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르스로 외부활동을 자제하는 사이 〈꽃보다 할배〉 보며 노인들의 생각 엿봐
⊙ 자기 멋대로 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행태를 다시 생각해야 선진국
임도경
⊙ (사)지역문화소통연구원 원장, 경희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객원교수.
⊙ 자기 멋대로 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행태를 다시 생각해야 선진국
임도경
⊙ (사)지역문화소통연구원 원장, 경희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객원교수.

- 〈꽃보다 할배〉는 노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그래도 이 시간이 그렇게 괴롭진 않았다. 그동안 못했던 많은 일을 하며 나름 잘 보냈다. 가끔은 혼자 시간을 갖는 것도 정신건강에 좋은 일이라는 생각까지 갖게 됐다.
차분하게 TV를 볼 시간을 가진 것도 좋았다. 마감뉴스를 보는 게 고작이던 TV의 활용도를 한껏 높였다. 인기를 끈 프로그램을 찾아 몰아 보기가 재미있었다. 특히 두 해 전부터 입소문을 타고 인기리에 방송 중인 나영석 PD의 〈꽃보다…〉 시리즈를 몰아 보며 많은 생각을 갖게 됐다.
〈꽃보다…〉 시리즈는 할배에서 누나, 청춘으로 이어지는 인기인들의 그룹 여행 리얼리티 쇼이다. 시리즈물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친한 친구들이 모여 해외 배낭여행을 떠난다는 것이다. 여성이나 노인들의 배낭여행에는 ‘짐꾼’이 한두 명 추가되고, 스스로 찾을 수 있는 청장년 그룹은 그냥 그들끼리 떠난다.
내가 가장 관심 깊게 봤던 것은 이 중 〈꽃보다 할배〉 시리즈이다. 나머지 그룹군은 내가 소속되거나, 함께 생활하는 친숙한 집단이라 그다지 큰 흥미를 느끼지는 못했다. 물론 여행지의 아름다운 풍광은 차이 없이 보는 사람 눈 호강을 시켜줬지만,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특성을 지켜보는 재미는 또 다른 수확이었다. ‘누나들’은 같은 여성 입장이라 인물들의 특성을 관찰하는 것이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다. 나 자신은 물론 주변의 다양한 여성군의 모습을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춘들(40대 페루팀과 20~30대 라오스팀)’ 역시 늘 내가 만나는 남성들의 특성과 별반 다름이 없었다.
각기 특색 있는 캐릭터 선보인 이순재, 신구, 박근형
관심을 두고 바라본 그룹은 ‘할배들’이었다. 나의 아버지 연배의 노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얼마만큼 건강하고, 삶에 대해 어떤 의욕을 갖고 살고 있는지 관찰자 입장에서 바라보는 건 나름 흥미로웠다. 이들에 대한 시청자들(국민들)의 반응도 재미있었다.
여기에 더해 내가 어떤 노인으로 늙어가야 할지 미래의 모습을 가늠해 보는 계기도 됐다. 친부모를 포함해 주변 노인들의 실제 일상과 생각을 들여다볼 기회를 갖는 건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친한 노인 네 명이 배낭을 메고 낯선 여행지를 돌아다닌다는 건 신선한 발상이었고, 성공했다.
이순재(82), 신구(80), 박근형(76), 백일섭(72) 등 네 명의 원로배우로 구성된 할배 팀은 TV드라마에서 보던 배역의 껍질을 벗고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노출시켜 보여줬다. 재미있는 건 이들 4명이 4색의 캐릭터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맏형인 이순재씨는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관리가 잘 된 노인의 대표적인 사람이었다. 식탐이 없고, 술·담배를 멀리하며, 어느 곳이든 앞장서 걸어가 ‘직진 순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건강을 잘 지키고 있었다. 신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도 젊었다. 나이와는 무관하게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었으며, 자신이 맡은 일에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또 그룹에 자신으로 인한 피해가 가지 않도록 배려하는 모습도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다. 차 속에서도 가장 불편한 자리를 스스로 선택해 앉는 모습이었다. 국회의원을 해본 경험 때문인 듯 다른 동행자에 비해 좀 더 ‘사회화’된 모습이었다고나 할까.
여행 가이드인 ‘짐꾼’ 없이 그룹의 리더로 인천공항을 떠나 스페인의 숙박지를 찾아가야 하는 미션이 주어지자 비행기 안에서 잠도 안 자고 현지어 공부를 하고,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지도를 사서 목적지를 찾아나서는 노력을 보여줬다. 물론 이 미션 수행 도중 자신의 여행가방은 미처 챙기지 못하는 자잘한 해프닝도 등장했지만, 이런 모습은 노인이라서기보다는 경황 없이 맡게 된 리더 역할로 인해 긴장한 와중에 있을 수 있는 인간적 실수로 오히려 귀여워 보였다.
신구씨는 여행 내내 애주가의 모습을 보였지만, 그래도 이런 모습이 걱정스럽지 않은 건 배낭여행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체력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동행자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싶어서 갈등을 하는 모습이 간혹 눈에 띄었다. 프롤로그에서도 그는 “이 여행을 가장 기다린 사람은 아마 나일 것”이라는 말로 앞으로 전개될 여정에 대한 의욕을 가장 강하게 드러냈다.
그 말 그대로 스페인 여행길에 다른 멤버들은 포기한 포르투갈 리스본행에 혼자 나섰고, 비바람에 우산이 꺾일 정도의 악천후를 뚫고 끝내 보기로 예정했던 지중해의 끝을 보고 오는 용기도 좋아 보였다. 현지를 돌아보며 맛있는 것과 멋있는 것에 환호하는 모습에서는 겉만 노인인 젊은 신구의 모습도 보였다.
