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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29년 만의 우승 이끈 차명석 LG트윈스 단장

“딱 하루 지나니까 또 내년 시즌 걱정 시작”

글 : 장원재  (주)戰後70년 ‘생생현대사TV’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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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있는 사람들이 다 행복해지면 그게 좋은 단장”
⊙ “단장 하나로 인해 100만 LG 팬들이 웃을 수 있는데, 연봉만 타가면 죄짓는 것”
⊙ LG 시절 ‘10분마다 하나씩 나오는 투수’ 소리 듣다가 결혼 직전 방출
⊙ “맨 위부터 맨 밑까지 자유롭게 소통하는 것이 수평 문화… 선수들, 단장 어려워 안 해”

張源宰
1967년생. 고려대 국문과 학사, 런던대 로열헐러웨이 컬리지 박사(비교연극사) / 前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경기영어마을 사무총장,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 MBC 라디오 앵커, 現 배나TV·(주)戰後70년 ‘생생현대사TV’ 대표 / 저서 《북한요지경;배나TV 장원재입니다》 《끝나지 않는 축구 이야기》 《논어를 축구로 풀다》 《장원재의 배우열전》
차명석 LG트윈스 단장. 2018년 단장 취임 직후의 모습이다. 사진=조선DB
  #1. 캐스터 :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중계는 계속됩니다. 차명석 해설위원님, 기억나는 올스타전 추억이 있습니까?
 
  차명석 : 네, 저는 올스타전 추억이 아주 많습니다. 올스타로 뽑힌 적이 없어서 그 기간 중엔 늘 가족들이랑 여행 중이었습니다. 그래서…
 
  캐스터 : … (침묵)
 
  #2. 캐스터 : 오늘 중계를 맡은 지방케이블 방송이 주로 메이저리그와 낚시를 중계한답니다. 참 특이한 일이군요. 야구와 낚시가 관계가 있습니까?
 
  차명석 : 야구 선수 중에도 낚시광이 많습니다.
 
  캐스터 : 낚시 좋아하면 가족도 버린다는데…
 
  차명석 : 제가 전에 모시던 감독님도 낚시 참 좋아하셨습니다. 낚시를 하시며 제 생각을 많이 하셨다고 하시더군요. 저놈을 잘라야 되나 말아야 되나….
 
  캐스터 : … (침묵)
 
  #3. 끝내기 홈런이 터지자…
 
  캐스터 : 아… 저런 상황에서 홈런을 맞았을 때, 기분은 투수 당사자 말곤 아무도 모를 겁니다.
 
  차명석 : 아! 저는 현역 시절 끝내기 홈런 맞은 경험이 많아서… 아주 잘 압니다.
 
  캐스터 : … (침묵)
 

  인터넷상 떠도는 ‘차명석(車明錫·54) 어록’이다. 야구 해설자 시절, 실제로 그가 했던 말이다. 이른바 ‘자학(自虐) 개그’. 그의 어록은 ‘망가지면서도 온기가 있다’. 자기 자신을 웃음의 소재로 삼으며 반전(反轉)과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미학을 담은 그의 말에 전 야구팬이 열광했다. 특히 MZ 세대가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경기가 아니라, 차명석 해설을 들으려고 야구 중계를 본다는 팬들도 있을 정도다. 이 유쾌한 남자는 2018년 LG 트윈스 단장을 맡아 야구 현장으로 복귀해 무려 29년 만에 팀을 한국 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 우승 확정 순간에 어떤 느낌이 들었습니까.
 
  “이렇게 우승할 수 있는데 왜 그동안 못 했는지 그런 생각이 들었고요, 팬들이 많이 찾아와 주시고 정말 좋아하시니까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딱 하루 지나니까 또 2024년 시즌 걱정을 시작했습니다. 프로야구단 단장이라는 위치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 우승의 기쁨이 그렇게 오래가지 않는군요.
 
  “하루 지나면 이제 과거지사(過去之事)잖습니까. 다음 날부터는 ‘현재’를 준비해야 하니까 고민이 쏟아지기 시작하는 거죠. 2024년도 선수 연봉은 어떻게 할 것인가? 팀은 어떻게 더 강하게 만들 것인가? 이런 문제들이 하나하나씩 현실적으로 밀려오니까 그때부터….”
 
  LG 트윈스의 마지막 우승 해인 1994년, 차명석은 한국 시리즈 출전 선수 명단에는 이름을 올렸지만 등판은 하지 못했다.
 
  “1994년 우승은 사실 당연한 거였어요. 이상훈, 김태원 등 선발 투수들이 다 15승 이상 올렸고 마무리 투수 김용수 선배는 리그 넘버원이었습니다. 야수들도 너무 좋았어요. 2위 팀 태평양 돌핀스와 11.5게임이라는 압도적 차이가 났을 정도였죠.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으니까, 한국 시리즈도 당연히 이길 경기를 이겼다고 여겼습니다. 당시 우승했을 때 선수들이 기뻐는 했지만, ‘어차피 내년에도 우승할 텐데…’라는 생각들이었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건방진 태도죠.”
 
  ― 그런데 이듬해엔 왜 성적을 못 냈습니까.
 
