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도경의 컬처토크 (21) 오바마처럼 해 주면 안 되나?

  • 글 : 임도경 (사)지역문화소통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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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바마는 초등학생도 알 수 있게 예산안 설명하는 데 반해, 정부는 ‘세금 폭탄’ 때리면서도 설명 없어
⊙ 무상보육 예산 10조원, 어린이 한 명당 220만원의 권리금 받고 어린이집 팔기도
⊙ 장애인, 기초생활수급자, 일하는 엄마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부터 챙겨야

임도경
⊙ (사)지역문화소통연구원 원장, 경희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객원교수.
서울 시내의 한 어린이집에서 어린이들이 교사의 지도로 게임을 하고 있는 모습이 폐쇄회로 TV에 기록되어 있다.
오늘 처음 미국이 부러웠다. 여행, 출장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공부하면서 살아보기도 했지만 영원히 머물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와 닿는 나라는 아니었다. 세계지도에서 콩만 한 작은 나라라도 내가 태어난 한국이 그래도 좋은 곳이라는 자부심을 내려놓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난 2월 2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DC 국토안보부에서 4조 달러 규모의 2016년 회계연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네덜란드 추상화가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예산안 구성 그래픽을 통해 예산이 어디에 얼마나 쓰일 것인지 국민들에게 상세히 설명하는 모습을 보고 난 ‘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으로부터 한 해 살림살이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듣는 미국 국민이 엄청나게 부러웠다.
 
  면 분할로 이뤄진 그래픽 사각형 가운데 가장 큰 빨간색 계통은 의료 관련 예산(빨간색도 여러 종류로 나누어 의료 관련 예산을 세분화해 설명했다), 파란색은 사회 보장, 황색 계열은 국방, 회색 계열은 퇴역 장병 혜택, 교통 예산 등으로 색차이를 둬 항목별 예산의 크기를 동시에 비교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초등학생도 알 수 있는 친절한 그림이었고, 내 눈엔 국가 예산을 주제로 한 예술작품으로 보였다.
 
  왜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이런 친절함을 갖추지 못할까? 정권마다 무슨 경제라며 구호는 입에 달고 다니면서 정작 국민에게 한 나라 살림을 어떻게 꾸려 가겠다고 나서서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노력은 전혀 하질 않는 걸까. 그러면서 매해 살림은 적자투성이에 빚만 늘어 가게 만들고 있고, 세수 부족을 메우기 위해 월급쟁이들에게 세금 폭탄을 날리고 있다. 참 답답하다.
 
 
  애물덩어리가 된 무상복지
 
  우리나라의 빚은 514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37%. 보통 국가채무가 GDP 대비 60%를 초과하면 재정 상태가 위험한 것으로 보는데, 현재의 속도라면 우리나라는 2030년에 이 수치를 넘어서게 된다.
 
  한 가정을 예로 들어 보자. 남편의 월급을 제 주머닛돈처럼 쓰는 아내가 그 돈을 어디에 쓰는지 남편에게 상세히 알리지도 않으면서 입만 열면 “좋은 일에 쓰다 보니 모자란다. 더 벌어 와야 한다”는 말을 한다면, 남편의 심정이 어떻겠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을 일이지 않을까. 분통 터진다. 좋은 목적의 지출도 규모 있게 해야지 없는 돈까지 끌어다 쓰며 빚을 늘리는 상황에서 생색은 제가 내고 돈은 남편한테 내놓으라는 마누라와는 같이 살기 힘들다.
 
  남편은 세금 꼬박꼬박 내는 국민이고, 그 돈 받아서 제 멋대로 쓰는 아내는 정부이다. 무상복지를 확대해서 그렇다고 주장하는데, 아무리 국민을 위한 복지라도 치밀한 정책적 바탕 위에서 차질 없이 실시해야 박수도 나올 수 있다. 온갖 생색은 다 내며 실시한 무상복지를 어떤 식으로 자금을 조달해 어떤 과정으로 시행해 나갈지조차 정부는 국민에게 합의를 구한 적이 없다. 내가 그렇게 할 테니 돈 내놔라 식이다. 그 결과, 오늘의 무상복지는 애물덩어리가 됐다.
 