방송 리얼리티 쇼에 등장하는 민폐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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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떼쟁이’ 백일섭씨는 〈꽃보다 할배〉에서 빠질 수 없는 캐릭터이다. |
여행 도중 다소 까칠한 성격을 드러내는 장면도 나왔다. 실제 그리스 여행 후 한 언론사와 인터뷰에서는 “제작진이 ‘초심’을 잃었다” “최지우라는 아가씨를 앉혀 놨다”는 등의 날 선 발언으로 누리꾼들의 원성까지 들었다. 나이는 노년이지만 여전히 팔딱거리는 청춘의 기질을 품고 있는 그는 성격처럼 스스로 나서 길을 찾고 팔 걷고 설거지까지 해내는 모습으로 아직은 ‘뒷방’으로 물러설 뜻이 없는 ‘청년 근형’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들 중 막내인 백일섭씨는 시리즈물 4편 내내 먹을 것과 마실 것, 쉴 곳을 찾는 모습만 보이는 ‘떼쟁이’로 등장, 이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진 누리꾼들 사이에서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만약 노이즈 마케팅(Noise marketing·잡음으로 시선을 끄는 기법)을 목표로 그를 등장시켰다면 감독의 시도는 적중했다. 과체중에 무릎이 아프다며 많이 걷는 것은 물론 여행의 의미인 관광조차 귀찮아하고, 움직일 때마다 술을 찾고, 어느 나라에서든 한국 음식 먹겠다고 주장하고, 자신의 뜻이 관철되지 않을 때는 무대뽀로 화를 내는 그를 두고 일부 누리꾼은 “저럴 거면 왜 나왔냐”는 비판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이런 누리꾼의 반응에도 제작진이 백씨를 계속 등장시키는 이유는 한마디로 인기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직진 순재’ ‘구야형 신구’ ‘로맨티스트 근형’ 세 사람의 캐릭터로는 프로그램 구성의 드라마틱한 요소가 제한될 수밖에 없었을 텐데 그가 일으키는 잡음이 다양한 구성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 돼주었을 것이다. 백씨 자신도 일부 누리꾼의 원성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꽃보다 할배에서 내 모습 그대로를 보여줬다”며 “내가 섭외 1순위였다”라고 자랑스럽게 내세웠다.
프로그램 속의 캐릭터와는 별개로 바람직한 노년의 초상으로 백씨의 모습은 다른 세 명에 비해 정답은 아닌 것 같다. 많은 시청자가 그의 모습에 재미와 애정을 느끼는 것 역시 우리나라에서만 있을 수 있는 흥미로운 현상이다. 만약 이 프로그램이 일본에서 제작됐다면,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교육을 어린 시절부터 받아온 일본인들 사이에서 이런 캐릭터가 ‘재미’라는 범주로 수용됐을지 궁금해진다. 이런 가정을 한번 해보는 건, 방송 리얼리티 쇼에 등장하는 각종 ‘민폐 캐릭터’에 대해 요즘 한국사회 분위기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관용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생각 때문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에 대한 관용적 태도 고쳐야
지난 7월 5일 실시된 그리스의 구제금융 안에 대한 국민투표에서 반대가 압도적으로 많이 나온 건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그리스는 2010년부터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했는데, 공교롭게도 이해에 첫 번째 구제금융을 수혈받았다. 그때부터 그리스는 긴축정책에 의해 사회보장제도가 부실해지면서 출산율이 급격하게 떨어져 갔다. 사는 게 힘들어지니 외국 이민은 줄고 일할 만한 젊은이들은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모국을 떠나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사회는 점점 암울해져 갔다.
그렇게 5년을 보내면서 그리스 국민들 사이에는 벌써부터 ‘배 째라’의 분위기가 팽배해져 갔다. 그러니 2차 구제금융을 받고 더 강력한 긴축정책으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다시 일어서자는 안으로 단결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스 투표 결과는 내부 사회 분위기를 아는 사람들은 예측 가능한 답이었다.
경제 침체기의 그리스 국민들 정서를 보면서 우리나라 사회의 분위기를 연결하는 건 무리일까? 난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남처럼 살아가는 게 어느 나라 못지않게 팍팍한 우리나라 역시 언제부터인가 ‘억지’가 ‘춘향이’를 이기고 있다. 이성적 판단을 해주는 리더가 없어 무조건 목소리 큰 사람이 대세를 장악하는 정의롭지 못한 사회가 됐다. 어떤 식으로 돈을 벌었나 보다는 얼마나 갖고 있나가 훨씬 중요한 물신주의에, 상상을 초월하는 악랄한 범죄에 대해서도 처벌은 솜방망이라 내 일 아니면 무조건 모른 척하고 사는 게 장땡인 불신사회이기도 하다.
그 속에서 별로 반듯하지 못한 언행이 박수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게 재미있단다. ‘정직’ ‘성실’ ‘노력’ 등의 단어는 따분하고, ‘한탕’ ‘대박’ ‘튀어야 산다’는 말이 꿈 속 화두인 사회가 정상은 아닌 것 같다.
우리에게 다시 어떤 국가적인 위기가 닥쳤을 때 1997년처럼 서랍 속에 있는 금패물을 모아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너나 할 것 없이 앞장서던 순진함은 이제 다시 등장하지 않을 것 같다. 사람들은 이미 힘든 세월을 겪으며 내 밥그릇을 잘 챙기는 게 가장 현명한 일이라는 걸 알았고, 힘들고 귀찮은 일에는 ‘배 째라’식으로 떼쓰면 훨씬 더 잘 통한다는 걸 깨달은 것 같다. 그래서 세상이 온통 ‘내가 원하는 대로 해달라’는 소음으로 가득 차고 있다.
그냥 조용히 살고 있는 소시민인 나는 한국에 더 큰 위기가 오지 않기만을 기도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