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북한이 TV생중계로 폭파 이벤트를 벌였던 영변의 원자로 냉각탑.
북한이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영변 지역 핵시설에 대한 사찰을 거부하고, NPT(핵확산방지조약) 탈퇴를 선언한 1993년 3월 12일 이후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북한은 지난 6월 26일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에 북한이 확보한 핵시설과 핵물질에 관한 리스트를 제공했다. 20년째 풀리지 않은 북한 핵 의혹을 규명할 열쇠를 스스로 내놓은 것이다.
이 신고서에는 북한이 플루토늄을 추출해온 영변의 5MW 실험용 원자로 가동일지가 포함돼 있다. 가동일지는 1만8000장 분량이다. 1986년 10월 본격 가동에 들어간 이 원자로의 가동일지를 분석하면 북한이 추출해낸 플루토늄의 양이 정확히 나온다. 추출 플루토늄 양을 토대로 북한이 몇 개의 원자폭탄을 만들었는지 추정이 가능하다.
북한이 보유한 5MW급 실험용 원자로는 영국이 1950년대 핵무기용 플루토늄 생산을 위해 가동했던 콜더형 원자로를 모델로 하고 있다. 북한은 1979년부터 자체 기술로 소련도 모르게 극비리에 이 원자로를 건설했다.
5MW 원자로에는 중량이 50t에 달하는 8000개의 핵 연료봉이 장착된다. 북한은 현재까지 2~5년을 주기로 연료봉을 교체해 왔다. 연료봉은 금속 우라늄을 직경 3cm, 길이 3cm의 원통형 막대로 성형한 후 이를 길이 50cm의 원통형 마그네슘 케이스에 일렬로 넣어 제작한다. 이 원자로에서는 연간 평균 핵무기 한 개분(6~8kg)의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다.
북한은 침묵, 미국은 ‘엄정한 검증절차’ 강조
韓美(한미) 정보당국은 북한이 추출해낸 플루토늄을 45~51kg, 핵무기 6~8개를 제조할 수 있는 분량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선 북한은 IAEA가 영변지역 핵사찰을 시작한 1992년 이전에 약 10~20kg의 플루토늄을 추출했다. 북한은 5MW 원전을 1986년 가동 개시 후 1989년 3월에 연료봉을 전면 교체했다.
두번째로, 북한은 1994년 5월 인출하여 水漕(수조)에 보관해 왔던 8000개의 연료봉을 2003년 6월 재처리 완료했다. 이때 추출된 플루토늄이 25kg 정도로 추정된다.
세번째로, 북한은 2003년 2월 5MW급 원자로에 연료봉을 새로 장착하여 2005년 4월까지 약 2년간 연소시킨 후 2005년 7월 폐연료봉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했다. 추출된 플루토늄의 양은 10~14kg으로 추산된다.
북한은 6자회담에서 핵 신고서 제출과 동시에 북한을 ‘테러지원 대상국’ 명단에서 제외시키고, 적성국 교역법 적용 대상에서 해제해줄 것을 일관되게 요구해 왔다. 미국 정부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 신고서 제출에 따른 상응조치로 지난 6월 26일 의회에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해제 방침을 공식 통보했다. 그러나 법률상 발효시한인 8월 11일은 아무 조치 없이 지나갔다.
북한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쪽에서는 ‘엄밀한 검증절차’를 거듭 강조하고 있다.
“강력한 검증체제와 검증 합의서가 필요하다.”(8월 12일, 토니 프라토 미 백악관 부대변인)
“우리는 테러지원국 명단해제 조치를 취하기 전에 (북한 핵 프로그램 신고서에 대한) 강력한 검증체계를 확보해야만 한다.”(8월 7일, 곤잘로 갈레고스 미 국무부 부대변인)
북한이 핵 신고서를 내놓은 지 두 달이 지났다. 그렇지만 한미 어느 쪽에서도 북한이 제출한 핵신고 리스트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지 않고 있다. 한미 양국은 북한의 신고서에 대해 만족하고 있는 것일까? 왜 이렇게 미국은 ‘검증절차’를 강조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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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AEA와 미국이 20여년간 사찰을 요구해온 미신고폐기물 저장소 A와 B. A는 흙으로 덮고 나무를 심어 은폐했고, 액체폐기물 저장소로 추정되는 B는 흙으로 덮은 후 다른 건물을 지어 은폐했다. |
“북한, 검증절차에 들어갈 생각없어”
복수의 한국 정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의 핵 신고가 엉터리로 이뤄졌다”고 했다. 이 때문에 미국이 북한의 신고내용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검증’, 즉 핵사찰 확보를 강조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음은 한국 정부 고위 당국자와의 대화.
