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정부의 對北 정책 평가, YS는 B, DJ는 B+, 盧는 B-, MB는 B, 朴은 B+, 文은 C
⊙ 6·25전시납북자법 통과됐을 때 학자로서 가장 기뻐
⊙ 4·27 판문점 선언, 추후 顚末 밝히고 책임 물어야
⊙ ‘赤化統一 위험 사라졌다’는 주장은 위험한 주장
⊙ 對北 정책 놓고 政爭 벌이는 순간 北韓의 의도에 휘말리는 것
柳浩烈
1955년생. 경기고,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同 대학원 석사,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대학원 비교정치학 박사 / 前 고려대 강사, 민족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 책임연구원, 통일연구원 기획조정실장,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 북한연구학회 회장, 한국정치학회 회장,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통일준비위원회 정치법제도분과위원장,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 現 고려대 명예교수
⊙ 6·25전시납북자법 통과됐을 때 학자로서 가장 기뻐
⊙ 4·27 판문점 선언, 추후 顚末 밝히고 책임 물어야
⊙ ‘赤化統一 위험 사라졌다’는 주장은 위험한 주장
⊙ 對北 정책 놓고 政爭 벌이는 순간 北韓의 의도에 휘말리는 것
柳浩烈
1955년생. 경기고,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同 대학원 석사,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대학원 비교정치학 박사 / 前 고려대 강사, 민족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 책임연구원, 통일연구원 기획조정실장,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 북한연구학회 회장, 한국정치학회 회장,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통일준비위원회 정치법제도분과위원장,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 現 고려대 명예교수
- 고려대 유호열 명예교수.
언론에서 점잖은 어투로 북한 문제와 남북 관계를 해설해온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유호열(柳浩烈) 교수. 그는 1999년 3월 고려대 세종캠퍼스에서 북한학과 교수를 지내며 후학을 양성했다. 그리고 지난 2월 28일 정년을 맞아 명예교수가 됐다. 기자를 만난 유호열 명예교수는 “북한을 연구한 지 꼭 30년이 됐다”고 했다.
— 북한을 연구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1990년 6월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했습니다. 꼭 30년 전인 1991년 4월, 당시 통일원(현 통일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민족통일연구원(현 통일연구원) 창설 멤버로 참여했습니다. 이때부터 ‘북한’을 연구했죠. 민족통일연구원이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통일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기관이 없었습니다. 동유럽 공산권이 붕괴하고 독일이 통일되면서 당시 한반도에도 통일 분위기가 감돌았죠.”
— 세부 전공은 무엇입니까.
“비교정치입니다. 국가별, 체제별 특징을 비교하는 학문이죠.”
북한은 거대한 정치 실험실
— 비교정치학자에게 북한은 어떤 존재입니까.
“최적의 실험실입니다.”
— 왜 그렇습니까.
“학자들이 가장 고민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핵심 변수를 잘 통제할 것인가’입니다. 정치학자들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북한은 ‘체제’라는 핵심 변수가 아주 잘 통제되는 곳이죠.”
— 북한이 거대한 정치 실험실이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죠. 학문적으로 매우 독특하고 의미 있는 대상입니다. 일부러 만들려고 해도 못 만드는 세상이에요. 체제 연구의 보고(寶庫)죠.”
유 명예교수는 공산주의를 연구할 때 남북한 체제를 비교분석하면 연구의 명확성이 극대화된다고 했다.
“70년 전 남과 북의 출발점은 같았습니다. 각각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택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바로 ‘체제’라는 핵심 변수 때문입니다. 어떤 체제를 택하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죠.”
— 북한 연구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세상에서 가장 폐쇄된 체제니까요. 그렇기에 학자들에게는 연구 대상입니다.”
— 중국과 대만 간의 관계도 남과 북의 관계와 비슷합니까.
“비교가 적절하지 않죠. 이 두 나라는 규모 면에서 워낙 큰 차이가 나 변수 통제도 쉽지 않습니다.”
― 다른 공산권과 비교하면.
“북한만의 독특한 특징이 있습니다. 북한은 6·25전쟁을 치르고 1인 중심의 전체주의적 독재 권력 강화와 세습(世習)을 했죠. 여기에 전통 유교(儒敎) 사상과 봉건적 잔재, 일제 식민지배 경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만들어진 체제입니다. 베트남이나 동유럽이 거쳤던 방식의 개혁·개방은 북한에 적용하기 힘들죠.”
— 학자들이 제시하는 이론과 실제 정책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학문은 이론과 객관적 근거에 바탕하기에 이성적 접근이 중요하죠. 하지만 실무는 어떤 특정한 목표를 갖고 진행하기에 주관적·감정적 요인들이 매우 많이 작용합니다.
어떤 대북 정책은 학문 관점에선 올바르지 않더라도, 여론이나 선거 때문에 정치적으로 집행되는 사례들이 있잖아요.”
일관성 없는 대북 정책이 가장 나빠
— 가장 잘못된 대북 정책은 무엇입니까.
“‘일관성 없는 대북 정책’이 가장 나쁩니다. 정치 환경에 따라 대북 정책이 변할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학자들은 예측할 수 있고 일관성 있는 정책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연구 자료는 어떻게 수집합니까.
“정권과 시대에 따라 변화가 있었죠. 1990년대에는 일본의 조총련을 통해 오는 정보나 자료를 많이 활용했어요. 자극적이었지만 그중에는 고급정보도 있었죠. 일북(日北) 관계 악화 이후 정보가 대폭 줄었죠.”
— 중국발 정보는 어떻습니까.
“정부나 민간 차원의 북중(北中) 채널을 통했기에 자료의 신뢰성이 있지만 정보의 수준이 통제됐습니다. 일정 수준 이상은 공개되지 않아 부족한 부분은 학자들이 추론해가며 채워 넣죠.”
— 탈북자들이 전하는 내용은 어떻습니까.
“대다수 탈북자가 전하는 북한 내부 사정은 단편적이에요. 자기 생각과 전해 들은 것이 혼합돼 정보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 왜 그렇습니까.
“탈북자들의 상당수가 양강도·함경도 출신이에요. 평양과는 멀리 떨어진 곳이죠. 자신들이 경험했던 단편적 사실은 전달할 수 있지만, 태영호 의원(전 주영 북한공사)처럼 이른바 고급 정보를 제공하는 데는 한계가 있죠.”
— 미국발 정보는.
“주로 영상 정보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한 정보입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기에 다양한 채널을 통해 자료를 수집한 뒤 퍼즐을 맞추듯 종합적으로 분석합니다.”
— 자료 수집부터 검증까지 쉽지 않겠습니다.
“꾸준히 관찰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에는 어떠했는데 지금은 이렇다,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 같다’처럼 나름대로 자료를 축적해가며 판단 기준과 근거를 세워나가는 것이죠.”
— 《로동신문》이나 조선중앙TV도 정보의 가치가 있습니까.
“《로동신문》과 조선중앙TV는 대내외 선전을 목적으로 한 체제 선전물입니다. 사실로 간주해서는 안 됩니다. ‘선전으로서의 자료’이기에 확인하거나 검증하기 매우 힘들죠. 그럼에도 옛날 자료와 비교하며, 최소한의 팩트(사실)는 그것 나름의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 언론은 김정은의 연설이나 인민군 열병식을 여과 없이 보도합니다.
“우리 안방에다 적국(敵國)의 선전·선동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인데, 이해할 수 없어요. 비상식적인 체제의 사이비 권위를 무비판적으로 전하는 것이니까요. 관련 내용은 핵심만을 사진 한 장 정도로 소개해도 됩니다.”
北선전물도 연구자료
— 북한의 예술 작품도 정보로서 가치가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저도 북한의 드라마와 영화, 소설을 참고합니다. 북한 당국이 이러한 매체를 통해 대내외적으로 메시지를 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북한의 예술 작품은 사진을 찍듯 전후 사정을 자세히 설명하는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 ‘선전물’에 불과하지만, 꼼꼼히 분석하면 연구 자료가 된다고 했다.
— 북한 작품은 과장이 심하지 않습니까.
“대체로 남한의 드라마나 소설보다는 과장이나 허구성이 덜하죠. 지도자를 높이는 게 엑기스니까요. 지도자를 우상화하는 부분을 제외한 내용은 사실에 근거해야만 의미가 있다고 여깁니다. 오히려 북한의 실상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죠.”
— 어떤 식으로 자료로 분석합니까.
“작품마다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가 있습니다. 이 주제는 북한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정치·사회적 문제죠. 예를 들어 극중에 어떤 지방의 기업소 간부가 자신이 해야 할 업무를 고민하는 부분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를 보고는 ‘북한이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구나’ ‘북한에 지금 이러한 제약이 있구나’를 추론해나가는 것이죠.
여기에 당(黨)이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가는지를 분석합니다. 이 부분이 바로 당의 공식 지도 방침이죠.”
— 북한 예술 작품에도 변화가 있었습니까.
