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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

류경식당 女 종업원 집단 탈북 주도한 허강일의 격정 토로

“국정원 ‘기획 탈북’ 발언, 모 방송사가 시키는 대로 했다”

글 : 정광성  월간조선 기자  jgws8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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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정치인, 변호사들은 우리의 탈북을 이렇게 이용했다!

⊙ “좌파 세력 때문에 미국으로 망명 신청했다”
⊙ “문재인 정권 들어서자 나를 범죄자로 몰아가”
⊙ “여당 K 의원, 종업원들 만나 ‘북으로 다시 돌아가라’고 해”
⊙ “P 전 의원, ‘보상금 받게 해주겠다’며 모 방송사 소개해줘”
⊙ “윤미향, 금강산에 가족들 불러줄 테니 만나러 가자고 제안”
⊙ “모 방송사, 인터뷰 원본 영상 北에 넘기고 평양 촬영 허가받아”

허강일
1980년생. 평양외국어대학교 졸업 / 북한 39호실 은하지도국 부원, 대외문화연락위원회 중국 닝보 류경식당 지배인
유튜브 채널 ‘북한을 바꾸다’에서 함께 진행하는 허강일 前 북한 류경식당 지배인(왼쪽)과 박연미씨. 사진=허강일 유튜브 캡처
  2016년 4월 중국 저장성(浙江省) 닝보(寧波)의 북한 류경식당 지배인 1명과 종업원 12명이 집단 탈북했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이들이 김정은 체제에 환멸을 느끼고 스스로 탈북을 결심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국가정보원(국정원)의 ‘기획 탈북’ 의혹을 제기했다. 북한도 국정원이 이들을 납치·유인했다고 주장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류경식당 종업원들의 ‘기획 탈북’ 주장에 더 힘이 실렸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 앞장서 이 사건을 국정원의 ‘기획 탈북’으로 몰아세웠다.
 

  여기에 2018년 5월 10일 모 종편 방송사는 탈북 당시 류경식당 지배인으로 일한 허강일씨를 인터뷰하며 이 사건이 국정원에 의한 ‘기획 탈북’이라고 보도했다. 허씨가 방송을 통해 “국정원이 여종업원 모두를 데리고 한국에 오면 훈장과 포상을 준다는 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그가 종업원들을 협박해 함께 탈북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방송이 나가고 나서 허씨는 모 방송사가 “악의적으로 인터뷰 내용을 편집했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어떠한 세력의 음모에 속았다”고도 했다.
 
 
  “문재인 정권 피해 돌연 미국으로 망명”
 
2016년 4월 7일 중국 저장성(浙江省) 닝보(寧波)의 북한 류경식당 지배인 1명과 종업원 12명이 집단 탈북했다. 사진=조선DB
  허씨는 2016년 4월 탈북 이후 3년간 남한에 거주하다 2019년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로부터 3년여가 흐른 지난 3월 11일 《월간조선》은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허강일씨와 인터뷰를 가졌다.
 
  당초 허씨와의 인터뷰는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류경식당 종업원들을 북한으로 돌려보내려고 회유했다는 보도가 나온 지난해 6월 말경에 계획돼 있었다. 그때 허씨는 자서전 발간을 준비 중이었고, 출판사에선 언론 인터뷰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올해 초 허씨가 당시 인터뷰에 응하지 못해 “미안하다”며 인터뷰를 제안해왔다. 그는 이 인터뷰에서 작심한 듯 지금까지 숨겨왔던 일들을 털어놨다. 지난 3월 11일 미국에 있는 허씨와 화상으로 만났다.
 
  ― 갑자기 왜 미국으로 망명한 건가요.
 
  “솔직히 미국에 올 거라곤 꿈에도 생각을 못 했습니다. 한국에 잘 정착해서 살려고 했죠. 그런데 정권이 바뀌고 문재인 정권은 우리를 가만히 놔두지 않더라고요. 거기에 종북좌파들은 자꾸 우리를 월북시키려고 하고…. 자기들 뜻대로 잘 안 되니 저를 범죄자로 몰아갔습니다. 너무 힘들어 망명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 누가 힘들게 했다는 겁니까.
 
  “많은 사람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나를 방송사에 소개해줬습니다.”
 
  ― 민주당 의원 누구를 말하는 겁니까.
 
  “P 전 의원과 K 의원입니다.”
 
  지금까지 허강일씨는 윤미향 의원 이외에 다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만났다는 사실을 밝힌 바 없다. 그의 이어지는 말이다.
 
