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도경의 컬처토크 〈25〉 메르스보다 대한민국 정부가 더 무섭다

  • 글 : 임도경 (사)지역문화소통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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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체를 제대로 알지 못할 때 가장 두려움 많이 느끼게 마련
⊙ 박근혜 정부의 비밀주의는 누구 때문인가
⊙ 공무원만 알고 국민은 몰라도 된다는 정부는 더 이상 필요 없어

임도경
⊙ (사)지역문화소통연구원 원장, 경희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객원교수.
지난 6월 7일 최경환 국무총리 직무대행(경제부총리)은 메르스에 대한 정부 대응 강화 조치에 대해 발표했지만, 뒷북대응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왼쪽은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대학교 1학년 때 일이다. 늦은 저녁 서울 은평구 신사동에서 아르바이트 과외를 마치고 나서는 길이었다. 당시 신사동은 개발이 진행 중인 지역이라 골목길이 어지러웠다. 가로등도 변변치 않았다. 인적 드문 어두운 길을 지나 버스 정류장까지 나서는 것도 등골이 오싹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땅이 울릴 정도로 큰소리를 내는 엄청난 차량의 엔진소리가 동네를 뒤덮었다. 골목길이 어지러우니 어느 골목을 통해 차가 튀어나올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점점 더 커져 오는 그 굉음은 공포 그 자체였다. 눈에는 보이지 않고 단지 소리의 크기로만 파악할 수 있었던 그 실체는 내가 있는 방향으로 점점 다가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잘못 피하다가는 오히려 차로 뛰어드는 꼴이 날 것 같아 두려움에 온몸이 떨렸다. 그때 순간적으로 난 서 있는 그 자리에서 가능한 한 벽에 가깝게 몸을 붙이고 차가 모습을 드러내고 사라질 때까지 기다린 후 움직이는 것이 가장 안전하겠다는 판단을 했다. 벽에 찰싹 붙어 불안한 마음을 달래며 그 굉음의 실체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을 참고 기다렸다.
 
  곧 엄청난 덤프트럭이 눈앞에 등장했다. 그 트럭을 내 눈으로 확인한 순간, 사고를 피했다는 안도감에 참았던 눈물이 터져나왔다. 컴컴한 골목에서 벽에 붙어 울면서 19세 어린 여자 아이는 비로소 공포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이 사건은 내가 그 아르바이트 집을 나선 후 불과 2~3분 사이 동안 겪은 일이다. 이 경험을 한 뒤 나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일은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는 공포를 견뎌내는 것이 되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끔 이 상황과 본질적으로 비슷한 사건으로 곤경에 빠질 때마다 이때의 공포스러운 느낌을 떠올리곤 했다. ‘실체를 파악하면 용기를 갖고 싸울 수 있을 텐데’ 하고 말이다.
 
 
  국민들을 실컷 공포에 떨게 한 뒤 병원 이름 공개한 정부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6월 4일 밤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메르스 관련 서울 확진 환자의 동선을 공개했다.
  이번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산 사태를 보면서 난 다시 30여 년이 지난 이 기억을 되살렸다. 입원한 병원을 통해 다른 사람 여럿을 감염시킨 환자가 죽었고, 자고 일어나면 사망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전염병의 확산경로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지 못한다는 건 정말 공포스러운 일이었다. 여기에 보태 병이 전파되고 있는 병원은 안 알려주면서 메르스 확진 환자의 수가 나날이 늘어간다는 뉴스속보는 하루종일 나오는 ‘환장하는’ 상황은 사람들을 극도의 공포상태로 몰아넣었다.
 
  이런 상황에서 카카오톡으로 엄청난 양의 메르스 관련 정보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연락도 없었던 제주에 있는 후배, 전 직장 상사뿐만 아니라 옆집 아줌마까지 본인들이 받은 메르스 관련 정보를 카톡에 올려주었다. 초기 며칠간은 정말 하루종일 카톡을 봐야 할 정도로 많은 메시지를 받았다. 메르스 확진 환자가 나온 병원 리스트와 예방법 등 다양한 정보들이 카톡을 통해 번져나가는 상황이었다. 그 내용의 신뢰도와는 별개로 국민들 모두 얼마나 불안해하고 있는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국민정서를 안 박원순 서울시장은 정말 발 빠르게 6월 4일 밤 10시40분에 메르스 관련 지도까지 들고 나와서 대응책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는 순발력을 보여주었다. 물론 이 기자회견에 등장하는 삼성서울병원 의사는 “박 시장의 대권을 향한 정치쇼”라며 강력 반발했다. 자신이 메르스 발병 사실을 안 시점은 박 시장 말대로 5월 29일이 아니라 5월 31일이었다는 것이다.
 