“김일성 시대에는 냉전이 한창이었기에 피아(彼我),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데 초점을 뒀습니다. 상대를 괴물로 그려내고 자신들을 우상화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 김정일은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습니까.
“김정일은 예술적으로 잘 포장해 선전하려고 했죠. 김정일이 ‘종자론’을 말했는데, 핵심은 ‘모든 예술은 그 체제에 대한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주제가 됐든 작품에서 북한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 내지 지도자의 우월성을 표현하려고 했죠.”
— 김정은 시대는 어떻습니까.
“김정일이 영화 중심이었다면, 김정은은 TV 드라마를 중심으로 사실주의·현실주의적 색채를 드러냅니다. 이념적인 색채는 과거보다 옅어졌습니다. 오히려 밖으로 드러내면 창피하거나 부끄러운 사회 모순을 여과 없이 내보내곤 합니다. 너무 노골적이다 싶으면 수위를 조절해나가죠.
개혁의 필요성 때문인지 지도자가 변할 때마다 북한 예술 작품은 색감, 분위기 등이 더 밝고 화려해집니다.”
20여 년간 박사 36명, 석사 66명 배출
— 학자로서 보람찼던 순간이 있으십니까.
“6·25전쟁 납북피해 진상규명 및 납북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6·25납북자법)이 만들어질 때 국회 공청회 등에서 학자로서 많은 의견을 냈습니다. 여야 합의로 법안이 통과될 때는 매우 기뻤죠.
법이 제정된 후에는 민간 위원으로 4년간 활동하며 납북자 문제를 해결하려 애썼고, 어느 정도 매듭을 지었습니다. 통일에 앞서 우리 사회에서 반드시 정리해야 할 문제가 납북자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학자는 자신의 의견이 주장에만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정책으로 실현돼 성과를 낼 때 정말로 보람찹니다.”
— 한국정치학회 회장도 하셨습니다.
“2013년 회장을 맡은 해에 ‘한국정치 세계학술대회’를 개최한 게 기억에 남습니다. 바로 이 자리(고려대)에서 학술대회를 열었습니다. 23개국에서 외국 학자 85명이 한국을 찾았고 총 80여 개 패널이 구성됐죠.”
— 어떤 성과가 있었습니까.
“그동안 한국의 정치학은 주로 미국이나 유럽에서 발전한 이론을 수용해 어떻게 우리 환경에 맞게 적용할지를 고민했습니다.
당시 학술대회에서는 한국 정치학자들이 주도적으로 연구한 새로운 학문적 성과와 한반도 문제를 어떻게 연구할 것인지를 국제 학계에 알리고 공유했죠. 우리 정치학자들이 만들어낸 연구 업적을 세계적으로 알린 기회였습니다.”
— 학자로서 아쉬운 적은 없습니까.
“한국 정치학만이 갖는 고유한 특징이 있습니다. 북한학, 통일 문제, 남북 관계 영역이죠. 이 부문에서 국제 정치학계에 내보일 만한 후속 연구가 지속해서 이어지지 않아 아쉽습니다.”
— 후학도 많이 양성하셨습니까.
“갖은 노력으로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박사 36명, 석사 66명을 배출했습니다. 지도교수로서 100명의 전문가를 키웠죠. 그들은 국가기관, 언론, 학계, 종교계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했습니다.
이 중에는 미국, 일본, 중국, 호주 등지에서 온 외국인도 10여 명 있습니다. 이들이 다시 해외에서 전문가로 활동하죠. 한국의 정치학을 수출한 셈입니다.”
탈북민 지도
— 기억에 남는 제자가 있습니까.
“탈북민을 지도한 게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탈북자들은 북한에서 겪은 일이 트라우마이기에 북한을 다시 공부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공부하다 보면 힘이 들죠. 그때마다 다그쳤습니다. ‘너는 사선(死線)을 넘어오지 않았느냐! 논문을 완성하지 못하면 여기에 더 이상 있을 이유도 없으니 죽을 각오로 쓰라’고 했죠.
그런 제자들이 나중에는 ‘교수님이 엄하게 가르쳐준 덕분에 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탈북자들을 우리 사회의 지식인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습니다.”
— 다독이기보단 채찍질을 하셨군요.
“‘오냐 오냐’ 해서는 안 됩니다. 남북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도와주고 배려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지적할 때는 따끔해야 합니다.”
— 탈북자들은 직접 체험해봤기에 북한을 더 잘 알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북한에서 이들이 공부한 내용은 아주 편협한 내용입니다. 이 때문에 괴리가 발생합니다. 북한에서 배운 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내용을 배우고 발굴해야 하니 많이 힘들어합니다. 빨간 펜을 들고 하나하나 고쳐가며 훈련을 시켰습니다. 영어부터 논문, 자료 해석 등 일반 학생을 가르칠 때보다 몇 배는 힘들어요.”
북한학은 가치 지향적 학문
— 학문은 가치 중립적이어야 하는데, 북한학은 오히려 가치 지향적인 것 같습니다.
“맞아요. 북한학은 뚜렷한 목표가 있습니다. ‘통일’과 ‘북한 변화’를 항상 염두에 둔 가치 지향적 학문이죠. 객관성을 이유로 가치나 지향점을 포기한다면 북한학은 의미 없는 학문이 돼버립니다.”
— 북한학은 특히 좌파와 우파의 접근법이 극명하게 대립하는데.
“그 점은 문제가 되지 않아요. 좌우, 보수·진보 각자의 지향점과 입장이 뚜렷할수록 논쟁과 경쟁은 첨예해지고 북한학은 더욱 발전하기 때문입니다.”
— 주장을 강하게 드러내지 않는 점잖은 학자라는 평이 있습니다.
“항상 역지사지를 생각합니다. 치열하게 논쟁하되 상대방을 존중하면 생각이 달라도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북한 정권에 우호적인 북한 전문가들을 어떻게 보십니까.
“제가 보수적이라고 해서 보수적인 의견만 중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색깔을 떠나 뚜렷한 가치와 이를 설명할 수 있는 근거와 실력을 갖췄다면 높이 평가합니다.”
그는 “‘북한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와 ‘북한은 변했다’는 양 극단의 주장이 뒤섞여 존재하는 실체”라고 설명했다.
— 북한의 학자나 외교관과 교류한 적도 있습니까.
“해외 세미나에 참석해 여러 차례 북한 출신 학자, 외교관들과 숙식도 함께 하며 지내봤습니다. 누구를 만났는지 일일이 다 밝힐 수는 없지만, 자성남 대사(전 유엔주재 북한대사)와도 함께한 적이 있습니다.”
— 학문적 수준은 어떻습니까.
“접할 수 있는 정보가 차단돼 있어 최고위층으로 올라가기 전까지는 자신이 맡은 분야를 제외하고는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철저하게 정보가 차단·운영되는 체제죠. 자신의 지위보다 더 많은 것을 알면 다칠 수 있으니까요. 알아도 말하지 않고, 모르더라도 알려고 하지 않죠.”
北학자, “고용희 모른다”
— 사례가 있습니까.
“2005년도에 북한에서 제일가는 ‘김정숙(김정일의 생모) 연구가’를 만났어요. 이 사람에게 ‘김정일의 아내인 고용희(김정은의 생모)를 아느냐’고 물었죠. ‘전혀 모른다’는 식으로 반응하는 겁니다.”
— 실제로 모를 수도 있지 않습니까.
“‘당신은 북한의 최고지도자인 김일성의 아내는 잘 알면서, 김정일의 아내는 모르냐’는 식으로 되물었죠. 이때는 고용희가 사망한 시점인데도, ‘우리는 모른다’고만 했어요. 정말로 모르는 건지,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확인하지 못했지만요.
반면 자신이 맡은 분야는 오랜 기간 집중해 심도 있고 철저하게 파악합니다. 이 때문에 전문성이란 측면에서는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습니다.”
— 북한의 학자들도 한국의 위상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다 알아요. 세미나할 때 한국이 아시아에서 민주주의가 가장 발전하고, 북한이 가장 아래에 있다는 자료를 보여줘도 아무 말을 못 하죠.
해외에서 지내는 북한 사람들은 영어사전이나 전문서적을 한국 사람들한테 부탁해서 사용하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동영상 재생 프로그램도 곰플레이어를 쓴다고 하고요.”
— 한국 문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한국 문화의 세계적 위상도 비교적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수 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을 이야기하면 좋아했습니다. 다만, 호불호를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을 뿐입니다. 북한에서는 순화교육이나 사상교육을 통해 중화시키려고 하죠.”
평통의 역할
― 박근혜 정부에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평통) 수석부의장을 지냈습니다. 일반인들에겐 낯선 조직입니다.
“헌법 기구로, 대통령이 의장입니다. 자문위원이 국내는 1만6000명, 해외는 4000명으로 구성된 기구죠. 지역협의회도 시·군·구 단위로 228개, 해외에는 110여 개국에 43개가 있습니다. 비판적인 시각과는 달리 의미 있는 활동을 많이 합니다.”
