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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

한 사회학자가 본 트로트 열풍

코로나19·내로남불 시대에 ‘인간미 넘치는 관계성의 가치’ 제시

글 : 김경동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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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목표 향해 경쟁하면서도 서로의 어려움을 共有하고 따뜻한 情을 나누는 모습에 감동
⊙ 투병·死別·자녀취업 등 어려움 토로하면서 한풀이의 카타르시스 제공
⊙ 〈사랑의 콜센타〉 〈뽕숭아학당〉 등 후속 프로그램 통해 경연 우승자들끼리 인간관계 이어가고, 기성세대 가수나 팬들과 소통

金璟東
1936년생.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미국 코넬대 사회학 박사 /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한국사회학회장,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사회분과위원, 정보사회학회장·이사장 / ‘성숙한 사회를 가꾸는 모임’ 상임공동대표, 한국자원봉사협의회 공동대표 역임 / 現 서울대 명예교수, 학술원 회원
TV조선 〈사랑의 콜센타〉 녹화 현장에서 김성주·붐 두 MC와 임영웅·영탁·이찬원·정동원·장민호·김희재 톱6와 만난 서혜진 PD(가운데). 사진=TV조선
  상냥한 직원의 인도에 따라 대강당의 육중한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잔잔한 악기 연주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방문하는 이곳은 구청의 문화예술회관으로 각종 공식 행사는 물론 정기적인 음악과 기타 각종 연예 프로그램을 개최하는 곳이다. 그날은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백신 접종차 간 참이었다. 이 회관 로비에 접종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 접종을 마치면 이상증세 등 후유증을 확인하기 위해 20~30분간 대기 시간을 갖도록 하는 순서에 따라 이 대강당에 들어온 것이다.
 
  지정 좌석에 앉자마자 그 음악 소리가 어디서 나는지부터 확인하려고 두리번거리던 내 눈은 강당 정면의 무대 오른쪽 높은 벽면에 걸린 대형 전광판 동영상에 멎었다. 어디서 많이 듣던 매우 익숙한 멜로디인데 분명 서양의 클래식 곡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의 보호자로 동행하여 곁에 앉은 큰아이에게 “저게 무슨 곡이지?” 하고 물었다. “저거 영탁의 ‘찐찐찐찐 찐이야’ 아녜요” 하고 속삭이는 대답이 돌아왔다.
 

  최근, 특히 지난 일 년 사이에는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집콕의 철장 속에 갇힌 몸이 되어 밤낮으로 일만 계속할 수 없어서 여가활용 내지 휴식을 위해 맛을 들이기 시작한 것이 주로 TV 채널이 방영하는 음악 프로그램이었다. 워낙 여러 채널에서 다양한 음악 프로그램을 운용하므로 그걸 깡그리 감상할 필요는 없고 해서 선택한 것이 첫째로 트로트 음악 프로그램과, 둘째로 JTBC 방송이 지난 몇 해 사이 세 차례 방영한 남성사중창 경연대회 〈팬텀 싱어즈〉다.
 
  남성사중창은 그 어떤 음악 발표 형식보다도 감동을 쉽게 받을 수 있는 요소가 많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네 사람의 남성이 뿜어내는 화음(和音)의 울림과 아름다운 감흥이다. 그리고 요즘 들어 이 프로그램에서도 크로스오버를 허용하여 서양 클래식 외에 한국의 가곡과 가요, 동서양 여러 나라의 국민음악 등 여러 장르를 선택적으로 공연하고 있어서 내용이 더 풍부해졌다. 그중 감동받기가 어려운 곡은 이탈리아 가곡이나 가요다. 언어불통이 한 가지 걸림돌이긴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고 어쩐지 그 나라 노래는 내 취향이 아닌 경우가 많다.
 
