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보수층의 최신 動向] ‘한반도 자유통일 지원론’ 등장

김정일 정권의 납치자 문제에 韓日 兩國民이 공동 대응하는 과정에서 생긴 귀중한 自覺

  • : 조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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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씨와 일본인 피랍자 다구치 야에코의 아들 이즈카 고이치로 씨의 만남은 일본 내에서 한국자유통일지원론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지난 5월 초, 도쿄에서 일주일간 머물다 왔다. 이럴 때마다 느끼는 점이 있다. 서울과 도쿄의 隔差(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서울의 거의 모든 건물이 도쿄에 비해 작고, 허술하고, 美的(미적)인 면에서 떨어진다. 도쿄에선 지난 10년간 都心(도심) 재개발과 대규모 건축이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롯폰기 힐, 미드 타운 등 세계적인 高層(고층)복합건물이 수십 개 들어섰다.
 
  롯폰기 힐은 54층의 主(주)건물을 중심으로 하여 여러 부속 건물 안팎에 쇼핑센터, 공원, 호텔, 아파트, 방송국, 미술관, 전망대 등을 모아 하나의 도시를 이루었다. 아마 常住(상주) 인원이 수만 명일 것이다. 新(신)도시 하나를 수직으로 올린 개념이다. 신주쿠에 세워진 도쿄都廳舍(도청사)도 40층이 넘는 어마어마한 건물이다.
 
  이런 개념의 도심 재개발이 성공하는 바람에 舊式(우리나라 식이기도 하다)의 신도시 개발은 인기가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방송국이 都心(도심) 재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특징이다. 롯폰기 힐에는 아사히 TV, 오다이바에는 후지 TV, 아카사카에는 TBS 등등.
 
 
  수직적 도심 재개발
 
  도쿄가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것은 돈의 힘이다. 일본이 작년 말 현재 해외에 보유하고 있는 資産(자산)은 610조 엔, 약 6조 달러다. 일본의 對外(대외) 채무는 약 330조 엔, 약 3조3000억 달러다. 대외 채권액에서 대외 채무를 뺀 純(순)대외채권은 3조 달러에 육박한다. 이는 한국 한 해 총생산의 배 이상 되는 액수다.
 
  일본은 16년째 세계 최대의 대외 채권국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지구촌에서 일본은 최대의 채권국이고 미국은 최대의 채무국이다. 美·日(미·일)동맹은 최대 채권국과 최대 채무국 사이의 짝짓기다.
 
  2006년의 경우 일본은 대외투자에 의한 이자소득으로 약 1300억 달러를 벌었다. 이는 상품과 용역수출로 얻은 무역흑자 730억 달러의 두 배가량이나 됐다. 일본은 제조업 국가로 알려져 있으나 상품을 팔아서 번 이득보다 훨씬 많은 이득을 대외투자에서 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본의 財力(재력)이 불황기에 도시 재개발에 투입됐다. 돈의 실력에다가 일본인 특유의 섬세함과 철저함, 청결함, 그리고 디자인 실력이 가세하니 도쿄가 ‘크고도 아름다운 도시’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18세기 도쿠가와 幕府(막부) 시절에 이미 인구 100만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컸던 도시가 도쿄다. 2차대전이 났을 때는 런던, 도쿄, 뉴욕이 세계 3대 도시였다. 지금 도쿄都(도)는 인구가 1300만명이지만, 인근 요코하마, 가와사키 지역까지 포함한 도쿄권에는 3500만명이 산다. 인구 및 생산력에서 세계 최대의 도시권이다.
 
  한국도 수평적인 신도시 개발을 再考(재고)하고 도쿄식의 都心(도심)복합고층건물에 의한 수직적 재개발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고층복합건물을 하나의 신도시로 보는 개념을 도입하여 개발할 경우, 교통량, 오염물질 배출량이 줄어든다. 수평적으로 개발하여 자연에 넓은 영향을 주는 것보다는 고층화가 오히려 親(친)환경적이라고 한다.
 
