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틴의 러시아, ‘대륙 민족’ 자처… 서구 ‘해양 세력’과 대결”
⊙ “민족·전통 중시하는 신전통주의, 전 세계로 확산”
⊙ “러시아-중국 밀착 행보… 경제적 이해관계 들어맞아”
⊙ “러시아, 러-우 전쟁 통해 서방 분열시키는 성과”
⊙ “韓, 이념의 합의점 찾아 한국만의 모델 제시해야”
⊙ “‘아제르바이잔과 러시아 혁명’ 주제로 논문 계획 중”
임명묵
1994년생.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졸업, 現 서울대 대학원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재학 중. 《조선일보》 《시사저널》 칼럼니스트 / 저서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 《K를 생각한다》 《러시아는 무엇이 되려 하는가》
⊙ “민족·전통 중시하는 신전통주의, 전 세계로 확산”
⊙ “러시아-중국 밀착 행보… 경제적 이해관계 들어맞아”
⊙ “러시아, 러-우 전쟁 통해 서방 분열시키는 성과”
⊙ “韓, 이념의 합의점 찾아 한국만의 모델 제시해야”
⊙ “‘아제르바이잔과 러시아 혁명’ 주제로 논문 계획 중”
임명묵
1994년생.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졸업, 現 서울대 대학원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재학 중. 《조선일보》 《시사저널》 칼럼니스트 / 저서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 《K를 생각한다》 《러시아는 무엇이 되려 하는가》
- 사진=조선DB
세계 질서가 바뀌고 있다. 냉전(冷戰)의 종식과 함께 찾아온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권위주의, 민족주의가 다시 고개를 내밀며 자유민주주의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쿠데타가 발생하며 ‘투쟁의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임명묵 작가는 이를 “역사의 종언의 종언”이라고 정의했다.
임 작가는 국제 정치 전문가를 꿈꾸는 차세대 연구자로 현재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그간 책도 여러 권 펴냈다. 최근 러시아의 과거, 현재, 미래를 조망하는 책 《러시아는 무엇이 되려 하는가》를 출간했다. 석사 과정을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계획이다. 임 작가는 “아제르바이잔을 중심으로 냉전 시대 튀르키예, 이란, 소련의 관계를 연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 이후에는 중동 및 유라시아와 비교 연구를 통해 한국 역사를 탐구하고 싶다”고 했다.
“고교 시절 ‘혁명’ 멋있어 보여 러시아에 관심”
― 러시아에 관심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습니까.
“특별한 계기라기보단 고등학생 때 세계사를 공부하며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소련사가 그렇게 재밌더군요. 철이 없을 때라 ‘혁명’ 같은 것들이 마냥 멋있어 보였습니다(웃음). 정치 성향도 당시엔 좌(左) 쪽이기도 했고요. 지금은 성향이 많이 바뀌었지만, 러시아에 대한 관심은 여전합니다. 대학에 가서 러시아어를 공부했고, 실제 이 지역을 여행하며 이 분야를 깊게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아제르바이잔과 러시아 혁명’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계획 중이라던데, 러시아를 넘어 아제르바이잔까지 관심을 넓힌 이유가 있습니까.
“학부 1학년 때 이슬람 문명사 수업을 들었습니다. 흥미롭더군요. 러시아어도 배워놨겠다, 이 지역 여행도 많이 다녔겠다, 관심이 많은 상태였지요. 그렇다고 중동 지역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긴 싫었습니다. 중동과 러시아가 만나는 지역을 공부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중 아제르바이잔이라는 국가를 선택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종언의 종언’
― 책 《러시아는 무엇이 되려 하는가》는 ‘역사의 종언의 종언’이라는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역사의 종언’은 미국의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한 말입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며 냉전이 끝이 났습니다. 소련이 주도한 사회주의가 서구 주도의 자유민주주의에 패배했지요. 후쿠야마는 이를 계기로 자유민주주의가 인류 보편의 가치 체계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고 봤습니다. 자유주의·계몽주의 사상이 왕정, 교회, 파시즘, 나치즘, 공산주의와 싸워 마침내 이긴 겁니다. 그가 말한 ‘역사의 종언’이란 ‘정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지 않아도 되는 역사관을 가리킵니다.”
― 그럼 ‘역사의 종언의 종언’은요?
“자유주의나 민주주의, 시장 경제 등 ‘역사의 종언’ 이후 당연시된 이념을 ‘당연하지 않다’고 보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역사의 종언의 종언’으로 정의했습니다.”
―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역사의 종언의 종언’으로 봤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언’을 선언하고 얼마 되지 않아 많은 학자가 ‘오만한 선언’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실제 1990년대부터 ‘역사의 종언’에 의문을 품을 만한 사건이 여럿 발생했습니다. 유고슬라비아 내전(1991), 제1·2차 체첸 전쟁(1994~2009) 등이 대표적이지요. 그래도 당시에는 서구의 자유주의가 ‘변방의 사건’을 포섭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2008년 미국에서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중국의 권위주의 강화, 아랍의 봄 실패 등으로 깎여나가게 됐습니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역시 이런 사건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이 더욱 충격적이었던 건 무력에 의한 영토 변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1945년 이후 체제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지요. 서방의 자유주의와 잘 지내보려고 노력했던 러시아는 크림반도 합병을 계기로 이들과 날을 세우게 됩니다. 이런 이유에서 ‘역사의 종언의 종언’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으로 봤습니다.”