―어떤 점에서 엉터리라는 얘긴가.
“우선 북한이 신고한 플루토늄 추출량이 너무 적다. 그리고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2002년 10월의 2차 북핵 위기는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때문이다. 그런데 북한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이 없다는 주장만을 반복하고 있다.”
북한 외무성의 강석주 제1부상은 2002년 10월 4일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려고 평양을 찾은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에게 다음과 같이 통보했다.
“우리가 고농축 우라늄 농축 계획을 갖고 있는 것이 뭐가 나쁘다는 것인가. 우리는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을 추진할 권리가 있고, 그보다 더 강력한 무기도 만들게 되어 있다…. 부시 정권이 우리에 대해 적대적 정책을 취하는 이상 우리가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을 추진한다고 해서 무엇이 나쁜가. 그것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에 대한 억지력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우라늄 농축과 관련해서 북한이 밝혀야 할 부분은 어떤 것인가.
“파키스탄으로부터 넘겨받은 원심분리기, 대량 수입한 알루미늄관 등에 대해 신고해야 한다. 그래야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이 어디까지 진전됐는지 알 수 있다.”
―북한은 무슨 배짱으로 엉터리 핵 신고를 했나.
“북한은 검증단계로 진입하지 않겠다는 생각임이 분명하다. 검증단계로 넘어갈 생각이라면 이런 엉터리 신고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북한이 “핵을 폐기하는 대신 경수로를 지어달라”는 주장은 철회할 걸로 보나.
“핵 폐기 전에 경수로를 달라는 주장을 여러 차례 했다. 미국은 못 주겠다는 입장이다. 경수로에서 나오는 사용 후 핵 연료봉에서도 플루토늄 추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함남 신포에 짓다가 공사를 중지한 1000MW급 한국형 경수로 2기를 계속 지어서 주는 방안은 검토하지 않나.
“2003년 11월 공사가 중단됐고, 5년 가까이 공사현장과 원자로 건물이 비바람에 방치됐다. 이 상태에서 원자로 건설을 재개해서 완공했을 때 그게 안전할 것인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IAEA 안전규정에도 나와 있지 않다. 중단됐던 원전 공사를 재개하려면 여러 가지 위험 요소가 있다. 누가 계속 지으려고 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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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3일 남북한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북핵 6자회담 참가국 외교장관들이 참가한 가운데 싱가포르 샹그릴라 호텔에서 열린 비공식 6자회담에서 각국 장관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유명환 외교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 중국 양제친 외교부장, 박의춘 북한 외무상, 고무라 마사히코(高村正彦) 일본 외상. |
북핵 ‘진실의 순간’ 맞아
미국 몬테레이 국제학대학에 머물면서 북핵 문제를 추적하고 있는 핵공학박사 辛成澤(신성택) 교수는 “북한 핵 문제가 20년 만에 다시 ‘진실의 순간’을 맞고 있다”면서 “북한 핵 문제는 북한이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를 선언했던 1992년 3월의 시점으로 되돌아가서 다시 시작된 셈”이라고 했다. 다음은 辛成澤 박사와의 대화.
―미국의 핵 전문가들은 북한이 지난 6월 26일에 내놓은 핵 신고 리스트에 대해서 어떤 평가를 내놓고 있나.
“아무도 입을 열지 않고 있다. 북한 핵 문제를 위해 미국의 17개 기관에서 100명 이상의 과학자들이 차출된 것으로 안다. 북한이 어떤 내용을 신고했나 알기 위해 이곳저곳 물어 봤지만 일절 말을 하지 않는다. 질의를 받는 사람들이 거북해해서 포기했다.”