  우리나라 복지예산은 지난해 처음 100조원을 넘었다. 올해 복지예산은 115조7000억원이다. 2006년 56조원에서 9년 만에 두 배로 늘었다. 올 한 해 총예산(375조4000억원)의 30%를 차지한다.
 
  65세 이상 노인에게 월 최대 20만원을 지급하는 기초연금으로 올해 10조원이 지출된다. 2년 전보다 2.5배 늘어난 것이다. 고령화사회가 진행되는 추세대로라면 2040년에는 올해 전체 복지예산 규모와 맞먹는 100조원이 지출돼야 한다.
 
  무상보육 예산도 2년 전보다 거의 두 배(6조5596억원→10조2256억원) 가까이 늘었다. 대학생 반값 등록금 예산도 한 해 만에 두 배 이상(1조9239억원→3조9120억원) 더 늘었다.
 
  반면 세수 부족액은 2012년 2조8000억원에서 2013년 8조5000억원으로 뛰었고, 지난해엔 11조1000억원으로 사상 처음 10조원을 넘어섰다. 정부는 세수 부족을 메우기 위해 월급쟁이들의 연말정산을 소득공제 방식에서 세액공제 방식으로 바꿔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지난 대선 당시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하다고 큰소리쳤던 여권은 또 어떤 말로 이 위기를 빠져나갈지 모르겠다.
 
 
  문제는 실력 없는 정부
 
  코너에 몰린 여권이 들고 나온 카드는 ‘한국형 복지’다. 현 상태의 복지를 축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또 한 개의 단어를 만들어 낸 것 같다. 국민들은 그동안 정치권이 ‘한국형’이라는 말을 들고 나올 때마다 벌어지는 쓴 경험들을 많이 해 왔다.
 
  정부의 수입보다 지출이 많다면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세 가지뿐이다. 복지를 축소해 지출을 줄이는 것, 또 세금을 더 거둬 수입을 늘리는 것, 또 한 가지는 국채를 발행해 미래의 빚으로 돈을 만드는 방법이다. ‘한국형 복지’는 가장 쉬운 복지 축소라는 방법을 택할 조짐으로 보인다.
 
  여권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수습만은 좀 정신 차리고 했으면 싶다. 이런 구호를 앞세워 급작스럽게 정책기조를 바꿔 급한 불이나 끄겠다는 심산으로 또 다른 실수를 범하기 전에 우선 차분히 무엇이 문제였는지 규명부터 해내야 한다. 사실 우리나라 복지 수준은 전체 1100조원에 달하는 GDP에 비해 10%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낮은 편에 속하기 때문이다. 복지 천국으로 불리는 북유럽이나 서유럽 국가들은 전체 GDP의 30%를 복지예산으로 쓰고 있다.
 
  이런 여러 가지 측면을 종합해 보면, 우리의 문제는 무상복지 그 자체가 아니라 ‘무능한 아내’를 둔 한 가정처럼 나라살림을 제대로 꾸리지 못하는 실력 없는 정부를 두고 있는 데서 시작된다. 세금을 제대로 못 거둬들여 세수 부족으로 허덕대면서 늘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납세해야 하는 월급쟁이들만 봉으로 삼고, 치밀한 시행계획도 세우지 않은 채 ‘무데뽀’ 식으로 선심성 무상복지를 실시하다가 오히려 사회적 문제만 일으키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늦었지만 이제라도 무상복지가 국민들의 생활에 어떤 변화를 주었는지부터 면밀히 살펴보는 바탕 위에서 정책 수정이 이뤄져야 한다. 그 안을 들고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오바마처럼 국민 앞에 나서서 어떻게 꾸려 나갈지 설명을 해 보라는 말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증세를 하든, 복지를 부분적으로 포기하든, 국민들이 공감대를 이룬 상태에서 새로운 발걸음을 뗄 수 있다.
 