“신전통주의, 전통 사회 유지 위해 정치 변화 감수”
― 최근 몇 년간 치러진 전 세계 선거 결과를 보면 권위주의, 비(非)자유주의, 민족주의와 맞닿은 신(新)전통주의가 확산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보수주의와 차이가 있다면요?
“신전통주의는 각 국가와 민족의 전통에 근거해 사회를 규율해야 한다고 믿으면서도, 현대 물질문명을 거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전통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정치 변화까지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이 기존 보수주의와 구분됩니다.”
― 신전통주의가 확산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봅니까.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전통 가치와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이 필요해졌습니다. 이성만으론 채울 수 없는 결핍이지요. 신전통주의는 그걸 일정 부분 해결해줄 수 있습니다.
둘째, 과거 냉전 체제에서 보수주의와 자유주의는 소련의 공산주의라는 공동의 적이 있었습니다. 소련이 무너지자 두 이념은 서로 타협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서로의 주장을 앞세우며 사람들에게 선택을 강요했지요. 러시아,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중국 같은 국가들은 신전통주의를 택했습니다. 서구에서도 최근 들어 신전통주의가 힘을 얻는 상황입니다.”
― 1·2차 세계대전 사이 퍼진 파시즘과도 유사해보입니다.
“사상적 계보는 파시즘과 맞닿아 있습니다. 다만, 당시 파시즘은 이념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분출됐던 것이고요. 지금의 신전통주의는 선거를 통한 집권과 시장 경제를 지향하고 있어 구분되는 면이 있습니다.”
― 신권(神權) 통치를 강화하는 이란도 비슷한 맥락에 있다고 보면 될까요? 이성적으로 봤을 때 신권 통치는 비합리적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1979년 이슬람 혁명이 성공하고, 지금까지 유지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1979년이면 이미 인터넷이 나오고 있을 시점이었지요. 당시에도 ‘무슨 종교 혁명이냐’ 하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당시 이란은 미국의 지원을 받은 샤(Shah)가 통치하는 왕정(王政) 체제였습니다. 자유주의자와 사회주의자, 종교 보수주의자 모두 샤의 권위주의를 비판했습니다. 다만 비판의 관점은 달랐습니다. 자유주의자는 왕정이 국민의 자유를 억압해서, 사회주의자는 왕정이 자본주의 체제여서 반대했습니다. 종교 보수주의자는 ‘미국화’가 이란의 전통 가치와 종교를 무너뜨린다고 생각해서 비판했지요.
셋은 일종의 ‘동맹’을 맺고 샤에 대항했습니다. 여기서 종교 보수주의자가 주도권을 잡았습니다. 종교 보수주의자들은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갖춘 다음 농민과 도시 빈민에게 친숙한 언어로 설파했습니다. ‘이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신을 올바로 믿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이게 먹혀들어갔습니다. 종교 보수주의자들은 대중을 동원할 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됐습니다. 그러고는 이란 국민에게 도덕적 이상향을 건설해야 한다는 비전을 심었습니다.”
“푸틴, 러시아 서구화에 제동”
― 러시아 역시 서구 일원이 되느냐, 마느냐를 두고 내부 대립이 이어져 왔습니다.
“그렇습니다. 17세기 말 표트르 대제가 들어서며 서구화를 추진했습니다. 러시아를 서유럽 국가들과 비슷한 선상에 올려두고자 했지요. 그런데 몇십 년 지나지 않아 프랑스혁명(1789)이 터졌습니다. 이후 자유주의가 유럽 전역으로 퍼졌지요. 러시아 차르(Tsar) 입장에서 자유주의는 받아들일 수 없는 사상이었습니다.”
― 왜 그렇습니까.
“차르 전제정(專制政)을 유지해야 한다는 보수주의자가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차르와 귀족의 영적(靈的) 타락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서구화를 더 급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개혁주의자와 대립했습니다. 19세기 러시아 역사는 두 세력 간 대결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사회주의 혁명으로 소련이 들어서고 나서는 어땠습니까.
“개혁주의자 중에서 더욱 급진적인 세력이 국가를 이끌게 됐습니다. 바로 공산주의자였지요. 그렇지만 소련은 곧 경제 부문에서 어려움을 겪게 됐습니다. 그러다가 다시금 서구화를 추진해보겠다는 인물이 등장했습니다. 고르바초프와 옐친이었지요. 그러나 경제는 더욱 수렁에 빠졌습니다. 결국 소련은 해체됐고, 이후 국영 기업의 민영화 과정에서 여러 비리와 부패가 발생하면서 그나마 남아 있던 소련 시절의 부(富)가 무너졌습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바로 블라디미르 푸틴입니다.”