  “이제 뭘 더 숨기겠습니까. 이 시점에 다 공개하려고요. 방송사에 저를 소개해준 사람이 P 전 의원입니다.”
 
  ― 언제 만났나요.
 
  “2018년 4월 초였습니다. 솔직히 한국에서 국회의원 만나기가 쉬운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비서관을 통해 P 의원을 만나게 된 거죠.”
 
  ― 만나서 무슨 얘기를 나눴나요.
 
  “P 의원이 제게 ‘보수한테 속은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P 의원은 ‘보수는 한반도 통일을 바라지 않는 사람들이고, 통일을 위해 투자도 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우리(더불어민주당)야말로 통일을 위해 남북 교류를 열심히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하더군요.”
 
  ― 또 무슨 이야기를 하던가요.
 
  “P 의원이 종업원들을 위해서 손해배상을 받아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에선 조용히 하면 안 된다. 언론에 나가서 이슈를 만들어야 해결된다’고 했어요. P 의원은 ‘꼭 인터뷰를 하라’고 하면서 방송사 기자를 소개해줬어요.”
 
 
  K 의원, “다시 북으로 돌아가도 처벌 안 해”
 
2016년 4월 10일 오후 중국 저장성 닝보의 북한 식당인 류경식당 모습이다. 사진=조선DB
  ― K 의원도 같이 만났나요.
 
  “아니요. K 의원은 제가 직접 만난 것은 아닙니다. K 의원과 P 의원 둘이서 종업원들을 만나 북한으로 다시 돌아가라고 말했다고 하더라고요.”
 
  ― K 의원도 종업원들에게 월북을 회유했다는 말인가요.
 
  “네. 민변의 J 변호사가 ‘보상금을 받기 위해 서류 작성이 필요하다’며 여종업원들을 민변 사무실로 불렀다고 하더라고요. 종업원들이 그 자리에 갔을 때 P, K 두 의원이 있어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J 변호사가 두 사람을 종업원들에게 소개하더랍니다.”
 
  ― P, K 의원은 종업원들에게 무슨 말을 했답니까.
 
  “K 의원이 ‘당신들은 왜 범죄자(허씨)를 따라왔느냐.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겁먹지 말고 부모들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식으로 말했답니다. 또 ‘부모들이 고향에서 기다린다. 당신들이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 사회를 동경했다고 하는데 생각보다 호락호락한 세상이 아니다. 돌아갈 마음만 먹으면 우리가 북한 정부와 얘기해보겠다. 가도 처벌을 안 받을 것이다’고 하더랍니다. P 의원은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 같아요.”
 
  ― 종업원들이 두 의원을 만난 건 어떻게 알았나요.
 
  “종업원들이 두 의원을 만난 뒤 놀라서 저에게 전화를 했더라고요. 정말 놀랐습니다. 그때야 함정에 빠진 것을 알게 됐습니다.”
 
  허씨 말에 따르면, J 변호사가 종업원들에게 당시 두 의원을 만나겠느냐는 의견도 묻지 않은 채 보상금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는 구실로 민변 사무실로 불러 두 의원과의 만남 자리를 주선했다. 그 자리에서 K 의원은 종업원들에게 월북 회유와 함께, 지배인(허강일)은 범죄자고 그와 함께 다니면 북한에 있는 가족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취지의 얘기를 했다는 것이다.
 
  해당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K 의원에게 전화를 걸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하루가 지나서야 “(그런 사실이) 없슈 누가 그런 주장을?”이라고 답을 보내왔다.
 
 
  P 의원의 반론
 
  P 전 의원은 문자메시지로 다음과 같은 답변을 보내왔다. 원문을 그대로 싣는다.
 
  “식당에서 만나 얘기를 나눴습니다. 언론 보도된 내용 정도였습니다. 시간이 지나 기억이 명확하지 않지만 제게 직접 연락 온 것이 아니라 의원실로 연락이 와서 다른 의원, 변호사 등과 만났고, 저는 그 만남 이후 별도 연락이나 접촉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가 누군가를 소개하거나 한 기억은 없습니다. 명확한 기억은 아닙니다. 1회 만난 사실만 정확한 기억입니다. 제 기억엔 그렇습니다.”
 
  P 전 의원의 반론에 대해 허씨는 “정확히 P 의원을 두 번 만났다”고 거듭 강조했다. 허강일씨의 말이다.
 
  “지인을 통해 P 의원 비서관과 만나 약속을 잡고, 여의도의 모 일본식 횟집에서 P 의원과 만났다. 두 번째는 마포의 고급 횟집에서 만나 방송사 기자를 소개받았다.”
 
