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만 명이 넘는 회원을 가진 온라인 중고매매 사이트에 들르는 재미에 최근 빠져
⊙ 각종 속임수 판치지만 치장 없는 서민문화를 엿보는 데 유익
임도경
⊙ (사)지역문화소통연구원 원장, 경희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객원교수.
⊙ 각종 속임수 판치지만 치장 없는 서민문화를 엿보는 데 유익
임도경
⊙ (사)지역문화소통연구원 원장, 경희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객원교수.

- 서울 황학동 벼룩시장. 인터넷상의 중고시장에서는 오프라인상의 벼룩시장 못지않은 다양한 일들이 벌어진다.
2003년 개설된 이후 명실상부한 최고의 개인 카페 성공 사례로 꼽히는 이 사이트의 회원은 1000만명이 넘는다(12월 7일 현재 1327만7656명). 회원 등록만 해 놓는 것이 아니라 하루가 멀다 하고 방문하는 사람만도 수백만 명(12월 7일 현재 328만5838명). 이 정도면 한국 서민의 인심을 대변하는 집단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법하다. 실시간으로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이 장터에 접속해 물건을 팔거나 반대로 필요한 물건을 눈에 불을 켠 채 고르고 있으니 두 시간 만에 원거리 거래가 일사천리로 이뤄진 것이다.
내가 이 사이트에 매료된 이유는 두 가지이다. 물건을 팔거나 사려고 모인 사람들이 게시판을 통해 주고받는 실시간 거래과정을 엿보는 재미가 만만치 않다. 이 대화 속에 요즘 한국사람들의 정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또 오프라인에서는 아무리 발품을 팔아도 다 볼 수 없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장터에서 평소에 보지 못했던 갖가지 희한한 물건들을 구경하는 맛이 쏠쏠하다. 황학동 시장을 거닐 때 느낌이라고나 할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평생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을 찾아 구매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쇼핑 반경’은 대부분 제한적이다. 집근처의 대형 수퍼나 동네 가게가 대부분이다. 온라인 구매라 해도 몇 가지 정보를 통해 가장 합리적인 가격에 파는 사이트를 찾아내 구매하는 정도가 다이다. 요즘 유행하는 해외직구도 사이트만 다를 뿐 결국 정해진 물건을 찾아서 사는 행위는 똑같다. 그렇다 보니 우리는 세상으로 쏟아져 나온 수없이 많은 물건의 극히 일부분만 접하면서 그 안에서 선택해 쓰며 한평생을 보내게 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쓰는 물건들은 대강 값도 정해져 있고, 브랜드도 한정적이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자주 가는 대형 수퍼나 백화점도 정해져 있다. 소비패턴이 한정적이라는 이야기이다. 이런 패턴 때문에 빅데이터를 이용한 소비자 표적광고가 요즘 활개를 치고 있다.
이런 구매환경에서는 생산자와 소비자 간에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필요 없다. 소비행위라 해 봤자 정해진 가격대로 선택해 구매하면 끝이다. 이러다 간혹 생산자 측에서 구매후기를 올리는 소비자에게 포인트라는 걸 줘 재구매를 유도하는 정도가 소통의 끝이다.
사이트에서만 통용되는 독특한 용어들도 상당수
하지만 이 중고매매 사이트에서의 거래는 다르다. 세상에 처음 보는 물건도 많다. 이 물건을 보았기 때문에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혀 예상치 못한 물건에 대한 구매욕구가 스멀거리게 하는 충동적인 마켓이다. 이 물건들을 두고 흥정이 벌어지고, 적절한 사기술도 횡행한다. 누구나 팔고 싶은 물건을 들고 장터에 뛰어들고, 또 필요한 물건을 살 수도 있기 때문에 프로슈머의 입장에서 동등한 진검승부가 펼쳐진다.