― 푸틴은 어떤 정책을 취했습니까.
“서구화 정책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물론 푸틴이 서구화를 반대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서구화를 잠시 멈추고 러시아 내부의 혼란을 수습하는 게 먼저라고 판단했습니다. 혼란을 수습하면서 동시에 서구와 무역을 하면서 러시아 경제를 안정시키고자 했지요. 여기까지가 2014년까지의 상황입니다.”
“러시아, ‘대륙 민족’의 대표 주자”
― 책에서 2014년 이후 푸틴의 러시아는 ‘신유라시아주의’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신유라시아주의’는 어떤 개념입니까.
“‘신유라시아주의’는 알렉산드르 두긴이라는 러시아 사상가가 만든 이념입니다. 두긴은 2014년 이후 러시아의 사상을 상징하는 인물로 평가됩니다. 일각에선 이 사람을 마치 ‘푸틴의 브레인’으로 묘사하는데, 그건 아닙니다. 두긴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상가들의 이념이 확산하고 있고, 그중 두긴은 가장 널리 알려진 사상가이지요. 신유라시아주의는 ‘타타르의 멍에’를 겪으며 부정적으로 여겨지던 몽골 지배의 역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봤습니다. 몽골 지배의 역사를 바탕으로 러시아가 지금의 국가 정체성(正體性)을 만들 수 있다고 봤습니다. 이를 통해 러시아가 제국의 반열에 오르고, 여러 민족을 아우르는 힘을 갖게 됐다고 평가합니다.”
― 신유라시아주의를 통해 러시아는 무엇이 되려고 하는 겁니까.
“대륙 민족의 대표 주자가 되어 승리의 깃발을 들어 올리려고 할 겁니다. 신유라시아주의에 따르면 영국, 미국, 네덜란드 같은 국가는 바다를 통해 무역을 주도하는 해양 민족입니다. 해양 민족은 가족이나 성 정체성 같은 가치를 금전화해서 교환합니다. 반면 러시아는 대륙 민족으로 분류됩니다. 대륙 민족은 위계 질서를 긍정하고, 화폐로 환산되지 않는 전통과 문화를 지킵니다. 따라서 신유라시아주의는 두 민족 사이 투쟁이 불가피하다고 말합니다.”
― 2010년대 중반 시진핑의 권위주의 통치가 강화된 뒤부터 러시아는 중국과 가까워졌습니다. 1960년대 중소분쟁 이래 두 나라는 껄끄러운 관계였습니다. 두 국가가 지금의 이 관계에서 기대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경제적인 이익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러시아와 중국은 서로를 경계해왔습니다. 고르바초프 집권기 들어 화해하긴 했어도 표면상에 불과했지요. 푸틴 정권은 굳이 중국에 기댈 필요가 없었습니다. 독일이나 프랑스에 가스와 에너지를 팔고, 대신 자본재를 수입해 경제를 성장시켜나가는 방식이 안정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중국에 의존할 경우, 인구가 적은 극동 지역이 ‘중국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컸습니다. 그런데 2014년을 기점으로 러시아가 서구의 경제 제재를 받았습니다. 러시아는 극동 지역 일부가 중국화될 수 있다는 위험에도 중국과 친하게 지내야겠다고 입장을 바꿨습니다. 중국에 에너지를 팔고, 중국산 기술과 자본재를 들여와 서유럽을 대체하겠다는 전략을 세웠지요. 중국 역시 자국의 에너지 수요가 커지고, 동시에 대만해협을 중심으로 미국과 경쟁 구도가 가속화됐습니다. 미국의 군사력이 닿지 않은 내륙 지역을 통해 에너지와 식량을 공급받을 수 있는 루트가 필요했습니다. 러시아가 그 역할을 해줄 수 있다고 봤지요. 서로 이해관계가 들어맞았던 겁니다.”
“러-튀르키예, 서구에 대한 배신감 공유”
― 러시아는 튀르키예와도 궁합이 잘 맞아 보입니다. 에르도안 정권 역시 ‘신오스만주의’를 내세우며 권위주의 통치 체제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어떤 점이 두 국가의 밀착 행보에 영향을 줬습니까.
“러시아와 튀르키예는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물론, 튀르키예는 소련처럼 서방을 적대시하는 국가는 아닙니다. 과거에도, 지금도 튀르키예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일원입니다.
지금이야 에르도안 대통령이 ‘21세기 술탄’이란 평가를 받지만, 처음 당선될 때만 하더라도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개혁을 추구했습니다. 경제 자유화를 통해 경제를 성장시키고, 유럽연합(EU)에 들어가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점차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면서 서구와 마찰을 빚게 됐습니다. 결국 튀르키예의 유럽연합 가입은 멀어지고 있지요. 이 과정에서 과거 정치적 동맹 관계였던 페트라 귤렌과도 사이가 틀어졌습니다. 2016년 군부 쿠데타 진압 이후 에르도안은 당시 미국에 있던 귤렌을 송환하기 위해 미국 정부에 요청했지만 거부당했지요. 쿠데타 진압 당시 서구는 튀르키예에 미온적으로 반응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미뤄봤을 때 서구에 대한 에르도안의 배신감은 컸을 겁니다.