 
  일본의 都心 시위 목격기
 
  지난 5월 3일은 일본의 헌법기념일이었다. 자유민주당(자민당) 등 일본 右派(우파)는 헌법개정 필요성을 역설했고, 공산당과 勞組(노조)를 비롯한 左派(좌파)는 헌법개정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도쿄의 히비야 공원에서 대중집회를 가진 좌파가 긴자(銀座) 부근에서 가두시위를 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일본공산당, 노조, 기독교 단체, 평화운동 단체, 환경단체, 사회당 등이 참여한 시위는 시종일관 평화적으로 진행됐다. 행인과 차량에 전혀 폐를 끼치지 않는 도심시위였다.
 
  경찰은 시위대에 人道(인도)와 車線(차선) 하나를 내주었다. 시위대는 가로로 두세 명이 서서 행진했다. 배치된 경찰관은 시위대 100m당 한두 명이었다. 긴 곤봉을 찬 진압경찰이 드문드문 보였다. 시위대의 중간중간에서 마이크를 장치한 차량이 구호를 선도했다. 시위대는 男女老少(남녀노소)가 고루 섞여 있었다.
 
  “헌법을 지키자” “힘을 버리고 사랑으로 평화를” “헌법 9조 개정 반대” 등의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걸어가는 행렬은 끝없이 이어졌으나 살벌하지도 추잡하지도 않았다.
 
  시위대의 표정도 놀러 나온 사람들처럼 밝고 여유가 있었다. 한국의 親北左翼(친북좌익)이 보여주는 증오와 원한 서린 표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마이크를 잡고 구호를 선창하는 사람은 전부가 여성이었다. 앙칼진 목소리가 아니고 교양 있는 목소리였다. 사람들을 격앙시키기보다는 호소하는 스타일이었다. 경찰은 골목에서 마이크를 들고 선동하는 두 사나이를 에워싸고 지켜보기만 했다. 두 사람은 연방 경찰관들에게 절을 하면서 구호를 외치곤 했다.
 
  시위대를 구경하는 行人(행인)은 많지 않았다. 서양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는 정도이고, 신문과 방송도 이 도심시위를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
 
  이런 일본이지만 1960, 70년대의 시위는 지금의 한국만큼 과격했다. 월남전 반대를 명분으로 내걸고 極左派(극좌파)가 폭력시위를 하고, 나중에는 기업체 빌딩을 폭파했으며 내부 투쟁으로 참혹한 살육극을 벌이기도 했다. 도쿄대학은 극좌파의 시위로 학교 기능이 마비되어 1년간 신입생 모집을 중단했다.
 
  과격하던 시위가 온순하게 된 데는 언론과 여론의 외면과 엄격한 처벌, 그리고 공산권의 몰락 등 여러 이유가 있었다. 일본 시위대가 한국에서처럼 쇠파이프를 들고 경찰관을 때렸다가 구속 기소되면 판사들은 징역 3~5년을 예사로 선고한다. 한국의 촛불난동 재판 담당 판사들은 공무집행방해죄로 기소된 폭력 시위자들을 집행유예로 풀어 주는 경우가 많다.
 
 
  “김정일을 국제형사재판소에 고발하자”
 
북한에 납치된 요코다 메구미의 어머니 요코다 사키에 씨.
  기자는 지난 5월 6일 도쿄의 히비야 공원 內(내) 공회당에서 열린 ‘납치피해자의 조기 구출을 요구하는 국민대집회’에 한국 측 演士(연사)로 참여했다. 납치가족회, 구출회, 그리고 이들을 지원하는 의원연맹이 공동주최한 年例(연례)행사였다.
 
  지난 3월 11일 부산에서 金賢姬(김현희)씨를 만났던 다구치 야에코(납북된 일본 여성-이은혜) 씨의 아들과 오빠도 참석했다. 가와무라 관방장관, 히라누마 의원연맹회장, 나카가와 前(전) 재무장관 등 정치인들도 많이 나왔고 한국에서도 6·25전쟁 납북자 및 戰後(전후) 납북자 단체 대표들이 참석했다.
 
