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도경의 컬처토크 〈29〉 한국에선 ‘리버풀’이 나오지 못하는 이유

  • 글 : 임도경 (사)지역문화소통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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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은 산업도시 리버풀을 회생시킨 비틀스
⊙ 지역별로 따로 노는 문화를 통합 조정하는 역할이 절실

임도경
⊙ (사)지역문화소통연구원 원장, 경희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객원교수.
비틀스를 잉태한 캐번 클럽에서는 지금도 ‘제2의 비틀스’를 꿈꾸는 뮤지션들이 공연을 펼치고 있다.
영국의 세기적 밴드 비틀스의 고향인 리버풀은 18세기 유럽과 아프리카, 신대륙 간의 교역을 중개한 무역도시다. 노예무역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이런 역할 덕분에 항만시설이 발달했다. 산업혁명기의 상징인 기차가 최초로 승객을 태운 장소로 기억하는 사람도 많고, 그 유명한 침몰 여객선 타이타닉호를 만든 곳이기도 하다. 리버풀은 당시 철강 제조, 선박 건조 등으로 산업화 시대의 일익을 맡은 중추 도시였다.
 
  이렇던 리버풀은 영국 산업의 침체와 더불어 도시 역시 쇠락의 길에 들어섰다. 죽은 산업도시 리버풀을 부활시킨 주역은 이곳에서 밴드를 결성한 비틀스였다. 존 레넌(리드 보컬, 기타), 폴 매카트니(리드 보컬, 베이스), 조지 해리슨(하모니 보컬, 기타), 링고 스타(하모니 보컬, 드럼) 4인조로 구성된 이들은 1963년 1집 ‘Please Please Me’로 데뷔하여, 강렬한 록 비트와 상징적인 머시룸 헤어스타일(버섯 모양의 커트), 몸에 짝 달라붙는 날렵한 신사복 차림새 등으로 전 세계 젊은이들의 우상이 돼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들의 인기에 힘입어 리버풀은 비틀스와 관련한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개발해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가 캐번 클럽(The Cavern Club), 비틀스 스토리(The Beatles Story), 비틀스 위크(The Beatles Week), 폴 매카트니가 살았던 집(Forthlin Road 20번지), 존 레넌 은신처(Strawberry field) 등이다.
 
  캐번 클럽은 비틀스를 결성해 데뷔하기까지 3년간 292회나 무대 공연을 하며 팀워크를 만들고, 작곡의 영감을 가질 수 있도록, 말하자면 비틀스를 잉태한 클럽인 셈이다. 비틀스의 데뷔 무대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클럽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이 클럽은 1970년도 불황기에 10년 넘게 문을 닫았다가 비틀스의 인기에 힘입어 1980년대 중반에 다시 문을 열었으며, 현재는 매일 밤 제2의 비틀스를 꿈꾸는 뮤지션들의 공연을 볼 수 있는 곳이 됐다.
 
 
  리버풀은 매년 7천개 이상의 행사와 공연 유치
 
리버풀에 있는 존 레넌 은신처는 비틀스 팬들의 聖地나 다름없다.
  비틀스 스토리는 리버풀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하나다. 비틀스와 관련한 자료 전시, 상품 판매, 비틀스 뮤직비디오와 영화 등을 상영하는 곳이다. 여기에는 존 레넌이 사용하던 피아노, 무대의상, 공연했던 클럽, 녹음했던 스튜디오 등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꾸며 놓았다. 비틀스를 추억하는 사람들에겐 잊지 못할 장소가 되고 있다.
 
  비틀스 위크는 1981년에 시작한 것으로, 비틀스의 음악을 기념하기 위해 전 세계 팬들이 리버풀에 모여 미술 전시, 축제, 콘서트, 벼룩시장 등 많은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영국의 국경일 중 하나인 Bank Holiday(8월 마지막 주 월요일) 기간에는 매년 비틀스 위크와 함께 매튜 스트리트 음악축제가 열린다.
 
  비틀스의 탄생과 더불어 성지(聖地)가 돼 버린 리버풀은 2008년 유럽의 문화수도로 지정되면서 지역의 다양한 문화단체와 유관 산업체, 예술인 양성기관들의 협력 속에 그동안 7000개 이상의 행사와 공연을 유치했고, 매해 1조원 이상의 관광수익을 거두고 있다. 리버풀의 성공은 문화사업을 꿈꾸는 지자체에선 한 번쯤 들여다봐야 할 사례이다.
 