이때 러시아가 손을 내밀었습니다. 두 국가 모두 서구화를 위해 노력했으나 그 일원이 되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니 서로 공유되는 감정이 많았겠지요. 두 국가는 점차 경제 부문에서도 협업이 많아졌습니다. 러시아산 가스관이 튀르키예를 지나면서 튀르키예가 얻는 이익이 커졌지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구가 러시아에 경제 제재를 가하는 상황에서도 튀르키예는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무역 관계를 어느 정도 유지하며 러시아의 숨통을 틔워줬습니다.”
― 튀르키예가 나토를 포기하면서까지 러시아 편에 설 수 있을까요?
“그러지는 않을 거라 봅니다. 나토와의 관계는 지금처럼 유지될 겁니다. 튀르키예 역시 지역 강대국으로서 자기만의 세계관이 있습니다. 러시아를 온전히 신뢰하긴 어렵지요. 미래 상황에 대비해 나토와 함께 갈 것 같습니다. 사실, 나토가 튀르키예를 쫓아내지 않는 이상 튀르키예가 나토를 탈퇴할 이유는 없습니다. 아쉬운 건 오히려 나토입니다. 중동에서의 나토 작전 수행 기지들이 튀르키예에 여럿 있고, 보스포루스해협이라는 지정학적 요충지도 있습니다. 또 튀르키예는 나토 최대의 육군 보유국이기도 하고요. 관계가 다소 불편하더라도 튀르키예와 나토는 계속 동거(同居)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러시아, 소모전 지속할 것”
2024년 2월이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발발(勃發) 2년을 맞이한다. 개전(開戰) 초기 국제사회는 단일대오를 형성해 우크라이나를 도왔다. 그러나 길어지는 전쟁은 세계 각국에 경제적·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했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미국과 유럽의 지원을 받지 못할 위기에 놓여 있다.
예컨대 2023년 9월 바이든 행정부가 2024년도 예산안에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을 넣자 공화당은 멕시코 국경에서 유입되는 불법 이민자 문제부터 해결하라며 반대했다. 유럽연합 내에서도 우크라이나 지원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헝가리와 라트비아 등이 우크라이나 지원에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023년 11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관심이 줄면 도움도 준다. 관심을 최대한 끌기 위해 싸우고 있다”며 국제사회의 도움을 호소했다.
이에 따라 푸틴 대통령은 서방의 지원이 끊기길 기다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되면 우크라이나를 쉽게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푸틴 대통령은 2024년 3월로 예정된 러시아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5번째 연임 도전 선언으로 푸틴 대통령이 이번 대선에서 승리하면 2030년까지 집권하게 된다.
― 개전 초기와 달리 현재 전황(戰況)은 우크라이나가 많이 불리한 모양새입니다. 반면 러시아는 운신의 폭이 넓어진 것 같고요. 이 전쟁을 통해 러시아가 얻는 이익은 무엇입니까.
“확실히 우크라이나가 불리한 상황인 건 맞는 듯합니다. 지난여름 대반격이 실패로 돌아갔고, 서방 역시 점점 더 지원을 망설이고 있습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우크라이나가 점령지에서 자신들을 몰아낼 수 없을 정도로만 전선을 유지하며 지구전·소모전으로 끌고 가겠다는 심산인 듯합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하면 러시아는 민족주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키이우를 비롯해 러시아의 ‘옛 식구’를 다시 통합해냈다는 서사를 완성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정권은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지지도 역시 큰 폭으로 올라갈 것입니다. 또한 서방의 위신과 신뢰성에 타격을 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서방 진영을 분열시킬 좋은 기회지요. 푸틴 역시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 2024년엔 미국 대선이 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러시아에 호재(好材)일까요?
“아무래도 그렇습니다. 트럼프 같은 경우, 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국제 질서에 동참하지 않으려고 하지요. 동맹국 등 외부 지원을 줄이려고 할 겁니다. 트럼프 지지 심리 역시 미국의 기독교 전통과 백인 중심의 문화 가치 수호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러시아의 ‘신유라시아주의’와도 통하는 부분입니다.”
“직접 가본 러시아, 큰 어려움 없어 보여”
― 전쟁 발발 직후 러시아 여행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맥도날드, 스타벅스가 러시아에서 철수하던 시점이었는데, 그 당시 러시아의 모습은 어땠습니까.
“당시는 ‘러시아가 서구의 경제제재로 전쟁 지속력을 잃고, 푸틴은 정치적 위기에 내몰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때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러시아에 가보니 언론이 말하는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어요. 이들과 이야기를 나눠봐도 대부분 ‘큰 어려움은 못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이 전쟁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는 사람도 몇 명 만났습니다.”
― 러시아 현지에서 전쟁 관련 소식이 많이 보도되던가요?