―복수의 한국 정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이 엉터리 핵 신고를 했다. 무엇보다 신고한 플루토늄 양이 턱없이 적다”고 밝혔다.
“미국이 지금까지 북한의 핵 신고서를 전면 공개하지 않는 것은 첫 방에 엉터리라는 걸 감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엉터리 신고라는 것이 공개되면 외교적 성과를 내겠다고 장담해 온 부시 행정부가 궁지에 몰리게 된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북한의 핵 신고서를 받고 나서) 진짜면 행동 대 행동으로 나서겠다’고 밝혀 왔다. 진짜 성의 있게 보고서를 냈으면 8월 11일 북한을 테러지원국 리스트에서 해제해 주었을 것이다. 해제해 주지 않고 지나갔다는 사실은 북한이 신뢰하기 어려운 보고서를 냈다는 반증이다.”
―북한이 미국 측에 전달한 5MW급 원자로 가동일지가 1만8000쪽 분량이라고 한다.
“그 보고서의 종이에서 방사능 입자가 발견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핵시설 안에 있었으니 당연히 방사능에 노출됐을 것이다. 방사능 알갱이들은 닦는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가동일지만 분석해도 얼마만큼의 플루토늄이 추출됐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보고서가 진짜일지라도 검증을 해야 하고, 가짜라면 더 검증을 해야 한다. 이제 북한 핵 문제는 과학의 영역에 들어섰다. ‘추출 플루토늄이 30kg이다, 60kg이다’, ‘핵무기가 3개다, 8개다’ 이런 정치적 말싸움은 이제 필요 없다. 핵폐기물 처리장에서 ‘샘플’을 채취하고, 영변 핵시설 주변에 대한 ‘환경 샘플링’이 이뤄져야 한다. 북핵 검증은 이제 ‘올 오어 너싱’(All or Nothing-전부가 아니면 하나마나라는 뜻) 게임이다. 99.5% 규명은 없다. 마지막 0.5%까지 이빨이 맞춰지지 않으면 사찰은 무의미하다.”
핵폐기물 저장소 사찰 이뤄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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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TV에 방영된 영변의 핵시설. |
“북한은 6자회담에서 ‘검증해 주겠다’고 일단 약속을 했다. 그러면서 식량과 중유를 조금씩 챙겼다. 북한은 늘 ‘합의는 합의고 합의 이행은 별도의 합의가 필요하다’는 협상전술을 구사한다. 잘될 듯하다가도 하나를 꼬투리 삼아 전부를 무효화시킨다. 핵사찰을 하면서 ‘샘플링’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관건이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그까짓 것 양보하지 왜 빡빡하게 하느냐’, ‘미국의 핵우산이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낡은 핵무기 한두 개 갖고 있는 게 무슨 문제냐’고 나올 수 있다. 북한은 이런 상황을 기대하고, 이걸 이용하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북한 핵 문제는 영구 미제 사건이 된다.”
신성택 교수는 “북한 핵개발의 전모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영변에 있는 핵폐기물 저장소들에 대한 사찰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핵사찰을 통해 지난 20년간 이뤄진 북한의 핵개발을 전면 규명할 수 있나.
“물론이다. 북한의 거짓말이 전혀 통할 수 없을 만큼 핵검증 기술이 발달했다는 게 북한이 직면한 가장 큰 딜레마다. 영변 핵시설 주변의 오래된 나무를 절단하면 북한이 언제 플루토늄을 추출했는지 정확하게 확인된다. 북한이 핵폐기물 저장소, 폐연료봉에 대한 ‘샘플링’을 허락한다면, 북한이 진정으로 핵을 포기했다고 단정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이번에 우라늄 농축에 대해서는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 한국의 일부 세력들은 “미국이 있지도 않은 우라늄 의혹을 만들어 내서, 제네바 핵합의를 파기했다”고 주장한다.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이 여러 번 북한에 우라늄 농축 기술을 전달한 얘기를 했다. 파키스탄 핵개발의 아버지 칸 박사도 북한과 핵협력을 했다고 밝혔다. 한국에 무샤라프나 칸보다 더 북한의 핵 활동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 있나. 무샤라프 대통령이 미국에 와서도 같은 얘기를 했다. 이 사람이 뭐가 답답해서 그런 얘기를 하고, 자서전에서 까지 언급을 했겠나.”
