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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경의 컬처토크 〈32〉 公人의 사랑

글 : 임도경  (사)지역문화소통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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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슨 부인과 결혼하기 위해 왕위를 포기한 윈저공
⊙ 개인은 물론 그룹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최태원 회장의 이혼 소동

임도경
⊙ (사)지역문화소통연구원 원장, 경희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객원교수.
2015년 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내연녀와의 사이에 혼외자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부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은 “이혼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해 말 세상을 뒤집어 놓은 ‘내연녀와 혼외자’ 커밍아웃 사건을 일으킬 때 많은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최소한 본인이 그런 행동을 함으로써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을지 주판알을 튕겨 봤음직하다. 그 사건이 즉흥적으로 일어난 것인지, 아니면 감옥에서 수감생활을 하는 2년 6개월간 치밀하게 구상한 것을 실행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지금의 결과는 아마 최 회장이 예상한 시나리오 안에 들어가 있지는 않을 것 같다.
 
  남의 집 일이라 속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사회적 분위기로 봐서는 최 회장 자신이나 그의 내연녀는 물론 SK그룹에까지 유리한 국면이라고는 별로 없는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은 철없는 유부남이 되어 있고, 내연녀는 승냥이에게 물어뜯기듯 SNS 정보망을 통해 샅샅이 실체가 공개되며 이 땅에 얼굴을 내놓고 살기 어렵게 공격당하고 있다.
 
  이 소용돌이 속에서 실익을 거둔 사람이 있다면, 2010년에 태어난 혼외자가 아닐까 싶다. 친아버지로부터 인정을 받아 당당한 재벌 상속자 대열에 끼어들었으니 이 사건의 유일한 수혜자인 셈이다. 최 회장이 오직 이것을 노리고 그런 행동을 했다면, 성공했다.
 
  하지만 그 대가가 너무 크다. SK그룹은 태생적인 문제까지 들춰내지며 기업의 도덕성까지 도마 위에 올라 있다. 주가가 떨어지는 건 시작에 불과할 것 같다.
 
  상황은 하나같이 최 회장에게 불리하게 흐르고 있다. 그의 법적 부인이며 세 자녀의 어머니이기도 한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이혼을 거부하고 혼외자까지 자신이 맡겠다고 나서는 것은 물론, 남편의 그런 행동이 결국 자신이 남편을 잘 돌보지 못해서 벌어졌다는 ‘마돈나적’ 태도를 보이자 민심은 확고하게 노 관장 편에 섰다.
 
  더군다나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둘째딸 최민정(23) 해군 중위가 2014년 해군 학사장교로 자원 입대한 것은 물론 임관 후 6개월간 해외 파병 근무까지 하는 당찬 모습을 보여준 것은 광복절을 앞두고 사회적 분위기가 최 회장의 두 번째 특사에 대해 관용적인 방향으로 흐르는 데 일등공신으로 작용했다는 데 이견이 없다. 이것까지 감안하면, 최 회장은 ‘염치없는 아버지’까지 된다.
 
  최 중위가 아덴만 해역에 파견됐던 청해부대 19진의 일원으로 충무공 이순신함을 타고 지난해 12월 23일 부산 작전기지로 늠름하게 귀환한 지 겨우 3일밖에 안 지난 시점에 아버지인 최 회장은 일간지에 불륜을 고백하는 편지를 보냈다. 개념 없는 아버지라는 질타를 당해도 싸다.
 
  최 회장이 그 소동을 일으켜서 원하는 목표가 무엇이었을지 궁금하다. 일반인들이 모르는 또 다른 어떤 극적 상황이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면, 최 회장의 카드는 그야말로 포커 판의 ‘물패’였다.
 
 
  윈저공과 심슨 부인의 드라마틱한 사랑
 
  최 회장의 연애파동을 지켜보며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세계적인 로맨스 사건이 떠올랐다. 영국의 윈저공과 심슨 부인의 드라마틱한 사랑의 시작과 끝이다. 이 두 남자는 서로 다른 시기와 공간에 존재하지만, 가족과 대중이 극렬하게 반대하는 사랑을 얻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같았다. 대중을 향해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고 그 사랑이 자신의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분명하게 선언한 것이다.
 
  1931년 6월 당시 황태자였던 에드워드는 영국인 사업가의 아내인 ‘베시 윌리스 워필드 스펜서 심슨’을 만나 사랑이 빠졌다. 교제 2년 만에 에드워드는 심슨 부인에게 청혼을 했다. 심슨과의 법적 관계가 정리되지 않은 채 만남을 이어가던 1935년, 조지5세가 사망하자 윈저공은 ‘에드워드8세’로 왕좌에 올랐다. 왕비가 되고 싶었는지, 심슨 부인은 1936년 남편에게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영국 교회와 왕실, 정부에서는 한 번의 이혼경력이 있고 두 번째 이혼소송 중인 펜실베이니아 출신 미국 여성을 왕비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왕의 자리를 떠날 것을 결심했다. 그는 결국 1936년 12월 11일 밤 11시 BBC 라디오를 통해 하야 연설을 하는 것으로 1년도 못 채운 왕좌에서 물러났다. 다음 날 퇴위법이 선포되었고, 하야는 공식적으로 마무리됐다.
 
