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나들이

‘가내수공업’으로 음악 만드는 사람들

“약간의 지식만 갖추면 누구든 근사한 음악 만들 수 있어”

  • 글 : 김세윤 월간조선 기자  gasout@chosun.com
글자 크기 조정
  • 스크랩
  • 본문 음성 듣기
  • 글자 크기 조정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
⊙ “디지털 기술 발전, 음악의 진입 문턱 낮춰”
⊙ “홈 리코딩, ‘자연스러운 음악’ 만드는 데 도움”
⊙ “값비싼 녹음 스튜디오 찾지 않아도 음원 발매 가능해”
⊙ “홈 리코딩 아닌 ‘홈 스튜디오’의 시대”
김성하씨(맨 오른쪽)와 친구들이 7월 2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라이브 바에서 공연하는 모습. 사진=김세윤
미국 버클리음악대학(Berklee College of Music)에서 드럼을 전공하고 있는 김성하(22)씨. 학기를 마치고 잠시 한국으로 돌아온 여름방학이면 유독 바빠진다. 친구들과 함께 결성한 밴드의 녹음 일정이 빼곡히 잡혀 있기 때문이다. 성하씨의 친구들은 작년부터 틈틈이 녹음한 곡들을 모아 지난 5월 첫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다. 친구들은 두 번째 앨범 녹음을 위해 성하씨가 한국으로 돌아오는 이번 여름만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음악 진입 문턱 낮아져”
 
  사실 음악에 관한 지식이 많지 않은 일반인들에게 작곡과 녹음은 쉽게 다가가기 힘든 영역이다. 유명 작곡가가 5분 만에 ‘뚝딱’ 곡을 써냈다느니,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가 꿈속에서 들은 선율을 기억해 ‘Yesterday’를 만들었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아리송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성하씨는 “이제는 일반인들도 음악에 진입할 수 있는 문턱이 낮아졌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성하씨의 설명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손쉽게 서로의 작업물을 주고받을 수 있는 시대예요.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공동으로 작업이 가능하죠. 저도 학기 중엔 미국에 머물고 있지만 수시로 친구들과 작업물을 공유하며 앨범을 준비해왔어요. 사실 이번 드럼 녹음도 ‘다 된 밥에 숟가락 얹기’에 가까워요. 제가 직접 연주해서 녹음해야 할 드럼 소리는 이미 로직(logic)이나 큐베이스(Cubase) 같은 DAW(Digital Audio Workstation·음악의 녹음, 편집, 재생을 하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에서 디지털 형태로 만들어진 상태거든요. 음악에 관한 약간의 지식만 갖추면 누구든지 꽤 근사한 음악을 만들 수 있어요.”
 

  우리가 듣는 대중가요 음원은 크게 6단계 과정을 거쳐 발매된다. 먼저, 멜로디와 코드(chord)를 조합해 곡을 만든다. 이 단계에서 곡은 건반이나 기타 하나로 반주할 수 있는 간단한 형식일 경우가 많다. 그런 다음 편곡 작업이 진행된다. 곡의 템포는 어느 정도로 할지, 어떤 악기를 사용할지, 어떤 주법을 사용할지, 보컬의 화음은 어떻게 쌓을지 등을 정하는 단계다. 앞선 단계가 흰 도화지에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이었다면, 편곡 단계는 마음에 드는 색깔로 명암(明暗)을 줘가며 색을 칠하는 것과 같다. 여기까지 마무리되면 ‘가이드 녹음’에 들어간다. DAW 프로그램 내 ‘가상 악기’를 활용해 드럼, 베이스, 건반, 기타 등의 사운드를 디지털로 구현한다. 마우스 클릭 몇 번만으로 위 악기들의 소리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흔히 ‘비트를 찍는다’라고 표현한다.
 