 
  “모 방송사, ‘기획 탈북’으로 말하라고 종용”
 
  ― 방송에 출연해선 국정원의 ‘기획 탈북’이라고 했어요. 그건 왜 그랬던 겁니까.
 
  “그땐 어쩔 수 없었습니다. 뒤에서 얘기하겠지만, 한국에 오면 보상금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니 국정원과 국군정보사도 모른 척했습니다. 보상금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에 방송사 회유에 넘어간 겁니다.”
 
  ― 그 방송사가 무슨 회유를 했다는 거예요.
 
  “처음에 저와 종업원들은 ‘우리 스스로 선택해서 탈북했다’고 진실을 말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방송사 측에서 ‘그렇게 말하면 보상금을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발적으로 왔다고 하면 북한에 있는 종업원들 가족들이 다 죽는다. 당신이 끝까지 그들을 책임져야지 않겠느냐’고 말했습니다.”
 

  ― 그렇다고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는 거 아닙니까.
 
  “당시 우리는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취업도 안 되는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보상금만 받으면 힘든 자본주의 사회에서 잘살 수 있을 거라고 착각을 한 거죠. 국정원에서 우리를 언론에 공개하는 바람에 종업원들이 얼마나 상처를 받았겠습니까. 그들에게 피해 보상을 해줘야겠다는 마음으로 TV에 출연하게 된 겁니다. 그런데 결국 이것이 함정이 된 거죠.”
 
  ― 함정이요?
 
  “제가 이런 발언을 하고 나서 민변이 더욱 신이 나서 우리를 다시 돌려보내려고 애를 썼잖습니까? 결국 국정원이 기획한 ‘작품’이 돼버린 거죠. 물론 저의 잘못된 선택이긴 했지만,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었습니다. 보상금을 받고 싶었고, 종업원들의 가족을 지켜주기 위해선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 누가 ‘기획 탈북’이라고 말하라고 시키던가요.
 
  “P 전 의원에게서 소개받은 기자가 보상금 얘기를 하면서 시키더라고요.”
 
  ― 그 기자가 뭐라고 하라 했나요.
 
  “(방송에) 나온 그대로입니다. ‘국정원이 종업원들을 회유해서 남한으로 데려가면 훈장과 포상금도 준다고 나를 설득했다고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인즉슨 국정원의 ‘기획 탈북’으로 저와 종업원들이 탈북했다는 내용입니다.”
 
  ― 방송이 나간 이후 방송사가 거짓말을 했다 고 주장했는데요.
 
  “네. 방송사가 거짓말을 했습니다. 인터뷰 전에 우리는 방송사 측에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그 내용을 구두로 약속까지 해놓고 지키지 않은 거죠.”
 
  ― 어떤 조건이었습니까.
 
  “일단 우리 얼굴을 공개 안 하고, 북한으로 돌아갈 것인지 안 갈 것인지에 대해서 묻지 않기, 그리고 자발적으로 왔는지도 질문을 하지 말라고 얘기했습니다. 왜냐하면 자발적으로 왔다고 하면 북에 있는 가족들이 위험해지니까요. 그리고 납치가 됐다고 하면 다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올까 봐 사전에 그런 질문을 차단했죠. 방송사 측에서는 얼굴을 공개하지 않고, 해당 질문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 약속을 안 지킨 건가요.
 
  “네. 정작 출연하니 ‘부모님들이 안 보고 싶냐’고 묻고, ‘고향이 그립지 않으냐’고도 했어요. 솔직히 부모가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며, 고향 생각 안 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원하는 대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걸 가지고 우리가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처럼 만들어놨더라고요. 만약 우리가 집에 가고 싶어 했다면, 얼굴 다 공개하고 기자회견을 하지 무엇 때문에 숨겼겠습니까? 공개하면 북한은 더 좋아하죠.”
 
  ― 그 방송사에 항의를 했습니까.
 
  “엄청나게 항의했죠. 제가 오죽하면 기자랑 싸웠겠습니까?”
 
  ― 기자랑 싸운 건가요.
 
  “네. 그 기자랑 싸웠어요. 웃긴 건 그 기자가 자신이 ‘북한 간첩’이라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 그 기자가 그런 말을 했다고요?
 
  “네. 증거 사진도 가지고 있습니다.”
 
 
  “모 방송사, 여종업원 인터뷰 영상으로 북한과 거래해”
 
  2018년 5월 허씨의 인터뷰가 방송되고 나서 국내외 여론은 북한 류경식당 종업원들의 탈북은 국정원의 기획으로 만들어진 사건으로 변질됐다.
 
