‘신자유주의에 기초한 글로벌 시스템이 실패하고 있지 않나?’라는 자조 섞인 비판을 나누면서 세계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를 우려하는 진단을 내놓기도 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국가들의 금융개혁의 필요성으로 집중되었고, 동시에 탐욕스러운 부자와 기업에 대한 가차없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최근 국제사회에서 논의되는 금융개혁 논의의 내용은 크게 보면 일곱 가지 정도다. ① 금융기관의 건전성 개선과 규제강화 ② 유사금융 제도에 대한 규제확대 ③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기관에 대한 규제적용 ④ 금융기관 임원의 보수 및 보너스 문제 ⑤ 금융거래세 또는 은행세의 도입 ⑥ 거시건전성 강화, 그리고 ⑦ 국제협력에 관한 사항으로 요약된다. 이 중에서 금융기관의 건전성 개선과 규제강화, 금융기관 임원의 보수 및 보너스 제도 문제, 거시건전성 강화, 그리고 국제협력 등에 대해서는 전체적으로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유사금융 제도에 대한 규제강화, 대형금융기관에 대한 규제, 금융거래세 또는 은행세 등에 대해서는 나라마다 의견이 갈라지고 있다. 이처럼 주요 선진국들은 오늘날의 세계경제 위기를 촉발시킨 주요 원인이 금융세계화임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었던 파생상품이나 국제금융기구의 문제 해결에 대해서는 여전히 합의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지구정의로 수렴되는 세계시민의 저항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급속히 확산되면서 탐욕스러운 부자들의 불의와 탐욕에 대해서는 나라마다 모양을 달리하면서 구체적으로 반응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선 미국의 경우를 살펴보자. 오바마 대통령은 2012년 1월 24일 신년연설(State of the Union)을 통해 부자증세 이른바 ‘버핏 원칙’(Buffett Rule)을 제안하였다. 미국 금융자본주의의 상징인 사모펀드(PEF·Private Equity Fund)를 통해 극소수의 금융 엘리트와 투자자들은 천문학적인 수입을 얻었지만, 대다수 노동자는 일자리 부족과 임금하락, 상시적인 해고 위협의 고통을 받고 있다. 이런 1 대 99의 부의 편중 상황에서 금융자산가에게도 소득세율 30%를 동일하게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 버핏 원칙의 핵심이다. 그동안 금융소득에 대한 세율은 14%였다. 이 버핏세 원칙은 부자 전체를 하나의 범주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제조업체를 지배한 금융자본가들을 대상으로 한 공격이다.
대기업, 과연 공공의 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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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1년 12월 토빈세의 주창자인 제임스 토빈 교수(왼쪽)가 스웨덴의 칼 구스타프 국왕으로부터 노벨경제학상을 받고 있다. |
유럽, 그중에서도 사회주의 전통이 강한 프랑스에서도 부자들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었다. 지난 1월 10일 프랑스 정부는 처음으로 토빈세(Tobin Tax)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 토빈세는 투기성 단기 금융거래에 대해 벌금성 세금을 부과하여 금융시장의 불안을 막겠다는 취지에서 기획되었다. 본래 토빈이 제안한 세제비율은 금융거래액의 1%이지만, 이후 그 비율이 0.1%, 0.25%로 계속 변동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악화된 부의 불균등과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고자, 프랑스 아탁(ATTAC)은 그동안 토빈세를 통해 걷은 수익금을 전 세계 빈곤 감소, 공공서비스 보호, 빈곤국 개발프로젝트에 지원하는 것을 주장해 왔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이 입법 예고한 토빈세는 과연 급진적인 금융개혁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그 정책 뒤에 숨어 있는 정치적 의도이다. 그동안 프랑스 진보 진영은 금융거래 과정에서 막대한 소득을 올리는 금융기관과 고소득자에게 토빈세를 도입할 것을 꾸준히 주장해 왔다. 