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녀의 선의(善意)는 반일(反日) 성향의 시민단체 등의 반대로 인해 꺾이고 말았다. 해당 단체 회원들이 ‘전범(戰犯)’ ‘친일 부역자’라는 구호를 들이대며 행사를 저지했기 때문이다. 반일단체의 극렬한 압박에 사천시 측도 그녀에게 더 이상 도움을 주기 어려웠다. 간신히 설치한 ‘귀향(歸鄕)기원비’는 사천의 한 사찰로 축출돼 땅에 반쯤 묻힌 채로 방치됐다. 그녀의 ‘위령 활동’은 일본에서조차 “일방적인 한국 편애가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도 했다. 고립무원이었다.
‘탁씨의 불운한 희생’에 대한 저자의 헌신은 반한반일(反韓反日) 감정으로 얼룩진 양국의 관계 회복을 위해서도 뜻깊은 일이었다. 그녀는 이제 다시 외친다. “‘일본 이름이 아닌 조선인으로 죽고 싶었다’는 꿈속의 청년을 생각합니다. 아무리 배신과 외면을 당할지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사실을 분명하게 기록하기 위하여, 우리 모두의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