—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자문위원이 물갈이되는 쓸모없는 조직이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오해입니다. 평통은 승자가 독식하는 구조가 아니에요. 정권이 바뀐다고 리트머스 테스트하듯 보수 인사와 진보 인사를 바꿔 넣지 않습니다. 평통은 정권을 초월하는 조직입니다. 분권화돼 있고 자율성이 강합니다.”
— ‘일한다’는 느낌은 없습니다.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많은 활동을 하기에 중앙 무대에 잘 소개되지 않을 뿐입니다. 보혁(保革)이 순수성을 갖고 지역에서 풀뿌리 통일운동을 함께 합니다. 이권보다는 명예를 중시하죠. 해외에 있는 평통은 통일외교, 공공외교에 굉장한 자산입니다.”
그는 민주평통의 1년 예산 규모가 250억원 수준이고, 상근 인력은 70명 정도라고 밝혔다.
유 명예교수는 2017년 평통 회원 2만명이 10달러씩 성금을 모아 미국 워싱턴 한국전기념재단이 추진 중인 6·25전쟁 전사자 명비(名碑) 건립 사업에 20만 달러를 기부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미국산 무기를 더 많이 사는 것보다 한국과 미국이 공유하는 핵심 가치를 강조하는 게 훨씬 더 의미 있는 외교”라면서 “남북통일도 결국 우리가 명분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 이 점에서 평통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역대 정부의 對北 정책 점수
― 역대 정부의 대북 정책을 평가해주십시오.
“교수니까 학점으로 설명하겠습니다. YS는 B, DJ는 B+, 노(盧)는 B-, MB는 B, 박(朴)은 B+, 현 정부는 C입니다.”
— 기준은요.
“대북 정책의 목표가 제대로 설정되었는지, 이행 전략은 적절했는지, 성과가 있었는지를 살펴봤습니다.”
— YS는 왜 B입니까.
“당시는 중국이 지금처럼 부강하지 않았고, 공산권이 붕괴되고 동독이 소멸된 탈냉전 직후라 통일 정책을 펴기에 가장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기회를 못 살렸죠.”
— 김대중 정부의 점수가 높습니다.
“저는 ‘햇볕정책’에 찬성하진 않지만, DJ정부의 대북 정책은 가장 정교했습니다. 정상회담을 최초로 가졌지만 정치적 성과를 실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죠.”
― 노무현 정부는.
“임기 마지막 해에 정상회담을 서둘러서 한 게 오히려 마이너스입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B를 줬을 겁니다.”
― 이명박(MB) 정부는 어떻게 보십니까.
“MB는 극단적으로 갔어요.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이나 천안함 폭침 이후 정책의 융통성이 사라졌죠. 단정적으로 대북 정책을 밀어붙였죠. 공인된 국가기관의 정보보다는 주변에서 전달하는 (주관적) 정보에 많이 의존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정부 차원에서 그런 식으로 정보를 보고할 리가 없거든요.”
― 사례가 있습니까.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권력 교체가 진행될 시점에 북한을 과소평가했어요. 김정일이 살아 있을 때도 ‘아무것도 아니다’ ‘곧 무너질 것이다’는 식의 신중하지 않은 사고를 한 것이죠. 이 때문에 정책 선택의 유연성을 스스로 좁혀버렸죠.”
— 박근혜 정부는 점수가 높습니다.
“원칙을 세워 대북 정책을 추진한 점을 높게 평가합니다. 북한의 DMZ 목함지뢰 도발(2015년) 같은 위기에도 단호하게 대응하고, 개성공단 폐쇄(2016년)까지 결단하지 않았습니까. 일관성이 있었죠. 다만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해 정책이 완결되지 못했습니다”.
“개성공단 폐쇄 불가피”
— 개성공단을 폐쇄할 필요까지 있었습니까.
“불가피한 결단이었습니다. 유엔이 대북 제재를 강화하는 시점이었습니다. 북한이 개성공단의 한국인 근로자 등을 인질로 삼아 활용할 가능성이 컸죠. 정책을 펼치다 보면 선택해야만 할 때가 있습니다. 우유부단한 것보다는 확실한 게 낫죠.
물론 북한의 체제를 변화시키기 위한 일종의 개방 창구 역할도 있기에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이득도 적지 않았다고 봅니다.”
— 박근혜 정부는 ‘통일은 대박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북한을 만만하게 본 것 아닙니까.
“오해입니다. 북한을 쉽게 본 것이 아니라 ‘통일 비용을 걱정하지 말자’는 취지였다고 봅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이 통일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가 ‘비용’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정부에서는 비용 때문에 통일 의지가 약화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죠. 오히려 통일이 가져오는 ‘편익’을 강조하며 ‘통일 비용을 걱정하지 말자’는 ‘자극제’였죠. ‘통일은 대박’이라는 표현도 어느 경제학 교수의 책 제목으로 이미 널리 알려진 내용이고요.”
그는 “통일 비용을 앞세우는 것은 오히려 국민에게 통일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면서 “비용만을 부각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주로 진보적인 이들이 비용을 문제 삼으며 통일에 반대한다”고 설명했다.
— 왜 진보적인 사람은 통일에 부정적입니까.
“우리 식(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으로 통일하기 때문이죠. 독일도 통일 당시에 사회민주당에서는 반대했습니다. 이른바 진보 세력들은 우리가 주도하는 흡수통일을 반대할 겁니다.”
— 남북한의 체제를 반반 섞은 통일은 어떻습니까.
“그럴 필요 없습니다. 지난 70년간 누적된 결과물이 있지 않습니까. 북한 주민들이 정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체제를 강제할 수는 없겠지만, 이들이 어떤 체제에서 살기를 원할까요.”
— 통일이 쉽지만은 않지 않습니까.
“독일 통일 당시 콜 총리가 이런 표현을 했습니다. ‘신(神)이 우리 눈앞에서 지나갈 때 뛰어나가 그 옷자락을 놓치지 않고 잡아챘다’. 독일의 사례를 교훈 삼아 우리도 언제든 통일을 감당할 수 있는 역량과 기반을 만들어놓아야 합니다.”
— 북한 붕괴론은 실체가 있는 주장입니까.
“북한 붕괴론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과거 동유럽이나 소련이 붕괴하기 전까지도 서방 정보기관이나 학자들은 이를 예견하지 못했습니다. 실제 목도(目睹)한 뒤에야 ‘폐쇄된 공산주의 체제는 앞날을 알 수 없다’고 배운 것이죠.
북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일 당장 북한이 무너져도 전혀 이상할 게 없어요. 북한 붕괴론은 북한을 바라보는 여러 경우의 수 중 하나며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화두입니다.”
“현 정부 대북 정책은 역대 최악”
—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은 어떻습니다.
“아직 1년이 남아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은 역대 최악입니다. 북한의 실체를 외면하고, 편향된 이념에 기초한 대북 정책을 벌이고 있습니다. 현 정부의 대북관은 ‘북한은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에 북한을 우호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사고죠. 이는 희망 사항일 뿐입니다.”
— 현 정부 출범 후 큰 대남 군사도발은 사라졌고, 한반도에 평화가 왔다고 합니다.
“가짜 평화, 노예의 평화입니다. 노예는 목숨만 겨우 부지(扶持)하면서 시키는 대로만 할 뿐이죠.”
— 정부의 대북 정책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집단이 있다고 보십니까.
“드러나진 않았지만, 대통령을 좌지우지하는 집단이 존재한다고 봅니다. 대통령에게 특정 대북 프레임(관념)을 주입하는 것이죠. 이들은 과거의 사고방식을 답습한 채 북한에 대한 편향적인 자세와 동맹국을 향한 왜곡된 시선을 갖고 정책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국정농단이죠.”
— 운동권 출신 통일부 장관을 어떻게 보십니까.
“변화하지 않는 운동권 출신은 위험하다고 봅니다. 강산이 벌써 몇 번이나 바뀌었는데도 과거에 사로잡혀 북한의 언동을 선의로만 해석하려고 합니다.”
— 북한의 실체가 드러나고 공산주의는 망했는데도 이들은 왜 생각을 바꾸지 않는 겁니까.
“중국이 재건했기 때문이에요. 운동권의 사상적 기반이 과거에는 김일성이었다면, 이제는 중국 공산당과 시진핑이 됐죠. 1990년대에 들어 자신들이 이상향으로 삼았던 공산주의가 망하자 운동권은 좌절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이 급부상하는 것을 보고 다시 희망을 품게 된 것입니다. 주사파(主思派) 출신들이 김일성에 대한 충성심은 약화했을 수 있지만, 중국을 배경 삼아 공산주의에 대한 신념은 더 강화된 것이죠. 중국 공산당이 이들에게 이념적 정당성을 부여해주니까요. ‘우리가 틀리지 않았다’는 신념을 운동권 출신들에게 불어넣은 것입니다.”