 
  각기 다른 에드워드와 최 회장의 이혼결정 이유
 
1930년대 ‘세기의 로맨스’로 화제를 모았던 영국 에드워드 8세와 심슨 부인. 독신으로 왕위에 올랐던 에드워드는 미국인 유부녀 심슨 부인과 사랑에 빠졌고 마침내 국왕 자리까지 버리고 1937년 그녀와 결혼했다. 그는 윈저公으로 자신의 지위가 하락한 것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당시 그의 연설문이다.
 
  〈오랫동안 기다려 온 끝에 드디어 나는 이제 내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어떤 것도 드러내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까지 내가 내 의사를 말한다는 것은 법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몇 시간 전 나는 왕으로서, 황제로서 나의 마지막 임무로부터 벗어났고 나의 동생인 요크공이 지위를 계승하였으므로, 내가 처음으로 할 말은 그에게 충성을 하겠다는 선서를 하는 것일 겁니다. 내 온 진심을 다해 할 것입니다. 나로 하여금 왕위를 버리게 할 수밖에 없게 한 이유는 다들 알고 계시지요?
 
  그러나 그 점만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이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웨일스의 왕자로서 그리고 최근 들어서는 왕으로서 25년간 봉직하려고 노력한 국가, 즉 대영제국을 잊지 않았다는 것을. 그러나 또한 그 무거운 책임을 이행해 나가기가 나로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었다는 것을 믿어 주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이 여인의 도움과 뒷받침 없이는 왕으로서 내가 뜻한 바대로 나의 임무를 수행해 나간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깨달았다는 것을 말입니다.
 
  또 한 가지 내가 내린 이 결정은 오직 내가 혼자서 한 나의 자발적인 결정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이것은 오로지 전적으로 내가 판단을 해야 할 문제였습니다. 이 일과 관련되어 있는 또 한 사람(심슨 부인)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를 설득해 다른 방향의 결정을 내릴 것을 권유했습니다.
 
  내가 내린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결정은 결국 모두에게 최선일 것이라는 오로지 그 생각만으로 내린 결정입니다.(이하 생략)〉
 
  그의 하야 연설을 들여다보면 두 가지 확실한 스토리가 눈에 들어온다. 첫째는 심슨 부인 없이는 왕의 자리조차 의미가 없으므로 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심슨의 남편이 되겠다는 개인의 확고한 선택의 메시지이다. 둘째는 일국의 왕이 하야를 하는 데 있어서 그의 연인이 어떤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비난을 듣지 않도록 최후의 순간에도 최선을 다해 상대방을 보호하려는 남자로서의 책임감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점 때문에 에드워드의 선택은 전 세계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들은 에드워드가 왕좌에서 내려온 후인 1937년 8월 결혼했다. 심슨 부인의 이혼소송이 4월 27일 결정됐는데, 이혼 결정이 날 때까지 오스트리아에 머물다가 돌아와 결혼한 것이다. 당시 에드워드는 42세였고, 심슨 부인은 40세였다.
 
  그 후 영국을 떠난 그들은 프랑스나 스페인, 포르투갈을 떠돌며 살았지만, 부유한 ‘윈저공 부부’로서 나름 그 시대 유행을 이끌어 가는 ‘패션 피플’이 되어 화려한 일생을 살다가 갔다. 윈저공이 평소 아내에게 선물한 고가의 카르티에 보석류들은 그 화려함이 어느 왕가의 여성들이 사용한 것에 비해 뒤지지 않을 정도라 지금까지 유명 경매장에서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윈저공은 1972년 5월 지병으로 숨졌고, 심슨 부인은 그보다 14년을 더 살다가 쓸쓸하게 갔다. 이들 부부가 영국 왕실로부터 부부로 인정을 받은 건 결혼 후 30년이 지나서였다. 1967년 엘리자베스2세가 메리 여왕의 기념비 제막식에 이들 부부를 초대하면서 왕실과 화해를 하게 된 것.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파리에서 살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이젠, 최 회장이 지난해 12월 26일 한 일간지에 보낸 편지를 비교해 보자.
 
  〈기업인 최태원이 아니라 자연인 최태원이 부끄러운 고백을 하려고 합니다. 항간의 소문대로 저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성격 차이 때문에, 그리고 그것을 현명하게 극복하지 못한 저의 부족함 때문에, 저와 노소영 관장은 십년 넘게 깊은 골을 사이에 두고 지내 왔습니다. 종교활동 등 관계회복을 위한 노력도 많이 해 보았으나 그때마다 더 이상의 동행이 불가능하다는 사실만 재확인될 뿐, 상황은 점점 더 나빠졌습니다. 그리고 알려진 대로 저희는 지금 오랜 시간 별거 중에 있습니다.
 