  일본정부는 납치문제대책본부를 설치, 총리가 본부장을 맡고 관방장관이 副(부)본부장이다. 일본정부와 與野(여야) 정당이 합세하여, 한국에 비교하면 숫자가 많지 않은 납북자들의 귀환을 위하여 애쓰고 있는 모습을 보고 부러워하는 이들은 한국인 납북자 단체의 인사들이었다.
 
  이날 기자는 이런 요지의 연설을 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2년 전 선거를 통해 북한정권의 反인류적 범죄행위를 묵인해 온 좌익정권을 퇴장시키고 李明博(이명박) 정부를 출범시켰습니다. 전통적인 韓·美·日(한·미·일) 동맹관계도 복원되고 있습니다. 좌파정권 시절 북한정권 손에 들어갔던 연평균 10억 달러어치의 돈과 물건도 이젠 끊겼습니다. 이명박판 對北(대북) 경제제재가 작동하고 있습니다. 북한 인권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공조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미국, 미국과 일본의 동맹은 형식상 군사동맹이지만 그 핵심가치는 人權(인권)입니다. 군사동맹이자 인권동맹인 것입니다.
 
  대한항공기 폭파범 김현희씨와 납치된 다구치 야에코 가족의 만남도 한국의 정권교체가 준 선물입니다. 지난주에는 두 나라 정부의 당무자와 김현희씨의 만남이 이뤄졌습니다. 두 나라 민간인끼리의 협력과 두 나라 정부 사이의 협력이 한 덩어리가 될 때 북한정권에 가해지는 힘이 커질 것입니다.
 
  10여 년 만에 다시 입을 열기 시작한 김현희씨는 金正日(김정일)의 심장을 겨누는 비수가 될 것입니다. 그녀는 인터뷰 등을 통해 세 가지 중요한 증언을 했습니다.
 
  첫째, 동료 공작원 김숙희가 납치되어 온 요코다 메구미 양으로부터 일본어를 배웠다. 둘째, 사망했다고 발표된 다구치 야에코 씨는 살아 있다고 확신한다. 셋째, 자신에게 중국어를 가르친 사람은, 일본의 납치자 구출회가 3년 전에 마카오에서 납치됐음을 확인한 바 있는 미스 孔(공)이란 여성이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구출회가 구한 미스 공의 납치 전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김현희씨는 ‘바로 이 여성으로부터 중국어를 배웠다’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마카오는 중국령이므로 중국도 납치 피해국이란 뜻입니다. 중국도 더 이상 김정일 독재정권을 감싸지 말고 북한 인권문제 해결에 동참해야 합니다.
 
  김정일 자신이 대량살상무기, 즉 WMD(Weapon of Mass Destruction) 그 자체입니다. 따라서 김정일 개인을 압박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핵심전략이 되어야 합니다. 김정일이 다이어트를 하도록 해야 북한주민들이 배불리 먹게 될 것입니다. 같은 이치로 김정일이 정신적, 육체적 위협을 느낄 때만이 납치자 문제도 해결될 것입니다.
 
  한국과 일본과 미국의 정의로운 사람들이 힘을 합쳐 김정일을 국제형사재판소에 고발하여 체포명령이 떨어지게 해야 합니다. 수십만 명을 인종 청소했다고 수단의 현직 대통령을 反(반)인륜 범죄자로 규정하여 체포에 나선 국제형사재판소라면 수백만 명의 인명 손실에 책임을 져야 할 김정일을 그냥 두지는 않을 것입니다. 부족한 것은 법과 논리가 아니라 용기와 결단입니다.
 
  김정일을 斷罪(단죄)하는 것 이상의 정의는 없습니다. 한국과 일본과 미국, 그리고 인류의 이름으로 그를 국제형사재판소에 고발하여 법정에 세우는 운동을 전개합시다.”
 