그런데 4월로 예정된 프랑스 대선을 앞두고 사르코지 대통령은 유럽연합과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도입을 발표하였다. 아마도 경제위기를 자초한 금융자본가와 초국적 기업에 대항하는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일반 시민에게 보여주고자 기획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 이유는 토빈세는 일국에 국한된 금융거래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으며 최소한 유로존으로 묶인 유럽연합과의 합의를 통해 투기성 금융거래를 제한할 때 금융시장의 안정을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사르코지는 최근에 일반 시민에게 경제적으로 부담을 줄 수 있는 부가가치세를 1.6% 인상하겠다는 발표를 하였다. 이런 견지에서 그의 부자 때리기 정책은 형식적인 제스처에 불과하며 더 나아가 경제민주화 정책 과정을 올바로 끌어안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럼 한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한국은 올해 4·11 총선을 앞두고 출자총액제 부활, 재벌과세 강화 등 대기업 때리기의 정도가 무차별적으로 쏟아지고 있다. 얼마 전까지 이명박 정부의 기업친화적인 정책을 적극 지지하던 여당도 이제는 ‘경제민주화’를 정강정책에 넣고 부자 때리기 전선에 합류했다. 이는 최근의 재벌빵집 논란을 넘어 부의 편법 대물림, 일감 몰아주기, 중소기업과의 불공정 거래와 같은 대기업의 무한경쟁과 무차별적 이윤추구 경향에 대해 일반 시민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한계에 이르렀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구정의’라는 글로벌 프레임이 양대 선거를 앞둔 한국 정치 상황하에 신속하게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기업을 단순히 ‘공공의 적’으로 대치시켜서는 경제민주화의 구체적인 답이 나오지 못한다. 골목상권을 초토화시킨 대기업의 투자 전략은 마땅히 비판받고 재고되어야 하며, 중소기업과의 상생보다는 그 지배력을 확장하여 중소기업은 물론 자영업자의 영역까지 침범하는 문제 역시 하루속히 법적 규제를 통해 제한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허망한 구호를 넘어 실현가능한 진정성 있는 대기업-중소기업 상생전략을 만드는 것이 더욱 절실하다. 이것을 마련하지 않은 채 단순히 유권자의 표를 의식해 대기업 때리기 구호만을 외친다면 그것은 우리 모두를 경제위기의 수렁으로 더욱 깊이 빠지게 만들 것이다. 경제민주화를 위해 대기업이 책임 있는 자세로 참여할 수 있는 정책대안이 절실한 때이다. 예를 들어, 처벌성 세금(Penalty Tax) 부과보다는 사회적 책임성 부담금(Social Responsible Sharing Tax)을 유도하는 것이 올바른 접근일 것이다.
[경제민주화의 대안 키워드: 토빈세, 국제금융기구 민주화, 녹색뉴딜]
현대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핵심적 위험으로 부상한 금융세계화에 관하여 대안 키워드가 논의되고 있지만 그 실현가능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안갯속을 헤매고 있다. 사실 세계경제 위기가 주요 이슈로 부각되기 전부터 각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은 고삐 풀린 금융을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 해왔다.
그중 대표적인 초국적 시민운동단체가 바로 프랑스에서 시작된 아탁(ATTAC)이며 그 핵심주장은 투기성 금융거래에 대해 세금, 즉 토빈세를 부과하자는 것이다. 그렇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금융세계화를 보다 민주적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그동안 시민사회는 현재의 무분별한 금융활동이 발생하게 된 책임을 IMF, 세계은행, WTO에 물었다. 다른 국제기구와 달리 국제금융기구의 지배구조는 서구 선진국에 매우 유리하게 되어 있어서, 세계은행이나 IMF의 경우 선진국의 투표권이 약 60%를 차지할 정도이다. ‘1국 1표’ 체제가 아닌 ‘1달러 1표’의 원칙이 작동되는 이유는 기구 운영에 분담금을 많이 지원하는 국가일수록 발언권이 강화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금까지 세계은행 총재는 미국에서, IMF 총재는 유럽에서 맡는 것이 불문율처럼 지켜져 왔다.