  “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한테 여섯 게임 앞서다가 시즌 막바지에 반(半) 경기 차로 잡혔거든요. 저희가 2위가 되고 OB가 1위, 롯데가 3위를 했죠. 정규 시즌을 충분히 1위로 마칠 수 있었는데 간발의 차이로 2위를 하니까 허탈감, 상실감 그런 것들이 많이 작용했습니다. 그래서 플레이오프에서 롯데한테 지고 한국 시리즈에 못 나갔죠.”
 
 
  “매일 밤 한국 시리즈에서 지는 꿈만 꿨다”
 
LG트윈스는 이번 한국 시리즈 우승으로 29년 만에 우승의 감격을 맛보았다. 사진=조선DB
  LG 트윈스는 1997년, 1998년에도 한국 시리즈에 진출했다. 이때는 차명석도 마운드에 올랐다.
 
  “팀 전력(戰力)은 정상권인데 우승을 못 하는 겁니다. ‘우승은 전력만 좋다고 되는 게 아니구나. 운도 따라야 하고, 정신력 등 무형의 요소도 꼭 필요하구나’라는 걸 그때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그런데 벌써 29년이 흘렀네요.”
 
  ― 우승을 못 하는 기간이 이렇게 길어질 줄 알았습니까.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죠. 한 20년 지나니까, 그때부터는 조바심이 들었습니다. 언론에서 계속 ‘20년간 우승 못 한 LG 트윈스’ ‘21년간 우승 못 했던 LG 트윈스’ 이런 기사가 계속 나오니까 선수들도 그렇고 코칭 스태프도, 프런트도 압박감을 엄청나게 받았죠.”
 
  ― 어느 정도나 중압감을 느꼈습니까.
 
  “누구를 만나는 게 두려울 정도였습니다. 기자들 보면 도망치고, 맨날 숨어서 다니는 거죠. 경기에서 지면 온갖 비난이 쏟아지니까 팬들만 봐도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런데 우승 못 한 세월이 29년까지 갔잖아요. 이번에 한국 시리즈 앞두고 합숙하는데, 매일 밤 한국 시리즈에서 지는 꿈만 꾸는 겁니다.”
 
  ― 악몽도 그런 악몽이 없네요.
 
  “그렇죠. 한국 시리즈에서 지고 언론으로부터 질타받는 꿈만 매일 꾸는 겁니다. 더 미치겠는 건, 꿈속에서도 제가 기사를 다 읽는다는 겁니다.”
 
 
  “구본무 회장은 은인 같은 분”
 
2023년 11월 17일 열린 축승회에서 차명석 단장은 선수들과 함께 ‘전설의 아오모리 소주’를 마셨다. 사진=LG트윈스
  2023년 11월 13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한국 시리즈 5차전. LG는 수원 KT를 6-2로 물리치며 우승을 확정했다. 구단주 옆자리에서 경기를 보던 차명석 단장이 TV 화면에 잡혔다. 우승 확정 후 박수 치며 포옹하다 돌연 눈물을 터뜨리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안 울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우승하고 나니까 돌아가신 초대 구단주 구본무(具本茂·1945~2018년) 회장님 생각이 나서 갑자기 울컥했습니다.”
 
  구본무 회장은 야구단 사랑이 각별했던 인물이다. 매 시즌 진주 외갓집으로 선수단을 초대해 파티를 열었고, 2군 선수들 이름까지 다 외울 정도로 관심이 많았다.
 
  “야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저희한테는 정말 은인 같은 분이시죠. 야구단을 창단해 저희가 프로야구 선수로서 뛸 수 있게 만들어주셨으니까요.”
 
  1994년 LG 트윈스 우승 직후, 구본무 회장은 일본에서 아오모리 소주 세 통을 사 왔다. 다음 우승 때 축하주로 쓰자고 했다. 1998년 해외 출장 중엔 최고급 롤렉스 시계를 구입해 ‘다음 번 우승 멤버 MVP’에게 선물하겠다고 했다. 소주와 시계가 이토록 오랜 세월 주인을 못 만나리라고는 그때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 전설의 아오모리 소주는 어떻게 됐습니까.
 
  “축승회 때 다 같이 나눠 마셨습니다. 증발했다, 식초로 변했다 등등 뭐 여러 얘기가 있었는데요, 사실은 아오모리 소주가 세 통이었거든요. 그런데 29년 정도 지나니까 좀 증발이 돼서 세 통을 하나로 모았습니다. 나머지 두 통은 한국 시리즈 올라가면서 일본에 가서 똑같은 소주를 더 구입해 분량을 맞췄죠.”
 