  ― 본인이 운용하는 유튜브 채널을 보니 그 방송사가 북한에 인터뷰 원본을 넘겼다는 주장을 하던데, 근거가 있습니까.
 
  “저희 사건이 북한 역사상 없던 사례잖아요. 당시 이 사건 때문에 6명이 총살당하기도 했습니다. 김정은이 3개월간 거의 반(半)미치광이처럼 행동했다고 합니다. 그 방송사가 중국 베이징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대남공작 기구 사람들을 만나 파일을 전해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그건 어떻게 알았나요.
 
  “저를 접촉했던 그 방송사 기자가 저한테 얘기하더라고요. 북한 측으로부터 우리에게 만나자는 연락이 와서 베이징에서 만나고 왔다고요. 그 방송사가 최초로 우리를 인터뷰했으니 북한이 그 방송사에 연락을 취한 것 같습니다. 해당 기자는 그 방송사가 방북 취재 때문에 북한에 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정보 라인을 통해 알아보니 거래를 했더라고요.”
 
  ― 여종업원 인터뷰 영상을 주는 조건으로 북측이 방북 취재를 허용했다는 거죠.
 
  “네. 저희 인터뷰 원본 영상을 북쪽에 주고 방북 취재를 따낸 거죠. 이 얼마나 파렴치한 짓입니까. 북한에선 원본 영상을 통해 우리가 맞는지, 정말 북으로 돌아오고 싶어 하는지를 알아보려고 했다고 하더라고요.”
 
  허강일씨의 말은 확신에 차 있었다. 허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 방송사 측은 자신들의 방북 취재를 위해 허씨와 종업원들의 목숨을 담보로 거래를 한 셈이다.
 
  ― 방송에 출연한 뒤 출연료는 받았습니까.
 
  “한 사람당 200만원씩 받기로 했죠. 세금 떼고 180만 원 정도가 통장에 들어왔습니다.”
 
 
 
“北 간첩들, 주위 맴돌며 협박”

 
  허씨는 탈북 이후 북한의 지령을 받은 이들로부터 수차례 협박을 받아왔다고 주장했다. 허씨가 미국으로 망명하는 결심에 이런 부분도 한몫했다.
 
  ― 한국에 있을 때 협박도 받았다면서요.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한 번은 밤 11시경 낯선 여자 두 명이 계속해서 초인종을 누르더라고요. 처음엔 답을 안 하면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집요하게 계속 누르더군요. 그래서 누구냐고 물으니 무슨 빚을 받으러 왔다면서 ‘정모씨네 집이 아니냐’고 묻더군요. 아니라고 했죠. 그런데도 안 가고 계속 벨을 눌러 결국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 경찰이 와서 뭐라고 하던가요.
 
  “같이 경찰서까지 갔어요. 근데 그 여성 중 한명은 중국인이었고, 다른 한명은 조총련계 일본 사람이었어요. 그렇다고 한들 증거가 없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풀려났어요.”
 
  ― 그 여성들은 돌아갔나요.
 
  “경찰서에서 저의 뒤를 따라 나오면서 중국어로 이렇게 말하더군요. ‘국정원 간첩 ×× 우리가 너 꼭 죽인다’라고 말했어요. 얼마나 소름이 돋던지 그 이후로 며칠 집 밖으로 못 나갔어요. 북한 간첩들인 거죠.”
 
  ― 경찰에 다시 신고 안 했나요.
 
  “신변 담당 보호관도 모른 척하는데 경찰들이 수사하겠습니까. 그 이후에도 비슷한 일이 여러 번 있었어요.”
 
  ― 어떤 일이요.
 
  “복면을 쓴 사람이 제 친구를 미행해 제 집까지 따라왔었어요. 폐쇄회로TV(CCTV)에 다 찍혔어요. 이 사람은 제 집 근처를 배회하더니 제 우편물을 훔쳐 달아나더라고요. 또 한번은 집 초인종이 고장 나서 수리 기사를 불렀어요. 그런데 그분이 집안 모니터 화면과 연결되는 선을 일부러 잘랐느냐고 묻더라고요. 자세히 보니 누군가 모니터 연결선을 칼로 자른 자국이 있었어요. 정말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끔찍했어요.”
 
  ― 이 사건 모두 북한 소행으로 봅니까.
 
  “북한이 아니면 누가 그런 짓을 했겠습니까. 북한의 지령을 받은 간첩들이나 그런 짓을 하죠.”
 