4·27 판문점 합의는 ‘虛構’
유 명예교수는 2018년에 이뤄진 4·27 판문점 합의가 ‘허구’에 기반해 이뤄졌다고 했다. 남북 관계의 핵심은 북한의 비핵화임에도 정작 이를 검증하는 것은 외면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남·미·북이 각자의 이해관계 때문에 서로를 이용했다고 했다.
“우리 정부는 트럼프가 어떤 의도로 미북 대화를 시도하는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트럼프를 호도 내지 이용했다고 봅니다. 트럼프도 한국이 자신을 이용한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고요. 트럼프는 또 재선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갖고 남북한을 이용했습니다. 김정은도 마찬가지입니다.”
— 미국과 북한이 두 차례 만난 것은 어떻게 보십니까.
“문재인 정부는 판문점 합의를 바탕으로 미국에 ‘북한은 비핵화 의지가 있다. 비핵화 방식은 미북 간에 협의한다’고 전했습니다. 그래서 2018년 6월 미국과 북한이 싱가포르에서 회담을 했죠. 하지만 비핵화의 개념과 그 대상을 구체화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양측은 ‘판문점 합의에 기반해 비핵화를 실현한다’는 원론적인 입장만을 내놨습니다.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다시 만나 비핵화의 개념이나 대상을 정의하고자 했으나 각자가 생각하는 비핵화의 정의가 달라 결국 판이 깨져버렸습니다.”
— 누구의 책임입니까.
“이렇게 될 것을 문재인 정부가 미리부터 알고 있었는지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정부가 잘못된 의도를 갖고 미국과 북한을 중재한 것인지, 선의였으나 단지 결과가 나쁜 것인지는 추후 검증해 책임을 묻고 따져야 합니다.”
유 명예교수는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이 불행 중 다행이라고 했다. 미국의 새 행정부가 문재인 정부의 일방통행식 대북 정책을 견제할 것이라고 봤다. 이렇게 되면 정부의 대북 정책 방향도 수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현 정부가 공들여온 종전선언이나 트럼프 행정부 2기에서 주한미군 철수가 실제로 이뤄질까 굉장히 우려했다고 했다.
“현 정부, 통일 기반 허물어버려”
— 미국 등지에서 ‘대북전단금지법’ 제정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내정 간섭 아닙니까.
“2가지 측면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우선 인권입니다. 인권에는 국경이 없어요. 인권은 주권보다 앞섭니다. 또 하나는 전단이 허구성을 폭로하고, 폐쇄된 체제의 구성원을 각성케 하는 도구라는 점입니다. 전단을 날리는 것은 북한 주민들에게 ‘외부에서 계속해서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희망의 표시입니다.
깊숙이 무너진 갱도에 갇힌 이들에게 망치를 두드리며 소리를 내주잖아요.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것이죠. 북한 인권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내부에 외부 소식을 전하는 것은 결코 주권 침해가 아닙니다.”
— 일반 국민들은 대북전단금지법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굉장히 이기적인 겁니다. 접경 지역 주민의 안전을 고려해 전단 살포를 금지한다고 합니다. 정말로 주민들의 의견도 그러한지 의문입니다. 실제로 주민들이 위험하다면 대북전단 살포 방식을 기술적으로 바꾸면 됩니다. 전단금지법은 가치와 정신을 제약하는 악법이자 후진국 법이라는 점을 국민이 알아야 합니다.”
— 민주화운동을 했던 이들이 오히려 북한 인권을 외면합니다.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미국 등 민주주의 선진국에서 한국 사회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면 이들이 민주화운동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작금의 행태는 희생은 치르지 않고 공짜 점심만 먹겠다는 건데,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습니다.”
그는 “현 정부가 비핵화는 말할 것도 없고 남북 관계와 통일 문제 등 지금껏 쌓아온 통일의 기반을 허물어버렸다”고 비판했다.
통일한국 위한 통일외교 필요
— 통일을 위해 주변국과 어떻게 지내야 합니까.
“제2차 세계대전의 책임이 있는 독일은 통일을 하기 위해 전승 4국인 미국·영국·프랑스·소련의 동의가 필요했습니다. 우리에겐 이와 같은 ‘공식 절차’가 요구되진 않지만, 이러한 모양새가 필요합니다. 지속해서 통일외교를 펼쳐 통일한국이 주변국에 이익이 된다는 것을 알려야죠. 중국·러시아·일본은 우리의 통일을 놓고 분명 계산을 할 겁니다.”
— 중국이 가장 큰 반대를 하지 않겠습니까.
“중국은 크게 2가지를 걱정합니다. 통일 과정에서 30만~40만명 규모의 난민이 동북 3성 지역으로 유입하는 것과 주한미군이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진출해 중국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각에선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중국에는 심각한 사안입니다.
북한 붕괴 시 난민을 우리가 전원 수용하겠다는 의지와 역량을 각인시켜나가고 통일 이후 한미동맹의 성격과 주한미군의 역할을 명확히 하는 등 통일한국이 중국에 손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계속해서 확인시켜줘야 합니다.”
— 일본은 어떻습니까.
“과거의 일본은 한반도의 분단된 상태가 자신들에게 가장 큰 이익이 된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통일한국이 자국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 독일통일에서 교훈을 찾는다면요.
“1980년대 서독의 핵심 참모들은 튼튼한 경제력과 나토(NATO) 존속이 동서독 통일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미동맹과 통일을 감당할 수 있는 경제 기반이 있어야 합니다.”
— 북한 내부 봉기의 가능성은 없습니까.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 한미동맹과 남북통일 중 하나만 선택한다면.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통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 속에서 한미동맹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사활(死活)의 문제입니다. 동맹을 포기하는 순간 통일은커녕 국가 존립에도 문제가 발생합니다.”
— 적화통일의 위험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보십니까.
“남아 있죠. 그런 유혹이 없을 수 없습니다. 김정은으로선 강력한 우방인 중국도 옆에 있겠다, 주한미군만 없으면 남한을 무너뜨리고 적화통일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 주한미군을 내보내려고 민족공조니 평화협정이니 주장하잖아요.
‘적화통일 위험은 사라졌다’는 주장 자체가 위험한 주장입니다. 오히려 북한은 핵무기를 바탕으로 차근차근 (적화통일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춰가고 있습니다.”
— 통일부 장관을 해도 잘하셨을 것 같습니다.
“하하, 50대에 했다면 정말 열정적으로 했을 겁니다. 통일을 위한 기반을 조성하는 데 힘썼을 겁니다. 장관은 하지 않았지만, 학자로서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어 좋은 점도 많았습니다. 지금은 마음을 비웠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 퇴임 후 계획이 있습니까.
“지금은 코로나19로 제약이 많습니다만, 한·중·일 학문 공동체를 꾸려나가고 싶습니다. 또 제가 가톨릭 신자입니다. 절두산 천주교순교자 성지에서 자원봉사도 하고 있습니다. 지역사회(종로구)에서 봉사하며 은퇴 이후를 보내고 싶습니다.”
— 후배 북한연구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십니까.
“단순히 정책 자문이나 관념적 주장을 내세우는 학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론과 논리를 바탕으로 학문적 체계를 더 갖춰나가기를 바랍니다.”
국민에게 통일의 당위성 알려야
유 명예교수는 현시점에서 통일의 필요성을 국가적 차원에서 다시금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과거 외국의 학자나 언론은 한국을 찾아와 ‘왜 통일하려고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당시에는 통일이 당위론적 명제였기에 이에 대해 묻거나 답변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해 ‘우문(愚問)’이라 여겼습니다. 그때는 ‘어떻게 통일할 것인가’라는 통일 방안에 초점을 뒀죠. 그로부터 20년쯤 지나 돌이켜보니 이 외국인들의 질문이 현문(賢問)이 돼버렸습니다.
현 정부는 의도치 않았겠지만, 2017년 이후 북한에 대한 국민의 적대감이 높아졌고, 통일에 대한 유보적이고 부정적인 입장도 더 늘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왜 통일을 해야 하는지 국민에게 설명해줘야 합니다.”
— 현 정부에 조언한다면.
“이념과 성향에 구애받지 않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할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을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해서도 안 됩니다. 현실적으로 북한을 바라봐야 합니다. 북한에 끌려다녀선 안 됩니다. 국민 여론 수렴에 소홀해서도 안 됩니다. 실무자들의 역할을 존중해야 합니다. 남은 1년 만이라도 통일 문제를 초당적, 거국적, 범정부 차원의 협치로 풀어나가기를 바랍니다.”
그는 “우리 국민이 북한을 주변국과 함께 비교할 때는 북한의 수준을 객관적으로 인식하지만, 남한과 북한만을 놓고 비교하면 주관적 인식에 빠져들어 북한을 과대평가한다”고 했다.
“남·북·일·중을 놓고 비교하면 북한의 국력(군사력·경제력 등)을 우리의 절반 이하로 봅니다. 하지만 남한과 북한만을 서로 비교하면 북한의 국력이 우리와 대등한 것으로 착각하는 현상이 벌어집니다. 경제력만을 놓고 보면 북한은 우리의 40분의 1 수준에 불과하지만, ‘우리민족끼리’의 함정에 빠져 북한이 실제와는 달리 더 커 보이는 겁니다. 각종 매체를 통해 북한의 주장을 여과 없이 선전하니 국민의 뇌리에 부지불식간에 왜곡된 인식이 자리 잡은 것이죠.”