 
  “정말 말도 안 되는 경기였다”
 
  금고에 보관 중이던 롤렉스 시계는 시리즈 MVP 오지환의 차지가 됐다. 오지환은 시계를 딱 한 번 차고, 바로 ‘구단 전시품’으로 기증했다. LG 트윈스의 주장 오지환은 이번 시리즈에서 천당과 지옥을 오간 선수다. 1승1패로 맞선 가운데 KT 홈구장인 수원야구장에서 열린 3차전. LG가 3회 외인타자 오스틴의 3점 홈런으로 달아나자 KT가 3회 한 점을 따라붙고 5회 3대4로 경기를 뒤집었다. 오지환의 실책으로, 안 날 점수를 3점이나 준 결과다. 6회 이번에는 박동원의 2점 홈런으로 다시 LG의 5대4 리드. 하지만 KT는 8회 5대5로 동점을 만든 후, 시리즈 내내 무안타로 침묵하던 박병호가 거짓말 같은 2점 홈런을 터뜨리며 5대7로 다시 경기를 뒤집는다. 그러고 LG의 마지막 공격, 9회초. 선두타자 홍창기가 2루수 앞 내야안타로 출루했으나, 박해민이 내야 뜬 공, 김현수가 내야 땅볼로 선행 주자 아웃되며 순식간에 2사 1루가 되었다. 그 뒤, 오스틴이 극적으로 볼넷을 얻어 출루했지만 여전히 2사 1, 2루로 LG의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 캡틴 오지환이 타석에 들어섰다. 그리고… ‘만화도 그렇게 그리면 욕먹는다’고 할 만한 상황이 나왔다. 오지환의 방망이에 걸린 공이 우측 담장을 넘어간 것이다. 극적인 재역전 스리런 홈런!
 
  “정말 말도 안 되는 경기였죠. 오히려 한국 시리즈 우승하는 순간보다 그때 선수들이 더 흥분했던 것 같습니다. 또 그 홈런 뒤에 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 뭡니까.
 
  “투수 이정용 선수가 9회말 1사 만루에서 병살로 경기를 마무리한 겁니다. 이게 왜 말도 안 되는 상황이냐? 야구단 내에선 분위기, 흐름 이런 걸 많이 따지는데 아무리 봐도 분위기는 다시 역전당하는 분위기였어요. 원아웃 1, 2루에서 이정용 선수가 구원 등판했죠. 타자는 배정대 선수였어요. 초구에 폭투가 나와서 주자 2, 3루가 됐잖아요? 그러니까 저희는 어쩔 수 없이 만루 작전을 펴 배정대 선수를 고의사구로 내보냈습니다. 폭투가 안 나오고 승부했다면 아마 안타를 맞았을 겁니다. 그때 배정대 선수가 가장 컨디션이 좋았으니까요.”
 
  ― 폭투(暴投)가 나왔을 때 심정은 어땠습니까.
 
  “이정용 선수가 제구력이 아주 좋은 선수인데 거기서 어떻게 그런 볼을 던지나, 탄식했습니다. 그렇게 만루가 됐잖아요. 그러고 나서 병살이 나왔죠. 그것도 투수 땅볼로요. 정말 기뻐서 팀장들하고 껴안고 펄쩍펄쩍 뛰었어요. 밤에 복기(復棋)하는데, 모두가 이게 말이 안 된다는 겁니다. 우리가 지는 경기인데 어떻게 이길 수가 있나, 하늘에서 올해는 그냥 너희가 우승해라, 이런 뜻이 아니면 설명이 안 된다는 거예요. 진짜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어머니 행복하게 해드리기 위해 더 열심히 임했다”

 
사당초등학교 6학년 때의 차명석.
  차명석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다. 주말마다 놀던 친구들이 막 창단한 야구부에 다 들어가는 바람에 같이 놀 사람이 없었다. 야구부 감독님이 “운동 한번 해볼 생각 없냐?”라고 했다. 막상 시작해보니 생각보다 잘했고 재미가 있어 부모님께 허락을 받았다. 하지만 초등학교 한정 ‘취미의 일환’이었다.
 
  “중학교 진학 때 집에서 반대가 심했어요. 왜냐하면, 아버님이 연세가 좀 많으신데, 서울 상대를 나오셨거든요. 그래서 제가 서울대 교수 되는 게 꿈이라시며 운동선수는 절대 안 된다고 반대하셨습니다.”
 
  차명석은 아버지 차순학(車淳學·1927~1985년), 어머니 김영자(金英子·1938~2020년)가 낳은 2남 3녀 중 막내다. 아버지는 한때 정치에 꿈을 둔 적도 있다. 서울 상대 1년 선배가 김재순(金在淳) 전 국회의장, 1년 후배가 조순(趙淳) 전 서울시장이다. 정치의 뜻을 접은 후엔 사업을 했다.
 
  “제가 어릴 때는 집이 굉장히 잘살았어요. 부족한 게 없었는데 제가 운동한다고 하니까 다들 반대가 심했죠. 그 당시엔 운동선수를 ‘거친 사람’으로 보는 시선이 좀 있었거든요. 공부도 안 하고, 몸 쓰고 힘쓰는 집단이라는 사회적 편견도 있었죠.”
 
  아버지는 차명석이 중3 때 세상을 떠났다. 이후 집안 형편이 상당히 어려워졌다. 경제 사정은 차명석이 프로야구 선수가 되고, 코치로 자리 잡으면서, 방송 해설하면서 비로소 조금씩 나아졌다.
 
  “정말 잘살다가 너무 못 살고, 이런 부침(浮沈)을 어린 시기에 겪다 보니까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부터 제 인생의 목표는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드리는 것, 그거 하나였습니다. 효심(孝心) 하나로 어려운 시절을 버텼습니다.”
 
