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신정변 이후 조선은 사실상 중국의 속국(屬國)으로 전락한다. 러시아와 전 세계적 차원에서 ‘그레이트게임’을 벌이고 있던 영국은 러시아가 시베리아횡단열차 건설을 추진하자 거문도를 점령해 러시아를 견제하는 한편, 일본의 해군력 확장을 지원하는 등 일본과의 유대를 강화한다. 청국은 한때 양무운동을 적극 추진해 세계적 수준의 북양함대를 건설하지만, 내부의 부정부패 때문에 속 빈 강정이 되고 만다. 반면에 북양함대의 등장에 충격을 받은 일본은 국력을 기울여 근대화된 해군을 건설하기 위해 노력한다.
국제정세가 이렇게 급박하게 돌아가는 사이에 조선 조정은 갑신정변 실패 후 일본 망명 중이던 김옥균을 기를 쓰고 암살하고, 교조신원을 요구하는 동학도들의 요구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허둥댄다. 동학란이 일어나자 이를 초기에 진압하지 못한 조선 조정은 청나라에 원병을 요청하지만 한발 앞서 일본군이 들어오면서 청일전쟁이 벌어진다. 일본이 승리하면서 동북아의 패권은 일본으로 넘어간다.
당시 조선 사람들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던 유럽 열강의 패권 다툼이 유라시아대륙 동쪽 끝 조선의 운명을 결정지었고, 조선에서 일어난 변란은 동북아 역사를 흔들어놓았다. 120여 년 전에도 이미 세계의 역사는 하나로 엮여서 돌아가고 있었다.
그 바람에 망국의 쓰라림까지 맛보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우크라이나 사태가 우리나라와 무슨 상관이냐?”는 수준의 인식에 머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