  ― 최근에는 그런 일이 없었나요.
 
  “네. 미국에 온 다음부턴 없습니다. 여긴 법이 무서워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겁니다.”
 
 
  “민변, 중국서 발생한 사건으로 나를 告訴”
 
  ― J 변호사가 소송에 휘말리자 미국으로 도망갔다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웃기지도 않습니다. 민변이 종업원 중 한명을 내세워서 저를 고소하게 했습니다. 중국에 있을 때 제가 그 친구를 뺨을 한 번 때린 적이 있는데 그걸 폭행죄로 고소했더라고요.”
 
  ― 뺨을 왜 때린 거예요.
 
  “멀쩡한 사람을 제가 때렸겠습니까. 자신이 잘못해서 제가 때린 것이지요. 물론 폭행이 정당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당시 그 친구는 맞을 짓을 했습니다.”
 
  ― 무슨 잘못을 했는데요.
 
  “보통 북한에서 해외 파견 나가는 노동자나 종업원들은 그 나라에서 혼자 못 다니게 되어 있습니다. 2~3명이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그런데 그 종업원이 하루는 보고도 없이 홀로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정말 그땐 저를 비롯한 식당 종업원 모두 공포에 떨었습니다. 만약 그 친구가 사라지면 우리는 모두 북한으로 소환되어 저는 교도소에 가거나 다른 처벌을 받았을 겁니다.”
 
  ― 종업원은 돌아왔나요.
 
  “네. 6시간 후에 왔습니다. 우리는 그 6시간 동안 정말 초조하게 마음을 졸이면서 있었습니다. 식당에 보위지도원이 있는데 이런 일은 이 사람에게 보고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종업원은 북한으로 소환되어 어떤 처벌을 받을지 모릅니다. 최소한 정치범 수용소로 갈 것입니다. 사라진 6시간 동안 어디 가서 무엇을 했는지 어떻게 압니까. 남한 공작원을 만났는지, 탈북 루트를 알아보고 왔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처벌은 더 강한 겁니다.”
 
  해외 북한 식당 종업원들은 대부분 평양에 거주하는 중산층으로 분류된 이들의 자녀로 구성된다. 북한 주민들이 해외 파견을 나가면 북한에서 버는 돈의 몇 배를 벌 수 있다. 이들은 해외 파견 전 철저한 사상교육을 받고 나간다. 북한 정권은 이들을 믿지 못해 감시자로 보위부(국정원 같은 북한의 정보기관) 직원을 파견해 이들을 감시한다. 보위부원은 종업원과 지배인 등을 감시하며 조금만 이상이 생기면 바로 당에 보고한다. 그렇게 될 경우 해당 인원은 북으로 소환되고 죄명에 따라 처벌을 받는다. 북한에서 받는 처벌보다 더 강한 처벌을 받는 게 보통이다.
 
  ― 보고했나요.
 
  “아니요. 보고는 안 했습니다. 더 기다려보고 안 들어오면 보고를 하려고 했죠. 그런데 6시간 만에 나타나서 한다는 얘기가 ‘쇼핑’을 다녀왔답니다. 그때 정말 열이 받아서 종업원들 다 모인 자리에서 뺨을 한 대 때렸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북한으로 소환될까 봐 마음 졸이면서 있는데, 근무시간에 그것도 홀로 쇼핑을 간다는 게 말이 됩니까?”
 
  ― 그 종업원은 이후 어떻게 됐나요.
 
  “다음 날 보위지도원에게 보고하려고 하니 울고불고 사정을 하더라고요. 다 같이 해외에 나와 고생하는데 그 친구의 인생을 망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혼은 내야겠다’ 싶어 북으로 송환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그 친구를 차에 태워 북중(北中) 국경까지 데리고 갔습니다. 그 일을 가지고 지금에 와서 자신을 폭행했다고 나를 고소한 겁니다.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종업원들 사이에서 싸움만 하고, 사고만 치는 그런 친구였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만약 내가 아무 일 없이 그 친구를 때렸다면 나는 이미 북한 당국으로부터 처벌을 받았을 겁니다.”
 
 
 
민변 변호사 고소

 
  ― 또 다른 고소도 있었던 걸로 아는데요.
 
  “중국에서 저와 친했던 조선족이 저를 사기 혐의로 고발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J 변호사가 제 변호를 맡았는데 무죄가 나왔어요. 이 사건도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습니다.”
 
  ― 어떤 점이 의심스럽다는 겁니까.
 