“숙소에서 TV를 틀어봐도 전쟁이나 정치 이야기를 하는 채널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또 도시 분위기 자체도 삭막하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어요. 간혹 도심 광고판에 ‘전쟁 영웅 ○○씨를 기억합니다’ 같은 문구가 걸려 있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전쟁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 ‘역사의 종언의 종언’이 찾아온 지금, 한국은 어떤 외교 전략을 취해야 할까요? 가치 외교로 실익을 거둔 것이 사실입니다만, 이념에 매몰된 것 아니냐는 시선도 존재합니다.
“한국은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틀로 정치 세력이 나뉜 국가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서구 국가임에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잘 운영해올 수 있었습니다. 앞서 설명했듯, 자유주의와 보수주의는 현재 극단에서 대립하고 있습니다. 두 이념의 화해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따라서 한국은 이념의 합의점을 찾아 그에 따른 한국만의 모델을 제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서구 진영의 일원으로서 한국이 해낼 역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임 작가는 국제 정치 전문가를 꿈꾸는 차세대 연구자로 현재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그간 책도 여러 권 펴냈다. 최근 러시아의 과거, 현재, 미래를 조망하는 책 《러시아는 무엇이 되려 하는가》를 출간했다. 석사 과정을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계획이다. 임 작가는 “아제르바이잔을 중심으로 냉전 시대 튀르키예, 이란, 소련의 관계를 연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 이후에는 중동 및 유라시아와 비교 연구를 통해 한국 역사를 탐구하고 싶다”고 했다.
“고교 시절 ‘혁명’ 멋있어 보여 러시아에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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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러시아는 무엇이 되려 하는가》 |
“특별한 계기라기보단 고등학생 때 세계사를 공부하며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소련사가 그렇게 재밌더군요. 철이 없을 때라 ‘혁명’ 같은 것들이 마냥 멋있어 보였습니다(웃음). 정치 성향도 당시엔 좌(左) 쪽이기도 했고요. 지금은 성향이 많이 바뀌었지만, 러시아에 대한 관심은 여전합니다. 대학에 가서 러시아어를 공부했고, 실제 이 지역을 여행하며 이 분야를 깊게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아제르바이잔과 러시아 혁명’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계획 중이라던데, 러시아를 넘어 아제르바이잔까지 관심을 넓힌 이유가 있습니까.
“학부 1학년 때 이슬람 문명사 수업을 들었습니다. 흥미롭더군요. 러시아어도 배워놨겠다, 이 지역 여행도 많이 다녔겠다, 관심이 많은 상태였지요. 그렇다고 중동 지역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긴 싫었습니다. 중동과 러시아가 만나는 지역을 공부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중 아제르바이잔이라는 국가를 선택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종언의 종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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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3년 3월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서 건배하고 있다. 푸틴은 중국어로 ‘간베이(乾杯)’를 외쳤다. 사진=AP/뉴시스 |
“‘역사의 종언’은 미국의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한 말입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며 냉전이 끝이 났습니다. 소련이 주도한 사회주의가 서구 주도의 자유민주주의에 패배했지요. 후쿠야마는 이를 계기로 자유민주주의가 인류 보편의 가치 체계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고 봤습니다. 자유주의·계몽주의 사상이 왕정, 교회, 파시즘, 나치즘, 공산주의와 싸워 마침내 이긴 겁니다. 그가 말한 ‘역사의 종언’이란 ‘정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지 않아도 되는 역사관을 가리킵니다.”
― 그럼 ‘역사의 종언의 종언’은요?
“자유주의나 민주주의, 시장 경제 등 ‘역사의 종언’ 이후 당연시된 이념을 ‘당연하지 않다’고 보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역사의 종언의 종언’으로 정의했습니다.”
―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역사의 종언의 종언’으로 봤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언’을 선언하고 얼마 되지 않아 많은 학자가 ‘오만한 선언’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실제 1990년대부터 ‘역사의 종언’에 의문을 품을 만한 사건이 여럿 발생했습니다. 유고슬라비아 내전(1991), 제1·2차 체첸 전쟁(1994~2009) 등이 대표적이지요. 그래도 당시에는 서구의 자유주의가 ‘변방의 사건’을 포섭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2008년 미국에서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중국의 권위주의 강화, 아랍의 봄 실패 등으로 깎여나가게 됐습니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역시 이런 사건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이 더욱 충격적이었던 건 무력에 의한 영토 변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1945년 이후 체제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지요. 서방의 자유주의와 잘 지내보려고 노력했던 러시아는 크림반도 합병을 계기로 이들과 날을 세우게 됩니다. 이런 이유에서 ‘역사의 종언의 종언’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으로 봤습니다.”
“신전통주의, 전통 사회 유지 위해 정치 변화 감수”
― 최근 몇 년간 치러진 전 세계 선거 결과를 보면 권위주의, 비(非)자유주의, 민족주의와 맞닿은 신(新)전통주의가 확산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보수주의와 차이가 있다면요?
“신전통주의는 각 국가와 민족의 전통에 근거해 사회를 규율해야 한다고 믿으면서도, 현대 물질문명을 거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전통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정치 변화까지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이 기존 보수주의와 구분됩니다.”