 
  대학 때는 ‘그저 그런 선수’
 
1984년 성남중학교 시절의 차명석(오른쪽에서 두 번째).
  차명석은 성남중을 거쳐 성남고로 진학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걸 알고 학교에서 장학금 등 많은 혜택을 줬다. 그는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하지만 팀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고등학교 동기 중 프로 선수가 된 이는 차명석 하나다.
 
  “저는 연세대나 고려대에 가고 싶었거든요. 근데 여기선 ‘받아주기는 하겠지만 오고 싶으면 혼자 오라’는 거예요.”
 
  그때 건국대로부터 동료 선수 몇을 받아주겠다는 제안이 왔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건대 88학번으로 입학했다. 당시 차명석의 건대 1년 후배가 ‘바람의 아들’ 이종범이다. 송구홍, 김기범, 차동철 등 프로야구계에서 이름을 날린 선수들이 건대에서 함께 뛰었던 선배다. 차명석은 대학 3년 동안 그저 그런 선수였다. 이상하게 야구가 잘 안 됐다. 다친 것도 아니고, 슬럼프도 아닌데 경기에 출전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4학년 때 갑자기 성적이 좋아지며 프로야구 진출의 길이 열렸다.
 
  “미래가 불안했어요. 집안에 뭐가 없잖아요, 다 망해서. 그러니까 어차피 내가 일으켜야 하는데 그렇다고 내가 야구를 잘하는 것 같지도 않고, 앞으로 뭘 해 먹고살아야 하나, 뭘 해서 어머님을 모시나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잠 못 이룬 적도 많았어요. 그런데 어찌 됐건 4학년 때 잘 풀려서 프로 선수로 지명받았으니 참 큰 행운이죠.”
 
  ― 4학년 때 갑자기 잘 풀린 이유가 있을까요.
 
  “좀 절박했던 것 같아요. 4학년 때 못하면 프로를 못 가니까 마지막 기회잖습니까. 그래서 제 나름대로 배수진을 친 겁니다.”
 
 
 
‘LG 3대 명마’

 
  차명석은 1992년 LG 트윈스에 입단했다. 서울 연고 야구단은 1982년 MBC 청룡으로 창단했고 1990년에 LG가 인수했다.
 
  ― 프로 선수로 지명받았을 때 기분은 어땠습니까.
 
  “미리 전화가 왔어요. 뽑겠다고. 그래서 기분이 아주 좋았죠. 어머니한테 말씀드렸더니 어머니가 우시면서 ‘수고했다’라고 하셨습니다.”
 
  다음 날 스포츠 신문 1면을 장식했다. 친구들이 ‘한턱내라’며 축하해줬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집이 정말 어려워서 대학교 때 친구들 신세를 많이 졌거든요. 대학 생활이 좋아서 수업도 거의 빠지지 않고 들었어요. 그래서 운동부만이 아니라, 일반인 친구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들한테 4년 내내 얻어먹기만 했어요. 하도 얻어먹어서 미안한 마음에 모임에 안 나갈 정도였죠.”
 
  신세도 갚고 기분도 내고 싶었다. 문제는 ‘돈’이 없다는 점이었다.
 
  “학교 앞 카페에 가서 사장님한테 신문을 딱 보여드렸죠. ‘제가 이런 사람인데 지금은 돈이 없습니다’라고 했더니 사장님이 무조건 외상 줄 테니 마음껏 먹으라고 하시더군요. 정말 술과 안주를 무한정 주셨습니다.”
 
  스포츠 신문 1면 기사의 위력은 대단했다. 옆집에서도 만사 오케이. 차명석은 신문 하나를 들고 건대 앞 주점과 식당을 순례했다. 친구들에게 연락해 ‘모두 나오라’고 했다. 마지막에는 나이트클럽에 가서 초면인 웨이터한테 “나 이런 사람인데 술 좀 줄 수 있냐?”라고도 했다. 4년 동안 얻어먹은 것을 그날 다 갚자는 심정이었다. 외상값은 계약금 받은 날 ‘일시불’로 싹 다 갚았다.
 
  프로 선수 첫해 성적은 27경기 출전, 승리 없이 5패에 2세이브였다. 1992년 LG 트윈스의 성적은 8팀 중 7등. 차명석은 2001년까지 10년간 중간계투로 활약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중간계투 투수로 연봉 1억을 넘긴 건 그가 최초다. 통산 성적은 38승 37패 19세이브, 방어율 4.02. 커리어 하이 시즌인 1997년엔 11승 4패 7세이브, 방어율 2.79를 찍기도 했다.
 
  LG 시절의 에피소드로는 ‘3대 명마(名馬)론’이 유명하다. ‘야생마 이상훈, 적토마 이병규 그리고 야임마 차명석’이다. 선수 시절 차명석이 창작한 개그다.
 