— 통일을 위해 국민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낙관적, 희망적 사고는 위험만을 부른다는 점과 북한은 선의에 영향을 받아 변화하는 집단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북한은 생존을 위해 지구상에서 가장 현실적인 행동을 하는 집단입니다. 얕봐서도 안 되고, 얕보여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힘을 갖고 단호하게 대응해야만 북한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제 발로 대화와 협력의 장(場)에 나올 겁니다.
대북 정책을 놓고 정쟁을 벌이는 순간 북한의 의도에 휘말려 듭니다. 초당적, 거국적, 범국민적 합의로 대북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해야 합니다.”
— 통일이 되면 북한학은 어떻게 됩니까.
“그 역할을 다했기에 역사의 일부로 편입될 것입니다.”⊙
— 북한을 연구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1990년 6월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했습니다. 꼭 30년 전인 1991년 4월, 당시 통일원(현 통일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민족통일연구원(현 통일연구원) 창설 멤버로 참여했습니다. 이때부터 ‘북한’을 연구했죠. 민족통일연구원이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통일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기관이 없었습니다. 동유럽 공산권이 붕괴하고 독일이 통일되면서 당시 한반도에도 통일 분위기가 감돌았죠.”
— 세부 전공은 무엇입니까.
“비교정치입니다. 국가별, 체제별 특징을 비교하는 학문이죠.”
북한은 거대한 정치 실험실
![]() |
6·25 전시납북자 진상규명 등에 관한 법률안 공청회. |
“최적의 실험실입니다.”
— 왜 그렇습니까.
“학자들이 가장 고민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핵심 변수를 잘 통제할 것인가’입니다. 정치학자들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북한은 ‘체제’라는 핵심 변수가 아주 잘 통제되는 곳이죠.”
— 북한이 거대한 정치 실험실이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죠. 학문적으로 매우 독특하고 의미 있는 대상입니다. 일부러 만들려고 해도 못 만드는 세상이에요. 체제 연구의 보고(寶庫)죠.”
유 명예교수는 공산주의를 연구할 때 남북한 체제를 비교분석하면 연구의 명확성이 극대화된다고 했다.
“70년 전 남과 북의 출발점은 같았습니다. 각각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택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바로 ‘체제’라는 핵심 변수 때문입니다. 어떤 체제를 택하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죠.”
— 북한 연구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세상에서 가장 폐쇄된 체제니까요. 그렇기에 학자들에게는 연구 대상입니다.”
— 중국과 대만 간의 관계도 남과 북의 관계와 비슷합니까.
“비교가 적절하지 않죠. 이 두 나라는 규모 면에서 워낙 큰 차이가 나 변수 통제도 쉽지 않습니다.”
― 다른 공산권과 비교하면.
“북한만의 독특한 특징이 있습니다. 북한은 6·25전쟁을 치르고 1인 중심의 전체주의적 독재 권력 강화와 세습(世習)을 했죠. 여기에 전통 유교(儒敎) 사상과 봉건적 잔재, 일제 식민지배 경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만들어진 체제입니다. 베트남이나 동유럽이 거쳤던 방식의 개혁·개방은 북한에 적용하기 힘들죠.”
— 학자들이 제시하는 이론과 실제 정책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학문은 이론과 객관적 근거에 바탕하기에 이성적 접근이 중요하죠. 하지만 실무는 어떤 특정한 목표를 갖고 진행하기에 주관적·감정적 요인들이 매우 많이 작용합니다.
어떤 대북 정책은 학문 관점에선 올바르지 않더라도, 여론이나 선거 때문에 정치적으로 집행되는 사례들이 있잖아요.”
일관성 없는 대북 정책이 가장 나빠
— 가장 잘못된 대북 정책은 무엇입니까.
“‘일관성 없는 대북 정책’이 가장 나쁩니다. 정치 환경에 따라 대북 정책이 변할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학자들은 예측할 수 있고 일관성 있는 정책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연구 자료는 어떻게 수집합니까.
“정권과 시대에 따라 변화가 있었죠. 1990년대에는 일본의 조총련을 통해 오는 정보나 자료를 많이 활용했어요. 자극적이었지만 그중에는 고급정보도 있었죠. 일북(日北) 관계 악화 이후 정보가 대폭 줄었죠.”
— 중국발 정보는 어떻습니까.
“정부나 민간 차원의 북중(北中) 채널을 통했기에 자료의 신뢰성이 있지만 정보의 수준이 통제됐습니다. 일정 수준 이상은 공개되지 않아 부족한 부분은 학자들이 추론해가며 채워 넣죠.”
— 탈북자들이 전하는 내용은 어떻습니까.
“대다수 탈북자가 전하는 북한 내부 사정은 단편적이에요. 자기 생각과 전해 들은 것이 혼합돼 정보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 왜 그렇습니까.
“탈북자들의 상당수가 양강도·함경도 출신이에요. 평양과는 멀리 떨어진 곳이죠. 자신들이 경험했던 단편적 사실은 전달할 수 있지만, 태영호 의원(전 주영 북한공사)처럼 이른바 고급 정보를 제공하는 데는 한계가 있죠.”
— 미국발 정보는.
“주로 영상 정보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한 정보입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기에 다양한 채널을 통해 자료를 수집한 뒤 퍼즐을 맞추듯 종합적으로 분석합니다.”
— 자료 수집부터 검증까지 쉽지 않겠습니다.
“꾸준히 관찰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에는 어떠했는데 지금은 이렇다,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 같다’처럼 나름대로 자료를 축적해가며 판단 기준과 근거를 세워나가는 것이죠.”
— 《로동신문》이나 조선중앙TV도 정보의 가치가 있습니까.
“《로동신문》과 조선중앙TV는 대내외 선전을 목적으로 한 체제 선전물입니다. 사실로 간주해서는 안 됩니다. ‘선전으로서의 자료’이기에 확인하거나 검증하기 매우 힘들죠. 그럼에도 옛날 자료와 비교하며, 최소한의 팩트(사실)는 그것 나름의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 언론은 김정은의 연설이나 인민군 열병식을 여과 없이 보도합니다.
“우리 안방에다 적국(敵國)의 선전·선동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인데, 이해할 수 없어요. 비상식적인 체제의 사이비 권위를 무비판적으로 전하는 것이니까요. 관련 내용은 핵심만을 사진 한 장 정도로 소개해도 됩니다.”
北선전물도 연구자료
— 북한의 예술 작품도 정보로서 가치가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저도 북한의 드라마와 영화, 소설을 참고합니다. 북한 당국이 이러한 매체를 통해 대내외적으로 메시지를 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북한의 예술 작품은 사진을 찍듯 전후 사정을 자세히 설명하는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 ‘선전물’에 불과하지만, 꼼꼼히 분석하면 연구 자료가 된다고 했다.
— 북한 작품은 과장이 심하지 않습니까.
“대체로 남한의 드라마나 소설보다는 과장이나 허구성이 덜하죠. 지도자를 높이는 게 엑기스니까요. 지도자를 우상화하는 부분을 제외한 내용은 사실에 근거해야만 의미가 있다고 여깁니다. 오히려 북한의 실상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죠.”
— 어떤 식으로 자료로 분석합니까.
“작품마다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가 있습니다. 이 주제는 북한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정치·사회적 문제죠. 예를 들어 극중에 어떤 지방의 기업소 간부가 자신이 해야 할 업무를 고민하는 부분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를 보고는 ‘북한이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구나’ ‘북한에 지금 이러한 제약이 있구나’를 추론해나가는 것이죠.
여기에 당(黨)이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가는지를 분석합니다. 이 부분이 바로 당의 공식 지도 방침이죠.”
— 북한 예술 작품에도 변화가 있었습니까.
“김일성 시대에는 냉전이 한창이었기에 피아(彼我),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데 초점을 뒀습니다. 상대를 괴물로 그려내고 자신들을 우상화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 김정일은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습니까.
“김정일은 예술적으로 잘 포장해 선전하려고 했죠. 김정일이 ‘종자론’을 말했는데, 핵심은 ‘모든 예술은 그 체제에 대한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주제가 됐든 작품에서 북한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 내지 지도자의 우월성을 표현하려고 했죠.”
— 김정은 시대는 어떻습니까.
“김정일이 영화 중심이었다면, 김정은은 TV 드라마를 중심으로 사실주의·현실주의적 색채를 드러냅니다. 이념적인 색채는 과거보다 옅어졌습니다. 오히려 밖으로 드러내면 창피하거나 부끄러운 사회 모순을 여과 없이 내보내곤 합니다. 너무 노골적이다 싶으면 수위를 조절해나가죠.