북한은 1990년대 말부터 우라늄 농축을 위한 원심분리기 부품들을 여러 국가로부터 구입해 왔다. 파키스탄 정부는 2004년 2월 파키스탄 핵개발의 代父(대부)인 칸 박사가 원심분리기 제조기술과 완제품 샘플을 북한에 팔아 넘겼음을 공개적으로 시인하고 그를 해임했다.
북한은 또 2003년 4월 독일로부터 원심분리기 3500개(연간 핵무기 3~4개 제조)에 해당되는 200t의 고강도 알루미늄관을 도입하려다 지중해에서 압수당했다.
한국 정부의 한 당국자는 북한이 추진해온 ‘우라늄 농축 프로젝트’의 개요를 이렇게 정리했다.
“원심분리기는 직경 20cm, 길이 1.5m에 불과한 소형 장비다. 최적의 환경에서 약 10년간 수리 없이 사용 가능하다. 연간 핵무기 1개(농축 우라늄 20kg 기준)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이런 원심분리기 약 1000대가 필요하다. 이에 필요한 면적은 300평 정도에 불과하다. 축구장 크기의 ‘재처리시설’이 필요한 플루토늄 추출에 비해 은닉이 쉽다.
은닉하기 쉬운 우라늄 농축
연간 핵무기 1개를 만들 수 있는 원심분리기 1000개 규모의 우라늄 농축시설 건설을 위해서는 최소 1억5000만~2억5000만 달러가 소요된다. 북한은 여러 정황을 감안했을 때 원심분리기 3000대 이상 규모의 핵 농축 시설 설치를 추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연간 우라늄 원자탄 3개를 제조할 수 있는 규모다. 이에 소요되는 원심분리기 구입비용은 4억5000만~7억5000만 달러에 달한다. 부속시설까지 포함하면 최소 10억 달러의 경비가 소요된다.”
그는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의 장점들을 이렇게 정리했다.
“첫째, 대규모 시설이 필요치 않고, 방사능 방출이 별로 없어 작은 시설 내에 간편하게 은닉 설치할 수 있다. 둘째, 가동되면 외부의 관찰과 감시가 불가능하다. 영변 재처리시설과 같이 24시간 외국 첩보위성의 감시를 받지 않아도 된다. 셋째, IAEA의 사찰을 받거나 해체 요구를 받더라도 분산 은닉이 쉽다. 넷째, 농축 우라늄을 은밀하게 외국에 팔 수 있다. 다섯째, 우라늄탄은 핵실험이 필요 없을 정도로 제조가 간단하다. 2006월 10월의 미흡했던 북한 플루토늄탄 핵실험 결과를 쉽게 만회할 수 있다. 여섯째, 제네바합의, 2ㆍ13합의 등에 따라 북한 핵동결이나 핵폐기가 실행되는 상황에서도 비밀리에 핵물질을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바락 오바마는 “북한이 핵무기 6개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성택 교수는 “이런 추정은 히로시마급(TNT 22kt 폭발 위력을 가진 원자탄) 원자탄을 만드는데 플루토늄 6kg이 소요된다는 계산에서 나온 것”이라며 “북한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핵무기를 갖고 있을 것”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은 이제 1kg의 플루토늄으로 히로시마급 원자폭탄을 만들고 있다. 핵기술의 발전으로 더 작은 핵물질로 핵폭탄을 만들어낸다. 북한이 45kg 정도의 플루토늄을 가지고 있으니 원자폭탄을 6~8개 만들었지 않겠나 하는 것은 추정일 뿐이다. 북한은 슈퍼 컴퓨터를 갖고 있다. 핵폭탄 제조는 60년 전에 확보된 기술이다. 60년 동안 엄청나게 제조기술이 발전했다. 나는 북한이 한미 정보당국의 추정보다 훨씬 더 많은 핵폭탄을 갖고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