  “너 같은 투수는 10분에 하나 나온다”도 있다. 삼성의 진갑용 선수를 두고 ‘10년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포수’라는 극찬이 나왔다. 그래서 삼성과 경기 도중 코치에게 “저 선수가 10년에 하나 나온다고 하는데, 저는 몇 년에 하나 나올까요?” 했더니 “너는 10분마다 하나씩 나오지. 지금 얘기 도중에도 나오고 있을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저는 말장난 비슷한 미국식 토크를 아주 좋아합니다. 그분이 그렇게 얘기할 때 저도 많이 웃었어요. 나중에 이 얘기를 방송에서 했더니 시청자들 반응이 아주 좋았습니다.”
 
  ― 차명석은 본인이 평가하기에 어떤 선수였습니까.
 
  “좋은 선수는 아니었죠. 그리고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열심히 안 했습니다. 프로 선수라면 정말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 기본적인 직업윤리인데 말이죠. LG 트윈스에서 정말 행복하게 제 나름대로 재미있게 보낸 건 사실인데 ‘운동선수로서 정말 열심히 했느냐?’ 그 질문엔 대답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실력은 점점 떨어지고 만 32세에 은퇴했죠. 다른 팀에서 불러줄 줄 알았는데 아무 제안이 없었어요.”
 
 
  결혼식 며칠 앞두고 방출돼
 
  문제는 그가 결혼식 날짜를 잡아놓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저는 지금 20여 년째 일기를 쓰고 있거든요. 제 모든 노트 앞장엔 ‘잊지 말자 그날을. 2001년도 11월 26일’이라고 씁니다. 프로야구는 11월 25일까지 내년도에 계약할 선수를 ‘보류 선수 명단’에 넣어 KBO에 제출합니다. 25일이 마감이에요. 그리고 당시에는 지금처럼 2차 드래프트가 없었죠. 그래서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한 팀들은 보통 10월 중순에 방출 선수에게 알려줍니다. 빨리 나가서 다른 팀 찾아보라고. 11월까지 선수한테 통보가 없으면 그건 암묵적으로 내년까지 간다는 의미거든요.”
 
  ― 그런데 왜 잘렸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다 통보받고 나갔는데, 저한테는 11월 25일까지 연락이 없었어요. 그러면 저는 당연히 내년에도 한다고 생각했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11월 26일 아침에 결혼한다고 기사 나가고 오후엔 방출됐다고 기사가 나왔어요.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고.”
 
  기사를 접하곤 바로 직원에게 얘기를 했다. “프로야구 선수니까 방출되는 건 언제든지 감수한다. 그런데 왜 10월에 안 내보내고 오늘에서야 알려주냐”고 했다.
 
  “엄청 화를 냈죠, 그분한테. 그랬더니, 미안하다고 하세요.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하신 분이 김성근 감독님이세요. 제 친구 김정준(현 LG 트윈스 수석코치)의 아버님이시죠. 친구 아버지가 저를 11월 25일까지 붙들고 있다가 26일 날 그렇게 한 겁니다. 2002년 김성근 감독님이 LG에서 준우승하고 그만두셨을 때 야구장에서 만났어요. 저는 방송, 신문 일 할 때입니다. 따졌죠, 그때 왜 그러셨냐고. 그랬더니, 미안하다고 하시더군요.”
 
  ― 혹시 이 이야기에 반전(反轉)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나중에 들어봤더니, 김성근 감독님이 저를 다른 팀에 보내주려고 트레이드 카드를 맞추다가 늦어진 겁니다. 모양 좋게 해주려고 끝까지 애쓰신 건데 그게 잘 안 된 거죠. 어쩔 수 없이 저를 방출하게 되었다는 걸 듣고 서운했던 마음이 조금은 풀렸습니다.”
 
 
  아내, “굶어 죽기야 하겠냐?”
 
  ― 그럼 결혼식 분위기는 어땠습니까.
 
  “결혼 안 하려고 했습니다. 창피하고 미안해서. 백수 처지로 결혼하게 됐는데 처갓집에 미안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와이프한테도 ‘하지 말자. 내가 미안해서 못 하겠다’라고 했는데, 와이프가 ‘괜찮다. 그냥 하자’고 했습니다.”
 
  그의 아내도 ‘차명석 어록’에 등장한다.
 
  차명석 : 아, 저 선수 부인 참 미인입니다.
 
  캐스터 : 그런데 스포츠 선수들 부인들이 대부분 미인 아닙니까? 왜 그럴까요?
 
  차명석 : 그런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무참히 깨버렸죠.
 
  캐스터 : 집에 가면 아무 일 없을까요?
 
  차명석 : … (침묵)
 
  ― 부인은 어떻게 만난 겁니까.
 
  “지인 소개로 만나서 1년 연애하고 결혼했습니다.”
 
  그의 아내는 “그냥 합시다. 뭐 어떠냐. 둘이 사는데 뭐 굶어 죽기야 하겠냐?”며 그에게 힘이 되어줬다.
 
  ― 방출된 다음에 직장은 어떻게 구했습니까.
 
  “진짜 아무것도 할 게 없는 거예요. 1월 중순에 모든 팀이 전지훈련을 떠납니다. 그날 야구장 가서 1루 관중석에 올라가 펑펑 울었죠. ‘아, 이제 야구 진짜 못 하는구나.’
 