  여기까지 마무리되면 본녹음에 들어간다. 곡을 숙지한 연주자들이 차례차례 자신의 파트를 녹음한다. 일반적으로 드럼-베이스-건반-기타-보컬 순서를 따른다. 예컨대 드럼 녹음의 경우 미리 만들어둔 가이드 녹음에서 드럼 트랙만 뺀 노래를 들으면서 드럼을 연주한다. 바통을 넘겨받은 베이스 연주자도 가이드 녹음에서 베이스 트랙만 뺀 노래를 들으며 자신의 파트를 연주한다. 이 과정까지 끝났다고 해서 곧장 음원을 발매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믹싱(mixing)과 마스터링(mastering) 작업을 거쳐야 한다. 믹싱이란 소리를 혼합하는 과정으로 한 곡에 녹음된 다양한 트랙의 강도, 주파수, 노이즈 따위를 조절한 뒤 잔향, 컴프레션과 같은 음향 효과를 덧입히는 것을 말한다. 마스터링이란 믹싱이 끝난 음원의 음량을 키우고 음색을 최종 점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을 끝마쳐야 비로소 우리가 듣는 깔끔한 음원 형태가 완성된다. 믹싱과 마스터링 작업은 음향 기술의 영역이라 전문 엔지니어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다.
 
 
  “디테일 표현에 신경 써”
 
악기와 마이크 세팅이 끝난 뒤 김성하씨는 드럼 녹음을 시작했다.
  지난 7월 26일 저녁 성하씨를 따라 홍대입구역 인근 드럼 녹음 현장에 동행했다. 이날 녹음할 곡은 ‘얼터너티브 록(Alternative Rock)’ 장르로 리드미컬한 드럼 연주가 돋보이는 곡이다. 리얼 드럼 소리와 가상 드럼 소리가 어떤 차이가 있느냐는 질문에 성하씨는 “리얼 드럼 소리는 조금 더 자연스러운 느낌을 줘요. 특히나 오늘 녹음할 곡은 록 장르인데, 아무래도 리얼 드럼이 곡의 색깔과 더 잘 어울리죠”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드럼만 이렇게 스튜디오에서 녹음하고 베이스, 기타 등 나머지 파트는 모두 각자의 집에서 따로 녹음한 뒤 합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악기와 마이크 세팅이 끝난 뒤 본격적인 녹음이 시작됐다. 먼저 성하씨는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원 테이크(one take)로 녹음한 뒤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일부 구간을 다시 연주했다. 그런 다음 ‘고스트 노트(Ghost Note·박자를 잘게 쪼개 들릴 듯 말 듯 연주하는 기법)’와 ‘필인(Fill in·멜로디의 공백 부분을 장식하는 리듬)’처럼 섬세한 터치가 필요한 몇몇 부분을 반복 녹음하며 곡의 완성도를 높였다. 스튜디오를 대여한 2시간이 순식간에 흘렀다. 마침내 수정 작업까지 마무리한 성하씨는 “처음부터 한번 들어볼게요”라고 외쳤다. 최종 점검이 끝나자 성하씨는 녹음 부스 밖으로 나왔다. 밴드 구성원들도 이날 결과물에 만족한 듯 서로의 어깨를 두드렸다. 성하씨는 “녹음 신호가 들어오고 처음엔 긴장했지만, 이내 연주에 몰입할 수 있었다”면서 “곡이 보다 입체적으로 들릴 수 있도록 디테일 표현에 신경 썼다”고 소감을 밝혔다.
 
 
  “악기 다루지 못해도 작곡 가능”
 