 
  트로트는 ‘속보·구보’라는 의미
 
  그러면 지금부터 ‘트로트’ 열풍에 관한 사회학도의 관찰을 엮어보기로 한다. 먼저 이름부터 잠시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유행가를, 원래 ‘뽕짝’이라고 부르던 것인데, 언제부턴지 트로트(혹은 트롯)라는 외래어가 이를 대체하기 시작한 것 같다. 영어로는 ‘trot’에 해당한다. 이 말은 속보(速步), 구보(驅步) 혹은 총총걸음을 뜻하고, 빠른 걸음으로 하는 산책, 또는 하루 종일 종종거리며 바쁘게 쉴 새 없이 일하고 움직인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이것을 노래와 관련해서 표현할 때는 ‘노래 한 곡조 불러 보인다’를 ‘trot out a song’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노래를 불러 자랑하는 행동’을 가리키는데, 그것이 대체로 약간은 빠른 템포의 성질을 내포하며 가볍게 부르는 노래라는 말이다. TV조선에서 방영한 〈사랑의 콜센타〉 프로그램에서 하루는 미국에 거주하는 여성이 전화 통화의 주인공이 되었을 때, 콜센터 센터장(사회자) 김성주가 “지금 무슨 일 하시던 중입니까?”라고 물었는데, 그 여성이 “저 〈미스터 츠〉 보고 있었어요”라고 해서 출연자 모두의 웃음을 자아낸 일이 있다. 트로트의 미국식 발음은 더 정확하게 하자면 ‘츠’에 가깝다는 말이다.
 
  그 트로트가 왜 지금의 한국인 가슴과 마음을 이리도 뜨겁게 휘저어놓고 있는지 신기할 수밖에 없다.
 
  원래 트로트라는 유행가는 민족적인 한(恨)풀이 성격을 내포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우리 역사는 되풀이된 외세 침략과 내적인 갈등으로 인한 끊임없는 한풀이로 점철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19세기 말, 20세기 초 근대화의 물결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던 시절, 망국(亡國)의 서러운 한풀이는 권력 독점에 의한 지배층의 부패와 무능으로 백성의 삶을 황폐화한 데 저항하는 민중봉기와 항쟁의 빈발로 표출하였다. 뒤이은 일제(日帝)강점기는 나라 잃은 인민의 무력감(無力感)이 내면으로 응어리지는 한을 싹 틔웠다. 광복과 동시에 찾아온 민족분단과 연이은 전쟁의 상흔은 또 더할 나위 없는 자괴감(自愧感)으로 한을 증폭시켰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가난과 싸우며 허덕이는 백성에게 다시 부패와 독재가 새로운 한을 심어주었다.
 
  저항과 억압의 악순환 속에서 마침내 시민봉기에 의한 민주적 이행을 이룩하는가 했더니, 이제는 그 시대 저항의 주체이던 세대가 권력독점과 끝없는 탐욕에 젖은 ‘내로남불’의 몰염치로 국민의 예민한 정서를 몹시 뒤틀리게 하면서 또 다른 한의 불씨가 타오르고 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인류의 생존 자체를 저격하는 전염병이 들이닥쳐 시민의 삶이 송두리째 망가져가고 있다.
 
 
  자가밀폐
 
  무엇보다도 사회를 형성하는 기본인 인간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이로 말미암아 가족을 비롯한 공동체적인 삶이 알게 모르게 허물어지고 있다는 문제가 심상치 않다. 실지로 오늘날 우리나라 가구의 평균 구성원 수는 2.39인이라는 통계가 나와 있다(2019년). 두 사람 반도 못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전체 가구 중 30.2%가 1인 가구, 27.8%가 2인 가구다. 합치면 물경 58%가 2인 이하의 소규모 단출한 가구라는 그림이 나온다.
 
  이 그림의 배경에는 또 다른 풍경이 떠오른다.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이 0.8인데 이 수는 2017년부터 감소하여 2020년에 도달한 수치다. 여기서 0.8이란 한 여성이 평생 출산(出産)하는 자녀의 수인데, 한마디로 한 집에서 한 자녀도 출산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 말은 한국이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나라라는 뜻이다. 이렇게 가면 결국 한두 세대가 지난 시점부터 전체 인구는 반으로 줄어들기 시작한다.
 
  독거(獨居)노인의 빈곤율과 자살률이 세계 최고이고, 청년 자살률도 세계 최고다. 혼인도 하지 않겠다, 자녀 출산도 하지 않겠다는 청년독거가구도 늘고 있다. 이쯤 되면 가족 해체, 가족 붕괴란 말이 나올 법도 하다.
 