  노 관장과 부부로 연을 이어갈 수는 없어도 좋은 동료로 남아 응원해 주고 싶었습니다. 과거 결혼생활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는 점에서 서로 공감하고 이혼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이어 가던 중에 우연히 마음의 위로가 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분과 함께하는 삶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 가정상황이 어떠했건, 그러한 제 꿈은 절차상으로도, 도의적으로도 옳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가정을 꾸리기 전에 먼저 혼인관계를 분명하게 마무리하는 것이 순서임은 어떤 말로도 변명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습니다.(중략)
 
  그러던 중 수년 전 여름에 저와 그분과의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노 관장도 아이와 아이 엄마의 존재를 알게 됐습니다. 그동안 이런 사실을 세상에 숨겨 왔습니다. 아무 것도 정리하지 못한 채로 몇 년이라는 세월이 또 흘렀습니다. 저를 둘러싼 모든 이들에게 고통스러운 침묵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중략)
 
  우선은 노 관장과의 관계를 잘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노 관장과 이제는 장성한 아이들이 받았을 상처를 보듬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제 잘못으로 만인의 축복은 받지 못하게 되어 버렸지만, 적어도 저의 보살핌을 받아야 할 어린 아이와 아이 엄마를 책임지려고 합니다. 두 가정을 동시에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옳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제 가정사로 실망을 드렸지만, 경제를 살리라는 의미로 최근 제 사면을 이해해 주신 많은 분들에게 다른 면으로는 실망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제 불찰이 세상에 알려질까 노심초사하던 마음들을 빨리 정리하고 모든 에너지를 고객, 직원, 주주, 협력업체들과 한국 경제를 위해 온전히 쓰고자 합니다. 제 가정 일 때문에 수많은 행복한 가정이 모인 회사에 폐를 끼치지 않게 할 것입니다.〉
 
 
  회장 개인의 일로 재벌기업이 휘청거리는 일은 없어야
 
2015년 12월 23일 해군작전사령부 부산기지에서 열린 청해부대 입항 환영식에서 SK그룹 회장 딸인 최민정 중위가 어머니(노소영)와 함께 이동하고 있다. 최태원 회장은 3일 후 한 일간지에 자신의 불륜을 고백하는 편지를 보냈다.
  최 회장의 편지와 윈저공의 하야 메시지를 비교해 보면,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윈저공은 자신의 사랑에 책임을 지되 왕의 자리 또한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하야를 택했다. 하지만, 최 회장은 자신의 아이를 낳은 내연녀와 정정당당한 가정을 꾸리고 싶으니 빨리 이혼해 달라는 독촉장을 노 관장에게 공식적으로 보낸 것일 뿐 대기업의 총수로서 자신의 이런 황망한 커밍아웃이 기업에 미칠 악영향을 고려하는 어떤 고민도 보이지 않고 있다.
 
  2013년도에도 노 관장과 이혼소송을 추진하려다 회사자금 수백억 원을 횡령한 사건으로 인해 4년 징역형을 받고 주저앉게 됐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려진 것으로 보면, 하루라도 빨리 내연녀와 정상적인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마음만 조급할 뿐 기업은 뒷전인 듯하다.
 
  최 회장이 쓴 문구에 따르면, 오히려 그간 기업에 집중을 할 수 없었던 이유가 내연녀와의 관계가 세상에 알려질까 봐 노심초사했기 때문이라는 말로밖에는 이해되지 않으니 듣는 입장에서는 더 참담하다.
 
  최 회장이 이런 파장을 일으킨 이유가 내연녀와 새 가정을 꾸미는 일이었다면, 그에 응당한 어떤 대가도 치르겠다는 각오가 있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게 진정한 책임이다. 자신의 절절한 사랑을 재벌의 부도덕한 스캔들로 만들지 않겠다는 생각이 있었다면, 차라리 기업 총수 직을 떠나 필부(匹夫)로서 그 사랑을 택하는 것이 옳았다는 이야기이다. 기업에 누를 끼치지 않고 사랑도 얻는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최태원이라는 개인이 누구와 살든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래도 그가 가진 재력이면 윈저공 부부처럼 한국을 떠나서도 남부럽지 않은 부유한 생활을 누리며 한평생 살 수 있었을 것 같다.
 
  최 회장의 부도덕한 사생활에 대한 커밍아웃이 기업에 미치는 악영향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 같다. 당장 그가 감옥에 가 있던 2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내연녀와 그의 아이는 어떤 방법으로 생계를 이어 왔는지 추적을 하는 매체들이 많아진 듯하다. 벌써 내연녀에게 집과 자금을 만들어 주는 과정에서 SK 계열사가 동원된 흔적이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루머까지 나오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SK그룹이 받는 타격은 심각하다. 경제가 살아나길 기원하고 있는 국민들 눈에 한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재벌기업이 휘청거리는 장면엔 간담이 서늘해진다.
 
  국민들은 재계 서열 3위의 SK그룹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탄생 비화를 상당 부분 알고 있다. 대통령의 딸과 총수의 아들이 결혼하면서 각종 특혜 속에 급속하게 성장했다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SK이다. 그래서 이런 모습이 더 꼴 보기 싫은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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