  한 10분 울고 ‘이제 뭐 해 먹고살아야 하나’ 집에 와서 고민하고 있는데, 와이프가 ‘돈은 못 벌어와도 좋으니 좀 나가서 있으라’는 거예요. 겨울에 날도 춥고, 딱히 갈 곳이 없잖아요. 그래서 집 근처 국립중앙도서관엘 매일 갔습니다. 아침 먹고 8시 반에 나와서 15분 정도 걸어가면 도서관이에요. 하루 종일 책만 읽었습니다.”
 
 
  메이저리그 방송 해설
 
허구연 KBO 총재. 사진=조선DB
  ― 주로 어떤 책을 보았습니까.
 
  “처음엔 자기계발서를 보다가 ‘아니다, 경영을 배워야겠다’ 싶어서 경영학 책을 엄청나게 봤습니다. 톰 피터스나 피터 드러커 책들을 다 읽었죠. 그렇게 두 달쯤 지났나, 지금 KBO 허구연 총재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당시 MBC 해설위원이었거든요. ‘메이저리그 방송 해설 한번 해볼 생각 없냐?’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주변에 물었는데, ‘절대 하지 말라’는 거예요.”
 
  ― 왜요?
 
  “야구 중계하려면 적어도 감독부터 선수들 이름은 다 알아야 하잖아요. 얼굴도 알아야 하고 기록도 꿰고 있어야 하고. 그리고 관련 자료가 다 영어인데 그것 번역도 간단하지 않고. 그러니까 한마디로 바보가 된다는 거예요. 그런 얘기 듣고 겁이 났는데, 그때는 겁을 떠나서 저한테는 이게 먹고사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눈 딱 감고 했어요. 그때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공부가 정말 어려웠거든요. 외국 선수들 이름 다 외워야 하고 관련 자료 또한 다 번역해야 하고, 그래서 한 2년간 거기에 완전히 시간을 다 썼습니다.”
 
  ― 허구연 총재는 어떤 이유로 차명석 단장을 해설자로 찍은 겁니까.
 
  “다 거절하는 자리라 해도 저는 할 것 같았답니다.”
 
  그 2년의 메이저리그 해설이 나중 야구 해설자로 발탁되는 배경이다. 차명석은 2003년 겨울부터 LG 코치를 하다 신장 종양 수술 등 자신의 건강 문제와 아내의 수술 등 가정사를 이유로 2014년 2월 11일에 사표를 냈다. 그러고 2014년, 2017~2018년 방송인으로 지내다 2019년 다시 현장으로 복귀했다.
 
  ― 방송은 재미있었나요.
 
  “제가 해설을 잘했다고 보기는 어렵고 인기는 좀 있었어요. 좀 신선하다 재미있다. 그런 평이 있었죠. 저는 원고 없이 방송합니다. 좀 서툴러도, 그 순간에 드는 자기 생각이 가장 진솔한 대답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죽도록 책만 읽었다”
 
  ― 다시 현장에서 일할 기회가 왔을 때 어땠습니까.
 
  “정말 기분이 좋았는데 좀 무섭더라고요. 코치면 코칭을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아는 게 없는 겁니다. 코치가 선수보다 모르면 안 되잖아요. 선생님인데, 이론도 꿰고 있어야 하고 트렌드도 꿰고 있어야 하는데…. 내가 지금 누구를 가르칠 만한 능력이 있나, 선수들이 물어보면 어떡하지… 자신이 없는 겁니다. 대충 말재주로 때울 수는 있겠지만, 그런 식으로 코칭하기는 싫었죠. 그래서 엄청 겁이 났어요. 코칭은 두려움의 연속이었습니다.”
 
  ―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결국 책이다. 책을 읽자. 죽도록 책만 읽었습니다. 야구 이론서보다는 다른 분야의 책들을 많이 봤습니다. 소설도 읽고 경영서적, 자기계발서 등을 굉장히 많이 봤어요. 왜냐하면, 야구가 막힐 때 야구 얘기만 하면 잘 안 풀리거든요. 근데 해결책을 다른 분야로 돌려 크로스 오버를 시키면 문제가 선명하게 드러나고 굉장히 잘 해결될 때가 있거든요. ‘1년에 책 100권 읽기’를 목표로 매진(邁進)했습니다. 책을 보면서 얻은 힌트로 선수들을 코칭했죠.”
 
  ―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라면 누가 있습니까.
 
  “좀 많은데요, 봉중근, 우규민, 심수창 선수가 제가 가르친 투수들이었고 2군 선수들을 가르칠 때는 오지환, 정주현 또래들이 신인들이었습니다. 1년간 경기도 구리에서 같이 흙먼지 먹으면서 열심히 했어요. 오지환 선수의 경우, 결혼할 때 저한테 주례를 봐달라고 하더라고요.”
 
 
  임찬규
 
임찬규 선수. 사진=뉴시스
  ― 임찬규 선수랑은 아주 스스럼없이… 뭐랄까요? 유튜브에서 ‘너 내 뒷담화 그만해’라고 농담하는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걸 왜 시작했냐? 저희 어릴 때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마라’고 배웠잖습니까. 선생님이 하는 말씀은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했고요. 그런데 제가 코칭을 해보니까, 요즘 시대엔 그러면 안 되겠더라고요. 선생님이 주입식으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제자들이 저한테 물어보는 게 더 중요했습니다. 그러면 선수들이 저한테 물어봐야 하는데, 선수 입장에선 코치가 아직도 어려운 겁니다. 그러면 저 선수가 나한테 물어보게끔 만들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엄청 했죠. 그래서 갓 입단하는 젊은 선수들하고 농담 식으로 계속 얘기를 한 겁니다.”
 
