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民情수석’ 리제강 사망 미스터리

“장성택이 교통사고로 위장해 제거했다”

  • 글 : 곽창렬 월간조선 기자  lions363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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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 紀綱·인사 담당 리제강, 2인자 장성택과 숙명의 경쟁
⊙ 리제강 제거로 장성택 독주체제 개막
지난 6월 사망 사실이 발표된 리제강.
천안함(天安艦) 사태가 일어난 이후인 지난 6월 2일 북한의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은 밤 정규뉴스 시간에 “리제강 북한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교통사고를 당해 2일 0시45분 80살을 일기로 서거했다”고 발표했다. 리제강은 김정일(金正日)의 매제이자 권력서열 2위로 알려진 장성택(張成澤) 국방위원회 부위원장과 오랫동안 권력경쟁을 해 온 인물로 알려져 있다.
 
  1930년생, 올해 80세인 리제강은 왜 죽었을까. 정말 북한 당국의 발표대로 단순 교통사고였을까. 북한에선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의 권세를 지닌 그가 자동차도 몇 대 돌아다니지도 않는 심야에 교통사고를 당할 수 있을까. 북한을 좀 안다 하는 사람들은 그의 죽음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북한 최고위층은 대부분 김정일로부터 하사받은 최고급 벤츠 승용차를 타고 다닌다. 잘 알다시피 벤츠의 안전성은 전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교통사고라는 것을 인정한다 해도 누군가 의도적으로 충돌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사망까지 이르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이다. 아무런 증거도, 증언도 없었다. 기자도 일간신문에서 리제강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그냥 “이상하다”고만 생각했을 뿐 취재에 나설 생각조차 못했다.
 
  6월 7일 북한 방송은 또 하나의 중요한 소식을 전했다. 장성택이 국방위 부위원장에 선임됐다는 뉴스였다. 김정일이 국방위원장인데, 장성택이 그 바로 밑의 부위원장이 됐다는 것은 북한 권력 지도에서 중요한 변화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리제강이 죽은 5일 뒤에 날아든 장성택의 국방위 부위원장 선임?
 
  뭔가 연결고리가 있을 법했다. 정보당국자와 탈북자들에게 탐문을 해보았다. 그러던 중 해외정보기관 관계자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평소 껄끄러운 관계에 있던 장성택과 리제강이 천안함 사건을 두고 갈등을 빚었으며, 밀어붙이려는 장성택과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리제강 사이의 갈등이 중요한 촉매제가 됐다”고 말했다.
 
 
  장성택과 리제강의 긴장관계
 
지난 6월 장성택이 국방위 부위원장으로 임명된 사실을 보도한 북한 방송.
  장성택은 현재 북한노동당 중앙당 행정 및 수도건설부장 겸 국방위 부위원장이며 김정일의 유일한 동복 동생인 김경희(金敬姬)의 남편이다. 김정일의 매제(妹弟)인 것이다. 현재는 당(黨)과 군(軍) 모두에 이름을 올린 실질적인 북한의 2인자다. 장성택이 맡고 있는 노동당 행정부장은 우리의 기무사에 해당하는 국가보위부와 경찰에 해당하는 인민보안성, 사법기관 등 권력기관을 관할하는 자리이며, 수도건설부장은 건설 인력이나 각종 자금 등을 통제하는 자리다. 최근에는 김정일의 후계자인 김정은 옹립작업에 앞장서고 있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현재도 실세지만 김정은 시대에는 그야말로 수퍼 파워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장성택이지만 그에게도 ‘고난의 세월’이 있었다. 바로 2004년이다. 장성택이 실각한 것이다. 정보 소식통과 탈북자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2004년 장성택의 실각은 리제강의 견제 때문이었다고 한다. 리제강은 김정일 와병설이 돌 때마다 장성택과 함께 북한 정권의 실질적인 기둥으로 꼽혀 왔다. 리제강이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된 것은 1973년쯤으로 보인다. 이 자리는 당의 기강(紀綱)을 담당하는 곳이다. 기강이란 명확한 기준 없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일 경우가 많다. 특히 지도자 한 사람의 의중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되는 북한 같은 곳에서 기강은 서슬 퍼런 칼날이 될 수도 있고, 조자룡의 헌 칼이 될 수도 있다. 그의 손에서 인사가 춤을 출 수밖에 없다.
 
  김정일은 이런 리제강과 장성택을 이용해 상호 보완적으로 권력을 통제해 왔다.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정성장 박사의 말이다. “장성택이 도청이나 첩자 등을 통해 은밀하게 정보수집하는 것에 비해 리제강은 노동당 중앙당 조직을 통해 공식적으로 권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면 됩니다. 이 두 가지가 김정일에게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였다고 볼 수 있죠.”
 