이 사이트에서 통용되는 협상용어도 따로 있다. 일반적인 대화나 인터넷 상거래에서는 쓰이지 않는 말이라 흥미롭다. 흥정에 들어가기 위해 알아둬야 할 몇 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네고 불가- 본인이 부른 가격을 고수하겠다는 이야기이다. 자신이 책정한 가격에 자신 있는 사람이 고압적인 태도를 취할 때 쓰는 말이다. 좀 오만하게 느껴지는 용어이다.
* 이유 있는 네고 가능함- 흥정에 어느 정도 유연하게 대응하겠다는 이야기이다. 상대방이 원하는 가격을 제시하면 생각해 보고 응하겠다는 뜻. 자신이 내놓은 물건을 빨리 처분하고 싶거나 매긴 가격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종종 이런 말을 붙인다.
* 찔러 보기 사절함- 물건을 꼭 살 생각도 없으면서 흥정에 뛰어들어 물건 값만 낮춰 놓고 안 사는 사람들과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보통 판매자가 남긴 휴대폰 번호 문자로 흥정이 이뤄지기 때문에 가끔은 짓궂은 사람들이 장난을 걸어 올 때가 있었던 것 같다. 찔러 보기 사절함도 네고 불가라는 말을 쓴 사람과 마찬가지로 가격에 대해 협상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로 보면 된다.
* 찔러 보세요- 흥정을 해 보자는 이야기이다. 이런 용어를 쓰는 사람들은 개인 판매자가 아니라 대부분 물건을 많이 갖고 파는 상인들이 이 사이트를 이용해 물건을 처분하려고 할 때 등장한다. 관심을 갖고 연락을 해 오면 거래가 성사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 택포- 보통 거래는 물건이 있는 곳까지 직접 가서 보고 사는 직거래와 돈을 송금한 뒤 택배로 받는 간접거래로 이뤄진다. 내가 판 식탁은 직거래 형태였지만, 작은 물건은 대부분 간접거래로 주고받는다. 그러다 보니 택배비를 어느 쪽에서 부담하느냐가 거래의 쟁점이 되곤 한다. 택포라는 말을 쓰면 택배비를 물건을 파는 쪽에서 부담하겠다는 뜻이다. 택포가 아닐 경우 택배비는 물건값과는 별개로 사는 사람 쪽에서 더 송금하거나 수취인 부담을 택해야 한다.
이런 용어가 이 중고거래 사이트를 통해 새로 만들어졌다는 건 재미있다. 누군가가 이런 용어를 만들어 처음 썼을 것이고, 이것이 이 사이트에서 유행어처럼 번지면서 이제는 흥정의 잣대처럼 쓰이고 있으니 말이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회원 천만 명이 이 용어에 묵시적 동의를 하고 공유하고 있으니, 놀랍지 않은지.
용어뿐만 아니다. 이 카페에 각양각색의 회원들이 몰려들면서 만들어진 일그러진 문화에 쓴웃음이 나올 때도 적지 않다.
보통 거래는 게시판에 팔 물건 사진과 이 물건을 팔게 된 경위, 그리고 원하는 가격과 연락처를 써서 올리는 것에서 시작된다. 여기 몰린 사람들은 물건이 중고판매로 나오게 된 사연을 중시한다. 보통 아끼던 물건을 내놓고 파는 경우를 가장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구절절 많은 사연들이 올라온다. 그중 좋은 물건을 급한 사정에 의해 중고거래물로 싸게 내놓은 경우가 인기 1순위.
그래서 가장 인기 있는 게시물은 ‘이사갑니다’ 혹은 ‘이민갑니다’라는 사연을 단 물품이다. 이사를 하거나 이민을 갈 경우, 아직 쓸 만한 중고물품이 싼값에 쏟아져 게시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자 많은 상인들이 현재 상점에서 버젓이 팔고 있는 물건을 ‘이사갑니다’라는 명패를 붙여 게시해 파는 경우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한 종류의 게시물이 과도하게 많을 경우는 십중팔구 이런 경우라고 보면 된다. 이사 간다면서 새로운 그릇만 비싼 가격을 붙여 줄줄이 올리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그릇장수라는 얘기다.