  ― 그런데 농담에서 진지한 이야기로는 어떻게 넘어갔습니까.
 
  “이런 대화법에서 키포인트는 선수가 어떤 얘기를 해도 제가 화를 낸 적이 없다는 겁니다. 화를 내면 그 순간에 다 끝나는 거예요. 더 이상 진전이 안 돼요. 그래서 다 받아줬는데 그 상황에서 도가 지나친 선수가 임찬규였죠.”
 
  ― 어느 정도로 선을 넘었습니까.
 
  “뭐 그냥 ‘단장님 못 생겼어요’ 밑도 끝도 없이, 그런 말을 유튜브 가서 얘기하고. 다른 선수들은 그래도 좀 어려워하는데 임찬규 선수는 어려워하지 않고 늘 친구처럼 저를 대했죠. 고민 있으면 항상 저한테 얘기하고. 그런데 저는 임찬규 선수뿐만이 아니라 모든 선수가 저한테 그렇게 했으면 좋겠어요.”
 
  그런 임찬규 선수가 부친의 장례식장에서 ‘이제는 단장님이 제 아버지입니다’라고 진지하게 말했다.
 
  “그때 울었죠. ‘이제 아버지는 단장님밖에 없다’고 해서요. 제가 ‘그래, 잘하자. 고맙다. 잘 돌봐줄게’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저는 머리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라서 혼자 하는 건 아무것도 못 해요. 누가 절 도와줘야 하죠. 그래서 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다 제 편으로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주변 사람들을 위해 제가 손해 보는 일도 많이 감수하고, 화를 참는 연습도 엄청나게 했습니다. 그래야 주변 사람 또한 절 도와주니까요.”
 
 
  ‘아무도 단장님을 어려워하지 않는다’
 
  코치 때는 전체를 통솔해야 하기 때문에 일 년에 서너 번은 화를 낼 때도 있었다. 단장이 된 후로는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다. LG 트윈스의 기업 문화는 누구든 단장 방에 자연스럽게 들어가 고민 상담 등 대화를 많이 나눈다는 것이다.
 
  “저는 이것이 조직을 가장 건강하게, 강하게 만드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직급이 높은 사장이나 단장한테 평사원들이 자기 소신껏 얘기할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지면 그 조직은 얼마든지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 소통 이야기를 하셨는데, 금년에 LG의 더그아웃 문화가 아주 독특했습니다. 홈런 치면 다 같이 춤추고…. 그런 것들이 확실히 팀을 하나로 묶는 데 도움이 되었나요.
 
  “최원태 선수가 7월에 트레이드로 저희 팀에 왔죠. 우리 팀에 와서 뭘 느꼈냐고 물어보니까 자기가 놀란 것이 딱 두 가지가 있다고 해요. 첫 번째는 LG 트윈스라는 팀이 이렇게 인기가 많은 줄 몰랐다. 키움에 있을 때는 스포트라이트를 얼마 못 받았는데 여기서는 말 한마디가 다 기사가 된다. 두 번째는 아무도 단장님을 어려워하지 않는다. 단장이 로커룸에 들어왔는데 누구 하나 벌떡 일어나는 사람도 없고 그냥 자기 할 일 하더라. 큰 소리로 인사하는 것도 없고…라고 하더군요.”
 

  ― 단장이 왔는데 아무도 단장 취급을 안 해서 충격을 받았다는 겁니까.
 
  “네. 보통은 단장이 로커룸에 오면 선수들이 ‘안녕하십니까?’라고 큰 소리로 인사하고 정색하고 앉잖아요. 저희는 제가 들어가도 그냥 옆집 아저씨가 왔나, 이런 식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대합니다.”
 
  ― 유튜브를 보니 오히려 오스틴이나 켈리 같은 외국 선수들이 제일 정색하고 인사하더군요.
 
  “맞습니다. 두 선수가 제일 인사를 잘하죠. 저는 수평적인 문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제가 볼 때, 같은 수평 문화라도 높은 사람들은 높은 곳에 그대로 있고, 젊은 사람들만 수평적으로 소통하면 그건 수평적인 문화가 아닙니다. 맨 위부터 맨 밑까지 자유롭게 소통하는 것이 수평 문화죠. 직급이 높은 사람들은 안 하고 밑에 구성원들만 하라고 하면 그것이 진정한 기업 문화로 정착이 되겠습니까? 제가 단장을 맡고 5년쯤 지나니까, 저희 구단의 경우 누구든지 단장을 어려워하지 않고 편안하게 할 말 다 하더군요. 그래서 그런 걸 본 최원태 선수가 ‘정말 어리둥절하다’라고 한 거죠.”
 