이와 달리 오늘날의 경제위기를 보다 거시적인 맥락에서 접근하여 해결하려는 흐름도 존재하는데 바로 ‘글로벌 녹색뉴딜(Global Green New Deal)’이 그것이다. 녹색뉴딜의 문제의식은 오늘날 세계가 마주한 위기를 금융-기후-에너지의 복합위기로 진단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정책 대안으로 탄소세 부과, 재생가능에너지 개발, 녹색산업 투자 등을 강조한다. 이를 선도하고 있는 기구가 바로 유엔환경계획(UNEP)과 세계경제포럼이다. 각각의 키워드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 토빈세(Tobin稅)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로 세계경제의 불안정성이 고조되는 가운데 프랑스에서는 희대의 금융사기 사건이 발생했다.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큰 은행인 소시에테 제네럴에서 한 직원이 연루된 금융사기 사건으로 49억 유로(약 6조8천억원)의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당시 프랑스 정부는 이 사건을 개인의 비리로 국한시키려 애썼지만, 이 사건은 오늘날 금융투기의 실상과 문제점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돌이켜보면, 금융거래에 세금을 매김으로써 금융을 규제하겠다는 발상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세계경제 위기가 부각되기 전부터 시민사회단체들은 고삐 풀린 금융을 규제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해 왔고, 이 중 아탁(ATTAC)이 가장 대표적이다. 금융거래에 세금을 부과하자는 아이디어는 노벨상 수상자인 제임스 토빈의 1978년 금융규제를 위해 단기적 금융거래에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에서 기원하며, 그의 이름을 따 ‘토빈세’가 된 것이다. 아탁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의 토빈세 주장은 그동안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나, 최근의 경제위기 때문에 정부는 물론이고 기업 또한 토빈세를 다시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현재 금융위기 해결에서 주된 주체로 부상한 G20에서도 금융 관련 과세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중이다. 또한 IMF가 제안하고 있는 금융안정 분담금이나 금융활동세는 토빈세에 비해 강제력은 약하지만, 금융거래의 책임성을 높여 금융시스템 안정을 기할 수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토빈세를 구현하기 위한 합리적인 국제기준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과연 어떤 외환거래에 대해 세금을 부과할 것이며, 세금부과 비율은 어느 정도로 할 것이며, 부과한 세금을 어떤 방식으로 거둘 것이며, 거둔 세금은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사용할 것인가, 그리고 누가 이 세금을 관리할 것인가 등과 같은 수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다. 이것은 몇몇 나라만 참여해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전 지구적 참여가 필요한 일이다.