이 경우는 그냥 알아보고 웃으면 된다. 하지만 정말 사람을 속여 팔겠다고 나선 사람들도 적지 않다. 착한 가정주부 흉내내기도 일상적인 사기술.
각종 속임수를 동원하는 경우도 많아 주의 필요
![]() |
| 로버트 단턴 하버드대 교수. |
이런 거래가 인기가 있자 이 경우가 아닌데도 ‘잘못 산 물건을 판다’는 식으로 속여 가면서 똑같은 물건을 시간 차이를 두고 계속 사이트에 올려 팔고 있는 업자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최근 이 부류에 속하는 한 사람의 게시판 댓글에 ‘쯔쯔’가 등장한 걸 보면, 아마 그 사연에 속아 물건을 구매했던 사람도 있었던 듯하다.
이 밖에도 중고물품이면서 새것보다 비싼 가격으로 내놓고 파는 사람, 고장 난 물건을 정상적인 물건으로 팔아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 돈만 받고 물건을 보내지 않아 사이트 관리자들에게 신고돼 강퇴(강제 퇴장) 대상에 오른 사람, 남의 아이디를 도용해 불법적인 거래에 사용하는 사람 등등 천태만상의 모습들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지켜보면, 이곳에서 정상적인 판매 행위를 하는 개인은 전체의 1/3도 안 될 듯하다. 한 페이지에 스무 가지 남짓 뜨는 게시판에 네다섯 개 정도만 진정한 개인 간 중고 물물거래 물품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이트가 여전히 흥미로운 건, 한국의 서민문화를 이 정도로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곳이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문화를 보면 역사를 다르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 문화연구가들의 입장이다. 우리가 배우는 역사는 지배자들의 기록이기 때문에 실제 그 시대 서민의 역사를 읽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 시대 서민의 역사는 문화 속에 담겨있다.
하버드대 교수이며, 문화사가인 로버트 단턴(Robert Darnton)에 의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문화연구’는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1730년대 프랑스 한 작은 마을의 인쇄공들이 폭동적으로 고양이를 학살한 사건이 이후 프랑스혁명(1789~1794)을 일으킨 프롤레타리아적 정서의 시발점이었다는 것도 그에 의해 분석된 것이다.
당시 프랑스 인쇄공들은 춥고 더러운 방에서 기거하면서 주인집에서 키우는 25마리의 고양이 먹이만도 못한 음식을 먹고 살았다. 노동자들은 ‘부르주아’라고 불리는 주인들에게 사랑받는 고양이를 음해한다. 매일 밤 창문에 가 고양이 울음소리를 내면서 주인 내외를 잠 못 들게 한 것. 그러자 주인은 고양이를 죽일 것을 명하고, 빗자루, 철봉으로 무장한 그들은 고양이를 모의재판하면서 피비린내 나는 살육을 벌인다. 그들에게 고양이 학살은 바로 주인들에 대한 저항이 담긴 행위였다. 한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고양이 학살 사건은 프랑스 전역의 노동자들 사이로 번져 나가며 큰 웃음거리가 됐다고 한다.
한국인 1000만명이 부지런히 드나드는 중고매매 사이트를 보면서 나는 한국 서민들의 치장 없는 서민문화를 보고 있다. 한 번도 만난 일이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신조어가 만들어지고, 묵언의 합의대로 거래행위가 이뤄지는 내면적 역동성이 놀랍다. 하지만 그 속에서 ‘진심’보다는 ‘사욕’이 훨씬 더 활개를 치며 물을 흐리고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초기에는 나름 알뜰하게 살아 보겠다는 사람들이 중고 직거래를 시작하면서 만들어졌지만, 나날이 규모가 확장되면서 진짜보다는 가짜들이 더 판을 장악하고 있다.
문화연구가 입장에서 이 사이트를 통해서 본 한국의 서민문화는 아직 ‘카오스(chaos)’ 수준이다. 그래서일까. 한국의 정치권이 그 밥에 그 나물로 구악을 되풀이하면서도 뻔뻔스럽게 건재한 건 아마 서민문화가 아직 이런 폐단을 견제할 만큼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