  박 시장이 좀 더 정확한 팩트를 확인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지만, 박 시장의 기자회견에 자극받은 정부가 그 다음날로 대국민 메르스 대응 전략을 바꾼 것만으로도 박 시장의 회견은 의미가 있다.
 
  까칠한 모습으로 기자회견에 등장해 정부 입장만 설명하고 사라지던 보건복지부 장관이 6월 5일 최초로 발병자가 나온 평택성모병원 이름을 공개했고, 그 이틀 후인 6월 7일 최경환 국무총리 대행(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등장해 메르스 환자를 수용했던 24개 병원의 실체를 밝혔다.
 
  메르스 확진 환자가 나온 5월 20일에서 18일 만에 내려진 조치였다. 국민들의 원성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상황에서 사후약방문격으로 나온 정부 발표를 보면서 실소를 금치 못했다.
 
  최 총리 대행은 이날 “대통령께서도 지난 6월 3일 메르스 대응 민관합동 긴급점검회의에서 환자가 발생한 의료기관을 투명하게 알려주어야 한다고 지시하셨고, 이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신고 폭증에 대비한 신고체계 구축 및 격리병상 추가 확보 등 사전준비를 마치고 공개하게 되었다”고 발표가 늦어진 이유를 설명하면서 박 대통령을 위한 변명도 확실하게 보탰다. 병원 공개에 대한 대통령의 지시가 이미 5일 전에 나왔는데, 늦어진 건 정부 차원의 준비 때문이라고 말이다.
 
  정부가 18일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야 확진 환자가 나온 병원 등의 정보를 공개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국민안전 확보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메르스의 실제 감염은 병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병원에 대한 강력한 통제가 불가피하다는 것”이었다. 국민들이 하나같이 그렇게 간절하게 감염 병원의 실체를 알고자 했을 때는 모른 척하던 정부가 공포에 떨 만큼 떤 이후에야 국민의 안전 확보를 내세우며 병원을 공개한다는 것도 정말 한심하고 얄미웠다.
 
  더군다나 6월 4일부터 청와대에서는 1000만 원 상당의 열감지센서를 설치, 출입자들의 체온까지 체크하는 삼엄한 메르스 경계 태세를 갖춰놓고 그제야 국민의 안전 확보가 걱정됐다니 그것도 실소를 금치 못할 일이다.
 
 
  메르스 괴물은 정부의 위기관리 소통능력 不在가 키운 것
 
  난 어쩌면 메르스가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만큼 강한 바이러스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감염 사망자들은 각종 호흡기 질환을 오래 앓아온 환자들이었다. 최초의 감염자로부터 전염된 그의 부인은 격리치료 후 퇴원했다는데, 그녀 역시 육십이 넘은 나이였다. 그 나이 여성이 견뎌낼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라면 그렇게 무서워서 도피해야 할 정도의 공포까지 느낄 필요가 없는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메르스라는 괴물을 키워놓고 그에 대한 절박한 공포심을 갖게 한 건 오히려 정부의 위기관리 소통능력의 실패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이명박 대통령 초기 미국 쇠고기 광우병 사태를 겪으면서 국민과의 소통 부족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우리는 이미 학습한 바 있다.
 
  더군다나 이번처럼 전염병이 번질 때 온 국민이 단합해 정부를 믿고 소통하며 대응책을 세워나가는 건 문제 해결의 핵심이다. 그런데 정부는 여전히 비밀주의 입장에서 폐쇄적인 태도로 이 문제에 대해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심지어는 의사협회와 병원협회에서 메르스 감염자가 다녀간 의료기관을 병원끼리라도 공유하게 해달라는 요구를 지속적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에서 이것조차 주저한 것은 명백한 실책이다. 발병 초기에 이 부분에 대해 신속한 정보 공유가 이뤄졌다면, 메르스 감염자들이 그 많은 병원을 감염시키며 돌아다니는 걸 차단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건복지부 내에 차려진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에서 정보 관리 정책을 책임진 실무 공무원은 무능하거나 아마 현 정부에 대해 반감을 가진 사람임이 분명할 것 같다. 그는 현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키워놓은 장본인이다. 꼭두각시 같았던 장관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이 듣고 보고 싶었던 건 장관의 피곤한 얼굴과 형식적인 브리핑이 아니었다.
 
  고려대 예방의학과 최재욱 교수는 메르스 같은 신종 감염병 위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포 관리’라고 했다.
 
  최 교수가 제안한 공포 관리 수칙은 미국 질병통제센터의 매뉴얼에 근거한 것이다. 첫째, 국민을 지나치게 안심시켜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상황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국민이 해야 할 일을 제시하라고 했다. 둘째는 공포감을 억지로 누르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국민의 공포는 ‘불확실성’, 즉 정보의 부재에서 온다. 그래서 상황을 정확하게 알리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현 정부는 낙제점이다. 국민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정보의 공무원 독점’을 언제까지 보아야 하는가.
 