  황장엽(黃長燁) 전 노동당 비서는 리제강에 대해 “영리하고 간부사업에 수완을 발휘한다. 그런데 정치적 훈련이 돼 있지 않고, 성격이 독하다”고 평가했고, 장성택에 대해서는 “정치적 수완이 있고, 리더십이 있으며 특히 김정일 밑에서는 정말로 바짝 엎드린다. 절대 김정일 앞에서는 노(NO)라고 하지 않는 성격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들의 관계가 틀어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2003년 발생했다. 바로 장성택이 2인자 행세를 하면서 김정일의 유고(有故)시 뒤를 이을 인물로 지목되면서부터라고 한다. 그 발단은 남한으로 귀순한 황장엽 전 비서였다. 2003년 7월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황씨는 “장성택이 북한의 차기 지도자로 유력하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일 체제가 무너질 경우, 그래도 다음을 이을 사람들이 있는데, 지금으로서는 (김 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이 제일 가깝다”며 “(김정일의 장남인) 김정남하고는 대비가 안된다”고 말했다. 황씨는 특히 당시 장성택이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으로 있으면서 자신의 측근을 요직에 심어놓았다고 말했다. 장성택의 큰형인 장성우는 당시 북한 수도방위를 맡는 3군단장이었고, 작은형도 군단장급이었다.
 
 
  리제강이 장성택 조사 주도
 
  황씨의 발언은 곧바로 다음 날 남한 내 거의 모든 언론사에 대문짝만 하게 실렸고, 곧바로 북한 권력핵심부에도 전해졌다. 북한 내 황씨의 발언을 두고 가장 신경을 곤두세운 사람 가운데 한 명이 바로 김정일 위원장의 후계자로 지목된 김정은의 생모인 고영희(高英姬)였다. 당시 고영희는 자신이 낳은 김정일의 차남 정철과 삼남 정은 중 한 명을 김정일의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혈안이 돼 있었다. 그런데 돌연 장성택 후계자설이 보도되자 상당히 당혹해했다는 것이 고위탈북자들 사이에 정설처럼 돼 있다.
 
  황씨의 발언 전까지만 해도 고영희와 장성택의 관계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한 대북전문가의 말이다.
 
  “원래 고영희는 장성택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장성택이 김정일의 매제니까 고영희 입장에서도 무시할 수가 없었죠. 그리고 장성택이 고영희의 아들인 차남 정철과 삼남 정은의 유학까지 돌봐줬습니다.”
 
  이때부터 고영희가 김정일을 움직여 장성택을 견제했을 것이란 관측이다. 어찌 됐든 리제강이 장성택을 조사했고, 그 결과는 장성택의 직무 정지로 이어졌다. 장성택의 여러 측근도 권력에서 함께 멀어져 갔다.
 
  한 고위 탈북자의 전언이다.
 
  “장성택의 측근 중 한 명이 호화결혼식을 올린 것이 꼬투리가 돼 ‘당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장성택과 측근들이 모조리 숙청당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리제강은 30년 넘게 당 기강, 인사를 주물러 온 사람입니다. 굉장히 노련합니다. 그러니 장성택을 조사하면서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어 김정일을 움직였을 것입니다.”
 
2010년 5월 보전보 전투승리기념탑을 방문한 김정일과 수행한 장성택과 리제강. 원 안이 장성택 그 오른쪽이 리제강.
 
  김경희의 도움으로 장성택 권력복귀
 
  숙청된 장성택은 김정일이 1차 뇌졸중으로 쓰러진 2006년 권력에 복귀했다. 이때 아내인 김경희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김정일 후계체제 전문가인 세종연구소 정성장 박사의 설명이다.
 
  “장성택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인 김경희에게 매달렸기 때문입니다. 장성택-김경희 부부는 한때 사이가 나빴습니다. 그런데 숙청당한 장성택이 권력을 되찾기 위해 아내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렸고, 이때부터 둘 사이의 관계가 좋아졌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장성택과 리제강의 이런 악연 때문에 최근 들어 김정은이 후계자가 되는데 리제강이 누구보다 쌍수를 들어 환영했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한 대북전문가는 “리제강의 입장에서는 장성택이 후계자가 되는 것이 가장 악몽의 시나리오였을 것”이라며 “만약 장성택이 후계자가 됐으면 측근들이 복귀해서 대대적으로 보복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장성택은 복귀 이후 북한 노동당 중앙당 행정 및 수도건설부장 자리에 올랐다. 다시 권력의 중심에 복귀한 것이다. 특히 중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인 리제강과의 껄끄러운 관계 때문에 원래 조직지도부 산하에 있던 행정부도 따로 떼어냈다고 한다.
 
  이후 장성택은 입지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한 대북소식통은 “김정일이 뇌졸중 등으로 심약해지면서 피붙이(동생 김경희)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장성택의 힘이 더 세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며 “김정일의 현지지도 수행을 보면 지난 2009년에는 선전과 선동을 담당하는 김기남 노동당 당비서를 제외하고는 장성택이 가장 앞서고 있고, 올해 6월까지 김경희 다음으로 장성택이 김정일 수행을 가장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성택, 천안함 도발을 리제강과 상의
 
지난 2002년 남한을 방문한 장성택의 모습.
  2009년 들어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의 후계자로 김정은을 선택하고 후계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2010년 3월 중순, 김정일이 심장병으로 위독한 상황까지 간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해외정보기관 관계자에 따르면 중국과 정상회담을 앞둔 김정일은 후계자인 김정은과 함께 중국을 방문하려 했으나 갑자기 심장병이 악화됐다고 한다. 독일인 의사가 급히 북한으로 입국해 치료한 덕에 위기를 넘길 수 있었지만 중·북 정상회담은 김정일이 회복하고 난 5월까지 미뤄졌다.
 