  이에 더하여 이웃사촌이라는 공동체적 관계도 이제는 거의 무의미한 세상이다. 대형 아파트 단지가 주거의 절반을 넘긴 현재의 거주 형태가 이런 현상을 촉진하고 있다. 우리도 아파트에 사는데 바로 옆집과 우리 집의 현관문 사이의 거리는 1m도 채 되지 않는다. 우리는 옆집에 사는 사람 이름과 성과 구성원의 성격과 직업과 기타 소위 개인정보는커녕 얼굴도 모르고 지금껏 20년 이상을 살아왔다. 이 현상을 사회학에서는 일종의 자가밀폐(cocooning)라고 한다. 누에가 제 몸에서 뽑아낸 실로 스스로를 가두고 번데기로 변신하여 고치 속에 완벽하게 숨어버리는 형국에 비유한 것이다.
 
  지금은 코로나19 팬데믹 탓에 집콕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이가 고독을 느낀다는 조사 결과가 미국 학계에는 이미 일반 상식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20대 청년의 60%가 고독감을 호소한다는 최신 자료가 있다. 외로움은 심리적으로 정신건강에 여러 가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는 허다하다. 특히 혼자 오래 지내다 보면 사고(思考)와 시각이 자기중심적으로 좁아지고 극도의 이기주의적 성향이 강화된다. 약간의 과장을 허용하면, 종교 부문에서는 고독이 영혼의 황폐화를 초래한다고도 한다.
 
 
  참혹한 현실
 
  고독의 치유에 가장 효과적인 것은 타인(他人)과 맺는 인간관계의 연결망을 짓는 것이다. 수십 년에 걸친 행복 연구와 장수(長壽) 연구에 따르면, 가족관계를 비롯하여 다른 사람과 관계로 연결 지어 서로 의지하고, 지지하고, 배려하고, 도와주고, 위로하고, 정도 나누고 물질 자원도 나누고, 사랑하며 사는 삶이 행복을 만들고 오래 사는 데 가장 긍정적인 요인이라고 한다.
 
  최근 미국의 심리학자는 “한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고 싶으면 낮잠을 자라. 하루를 행복하게 살려면 낚시를 가라. 한 달을 행복하게 지내려면 결혼을 하라. 일 년을 행복하게 보내려면 집을 사라. 그리고 평생을 행복하게 살고 싶으면 남을 도와주며 살아라” 했다고 한다.
 
  이 모든 거시적(巨視的) 사회변동 속에서 한 가지 더 짚을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근래 몇 년 사이에 우리나라 정치 난맥상 속에 그동안 애써 가꾸어온 민주정치와 아울러 경제시스템이 허물어지기 시작한데다 코로나19가 들이닥쳐 더욱 엉망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중소기업, 소규모 자영업, 청년 취업 등의 부문에서 충격이 지독하게 컸다. 하루가 멀다 하고 파업에 폐업, 멀쩡하게 대학 졸업한 취준생이 편의점 알바나 대리운전 아니면 택배 등 잡역에, 그것도 하루 두 탕, 세 탕을 잠도 못 자고 뛰어야 하는 등 암담한 경제 실정이 우리 사회를 아프게 하고 있다. 그런데도 ‘내로남불’로 다수(多數)의 횡포를 서슴없이 자행하는 위정자(爲政者)들의 뻔뻔한 몰염치, 어린아이를 학대하여 숨지게 하고, 제 자식을 굶겨 죽이고, 참으로 끔찍한 비인륜적인 ‘묻지 마’ 범죄를 저지르고도 참회할 줄도 모르는 황폐한 영혼들은 우리 국민의 가슴 속에 새로운 한을 품게 하고 있다.
 
 
  트로트에 빠지다
 
  이런 참혹한 현실 속에서 트로트라는 하찮아 보이는 예술의 장르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무너져 내리려는 정서를 달래는 봄빛인 양 다가온 것이 신기하다 할 수밖에 없다.
 
  대학 시절부터는 주로 우리나라 가곡, 통상 팝송이라 일컫는 미국 대중가요, 그리고 일부 서양 가곡 등을 부르는 데 재미를 붙였다. 그때만 해도 한국에서는 나와 동갑인 최희준이라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출신이 미군 부대 안의 클럽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인생은 나그네 길”로 시작하는 ‘하숙생’이라는 가요를 불러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던 시절이었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출신 중에서도 솔로로 또는 남성사중창 팀 멤버로 가요계에 진출한 선배와 동년배가 있었다.
 
  그 뒤로는 어차피 나의 삶은 주로 대학이라는 외부와 물리적·문화적으로 비교적 거리가 있는 환경에서만 보냈기에 일반 대중이 평소에 접하는 유행가와 같은 결의 문화와는 거리가 있었다. 친구·동료들과 회식하고 노래방 가는 기회가 생기고 나서야 유행가를 골라 부르는 데 약간의 취미를 갖게 된 것이 전부다.
 