  “저를 생각해주는 척하면서 뒤에선 범죄자로 만들어 다시 북으로 보내려고 했던 거 아닌가 싶어요. 재판이 끝나고 J 변호사가 ‘무죄가 나왔다’며 서류를 보여주더라고요. ‘이제 안심하고 들어와도 된다’면서 회유를 하더군요. 회유가 안 먹히니 협박도 했어요. 참 어리석은 사람이죠.”
 
  ― 최근에 ‘한반도 통일과 인권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을 통해 J 변호사를 고소했다고 하던데요.
 
  “변호사법 위반으로 고소했습니다. 회유와 협박이 안 통하니 J 변호사가 모 방송에 출연해 조선족 사기 혐의 사건의 재판 과정을 얘기했습니다. 당사자의 동의도 없이 자신의 변론 내용을 발설한 거라 변호사법에 걸린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고소했습니다. J 변호사는 해당 방송에서 제가 소송 때문에 ‘미국으로 망명했다’고 주장하더군요.”
 
  ― J 변호사는 어떻게 만난 건가요.
 
  “인터뷰를 했던 그 방송사 기자가 소개해줬어요. 방송사 측이 보상금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니 그 방편으로 민변을 소개해준 거죠. 처음엔 민변 변호사들과 접촉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저희가 국정원 보호하에 있을 당시, 민변이 ‘기획 탈북’이라고 하면서 저희를 북한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죠. 어떤 사람들인지 대강은 알고 있었거든요.”
 
  ― 근데 왜 만났습니까.
 
  “그때는 보상금 받을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한국에 와서 뭔가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하니 너무 화가 나서 보상금을 받을 수만 있다면 뭐든 해야 했습니다.”
 
  ― 배신이요?
 
  “중국을 떠날 때 정보 당국 사람이 한국에 가면 정착을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정작 한국에 오니 그 사람들은 저를 피해 다니더군요. 물론 정권이 바뀌었으니까요. 그래도 너무 한 거 아닙니까? 도와주는 사람은 없고 이용하려는 사람들뿐이다 보니 정말 힘들었습니다.”
 
 
  윤미향, “이산가족 상봉 때 가족 만나게 해주겠다고 회유”
 
중국 류경식당 탈북 종업원들이 2018년 윤미향 당시 정대협 대표의 남편 김모씨 초청으로 경기 안성시 위안부 할머니 쉼터에 초대받아 기념 사진을 찍은 모습이다. 사진=허강일 제공
  ―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어떻게 만난 겁니까.
 
  “J 변호사가 우리 생활이 어려운 것을 알고 ‘매달 30만원씩 후원해주겠다는 단체가 있는데 같이 만나자’고 해서 갔더니 그 자리에 윤미향 의원(당시는 정의기억연대 대표)이 있었습니다. 총 세 번 만났는데, 우리 여종업원들도 같이 갔습니다. 한 번은 정의기억연대 마포 쉼터에서, 다른 한 번은 인근 식당에서 만났습니다. 처음 만나는 날 윤미향 의원이 조총련 사람들을 불렀더군요.”
 
  ― 윤미향 의원 측 사람들이 뭐라고 하던가요.
 
  “윤미향 의원이 ‘2018년 8월에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질 때 종업원 가족을 금강산에 오게 하겠다. 당신들 금강산에 가서 가족들 만나보지 않겠느냐’고 회유했어요. 윤 의원은 ‘우리가 주선을 해주겠다. 어머니들이 기다리는데 가야 하지 않느냐’고 하더라고요.”
 
  ― 윤미향 의원 말의 뉘앙스는 월북보다는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지는 금강산에 가자고 한 것 아닌가요.
 
  “근데 생각해보세요. 금강산도 북한 땅입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북한에서 가족을 만난다고 칩시다. 부모들이야 뻔히 북한 당국의 지시를 받고 나올 텐데 그러면 당연히 북한으로 가자고 하겠죠. 종업원들도 그 사실을 알고 부모들을 ‘서울로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 그런데 어떤 생각으로 처음 탈북을 결심했나요.
 
  “대한민국 정보원으로 일했기 때문입니다. 그게 북한에 알려져서 어쩔 수 없이 탈북을 선택하게 된 거죠.”
 
  ― 종업원들은 어떻게 설득한 거예요.
 