  해외정보기관 관계자의 설명이다.
 
  “김정일이 위독한 상황에서 장성택은 김정일 유고라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해 김정은과 함께 남한 해상 병력을 비밀 선제타격하는 방안을 구상했다고 합니다. 장성택은 이를 대남 담당도 아닌 리제강과 의논했다는 것이지요. 이것부터가 좀 이상하긴 합니다. 리제강은 그러나 장성택의 계획에 대해 ‘그렇게까지 위험한 일을 할 필요가 있느냐’며 이의를 제기했다는 것이지요.”
 
  그의 말을 더 들어보자.
 
  “리제강이 발을 빼자 장성택과 김정은은 더는 주요 기밀을 논의하는 데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는 것 아닙니까. 리제강을 제외하고 김정은과 장성택이 천안함 사건 모의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시나리오에 대해 세종연구소 정성장 박사는 “리제강이 국가 주요 정책 결정에 장성택과 함께 참석했다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고위탈북자들 가운데도 김정은, 장성택, 리제강 등 김정은과 그 옹위세력들이 함께 천안함 사태를 논의했을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장성택, 리제강 교통사고 위장해 제거
 
2006년 권력에 복귀해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장성택(원 안).
  북한에는 유난히 고위층의 교통사고가 자주 일어난다. 이걸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사람은 조명시설이 잘 돼 있지 않고 도로사정이 여의치 않은 곳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평양에 가 본 사람은 이런 ‘과학적 설명’을 ‘심증(心證)’으로 부정한다.
 
  김정일의 총애를 받았던 김용순(金容淳) 전 북한 노동당 대남비서도 2003년 6월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것이 북한 측 발표다. 그러나 대북전문가들은 권력투쟁과정에서 교통사고로 위장된 것뿐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평양의 경우 차량 통행이 많지 않고, 조명도 어둡지 않은 편이어서 교통사고 자체가 별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증거로 들었다. 물론 평양의 하루 교통사고나 사망, 부상자수가 집계되는 것도 없으니 누구도 자신 있게 뭐라 얘기할 수는 없는 형편이다.
 
  한 대북방송은 리제강의 사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리제강 부부장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것은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이상한 무엇이 있습니다. 리제강을 죽여야 하는 세력이나 사람은 후계자로 지명된 김정은 세력일 수도 있고 아주 오랫동안 맏아들 김정남과 친했던 장성택일 수도 있습니다.”
 
  해외정보기관 관계자의 얘기다.
 
  “리제강은 장성택 일당에 의해 살해당했으며 북한은 이를 교통사고로 위장해 발표했습니다. 리제강은 지난 6월 2일 김정일이 제963군부대를 시찰할 당시 수행했습니다. 이때 장성택은 자신이 통제하고 있는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수행인원 4명을 시켜 리제강을 살해한 것이지요. 장성택은 아마도 과거 자신의 숙청에 깊이 관여하고, 천안함 공격에 반대했던 리제강을 더 이상 놔둬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사건 이후 장성택과 김정은이 북한 대부분의 권력기관을 장악해 가는 과정을 보면 이 정보가 틀린 것이 아님을 확신하게 됩니다.”
 
  국내 정보기관 관계자도 “장성택과 김정은은 2012년 권력 승계를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자신들에게 방해될 만한 인사를 추려내 올해 하반기부터 대대적인 숙청작업에 들어갈 것이라는 첩보가 있다”고 말했다.
 
 
  리제강 사망 이후 장성택 독주 계속될 듯
 
  한 대북소식통은 “김정일이 지금 현 시점에서 갑자기 사망하면 권력 승계작업 중인 김정은을 제대로 돌봐줄 사람은 장성택밖에 없다”며 “그 때문에 앞으로는 장성택 시대가 활짝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리제강이 장성택 세력에 의해 살해당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권력투쟁이라기보다는 자신을 숙청시켰던 과거 경력에 비추어 아예 불씨를 없앤다는 측면이 크다고 주장했다. 특히 김정일이 지난 6월 장성택을 국방위 부위원장으로 앉혔다는 것은 김정은 후계를 장성택에게 맡긴다고 봐야 하며 더욱 힘을 실어주기 위한 의도라는 것이다.
 
  세종연구소 정성장 박사는 나아가 김정은의 권력 승계 이후 장성택은 더 승승장구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 박사는 “지금 분위기로 보면 김정은이 후계자가 돼도 대외관계는 장성택이 담당할 공산이 크다”며 “이럴 경우 내치(內治)는 김정은, 외치(外治)는 장성택으로 구도가 짜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정 박사는 그 근거로 특히 김정은이 대외문제에 약하다는 점을 들었다. 앞으로 장성택의 움직임과 역할이 북한 문제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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