― 신전통주의가 확산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봅니까.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전통 가치와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이 필요해졌습니다. 이성만으론 채울 수 없는 결핍이지요. 신전통주의는 그걸 일정 부분 해결해줄 수 있습니다.
둘째, 과거 냉전 체제에서 보수주의와 자유주의는 소련의 공산주의라는 공동의 적이 있었습니다. 소련이 무너지자 두 이념은 서로 타협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서로의 주장을 앞세우며 사람들에게 선택을 강요했지요. 러시아,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중국 같은 국가들은 신전통주의를 택했습니다. 서구에서도 최근 들어 신전통주의가 힘을 얻는 상황입니다.”
― 1·2차 세계대전 사이 퍼진 파시즘과도 유사해보입니다.
“사상적 계보는 파시즘과 맞닿아 있습니다. 다만, 당시 파시즘은 이념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분출됐던 것이고요. 지금의 신전통주의는 선거를 통한 집권과 시장 경제를 지향하고 있어 구분되는 면이 있습니다.”
― 신권(神權) 통치를 강화하는 이란도 비슷한 맥락에 있다고 보면 될까요? 이성적으로 봤을 때 신권 통치는 비합리적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1979년 이슬람 혁명이 성공하고, 지금까지 유지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1979년이면 이미 인터넷이 나오고 있을 시점이었지요. 당시에도 ‘무슨 종교 혁명이냐’ 하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당시 이란은 미국의 지원을 받은 샤(Shah)가 통치하는 왕정(王政) 체제였습니다. 자유주의자와 사회주의자, 종교 보수주의자 모두 샤의 권위주의를 비판했습니다. 다만 비판의 관점은 달랐습니다. 자유주의자는 왕정이 국민의 자유를 억압해서, 사회주의자는 왕정이 자본주의 체제여서 반대했습니다. 종교 보수주의자는 ‘미국화’가 이란의 전통 가치와 종교를 무너뜨린다고 생각해서 비판했지요.
셋은 일종의 ‘동맹’을 맺고 샤에 대항했습니다. 여기서 종교 보수주의자가 주도권을 잡았습니다. 종교 보수주의자들은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갖춘 다음 농민과 도시 빈민에게 친숙한 언어로 설파했습니다. ‘이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신을 올바로 믿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이게 먹혀들어갔습니다. 종교 보수주의자들은 대중을 동원할 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됐습니다. 그러고는 이란 국민에게 도덕적 이상향을 건설해야 한다는 비전을 심었습니다.”
“푸틴, 러시아 서구화에 제동”
― 러시아 역시 서구 일원이 되느냐, 마느냐를 두고 내부 대립이 이어져 왔습니다.
“그렇습니다. 17세기 말 표트르 대제가 들어서며 서구화를 추진했습니다. 러시아를 서유럽 국가들과 비슷한 선상에 올려두고자 했지요. 그런데 몇십 년 지나지 않아 프랑스혁명(1789)이 터졌습니다. 이후 자유주의가 유럽 전역으로 퍼졌지요. 러시아 차르(Tsar) 입장에서 자유주의는 받아들일 수 없는 사상이었습니다.”
― 왜 그렇습니까.
“차르 전제정(專制政)을 유지해야 한다는 보수주의자가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차르와 귀족의 영적(靈的) 타락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서구화를 더 급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개혁주의자와 대립했습니다. 19세기 러시아 역사는 두 세력 간 대결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사회주의 혁명으로 소련이 들어서고 나서는 어땠습니까.
“개혁주의자 중에서 더욱 급진적인 세력이 국가를 이끌게 됐습니다. 바로 공산주의자였지요. 그렇지만 소련은 곧 경제 부문에서 어려움을 겪게 됐습니다. 그러다가 다시금 서구화를 추진해보겠다는 인물이 등장했습니다. 고르바초프와 옐친이었지요. 그러나 경제는 더욱 수렁에 빠졌습니다. 결국 소련은 해체됐고, 이후 국영 기업의 민영화 과정에서 여러 비리와 부패가 발생하면서 그나마 남아 있던 소련 시절의 부(富)가 무너졌습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바로 블라디미르 푸틴입니다.”
― 푸틴은 어떤 정책을 취했습니까.
“서구화 정책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물론 푸틴이 서구화를 반대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서구화를 잠시 멈추고 러시아 내부의 혼란을 수습하는 게 먼저라고 판단했습니다. 혼란을 수습하면서 동시에 서구와 무역을 하면서 러시아 경제를 안정시키고자 했지요. 여기까지가 2014년까지의 상황입니다.”