 
  “일본이 한반도의 자유통일 지원하자”
 
  이날 요코다 메구미 씨의 어머니 요코다 사키에 씨가 연설했다. 납치자 송환 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요코다 사키에 씨는 울먹이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 딸이 중학생 때 납치됐는데, 김현희씨의 증언에 의하면 동료 공작원 김숙희에게 일본어를 가르쳤다고 합니다. 나는 그 아이를 기를 때 벌레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하도록 가르쳤습니다. 그런 아이가 공작원을 양성하는 무서운 일에 참여하고 있다니, 정말 원통합니다.”
 
  메구미 양은 어릴 때 언덕길을 올라가는 할아버지의 짐을 들어 주고 받은 사과를 가져와선 “이런 걸 받아도 되는지…” 하고 얼굴이 발개졌었다고 한다.
 
  賢母良妻(현모양처)의 표상 같은 70대 할머니의 호소에 場內(장내)가 숙연해졌다. 이 대회 참석자들은 결의문을 채택했다.
 
  1. 김정일 정권은 모든 납치 피해자를 보내라!
 
  2. 일본정부는, 납치문제를 이유로 추가 제재를 발동하여, 사람, 돈, 물건의 흐름을 저지하라!
 
  3. 미국정부는,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고, 금융제재를 재발동하라. 한국정부는, 납치문제 해결에 진지하게 임하고, 납치문제 해결 때까지 對北(대북) 지원을 중지하고 제재를 가하라!
 
  필자는 이번 도쿄 방문 중 이명박 정부가 김현희-다구치 야에코 가족 만남을 허용한 것이 한일관계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일본인 납치자 문제를 계기로 일본의 世論(세론)과 정부 및 국회가 反(반)북한정권으로 돌아섰으나, 한국의 좌파정권이 북한인권 문제를 무시하는 것을 보고는 親(친)한국적으로 가지도 않았다.
 
 
  북한 완충지대론
 
지난 5월 6일 일본 도쿄의 히비야공회당에서 열린 ‘일본인납치자 조기송환촉구 국민대회’에서 연설하는 니시오카 쓰토무 납치자구출회 회장代行.
  작년에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고 나서부터 일본 보수층의 시각이 서서히 바뀌고 있다. “일본이 한국 주도에 의한 한반도의 자유통일을 지지해야 한다”는 말도 나오기 시작했다. 일본인 납치자 구출회 회장 대행으로 있는 니시오카 쓰토무 씨는 대표적인 자유통일 지원론자다. 그는 일본인 납치자 문제도 궁극적으로는 북한정권의 붕괴에 의해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정권을 붕괴시키는 길은 한국의 자유통일 정책을 일본이 지원하는 것이다. 문제는 한국정부가 자유통일의 의지를 확실히 하지 않으므로 일본이 지원하고 싶어도 창구가 없다는 점이다.
 
  일본 보수층에서 대두되는 자유통일 지원론은 反(반)김정일 감정과 함께 중국 경계론의 연장선상이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시험을 한 것을 계기로 한·미·일 共助(공조)와 북한의 對中(대중)의존이 대조적으로 드러났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중국은 유엔 안보리의 對北(대북)제재 결의안 채택을 저지하는 등 국제사회의 압박에 제동을 걸었다. 중국이 북한 편을 드는 한 核(핵)과 미사일 문제, 북한인권 문제도 해결될 수 없고, 6자회담은 실패할 것이라는 인식이 한국과 일본 보수층에서 퍼지고 있다. 중국의 협조 없이는 북한정권에 대한 군사적, 경제적 압박이 효과를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국은 북한을 緩衝(완충)지역으로 본다. 한·미·일의 영향력이 중국으로 北上(북상)하는 것을 북한이 막아 주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대화를 거부하는 북한에 대해 식량 및 비료 지원을 중단하고 남한 관광객 피살사건이 나자 금강산 관광도 중단시켰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엔 한국 쪽에서 연간 약 10억 달러어치의 금품이 북한으로 들어갔었다. 한·미·일로부터의 원조가 줄어든 만큼 북한은 중국에 더 의존하게 됐다. 중국은 延命(연명)할 정도의 물자지원만 하여 김정일 정권을 조종하려 한다.
 