  “종업원들은 남한에 대한 환상이 있었습니다. 중국에서 일하면서 남한 드라마, 영화를 봤고, 태블릿PC를 통해 남한 영화와 노래를 접했으니까요. 눈감아줬죠. 만약 내가 탈북을 하게 되면 이들은 북한으로 송환돼 생사(生死)를 장담할 수 없는 지경에 놓이게 되니, 제가 물어봤습니다. ‘나는 탈북을 할 건데, 내가 떠나면 너희는 소환될 테고 그 이후 너희 목숨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러니 선택해라. 나를 따라오든, 다시 지옥 같은 북한으로 돌아가든지’라고요. 그러자 다 함께 가겠다고 했습니다.”
 
  ― 근데 몇 명은 동의를 안 했다면서요.
 
  “동의를 안 한 것이 아니라 중간에 변심한 거죠. 변심한 이들이 저희를 신고하면서 ‘거사(擧事) 날짜’가 조금 앞당겨져 저를 비롯한 12명의 여종업원이 탈북한 겁니다.”
 
 
  장성택 처형 후 한국 정보원 돼
 
  ― 우리 정보원으로 일한 건 언제부터입니까.
 
  “장성택 처형 때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때 제 친구 5명도 죽었죠. 그 이전부터 북한 정권에 대한 불만이 많았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해외에서 생활하다 보니 현실을 그 누구보다 더 잘 알았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김정은에게 약간의 기대를 했지만, 자신의 고모부를 죽이는 모습을 보고 희망을 접었습니다. 그 이후에 한국 정보원을 소개받았습니다.”
 
  ― 소개받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소개받은 거죠.
 
  “우리 식당에 자주 오는 중국 조선족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한국에도 여러 번 오간 얘기를 하면서 대단히 자랑을 하더라고요. 몰래 이 사람에게 부탁을 했지요. 그렇게 정보원을 처음 만났습니다. 나중에 그 조선족이 ‘제가 남한 정보원을 만났고, 정보를 그에게 준다’고 북측에 고자질하더라고요.”
 
  ― 처음 만난 사람이 국정원 요원이었나요.
 
  “그런 줄 알고 있었죠. 자신도 국정원 요원이라고 소개했고요. 계속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근데 한국에 와서 인권위원회에서 조사받으면서 그가 국군 정보사 요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 정보사 요원이 탈북을 도운 겁니까.
 
  “그렇지도 않아요. 탈북을 도와달라고 부탁하니 우리가 말레이시아까지 오면 책임지고 한국까지 무사히 데려다주겠다고 했어요. 우리가 말레이시아까지 가면 공항에 그가 마중 나와 우리의 길 안내를 하기로 되어 있었어요.”
 
  ― 마중 나와 있었나요.
 
  “마중은커녕 그 뒤로 얼굴도 한 번 못 봤습니다.”
 
  ― 말레이시아에서는 어떻게 움직였나요.
 
  “말레이시아 주재 한국대사관을 찾아가라고 해서 갔는데 문이 잠겨 있었습니다. 아무도 우릴 돌봐주지 않아 밖에서 무리 지어 서 있어야 했어요. 그러다가 국정원 요원이 우릴 데리러 왔고, 그렇게 국정원의 보호를 받게 됐습니다.”
 
  ― 말레이시아까지 오라고 해놓고 그게 말이 되나요.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를 놓고 국정원과 정보사가 마찰이 심했대요. 서로 실적을 챙기려고 했겠죠. 성공만 하면 전대미문의 실적 아니겠습니까. 동시에 북한에 큰 타격을 주는 것이기도 하고요.”
 
 
  “12명 종업원 현재 남한에 적응해 잘 살고 있어”
 
중국 저장성 닝보의 북한 류경식당 종업원들이 공연하는 모습이다. 사진=허강일 유튜브 캡처
  ― 처음엔 15명이 출발한 거로 아는데요.
 
  “네. 저까지 15명이었는데 2명은 끝내 잡히고 우리만 왔죠.”
 
  ― 어쩌다 잡힌 건가요.
 
  “우리는 중국 상대와 함께 식당을 운영했어요. 그런데 종업원 일부가 보위부에 신고하러 가고 막 당시 분위기가 어수선했어요. 그때 중국 상대들이 눈치를 채고 감시를 시작한 거죠. 그래서 한 번에 탈출하긴 어렵다고 생각하고 북한의 유명 가수인 최삼숙의 딸에게 12명을 인솔하고 공항까지 가라고 했죠. 그러고 저와 조장과 종업원 1명이 남았어요.”
 
  ― 중국 동업자들이 눈치 못 챘나요.
 