장하림씨는 그간 작업한 음악들을 하나하나 들려주며 음원 제작 과정을 설명했다.
  다른 장르의 음원 제작 과정은 어떨까? 8월 2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주택에서 힙합 음악가 장하림(29)씨를 만났다. 하림씨는 이곳을 “자취방이자 동시에 작업실”이라고 소개했다. ‘림헤엄’이라는 아티스트 명으로 활동하는 하림씨는 지난 2017년 데뷔한 이래 지금껏 1장의 정규 앨범과 2장의 EP 앨범 그리고 여러 장의 싱글 앨범을 발매했다. 그는 이 모든 앨범을 오롯이 이 자취방에서 만들었다며 자신의 작업 방식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유튜브나 음원 공유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국내외 프로듀서들이 작업해 올려놓은 음악 파일이 있어요. 가사는 없고 반주만 있는 형태죠. 이 중 마음에 드는 음악을 발견하면 해당 프로듀서와 연락해 돈을 지불하고 구매합니다. 그 위에 제가 만든 멜로디와 랩 가사를 덧입히는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녹음이 끝나면 주변 친구나 전문 엔지니어에게 믹싱·마스터링 작업을 맡긴 뒤에 음원을 발매합니다. 제가 봤을 때 힙합은 다른 장르보다 진입 문턱이 훨씬 더 낮은 것 같아요. 정해진 작법도, 형식도 없죠. 록 음악가들과 달리 악기를 다루지 못해도 작곡이 가능해요.”
 

  하림씨는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좋은 음악이란 ‘자연스러운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자신만의 색깔과 표현 방식이 오롯이 담긴 음악이 자연스러운 음악이죠. 이 방 안엔 꼭 따라야 하는 질서라든지, 위계 같은 것이 없잖아요. 이런 점에서 홈 리코딩은 그야말로 내 안의 자연스러움을 끄집어낼 수 있는 최적의 방식이죠.”
 
 
  “80~90년대, 연주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 녹음”
 
손무현 한양여대 실용음악과 교수.
  그렇다면 음악 전문가는 홈 리코딩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손무현 한양여대 실용음악과 교수와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손 교수는 국내 최고의 기타리스트 중 한 명으로 ‘문화 대통령’ 서태지와 음악 작업을 함께하기도 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곡 ‘난 알아요’(1992)의 댄스 브레이크 파트에 등장하는 강렬한 기타 소리가 바로 손 교수의 연주다. 동시에 그는 작곡가로도 활발히 활동하며 김완선의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1990) 같은 명곡(名曲)을 작곡하기도 했다. 손 교수는 자신이 활발히 활동했던 1990년대 녹음 기술을 이렇게 회상했다.
 
  “그때는 모두 아날로그 녹음 방식이었어요. 디지털 녹음이라는 것이 없었지요. 만약 녹음 중간에 연주를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어요. 지금처럼 틀린 부분만 수정하면 되는 시스템이 아니었지요(웃음). 또 컴퓨터 용량만 되면 무한대로 트랙을 늘릴 수 있는 지금과 달리 그 당시엔 24트랙만 녹음할 수 있는 녹음기가 전부였어요. 24트랙 안에서 어떻게 하면 완성도 있는 곡을 뽑아낼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었죠.”
 
  손 교수에게 홈 리코딩 방식으로 녹음한 곡과 좋은 장비로 가득 찬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곡의 차이를 물어봤다. 그는 “집에서 쓰는 10만원짜리 장비와 수천만원짜리 스튜디오 장비에는 물론 차이가 있죠. 그렇지만 점점 그 퀄리티의 차이가 희미해지고 있어요. 전문가도 쉽게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지요. 값싸고 질 좋은 장비는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이고요. 이에 따라 음악을 즐기는 인구는 더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봐요. 그래서 저는 ‘홈 리코딩’이 아닌 ‘홈 스튜디오’의 시대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컴퓨터에 DAW 프로그램이 깔려 있고, 기본적인 장비만 갖추고 있다면 내 방이 곧 스튜디오가 되는 거죠. 굳이 비싼 돈을 지불하며 스튜디오를 대여하지 않아도 충분히 음원을 낼 수 있는 환경이 된 거죠.”
 
  끝으로 손무현 교수는 교육자다운 바람도 덧붙였다.
 
  “요즘은 학교 컴퓨터 수업 시간에 코딩을 가르치잖아요. 그것처럼 기본적인 장비를 활용해 간단한 음악을 만드는 수업도 정규 음악 교육 과정에 편성한다면 우리 음악의 저변이 더욱 확대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 스크랩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