  그런데 지난해의 〈미스터트롯〉 프로그램을 접하고 나서는 아예 트로트에 푹 빠지고 말았다. 물론 그 경연대회에서 입상한 소위 ‘톱 식스’나 ‘톱 세븐’의 노래 솜씨는 트로트 음악의 새로운 경지로 나를 이끌었다. 이들의 노래를 듣고 나서는 지금까지 어쩌다 슬쩍 구경 삼아 보다가 금세 채널을 바꿔버리는 KBS TV 〈가요무대〉라든지 기타 케이블 방송의 각종 트로트 프로그램은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럼 무엇이 다른가? 우선 음악적 소양과 실력이 특출하다. 물론 목소리도 빼어나야 하지만 그 소리를 내는 특유의 발성법(發聲法), 정확한 음정(音程)으로 뿜어내는 멜로디의 아름다움, 흐트러짐 없는 분명한 발음으로 전달하는 가사가 전하는 신바람과 흥, 아니면 한과 슬픔, 박자와 리듬의 정교한 흐름, 거기에 트로트 특유의 미묘한 꺾기, 그리고 노래의 내용과 정서를 따라가는 표정과 몸짓, 때로는 가벼운 퍼포먼스 등 어디 하나 흠잡을 데가 없는 음악을 창출하고 있다. 이에 감동하고 함께 눈시울을 붉히며 즐기고 감상하는 맛이 무어라 말할 수 없다.
 
 
  경쟁자들이 情을 共有하는 모습에 감동
 
〈미스트롯2〉 ‘선’으로 뽑힌 홍지윤. 이들은 치열한 경쟁을 치르지만, 서로 정을 나눈다. 사진=TV조선
  여기까지는 나의 트로트 예찬의 시작에 불과하다. 지금부터가 진짜 트로트의 사회학적 의미 해석의 본론이다. 이번의 〈미스터트롯〉과 〈미스트롯2〉는 TV 매체가 제작 방영한 어느 음악 프로그램에서도 시도하지 못한 전혀 새로운 특별한 사회·문화 현상을 유감없이 창출했다는 점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고 칭찬해 마지않으려 하는 것이다. 그 내용은 이 두 프로그램의 시발 지점에서 경연 자체의 진행 과정, 그리고 특별히 경연이 끝난 이후의 각종 행사를 포괄한다.
 
  첫째, 경연 시초부터 이 행사는 인간의 깊은 내면을 비춰 보이며 사람이 사람답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습의 단면을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데 주목하게 한다. 그 수많은 젊은이가 삶의 한 가지 특정 목표를 찾았고, 그 타깃을 향해 있는 힘을 다하는 진지한 장면이 보는 이의 가슴을 찡하게 만들었다.
 
  특히 놀라운 현상이 관찰자인 나에게 각별한 감동을 주었다. 그 힘든 노력을 쏟아내는 동안에 각자가 그냥 나 홀로가 아니고 함께 공동목표를 향해 경쟁을 하는 데도 서로의 어려움을 정서적·물리적으로 공유(共有)하고 보듬고 도우며 따뜻한 정(情)을 나눔으로써 경쟁자들이 마침내 친구가 되고 형제가 되며 서로가 의지하는, 새로운 아름다운 인간적인 관계를 형성해가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이번의 트로트 행사는 우리 사회의 새로운 공동체 형성의 멋진 본보기가 되는구나 하는 안도의 느낌마저 들게 하였다.
 
  둘째, 경연 자체가 진행하는 그 버거운 과정 속에서도 그러한 새로운 관계의 끈끈함을 더욱 키워가면 갔지 치열한 경쟁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반목과 갈등 같은 모습은 전혀 드러난 바 없었다. 여기에서도 진 사람이면 사람인 이상 서운하고 분한 마음이 어찌 일지 않을까마는, 이들은 그 감정을 삭이며 끝까지 서로 격려하고 축하하면서 눈물로 위로하고 감싸 안는 가슴 뭉클한 장면을 자연스레 표출했다. ‘우리 기성(旣成)세대가 어려운 역사적 과정을 견뎌내면서 언제 이 새로운 세대에게 그와 같은 인간미가 넘치는 관계성의 가치를 제대로 가르친 적이 있었던가’ 스스로 반성하며 부끄럽고 가슴 벅차게 하는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셋째, 마침내 경연이 끝났다. 뿔뿔이 제 갈 길을 가면 그걸로 이 참가자들의 관계는 일단락짓고 말 거라는 평소의 예상은 일련의 후속 프로그램에서 유감스럽게도 빗나가도 아주 멋지게 빗나가고 말았다. 그리고 그 과정은 현재진행 중이지만 앞으로도 반드시 이어지리라 믿고 그리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란다. 이제부터는 몇 가지 사례를 조금은 소상하게 해설하기로 한다.
 