  “저와 조장이 있으니 우리만 잡으면 된다고 생각했겠죠. 그들을 따라가진 않더라고요. 우리는 식당 앞뒤 문으로 탈출했어요. 서로 다른 택시를 타고 공항에서 만나기로 했죠. 그런데 중국 상대들이 기를 쓰고 쫓아가서 다른 종업원 2명이 탄 택시를 일부러 사고까지 내며 종업원들을 잡았대요. 그렇게 잡힌 거죠. 그 2명 중 한명은 제 아내였습니다.”
 
  ― 아내와 다른 한명은 어떻게 됐나요.
 
  “류경식당을 동업하는 중국인에게 잡혔어요. 그런데 하루 만에 놔주더래요. 그 후 상하이(上海)에 있는 제 친구 집으로 보내 숨어 있게 했습니다. 나중에 한국에 와서 국정원에 이들을 구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아내와 1명은 끝내 북송(北送)됐어요. 이게 아직도 의문입니다. 국정원이 신병을 인도했다고 들었는데, 어떤 경위로 북송됐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 탈북 이후 가족에 대한 소식은 알고 있나요.
 
  “두 번 확인해봤는데 제 친척까지 모조리 처형했다고 하더군요.”
 
  ― 한국에 함께 온 12명의 종업원 소식은 들은 바 있나요.
 
  “다들 대학교부터 갔습니다. 그런데 대학 공부가 어려웠나 봅니다. 8명은 중간에 그만두고 4명은 올해 졸업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중 제일 나이 어린 친구가 먼저 시집을 가 지금 아기를 낳고 잘살고 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친구도 결혼했고, 올해 또 한명이 결혼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할아버지는 북한 부총리였다”
 
  ― 가족에 대해 말해줄 수 있나요.
 
  “저는 엘리트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할아버지는 허용일이라고 항일운동을 한 공(功)으로 부총리까지 했어요. 아버지는 김일성 호위부대인 974부대에서 장교로 일했죠. 그러다 사고로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제대 후 평양외국어대학교 영어학과에서 공부했어요. 이후 아버지는 대성총국(김정일의 지시로 1974년 5월에 설립된 북한의 대표적인 종합무역상사다. 과거 김정일의 비자금 관리를 담당하기도 했다)에서 일을 했어요. 제가 11세 때 온 가족이 러시아로 파견을 나갔어요. 보통 가족 중 한명은 인질로 북한에 남아야지만 우리는 성분이 좋다는 이유로 모두 나갔어요. 러시아에서 생활하다 중국으로 건너갔죠.”
 
  ― 그럼 아버지가 나온 대학에서 공부한 거네요.
 
  “네. 저와 여동생도 평양외국어대학교 중국어 학과를 졸업했어요.”
 
  ― 자서전은 언제 나오나요.
 
  “코로나19 때문에 조금 더 늦어질 것 같아요.”
 
  ― 그럼 자서전을 조금만 소개해주세요.
 
  “책을 팔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자서전에 지금까지 얘기 외 더 많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아마 책이 나오면 다들 놀랄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많이 기대해주세요.”
 
  ― 최근엔 유튜브도 시작했던데, 얼굴 공개가 두렵진 않았나요.
 
  “처음엔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근데 제가 숨어서 살려고 여기까지 온 건 아닙니다. 이젠 이 세상에 저 혼자 남았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두려워했 으면 탈북을 못 했겠죠. 내 가족을 죽인 북한하고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북한을 바꾸고 김정은 정권에 복수하는 의미에서 유튜브를 시작했습니다.”
 
 
  “자유 없으면 죽은 목숨”
 
  ― 아내도 잃고 망명까지 했는데 지난 5년이 후회되지 않습니까.
 
  “솔직히 탈북해서 1년 정도는 후회도 많이 했습니다. 정작 와서 보니 환경도 다르고, 박근혜 대통령도 탄핵당하면서 저의 신변을 보호해주던 사람들도 없어지더라고요. 그리고 당시 저를 데려온 정보기관 사람도 가면 잘해주겠다고 약속까지 했으니 잘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자 나는 범죄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후회가 안 들겠습니까. 그래도 적응하고 지금은 미국에서 살면서 아무리 권력이 있고 돈이 많다고 하더라도 자유가 없으면 죽은 목숨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 자서전 출간 이후 무엇을 할지 계획한 게 있습니까.
 
  “미국에서 조금 더 자리를 잡고 나면 북한 인권과 자유 수호를 위해 앞장서려고 합니다. 제 가족을 무참히 죽인 북한 정권과 맞서 싸우고, 북한 주민들이 해방되는 그날을 위해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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