⊙ 국제금융기구의 민주화
오늘날 세계경제를 지배하는 대표적인 국제기구로 IMF, 세계은행, WTO 3인방을 들곤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무렵 주요 선진국 대표자들이 미국의 브레튼우즈라는 마을에 모여 전쟁 동안 중단되었던 국제무역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회의를 가진 결과 미국 달러를 중심으로 하는 국제무역 질서를 구축하였다. 이 브레튼우즈 체제는 IMF, 세계은행, 그리고 WTO의 전신인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를 세 축으로 구축하게 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서면서 원활한 국제무역질서 조성을 목적으로 출발하였던 IMF와 세계은행은 신자유주의 체제를 주도하는 핵심적인 금융기구로 변모하게 된다. 이 기구들은 제3세계의 부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원 선결 조건으로 해당국에 금융 자유화나 민영화 정책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역설적이게도 IMF와 세계은행이 주도한 제3세계 구조조정 프로그램들이 전반적으로 실패하게 되면서, 이 기구의 비민주적 운영 메커니즘은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게 되었다. 비판의 핵심은 구제 대상국의 이익이 아닌 주요 선진국의 이익을 위해 국제금융기구가 활용되었다는 것이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시민사회가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국제금융기구의 민주적 개혁이 본격적으로 논의되었고, 그것은 제3세계의 목소리를 정책결정 과정에 반영하는 것이었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국제금융기구의 지배구조는 선진국에 매우 유리하게 되어 있어 1국 1표 체제로의 전환이 시급한 상황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실제로 국제금융기구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논의가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2010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는 IMF 지배구조에 관한 개혁안이 승인되었다. 그 핵심은 신흥시장국과 개발도상국에 기존보다 더 많은 IMF의 투표권을 부여하여, 상임이사회의 이사 전원을 투표로 선출함으로써 신흥개도국의 인사가 이사로 진출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개혁안을 따른다 하더라도 IMF를 주도하는 핵심 국가의 수가 5개국에서 10개국으로 늘어나는 수준에 머물기 때문에 제3세계의 목소리를 의사결정 과정에 반영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국제금융기구의 의사결정 과정에 남반구와 개발도상국의 의견이 더 잘 반영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국제금융기구의 민주화를 달성하는 데 핵심 과제인 것이다.
⊙ 녹색뉴딜
녹색뉴딜 개념은 2008년 6월 영국의 《가디언》지 경제 편집자인 래리 엘리엇, 그린피스 전 활동가 콜린 하인스, 그리고 지구의 벗 전 활동가 토니 주니퍼가 중심이 되어 구성한 ‘그린뉴딜그룹’이 작성한 보고서 〈그린 뉴딜〉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이들은 오늘날의 세계경제가 기후변화, 에너지 고갈, 금융위기라는 삼중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 복합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녹색에너지 체제로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녹색뉴딜에서 제안하는 주요 정책들로는 탄소세 부과, 재생가능에너지 개발, 녹색산업 투자 등이 있다. 이것은 자연 생태계를 보존하여 보다 자연친화적인 지구환경 아래 살 것을 요구한 서구의 녹색당과 환경시민단체들의 핵심 주장이며 이들의 오랜 노력의 결실이 아닐 수 없다. 현재 녹색뉴딜은 시민사회운동만의 주장이 아니라 각국 정부가 새로운 대안으로 진지하게 고민하는 정책 과제가 되었다. 2007년 10월 프랑스의 사르코지가 발표한 ‘생태 뉴딜’, 2008년 6월 일본 정부가 발표한 ‘저탄소 사회 일본을 향하여’, 2009년 1월 영국 블레어 정부가 발표한 ‘그린 뉴딜’, 미국 오바마 행정부가 제시한 ‘그린 뉴딜 정책’, 그리고 2009년 8월 이명박 정부가 발표한 ‘저탄소 녹색성장 비전’에 이르기까지 야심 찬 비전과 정책들이 녹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기업의 강한 압력에 못 이겨 정부가 녹색보다는 성장에, 녹색보다는 일자리 창출에 방점을 찍고 정책을 집행하여 왔다는 점이다. 따라서 정부가 주도하는 녹색정책이 실제로 친환경적인지에 대해서는 시민사회의 감시와 견제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사실 경제민주화의 한 축으로 녹색뉴딜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기업을 견인하고 추동하는 유능한 정부가 필요하다. 이것은 앞서 강조했듯이 정부 규모의 확대를 의미하기보다는 역할과 개입의 증대를 의미한다. 한국의 경우도 여야 구분없이 정당 정강정책에 과거 ‘큰 시장, 작은 정부’에서 ‘강한 정부’로의 전환을 명시하고 있다. 1% 대 99%의 부의 편중을 막고 실질적인 경제민주화를 이루기 위해서 시민들은 ‘강하지만 선한 정부’를 올바로 선택해야 할 책임을 안고 있다. 총선과 대선이라는 ‘중대선거’의 해를 맞이하여 시민들의 현명한 선택이 절실히 요구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