  물론 모든 도시가 비틀스 같은 세계적인 문화 아이콘을 갖지는 못했다. 그래도 사람이 살아온 곳에 역사(스토리)는 늘 남아 있기 때문에, 그 역사를 의미 있는 콘텐츠로 재생산하는 것이 바로 문화사업의 성패 여부와 직결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의 지역문화는 캐릭터를 만드는 작업부터 뭔가 시원치가 않다. 지자체 간 역사적 인물자원을 두고 갈등을 빚고 있는 사례도 적지 않다.
 
  임진왜란 당시 적장을 안고 몸을 던진 의기(義妓) 논개는 출생지인 전북 무주와 활동지인 경남 진주가 대표성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무주에서는 논개가 기생이 아니라 주(朱)씨 가문의 자제로 사건 당일 거사를 위해 기생으로 분장했을 뿐이라는 주장을 펴며 ‘의암 주논개 축제’를 하고 있고, 진주에서는 기생 논개가 적장을 안고 숨진 장소라는 역사성을 들어 ‘진주 논개제’를 하고 있다.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석은 출생지인 강원도 평창과 묘소가 있는 경기도 파주 간의 신경전이 있다. 평창은 이효석문학관을 세웠으며, 이효석문화제를 진행하고 있다. 고속도로 개통으로 인해 1998년 그의 묘를 이장할 상황에 놓이자 파주 측에서는 그의 부친의 고향인 함경도 실향민들의 집단묘역으로 이장해 와야 한다는 주장을 펴, 결국 파주 경모공원묘역으로 옮겼다. 당시 강원도 예술인들이 ‘강원도 밖 이장’을 강력 반대해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큰 소동을 겪었다. 유족 측은 곧 강원도 이효석문학관 인근으로 이장을 해 오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는데,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이다.
 
  《동의보감》을 쓴 허준은 출생지인 서울 강서구와 활동지인 경남 산청에서 각각 박물관을 만들어 적통(嫡統)경쟁을 하고 있다. 여기에 드라마 〈허준〉 촬영지인 경남 창녕까지 문화콘텐츠 경쟁에 가세했다.
 
 
  1995년 지방자치 실시 후 심해진 문화원형 소유권 갈등
 
강원도 평창에 있는 이효석문학관. 이효석의 묘소가 있는 경기도 파주도 이효석에 대한 ‘연고권’을 주장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지자체 간 문화원형 소유권 분쟁사례도 적지 않다.
 
  전남 장성군과 강원도 강릉시가 홍길동 캐릭터를 두고 소송까지 벌였다. 장성군은 홍길동의 고향임을 부각시키며 장성 홍길동 축제를 비롯한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해 활용해 왔다. 이에 앞서 강릉시는 홍길동의 저자인 허균의 고향이라는 점을 들어 홍길동 캐릭터를 마스코트로 사용해 왔다. 두 지자체는 2009년 홍길동 캐릭터 상품을 놓고 법정다툼을 벌였는데, 법정은 장성군의 손을 들어 줬다. 소송에서 패한 뒤 강릉시는 10여 년간 도시 이미지로 사용해 온 홍길동 캐릭터를 장성군에 내어 준 일이 있다.
 
  전북 익산시와 충남 부여군은 백제시대 ‘서동왕자’(백제 무왕) 캐릭터를 놓고 분쟁 중이다. 두 지자체는 서동왕자의 근원을 놓고 대립하고 있으며, 각각 축제를 진행하고 있다. 익산은 서동요와 서동의 탄생지임을 부각시키며 오랜 시간 지역축제를 진행해 왔다. 1968년 마한민속예술제→2003년 익산서동문화제→2005년 익산서동축제로 이어 가고 있다.
 
  충남 부여군은 2000년부터 서동 탄생설화의 배경인 궁남지에서 대대적인 ‘부여 서동연꽃축제’를 진행하는 등 서동을 모티브로 한 다양한 콘텐츠를 활용하고 있다. 이 행사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3년간 연속 유망축제로 선정되기도 했다.
 