 
  ‘도련님 팀’ ‘모래알 팀워크’
 
  ― 오스틴, 켈리 선수 이야기가 나왔는데, 더그아웃에서 오스틴 선수가 한국말로 ‘침착해’라고 외치고, 켈리 선수가 ‘내 몸 상태는 걱정하지 마라. 언제든지 등판하겠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외국인 선수를 뽑을 때 저는 어떤 성향을 갖고 있느냐를 제일 먼저 봅니다. 그런데 켈리와 오스틴은 팀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좋은 분위기를 만드는 선수입니다. 대부분의 외국인 선수들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있죠. 그런데 유독 오스틴하고 켈리는 한국 문화를 많이 존중해주고 선수들하고도 친화적으로 지내니까 시너지 효과가 무척 큽니다.”
 
  ― 다음 목표는 무엇입니까.
 
  “우승하면 단장직 내려놓고 미국 가서 공부를 하고 싶었거든요. 그 말씀을 드렸더니 구단주께서 ‘취지는 좋은데 조금 더 야구단을 위해서 자리를 지켜달라’고 하셨습니다. 제 공부를 위해서 떠나는 것도 좋지만, LG 트윈스를 좀 더 잘 만들어서 100만 LG 트윈스 팬들한테 더 큰 기쁨을 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하셨어요.”
 
  ― 그동안은 왜 우승을 못 한 겁니까.
 
  “2016년에 KT 육성 총괄 코치로 갔었습니다. LG 이외의 구단에서 일한 유일한 해죠. 한 팀에만 있다 보니까, 어느 날 갑자기 제가 좀 시야가 좁아진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지는 것 아닌가, 내가 좀 멀리 못 보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 때문에 구단에 얘기했어요. 다른 팀 가서 한번 보고 오겠다. 밖에서 보니 LG 트윈스가 너무 잘 보이는 겁니다. LG 트윈스가 이래서 안 됐구나. 이럴 수밖에 없구나.”
 
  ― 문제점을 딱 하나만 꼽자면 어떤 거였습니까.
 
  “외부에서 보니까 팀이 끈끈하지 않았어요. 개인만 있고 팀이 없었죠. 우리 보고 ‘도련님 팀’ ‘모래알 팀워크’라는 비판이 있었는데, 안에 있을 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거든요. 근데 밖에서 보니까, 그런 단점이 속속들이 보였습니다. 이래서 우리가 치고 올라가다가 결정적 고비에서 맨날 떨어졌구나, 문제점을 절감한 시기였습니다. 지금도 저는 그때 1년이 제 나머지 코칭 경력 기간보다 훨씬 더 뜻깊었다고 생각합니다.”
 
 
  단장의 책임감
 

  ― 좋은 단장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좋은 단장 옆에는 좋은 구성원들이 있어야 합니다. 저랑 같이 있는 사람들이 다 행복해지면 그게 좋은 단장이라고 봐요. 포스트 시즌에 못 나간 프런트의 겨울은 정말 춥습니다. 아무도 얘기 안 하고 컴퓨터만 봐요. 인센티브도 안 나옵니다.
 
  제가 그래서 딱 목표를 잡았죠. 내가 단장으로 있는 한 우리 직원들 무조건 보너스 받게 해주겠다. 그리고 우승하면 보너스가 굉장히 크니까 내가 꼭 우승 보너스를 안겨주겠다. 성과가 나오고 점점 팀이 좋아지니 회사 분위기도 좋아졌죠. 결국 마지막 방점으로 우승을 했더니, 보너스까지…. 이제 회사에 출근하면 누구든 능동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스스로 일을 찾아 최선을 다합니다. 분위기가 살아 있는 거예요.
 
  이것이 단장의 책임감입니다. 이런 책임감이 없으면 이 일을 하면 안 됩니다. 단장 하나로 인해 100만 LG 팬들이 웃을 수 있는데, 우리 LG 가족들이 야구 하나에 울고 웃고 환호성을 보내는데, 야구단장이 그냥 허투루 시간만 보내고 연봉만 타가면 이 얼마나 그분들한테 죄를 짓는 겁니까?
 
  물론 이런 노력이 있어도 결과가 안 좋을 수 있어요. 하지만 결과가 좋고 나쁘고는 나중 문제입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진정으로 팀을 사랑하고 구성원들을 행복하게 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얼마나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가, 이것이 키포인트입니다. 감독도, 단장도 이런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구성원을 행복하게 해줘야 합니다.”
 
 
  ‘영웅제조기’
 
  스포츠는 정직(正直)하다. 재능 있는 개인이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규칙을 엄정하게 지켜야 한다는 점도 포인트다. 결과를 두고 뒷말이 나올 여지도 없다. 기록이나 스코어가 누가 더 나은 선수이고 팀인지를 확실하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어느 분야든, 정직하게 정상에 오른 사람들은 한 사회의 롤모델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영웅(英雄)이라고 부른다. ‘영웅’은 존재 자체가 신뢰와 성공의 표상이다. 그래서 영웅이 많은 사회는 무너지지 않는다.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영웅이 필요하다는 말에 동의하시는지. 그렇다면 스포츠는 영웅 제조 비용이 가장 싸게 먹히는 제도일 수 있겠다. 우리 시대의 영웅제조기 차명석이 한없이 고마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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