개혁의 필요성 때문인지 지도자가 변할 때마다 북한 예술 작품은 색감, 분위기 등이 더 밝고 화려해집니다.”
20여 년간 박사 36명, 석사 66명 배출
— 학자로서 보람찼던 순간이 있으십니까.
“6·25전쟁 납북피해 진상규명 및 납북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6·25납북자법)이 만들어질 때 국회 공청회 등에서 학자로서 많은 의견을 냈습니다. 여야 합의로 법안이 통과될 때는 매우 기뻤죠.
법이 제정된 후에는 민간 위원으로 4년간 활동하며 납북자 문제를 해결하려 애썼고, 어느 정도 매듭을 지었습니다. 통일에 앞서 우리 사회에서 반드시 정리해야 할 문제가 납북자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학자는 자신의 의견이 주장에만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정책으로 실현돼 성과를 낼 때 정말로 보람찹니다.”
— 한국정치학회 회장도 하셨습니다.
“2013년 회장을 맡은 해에 ‘한국정치 세계학술대회’를 개최한 게 기억에 남습니다. 바로 이 자리(고려대)에서 학술대회를 열었습니다. 23개국에서 외국 학자 85명이 한국을 찾았고 총 80여 개 패널이 구성됐죠.”
— 어떤 성과가 있었습니까.
“그동안 한국의 정치학은 주로 미국이나 유럽에서 발전한 이론을 수용해 어떻게 우리 환경에 맞게 적용할지를 고민했습니다.
당시 학술대회에서는 한국 정치학자들이 주도적으로 연구한 새로운 학문적 성과와 한반도 문제를 어떻게 연구할 것인지를 국제 학계에 알리고 공유했죠. 우리 정치학자들이 만들어낸 연구 업적을 세계적으로 알린 기회였습니다.”
— 학자로서 아쉬운 적은 없습니까.
“한국 정치학만이 갖는 고유한 특징이 있습니다. 북한학, 통일 문제, 남북 관계 영역이죠. 이 부문에서 국제 정치학계에 내보일 만한 후속 연구가 지속해서 이어지지 않아 아쉽습니다.”
— 후학도 많이 양성하셨습니까.
“갖은 노력으로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박사 36명, 석사 66명을 배출했습니다. 지도교수로서 100명의 전문가를 키웠죠. 그들은 국가기관, 언론, 학계, 종교계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했습니다.
이 중에는 미국, 일본, 중국, 호주 등지에서 온 외국인도 10여 명 있습니다. 이들이 다시 해외에서 전문가로 활동하죠. 한국의 정치학을 수출한 셈입니다.”
탈북민 지도
— 기억에 남는 제자가 있습니까.
“탈북민을 지도한 게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탈북자들은 북한에서 겪은 일이 트라우마이기에 북한을 다시 공부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공부하다 보면 힘이 들죠. 그때마다 다그쳤습니다. ‘너는 사선(死線)을 넘어오지 않았느냐! 논문을 완성하지 못하면 여기에 더 이상 있을 이유도 없으니 죽을 각오로 쓰라’고 했죠.
그런 제자들이 나중에는 ‘교수님이 엄하게 가르쳐준 덕분에 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탈북자들을 우리 사회의 지식인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습니다.”
— 다독이기보단 채찍질을 하셨군요.
“‘오냐 오냐’ 해서는 안 됩니다. 남북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도와주고 배려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지적할 때는 따끔해야 합니다.”
— 탈북자들은 직접 체험해봤기에 북한을 더 잘 알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북한에서 이들이 공부한 내용은 아주 편협한 내용입니다. 이 때문에 괴리가 발생합니다. 북한에서 배운 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내용을 배우고 발굴해야 하니 많이 힘들어합니다. 빨간 펜을 들고 하나하나 고쳐가며 훈련을 시켰습니다. 영어부터 논문, 자료 해석 등 일반 학생을 가르칠 때보다 몇 배는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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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자성남 전 유엔 주재 북한대사와 함께 찍은 사진. |
“맞아요. 북한학은 뚜렷한 목표가 있습니다. ‘통일’과 ‘북한 변화’를 항상 염두에 둔 가치 지향적 학문이죠. 객관성을 이유로 가치나 지향점을 포기한다면 북한학은 의미 없는 학문이 돼버립니다.”
— 북한학은 특히 좌파와 우파의 접근법이 극명하게 대립하는데.
“그 점은 문제가 되지 않아요. 좌우, 보수·진보 각자의 지향점과 입장이 뚜렷할수록 논쟁과 경쟁은 첨예해지고 북한학은 더욱 발전하기 때문입니다.”
— 주장을 강하게 드러내지 않는 점잖은 학자라는 평이 있습니다.
“항상 역지사지를 생각합니다. 치열하게 논쟁하되 상대방을 존중하면 생각이 달라도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북한 정권에 우호적인 북한 전문가들을 어떻게 보십니까.
“제가 보수적이라고 해서 보수적인 의견만 중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색깔을 떠나 뚜렷한 가치와 이를 설명할 수 있는 근거와 실력을 갖췄다면 높이 평가합니다.”
그는 “‘북한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와 ‘북한은 변했다’는 양 극단의 주장이 뒤섞여 존재하는 실체”라고 설명했다.
— 북한의 학자나 외교관과 교류한 적도 있습니까.
“해외 세미나에 참석해 여러 차례 북한 출신 학자, 외교관들과 숙식도 함께 하며 지내봤습니다. 누구를 만났는지 일일이 다 밝힐 수는 없지만, 자성남 대사(전 유엔주재 북한대사)와도 함께한 적이 있습니다.”
— 학문적 수준은 어떻습니까.
“접할 수 있는 정보가 차단돼 있어 최고위층으로 올라가기 전까지는 자신이 맡은 분야를 제외하고는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철저하게 정보가 차단·운영되는 체제죠. 자신의 지위보다 더 많은 것을 알면 다칠 수 있으니까요. 알아도 말하지 않고, 모르더라도 알려고 하지 않죠.”
北학자, “고용희 모른다”
— 사례가 있습니까.
“2005년도에 북한에서 제일가는 ‘김정숙(김정일의 생모) 연구가’를 만났어요. 이 사람에게 ‘김정일의 아내인 고용희(김정은의 생모)를 아느냐’고 물었죠. ‘전혀 모른다’는 식으로 반응하는 겁니다.”
— 실제로 모를 수도 있지 않습니까.
“‘당신은 북한의 최고지도자인 김일성의 아내는 잘 알면서, 김정일의 아내는 모르냐’는 식으로 되물었죠. 이때는 고용희가 사망한 시점인데도, ‘우리는 모른다’고만 했어요. 정말로 모르는 건지,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확인하지 못했지만요.
반면 자신이 맡은 분야는 오랜 기간 집중해 심도 있고 철저하게 파악합니다. 이 때문에 전문성이란 측면에서는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습니다.”
— 북한의 학자들도 한국의 위상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다 알아요. 세미나할 때 한국이 아시아에서 민주주의가 가장 발전하고, 북한이 가장 아래에 있다는 자료를 보여줘도 아무 말을 못 하죠.
해외에서 지내는 북한 사람들은 영어사전이나 전문서적을 한국 사람들한테 부탁해서 사용하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동영상 재생 프로그램도 곰플레이어를 쓴다고 하고요.”
— 한국 문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한국 문화의 세계적 위상도 비교적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수 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을 이야기하면 좋아했습니다. 다만, 호불호를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을 뿐입니다. 북한에서는 순화교육이나 사상교육을 통해 중화시키려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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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미국 워싱턴 한국전 참전기념공원에서 평통 회원들이 미국의 한국전쟁기념재단에 성금을 전달했다. 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유 명예교수. 사진=평통 |
“헌법 기구로, 대통령이 의장입니다. 자문위원이 국내는 1만6000명, 해외는 4000명으로 구성된 기구죠. 지역협의회도 시·군·구 단위로 228개, 해외에는 110여 개국에 43개가 있습니다. 비판적인 시각과는 달리 의미 있는 활동을 많이 합니다.”
—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자문위원이 물갈이되는 쓸모없는 조직이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오해입니다. 평통은 승자가 독식하는 구조가 아니에요. 정권이 바뀐다고 리트머스 테스트하듯 보수 인사와 진보 인사를 바꿔 넣지 않습니다. 평통은 정권을 초월하는 조직입니다. 분권화돼 있고 자율성이 강합니다.”
— ‘일한다’는 느낌은 없습니다.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많은 활동을 하기에 중앙 무대에 잘 소개되지 않을 뿐입니다. 보혁(保革)이 순수성을 갖고 지역에서 풀뿌리 통일운동을 함께 합니다. 이권보다는 명예를 중시하죠. 해외에 있는 평통은 통일외교, 공공외교에 굉장한 자산입니다.”
그는 민주평통의 1년 예산 규모가 250억원 수준이고, 상근 인력은 70명 정도라고 밝혔다.