 
  망해 버린 키즈카페
 
  무상보육 문제만 해도 그렇다. 준비 없이 무조건 무상보육을 시행한 결과, 어린이집에 맡겨진 서너 살짜리 아이들을 볼모로 사회비리가 만연하고, 또 아이들 자신도 심성도 갖춰지지 않은 보육교사들한테 두들겨 맞는 상황이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애꿎은 아이들만 처량한 신세가 된 셈이다.
 
  무상보육 안은 누가 만들었는지, 정말 단세포적이다. 0~5세 아이들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니면 학비를 주고, 가정에서 돌보면 양육수당을 지급하는 식이다. 0세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 한 명당 77만8000원을 기관에 지급하고, 집에서 돌보면 양육수당 20만원을 준다. 만 1세를 기관에 맡기면 53만7000원, 집에서 양육하면 15만원이다. 만 2세는 기관 41만3000원, 집 15만원, 만 3~5세까지는 기관 22만원, 집 10만원이다.
 
  이런 구조에서 아이의 엄마들은 어떤 방법의 육아를 택할까? 당연히 내 아이를 위해 최상의 선택을 하리라고 정책입안자들은 생각한 모양인데, 결과는 그게 아니었다. 엄마들은 집에서 키울 수 있는 여건이라 해도 한 푼이라도 더 많이 지원받는 쪽을 택했다. 내 아이 내가 키울 때는 어려워도 참았지만, 나라에서 돈을 준다는데 한 푼이라도 덜 받는 건 손해를 보는 느낌이 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무상보육이 실시된 첫해인 2013년 보육시설을 이용하는 0~2세 영아 수는 19만명에서 32만명으로 한꺼번에 13만명이나 늘어나 정작 도움이 필요한 일하는 엄마들이 어린이집을 못 구해 발을 동동 구르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졌었다.
 
  용인의 대형 아파트촌에서 키즈카페를 오랫동안 운영해 온 내 친구는 지난해부터 3~5세까지 무상보육이 확대 실시된 이후 가게를 접었다. 그동안 키즈카페는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사랑방과 같은 존재로 성업 중이었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또래 엄마끼리 차를 마시고 간단한 식사도 할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상보육 혜택을 받게 된 이후 이 엄마들이 아이들을 다 어린이집으로 보내고 같은 빌딩 아래층에 있는 카페에 모여서 하루 종일 놀다가 헤어진다고 한다. 아이들과 같이 노는 키즈카페는 망하고, 엄마들만 모이는 성인카페는 성업 중이라는 얘기다.
 
 
  혜택을 받아야 할 가구와 그렇지 않은 가구를 가려내는 것이 중요
 
  상대적으로 적은 양육비를 지원받고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주부들은 내심 손해 본다는 의식이 깔려 있다고 한다. 내 자식 내가 키워도 돈 드는 건 마찬가진데, 지원금도 똑같이 나눠 줘야 한다는 게 이들의 지론이다. 이런 엄마들에게는 또 다른 유혹의 손길이 뻗친다. 어린이집에 등록만 시켜 주면 매달 10만원을 주겠다는 어린이집 원장들의 은밀한 제안이다. 어떤 원장은 하루에 2~3시간만 맡게 해 주면 5만원까지 주겠다고 한단다. 아이를 맡기고 돈까지 챙기니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 무상보육으로 눈먼 돈이 10조원이나 풀리자 이런 불법적인 거래가 수없이 행해지고 있다고 한다.
 
  최근 부동산 사이트에는 권리금까지 줘야 사는 어린이집 매물이 버젓이 떠있다. 권리금 규모는 어린이 한 명당 평균 220만원 정도로 계산된다. 이제 어린이집 운영은 떠오르는 사업 아이템이다. 어린이집은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여기서 일할 보육교사들이 제대로 육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들이 몰리다 보니 결국 어린이집이 가학적 공간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현실이 이런데, 원초적으로 무상보육의 문제점을 점검하기는커녕, ‘한국형 복지’라는 말을 앞세워 또 다급하게 무상보육을 소득 하위 70%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안으로 수정하면 3조원이 줄어든다는 식의 산술적 대안들을 쏟아내고 있으니 한숨만 나온다.
 