“러시아, ‘대륙 민족’의 대표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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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라시아주의 이론을 수립한 알렉산드르 두긴. 사진=AP/뉴시스 |
“‘신유라시아주의’는 알렉산드르 두긴이라는 러시아 사상가가 만든 이념입니다. 두긴은 2014년 이후 러시아의 사상을 상징하는 인물로 평가됩니다. 일각에선 이 사람을 마치 ‘푸틴의 브레인’으로 묘사하는데, 그건 아닙니다. 두긴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상가들의 이념이 확산하고 있고, 그중 두긴은 가장 널리 알려진 사상가이지요. 신유라시아주의는 ‘타타르의 멍에’를 겪으며 부정적으로 여겨지던 몽골 지배의 역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봤습니다. 몽골 지배의 역사를 바탕으로 러시아가 지금의 국가 정체성(正體性)을 만들 수 있다고 봤습니다. 이를 통해 러시아가 제국의 반열에 오르고, 여러 민족을 아우르는 힘을 갖게 됐다고 평가합니다.”
― 신유라시아주의를 통해 러시아는 무엇이 되려고 하는 겁니까.
“대륙 민족의 대표 주자가 되어 승리의 깃발을 들어 올리려고 할 겁니다. 신유라시아주의에 따르면 영국, 미국, 네덜란드 같은 국가는 바다를 통해 무역을 주도하는 해양 민족입니다. 해양 민족은 가족이나 성 정체성 같은 가치를 금전화해서 교환합니다. 반면 러시아는 대륙 민족으로 분류됩니다. 대륙 민족은 위계 질서를 긍정하고, 화폐로 환산되지 않는 전통과 문화를 지킵니다. 따라서 신유라시아주의는 두 민족 사이 투쟁이 불가피하다고 말합니다.”
― 2010년대 중반 시진핑의 권위주의 통치가 강화된 뒤부터 러시아는 중국과 가까워졌습니다. 1960년대 중소분쟁 이래 두 나라는 껄끄러운 관계였습니다. 두 국가가 지금의 이 관계에서 기대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경제적인 이익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러시아와 중국은 서로를 경계해왔습니다. 고르바초프 집권기 들어 화해하긴 했어도 표면상에 불과했지요. 푸틴 정권은 굳이 중국에 기댈 필요가 없었습니다. 독일이나 프랑스에 가스와 에너지를 팔고, 대신 자본재를 수입해 경제를 성장시켜나가는 방식이 안정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중국에 의존할 경우, 인구가 적은 극동 지역이 ‘중국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컸습니다. 그런데 2014년을 기점으로 러시아가 서구의 경제 제재를 받았습니다. 러시아는 극동 지역 일부가 중국화될 수 있다는 위험에도 중국과 친하게 지내야겠다고 입장을 바꿨습니다. 중국에 에너지를 팔고, 중국산 기술과 자본재를 들여와 서유럽을 대체하겠다는 전략을 세웠지요. 중국 역시 자국의 에너지 수요가 커지고, 동시에 대만해협을 중심으로 미국과 경쟁 구도가 가속화됐습니다. 미국의 군사력이 닿지 않은 내륙 지역을 통해 에너지와 식량을 공급받을 수 있는 루트가 필요했습니다. 러시아가 그 역할을 해줄 수 있다고 봤지요. 서로 이해관계가 들어맞았던 겁니다.”
“러-튀르키예, 서구에 대한 배신감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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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2023년 9월 4일 러시아 남부 소치에서 만나 회담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했지만, 차츰 러시아와 경제 관계를 확대하고, 푸틴 대통령을 “내 친구”라고 칭했다. 사진=AP/뉴시스 |
“러시아와 튀르키예는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물론, 튀르키예는 소련처럼 서방을 적대시하는 국가는 아닙니다. 과거에도, 지금도 튀르키예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일원입니다.
지금이야 에르도안 대통령이 ‘21세기 술탄’이란 평가를 받지만, 처음 당선될 때만 하더라도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개혁을 추구했습니다. 경제 자유화를 통해 경제를 성장시키고, 유럽연합(EU)에 들어가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점차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면서 서구와 마찰을 빚게 됐습니다. 결국 튀르키예의 유럽연합 가입은 멀어지고 있지요. 이 과정에서 과거 정치적 동맹 관계였던 페트라 귤렌과도 사이가 틀어졌습니다. 2016년 군부 쿠데타 진압 이후 에르도안은 당시 미국에 있던 귤렌을 송환하기 위해 미국 정부에 요청했지만 거부당했지요. 쿠데타 진압 당시 서구는 튀르키예에 미온적으로 반응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미뤄봤을 때 서구에 대한 에르도안의 배신감은 컸을 겁니다.
이때 러시아가 손을 내밀었습니다. 두 국가 모두 서구화를 위해 노력했으나 그 일원이 되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니 서로 공유되는 감정이 많았겠지요. 두 국가는 점차 경제 부문에서도 협업이 많아졌습니다. 러시아산 가스관이 튀르키예를 지나면서 튀르키예가 얻는 이익이 커졌지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구가 러시아에 경제 제재를 가하는 상황에서도 튀르키예는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무역 관계를 어느 정도 유지하며 러시아의 숨통을 틔워줬습니다.”
― 튀르키예가 나토를 포기하면서까지 러시아 편에 설 수 있을까요?