유 명예교수는 2017년 평통 회원 2만명이 10달러씩 성금을 모아 미국 워싱턴 한국전기념재단이 추진 중인 6·25전쟁 전사자 명비(名碑) 건립 사업에 20만 달러를 기부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미국산 무기를 더 많이 사는 것보다 한국과 미국이 공유하는 핵심 가치를 강조하는 게 훨씬 더 의미 있는 외교”라면서 “남북통일도 결국 우리가 명분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 이 점에서 평통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역대 정부의 對北 정책 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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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과 유호열 명예교수. 사진=뉴시스 |
“교수니까 학점으로 설명하겠습니다. YS는 B, DJ는 B+, 노(盧)는 B-, MB는 B, 박(朴)은 B+, 현 정부는 C입니다.”
— 기준은요.
“대북 정책의 목표가 제대로 설정되었는지, 이행 전략은 적절했는지, 성과가 있었는지를 살펴봤습니다.”
— YS는 왜 B입니까.
“당시는 중국이 지금처럼 부강하지 않았고, 공산권이 붕괴되고 동독이 소멸된 탈냉전 직후라 통일 정책을 펴기에 가장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기회를 못 살렸죠.”
— 김대중 정부의 점수가 높습니다.
“저는 ‘햇볕정책’에 찬성하진 않지만, DJ정부의 대북 정책은 가장 정교했습니다. 정상회담을 최초로 가졌지만 정치적 성과를 실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죠.”
― 노무현 정부는.
“임기 마지막 해에 정상회담을 서둘러서 한 게 오히려 마이너스입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B를 줬을 겁니다.”
― 이명박(MB) 정부는 어떻게 보십니까.
“MB는 극단적으로 갔어요.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이나 천안함 폭침 이후 정책의 융통성이 사라졌죠. 단정적으로 대북 정책을 밀어붙였죠. 공인된 국가기관의 정보보다는 주변에서 전달하는 (주관적) 정보에 많이 의존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정부 차원에서 그런 식으로 정보를 보고할 리가 없거든요.”
― 사례가 있습니까.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권력 교체가 진행될 시점에 북한을 과소평가했어요. 김정일이 살아 있을 때도 ‘아무것도 아니다’ ‘곧 무너질 것이다’는 식의 신중하지 않은 사고를 한 것이죠. 이 때문에 정책 선택의 유연성을 스스로 좁혀버렸죠.”
— 박근혜 정부는 점수가 높습니다.
“원칙을 세워 대북 정책을 추진한 점을 높게 평가합니다. 북한의 DMZ 목함지뢰 도발(2015년) 같은 위기에도 단호하게 대응하고, 개성공단 폐쇄(2016년)까지 결단하지 않았습니까. 일관성이 있었죠. 다만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해 정책이 완결되지 못했습니다”.
“개성공단 폐쇄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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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통 수석부의장 시절인 2016년 1월, 광화문 이순신동상 앞에서 북한 핵 실험 규탄 1인 피켓 릴레이 시위를 하고 있는 유호열 교수. 사진=뉴시스 |
“불가피한 결단이었습니다. 유엔이 대북 제재를 강화하는 시점이었습니다. 북한이 개성공단의 한국인 근로자 등을 인질로 삼아 활용할 가능성이 컸죠. 정책을 펼치다 보면 선택해야만 할 때가 있습니다. 우유부단한 것보다는 확실한 게 낫죠.
물론 북한의 체제를 변화시키기 위한 일종의 개방 창구 역할도 있기에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이득도 적지 않았다고 봅니다.”
— 박근혜 정부는 ‘통일은 대박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북한을 만만하게 본 것 아닙니까.
“오해입니다. 북한을 쉽게 본 것이 아니라 ‘통일 비용을 걱정하지 말자’는 취지였다고 봅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이 통일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가 ‘비용’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정부에서는 비용 때문에 통일 의지가 약화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죠. 오히려 통일이 가져오는 ‘편익’을 강조하며 ‘통일 비용을 걱정하지 말자’는 ‘자극제’였죠. ‘통일은 대박’이라는 표현도 어느 경제학 교수의 책 제목으로 이미 널리 알려진 내용이고요.”
그는 “통일 비용을 앞세우는 것은 오히려 국민에게 통일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면서 “비용만을 부각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주로 진보적인 이들이 비용을 문제 삼으며 통일에 반대한다”고 설명했다.
— 왜 진보적인 사람은 통일에 부정적입니까.
“우리 식(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으로 통일하기 때문이죠. 독일도 통일 당시에 사회민주당에서는 반대했습니다. 이른바 진보 세력들은 우리가 주도하는 흡수통일을 반대할 겁니다.”
— 남북한의 체제를 반반 섞은 통일은 어떻습니까.
“그럴 필요 없습니다. 지난 70년간 누적된 결과물이 있지 않습니까. 북한 주민들이 정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체제를 강제할 수는 없겠지만, 이들이 어떤 체제에서 살기를 원할까요.”
— 통일이 쉽지만은 않지 않습니까.
“독일 통일 당시 콜 총리가 이런 표현을 했습니다. ‘신(神)이 우리 눈앞에서 지나갈 때 뛰어나가 그 옷자락을 놓치지 않고 잡아챘다’. 독일의 사례를 교훈 삼아 우리도 언제든 통일을 감당할 수 있는 역량과 기반을 만들어놓아야 합니다.”
— 북한 붕괴론은 실체가 있는 주장입니까.
“북한 붕괴론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과거 동유럽이나 소련이 붕괴하기 전까지도 서방 정보기관이나 학자들은 이를 예견하지 못했습니다. 실제 목도(目睹)한 뒤에야 ‘폐쇄된 공산주의 체제는 앞날을 알 수 없다’고 배운 것이죠.
북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일 당장 북한이 무너져도 전혀 이상할 게 없어요. 북한 붕괴론은 북한을 바라보는 여러 경우의 수 중 하나며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화두입니다.”
“현 정부 대북 정책은 역대 최악”
—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은 어떻습니다.
“아직 1년이 남아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은 역대 최악입니다. 북한의 실체를 외면하고, 편향된 이념에 기초한 대북 정책을 벌이고 있습니다. 현 정부의 대북관은 ‘북한은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에 북한을 우호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사고죠. 이는 희망 사항일 뿐입니다.”
— 현 정부 출범 후 큰 대남 군사도발은 사라졌고, 한반도에 평화가 왔다고 합니다.
“가짜 평화, 노예의 평화입니다. 노예는 목숨만 겨우 부지(扶持)하면서 시키는 대로만 할 뿐이죠.”
— 정부의 대북 정책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집단이 있다고 보십니까.
“드러나진 않았지만, 대통령을 좌지우지하는 집단이 존재한다고 봅니다. 대통령에게 특정 대북 프레임(관념)을 주입하는 것이죠. 이들은 과거의 사고방식을 답습한 채 북한에 대한 편향적인 자세와 동맹국을 향한 왜곡된 시선을 갖고 정책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국정농단이죠.”
— 운동권 출신 통일부 장관을 어떻게 보십니까.
“변화하지 않는 운동권 출신은 위험하다고 봅니다. 강산이 벌써 몇 번이나 바뀌었는데도 과거에 사로잡혀 북한의 언동을 선의로만 해석하려고 합니다.”
— 북한의 실체가 드러나고 공산주의는 망했는데도 이들은 왜 생각을 바꾸지 않는 겁니까.
“중국이 재건했기 때문이에요. 운동권의 사상적 기반이 과거에는 김일성이었다면, 이제는 중국 공산당과 시진핑이 됐죠. 1990년대에 들어 자신들이 이상향으로 삼았던 공산주의가 망하자 운동권은 좌절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이 급부상하는 것을 보고 다시 희망을 품게 된 것입니다. 주사파(主思派) 출신들이 김일성에 대한 충성심은 약화했을 수 있지만, 중국을 배경 삼아 공산주의에 대한 신념은 더 강화된 것이죠. 중국 공산당이 이들에게 이념적 정당성을 부여해주니까요. ‘우리가 틀리지 않았다’는 신념을 운동권 출신들에게 불어넣은 것입니다.”
4·27 판문점 합의는 ‘虛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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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유엔북한인권사무소 개소 1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축사하는 유호열 평통 수석부의장. 사진=평통 |
“우리 정부는 트럼프가 어떤 의도로 미북 대화를 시도하는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트럼프를 호도 내지 이용했다고 봅니다. 트럼프도 한국이 자신을 이용한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고요. 트럼프는 또 재선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갖고 남북한을 이용했습니다. 김정은도 마찬가지입니다.”
— 미국과 북한이 두 차례 만난 것은 어떻게 보십니까.
“문재인 정부는 판문점 합의를 바탕으로 미국에 ‘북한은 비핵화 의지가 있다. 비핵화 방식은 미북 간에 협의한다’고 전했습니다. 그래서 2018년 6월 미국과 북한이 싱가포르에서 회담을 했죠. 하지만 비핵화의 개념과 그 대상을 구체화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양측은 ‘판문점 합의에 기반해 비핵화를 실현한다’는 원론적인 입장만을 내놨습니다.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다시 만나 비핵화의 개념이나 대상을 정의하고자 했으나 각자가 생각하는 비핵화의 정의가 달라 결국 판이 깨져버렸습니다.”