  대구시와 경북 경산시는 갓바위(보물 431호)를 두고 관광사업 경쟁에 들어가 있다. 갓바위가 있는 팔공산은 태백산맥이 낙동강과 금호강을 만나는 곳에 솟아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대구시에 속하지만 영천시·경산시·칠곡군·군위군 4개 시군이 맞닿은 경계에 있다. 특히 갓바위는 행정구역상 경산시 쪽에 있기 때문에 경산시에서 독자적인 관광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팔공산과 갓바위를 관광자원으로 잘 활용해 온 대구시와 대구 동구는 반발이 심한 상태이다. 지자체 간의 문화사업 갈등은 1995년 지방자치선거가 실시된 이후 나날이 더 심해지고 있다. 선출직 자치단체장들이 실적을 앞세워 경쟁적으로 지역의 문화를 바꿔 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별로 특성 있는 문화콘텐츠를 개발하는 건 바람직하지만, 문제는 지역문화 전체의 균형발전이라는 큰 그림을 갖고 교통정리를 해 줄 수 있는 기구가 없는 상태에서 중구난방 식으로 진행하며 갈등과 중복, 졸속에 따른 비난을 피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국회의원들은 지역구민들에게 홍보할 수 있는 선심성 문화홍보 예산을 중앙정부로부터 직접 따내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 이런 예산은 눈에 잘 띄는 행사용 건물을 짓는 데 주로 사용하고 있다. 이 구조에서 지역 간 문화사업 조정업무를 관할해야 할 문화체육관광부의 역할은 미미할 수밖에 없다.
 
  한 문체부 관계자는 “중복 투자한 건물은 텅텅 비어 있고, 제대로 된 문화콘텐츠 개발은 진행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개탄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역문화진흥센터’와 같은 통합적 기구가 만들어지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문화계 관계자들은 이야기하고 있다.
 
 
  계획, 시설, 예산 중복을 막을 수 있는 통합조정 역할 필요
 
팔공산 갓바위를 놓고 대구시뿐 아니라 경북 경산시도 관광자원화를 추진하고 있다.사진=조선일보DB
  사실 현재와 같은 시스템에서는 지역문화에 대한 통합적인 정보제공 체계가 없다. 지역별로 계획, 시설, 예산 등이 겹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이런 문제가 매해 되풀이되지만 개선 기미는 없다. 만약 센터를 만든다면, 이를 통해 각 지역에서 서로 원활한 정보교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소통 부재로 인한 문제들의 상당 부분은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예산관리는 물론 공공·민간 투자현황과 사업추진율 점검, 중복투자 방지 등 사전·사후 점검체계를 갖출 수도 있어 전시행정을 견제할 수가 있다.
 
  이 센터는 뜻만 있다면, 당장에라도 설치할 수 있는 조직이다. 많은 사람이 상시적으로 근무를 할 필요도 없다. 지역문화정보 DB를 운영하고, 외부의 분야별 자문위원회 그룹을 활성화시키면 얼마든지 해 낼 수 있는 일이다.
 
  지역문화정보 DB를 통해 각 지역의 문화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입하고, 이를 공용화하기에 적합한 형태로 가공해 제공하면 일차적인 임무는 해 낼 수 있다. 이 DB를 통해 타 지역의 정보를 볼 수 있게 되면, 쓸데없는 건물을 매해 짓고, 비슷한 문화행사를 지역마다 여는 불상사를 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터넷 교육시스템을 도입해 통합적으로 지역문화를 이끌어 갈 수준 있는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의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센터는 주무부서인 문화체육관광부뿐만 아니라 지역문화 코드로 연관된 안전행정부나 지역발전위원회, 농림부, 지식경제부 등과 협력관계를 형성할 수 있으므로 각 부서로 흩어져 있는 중복업무 또한 통합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문제는 이 업무와 관련된 모든 사람의 의지에 달려 있다. 예산이 문제가 아니다. 이 업무를 맡을 수 있는 인력은 현재 정부기관 주변에 얼마든지 널려 있다. 그 수많은 지역 혹은 문화 관련 위원회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세금만 축내고 있는데, 뜻이 있는 사람을 찾아내 이 일이라도 하라고 하면 된다.
 
  문화콘텐츠로 관광 대국이 된 나라들을 보면, 지역별로 특성 있는 문화를 키워 갈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해 주는 통합적인 문화기구가 반드시 존재한다. 프랑스는 문화커뮤니케이션 사업부 산하에 DRAC(Direction Regionale des Affaires Culturelles, 지역문화사업국)가 이 역할을 하고 있다. 일본은 ‘문화예술진흥기본법’을 기반으로 민관이 함께 운영하는 TMO(Town Management Organization) 시스템이 지역별로 특성 있는 문화콘텐츠 개발과 운영이 가능하도록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미국은 1965년에 설립된 NEA(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와 NEH(National Endowment for the Humanities)에 관한 법률을 기반으로, 이 두 기관이 문화예술진흥을 위한 각 지방정부의 상호협력을 이끌어 가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제 지역문화의 균형발전을 생각한다면, 지역이기주의를 버리고 대한민국이라는 큰 틀에서 지역의 상생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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