  요사이 東北亞(동북아)는 7세기 말 신라가 한반도를 통일할 때의 정세와 비슷하다. 신라는 唐(당)과 연합하여 백제,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倭(왜)의 백제부흥군 지원을 白村江(백촌강) 해전에서 좌절시키는 과정에서 당나라의 목표가 한반도 전체의 屬國化(속국화)임을 간파하고 對唐(대당)결전을 준비한다.
 
  신라는 한때 敵對國(적대국)이었던 일본이 당을 편들어 신라의 배후를 공격하지 않도록 對日(대일) 외교공세도 폈다. 서기 670년부터 6년간 신라가 당과 싸울 때 天武天皇(천무천황)의 일본은 신라에 우호적 중립을 견지했다.
 
  일본은 그때 당의 침략을 두려워하여 北(북)규슈 등 여러 곳에 방어시설을 만들고 있었다. 한반도에서 신라가 이기는 것은 이런 당의 대일 침략을 근원적으로 막아 주는 방파제를 건설하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신라와 일본의 對中(대중) 전략판단이 일치했던 약 50년간 두 나라의 관계는 매우 좋았다.
 
  헌법 등에 명시된 한국의 국가목표는 ‘통일되고, 강력하며, 자유롭고, 번영하는 나라 건설’이다. 한국인들은 주변국가들 중 미국만이 이에 동의하고 일본과 중국은 반대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이 한국의 국가목표인 한반도 자유통일에 동의한다면 한·미·일 관계는 ‘전략적 자유동맹’으로 격상되어 중국과 북한에 대한 견제와 압박을 加重(가중)시킬 것이다. 세 나라는 이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정치이념을 공유하고 있으므로 전략적 이해관계를 일치시키기도 쉽다.
 
 
  일본인의 한국 멸시 뿌리는 신라와 백제의 영향
 
〈이웃나라에서 생각한 것〉이란 저서를 발간한 외교평론가 오카자키 히사히코 씨.
  盧泰敦(노태돈)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최근에 나온 <삼국통일전쟁사>에서 亡國(망국)의 恨(한)을 품고 일본으로 망명한 백제인들이 일본의 正史(정사)인 <日本書紀(일본서기)>를 쓰는 데 직간접으로 관계하여 신라를 부정적으로 보는 역사관을 일본인들의 마음속에 심었고, 이것이 지금의 한일 갈등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취지의 記述(기술)을 하고 있다.
 
  필자도 수년 전부터 이와 비슷한 글을 써 왔다. 오늘의 한일 갈등, 그 深層(심층)에는 신라와 백제의 갈등이 깔려 있다는 의미였다. <일본서기>는 8세기 초에 간행된 일본 최초 정사(일본 정권이 편찬한 공식 역사서)이므로 이 책에서 기술한 부정적인 新羅觀(신라관)은 그대로 일본에서 국가적, 국민적, 공식적 신라관-한국인관으로 굳어졌다는 이야기다.
 
  대사 출신의 외교 평론가인 오카자키 히사히코(岡崎久彦) 씨는 1970년대 한국주재 일본대사관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다. 그는 <이웃나라에서 생각한 것>이란 책을 썼다. 그는 이 책에서 ‘백제의 亡靈(망령)’이란 표현을 했다.
 
  <일본과 신라 사이의 안티파시(antipathy·뿌리 깊은 증오심) 속에는 신라와 백제의 近親(근친)증오적인 안티파시가 그대로 들어가 있다는 느낌이다. 즉, 신라의 일본에 대한 경계심 속엔 백제에 대한 경계심이 섞여 있고, 일본의 신라에 대한 감정적 혐오 속에는 백제계 遺民(유민)의 영향이 짙은 일본 조정의 신라 혐오라는 요소가 크게 작용한 것은 아닐까?
 