 
  “노래해서 남 주자”
 
〈미스터트롯〉은 〈뽕숭아학당〉으로 이어진다. 사진=TV조선
  〈미스터트롯〉의 후속 프로그램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사랑의 콜센타〉이고 또 하나는 〈뽕숭아학당〉이다.
 
  〈뽕숭아학당〉은 주로 6명의 우수 당선자, 일컬어 톱 세븐, 톱 식스라는 소규모 트로트 우등생 집단이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상호 간에 쌓은 인간적인 공동체를 지속하려는 취지로 진행하는 동시에 트로트라는 음악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기성세대 가수들을 초청하여 그러한 관계의 폭을 더 널리 확장함으로써 이 음악 장르의 새로운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의미가 있어 보인다. 거기서 끝나면 별로 특이할 바가 없을 것이나, 이 프로그램에서는 또 다른 인간적이고 공동체적인 정 나눔의 감동적인 본보기가 드러나는 것이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몇 가지 보기가 그것을 잘 말해준다. 한 가지는 저들이 ‘학당’이라는 명목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는 ‘노래해서 남 주자’라는 구호를 항상 내걸고 있다는 점이다.
 
  ‘왜 애써 노래하는지’ 물었을 때 우선 인간은 자신의 즐거움과 한풀이가 주된 관심사일 터이고 그 결과 자신에게 특정 경제적인 보상이 따른다는 건 상식에 속한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서는 이 우수 가수들이 부모님을 따로 모셔서 코로나19로 자주 해후할 기회가 막힌 탓에 나누지 못한 가족 간의 끈끈한 정을 마음껏 표출하고 교환하는 시간을 따로 마련한 것을 첫째로 들 수 있다. 이 광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눈물 없이는 보지 못할 감동을 자아낸다. 자식들이 그 어려운 무명(無名)가수 시절의 역경을 이겨내고 마침내 꿈을 이루게 된 걸 감격해하는 부모의 눈물과 그렇게 행복해하는 부모님의 격한 반응에 자신들도 눈물을 참지 못하는 장면은 보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가장 최근의 프로그램은 〈도란도란 디너쇼 테라스 콘서트〉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었다. 얼마 전 초여름 장대비가 쏟아지는 이른 저녁, 시골 어떤 숙박시설인 듯한 건물 마당에 따로 설치한 무대에서 그 여섯 가수의 특별 콘서트를 개최한 것이다. 특별히 추첨으로 초청한 팬들의 온 가족을 멋진 테라스가 있는 저택의 베란다 독립 공간에 따로따로 정중히 모셔놓고, 유명 셰프가 특별히 장만한 중화요리를 대접하면서 열창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여기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다름 아닌 팬들의 반응이다. 자신의 우상(偶像)의 인도를 받아 멋진 저택의 테라스로 이동하는 사이에 이들은 이런 특별한 음악행사에 초청받았다는 사실 자체에 감격해 울음 섞인 웃음을 짓는다. 고급스러운 음식에 감격하면서 할아버지부터 열 살도 안 되는 어린이까지 노래를 따라 부르며 또 웃고 울고 박수치며 몸을 흔들어 감응하는 모습을 보면, 무덤덤한 일상을 보내며 사는 백면서생으로서는 ‘과연 이런 어린이 같은 천진난만한 감정을 아무런 거리낌이나 체면을 불고하며 표출할 기회가 있을까’ 싶었다.
 
 
  한풀이의 카타르시스
 
  〈사랑의 콜센타〉는 아주 성격이 특별하다. 여기에서는 그 우등생 선수 그룹이 크게 두 가지 다른 목적의 공동체 운동을 펼친다.
 