“그러지는 않을 거라 봅니다. 나토와의 관계는 지금처럼 유지될 겁니다. 튀르키예 역시 지역 강대국으로서 자기만의 세계관이 있습니다. 러시아를 온전히 신뢰하긴 어렵지요. 미래 상황에 대비해 나토와 함께 갈 것 같습니다. 사실, 나토가 튀르키예를 쫓아내지 않는 이상 튀르키예가 나토를 탈퇴할 이유는 없습니다. 아쉬운 건 오히려 나토입니다. 중동에서의 나토 작전 수행 기지들이 튀르키예에 여럿 있고, 보스포루스해협이라는 지정학적 요충지도 있습니다. 또 튀르키예는 나토 최대의 육군 보유국이기도 하고요. 관계가 다소 불편하더라도 튀르키예와 나토는 계속 동거(同居)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러시아, 소모전 지속할 것”
2024년 2월이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발발(勃發) 2년을 맞이한다. 개전(開戰) 초기 국제사회는 단일대오를 형성해 우크라이나를 도왔다. 그러나 길어지는 전쟁은 세계 각국에 경제적·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했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미국과 유럽의 지원을 받지 못할 위기에 놓여 있다.
예컨대 2023년 9월 바이든 행정부가 2024년도 예산안에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을 넣자 공화당은 멕시코 국경에서 유입되는 불법 이민자 문제부터 해결하라며 반대했다. 유럽연합 내에서도 우크라이나 지원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헝가리와 라트비아 등이 우크라이나 지원에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023년 11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관심이 줄면 도움도 준다. 관심을 최대한 끌기 위해 싸우고 있다”며 국제사회의 도움을 호소했다.
이에 따라 푸틴 대통령은 서방의 지원이 끊기길 기다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되면 우크라이나를 쉽게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푸틴 대통령은 2024년 3월로 예정된 러시아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5번째 연임 도전 선언으로 푸틴 대통령이 이번 대선에서 승리하면 2030년까지 집권하게 된다.
― 개전 초기와 달리 현재 전황(戰況)은 우크라이나가 많이 불리한 모양새입니다. 반면 러시아는 운신의 폭이 넓어진 것 같고요. 이 전쟁을 통해 러시아가 얻는 이익은 무엇입니까.
“확실히 우크라이나가 불리한 상황인 건 맞는 듯합니다. 지난여름 대반격이 실패로 돌아갔고, 서방 역시 점점 더 지원을 망설이고 있습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우크라이나가 점령지에서 자신들을 몰아낼 수 없을 정도로만 전선을 유지하며 지구전·소모전으로 끌고 가겠다는 심산인 듯합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하면 러시아는 민족주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키이우를 비롯해 러시아의 ‘옛 식구’를 다시 통합해냈다는 서사를 완성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정권은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지지도 역시 큰 폭으로 올라갈 것입니다. 또한 서방의 위신과 신뢰성에 타격을 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서방 진영을 분열시킬 좋은 기회지요. 푸틴 역시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 2024년엔 미국 대선이 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러시아에 호재(好材)일까요?
“아무래도 그렇습니다. 트럼프 같은 경우, 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국제 질서에 동참하지 않으려고 하지요. 동맹국 등 외부 지원을 줄이려고 할 겁니다. 트럼프 지지 심리 역시 미국의 기독교 전통과 백인 중심의 문화 가치 수호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러시아의 ‘신유라시아주의’와도 통하는 부분입니다.”
“직접 가본 러시아, 큰 어려움 없어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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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러시아 여행 당시 카잔의 짝퉁 맥도날드 ‘프쿠스노 이 토치카(맛있으면 그만)’ 앞을 메운 손님들. 사진=임명묵 |
“당시는 ‘러시아가 서구의 경제제재로 전쟁 지속력을 잃고, 푸틴은 정치적 위기에 내몰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때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러시아에 가보니 언론이 말하는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어요. 이들과 이야기를 나눠봐도 대부분 ‘큰 어려움은 못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이 전쟁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는 사람도 몇 명 만났습니다.”
― 러시아 현지에서 전쟁 관련 소식이 많이 보도되던가요?
“숙소에서 TV를 틀어봐도 전쟁이나 정치 이야기를 하는 채널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또 도시 분위기 자체도 삭막하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어요. 간혹 도심 광고판에 ‘전쟁 영웅 ○○씨를 기억합니다’ 같은 문구가 걸려 있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전쟁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 ‘역사의 종언의 종언’이 찾아온 지금, 한국은 어떤 외교 전략을 취해야 할까요? 가치 외교로 실익을 거둔 것이 사실입니다만, 이념에 매몰된 것 아니냐는 시선도 존재합니다.
“한국은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틀로 정치 세력이 나뉜 국가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서구 국가임에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잘 운영해올 수 있었습니다. 앞서 설명했듯, 자유주의와 보수주의는 현재 극단에서 대립하고 있습니다. 두 이념의 화해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따라서 한국은 이념의 합의점을 찾아 그에 따른 한국만의 모델을 제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서구 진영의 일원으로서 한국이 해낼 역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