  古代史(고대사)를 읽으면 일본과 백제의 근친관계는 뭔가 이상할 정도로 역사의 뒤편에 감춰진 사실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가 戰前(전전)에 소학교 때 배운 상식도 그러했다. 백제는 일본에 문자와 불교를 전해준 좋은 나라이고, 신라는 熊襲(웅습·규슈 남부의 미개 부족)의 오야붕(두목) 같은 나라로서, 일본이 공격하면 즉시 항복하여 충성을 맹세하는 나라로 묘사되어 있었다.
 
  사람에 따라선 일본 조정의 書記(서기) 등은 모두 백제계 인물이므로, 역사 등도 백제에 유리하도록, 신라는 나쁜 것으로 기록하여, 일본인의 조선인 멸시는 백제계 사람들의 신라 멸시에서 시작됐다는 주장을 하는 이도 있다. <일본서기>에는 百濟記(백제기), 百濟新撰(백제신찬), 百濟本記(백제본기)라는,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 백제의 古記(고기)를 여러 군데서 인용하고 있는데, 이것들도 文體(문체)를 보면 백제 사람들이 야마토 조정에 제출하기 위해 쓰인 것이란 說(설)이 최근에 유력해졌다.>
 
  신라에 패한 백제와 倭人(왜인)이 흘린 피와 원한의 呪術(주술)에서 벗어나려면, 오늘의 일본인들은 고대사의 진실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하고, 한국인들은 일본에 대한 근거 없는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정리해야 할 것이다.
 
  일본이 한국 주도의 한반도 통일을 지원하는 것은, 이 주술에 걸린 일본인들이 스스로 이 주술을 깨는 일이다. 일본 보수층을 대표하는 앵커우먼 출신의 일본 저널리스트 사쿠라이 요시코 씨는 <세상은 의외로 과학적이다>라는 책에서 이런 요지의 글을 썼다.
 
  <혈연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가까운 민족은 일본인, 한국인, 몽골인이다. 한국인과 몽골인이 本家(본가)이고 일본인은 分家(분가)인 셈이다. 일본인은 본가에 감사해야 한다. 동시에 일본인은 한반도를 거쳐 일본 땅에까지 와서 좋은 나라를 만든 조상의 진취성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본가인 한국인들도 분가의 이런 업적을 평가해 주었으면 한다.>
 
  한일 두 나라가 우호관계를 유지하려면 한반도가 한국 주도로 통일되어야 하고, 그 통일을 일본이 밀어 주어야 한다.
 
  지원의 방법은 많다. 한·미·일 자유동맹의 정신으로 통일기에 중국 개입을 저지하고, 북한재건에 재정적 지원을 하는 것 등이다. 일본이 신라와 당이 싸울 때 취했던 ‘우호적 중립’ 정도로는 부족하다. 그 전에 한·미·일 세 나라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인권탄압, 납치자·납북자 문제 해결에 공조하는 것은 하나의 豫行(예행)연습이 될 것이다.
 
 
  한반도 분단에 대한 일본의 책임
 
  일본이 한반도의 再(재)통일을 도와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은 南北(남북) 분단에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1984년 8월호 月刊朝鮮에 <조선총독부 高官(고관)들의 그 뒤>라는 르포 기사를 썼다. 그때 취재차 일본에 가서 도쿄 근방 가와사키역에서 만난 모리타 요시오(森田芳夫) 씨를 잊을 수 없다. 당시 72세의 이 노인은 서울 성신대학교 일본어학과 교수로 있었다. 그가 日韓(일한)우방협회의 지원을 받아 쓴 <조선 終戰(종전)의 기록>(1964년 출판)은 1038쪽에 달하는 大作(대작)이다. 이 책은 일본의 敗戰(패전) 뒤 철수까지의 한국 사정을 이해하는 데 뺄 수 없는 史料(사료)로서 이미 고전이 돼 있다. 그는 이 책을 쓸 때 모은 자료를 세 권의 자료집으로 내기도 했었다.
 