— 누구의 책임입니까.
“이렇게 될 것을 문재인 정부가 미리부터 알고 있었는지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정부가 잘못된 의도를 갖고 미국과 북한을 중재한 것인지, 선의였으나 단지 결과가 나쁜 것인지는 추후 검증해 책임을 묻고 따져야 합니다.”
유 명예교수는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이 불행 중 다행이라고 했다. 미국의 새 행정부가 문재인 정부의 일방통행식 대북 정책을 견제할 것이라고 봤다. 이렇게 되면 정부의 대북 정책 방향도 수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현 정부가 공들여온 종전선언이나 트럼프 행정부 2기에서 주한미군 철수가 실제로 이뤄질까 굉장히 우려했다고 했다.
“현 정부, 통일 기반 허물어버려”
— 미국 등지에서 ‘대북전단금지법’ 제정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내정 간섭 아닙니까.
“2가지 측면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우선 인권입니다. 인권에는 국경이 없어요. 인권은 주권보다 앞섭니다. 또 하나는 전단이 허구성을 폭로하고, 폐쇄된 체제의 구성원을 각성케 하는 도구라는 점입니다. 전단을 날리는 것은 북한 주민들에게 ‘외부에서 계속해서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희망의 표시입니다.
깊숙이 무너진 갱도에 갇힌 이들에게 망치를 두드리며 소리를 내주잖아요.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것이죠. 북한 인권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내부에 외부 소식을 전하는 것은 결코 주권 침해가 아닙니다.”
— 일반 국민들은 대북전단금지법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굉장히 이기적인 겁니다. 접경 지역 주민의 안전을 고려해 전단 살포를 금지한다고 합니다. 정말로 주민들의 의견도 그러한지 의문입니다. 실제로 주민들이 위험하다면 대북전단 살포 방식을 기술적으로 바꾸면 됩니다. 전단금지법은 가치와 정신을 제약하는 악법이자 후진국 법이라는 점을 국민이 알아야 합니다.”
— 민주화운동을 했던 이들이 오히려 북한 인권을 외면합니다.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미국 등 민주주의 선진국에서 한국 사회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면 이들이 민주화운동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작금의 행태는 희생은 치르지 않고 공짜 점심만 먹겠다는 건데,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습니다.”
그는 “현 정부가 비핵화는 말할 것도 없고 남북 관계와 통일 문제 등 지금껏 쌓아온 통일의 기반을 허물어버렸다”고 비판했다.
통일한국 위한 통일외교 필요
— 통일을 위해 주변국과 어떻게 지내야 합니까.
“제2차 세계대전의 책임이 있는 독일은 통일을 하기 위해 전승 4국인 미국·영국·프랑스·소련의 동의가 필요했습니다. 우리에겐 이와 같은 ‘공식 절차’가 요구되진 않지만, 이러한 모양새가 필요합니다. 지속해서 통일외교를 펼쳐 통일한국이 주변국에 이익이 된다는 것을 알려야죠. 중국·러시아·일본은 우리의 통일을 놓고 분명 계산을 할 겁니다.”
— 중국이 가장 큰 반대를 하지 않겠습니까.
“중국은 크게 2가지를 걱정합니다. 통일 과정에서 30만~40만명 규모의 난민이 동북 3성 지역으로 유입하는 것과 주한미군이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진출해 중국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각에선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중국에는 심각한 사안입니다.
북한 붕괴 시 난민을 우리가 전원 수용하겠다는 의지와 역량을 각인시켜나가고 통일 이후 한미동맹의 성격과 주한미군의 역할을 명확히 하는 등 통일한국이 중국에 손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계속해서 확인시켜줘야 합니다.”
— 일본은 어떻습니까.
“과거의 일본은 한반도의 분단된 상태가 자신들에게 가장 큰 이익이 된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통일한국이 자국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 독일통일에서 교훈을 찾는다면요.
“1980년대 서독의 핵심 참모들은 튼튼한 경제력과 나토(NATO) 존속이 동서독 통일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미동맹과 통일을 감당할 수 있는 경제 기반이 있어야 합니다.”
— 북한 내부 봉기의 가능성은 없습니까.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 한미동맹과 남북통일 중 하나만 선택한다면.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통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 속에서 한미동맹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사활(死活)의 문제입니다. 동맹을 포기하는 순간 통일은커녕 국가 존립에도 문제가 발생합니다.”
— 적화통일의 위험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보십니까.
“남아 있죠. 그런 유혹이 없을 수 없습니다. 김정은으로선 강력한 우방인 중국도 옆에 있겠다, 주한미군만 없으면 남한을 무너뜨리고 적화통일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 주한미군을 내보내려고 민족공조니 평화협정이니 주장하잖아요.
‘적화통일 위험은 사라졌다’는 주장 자체가 위험한 주장입니다. 오히려 북한은 핵무기를 바탕으로 차근차근 (적화통일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춰가고 있습니다.”
— 통일부 장관을 해도 잘하셨을 것 같습니다.
“하하, 50대에 했다면 정말 열정적으로 했을 겁니다. 통일을 위한 기반을 조성하는 데 힘썼을 겁니다. 장관은 하지 않았지만, 학자로서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어 좋은 점도 많았습니다. 지금은 마음을 비웠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 퇴임 후 계획이 있습니까.
“지금은 코로나19로 제약이 많습니다만, 한·중·일 학문 공동체를 꾸려나가고 싶습니다. 또 제가 가톨릭 신자입니다. 절두산 천주교순교자 성지에서 자원봉사도 하고 있습니다. 지역사회(종로구)에서 봉사하며 은퇴 이후를 보내고 싶습니다.”
— 후배 북한연구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십니까.
“단순히 정책 자문이나 관념적 주장을 내세우는 학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론과 논리를 바탕으로 학문적 체계를 더 갖춰나가기를 바랍니다.”
국민에게 통일의 당위성 알려야
유 명예교수는 현시점에서 통일의 필요성을 국가적 차원에서 다시금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과거 외국의 학자나 언론은 한국을 찾아와 ‘왜 통일하려고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당시에는 통일이 당위론적 명제였기에 이에 대해 묻거나 답변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해 ‘우문(愚問)’이라 여겼습니다. 그때는 ‘어떻게 통일할 것인가’라는 통일 방안에 초점을 뒀죠. 그로부터 20년쯤 지나 돌이켜보니 이 외국인들의 질문이 현문(賢問)이 돼버렸습니다.
현 정부는 의도치 않았겠지만, 2017년 이후 북한에 대한 국민의 적대감이 높아졌고, 통일에 대한 유보적이고 부정적인 입장도 더 늘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왜 통일을 해야 하는지 국민에게 설명해줘야 합니다.”
— 현 정부에 조언한다면.
“이념과 성향에 구애받지 않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할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을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해서도 안 됩니다. 현실적으로 북한을 바라봐야 합니다. 북한에 끌려다녀선 안 됩니다. 국민 여론 수렴에 소홀해서도 안 됩니다. 실무자들의 역할을 존중해야 합니다. 남은 1년 만이라도 통일 문제를 초당적, 거국적, 범정부 차원의 협치로 풀어나가기를 바랍니다.”
그는 “우리 국민이 북한을 주변국과 함께 비교할 때는 북한의 수준을 객관적으로 인식하지만, 남한과 북한만을 놓고 비교하면 주관적 인식에 빠져들어 북한을 과대평가한다”고 했다.
“남·북·일·중을 놓고 비교하면 북한의 국력(군사력·경제력 등)을 우리의 절반 이하로 봅니다. 하지만 남한과 북한만을 서로 비교하면 북한의 국력이 우리와 대등한 것으로 착각하는 현상이 벌어집니다. 경제력만을 놓고 보면 북한은 우리의 40분의 1 수준에 불과하지만, ‘우리민족끼리’의 함정에 빠져 북한이 실제와는 달리 더 커 보이는 겁니다. 각종 매체를 통해 북한의 주장을 여과 없이 선전하니 국민의 뇌리에 부지불식간에 왜곡된 인식이 자리 잡은 것이죠.”
— 통일을 위해 국민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낙관적, 희망적 사고는 위험만을 부른다는 점과 북한은 선의에 영향을 받아 변화하는 집단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북한은 생존을 위해 지구상에서 가장 현실적인 행동을 하는 집단입니다. 얕봐서도 안 되고, 얕보여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힘을 갖고 단호하게 대응해야만 북한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제 발로 대화와 협력의 장(場)에 나올 겁니다.
대북 정책을 놓고 정쟁을 벌이는 순간 북한의 의도에 휘말려 듭니다. 초당적, 거국적, 범국민적 합의로 대북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해야 합니다.”
— 통일이 되면 북한학은 어떻게 됩니까.
“그 역할을 다했기에 역사의 일부로 편입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