  첫째, 주된 목적은 전국 아니 전 세계의 트로트 애호가들을 상대로 일종의 응모에 의한 추첨으로 특정 인사 내지 가정에 전화를 접속하여 그들이 선호하는 가수와 대화를 나누고 그의 노래를 들려준 다음, 그 가수의 노래가 획득하는 점수에 따라 상품을 추첨하여 대상 가정에 선물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노래를 즐기는 팬들의 정말 예상 밖의 반응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나이가 많고 적음을 초월하여 특히 여성 팬들은 자기가 통화의 대상으로 당첨이 됐다는 걸 알리는 순간 “와아아아아아…” 하는 비명을 질러대며 기뻐하면서 눈물을 훔친다. 그리고 얼마나 자기가 그 가수를 좋아하고 노래가 나오면 놓치지 않고 감상하며 위로를 받는지 하소연하듯 토로한다. 곁에서 함께 즐기면서 바라보는 배우자(配偶者)가 질투할 정도의 격한 반응이다. 어떤 가정에는 그 특정 가수의 사진이나 캐리커처가 온 벽면을 장식한 장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부모나 자신의 투병(鬪病)이나 사별(死別) 또는 자녀의 취업문제 등 어려운 사정을 하소연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한마디로 지독한 한풀이의 카타르시스다. 이를 보면서 우리 국민이 얼마나 한이 많은지, 그리고 흥과 신바람이 격한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사랑의 콜센타〉 두 번째 기능은 역시 〈뽕숭아학당〉의 사례와 유사한 일종의 공동체 형성의 기능이다. 다중의 팬덤을 위로하는 목적 말고도 대중음악의 여러 다른 장르에서 활약하는 가수들을 선별적으로 초청하여 자기들 톱 식스와 대결하는 음악경연을 벌여 대중에게 즐거움을 준다. 여기에서도 저들과 함께 격렬하게 경쟁을 하다가도 톱 식스가 승자가 되면 받는 모든 고가(高價)의 귀한 선물을 깡그리 상대편 가수 집단에다 선뜻 선사하는 인정미를 발휘한다. 경쟁은 경쟁이고 인정은 인정이다. 아까울 것이 없다는 말이다. 이런 대접을 받는 기성 가수들의 감격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이런 것이 실로 가슴 뭉클하게 만드는 공동체적 인간관계의 표본이 아닐 수 없다.
 
 
  〈내 딸 하자〉
 
〈미스트롯〉은 〈내딸하자〉로 이어진다. 사진=TV조선
  이번에는 〈미스트롯2〉의 후속 행사로 아예 처음부터 공동체 회복을 목표로 하는 타이틀을 걸고 진행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일컬어, 〈내 딸 하자〉다. 트로트 애호가들이 특정 가수를 딸로 삼겠다는 의미를 내포한 것이다.
 
  그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팬들을 대상으로 사연을 적어 내도록 하고, 그중에서 선발하여 그들의 집이나 거주지 근방의 특정 장소에 비밀스럽게 방문하여 이른바 서프라이즈 미니 콘서트를 선사하며 사연을 보낸 이의 부모에게 딸 노릇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방법은 사정에 따라서 직접 방문 대신 온라인으로 접속하여 그 사연 제출자의 부모나 조부모를 위한 노래를 스튜디오에서 불러 위로하는 식이다.
 
  이 또한 반응이 엄청나다. 시장 한가운데서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가 갑자기 나타나 노래를 불러주는 장면 같은 걸 보면 어머니들이 어쩔 줄을 모르고 얼싸안고 울며불며 고마워한다.
 
  이 프로그램 중 눈에 띄는 사례는 부산의 소아과 의원 원장이다. 중년의 점잖은 이 신사는 부인이 피아니스트고 자신도 바리톤 성악을 하는 의사인데, 트로트를 좋아하게 되어서 〈미스트롯〉 진인가 선인가 하는 가수와 열 살 어린이 가수의 방문에 어색하면서도 기뻐하고 놀라워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같은 맥락에서 이 세 가지 경연 후속 프로그램에서 또 한 가지 공통적인 현상이 있다. 〈사랑의 콜센타〉나 〈뽕숭아학당〉은 물론, 〈미스트롯2〉에서도 이러한 뒤풀이식 프로그램에 톱 식스나 세븐에서 탈락은 했지만 실력이 출중한, 말하자면 제2군이라 할 수 있는 가수들을 반드시 초청하여 함께 노래 경쟁을 비롯한 각종 공동체 운동에 참여하게 한다. 저들도 상당한 실력을 갖추었음에도 경연의 성격상 아쉽게 탈락해야 했지만 그들에게도 대중에 지속적으로 선보일 노출의 기회를 골고루 공유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가슴 따뜻하게 하는 배려라 할 것이다.
 