  얌전한 인상을 주는 모리다 씨는, 해방 직후 日人(일인)들의 귀환을 책임졌던 京城世話會(경성세화회) 호즈미 회장의 한마디 말이 그를 필생의 작업에 몰두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모리타 군, 장래를 위해서라도 철수관계 자료를 모아 두게.”
 
  북새통 속의 서울에서 이 말을 듣고 가슴을 치고 지나가는 감동이 있었다는 거다. 모리타 씨는 그 뒤 19년 동안 1000여 명의 증인들을 면담, 이 책을 냈다.
 
  모리타 씨는 군산에서 태어났다. 합병 전에 벌써 한국에 건너왔던 아버지는 한약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의 한국생활 기간은 일본생활의 세 배나 된다고 했다.
 
  “책을 쓰면서 저의 생각도 많이 정리됐습니다. 역시 힘에 의한 지배는 좋지 않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억지로 합쳐졌지만 헤어지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할린에 있는 한국인 문제, 한국에 남은 일본 여자들의 문제 등등 결별의 후유증이 아직도 남아 있지 않습니까?
 
  일본의 가장 큰 책임은 한반도의 분단입니다. 역사에 가정이란 게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만, 항복을 결정한 御前(어전)회의가 8월 9일이 아니라 히로시마에 원자탄이 떨어진 8월 6일에 열렸다면 소련은 참전의 시기를 놓치고 38선도 없었을 것입니다. 반대로 8월 9일 어전회의에서 決死(결사) 항전의 주장이 이겼다면 소련 기갑부대는 부산까지 남하했을 것이고, 미군은 인명손실을 막으려고 상륙을 포기, 한반도는 적화됐을 것입니다.”
 
  모리타 씨는 그때 이것만은 꼭 기사에 써 달라고 부탁했다.
 
  “책을 쓰면서 제가 감격에 못 이겨 눈물을 흘린 자료가 있습니다. 8월 15일 오후 3시 경성방송국을 통해 安在鴻(안재홍) 선생(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이 한 연설 대목입니다.
 
  ‘끝으로 국민 여러분께서는 각별히 유의하여 일본 거주민의 감정을 자극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40년간의 총독 통치는 이미 과거의 일이 됐습니다.
 
  조선·일본 양 민족의 정치 형태가 어떻게 변천하더라도 두 나라 국민은 같은 아시아 민족으로서 엮여 있는 국제 조건 아래서 자주 互讓(호양)으로 각자의 사명을 수행해야 할 운명에 놓여 있다는 것을 바르게 인식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여러분, 일본에 있는 500만의 조선동포가 일본에서 똑같이 수난의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조선에 있는 백수십만 일본 주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안전하게 지켜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총명한 국민 여러분께서는 잘 이해해 주실 것을 의심치 않습니다.’
 
  격앙된 그 순간에도 이런 차분하고, 이성적인 연설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이 연설 덕분에 수많은 일본인이 수난을 면했습니다.”
 
 
  일본이 통일을 방해한다?
 
1945년 8월 15일 서울에 사는 일본인들이 히로히토 천황의 항복방송을 듣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識者層(식자층)에선 일본이 남북한을 이간질해 통일을 방해할 것이란 주장이 유력하게 거론됐다. 요사이는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그런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일본에서 납치자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김정일 정권에 의한 일본인 납치는 일본인의 對北觀(대북관)과 일본정부의 대북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 일본에서도 인권문제가 외교의 방향을 바꾼 최초의 사례라고 한다. 일본이 한국보다 더 강경한 대북제재를 하고 있으며 북한정권의 일본 내 기지인 조총련도 분노한 여론에 밀려 瀕死(빈사)상태에 빠졌다.
 
  이런 흐름을 주도한 세력이 일본의 보수적인 민간인들이었다. 이들은 역사문제에선 국가주의적 성향을 보이나 한반도 문제에선 자유민주적 관점을 취하고 있다. 이들은 또 친미적이다.
 