  문제가 있다고 급하게 서둘러 또 다른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우매함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분배의 미를 살려내는 일이다. 정치의 본질은 분배에 있다고 본다. 어차피 모든 재원은 국민들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니 분배를 잘하면 정치를 잘한다는 칭찬도 나온다.
 
  급작스런 무상교육으로 많은 문제점들이 쏟아져 나왔으니 오히려 잘된 일일 수도 있다. 전 가구 무상보육은 미래의 목표로 단계별 마스터플랜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선 혜택을 받아야 할 가구와 그렇지 않아도 되는 가구를 가려내는 것이 수정안의 첫발걸음이 돼야 할 것이다. 나라에서 어떤 아이부터 맡아서 키워 줘야 고맙다는 소리라도 들을지 생각을 해 보라는 이야기다. 나라면, 장애인 엄마, 기초생활수급자 엄마, 일하는 엄마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먼저 챙길 것 같다. 나머지는 재정을 확보하는 대로 확장해 나가면 된다.
 
  아이를 스스로 키울 수 있는 가정에까지 소정의 보육료 수수와 어린이집 선택의 갈등을 일으키며 엄마의 마음을 흐려 놓지 말라는 이야기다. 정말 득 될 것이 없는 지원책이다.
 
  이와 함께 민간 어린이집들이 국공립 어린이집이나 일반 기업에서 사원들을 위해 마련한 보육시설 수준으로 요건을 갖추도록 육성해 나갈 계획을 세워야 한다. 될성부른 어린이집을 키우고, 장삿속 어린이집은 퇴출시키는 두 가지 노력을 함께 해 나가야 한다.
 
  또 보육교사를 양성하기 위한 중장기 계획도 마련해야 한다. 현재 활동 중인 보육교사의 처우를 개선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요건을 갖춘 사람을 길러내는 일이 첫째고, 대우를 해 주는 건 그 다음 해결책이다. 그래서 이 일은 적정 시간이 필요하다.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없는 일은 시간을 갖고 해결하겠다고 솔직하게 말해 주는 것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방법이다.
 
 
  부메랑이 된 무상복지
 
  보육의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키를 쥐고 있는 엄마들도 이번 무상보육 문제에 대해 한 번쯤 차분하게 생각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CCTV를 어린이집 곳곳에 설치하는 것이 이 모든 일을 막을 수 있는 비방인지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라는 이야기다. 아이를 꼭 어린이집으로 보내야 할 상황이 아니라면, 교사들을 못 믿고 감시하는 데 신경을 곤두세울 것이 아니라 바람직한 조건이 갖춰질 때까지 아이들을 보내지 않는 것이 정답이다.
 
  아이들의 인성은 3세 이전에 다 형성된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은 그냥 옛말이 아니라 엄연한 과학적 분석이다. 그래서 준비되지도 않은 무상보육의 얼개 속에 단지 ‘손해 보기 싫어서’ 소중한 어린 자식을 던져놓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선택인지 알아야 한다.
 
  정부는 무상보육의 문제뿐만 아니라 현재 시행하고 있는 모든 복지제도를 한 바구니에 넣고 재검토해야 한다. 부처별로 지원책이 달라서 한 가구에 여러 부처에서 나온 지원금이 중복 지출되는 경우도 적지 않은 반면 복지 사각지대도 많은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또 복지정책 중에서도 완급을 나눠서 시행해야 할 것들을 가려내야 한다. 들여다보고 고민하며 새로운 수정안을 만들기 바란다.
 
  남편 돈으로 인심 쓰면서 가계를 파탄으로 이끄는 아내처럼 국가재정을 위기로 몰아넣는 정부는 되지 말아야 한다. 정권의 인기를 위해서 졸속으로 처리한 ‘무상’이라는 이름의 갖가지 복지정책이 결국 부메랑처럼 돌아와 그 정권의 심장을 겨냥할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은 공짜인 것처럼 포장된 푼돈에 약해 보일지 모르지만, 모두 모이면 그른 것과 옳은 것쯤은 구분할 줄 아는 이성적 집단이 된다는 걸 권력자들은 모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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