 
  결국은 대통령 책임
 
  지금 심정 같아서는 정부를 법적 심판대에 올려놓고 싶은 마음까지 든다. 정부와 보건당국은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6조 2항’을 위반했다. 이 조항에는 ‘국민은 감염병 발생상황, 감염병 예방 및 관리 등에 관한 정보와 대응방법을 알 권리가 있다’고 분명히 명시돼 있다.
 
  요즘같이 정보 공유가 활발한 시대에 아직도 시대착오적인 폐쇄적 입장을 견지하며 정보를 장악하는 것으로 힘을 보여주려는 정부는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정부의 비밀주의가 얼마나 국민들을 괴롭히고 있는지 크고 작은 사건이 터질 때마다 느끼고 있다. 정부 산하의 공공기관에서 특정 제품의 유해성에 대해 조사결과를 발표할 때 단 한 번도 어느 사의 어느 제품에 어떤 유해한 물질이 들어 있다는 식으로 발표를 해준 적이 없다. 정부의 발표는 늘 A사의 B제품 식이다. 그게 아니면, 특정 회사를 공개하지 않은 채 전 제품을 뭉뚱그려서 ‘특정 유해물질이 함유된 제품이 시중에 나돌고 있다’는 식의 발표로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한다. 그런 점에서 얼마 전 식약청의 발표로 시작된 특정 기업(내츄럴엔도텍)의 가짜 백수오 파동은 이례적인 케이스라 배경이 궁금해질 정도이다.
 
  국민들의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확한 정보를 못 줄 바에야 조사는 뭐하러 해서 불안감만 증폭시키는지 모르겠다. 국민의 건강을 염려한다면 문제 제품을 공시해 주는 게 도리일 텐데, 하는 짓을 보면 정보를 슬쩍 흘리며 기업을 길들이려는 의도가 숨겨진 것은 아닌가 의심하게 될 정도다.
 
  정부는 전염병조차 이렇게 문제 제품을 처리하듯 비밀주의로 일관하다가 결국 된서리를 맞고 있다. 정부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데 대한 궁극적인 책임은 대통령이 져야 한다.
 
  우리나라는 대통령 중심제 국가이다. 대통령의 의지가 곧 정부를 움직이는 에너지원이 되는 정치체제다. 박 대통령의 메르스 관련 대책이 노무현 대통령의 사스 관련 대책과 비교되는 것은 그런 면에서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박 대통령은 대외적인 활동은 광폭으로 하고 있지만, 내치에 있어서는 늘 몇 발씩 늦고 치밀하게 챙기지 못한 것 같다. 본인이 할 수 없는 상황이면 소신 있게 일할 장관이라도 뽑아놨어야 하는데, 낯가림이 심한 탓에 인맥의 풀도 그다지 넓지 않은 것 같다.
 
 
  늑장대처가 박 대통령의 ‘비범성’에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불안
 
지난 6월 5일 메르스 환자들이 치료를 받고 있는 국립중앙의료원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 5월 20일 국내 첫 확진 환자가 나오고 16일 만이다.
  그런 점에서 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박 대통령이 일반적인 여성의 삶을 살아봤다면 무엇을 먼저 처리해야 할지 당연히 알았을 일들을 놓치고 있다는 점이다. 가정을 가진 주부들이 이런 전염병이 나도는 상황에 대해 무엇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대통령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노 전 대통령이 사스에 대해 발 빠르게 대처한 건 아마 그 역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가족을 보호해야 한다는 심정을 일반 국민들과 공유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경험해 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 경험자와 똑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보통의 인간이 아니다.
 
  난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박 대통령을 찍었다. 한국에서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나와서 잘해주길 바랐고, 전직 대통령의 딸이라는 이력이 좋은 경험으로 작용해 대내외적으로 아버지보다 나은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기도 했다. 물론 박 대통령에게 한 표를 행사하면서 내심 드는 걱정도 있었다. 평생을 일반 사람들처럼 생활해 보지 않은 특이한 경력이 걸렸다.
 
  그 꺼림칙함이 틀렸기를 바랐지만, 나날이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강해진다. 박 대통령이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다. 메르켈 총리는 가정주부로서도 성실하게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단골 슈퍼에서 경호원 없이 직접 장을 보고, 교수인 남편을 위해 요리를 하며, 부부가 함께 나선 산책길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도 일반인들의 눈에 띈다고 한다. 독일에서 메르스 사태가 벌어졌다면, 메르켈 총리는 우리나라 정부와는 다른 발 빠른 대처에 나섰을 것이라 짐작된다. 왜냐면, 그녀는 한 가정을 지키는 가정주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메르켈 총리가 왜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지 그 이유도 유심히 살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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