  이들이 反北的(반북적) 입장에서만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한국 주도의 자유통일을 지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도록 하는 데는 한국 측의 노력도 있어야 한다. 특히 재일교포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들은 한일우호 관계를 한일 자유동맹 수준으로 格上(격상)시키는 데 매개 역할을 할 수 있는 소중한 자원이다. 재일교포는 한국인들이 일본을 정확하게 볼 수 있도록 도와줄 입장에 있다.
 
  한국을 보는 일본인의 視角(시각)이 ‘백제와 倭(왜)의 저주’에서 벗어나는 것과 동시에 일본을 보는 한국인의 시각도 교정이 필요하다. 다음과 같은 점들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
 
  1. 일본인과 한국인은 인종적으로 가장 가깝다.
 
  2. 일본인과 한국인은 경쟁하면서 공존할 수밖에 없는 지리적 운명이다.
 
  3. 일본인과 일본정부를 동일시하여 적대시하면 안된다.
 
  4. 오늘의 일본은 日帝(일제)시대의 군국주의 일본과는 다르다. 민주화된 일본이므로 군국주의화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
 
  5. 한일 문제를 미국, 중국, 북한과의 관계 속에 놓고 생각해야 한다.
 
  6. 일본의 우파는 과거사에 대한 인식에선 문제가 많지만 북한정권을 제거하고 북한주민들을 구출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고 있다. 일본의 좌파는 과거사에 대해서는 한국 편이지만 남북관계 속에서는 북한정권 편이다.
 
  7. 한일 兩國民(양국민) 모두 정부의 주장을 비판 없이 추종하지 말고 주체적으로 잘잘못을 검증하고 독자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8. 양국 간의 물적, 인적 교류가 확대됨으로써 정부 간 갈등을 완충시키고 있다.
 
  9. 통일된 한반도에 강력한 국가가 등장해야 한일관계가 건강해진다. 허약하고 분열된 한반도는 주변 강대국의 개입을 불러들인다.
 
 
  일본의 존경을 받는 나라가 되어야
 
  핵과 미사일 문제를 둘러싸고 노출된 한·미·일과 중·북의 대치관계는 이념과 가치관의 대결 모양새이다.
 
  한·미·일은 미국을 매개로 한 군사동맹 관계이지만 핵심은 자유와 인권 동맹이다. 한국은 미국 및 일본과 맺은 일종의 가치동맹을 통해 중국을 압박함으로써 중국이 북한의 핵, 미사일, 인권탄압 문제를 계속 감싸는 데는 막대한 비용이 들 것임을 인식시켜야 한다.
 
  북한체제의 내부 붕괴와 같은 통일의 기회가 왔을 때 한·미·일 동맹은 중국의 개입을 차단하고 한민족이 민족자결의 원칙하에서 민족통일을 이룰 수 있게 뒷받침할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한·미·일 자유통일 동맹’이 중국을 적대하는 것으로 비쳐선 안된다.
 
  이런 동맹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존경받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국가가 존경을 받기 위해서는 自國民(자국민) 보호라는 국가 본연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한국의 자유통일을 바란다는 일본의 한 우파 지식인은 이렇게 말했다.
 
  “아소 총리가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 북한정권에 의한 일본인 납치자 문제 해결에 대해 협조해 달라고 요청하면 이 대통령은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납북된 자국민의 구출에 일본정부가 협력해 달라는 부탁을 하지 않는다.”
 
  한국의 납북자 단체들은 일본정부 관료들에게 “우리를 도와달라”고 호소한다. 한국이 일본인의 존경을 받지 못하는 한, 모처럼 일본에서 조성된 ‘자유통일 지원론’도 결실을 맺지 못할 것이다.
 
  국가 브랜드 세계 2위인 일본과 프랑스·영국식의 영구적인 우호관계를 유지하려면 한국의 國格(국격)이 올라가야 한다. 실력이 비슷해야 사이 좋게 지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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