 
  트로트의 세계 진출 가능성 엿보여
 
  요컨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트로트는 그저 저급한 대중의 한풀이용 음악으로만 여겼었는데 갑자기 트로트 바람을 불러일으킨 데는 분명히 TV조선의 기발한 기획정신이 큰 몫을 한 점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 후로는 거의 모든 TV 채널이 갖가지 트로트 경연과 연주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지만, 이 글에서 제시한 사회학적 의미를 담아내는 데까지는 미치지 못한다. 그냥 우수한 가수들이 따로 모여서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정도로 후속 조치가 이루어질 뿐이다.
 
  그럼에도 이제 트로트는 남녀노소, 사회적 지위 계층, 지역적인 벽 등을 넘어 한국인 모두의 음악으로 발돋움했고, 우리의 정서를 다스리는 중요한 힐링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는 문화 현상으로서 새로운 가치를 누리고 있다.
 
  매우 흥미로운 사례 하나를 언급하는 게 좋을 듯하다. 〈미스트롯2〉 경연에서 비록 톱 세븐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우수 가수 10인 안에 입선한 미국 아가씨 마리아 얘기다. 파란 눈, 옅은 브라운 두발색의 어여쁜 이 미국 여성은 한국에 유학차 왔다가 어떤 계기인지 트로트 음악에 빠져서 마침내 경연에까지 참가하여 입상(入賞)을 한 인물이다. 키가 훤칠하고 피부색이 하얀 이 미국 색시는 만일 영상을 가리고 노래만 들으면 그냥 한국인이 부른다고 착각할 만큼 한국말이 거의 완벽하고, 평소에도 한국어는 너무도 자연스럽다. 트로트라는 음악은 한국 고유의 가락과 특히 꺾기 같은 특이한 기교를 요하는데, 마리아는 그런 모든 것을 소화해낸다. 물론 목소리도 매력을 풍긴다. 요즘같이 한국의 대중가요가 세계무대에서 훌륭한 평가를 받고 있는 상황이라면 트로트 역시 세계 대중음악 시장에서 빛을 발할 날도 머지않은 것은 아닌가 하는 기대까지 해보게 된다.
 
  한 가지 유감만은 꼭 언급해야겠다. 경연은 우열 가리기가 당연한데, 최우수자 1인에게만 거액의 시상을 하는 것은 재고(再考)해보았으면 한다. 얼마 전 미국의 영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오스카상을 받은 배우 윤여정의 수상 소감이 많은 이의 심금을 울린 점을 상기시키고 싶다. 잘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는 것은 십분 타당하지만, 기왕이면 한 사람에게만 그런 보상을 하지 말고 나머지 우수자들에게도 적절하게 나누어 시상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恨·신바람·흥
 
  트로트 자체의 내용을 잠시 살펴봐도, 우리 문화의 단면을 감동적으로 표현하는 트로트의 특징을 읽을 수 있다. 먼저 그 제목이나 주제는 산과 강, 바다라는 자연이 우리의 한과 깊은 관계임을 연상케 하는 데 큰 몫을 한다. 여기저기의 지명, 도시 이름, 심지어 기차역에 불교 사찰 이름까지 등장해 잔잔한 정서적 자극을 준다. 인간사로 넘어오면, 어머니가 가장 자주 등장하여 많은 이의 눈물샘을 건드린다. 부모, 형제자매를 위시한 가족도 등장한다. 가족 이외의 존재 가운데는 연인이 역시 으뜸이며, 이어서 친구다. 인간관계에서 제일 많이 나타나는 명사(名詞)는 사랑, 이별, 불효, 배신 같은 정서적 측면으로 집중한다.
 
  이 모든 내용이 표현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정서적 요소는 역시 한이다. 그리고 한풀이의 방향은 원망과 미움으로도 지향하지만 또 다른 편으로는 신바람과 흥으로 승화(昇華)하기도 한다.
 
  요즘 같은 우울한 시대에 이처럼 우리 문화의 미묘한 보석이라 할 수 있는 트로트가 있다는 게 행운이다. 앞으로도 격조 높은 트로트는 계속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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